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캄보디아 정보 전문 연구공동체인 '크메르의 세계'(크세)가 선정한 것으로서, 본 카페 정회원들로 구성된 <2013년 캄보디아 10대 뉴스 선정위원회>의 편집회의를 거쳐 정리된 것입니다. '크세'가 매년 선정하는 <캄보디아 10대 뉴스>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상식에 가치를 부여하며, '한국'이나 '한국인' 같은 협소한 개념을 탈피하여 '국제인'의 관점에서 하나의 국가를 관찰한다는 편집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크세] |
Daum 카페 '크메르의 세계' 선정
2013년 캄보디아 10대 뉴스
2013 Cambodia TOP 10 News
1. 삼 랑시의 귀국과 야당 돌풍, 그리고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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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Photo / Heng Sinith) 캄보디아의 정치적 봄을 이끌고 있는 양대 지도자 껨 속하(좌측) 부총재와 삼 랑시(우측) 총재. 캄보디아 총선 정국은 민주화 열망에 불을 지폈다. 그것은 훈센 정권의 오만한 독재정치와 국민들의 정치적 자각에서 촉발됐지만, 21세기 아시아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선명한 야당과 좋은 지도자들이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크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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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캄보디아 야당의 "재선거 실시" 요구 무기한 시위 8일째(12.22 일) 가두행진 모습. |
캄보디아에도 마침내 '정치적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통합야당인 '캄보디아 구국당'(CNRP)이 7월28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대거 약진하면서, 훈센(Hun Sen) 총리의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의 철옹성 같던 권력기반이 심하게 흔들려버린 것이다.
금년 상반기만 해도 캄보디아의 정치 지형이 크게 변화하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훈센 정권의 탄압과 국민들의 조용한 반응 속에서 미약한 야당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이토록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감에 찬 훈센은 아들들을 정치적 포스트의 전면으로 내세우며 권력의 세대교체까지 준비할 정도였다.
본 '크메르의 세계'가 2012년 7월 제1야당인 '삼랑시당'(SRP)과 제2야당인 '인권당'(HRP)의 역사적인 야권통합에 주목하면서, <2012년 캄보디아 10대 뉴스>(크세 2012-12-23)에서 "훈센의 권위주의 정치행보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것"이란 언급을 한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 중에서 나온 거의 유일한 예측이었을 뿐이다.
국회의원 총선을 불과 20일 남겨둔 7월8일, CNRP의 삼 랑시(Sam Rainsy, 삼랭시) 총재는 약 4년간의 해외망명 생활을 청산하면서 전격적인 귀국 선언을 했다. 그의 귀국은 투옥은 물론이고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목숨을 건" 결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7월19일, 10만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돌아온 삼 랑시는 더 이상 과거의 군소 야당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독재자 훈센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크메르인의 영웅이 되어 있었고, 껨 속하(Kem Sokha, 켐 소카) 부총재와 손을 맞잡고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전국적인 야당 돌풍을 일으킨 후 50만명이 열광한 프놈펜의 최종 유세로 선거운동을 마무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가 발표한 공식적인 최종 선거결과에 따르면, 훈센 총리의 집권 CPP는 68석을 획득하여 55석을 획득한 CNRP를 누르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야당은 "100만표 이상을 도둑맞았다"고 광범위한 부정선거에 항의하면서, 선거 당일 밤부터 선거결과에 불복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훈센의 여당은 단독으로 국회 개원식을 강행하고 제5대 정부도 출범시켰지만, 야당이 국회등원을 거부한 채 '부정선거 조사' 요구 대규모 시위를 진행했다.
캄보디아의 정치지형에 혁명적 변화가 온 것은 내전 시대의 경험을 갖지 않은 젊은 인구가 대폭 늘어난 인구학적 변화, 그리고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2011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터넷 사용자수의 증가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게다가 심지어는 시민운동가나 파업 노동자에 대한 살인조차 자행할 정도로 오만한 훈센 정권의 권위주의 행보가 성난 민심을 부채질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몇년간 자행됐던 광범위한 토지수탈과 강제철거는 캄보디아의 기층 민심을 훈센 정권에서 완전히 떼어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훈센 정권이 지난 30년간 보여준 정치행태는, 여러 형태의 독재정치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모습인 부패한 도둑정치(kleptocracy)의 전형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심지어 그들을 '한 국가의 통치세력'이라 부르기조차 어색하게만들 정도였다. 훈센 세력은 하나의 정부라기보다는 특정 지역을 장악한 '군벌 산적 집단'에 더욱 가까운 행태를 보여왔다.
