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영수는 지난 시즌 설움을 훌훌 털고 올해 재기를 노린다. |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괌 마무리 훈련 때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주 나쁘진 않았는데 불안했어요. 구단에서 배려를 해 지난해 1월 수술을 받았던 조브 클리닉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습니다. 집도의인 랄프 감바델라 박사가 “수술이 아주 잘 됐다”고 하시더군요. 큰 뼛조각을 들어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상처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팠던 거죠. 3주 정도 쉬어 상처가 아물면 100% 회복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실전에서 어떻게 던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자신감이 있습니다. 제가 팀에서 해야 할 몫도 큽니다. 2008년 새해가 밝은 만큼 희망이 생깁니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대를 들어내고 이식하는 수술이라 신경이 손상될 위험이 크다고 하던데요. 6개월 동안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계속 손바닥이 저렸습니다. 그래서 병원도 많이 다녔습니다. 지금은 90% 정도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치료를 받은 대구 닥터굿병원의 진영한 트레이너와 삼성의 고야마 진 트레이닝 코치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가장 고생한 사람은 삼성 윤성철 트레이너였죠.
과거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었죠. 경북고 2학년 때 팔을 다쳐 재활을 한 적은 있습니다. 운동선수에겐 아픈 게 가장 힘듭니다. 저같은 경우엔 처음 받는 수술이라 풀시즌을 쉰다는 게 힘들었죠. 재활 선수는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다 똑같아요. 재활은 지루합니다. 지루하다기보단 힘들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수술을 받은 선수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프지 않을 때는 몰라요. 내 몸이 소중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서러워지죠. 그라운드에 설 수 없으니까요. 팬들에게 잊혀질까 두렵기도 합니다. 몸이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도 시달리죠.
고교 때 다친 부위도 팔꿈치였나요. 오른쪽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녔어요. 그러니 인대가 상했습니다. 공을 5m도 던지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누구에게 부끄럽지 않게 재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보다 두세 배는 한 것 같네요.
그땐 ‘토미 존 수술’을 받는 선수가 거의 없었죠. 요즘 선수들은 많이 받더군요. 하지만 ‘수술하면 공이 빨라진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아프다고 훈련도 하지 않고 수술부터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몸을 아끼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결국 투수는 머리와 몸을 함께 쓰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고교 때 한 번 다친 팔꿈치가 2005년부터 악화된 거였죠. 7월 제주 경기에서 왼쪽 발목을 다쳤습니다. 그래서 밸런스가 무너졌고 결국 팔꿈치에 무리가 갔던 거죠. 그때 기억하면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현대 외야수 전준호는 부상 중일 때 자다가 벌떡 일어나 ‘내 팔이 제대로 붙어 있나’하며 팔을 돌려보기도 했다는군요. 제 경우에도 아프다는 것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어요. 남들에겐 약한 면을 보이기 싫어 ‘괜찮다’고만 했죠. 수술 뒤 야구공을 잡았을 때는 의식적으로 ‘난 던질 수 있다’고 자기 최면도 걸었어요. 아프기 전에는 공만 잡으면 씩씩하게 던졌는데 수술 뒤에는 공 잡는 게 두려웠어요. 재활기간은 깁니다. 해야 할 일도 많죠. 그래서 처음에는 부담이 컸고 불안했죠. 그걸 이겨내야 합니다. 1년 동안 쉬면서 사람의 소중함을 크게 느꼈어요. 성적이 좋을 때는 누구나 다 도와줍니다. 하지만 정말 힘들 때 도움을 준 분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인생에서 큰 교훈을 배운 것 같습니다.
기자도 스포트라이트를 쫓아 다니는 직업이긴 합니다. 재활하면서 2군에 오래 있었죠. 신인 시절에는 몰랐는데 2군 선수들의 어려움을 실감했습니다. 기량이 있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는 선수가 많아요. 구장 등 2군 환경이 좋지 않아 기량이 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죠. 아플 때 구단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재하 단장은 저를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야박하게 보면 배영수가 구단의 큰 재산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인간적인 면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1년 재활하면서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시간이 흘러가더군요. 지나고 보니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KIA 이대진 선배는 그 점에서 대단한 분입니다. 몇 년 동안 재활을 했으니까요. 나같으면 못했을 겁니다.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정현욱, 박영진, 임창용, 권오준, 오승환 등 삼성에는 같은 수술을 받은 선수가 많습니다. 먼저 수술을 받은 선배들이 많은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여러 명이 수술을 했군요. 미국 선수들은 몸이 아프면 던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좀 다르죠. ‘부상 투혼’이라는 말을 언론에서 쓰지 않습니까. 좋은 면도 있지만 선수들에겐 힘들 수도 있어요. 앞으로도 몸이 아파도 팀이 필요하다면 참고 던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들은 몸이 아프면 쉬는 게 낫다고 봅니다.
