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의 도시 살라망카. 미국 대통령(윌리엄 허트)이 각국 정상들과 함께 테러의 종식을 위한 조약에 서명하기 위해 도착합니다. 얼마 전 대통령 대신 총에 맞았던 경호원 반즈(데니스 퀘이드)도 후배 경호원 테일러(매튜 폭스)의 도움으로 복직해 자리를 지키죠. 하지만 대통령은 저격당하고, 현장은 일대 혼란에 빠집니다.
어떤 영화든, 사전정보가 지나친 것은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쁩니다. 물론 결말을 다 알아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예를 들자면 '반지의 제왕'이나 뭐 그런), 그런 영화들도 결말을 모른다면 더 재미있겠죠.
'밴티지 포인트'는 참 민감한 영화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영화거든요. 짜임새가 독특합니다. 여덟 사람의 시선에서 '어느 날' 낮 12시부터 12시23분까지를 잇달아 보여줍니다. 현장을 중계하던 GNN(;;)의 현장 PD(시고니 위버)의 시선으로 시작해 여러 사람의 입장을 번갈아 보여주는 과정에서 사건의 전모는 조금씩 정보를 더해 가며 완성됩니다.

독특한 구성과 함께 빠른 템포의 액션이 두어 시간을 즐기기 위한 오락영화로서는 별 큰 흠을 잡기 힘든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평단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대개 '빈약한 내용을 독특한 형식으로 가리려 했다'는 평이었죠.
하지만 똑같은 이야기는 이 영화에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메멘토'야말로 단기 기억상실이라는 특이한 소재와 사건의 발생 순서를 흐트러놓는 신개념 편집 때문에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메멘토'에 흥분했지만 '밴티지 포인트'에는 지나치게 싸늘한 리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메멘토'는 노골적으로 상업영화에서 벗어나고자 한 작품인 반면 '밴티지 포인트'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기준에 따라 만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밴티지 포인트'에서 내러티브의 허술한 점을 여러개 찾아 낼 수 있다지만 솔직히 '메멘토'에서 허술한 이야기구조를 찾아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그런 허점을 '모호한 결말'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눌러 버린 영화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밴티지 포인트'는 미국의 오지랖 넓은 대통령을,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총탄을 향해 몸을 던질 정도로 그저 충직하기만 한 경호원을 영웅으로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여기에 반미 테러리스트들은 별 동기도 없이 사람들을 턱턱 죽이는 전형적인 무뇌아들로 나옵니다.

어느 나라나 뭘 좀 안다는 사람은 미국에 대해, 또 부시 행정부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심지어 미국에서도 그렇죠). 그러니 이런 영화를 '메멘토'같이 '생각 있어 보이는 대단한 영화'와 감히 비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자연히 '밴티지 포인트'처럼 생각 없어 보이는 영화는 평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시원시원한 액션과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의 깔끔한 정리(물론 결말이 아주 깔끔하진 않지만)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아귀가 완전히 딱딱 잘 맞는 건 아닙니다. 가령 경찰관 엔리케(에두아르도 노리에가)가 애인의 가방을 검문구역 안으로 전달해 줄 때, 비록 사랑하는 여자가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 해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위험구역 안으로 묵직한 가방을 불쑥 전해 줄만큼 바보인 경찰관은 그리 흔치 않겠죠. 그리고 주인공 반즈가 대체 대통령이 어디에 어떻게 총을 맞았는지를 언제 알아차리는지(무슨 말인지는 영화를 보셔야 압니다. 줄거리를 감추고 얘기를 하려니 그리 쉽지 않군요)도 불분명하죠.
그렇지만 영화 안에 즐비한 스타들의 얼굴을 보는 재미로도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로스트'의 셰퍼드 박사님 매튜 폭스.

하긴 시고니 위버는 거의 카메오 수준이죠.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포레스트 휘태커는 약간 덜떨어진 연기도 일품.

사실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만 해도 스페인에선 대 스타인데 이 영화에선 졸병 취급이더군요.
그리고 이 영화엔 한국 스타가 나옵니다.

권해효씨.... 는 농담이구요,

이 분이 한국 핏줄이더군요. 이름은 레오나르도 남.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 데니스 퀘이드입니다.

데니스 퀘이드는 참 어찌 보면 안타깝게 한창때를 지나쳐버린 배우입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미남형 터프 가이의 이미지를 갖춘 퀘이드는 젊은 관객들에겐 '루키'에서의 노장 투수 아저씨,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의 노장 쿼터백, 뭐 기껏해야 '프리퀀시'에서의 아버지 역할 정도로나 기억에 남는 배우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름다운 1980년대의 청년 스타덤이 있었죠. 영화 제목대로 '올 아메리칸'이란 말이 어울리는 청년이던 그의 초기 경력은 멕 라이언과 공연한 조 단테 감독의 1987년작 '이너스페이스'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두 스타의 로맨스와 함께 인기도 급상승하죠.

그러나 그 이후 퀘이드는 급격하게 내리막을 탑니다. 알콜과 약물 과용으로 폐인지경이 되고, 1990년대는 암흑의 나날이죠. 영화 '스타 탄생'을 보는 듯 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 2000년에는 멕 라이언과도 이혼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90년대를 통째로 들어 먹었기 때문에 그의 경력에는 공백이 있죠. 하지만 50대를 맞은 지금에서는 왕년의 실수를 보상받기라도 하듯 - 그렇다고 오스카 후보에 오르거나 흥행으로 절정 대박이 난 건 아니지만 - 해리슨 포드를 캐스팅하려던 자리의 세컨드 옵션으로(이렇게 얘기하면 명예훼손이려나^^)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너스페이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참 반가운 일이죠.

윌리엄 허트의 이 호객행위 포즈는 그리 과장 광고는 아닙니다.
단 오락영화 이상의 것을 기대하시는 건 금물.
p.s. vantage point는 '최적지점'이라는 뜻입니다. 뭘 위해서? 저격 최적지점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그런데 영화 속 공간은 스페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반면 실제 촬영지에는 멕시코도 이곳 저곳이 들어 있습니다. 뭐 이런 일은 요즘 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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