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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으로 한국연예사 통털어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되는 여배우가 3명 있다
이 중 단연 으뜸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곳의 주인공인 정윤희이고 다른 두명은 각각 `한국영화사 요부 팜므파탈`의 압권이었던 방성자 그리고 비운의 스타였던 이 글의 주인공 양정화
이 3명은 묘한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세미인이었으며 큰 인기를 모으던 절정기에 어이없는 사건에 휘말려 각각 20대 중반 혹은 30대 초반이라는 너무도 때이른 시기에 은퇴해 아련한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는 점
이 중 양정화는 7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모으다 대형스캔들로 한방에 추락, 이후 대형손배소에서 승소한 뒤 홀연히 은퇴한 여배우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워낙 오래전 활동한데다 연기처럼 사라진 인물이라 그런지 포털에 남아있는 이미지 자료가 거의 없어서 자료 찾는데 정말 심하게 애먹었으며 이 얘기를 하려는 이유는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사건이며 미처 알려지지 않은 사건팩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난 이 양정화와 같은 세대가 아니라서 비교적 최근에서야 존재와 당시 사건 등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이 양정화라는 인물을 알게 된 계기는 순전히 오란씨 때문
내가 지금도 최고의 광고로 첫손 꼽는 오란씨 CF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이 명CM송으로도 친숙한 이 광고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상큼한 광고기법과 내용도 있지만 역대모델들이 하나같이 매력 넘쳤기 때문
지금은 중견배우가 된 윤여정, 임권택 부인인 채령, 왕년의 인기MC로 알려진 명현숙, 하이틴영화의 대명사 얄개시리즈에서 얄개걸로 잘 알려진 이옥미, 영원한 오란씨걸 김윤희,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미소천사 얼짱녀 미스 오란씨 송혜령과 지금의 김지원까지 전부 꿰고 있는데 이 역대 오란씨걸 자료들을 보다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은 여인이 있으니 바로 이 사진
다른 모델들과는 달리 아무런 기억도 자료도 없어서 힘들게 찾아보니 양정화라는 이름을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고 내가 이 분의 출연작은 단 1편도 본 적이 없고 유일한 영상자료는 유튜브에 올려진 오란씨 CF 딱 한편, 이게 내가 이 분을 동영상으로 본 유일한 모습인데 파도치는 해안가를 배경으로 상큼하게 미소짓는 여인이 양정화이며 상대남자모델은 현재 연예기획자로 잘 알려진 하용수
이걸 보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분이 범상치 않은 사연을 지닌 인물이란 것도 알아냈으니 얘기하자면 완전 한편의 대하드라마인데 여기저기서 건진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 이게 네이버 라이브러리 등에 올려진 그 시절 기사와 네티즌들 회고를 섞어 정리한거라 실제와는 다소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
1. 양정화는 갓 고교를 졸업하던 70년대 초반 MBC 공채탤런트 선발에 응시해 고두심과 동기생으로 뽑힌다
어떤 기사를 보니 이 때 양정화와 동기거나 거의 비슷한 기수로 등장한 게 지금의 김영애, 김수미, 박원숙, 고 김자옥, 고 안옥희 등이라고 함
양정화는 데뷔 직후인 72년, 김수현 작가의 초기힛트작인 `새엄마`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듬해 MBC에서 시청자응모를 통해 배역을 공개선발한 춘향전에서 압도적인 선호도로 타이틀 성춘향 역을 맡아 본격 질주를 하게 된다
2. 당시 한국영화계는 큰 난관에 봉착한다
한국영화계 전성기 시절 충무로를 먹여살리던 문희 남정임 윤정희 일명 1대 트로이카 군단이 이 때 결혼과 유학 등으로 한꺼번에 은퇴한데다 설상가상 TV의 급격한 보급대중화로 국내영화계에 큰 위기가 몰아닥침
그래서 위기탈출을 위해 영화사들은 저마다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신인공모전을 통해 트로이카의 계보를 이을 뉴페 발굴에 주력하게 됨