본 '크메르의 세계'는 그 동안 훈센 정권의 정책적 특징을 표현하면서, 종종 '쓰리엠 정책'(3M Policies)이라는 용어로 풍자하곤 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식들부터!(My children!), 내 조카들부터!(My nephews!), 내 부하들부터!(My men!)"라는 것이다. 따라서 캄보디아 정치는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세계관인 "권선징악"이란 시각틀 하나면 모든 것이 이해 가능할 정도로 단순하다.
총선이 끝난 후, 훈센 총리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는 제5기 정부 출범 직후인 9월25일 국무회의에서 무려 6시간 30분 동안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불신과 조롱만 표출했다.
캄보디아 야당은 이제 자신감에 찬 공세를 시작했다. 그간 "부정선거 조사"만 요구해오던 CNRP는 총선이 끝난지 4개월 반 만에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며 무기한 시위에 돌입했다. 야당의 가두행진에서 4일째(12.18 수)부터 불어난 군중은 7일째(12.21 토)엔 10만명 선으로 증가했고, 8일째(12.22일) 행진에서 야당은 "5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하면서 "캄보디아에 정치적 쓰나미가 밀어닥쳤다"고 선언했다. 이후 파업 노동자들까지 가세한 12월29일(일)의 시위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훈센은 12월20일의 기자회견에서, "내게는 국회해산과 조기총선의 권한이 없다"며 사임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야당은 신년(2014) 1월부터는 현재의 '프리덤파크' 집회장 외에 프놈펜 시내 주요지역을 점거하고 프놈펜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도 봉쇄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어 공세의 수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캄보디아의 정치위기의 와중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국가 정상들 중 최초로 훈센 총리에 선거승리 축전을 보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한국 정부의 경솔한 행동은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실패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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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 캄보디아 총선 표심 : 불만에 찬 시골 민심, 야당 약진의 동력"(캄보디아 데일리 2013-8-5)
- "[르뽀] 캄보디아 총선의 시골 사람들 : "가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변한다""(George Steptoe 2013-8-11)
- "[지도] 2013년 캄보디아 총선의 각 지방별 득표 현황"(뉴 만달라 2013-8-23)
- "[시론] 훈센을 "과소평가" 말라고? : 캄보디아 정국을 보는 새로운 시각틀"(크세 2013-9-23)
- "캄 총선 : 대규모 유권자 중복 등록, 프놈펜에서만 14만5천명 이상"(프놈펜포스트 2013-7-24)
- "[기사목록] 2013년 캄보디아 총선정국 속보 홈페이지" |
2. 국제사법재판소의 쁘레아위히어 사원 영유권 분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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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 Photo / ICJ-CIJ / Frank van Beek) 캄보디아-태국 국경분쟁 판결문을 발표하는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의 전경. 네델란드의 해이그에 위치. |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1월11일의 판결을 통해, 태국-캄보디아 국경에 위치한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프레아비히어 사원)을 품고 있는 산갑(promontory, 山岬: [역주] 산기슭의 쑥 내민 귀퉁이. 해안지형의 곶[串]과 동일) 전체가 캄보디아의 주권 하에 있다고 재판관 만장일치로 결정하여, 캄보디아에 "절반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ICJ의 판결은 태국과 캄보디아 모두 복잡한 국내정치 문제로 시달리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지면서, 판결이 한차례 연기되기도 했다. 태국에서 2011년 7월 총선을 통해 친-탁신계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 정부가 수립되면서, 캄보디아와 태국 관계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 세력의 축출을 주장하는 극우 보수파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고, 캄보디아에서는 야당의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자칫 국제법원의 판결 내용이 양국 국내 정치에 심각한 파장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는 양국 모두의 국내정치에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2011년 상반기에 발생한 태국-캄보디아의 무력충돌 사태는 '쁘레아위히어 사원' 주변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전되면서 매우 심각한 상황을 보였다. 그러자 캄보디아는 2011년 4월 ICJ에 '1962년 판결'을 재해석 해달라는 신청을 접수(=제소)했다. ICJ의 '1962년 판결'은 '쁘레아위히어 사원' 자체를 캄보디아의 영토라고 규정하긴 했지만, 양측이 주장하는 국경선 사이에 위치한 지역들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아, 결국 사원 경내만 캄보디아 영토로 양국이 상호 인정한 상태에서 4.6 ㎢ 면적의 지역이 분쟁구역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ICJ는 먼저 2011년 7월의 명령을 통해, 최종적인 판결 때까지 양측이 '임시 비무장지대'(Provisional Demilitarised Zone: PDZ)를 설치한 후 군사력을 철수시키라고 명령했다.
