아버지 사업의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었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나 랍비가 될 재목으로도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을 부정하고 유대교 교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24세에 파문당해 유대교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되었다.
유대공대체에서 파문당하자
◈ 소부 목사님이 북수원교회에서 쫒겨나자 이와 같은 말을 했던가?
..야! 해방이다. 야! 해방이다. 야 드ㅡ디어 행방이다. 해방이다.
나를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구속하고 있던 모든 억압, 족쇄로부터 나는 이제 해방이다. 스피노자는 유대공동체에서 쫒겨나고 파문 당한 것을 자유와 행방으로 보았다. 유대공동체는 스피노자에게 있어 육체적 정신적인 뿌리였다. 여기에서 쫒겨난다는 것은 스피노자에게 사망선고나 다음없다. 죽은 것이나 같다. 스피노자는 자기에 대한 사망선고를 기쁘게 받아드린다. 왜냐하년 그 사망선고야 말로 과거의 나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나로 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거다. 스피노자는 자기에게 내려진 사망선고를 능동적으로 받아드린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자기가 옳다고 진리라고 믿는 것을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스피노자의 철학이다.스피노자는 자기의 디음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것을 위해서 유대공동체로부 추방이라고 하는 죽음을 받아드렸다.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추방되므로, 쫒겨나므로 !
"혹시 언젠가 저에게 대학 교수로 종사할 희망이 생기게 된다면, 당신을 통해 팔츠 선제후 전하(카를 1세 루트비히)께서 저에게 권해 주신 대학의 교직만을 원할 것입니다. 특히 더없이 자비로우신 전하께서 승인해 주신 철학의 자유를 위해서 저는 그렇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 총명함을 찬탄하는 각하의 치하에서 생활하기를 이전부터 바라고 있었다고 지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공적으로 교수할 생각은 결코 없었기에, 사정을 장시간 숙고하였으나 이 명예로운 기회를 삼가 받자올 결심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후략) 이후에 그가 거절한 이유가 나오는데 요약하자면, 첫째로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철학에 전념할 수 없다. 둘째로 교수의 신분으로 종교에 혼란을 가져오지 않는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울것 같다. 셋째로 자신은 이미 고독한 생활속에서 수많은 반발을 겪었는데, 교수라는 명예로운 자리에서 더 많이 받을 반발과 탄압이 고민된다. 이후 편지에서 이 제안을 6주 동안 고민했으니 그만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며 정중히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