이를 통해 나오미, 윤연경, 김명진, 우연정, 홍세미, 오유경, 최정민, 박지영(지금의 중견배우 박지영이 아닌 동명이인 박지영으로 `열아홉 순정` `수절` 등의 작품을 남기고 일찍 은퇴),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반짝인기를 누리거나 조용히 묻혔고 이런 가운데 단연 독보적 두각을 드러낸 게 바로 이 양정화
유별나게 튀는 미모와 두드러진 현대적 감각, 그리고 청순미와 관능미가 묘하게 어우러진 분위기를 바탕으로 금방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처음에는 브라운관에서만 활동 했지만 스크린 러브콜을 받아 영화 `흑녀`로 은막데뷔(윗 사진)
홍콩에서 로케된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액션물로 아름다운 용모인 그녀가 액션을 하는 모습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흥행에 성공, 이후 당대 거장 정소영 감독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으며 정 감독은 그녀를 가리켜 `문희 이래 최고의 대어급 여배우`라고 추켜세움
역시나 정 감독이 연출한 그녀의 두번째 영화출연작 `성숙`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탑배우로 서서히 부각되는데 이 작품에서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여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듣게 되었고 같은 시기 출연한 `밤에도 뜨는 태양`과 `애수의 샌프란시스코` `황혼의 맨하튼` 등도 어느 정도 반응을 얻었음
그래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외영화제와 행사장에 초청까지 받아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뛰어난 동양미인`이라는 칭송을 받음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조악한 사진기술과 조명 스타일링 성형기술이던 시절치곤 상당히 세련된 비주얼에 무엇보다 약간 매부리코와 살짝 각진 턱은 이지적인 느낌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묘사하며 입꼬리를 활짝 올려 콧망울과 조화를 이루면서 상큼발랄하게 짓는 부챗살 일품미소는 지금 난다긴다하는 여자탑스타들 중에서도 흔치 않음, 한마디로 상당한 스타성을 지녔으며 그래서 연배 지긋한 지인분에게 당시 양정화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주셨음
<`양정화는 70년대 중반 정윤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쁜 여배우의 대명사였고 당시 수많은 남자들을 밤잠 설치게 만들었는데 언론사냥에 희생되지만 않았으면 아마 2대 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대 탑스타로 지금까지 회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힐링캠프에 출연한 고두심이 이 양정화와의 에피소드인 춘향전 추억담을 들려준 적이 있음
그 시절 MBC에서 대하사극 춘향전을 기획하며 춘향 역에 고두심 양정화 둘을 최종물망에 올려놓고 경합을 벌였는데 결국 양정화 몸매가 좀더 늘씬하고 한복맵시가 좋다는 이유로 최종낙점된 사연
이 때를 회상하던 고두심 씨는 `동갑내기인 정화는 참 예쁘고 끼 많고 재능있는 친구였는데 안타깝게 되었다`는 말로 그 시절을 회고함
당시 양정화를 회고하는 고두심의 방송인터뷰
3. 호사다마라고 막 인기정상에 설 무렵인 75년 지금도 인류에 회자되는 `박동명 스캔들`이 발생함
신** 창업주의 2세이자 ㅌ산업의 30대 초반 젊은 사장이던 박씨가 외화밀반출 혐의로 그의 자택에서 구속 되었는데 검거 당시 현장에 신인여배우 강**가 함께 있다 발각되었고 이걸 필두로 그의 여배우 편력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남
그의 수첩에 무려 수십명의 여자연예인들 명단과 연락처가 있었고 그와의 교제 염문 동거사실이 드러난 수많은 여배우가 된서리를 맞아서 그 당시 무려 13명의 여배우가 배우협회에서 제명 당하거나 강제퇴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 이 중 누군가는 출연작에서 강제하차 되는가 하면 연루된 여배우 최정민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약을 먹고 음독자살을 시도해 연예계와 사회 전체가 술렁인다
사건 당시 상황과 심경을 들려주는 최정민의 최근 모습
4. 이 중 가장 문제는 양정화였는데 그저 발뺌으로 일관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양정화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었으니 바로 사진 1장