ICJ가 52년만에 새롭게 판결한 이번 결정은 기존의 문제들을 완벽히 종결시킨 것은 아니다. ICJ는 캄보디아 정부가 요청한 내용이 '1961년 판결의 재해석'이기 때문에 당시 재판부가 다뤘던 주제에 한해서만 해석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당시 판결이 의미했던 '쁘레아위히어 사원' 주변부는 "쁘레아위히어 사원이 위치해 있는 자연적 지형인 산갑(곶)"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해석은 4.6㎢ 면적의 분쟁구역 중 절반 이상의 지역에 관한 영유권을 여전히 미확정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 측면에서는 이번 판결이 원고인 캄보디아 측의 승리로 해석됐고, 캄보디아 정부도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극우 보수파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보아도, 향후 해석의 여지가 많이 남게 된 점은 정치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ICJ의 이번 판결은 캄보디아와 태국 모두에 정치적 타협의 공간을 제공한 것이면서, 그와 동시에 향후에도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둔 판결이기도 하다.
현재 태국에서는 극우 보수파의 "민주주의(=선거제도) 반대"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캄보디아에서는 부정선거에 불복하여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양국 정부는 ICJ의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 협상이나 그 밖의 절차들을 전혀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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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게시물 바로가기
- "[종합 분석] 국제법원 국경분쟁 판결 : 미완의 승리 캄보디아, 태국 정부도 만족"(종합 2013-11-12)
- "[기사목록] 2013년 캄보디아-태국 관계" |
3.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의 장례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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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llan Michaud / Al Jazeera) 노로돔 시하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의 상여가 2월1일 그 동안 안치됐던 왕궁을 나와 시가행진에 나서는 모습. |
고(故)-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 국왕의 사망(2012-10-15) 소식과 추모제 소식이 <2012년 캄보디아 10대 뉴스>(크세 2012-12-23)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금년 10대 뉴스에서도 그의 장례식 소식이 다시금 순위에 들어, 캄보디아라는 국가에서 "독립 영웅" 시하누크가 차지하는 위상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2012년 10월 15일 중국 베이징의 병원에서 사망한 후, 이틀 뒤 수십만명의 애도 인파가 운집한 프놈펜으로 운구됐다. 이후 일주일간의 성대한 추모기간 일정이 진행된 후 왕궁 안에 안치됐다.
사망한지 100일 이상이 지난 시점에서 치뤄진 장례식 역시 일주일간의 성대한 국장으로 진행됐다. 장례식은 2월1일 상여행렬의 가두행진으로 시작하여 2월4일에 다비식(=화장 의례)을 거행했고, 이후 유골은 왕궁 내 불탑에 영구 봉안됐다.
시하누크의 사망은 캄보디아 역사의 한 장이 마무리되고 21세기라는 새로운 한 시대가 실질적으로 시작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더구나 7월28일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의 죽음과 장례식을 통해, 자파가 "시하누크의 유지"를 계승한 정통파라는 것을 과시할 중요한 기회로 보았다.
