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의 연세에도 마치 ‘30대 청년 같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요즘도 웬만한 거리는 지하철로, 아니면 그냥 걸으면서 볼일을 본다. 충북 괴산에서 새 공동체를 일굴 꿈에 부풀어 있는 ‘아흔의 청년 농군’ 원경선(元敬善·90)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장. 어르신은 촌각도 허비하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에 미리 와 있던 원이사장은 ‘십자군 이야기’(길찾기)라는 책을 탐독중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할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이 들어서자 “서점에 갔더니 ‘노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되어 있기에 한권 샀다”며 한껏 웃으신다.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모색해야 할 기독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고 있어요.”
▲서왕진 사무처장=요즘 사람들은 돈보다 건강에 더 관심이 많은데, 아흔 연세에도 늘 건강을 유지하시는 걸 보면 젊은 저희들도 힘이 나는데요.
▲원경선 이사장=가장 중요한 건 역시 식생활이에요. 작년 5월에 척추 수술할 때도 의사가 30대 뼈 같다며 놀라더군요. 15살에 간 디스토마에 걸려서 정말 고생했어요. 그런데 1970년대부터 자연식을 해서 그 병이 완전히 없어졌거든요. 유기농을 하면서 무공해 채소를 먹었고 특히 현미식을 했는데, 그게 건강 비결이에요. 늘 머리가 무거운 증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신기하게 싹 사라지더란 말이죠.
▲서=이사장님께서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환경과 평화, 그리고 빈곤 문제로 보시고 평생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하셨습니다. 76년 경기도 양주에 친환경 유기농 공동체(풀무원 한삶회)를 만드셨는데 이사장님은 환경문제를 어느정도의 위기상황으로 보고 계신지요.
▲원=전 환경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내 생명이 귀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려 하다보니 유기농을 하게 된 거예요. 유기농을 시작해서 3년만에야 성공했어요. 처음 2년간 수백만원 빚을 졌을 때는 많이 갈등했죠.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이잖아요. 하지만 유기농이 성공하고, 그걸 먹고 내 건강이 좋아지니까, 그때 깨닫게 되더군요. 이웃을 위하니 바로 내가 덕을 본다는 거요. ‘이웃이 곧 나다’란 진리를 알게 된 거죠.
지금 전세계는 환경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94년 덴마크의 한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유기농산물을 먹은 남성의 정자수는 1억마리로 정상이었는데, 농약과 화학비료로 키운 농산물을 먹은 사람은 절반인 5천만마리밖에 되지 않아요. 미국에서 출간된 ‘도둑맞은 미래(Stolen Future, 테오 콜본 외 저)’에도 미국 남부 늪지대의 독수리 80%가 환경호르몬에 중독되어 알을 부화하지 못했다고 했어요. 또한 오존층도 공해물질 때문에 파괴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환경문제는 인류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서=요즘 FTA(자유무역협정)와 관련해 농촌이 뒤숭숭합니다. 한국농업을 유기농으로 회생시킬 수는 없을까요.
▲원=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FTA를 받아들여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가격이 싸니까요. 하지만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논에 담긴 물을 모두 합하면 국내 최대의 소양강댐 담수력과 맞먹는데, 농사를 안지으면 엄청난 댐이 사라지는 겁니다. 또한 벼가 먹는 탄산가스도 엄청납니다. 만일 돈만 생각해서 농사를 포기한다면, 우리 농민들만 죽는 게 아니라, 우리 환경이 죽는 것이고, 결국 우리 모두의 목숨이 위협받는 겁니다.
▲서=냉전이 종식되어 세계평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북핵문제로 한반도 역시 전쟁의 위협 아래 있는데, 인류가 평화를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을 무엇입니까.
▲원=우리는 20세기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를 극대화한 자본주의, 이에 반해 인류 전체를 위하자는 사회주의, 모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주의는 그 뿌리에 그대로 개인주의를 가지고 있었고, 자본주의는 아무리 잘 되어 봤자 미국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가진 미국은 자꾸만 더 가지려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거 아닙니까? 양 99마리 가진 사람이 1마리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격이지요.
지난 4월 금강산 육로관광을 시작할 때 저도 초청받아 갔습니다. 그때 소감을 묻는 CNN기자에게 그랬어요. ‘북한에 올 때마다 허리띠를 꽉 졸라매 숨을 못 쉴 것 같았는데, 지금은 허리띠가 조금 풀린 기분이다’라고. 기자들이 다시 언제 통일될 것 같냐고 묻습디다. 그래서 ‘부시가 할 탓이다. 이라크처럼 하려면 통일이 된다해도 된 것이 아니다. 군비의 반만이라도 나누어주라’고 했어요. 제가 관여하고 있는 ‘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는 중국·몽골에 가서 다 도와줍니다. 주기도문에 있듯이 ‘일용할 양식’만 남기고 다 나누어 주어야 해요.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난 28년간 공동체에서 살아보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서=IMF이후 우리 사회 빈부격차는 더 심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까요.