1996~2001년 삼성 신인 투수 50명 가운데 46%가 팔꿈치에 뼛조각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중학교나 고교팀 에이스들에겐 휴식이 필요합니다. 학교를 위해 성적을 올려야 하지만 선수들에겐 그들의 장래가 있습니다. 나라의 재산이 될지 모를 선수들인데 몸관리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전 때 명색이 국가대표팀인데 선발 투수감이 마땅치 않았죠. 우수한 선수들은 많습니다. 프로선수라면 1군이든 2군이든 기량은 비슷합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죠. 또 누가 좀 더 일찍 기회를 잡아 클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1년 쉬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선동열 감독이 늘 하던 얘기도 이해가 되더군요.
무슨 얘기였나요.‘후회없이 던지라’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투구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사실 그때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이젠 100% 이해합니다.
밸런스가 좋지 않으면 부상이 온다는 얘긴가요.
|
배영수는 재활을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
그렇죠. 또 쓸 데 없는 힘을 쓰니 체력 소모도 많아 집니다.
올해 야구는 많이 봤습니까. 후반기엔 좀 봤죠. 전반기에는 야구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생각을 하면 뛰고 싶으니까요. 누구나 한두 달 쉬는 건 휴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1년씩 쉬는 건 휴식이 아닙니다. 지난해만큼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적이 없어요. 재활에만 적극적으로 매달리자고 다짐했지만 처음엔 쉽게 되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지난해 1월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1월 27일 수술을 받았죠. LA행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나더군요. 내가 가야할 곳은 미국이 아니라 스프링캠프인데. 나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운동선수가 자기 몸관리도 알아서 하지 못했나하는 자책이었죠. 양일환 코치에게도 솔직히 원망이 있었습니다. 이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땐 마음이 달랐죠.
진통제 주사를 맞고 던진 한국시리즈 때문인가요. 그것도 있었고. 시즌 중에도 몸이 아팠는데 좀 모른 척 하신 것 같았어요. 코치에게 불만을 드러낸 적도 있었습니다. 참았어야 했죠. 처지를 바꿔놓으면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재활기간에는 자주 전화를 걸어 격려했습니다. 가장 용기를 준 분입니다.
한국시리즈 때 맞은 진통제는 어떤 겁니까. ‘대포주사’라고 선수들이 흔히 맞는 겁니다.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그 주사약(데포메드롤)을 임의로 맞을 수 없는 금지약물로 정한 건 알고 있습니까. 힘을 쓰게 하는 약이 아니고 진통제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젠 맞으면 안 되겠네요. 하지만 선수라면 한 번씩은 다 맞아봤을 겁니다.
재활에서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시간과의 싸움이죠. ‘느림의 미학’을 알게 됩니다. 느리게 느리게 해야지 더 완벽해 집니다. 제가 올해 27살인데 새로 이식 받은 팔꿈치 인대는 한 살 나이입니다. 27년 동안 쓴 팔꿈치가 한 살로 돌아간거죠. 그러니 제대로 던지기 위해선 얼마나 오래 단련해야 하겠습니까. 이게 제가 생각하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보통 1~2시간 걸리는 수술인데 4시간이 걸렸습니다. 부상이 꽤 심했다는 얘긴가요. LA에서 수술을 받기 전인 2006년 12월 앨러배마주 버밍햄에서 제임스 앤드루스 박사에게 검진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은 제 상태를 보고 깜짝 놀라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팔로 어떻게 던졌냐”며 “어메이징(Amazing)”을 연발했습니다. LA의 조브 센터에서는 수술 뒤 완치 확률이 통상 90% 이상인데 내 경우엔 70%대라고 하더군요. 많이 실망했죠. 겁도 많이 났습니다. 깁스를 풀고 1주일 뒤쯤 인터뷰를 한 번 했어요. 그때 손에 감각이 없더라고요. 인터뷰 도중 ‘과연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깁스를 풀었을 때는 어땠습니까. 제 팔 아닌 거 같죠. 아직까지 그런 느낌이 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잘 받은 것 같습니다. 원래 오른쪽 팔이 완전히 펴지지 않았습니다. 수술 뒤에는 일반인 만큼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훨씬 많이 펴집니다.
