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어둠,슬픔을 토로하다 보니, 겸연쩍고 스스로 답답해진다. 나에게 노래할 용기와 자리를 주었고,큰 기쁨, 삶의 은인들에게 예가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받은 분에 넘치는 선물,아름다운 추억을 간직 하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그 찬란한 프르름,생명의 음성,그 얼굴,얼굴.눈과 귀를 모아준 그 아름다운 모습들.복도에서,길에서,달려와서 '안녕하십니까'.격려의 편지들,학교에서,집에 와서, 나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수, 특히 나의 담임반의 학생들이 나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은 큰 감격이었다.
한번은 내가 지각해서 학급 조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와! 하고 소리첬다. 그렇게 심하게 지각을 단속하면서 자기는 지각을 했다는 항의였다. 지각한 것은 그날 등교 길에 내 반의 한 학생이 차에서 손을 다쳐 함께 병원에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요구한다. 교사가 모범을 보이라고.
내가 교직생활에서 담임 반, 또는 전교생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시간 지키기, 약속 지키기, 무단 결석 않기였다. 그것이 성실과 신의, 학습과 일의 기본이라고 말하곤 했고, 어긴 학생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대가를 요구했다. 지각한 하생에게는 원고지 20매에 자초지종을 쓰기, 결석자는 결석 당일 까지 결석계를 붓으로 써내도록 하기도 했다. 미제출시는 당일 가정 방문을 했다. 전교 주번일 때는 9시에 교문을 닫아 버리기도 했다. 물론 성과가 있어 지각생, 결석생이 일년 사이에 5분의 1로 줄기도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까지 한 동기에는 당시에는 '코리언 타임'이란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사회 곳곳의 시간 관념과 질서가 약했다는 공감이 있었다.
나는 비어있는 보충수업에도 선뜻 들어갔고,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뛰노는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학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좋았다. 아파서,두달 동안 휴직중 구름처럼 찾아준 학생들에게는 정겹고 마안했다.
학생들이 나를 다소 인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학생들의 천국의 눈, 그 순진 발랄한 몸과 마음을 좋아한다는 것,진실로 그들이 훌륭한 삶과 인간이 되기를 바라며,크게 부족하지만 스스로 진실하려는 노력이 조금은 공감되지 않았나 싶다.
교실에 들어 서자 울려 퍼지는 '스승의 노래',더운 여름날 교탁 위에 놓여진 주 스잔,너무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누구나 대접받으면 좋으니까. 이 말은 제자들에 대한 감사,진실, 책임 참회이기도 하다.
" 교사가 교육하며 노력할 때,교사에게 지향과 관철에의 정렬을 주는 것이 바로 교육애이다.교육애는 보다 고차적인 단계의, 하나의 개성이 타의 개성을 감싸주는 형태의 사랑이다. 교사는 먼저 자기 제자들의 젊음의 미美를 사랑한다. 그것이 교사의 마음을 끌고 때때로 감격시키기도 한다. 근원적인 미는 진眞인 동시에 선善인 것이다. 이 삼위 일체의 광체안에서,마음이 고귀한 사람들에게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형태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은폐되지 않는 개방적인 진리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은 에로스Eros의 날개의 힘인 것이다.
교육애의 특징은 첫째,상대에게 모범상을 요청하는 사랑이며,둘째,성장하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가능성을 사랑하는 것이며, 셋째,이성적 미래지향의 향도적 애정이며, 넷째,사랑으로써 싹틀 수 있는 씨앗을 사랑을 가지고 심는 일이다.
우리가 모범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지 않으면 안되고, 줄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며,에네르기를 생기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에네르기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 진정한 교사의 내심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자기 본질의 윤리적 핵심에 있어서의 불만이 작용하고 있다.젊은이들을 자기보다 더 잘 살도록 도움으로써,그것이 공허했던 자기의 노력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천부적인 교사'는 부동의 스타일 감각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 의해서 자유롭게 되면 그는 끊임 없이 속박을 생각해야 하고, 속박하면 서서히 자유롭게 해주는 책임 있는 순간을 잊어서는 안된다. 속박된 자유야 말로 인간의 숙명인 것이다(E,Spranger)."