▲원=빈부의 차가 심해지면 테러가 일어나게 되죠.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76년부터 사유재산 없이 함께 나누는 ‘한삶회’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고, 국제기아대책기구를 88년에 설립했지요. 남는 것은 축적하지 않고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도 나눠줍니다. 그러다보니 난 문 안걸고 살아요. 도둑질하러 들어와도 가져갈 게 없어요. 자기 집에 쌓아놓고도 굶어죽는 남을 돕지 않는 건 죄악입니다. 굶어죽는 사람에게 ‘테러’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인의 생명이 중요하면, 아랍인의 생명도 중요한 것입니다.
▲서=원장님은 평생을 풀무원 한삶회와 함께 하셨는데, 이 공동체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셨습니까.
▲원=76년부터 양주에 터를 잡고 풀무원 한삶회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출발은 53년 부천에서 기독교 전도자로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의 지원없이 내 먹을 것은 내가 해결하면서 했지요. 그때 김포비행장에서 미군들이 부랑자들을 내게로 데려다 줬어요. 그래서 55년부터 ‘풀무원’이란 이름을 붙이고 공동체를 꾸리기 시작했어요. 풀무는 아시다시피, 대장간에서 못쓰는 쇠를 담금질해서 쓸만하게 만드는 걸 말하는 거잖아요. 그것처럼 낙오자들도 ‘인간 풀무질’을 통해 새로 쓸만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한나절은 성경공부하고, 또 한나절은 함께 일을 했지요. 그렇게 20년쯤 하다가, 다른 사람들도 다 함께 잘살자는 뜻에서 ‘한삶회’란 유기농 공동체 운동을 또다시 하게 된 것이지요.
▲서=풀무원하면 일반인들은 주식회사 풀무원을 떠올립니다.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원=제가 정신적 창업자라고는 할 수 있어도, 다른 어떤 경제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정신은 물려주었지요. 제가 70년대 말에 유기농작물 재배에 성공하니까, 농장에 사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때 시국관련 사건으로 제적당한 큰아들(원혜영 부천시장)이 유기농작물을 파는 작은 점포를 냈는데, 손해만 보고 잘 안됐어요. 그래서 아들 친구인 남상우 사장이 이어받았지요. 그때 약속한 것이 절대 인체에 해로운 것은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신은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서=공동체 생활을 하시면 아무래도 부인인 지명희 여사나 자녀들(2남5녀)은 남다른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요.
▲원=아내가 회갑연 때 한마디 하더군요. “밖에서는 공동체 생활이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아들 혜영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누나하고 자취를 하면서 ‘누나, 강원도에서 감자밥만 먹고 살아도 우리 식구끼리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구요. 내가 가부장적으로 사는 바람에 식구들이 곤란했을 겁니다. 시집간 딸들도 “아빠, 저희 중·고등학교 시절 옷 갈아입을 때 곤란했던 것 아세요?”하고 웃으며 이야기합디다.
▲서=이제 28년간의 양주생활을 마감하고 새로 충북 괴산의 농장으로 옮기신다는데, 아흔 연세에 새로운 생활을 하시는 것, 대단해 보입니다.
▲원=IMF 직전에 이 유기농 사업을 더 크게 벌이려다가 쓰러지게 됐어요. 그런데 풀무원식품에서 창립 20주년이 되는 올해 괴산군 청천면에 7만여평 유기농 농장을 마련하고, 나를 상징적 인물로 초빙하더군요. 거기서 6,000여평 규모의 ‘평화 공동체’를 꾸릴 겁니다. 일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해서 개인의 평화를, 유기농법을 통해서는 건강한 평화를 이루고, 또한 나누고 베푸는 실천으로 인류의 평화를 실현할 겁니다. 욕심 같아선 10년쯤 더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했으면 해요.
▲서=지금 사회운동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해주시죠.
▲원=세균성 복통에는 소화제가 아니라 항생제가 있어야 하듯이 암적인 개인주의는 근본부터 뽑아내야 합니다. 내가 살려면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지요. 남의 생명도 내 생명만큼 귀하다는 것, 곧 ‘내 이웃이 나’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첫댓글 혼자 있다보니 풀무원 만두며... 풀무원 제품들을 꽤 사먹는 편인데 이런 내용들이 있었네. 이제부터 더욱 신뢰하고 먹어도 되겠군. 언제나 남을 배려하자는 세상의 귀한 말씀 나눠준 노강국 목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