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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년 기념소감-새로쓰는 반성문
무더운 날씨에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방배수요모임 식구들,그리고 다른 모임에서 잔치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늘 옆에서 응원해주시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 제가 설수 있게 도와주신 미국에 있는 토니선생님,신방김선생님,그리고 방화최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독일순회공연을 마치고 오신 마닐라 이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저희 곁을 떠나 고인이 되신 부평 장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어제 필리핀에서 총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이태원배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저는 지난번 백일잔치소감문에서 “너 지금 어디야!” 라는 아들의 외침에 단도박을 결심한 사연을, 1주년 소감문에서는 Beyond Dream - 꿈넘어 꿈이라는 주제로 탈도박하겠다는 결심을, 2주년 소감문에서는 “적극적 기다림” 이라는 가족의 고통으로 제가 서게 되었고 중독관련 상담공부를 하게 된 사연들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오늘 3주년 잔치 소감문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새로쓰는 반성문”입니다.
벽돌이 쌓인다고 집이 되지 않듯이 시간이 쌓인다고 삶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단도박을 오래했다고 탈도박을 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저도 벌써 오십대 중반을 넘어 60살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노인은 시간이 가면 되지만 어른은 시간이 간다고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늘 그렇듯 저의 소감문에는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지은이 정호승 - 제목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을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저는 이 시에서 이야기 하듯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왔습니다.
더이상 갈데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1층 바닥이 있었고 또 그 이후에 지하층도 있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땅굴까지 파서 스스로 들어 갔습니다. 북한군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럼 저의 바닥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바다이야기가 아닙니다...웃음
32년전 1986년부터 성인오락실에서 빠찡고를 하였습니다. 300원배팅하면 최대 200만원의 잭팟이 터지는 성인 오락실이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습관성 도박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급기야 시골에서 마련해준 서울집을 도박으로 날리고서야 멈출수 있었습니다. 빠찡고는 멈추었지만 고스톱,포커등 각종 도박을 계속하여 왔습니다.해외출장중에는 카지노에 다니기도 했었고요...그러던중
2007년 애들을 미국에 유학보내고 홀로 기러기생활을 할때 강원랜드를 가게 되었습니다.처음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재미로 잠깐씩 하다가 사람에 부딫치는 게 싫어서 VIP 룸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VIP Room의 입장료는 3천만원이었는데 적은돈은 아니었지만 편안하게 즐길수 있었고 주로 땄기 때문에 별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경 바카라로 이억삼천만원을 쉽게 따게 되었습니다.바카라를 하면서 잘 하면 평생 잘 살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그날 이후에는 몇천만원을 따도 더 욕심을 부렸고 잃으면 더욱 크게 배팅을 하여 결국 이길수 없는 게임의 늪에 빠져버렸던 것입니다. 점점 판돈도 늘어나고 급기야 꽁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도박중독자의 경로를 그대로 밟게 되었습니다.지인들에게 빌리거나 투자한다고 속여서 빌린돈 30억원뿐만아니라, 금융권 15억원,심지어 아내가 유산으로 받았던 땅도 아내의 인감을 훔쳐서 융자받아 결국 아내까지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도박의 끝은 어디일까요?
2011년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회사에서는 파면을 당해 보증금 4천만원,월세50만원의 방 두칸 집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그리고 당장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두 애들의 학비가 걱정되었습니다.아내는 아이들 학비를 압류가 들어올까봐 딸이름으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저는 일 때문에 해외에 간다고 하고 필리핀으로 갔습니다.갈 때 제 지갑에는 딸 통장번호와 비밀번호,그리고 작은 종이쪽지,그기에는 폰뱅킹 비밀번호가 있었습니다.그래서 필리핀에서 폰뱅킹으로 애들 고등학교 학비로 마련해두었던 3천만원을 모두 탕진하고 뻔뻔하게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이때 아내는 울부짖었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져 절규하였습니다. 당신은 사람도 아니라고...
저의 얘기가 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아내가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을때 저는 끊임없이 도박 연구를 하였습니다. 마땅한 일이 없어 동생마트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동생가게의 금고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중국 출장을 간 틈을 타서 1000만원을 훔치고 가서 모두 잃고 필리핀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전문 도박사가 되려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갔다가 내 뜻대로 안되면 도박을 끊겠노라는 약속아닌 약속을 가족들에게 하고 1주일 정도 머물것을 예상하고 70만원을 들고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도착하여 삼일만에 가지고 간 돈을 모두 잃고 1주일 머물려는 생각으로 갔던 필리핀 생활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카지노앵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카지노 뒷전으로 팁으로 연명하다가 그 마저 돈이 없으면 굶고, 잘때가 마땅치 않아 카지노 의자에서 며칠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차츰 동물처럼 먹고 자고 카지노에서 사는 그런 완전히 자신을 버린 황폐한 인생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휴대폰도 전당포에 잡혀서 아무런 소통수단도 없이 그냥 노숙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2012년 연말 150페소되는 필리핀 노숙자들이 묵는 쉼터에서 나는 문득 혼자인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족이 어떻게 사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돈을 따서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떳떳하게 세상에 다시 나갈수 있을까?” 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제 도박 인생이 끊나지 않았읍니다.