나는 '영어'의 바람 속에,소위 중요교과라는 너울 밑에서 교육목표 수행에 필요한 자질,준비,능력,노력에는 턱 없이 부족한 주제에 뻔뻔하게 교단에서,제자들에게 기쁨과 충분한 학습력을 주며 그들의 성공을 도왔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학생들을 패배와 실망의 나락으로 빠지게 하지 않았는지 깊이 반성한다. 우리는 흔히 교육이라는 자리를 깔면 긍정적 플러스 효과를 기대하는데,잘못 가르치면 훨씬 해로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때에도, 지금도 안타깝고 야릇한 느낌을 갖는 것은,특히,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의 '스승의 노래'가 불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는 감동의느낌,진실이다. 스승의 노래가 학생들의 진실한 감정이 아니라면,우리 모두는 교육에 더욱 힘써, 선생님들의 위상이 높아져,학생들이 자연히 부르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가.
물론, 이땅에도 공자,소크라테스,간디,안창호등,교성敎聖들의 제자들이 부를 스승의 노래를 들을 자격이 있는, 하느님이 인정하는 수 많은 교육자들이 있을 것이다.
'유니세프 조사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어른,선생님에 대한 존경 비율이 13%뿐이며 세계 평균인 72%와 자그마치 59%나 차이 난다는 말은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4학년,5학년 때 담임 선생님등, 어려서 부터 꽤나 선생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중학교 2학년생의 글이다.{한겨레,2001,12,17.}
며칠 전,개학 날,초등 4년생인 손자에게 '오늘 제일 기분 좋은 날이지?', 답왈, '그와 바대예요.'
나도 소학교 때,학교 가기 싫으면 아프고,그 날은 평안 행복한 날이었으니까.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학우들이 위협적이며,기쁨과 삶이 적은 곳에서는 학습이 생기지 않고
인격이 신장되지 않는다. 빛을 적게 받고 벌레들이 괴롭히는 나무는 잎과 꽃이 시들고 열매가 적을것이다.
존경심이 적다는 것은,언행,정성,인격을 따르고,모방하여 그 분 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과,그분과 함께 이룩한 일과 학습성과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만족은 영농자가 과소 작황으로 영농의욕을 상실한 것 처럼,적은 존경심에 따르는 불만족은 부족한 학습성취와 실패감으로 이어지기 쉽다.
죽음의 반항
회상하면,수난의 현대사,소득이 적었던 수업시대를 지나,교직의 한 구석에서 남녀,인문, 실업계와 도시, 벽지의 중등교사 ,장학,교사연수,행정직을 겪으며, 교육을 비교육으로 만들고 교사와 학생의 생명을 병들게 하는 광범위한 부조리와, 학습 성과가 낮은 학교와 학생들의 심각한 문제들에 도전하며,나는 큰 슬픔과 좌절도 겪었지만 동시에 큰 승리와 보람도 얻었다.
별별일,무단 간헐 또는 장기 결석,흡연 음주 가출은 흔한일,혼숙,폭력,감옥살이,몇년간 연이은 자결,수업중 학년 전원의 집단 학교 탈출,학교 행사중 본부석에 의자 던지기등의 난동,결과하고 동산에서 잠자기,윗층에서 창 밖으로 소변하기,수업중 시간내 불손하게 선생님을 노려보고만 있는 학생, 수업중 욕설하고 교실밖으로 달아나는 학생,(나는 그 학생의 위해를 느끼고 있던중 몇달 후,우연히 길에서 그가 할말이 있다고 해서 골목으로 따라 갔더니 그는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처벌하면 피를 볼줄 알아라는 학생, 어떤 선생님에게 사과 하라고 농성하는 학생들.