특히 훈센 총리는 2012년의 추모식과 금년의 장례식 행사를 자신의 주도로 성대히 치르는 가운데, 자신이 "사실 상" 시하누크의 계승자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추모기간과 장례기간 중 야당의 삼 랑시 총재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하는 일을 거부했고,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국왕 폐하 장례식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며 자신을 우상화시키는 내용의 발언도 해댔다. 훈센은 이후 시하누크의 대형 동상 건립에도 나서, 10월에 정부 여당측만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시하누크 장례 정국의 정치적 역학구도에 있어서 훈센은 모든 것을 다 흡수하는 승리자처럼 보였다. 그는 이미 현실 권력의 독점화 작업을 거의 끝마친 상태였고, 시하누크의 정신을 계승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캄보디아 국민들의 정신세계까지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제 7월 총선에서 승리만 하면, 거의 30년 이어져온 그의 통치가 앞으로도 새로운 30년으로 이어질 터였다.
하지만 훈센의 꿈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시하누크를 추모하러 모였던 수십만명의 군중들은 삼 랑시 총재가 귀국하자, 그 즉시 훈센의 반대 진영에 결집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시하누크의 유지'가 바로 '캄보디아의 민주화'였던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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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중계방송] 노로돔 시하누크 캄보디아 전 국왕 상여행렬"(캄보디아 국영 TV 2013-2-1)
- "[동영상 및 화보집] 노로돔 시하누크 캄보디아 전임 국왕 다비식"(캄보디아 국영 TV 2013-2-4)
- "시하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 유골함, 왕궁에 영구 봉안"(VOA 2013-2-8)
- "[화보집]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 동상 제막식 현장"(촬영: 파주땅부자 님 2013-10-11)
- "시하누크 캄보디아 전 국왕 1주기 추도식, 엄중한 경계 속에서 진행"(캄보디아 데일리 2013-10-16)
- "[인물탐구] 노로돔 시하누크 : 캄보디아 현대사 자체였던 그의 생애"(크세 2009-5-20)
- "[기사목록] 시하누크 전임국왕 사망 관련 기사 홈페이지" |
4. 크메르루주 외무장관 이엥 사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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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EN) 말라이 군에서 진행된 이엥 사리의 염습 모습. 머리맡에 앉아 있는 이들은 이엥 사리의 외아들과 딸들이다. |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의 외무부장관을 지낸 이엥 사리(Ieng Sary: 1925년생)가 3월14일 프놈펜의 병원에서 자녀들에 둘러싸여 사망했다. 그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국제법정'(ECCC)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가운데 오랜 병고에 시달려왔었다.
그의 시신은 자신이 말년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태국 국경지역 시골인 번띠어이 미언쩌이(Banteay Meanchey) 도, 말라이(Malai) 군으로 운구됐다. 이엥 사리의 다비식(화장의례)에는 외아들이자 빠일른(Pailin, 파일린) 도 부지사인 이엥 웃(Ieng Vuth)을 비롯한 자녀들이 주도했고, 역시 재판을 받던 중 '치매 증상으로 먼저 석방'(2012년 9월)된 아내 이엥 티릿(Ieng Thirith)도 참석했다.
이엥 사리의 죽음은 유엔(UN)이 후원하는 전범재판소인 ECCC의 앞날에 드리워진 암울한 전망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ECCC는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사이에서 장장 5~6년에 걸친 협상의 결과로 탄생한 국제 및 국내의 혼성 재판소이다. 이 법원은 지난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2012년 초에야 '제001호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제001호 사건'은 '뚜올슬렝 교도소'(Tuol Sleng prison: S-21 보안감옥)의 전직 소장으로서 일명 '돗'(Duch)이라 불렸던 깡 껙 이우(Kaing Guek Eav) 피고인을 재판했다. 깡 껙 이우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ECCC는 이후 크메르루주 정권의 고위 지도자들 중 생존 중인 4인을 재판하는 '제002호 사건' 재판을 시작했다. 하지만 '5개의 소재판'으로 나눠진 '제002호 사건'의 제1 소재판조차도 그 최종 판결은 2014년으로 미뤄졌다.