어떨때는 신장을 팔면 얼마나 받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정말로 나중에 돈이 없을때는 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동생과 누나의 손에 한국에 들어온 나는 대리운전을 시작하여 도박자금을 모았습니다. 아내에게는 수입이 얼마 안된다고 속이고 돈이 생기면 불법하우스에 가서 바카라를 하였습니다.그러던 중 고향 친구로부터 3천만원을 조달했습니다. 다시 필리핀으로 출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출국금지가 되어 있어 해외로 갈수 없었습니다. 과거 업무로 무기상을 도와준 것이 문제가 되어 2014년 말 서울지검특수부에서 조사를 받았었는데 그 때의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검찰에서는 제 계좌뿐만 아니라 주위 모두의 계좌를 조사하여 제가 도박으로 100억을 잃었다고 대신 계산해 주었습니다.저는 그동안 제가 얼마를 카지노에 갔다 주었는지 생각하기 싫어서 계산도 안해 봤는데 정부가 대신 계산해 주었습니다.해외로의 진출이 여의치 않자 저는 가족을 속이고 가든파이브에 사무실을 임차하였습니다. PC 방이 아닌곳에서 인터넷으로 제대로 도박을 업무처럼 해 볼려고 시도 하였습니다.처음 한달간은 잘 유지되던 도박이 한번의 욕심으로 모든 것을 이틀만에 잃고 두달만에 사무실을 다시 정리 해야만 했습니다.
갈때가 없어 2015년 동생 마트에 다시 일하게 되었는데 다시 금고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인터넷바카라를 하였습니다.한번에 천만원씩 잃고나면 멍하니, 이러기를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총 세 번에 걸쳐 3천만원의 돈을 탕진하고 또 돈을 잃게 되면 마트 직원들에게 빌려서 충원하고 이러기를 여러번 결국 다시 마트 직원들에게까지 천만원이상의 빚을 다시 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인내하던 동생도 결국 마지막에는 “나가서 죽으면 엄마만 슬퍼할거라고” 절규 하였습니다. “나가서 죽으라고”
필리핀에 있을때 팔순 노모에게 전화해서 굶어 죽는다고 협박하여 송금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엄마에게 억지로 30만원을 송금받아서 도박한 정말로 말도 안되는 짓을 부끄럼 없이 하였던 심각한 도박중독자였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5년전 저는 노숙자였습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필리핀 마닐라에서 무국자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노숙자 생활 그곳도 바닥의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중독자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올해 필리핀 마닐라 카지노를 다시 가 보았습니다. 대학원에서 필리핀 재활센타 방문길에 들려보았습니다. 내가 카지노 앵벌이를 하면서 노숙자 생활을 하였던 곳을 방문해보았습니다. 비록 그곳의 생활이 끔찍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또 다른 인생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런 책임을 아무런 주위의 신경을 그리고 인간답게 살지 않아도 되는 막되먹은 삶...그래도 그곳도 또하나의 사람이 사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도박중독자들은 자신이 게임을 했던 도박장에 익숙해지고 또 그곳에서는 새로운 안정을 찾을수 있어 자꾸만 재발하고 과거로 회귀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저의 오늘 소감문은 참회록이 아닌 반성문입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은 아직도 진행중이고 과거의 잘못된 순간들을 반성하여 다시 고쳐쓰면서 이 세상을 떠날때에는 덜 후회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반성합니다.
우선 첫째 가족들에게 잘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부모님,동생,제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우리 분당이여사에게 저의 지난 생각과 행동을 반성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다시피 이여사는 저를 만나 상상할수 없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나의 사람을 인간으로 만드는데는 아마도 누구의 피눈물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여사의 기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왜 이렇게 미숙하게 살아왔는지 반성합니다.
제가 도박병에 모질게 들어서 가족을 버리고 방황할 때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또 도박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이여사는 저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몹쓸병에 걸린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고 온전히 치유되기를 혼자 눈물의 기도를 하며 지금까지 버텨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저희 가족은 온전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면서
소설가 김영하는 이렇게 그의 소설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말투보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그 눈빛에서 충격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한 인간을 서서히 파멸시키고 싶다면 그런 눈빛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눈빛이며, 앞으로 그가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 눈빛이며 혹시 그런 존재가 되더라도 적어도 자신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눈빛이다. 그것은 사람을 깔보고,무시하고,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필요하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수 있다고 믿을때나 생겨나는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협심자가 재발하게 되면 흔히 볼수 있는 가족의 눈빛일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망치게 하려면 말보다 그 눈빛이 그 사람을 망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진정 저와 같은 중독자를 구원하려면 그를 진정 믿어야 합니다.회복될수 있다고...그래야만 그 진정성이 울림이 되어 말도 안되는 저같은 인간도 구원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반성은 GA 안에서 제가 한 행동과 생각들에 대한 반성입니다.