왜 이런일들이 일어나는가.그 학생들은 결코 그렇게 태어났거나,무능하거나 불순하지 않다. 그들은 다만 여의치 않은 환경,그들에 부적한 교육과정,실패의 경험들을 쌓아 왔을 뿐이다. 나의 체험으로도 증거할 수 있다.
" 수년 동안에 걸쳐,여러가지 다양한 학습과제에 계속해서 성공하거나 실패한 경험은 학교에 대한 태도가 호의적으로 형성되느냐,혐오적으로 형성되느냐 하는 것도 결정한다.이와 같이 형성된 태도는 특수한 몇개의 하습과제라는 좁은 범위를 넘어서서 학교 전체,교과목 전체,교사 전체,심지어는 학생 전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물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이와 같은 실패와 부적절의 증거는 하교에서 뿐만 아니라,장차 일생 동 안에 걸쳐 그 개인에게 열려 있는 여러가지 선택의 문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B.S.Bloom)".
내가 특별히 윗 글을 인용,강조한 이유가 있다.근 20년간의 학창 시절에,지금 까지도 잘못된 사회,비진실,저생산 비효율의 일,불합리한 기준등에 의해서 사람들,특히 자유롭게 이성으로 자기의 삶을 판단,결정,선택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의 생명이 얼마나 가혹하게 유린 당하고 있는지 현실을 이야기하고, 이런 비리의 물결에 자기의 존엄한 생명을 빼앗기지 말라고 한 선생님을 못만났고, 우리의 실상을 깊게 연구하고 통찰한 연구물도 드물지 않나 해서이다.
교육에서 가장 긴요한 일은 모든 사람들이 삶의 자연권과 자존심을 지켜가도록 그들에게 지혜를 주고 격려하며 그들을 지켜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교사로서 교육의 실상을 더 보고,교육의 의미를 더 생각하며,다소의 노력으로 가시적 효과도 있었던 도서 벽지, 14개 학급 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이다. 학생들은 풍모가 좋고 표현은 적지만 순직한 인상이었다. 나는 부임 수일내에,아까 예거했던 삶의 버림,탈출등,일부 문제들의 원인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학교의 풍토,하교라는 이름의 실질적 수용소에서의 부자유,삶과 학습권의 심간한 상실감이고,문제들은 그것의 발로,반항이었다. 지역사회의 교직원들의 인습과 관행에 대한 가혹한 평가와,학교와 지역이 항상 교육행정의 사각지대였다는 불신도 컸다.
학교가 수용소를 닮는다면 하교는 학생을 위한 곳인가. 학생 때문에 있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학생들을 모아 두는 곳인가 하는 근본적이고 정당한 평가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실상의 발견
놀라운 발견들,어느 날,57명 한 반의 결석생이 14명, 이유는 집안 일 때문이라고,사실은 학교가 싫어서인 것을 나는 곧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내가 담당한 1,3학년생들의 영어 학습력이 거의 전무하고,특히,1학년생들은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1,2과의 영어 기초도 없었다. 학생들은 교과서는 짐, 그 많은 영어 시간은 어떻게 견뎌 냈을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흔히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학습력이 낮다는 것을 핑계로 수업을 너무 가볍게 처리하고,학생들이 잘 알지 못할것이고,이러나 저러나 못 알기는 마찬가지라고 여겨서인지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하고,수업과정을 엉성하게 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를 보고 대접을 달리하는 것이 상정이라고나 할가.
나는 불가피하게 교과서를 접어두고,1학년생에게는 우선 중학 영어의 기초가 될만한 50개 문형을 선정하고,평가도 그 범위에서만 하고,매시간 마다 3,4문장의 완전연습과 함게 학습가능한 기초 회화를 학습하되,학급에서 학습 미달자가 3명 미만일 때,다음 과제로 이행하기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기대 이상으로 학습 열기도 좋았고 탈락자가 없었다.