괌 마무리 훈련에선 통증이 어땠습니까. 3,4일 동안 많이 아팠어요. 수술 뒤 처음으로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정말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누나가 “아프면 (야구를)그만둬도 된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했습니다. 동생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통증이 나아졌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아팠다 좋아졌다를 몇 백 번 되풀이해야 낫는 거라고.
누나와는 각별한 사이죠. 다른 오누이들보다 정이 더 깊습니다. 어려서부터 많이 도와주셨고 저도 잘 해드리려고 합니다. 누나가 환자들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자주 보라고 권했습니다. 전 원래 TV를 잘 보지 않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전 한 뼘 가량을 찢는 수술을 받았을 뿐입니다. 나보다 훨씬 아픈 분들이 꿋꿋하게 살아가시더군요. ‘내가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어 하는거냐’라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구 선수는 작은 통증 때문에 은퇴할 수도 있죠. 통증은 설명하자면 어떤 겁니까. 치아가 아팠던 적 있으시죠? 그런 느낌입니다. 한 번 세게 아프면 견디겠는데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게 통증입니다.
재활 과정을 설명한다면요. 깁스를 열흘가량 했고 팔걸이도 찼습니다. 그 뒤 물렁한 공을 쥐는 정도로 운동을 하면서 회복기를 거칩니다. 다음에는 6주 가량 정상적으로 팔을 움직이는 훈련을 합니다. 주먹을 꽉 쥐면 손목에 힘줄 두 개가 드러나죠? 수술 뒤에는 하나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인대가 죽어 있었던 거죠.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3단계로 지구력 향상 운동에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서 가볍게 캐치볼을 합니다. 처음에는 5m부터 시작하죠. 4단계부터 가벼운 와인드업에 들어가고 5, 6단계로 갈수록 투구 거리를 서서히 느리고 투구 강도를 높입니다. 근력 운동을 함께 합니다. 순서대로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전 단계로 돌아갑니다. 저는 5단계에서 통증이 심해져 3단계로 다시 돌아가는 걸 반복했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통증은 계속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뭐든 반복되면 적응되지 않습니까? 통증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을 잘 해야죠. 이길 수 있는 통증이 있고 이기기 어려운 통증이 있습니다. 전자라면 훈련으로 이겨내야 하고 후자라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또 단계별로 통증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강했다 점점 약해집니다. 아무리 재활프로그램이 좋아도 결국 판단은 선수 자신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픈 선수는 자기 통증을 잘 알아야 합니다.
훈련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
배영수에게 수술의 흉터는 영광의 상처가 될 지도 모른다. |
하루에 5~6시간씩 6일 훈련 하루 휴식 스케줄로 했습니다. 정상적일 때라면 하루는 상체, 하루는 하체 식으로 운동하죠. 하지만 재활할 때는 매일 전신 운동을 했습니다. 전 투수라 하체 운동량이 좀 더 많았죠. 제대로 해내기 쉽지 않은 스케줄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에 비해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면 공이 빨라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전 신체 밸런스와 전체적인 컨디션이 좋아지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7월에 4주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있었던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죠. 부끄러운 얘기지만 좀 힘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전우애가 뭔지 알게 됐습니다. 대구 50사단에서 훈련받았는데 부대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그러고보니 전 27년 동안 대구를 떠난 적이 없군요.
대구 다음에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있는 도시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전 삼성에서 은퇴하고 싶습니다.