물적 증거가 없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양정화는 박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1장 있었고 이게 모 일간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가장 큰 세간의 집중비난에 시달렸으며 여주인공으로 출연 중이던 드라마 효자문에서 하차당해 결국 후배연기자 안재은이 대타를 맡아 종영까지 가게되는 해프닝 발생
이 와중에 양정화는 `난 그를 알지도 못 한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 결국 박씨와 뜨거운 사이라고 추측성 보도를 한 J신문사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5. 당시 세간에선 `함부로 놀아난 주제에 자숙하고 있을 것이지 뭘 잘 했다고 저러나?` 이런 차가운 반응을 보였는데 재판 결과는 완전한 대반전을 불러옴, 여기에 문제의 언론사가 왜 그녀를 그렇게 집중공격했는지도 드러났으니 사건전말은 이랬음
사실 그녀는 박씨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고 실제로 마주친 건 산악행에서 스치듯 한번이 전부
문제의 사진은 그녀가 신인이던 시절, 동료들과 설악산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때마침 현장에 온 박씨 일행과 단체기념사진을 즉석에서 찍은 것
등산현장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둘다 따로 소개를 주고받거나 대화없이 곧바로 각자 길을 갔는데 언론사가 이 사진을 마치 이 둘만 커플기념샷으로 찍은 것처럼 교묘히 위장해 그녀를 이상한 여자로 오인하게 만든 것이고 그렇게 한 이유가 기가 막힘
당시나 지금이나 국내 최대재벌의 대명사인 기업이 운영하던 구TBC 동양방송사는 그 시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양정화를 자신들의 전속배우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함
그 시절은 방송사 전속제도가 아주 엄격하던 시대로 MBC연기자면 오로지 MBC에서만 활동 가능 이런 식으로 전속된 방송사에서만 활동이 가능했는데 양정화가 큰 인기를 모으고 그러는 사이 MBC와의 전속계약기간 종료시점도 다가오자 경쟁방송사인 동양방송에서 영입하기 위해 사건 직전의 그녀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스카웃을 제안했다고 함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방송사와의 의리를 져버리기 싫었던 그녀는 제의를 결국 뿌리쳤고 이에 일명 `괘씸죄`를 적용, 박씨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제의 사진을 입수해 인신공격성 보도를 퍼부어 그녀를 바닥까지 추락시킴
당시 이 악의적인 보도는 한 일간지가 집중적으로 했는데 이 신문사가 바로 해당방송사와 사주가 같은 계열사
이에 굴복하지 않은 양정화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고 결국 그녀의 무고함이 밝혀져(문제의 사진이 조작인 것도 그렇지만 당시 수감자 신분이던 박씨가 법정증인으로 등장해 `난 양정화란 여자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 한다`라고 진술, 결국 결백증명) 해당사로부터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받는데 이 금액이 정말 엄청남
무려 1억 5천만원인데 그 시절 이 금액은 서울 시내 중심가 고급단독주택 20여채 이상을 살 수 있는 엄청난 천문학적 거액
(내가 이 문제로 당시 물가조사를 해봤는데 사건이 일어난 시점인 75년 당시는 아파트 대중화와 강남개발 이전 시점으로 서울 대표 부촌이 중구였으며 여기 쓸만한 양옥새집 한채가 350만원 정도였다고 하며 소주 1병당 100원, 자장면 한그릇이 140원, 버스비가 40원 정도, 대학등록금이 87000원선, 여기에 당시 최고액 당첨복권이 주택복권 1등 500만원, 그러니 이 양정화가 받은 금액은 당시 이 복권을 무려 30장 연속 1등 당첨 그것도 세금 한푼 안 떼야 받을 수 있는 돈이라는 사실
그러니 이 때 1억 5천이면 사실상 한국역사상 전무후무한 최대 위자료로 앞으로도 나올 일 없을 것 같음)
이런 소송승소로 평생 먹고 살 돈을 받게 된 양정화는 결백이 증명돼 온갖 섭외가 줄을 이었지만 `너무 큰 상처를 받고 회의감을 느껴 다시는 카메라 앞에 서기 싫다`는 소감을 남긴 채 그 길로 은퇴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여전히 근황을 알 길이 없음(위 사진은 은퇴 당시 심경인터뷰 모습)
요즘도 일명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대변되는 추측성 억측 과장 허위보도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세상인데 저런 거 보면 그 때는 더 했던 것 같으며 덕분에 참 아까운 인물 하나 허망하게 날려버린 셈이 된 씁쓸한 사건 아닐까 싶음