평가 결과,그 학급 57명중,'나는 학생이다.'='i( )a student.'의 문제에서 정답,am을 기록한 학생은 20명 이었다. 전체 성적에서도 그 반은 전교 최하위였다.
하지만, 미리 말하고 싶은 것은 이반은 2학년 때 내가 담임한 학급으로 스스로 노력하여,가을에는 월 무결학급이 되었고 학년말 성적도 전교 일위가 되었다.
부임 후,빗물이 새는 교실이 있고 학생 문제들도 이어졌지만, 학풍,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태도,지역 사회의 평가는 달라지고 있었다.일일 신,일취 월장하였다. 칠년 대한에 단비가 내려, 타는 대지에 물이 스미어 시드는 나무 잎에 생기가 돌듯, 목마른 아이들의 가슴에 삶과 희망의 빛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교실을 돌면 학생들의 반가워 했고, 뒷 동산 무덤 가에서 잠자던 남학생들도 깨우면 순순히 교실로 들어 왔다.
나는 곧 학생 주임으로서, 월 무결학급 시상제,매월 전교 운영위원회 개최,전교생 가정방문,월요 훈화 윤번제등을 별 어려움 없이 신임 교장(나의 사범학교 동기)에게 제안,시행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희망자에게 야간 수업도 했다. 담임선생님들을 따라 전교생(700여명)의 가정 방문을 했고 반상회에도 참가했다. 주중,주말에는 주로 장결생을 도보로,십리,이십리 길은 버스 편으로 찾았다. 제일 먼 곳에 사는,세번 만에 내가 겨우 만났던, 종례 때 노래를 시켰더니 '조 용필'노래를 잘 불러 격려해주었던 그 학생은 그 후 부터는 무결이었다. 몇 달 후에는 무결반들이 나왔고 일년 후에는 절반인 7개반이 월 무결, 전교 무결일도 더러 있었다.
운영위원회는 전 교직원 참여하에 전 학급의 위원들이 준비한 메모의 문제들을 중심으로,학생들 간, 학생-교직원들 간, 활발한 대화를 몇 시간이고 이어가며 문제를 알고 해결해갔다.이런 대화는 잘 살아 가는데 어느 곳에서나 피요한데도, 나는 타 학교에서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전남여고 제자인 김미애 선생님은 초임으로, 5개 과목을 담당하면서도 힘든 기색 없이 해냈고,성품이 훌륭하고 사근사근해서 직원들과 학생들이 매우 좋아했는 데,
'선생님, 저는 교사직에 맞지 않은 것 같아요.우리 반의 성적이 오르지 않고,학생들도 잘 따르지 않고..,'
'자네 같이 훌륭한 사람이 선생님을 안하면 누가 해!, 내가 도와 줌세.'
이 말은 도와 주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타 학교에서도 교사간의 협조와 문제들의 공동 해결력이 부족하다는 평소의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누구나 문제가 있을 때, 흔히 혼자 고민하다가 문제를 더 키우고 심각한 결과, 죽음 까지 이르게 하지 않는가. 나도 큰 고민,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대화자나 협력자를 간구하면서도 한사람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이것이 학교와 사회 병폐의 가장 큰 원인이다.
학급 성적은 담임 교사와 많은 요인들의 결과이다. 그 반의 성적은 타 반 보다 낮았다. 입학 성적 동점자 각반10명의 성적에서 평균 10점이 낮았다. 그 반 10명을 빈 교실로 불러 격려했다. 그 다음 고사에서 그들은 동점이 되었다. 그 해 가을,1학년 그 반에서 영어 수업중 도 영어 장학사가 들어와 수업을 보고는 '섬 아이들이 이렇게 잘 하느냐'하고, 교무회의에서는 영어 수업을 말하면서 나를 도의 보물이라는 등 격찬을 했다. 기분 좋았다는 말이 아니다.
2년후에 그 학교는 개교이래 처음으로 서울의 은행 시험에 7명이 합격했고 현재 은행장이 된 사람도 있다. 대학,전문학교에도 진학했다.