'제002호 사건'의 피고인들은 이엥 사리와 이엥 티릿 부부, 그리고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 '브라더 넘버 투'(Brother Number 2)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누온 찌어(Nuon Chea, 86세), 국가수반을 지낸 키우 삼판(Khieu Samphan, 82세)이다. 하지만 이엥 사리의 죽음으로 이제 수감 중인 피고인은 2명으로 줄게 되었고, 그나마도 모두 고령에 지병을 앓고 있는 상태여서 이 재판이 앞으로 얼마나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ECCC의 재원 중 캄보디아 정부의 부담분이 제공되지 못하면서, 3월에는 캄보디아인 통,번역 직원 30여명이 '밀린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또한 키우 삼판 피고인의 변호인이며 '악마의 변호사'란 별명으로도 유명한 자크 베르제스(Jacques Verges) 변호사도 금년 8월에 사망하여 하나의 시대가 마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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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 이엥 사리의 사망과 캄보디아 국제재판의 미래"(프놈펜포스트 2013-3-15)
- "[현장] 크메르루주 전범 이엥 사리 사망, 말라이의 빈소 표정"(캄보디아 데일리 2013-3-18)
- "[장례식 현장] 크메르루주 전범 이엥 사리 다비식(화장의례) 마쳐"(프놈펜포스트 2013-3-22)
- "[인물탐구] 이엥 사리 : 크메르루주 정권의 외무부장관"(위키피디아 영문판 번역)
- "[목록] 크메르루즈 국제재판 진행상황 보도" |
5. 철거민 여성 욤 보파 사건 재수사 및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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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mar Havana) 캄보디아 철거민 운동가 욤 보파 씨가 11월22일(금) 오후 구치소에서 석방된 후, 아들을 품에 앉은 채 발언을 하고 있다. |
토지수탈과 강제철거는 지난 몇년간 캄보디아 사회가 지닌 모든 문제들이 집약되어 표출되는 문제였다. 정부 여당과 연줄을 지닌 개인과 기업들에게 발급된 경제적 토지 양허권(ELC: 국유지의 장기 임대권)은 해당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왔던 공동체에게는 강제철거라는 재앙으로 나타났고, 훈센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을 촉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토지수탈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프놈펜의 '벙꺽 호수'(Boeung Kak Lake) 주변 개발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해낸 상징적 사건이다. 훈센 정권은 2012년에도 벙꺽지역 철거민 탄압을 위해 철거민 여성 13인을 구금했지만, 국내외의 광범위한 압력에 직면하자 2012년 6월에 이들을 석방했다.
하지만 2012년 9월이 되자 집단폭행 등 의문의 혐의를 씌워 또 다시 여성 활동가 2명을 구속했다. 그 중 1명은 석방됐지만, 욤 보파(Yorm Bopha, 29세) 씨는 징역형을 부여받고 수감생활을 계속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어지는 석방 요구 시위와 국내외의 압력 속에서도 욤 보파의 석방을 거부했지만, 총선이 끝난 후 정권의 위기가 이어지자 그녀를 구속 444일만에 '보석' 형식으로 석방했다.
캄보디아의 철거민들은 총선 정국 및 이어지는 시위 정국에서 반정부 시위의 선봉에 섰으며, 아직도 머나먼 길을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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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 중이던 캄보디아 철거민 여성 욤 보파, 보석으로 석방"(캄보디아 데일리 2013-11-23)
- "한국 방문한 캄보디아 철거민들 : 욤 보파 씨 석방 촉구"(경향신문 2013-5-12)
- "캄보디아 대법원 : 철거민 여성 욤 보파, 보석신청 기각"(프놈펜포스트 2013-3-28)
- "[기사목록] 캄보디아 토지분규 및 강제철거 진행상황" |
6. 민주 방송사 사주 몸 소난도 씨의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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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reng Meng Srun / Phnom Penh Post) 몸 소난도 씨가 2013년 3월 14일 선고공판 참석을 위해 교도관들의 호송 속에 항소법원에 입장하고 있다, 그는 2012년 10월의 1심 판결에서 반란죄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었지만, 이날 항소심에서 산림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다음날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
몸 소난도(Mam Sonando) 씨는 독립 언론 '비하이브 라디오'(Beehive Radio: FM 105 Mz)의 사주이자 재야단체 '민주주의 연합'(Democracy Association) 회장으로서, 그 동안 훈센 정권에 대해 가장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인사였다. 훈센 정권은 지난 몇년간 야당 파괴공작을 거의 마친 상태에서, 2012년에는 재야세력에 대해 총체적인 탄압 공세를 벌이고 있었다. 몸 소난도 씨를 반란죄 혐의로 체포한 것은 마지막으로 잔존한 재야세력 탄압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몸 소난도 사장은 훈센 총리를 비롯한 집권 CPP의 최고위 관리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로 고발하는 시도를 보도했고, 구속 직전까지도 네델란드 해이그(The Hague)에 체류하면서 정열적인 방송을 진행했다.