* 덧붙이는 특별추가자료
1. 희대의 여배우킬러이자 나비효과를 선보인 그
엽색가이자 방탕한 인물의 전설이 된 박씨, 내가 이 사람 자료를 찾아보니 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석방된 후 몇년 안 있다가 또 대형사건을 일으킴
마약을 복용한 환각상태에서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여성과 호텔에 투숙, 여성을 식칼로 위협 몇시간동안 폭행감금하고 인질극 소동을 피워 또 구속돼 9시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
이 사진이 인질극 구속 당시 뉴스데스크에 대문짝만하게 잡힌 그의 중년시절 얼굴로 아마 인간 자체가 완전 밑바닥인 것 같음, 상습적으로 이러는 거 보면
2. 박씨가 골로 보낸 인생들
그 당시 연예인으로 활동하다 사건에 연루된 여인들은 대부분 하차하거나 사라졌고 일부는 지금도 활동 중이지만 사건 후유증 때문인지 에로물 전문 혹은 삼류로 밀려나거나 방송진행 등 다른 길로 빠졌음
그리고 자택에서의 구속 당시 박씨와 같이 있다 연행된 강**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연예계 역사를 바꿈
이 강씨는 당시 충무로에서 대하물로 기획된 `청춘극장`의 여주인공 오유경 역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인물
이 청춘극장은 그 이전에 이미 두차례나 영화화 된 적 있으며 각각 `김지미` `윤정희`가 맡아 스타덤에 오른 적이 있음
그러다보니 자연 이번 역할 맡을 신인도 기대를 모았는데 이 강씨가 역할에 캐스팅 되고 대본리딩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역에서 하차를 당함
다급해진 영화사는 황급히 대타를 찾았고 당시 막 데뷔했지만 데뷔작 흥행참패로 조용히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던 신인이 투입되는데 이 여배우가 바로 전설의 한국영화사 대표미녀인 `정윤희`
정윤희는 데뷔작인 영화 `욕망`의 실패로 무작정 차기작을 기다리는 무명신인이었는데 때마침 이 영화를 본 청춘극장 조감독이 수소문해 대타로 기용했고 이 청춘극장으로 인해 정윤희라는 걸출한 인물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생대역전 발판을 마련
* 자료를 찾아보니 퇴출된 강씨도 단아한 동양적 미모에 균형잡힌 몸매를 지닌 배우로서 가능성 있는 여자로 보였음
하지만 사건여파로 데뷔도 못 해보고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으로 나옴
아무튼 강씨가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그 역할 그대로 했다면 정윤희는 좀더 늦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거란 사실
(정윤희는 이 때 팔자를 바꾼 것으로 알고 있음
이 오유경 캐스팅 이전에는 부산에서 갓 상경한 무명의 배우지망생 중 하나였다가 이 역할로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이 영화를 본 방송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방송사 TBC 특채에 해태제과 전속모델 발탁 등 경사가 줄지어 날아듬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정윤희 바로 직전 해태제과 전속모델이 다름아닌 양정화였다는 사실
역시 이 오유경 역은 스타등용문이고 `누군가의 행운은 타인의 불운을 밟고 올라서는 기회의 산물`이라는 외국속담 이래서 진리인가 봄)
3. 역시 재벌은 재벌
이 사건에서 느낀 점은 역시 재벌사 그들은 통이 컸다는 것
후문에 따르면 실제 위자료로 그녀에게 지불한 액수는 제시한 1억 5천보다 더 높으며 이들이 발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언론사가 철퇴를 안 맞았다고 함
양정화의 무고함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여론의 화살이 얌전히 연기 잘 하고 있는 참한 여배우를 난도질해버린 J일간지 쪽으로 옮겨가 엉터리 언론이 엄한 사람 잡았다는 의견이 일게되면서 이 신문사는 창간 이래 최대위기를 맞게 됨
하지만 그래도 위기를 잘 모면한 배경은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양정화에게 백배사죄 그리고 그녀가 요구하는대로 피해보상을 얼른 해주었기 때문에(지금은 여기 사주가 홍씨지만 이 때는 이씨 일가였다고 함) 순조롭게 위기타파
만일 이 신문사가 우리는 잘못없다 배째라식으로 나왔다면 아마 폐간위기 갔을지도 모른다는 게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의 설명
4. 브라운관 그녀들이 충무로로 간 까닭은...