권오준은 팔꿈치 수술 뒤 무리한 훈련으로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그 뒤 입대해 공을 잡지 않은 게 재기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휴식은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입니다. 쉴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고 쉴 때는 푹 쉬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4주 훈련이 정말 좋았습니다. 살도 많이 빠졌습니다. 입대 전 96kg이었는데 10kg이 빠졌어요. 원래 다이어트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훈련을 마치고 나니 트레이닝 코치가 깜짝 놀라며 “살 뺄 필요없다. 이젠 좀 쪄야겠다”고 하시더군요. 지금은 88kg입니다. 2004년 몸무게에 맞추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피칭은 11월 괌 마무리훈련 때 시작한 겁니까. 그렇죠.
수술 뒤 7개월 정도면 실전 투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좀 늦은 것 아닌가요. 천천히 했어요. 감독도 완벽한 몸 상태를 원하고 구단에서도 기다렸습니다. 그 기간을 알차게 보낸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말까지 열심히 했죠. 12월에는 쉬었고 내일(1월 3일) 오후 8시20분 비행기로 다시 괌으로 갑니다. 일정이 몸 상태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마무리훈련 마지막 날 시속 140km를 던지고 왔습니다. 그 정도를 던지려고 수술한 게 아닙니다. 시속 158~160km를 던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능할 것 같아요.
동료들보다 전지훈련을 1주일 정도 먼저 떠나는군요. 더 많이 훈련을 해야죠. 괌에서 몸상태를 서서히 올릴 겁니다. 지금은 시즌 개막전을 기준으로 70~80% 수준입니다.
지난해 삼성이 부진했습니다. 다른 팀들의 전력이 좋아진 반면 삼성은 업그레이드 내용이 약했죠. 부상 선수도 워낙 많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박진만 형 등 7명이나 빠져 시즌을 치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KIA가 그래서 최하위로 처지지 않았습니까. 운도 약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올해 목표는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입니다. 하지만 우승에는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합니다. 지난해 우승팀 SK가 그렇습니다. 그 팀은 설령 우승에 실패했어도 후회없는 한 해를 보낸 겁니다. 삼성도 과정은 좋았습니다. 지난해 스프링캠프 훈련량이 창단 이래 가장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땀을 흘렸으니 4강에 들 수 있었던 겁니다.
투수진도 예년보다 좀 떨어졌습니다. 양일환 코치가 1월 1일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무너진 자존심을 찾자’고 찍혀 있더군요. 우리 팀 투수들이 굉장히 셉니다. 기량도 뛰어나고 자존심도 대단합니다. 지난해 부진은 그래서 뼈아프죠. 양코치는 변명 없이 자기가 책임을 지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야구하면서 가장 혼났던 게 안타나 홈런을 맞고 변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SK 2군 감독인 계형철 코치께 많이 혼났습니다.
오승환은 너무 많이 던지는 것 아닙니까. 많이 던지긴 했는데 삼성에선 관리를 잘 합니다. 임창용 선배가 마무리할 때에 비교하자면 엄청나게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거죠. 마무리는 정신적으로 지치기 쉬운 데 오승환이 꾸준히 잘 하는 걸 보면 대단합니다. 하긴 창용이 형은 마무리로 뛸 때 가장 희열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마무리 투수로 한 번 뛰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먼 뒷날에 하세요. 전 선발 투수죠. 나이가 들어 딱 한 번 정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고보니 마지막 경기였던 2006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선 홈런을 맞고 강판됐군요. 그때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다른 선수들은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난 이제 1년 쉬어야 하는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하 모임에서도 일찍 빠져나와 숙소인 리베라호텔 방에서 혼자 있었죠.
함께 괌으로 떠나는 임창용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습니다. 신인 때부터 많이 따른 선배입니다. 전 선배 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승엽이 형, 창용이 형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이 많은 걸 가르쳐 줬습니다. 제겐 산과 같았는데 산이 제게로 오더군요. 야쿠르트 스왈로스 입단이 발표되기 전 귀띔은 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해 볼 것 다 해 본 선배가 큰 무대로 가는 게 반가웠습니다. 돈이 아닌 야구 하나를 보고 혈혈단신 떠나는 모습에 후배로서 박수를 쳐 드리고 싶습니다.
2008년 각오가 있다면요. 우선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는 겁니다. 풀타임을 뛰기 위해선 역시 몸 관리가 중요합니다. 운동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두 번째는 우승, 세 번째는 팬들에게 다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겁니다. 지금까지 상 욕심은 없었는데 올해는 꼭 골든글러브를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