2012년 6월 26일, 훈센은 공개연설을 통해 몸 소난도 사장을 구속하겠다고 공언했다. 몸 소난도 사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7월12일 밤 자진 귀국했다. 하지만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ARF)을 마친 세계 각국의 고위 귀빈들이 모두 출국한 후, 캄보디아 당국은 7월15일에 그를 전격 구속시켰다.
당국은 몸 소난도 씨가 끄라쩨(Kratie) 도, 쁘로마(Pro Ma) 리에서 '분리주의 책동'을 사주했다며, 71세인 그에게 1심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쁘로마 리의 분규는 해당 지역에 토지양허권을 발급받은 기업이 주민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공권력이 총기를 발포하여 14세의 소녀가 사망한 사건이다. 훈센 정권은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 분규를 몸 소난도 씨의 반란죄 혐의와 연관시키며 골치아픈 사건 2가지를 함께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몸 소난도 탄압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 여론은 거셌다. 훈센 정권의 정치적 도구인 사법부는 결국 몸 소난도 씨의 반란죄 혐의를 기각하고, 2013년 3월 산림법 위반 혐의만 적용하여 집행유예 5년의 형식으로 그를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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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캄보디아 민주인사 몸 소난도, 집행유예 석방 - 사건일지 첨부"(VOA 2013-3-16) |
7. 친여 성향 대학생들의 유엔 보고관 강의실 난입 항의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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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he Cambodia Daily) 5월21일, 유엔이 파견한 인권부문 사절인 수랴 수베디 특별보고관이 '캄보디아 메콩 대학'에서 특강을 하던 중, 그에게 불만을 가진 일군의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캄보디아를 방문 중인 수랴 수베디(Surya Subedi: 우측사진) 유엔 캄보디아 담당 인권 특별보고관이 5월21일 저녁 '캄보디아 메콩 대학'(Cambodian Mekong University)에서 국제 투자법에 관한 강의를 하던 중, 보수단체 소속 학생들에게 조직화된 기습시위를 당했다.
수베디 특별보고관은 원래 네팔 출신으로 영국 '리즈대학'(Leeds University)의 국제법 교수이다. 역대 인권보고관들과 마찬가지로 수베디 교수 역시 훈센 정권의 인권상황에 관해 비판적 제언들을 내놓은 바 있고, 특히 그가 2012년에 발표한 캄보디아 인권상황에 관한 보고서는 "캄보디아 선거제도의 개혁이 없을 경우 폭력사태도 우려된다"며 공정선거를 위한 제도개혁을 권고했다.