운동회 때의 열기, 그 함성, 창의성이 풍부한 가장 행렬, 나의 반의 '예 수의 골고다의 수난'도
참관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잊혀지지 않는 말 말.
그 곳은 좌천 지역. 자질이 부친 사람들로 문제가 컸다는 지역민의 원성.
그 곳 학생들이 저능력의 사람들로 부터 배우고 손해를 볼 의무가 없지 않은가.영전 좌천이 자질의 적합성과 일과 교육의 성과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고 수익과 힘의 다과에 의해서 평가되는 경향성이 바로 부조리며,학교 붕괴의 제일 원인이다.
' 아부 않으면 승진 못할거요.' 오히려 진솔한 말이다.
' 저 위에서 주민 한 분이 선생님의 (애국)훈화를 듣고 누구냐고 해서 소개했소. 선생님은 애국 훈화를 하지 마세요.'요지는 승진하는 데 역효과라는 친한 선생님의 충고다.
10년 후에 들은 말.'주민들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합디다.'
' 세월이 흐를 수록 생각나는 선생님,' 한 여선생님의 연하장.
생명의 빛(애국 훈화)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아침 해는 여러분을 위해 떴고 시원한 바다 바람은 여러분들의 푸른 마음과 희망찬 삶을 축복하고 있읍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세상에 빛이 있고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빛과 소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실제 무엇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고 있습니까?.
서울 성수 초등학교에 신 영순 선생님이 유리창을 닦다 떨어져 세사을 떠난지 30 여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신 선생님의 희생 정신과 교육애는 우리의 가슴에 살아 남아 팔팔 숨 쉬고 있을 까요,뜬 구름 위로 사라져 버렸을까요?.
교육부는 마루 바닥과 같은 안전한 곳만 학생들이 청소를 맡도록 하고,높은 유리창등 위험한 곳의 청소는 용역 회사에 맡기도록 했다고 합니다. 신 선생님의 죽음이 수 많은 어린이와 교사들의 추락과 죽음을 예방하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연결식장에서 한 도료 교사가 '가을 햇빛으로 신선생님이 닦던 유리창이 밝게 반짝이는 것을 쳐다 보니 신 선생님의착한 뜻을 되돌아 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신 선생님의 뜻이 영원히 반짝이고 우리는 그것을 되돌아보고 있습니까?.40의 한창 나이에 어린딸 셋을 두고 허물어져 가는 사도師道를 지키다 홀홀히 떠났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신 선생님의 거룩한 마음은 얼마 안가, 망각 속으로 지워져 버릴지 모릅니다. 오늘 같은 '고속 사회'일수록 지난 날의 아름다움은 고속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며,물질 우선 사회 일수록 정신적 귀감은 거품이 되기 마련입니다. 신 선생님은 순직 이외에도 일상 생활에서 현대 젊은이가 갖추기 어려운 미덕을 지녔다고 합니다. 지진 학생 지도를 위해 방과 후에도 남아 사생활을 바쳤고,시동생 6명의 학업을 뒷바라지 해온 훌륭한 맏 며느리이며 아내였습니다. 신 선생님은 시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을 희생,40 이 되도록 셋방 살이를 면치 못하면서도 보람으로 알았습니다.
신 선생님의 삶과 죽음이 분명, 나와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면 우리의 사람다운 길은 무앗이겠습니까?. 신 선생님의 자비로운 동상이 어린이들이 많이 모이는 어린이 공원이나 회관 아니면,신 선생님이 봉직했던 성수 초등학교 교정의 양지 바른 곳에 세워졌으면 되겠습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신 선생님의 사랑의 순결을 항상 마음 속에 느끼며 더욱 가꾸고 키워 이 땅을 따스한 빛의 동산으로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1981,10.19)
첫댓글 학생들의 숨은 능력을 찾아내 발휘하게 해주신 능력 정말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