저만큼 오랬동안 열심히 도박을 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기에 도박경험이 적은 협심자에게는 다양한 도박을 한 것을 자랑인양 하였고 저만큼 돈을 탕진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기에 다른 협심자가 빚을 얘기할때는 제가 더 빚이 많은 것을 무슨 훈장인양 이야기 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 기준에서는 참으로 모자란 사람이고 기준미달인 인생인데 그것이 자랑인양 무슨 훈장인양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나보다는 덜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재발하지 않고 단도박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혼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반성합니다. 저는 2011년 10월 1일 잠실에 있는 Kr. 화요모임에 처음 이여사의 손에 끌려 갔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그 모임에서 내가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협심자들은 도박한 액수도 작고 또 그 행색이 초라한 것이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고 나는 충분히 도박을 이겨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우 몇천만원, 몇억 때문에 힘들어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고 내가 있어야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몇 달 다니다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저는 단도박모임에서 재발을 안한게 아니라 무수하게 재발 하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여기에 계신 협심자들과 가족들이 보기에 저는 가장 멀쩡하고 단도박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친구들 만나면 그들의 경제력이 부럽고, 빚이 아직 30억이나 남아 있어서 빚을 갚기엔 너무 막막하기에 빚갚는 것을 주저하고 내 편한데로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작은 것에 감사하지 않고 더 좋은 집,더 많은 것을 탐닉하고 또 내가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랑하고 있을 정도로 어리석습니다.
중독에서 회복하는 과정은 내려가는 에스카레이트를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가만히 멈추면 다시 제자리로 내려가기 때문에 내려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걸어야 겨우 올라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겨우 올라와서 보니까 이제 다른사람의 출발점에 비로소 도달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데...그래서 도박을 끊어도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재발하곤 합니다.
협심자 여러분
변화가 목적이되면 안됩니다..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단도박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단지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그래야 자신을 변화시켜서 중독이란 굴레에서 해방되어 나도 편하고 가족도 안심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2015년 저는 TCI 라는 성격 및 기질검사를 하였는데 최근에 다시 해보니 성격뿐만 아니라 거의 바뀔수 없다는 기질도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니 기질도 변화시킬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중독에서의 해방은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아주 많은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 인생의 최우선에 올바른 삶의 목적을 가져다 놓을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바올도 자신의 기질과 약점을 극복하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네 보통사람은 시간이 더 필요할테니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는 상처이고 미래는 두려움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들은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다 현재를 망치곤 합니다. 현재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미래입니다.모든 인생의 행복은 Here and Now 입니다.지금부터입니다.
과거없는 성인없고 미래없는 죄인없습니다.
못나고 상처입은 과일이 향이 좋답니다.
우리들 인생도 상처가 많은 영혼이기에 더 향기로울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도 알고 더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주제에 무슨” 별볼일 없는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 맙시다.성공한 사람들은 결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교해야 하는 대상은 딱 하나입니다.“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그래서 오늘 저는 제 소감문을 쓰면서 3년전 제모습을 바라보려고 과거의 소감문을 다 읽어 보았던 것입니다.
가족들에게는 협심자의 한사람으로 요청드립니다.
말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합니다.
어느 장님 걸인이 “나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도와주세요”를 “나는 봄이 와도 봄을 볼수가 없습니다.”라는 말로 바꾸고 나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혹시 협심자가 재발하거나 맘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역시”라는 말보다 “어쩌다보니”라는 단어를 사용합시다.
역시라는 말은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피하게만 되는 것이고 어쩌다보니는 실패안에 숨어있는 성공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말입니다.
“역시 재발했어“라는 말은 원래 그래야 하는 것으로 실패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말인것입니다.”어쩌다보니 재발했어“라는 것은 언젠가 단도박할수 있다는 희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의 소감문을 마칠려고 합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제가 진정 하고 싶었던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수 없던길”이란 시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가지 않을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져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길
감사합니다...
2018. 7.18 분당채
첫댓글 고생 많으셨습니다.
3주년 축하드립니다.
힘든 싸움 정말 잘 싸우시고 계십니다.
평생 단도박으로 영혼육의 전인적 치유로
새로운 삶,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두달 전에 뵙던 두분의 따뜻하고 힘차게 일어서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함께 치유되어가는 평생의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분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코뿔소 선생님의 백일잔치 소감문은 정말 멍때리는 내용이었지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너 지금 어디야?' 그 이후로 단도박을 시작하셨을 만큼.. 그 내용은 읽는 저한테도
충격이었습니다. 찬찬히 써내려가신 위의 글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요. 바닥에 관한 인용된 시도..
바닥이란 우리모임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단어가 아닌가 해요. 바닥 밑에 또 지하층, 그리고 땅굴까지
있을 수가 있군요!^^ 의외로 전문도박사가 되어보려는 협심자가 꽤 있는 것 같네요. 단도박을 목적으로 삼기
보다는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한, 올바른 삶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참 와 닿았습니다.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