수베디 특별보고관은 학생들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민주주의의 원칙에 관해 발언을 하면서 강의를 마쳤다. 하지만 이후 폭로된 자료들에 따르면, 이날 발언과 질문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학생들 중 최소 2명은 훈센 총리가 주도하고 차남인 훈 마닛(Hun Manith)이 실무를 담당한 '토지측량 학생 자원봉사단'의 단원인 것으로 확인되어, 이 시위의 배후에 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사건은 캄보디아의 중산층 젊은이들 중 일부가 지닌 여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지나쳐, 국제적 상식조차 벗어날 정도의 교만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지난 7월28일 총선 이후, 이 학생들과 같은 또래인 캄보디아 젊은이 대다수는 야당의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서 가장 주도적인 세력으로 성장했다. 유엔 보고관의 강의에서 소동을 일으켰던 젊은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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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유엔 인권보고관, 캄보디아 대학에서 특강 중 봉변당해"(프놈펜포스트 2013-5-22)
- "유엔 인권사절에 항의시위한 학생들, 캄보디아 집권당과 관련성"(캄보디아 데일리 2013-5-23) |
8. 뚜올슬렝 생존자 쭘 메이의 야당 규탄 관제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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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eng Srun/Phnom Penh Post) 과거 S-21에 수감됐다 생존한 인물인 쭘 메이 씨가 6월9일 프놈펜의 '프리덤 파크'에서 자신이 주최한 항의집회 연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위는 1만명 미만의 인원이 듬성듬성 참가한 가운데,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군중들은 별다른 열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
7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훈센 정권은 야당을 모함하는 공작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야당의 삼 랑시 총재가 해외에 망명 중이었기 때문에, 주요 공격대상은 국내에 머물고 있는 껨 속하 부총재였다. 훈센이 직접 나서 '껨 속하가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껨 속하 부총재의 "내연녀"라고 주장하는 여성을 내세워 선전을 해대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에서 가장 큰 이슈는 껨 속하 부총재가 "베트남이 뚜올슬렝'(Tuol Sleng: 'S-21 보안감옥')을 날조해냈다"고 발언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공개한 녹취록은 껨 속하 부총재의 대화를 도청한 후 주요 맥락을 바꾸어 편집된 것으로 추정됐다.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 정권에 대한 평가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반공" 이슈가 갖는 것과 마찬가지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의 확대를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선 사람은 '뚜올슬렝의 극소수 생존자들' 중 한명인 쭘 메이(Chum Mey, 83세)였다. 쭘 메이는 다른 크메르루주 정권 피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야당 관제시위 개최를 주도했다.
이 시위는 그다지 열기를 갖지 못한 채 이후 선거운동의 열기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쭘 메이는 훈센 정권의 마지막 전성기에 나타났던 대표적인 기회주의자로 기록돼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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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야당 : 반-야당 시위를 "기획된" 시위라며 평가절하"(AP통신 2013-6-9)
- "[르뽀] 캄보디아의 대규모 반-야당 관제시위 현장을 가다"(프놈펜포스트 2013-6-10)
- "반-야당 관제시위 : 노골적인 여당 지지발언 한 크메르루주 생존자"(캄보디아 데일리 2013-6-10) |
9. 일본의 대-캄보디아 진출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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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AEON, イオン)이 프놈펜에 건설 중인 쇼핑몰 조감도. 2012년 12월에 착공한 이 쇼핑몰은 2014년 초에 개장할 예정이다. |
캄보디아에 대한 일본의 투자는 2012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태국에서 2011년 하반기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산업단지들에 입주한 다수의 일본 기업들이 침수피해를 당한 후,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러한 경향은 2013년에도 지속됐고 캄보디아-일본 수교 60주년까지 맞이하면서 일본의 대-캄보디아 진출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캄보디아만의 국지적 현상은 아니다. 중국의 노동시장에서 임금인상이 가속화되면서, 일본은 이미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 1: 중국의 예비기지 확보전략) 정책을 부르짖고 있었고, 태국 홍수 발생 이후엔 "타일랜드 플러스 원"(Thailand + 1)이란 또 다른 흐름도 출현했다.