당시만 해도 스크린과 안방극장은 서로 별개였다고 함
즉 영화배우들은 영화만 찍고 방송연기자들은 드라마만 줄곧 찍었는데 이 박씨 사건이 이런 판도를 뒤엎음
그 이유가 스크린 여배우들이 그것도 히로인을 전담하는 젊은 20대 여배우만 골라서 한꺼번에 10여명 넘게 활동정지를 당하게 되니 충무로는 당연히 제작에 초비상이 걸림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방송연기자들 대거기용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안방에서만 활동하던 김영애 김자옥 박원숙 등이 이 때부터 스크린 겸업을 시작
그리고 박씨 사건 연루된 여배우들의 대거 동시퇴장으로 그 이름도 찬란한 2대 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가 기지개를 켜게 되었다고 함
이 박씨라는 젊은 재벌 2세 한명 때문에 여러 인생이 한꺼번에 골로 가고 또 국내 연예계 판도를 대폭 바꾸기도했으니 이것도 일종의 나비효과인 셈
5. 일생일대 대박을 놓친 사연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양정화는 대어를 놓쳤음
결백이 밝혀진 후 그녀를 안타깝게 여긴 영화사들이 앞다퉈 캐스팅제안을 하는데 이 중 한 작품은 지금 생각해도 완전 아까운 게 다름아닌 조해일 원작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
한 여인의 성적 일탈과 여러 남자를 거치면서 겪게 되는 성장기를 묘사한 연재소설로 일간지에 게재돼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이 영화의 여주인공 유이화 역은 당시 충무로 모든 여배우들이 탐내었다고 함
제작사는 이 역할을 양정화에게 맡기려 했지만 이미 은퇴를 결심한 그녀는 단호히 거절, 결국 무명신인 장미희가 이 역할을 맡아 국민여배우의 첫걸음마를 떼고 2대 트로이카 시대 개막을 선언하는 계기를 마련했음
이게 어느 정도 초유의 힛트작인가 하면 77년 서울 단성사 단일개봉관에서 개봉돼 58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이건 그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흥행으로 이 기록은 90년 장군의 아들 등장 때까지 무려 13년간 기록갱신이 되지 못 했음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인 지금 시점에선 우습게 들리는 이 관객 숫자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무려 4개월 넘게 극장좌석이 단 한곳도 비지 않았으며 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든 관객이 단성사 앞에서 종로 2가 비원까지 연일 장사진 행렬을 이루었다고 함
이걸 만일 양정화가 찍었다면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참...
이런 엄청난 작품을 놓치고 언론의 마녀사냥에 희생돼 상처만 입은 채 홀연히 사라진 양정화, 지금 환갑을 넘겼을텐데 과연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짐
이 사건의 팩트
총칼보다 펜이 무섭다는 건 진리이며 언론이라는 이름의 잘못된 보도 하나가 엄한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해준 희대의 사건으로 속칭 찌라시들 손가락 함부로 놀리면 절대 안 되며(그러다 저렇게 천문학적 배상할 일 생길 수 있음) 여자들의 경우 남자를 돈이나 겉모습만 보고 잘못 만났다간 인생 골로 갈수 있다는 걸 저 사건이 증명함
박씨 사건은 결국 국내 연예계 판도를 바꿔놓았고 양정화 강모 여배우 2명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울렸고 이 사건으로 어이 없게도 김자옥 정윤희 장미희는 뜻하지 않은 수혜자가 되었다는 사실, 이 3명은 희생양 덕분에 기회를 잡은 셈이니까
어쨌건 인정할만한 점은 언론의 힘이 막강했고 여배우 위치가 지금 같지 않은 시대에 그렇게 대놓고 언론사와의 소송전을 불사한 점은 아마 사상최초였으며 용감했고 아마 지금 나왔으면 승소 후 기자회견 하고 복귀했을텐데 그러지 못 해서 아직도 올드팬들 사이에서 그녀는 24세 꽃다운 나이의 처녀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
첫댓글 인간쓰레기 = 박동명
이씨 홍씨 일가의 언론이 참 나쁘네요... 요즘의 방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