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경제적으로 막대한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구사하면서 동남아 지역 전체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이 그 동안 역내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캄보디아 진출은 변화된 모습으로 평가할만하다. 일본은 그간 캄보디아에 대해 아무런 조건 없이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해온 국가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일본이 진출 의사를 갖기만 한다면, 캄보디아 역시 상당한 협조를 제공할 용의를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캄보디아로서는 일본의 진출이 고무적인 현상이다. 일본은 투자규모가 큰 국가이고, 전통적으로 농업이나 봉제업에만 치우치던 캄보디아의 산업구조 역시 부품산업이나 기계, 전자 등으로 다각화시켜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소비자 문제 공기관인 '국민생활센터'(National Consumer Affairs Center of Japan: NCAC, 独立行政法人 国民生活センター) 및 관련 기관들이 자국민들에 대해 캄보디아에서 부동산 관련 투자 사기가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한 일은, 최근 일본에서 캄보디아 진출 열기가 얼마나 고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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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보집] 캄보디아-일본 우호60주년 기념 행사"(파주땅부자 님 2013-2-24)
- "아베노믹스 대공세 :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2년내 2배로 돈 푼다""(한겨레 2013-4-5)
- "일본 소비자 기관 : 자국민에 "캄보디아 부동산 분양 사기" 경고"(Japan Times 2013-8-27)
- "동남아에 둥지튼 일본 경제 - 캄보디아, 태국 고속철도 진출 모색"(아시아투데이 2013-11-10)
- "아베 총리, 캄보디아 방문 : 훈센 총리는 "일본의 선거개혁 지원"을 요청"(프놈펜포스트 2013-11-17)
- "[해설] 일본-아세안 특별정상회의 : 동남아의 미래와 산적한 과제들"(NHK 2013-12-13) |
10. SL GMT의 장기파업과 최저임금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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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캄보디아 헌병들이 11월12일 '스떵 미언쩌이 파고다[사찰]' 경내에서 도망치는 한 남성을 따라가며 구타하고 있다. |
프놈펜에 위치한 싱가포르계 봉제공장 'SL 섬유가공 캄보디아 법인'(SL Garment Processing [Cambodia] Ltd.)에서 발생한 노사분규는 총선 직후에 발생하여 계속해서 이어졌다. 특히 사측이 노조 지도자들을 해고하면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는 몇달간 이어졌고, 11월12일에는 공권력이 총기까지 발사하는 폭력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SL 공장의 파업사태는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12월24일 최저임금 월 95달러로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당초 월 160달러로의 인상을 기대했던 봉제산업 노동자 전체가 총파업에 돌입했다. 최대 60만명에 달하는 캄보디아의 봉제산업 노동자들이 파업과 동시에 야당의 부정선거 항의시위에 가담하면서, 노동계의 움직임은 2014년 새해 정국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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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총격받은 파업 공장, 훈센 총리 여동생이 관련된 의혹"(캄보디아 데일리 2013-11-14)
- "[종합기사] 경찰, 파업 노동자들에 총기 발사 - 1명 사망, 여러명 부상"(프놈펜포스트 2013-11-13) |
* <2012년 캄보디아 10대 뉴스> 선정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도 후보군에 올라왔었다.
- 한국 정부 및 야당 대표단의 캄보디아 총선 승인과 축하
- 은행직원이 가담한 위장 은행강도 사건
- 2건의 봉제공장 시설 붕괴
- 캄보디아 조류독감 사망자 최다국
- 2년만의 대홍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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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가 많습니다. 제목에 2012년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 캄보디아에서는 이제 캄보디아에 관한 뉴스하면 크메르의 세계라는 등식이 세워져있습니다.
여기까지 수고하신 노마드님과 모든 회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올해는 워낙 늦어져서,
초벌 원고 상태에서 공개한 후,
앞으로 며칠 동안 윤문과 교정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시 보살펴주시는 마음에 감사를 드리면서,
올 한해도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3년을 정리하는 좋은 내용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금년 뉴스는 한국기업진출 러시.. 평화적 정권교체, 경제 호황, 빈부격차 감소 등 등 기분 좋은 뉴스들로 2014 캄보디아 10대 뉴스 지면이 가득 차면 좋겠습니다..ㅎ
2013년에는 너무 고생 많으셨네요..
새해에는 더욱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3년 크메르의세계가 선정한 캄보디아 10대 뉴스를 보면서
제가 얼마나 카페에 소홀했는지 새삼 느끼며
울-노 님을 비롯한 정회원님들에 죄송함을 전합니다.
허철 님이야말로 영원한 정신적 지주이시죠~ ^^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오히려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