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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서원』 중 「수희분」
~~~남이 짓는 공덕을 함께 기뻐하올 때 남과 나는 둘이 아님을 확인하옵니다. 이 세간 누구와도 대립된 자 없고 불화할 사람 없사오니 이 천지 누구와도 화합하고 화목하게 지내며 존중하겠습니다.~~~
금주의 법어--불광법회의 순수불교운동의 사회적 전개 2
금주의 법사--각화사 주지 혜담스님
<법문내용>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법회 법등가족 형제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입춘 추위가 상당히 매섭습니다. 이 추운날씨에 모두 건강하고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이 집안에 함께 하길 축원해 마지 않습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서 오늘의 불광법회를 함께 하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난주 큰스님의 입적 23주기 추모법회에서 주제로 삼았던 말씀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혜안 거사님이 법회보를 읽겠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읽어본 '불광법회 순수불교운동의 사회적 전개' 여기에는 불광운동의 전체 사상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현재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고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는 이 슬로건에는 그야말로 불교 사상의 정수가 녹아 있습니다. 그 정수는 불교가 끊임없이 자기 변혁을 시도했던 그 모든 것이 48년 전에 응축되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큰스님께서 「반야심경 강의」 책을 내신 뒤에 저에게 가끔 말씀하시길 '내가 쓴 반야심경 강의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사상이 있다. 그러니 자주 읽어보고 의심이 있으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질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반야심경은 흔히 있는 것이라 여기고 말씀을 흘려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정독을 못했습니다. 또한 '반야심경 강의'라는 큰스님의 책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놓쳤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서 다시 한 번 정독으로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읽어보니 그야말로 큰스님의 불교관, 불교사상 전체가 녹아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책을 스님께서 쓰실 때 분명이 어떤 저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에서 나온 대부분의 반야심경 강의책을 전부 사서 읽어보니 큰스님께서는 일본책을 모본으로 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반야심경 강의'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불광법회가 생기고 대각사 대웅전에서 목요법회를 할 때 '반야심경 강의'는 책이 아니고 글씨 쓴 것을 등사하여 교구로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데서 읽을 수 없는 독창적인 불교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캐치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 속에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는 경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큰스님 이전에 어떤 사람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창적인 불교사상입니다. 그 독창적인 사상은 48년 전 당시 서울에서 젊은 불자라고 했던 사람들 전부 대각사 대웅전으로 모여 들게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불생불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쓰십니다. "불생불멸이란 시공을 절(絶)한 영원 무한절대를 말합니다. 시(始)가 있으면 종(終)이 있고 생이 있으면 멸이 있습니다. 불생이면 불멸이고 불생은 불멸입니다. 이 불멸이 바라밀 체성의 제1속성입니다. 불멸은 영원하며 불생은 무한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라밀 영원의 선시(宣示)이며 바라밀이 본성인 인간무한의 선언입니다.(반야심경 강의 중에서)
'불구부정'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청정한 자체를 말함이다. 바라밀은 때묻을 수 없고, 물들 수 없고, 더러워질 수 없는 무오염자(無汚染者)이며 초연자이다. 그는 영원한 청정자이므로 다시 깨끗해질 수도 없다. 본래 청정이다. 이것을 무량청정이라 한다. 이것은 바로 영원한 인간무죄의 선언이다. 인간본분, 진면목은 실로 일찌기 죄지을래야 죄지을 수 없는 정정자인 것이다. 규정할 자가 없는 자존자이다. 그는 영원한 자유자재이다.
저는 여기서 '인간무죄 선언'에 대해 말씀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대승불교권의 절에서 불교를 만났기 때문에 어쩌면 이 무죄선언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긴 세월동안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하나님에게 신에게 여호와에게 죄를 지어서 원죄가 있다. 그래서 그 원죄를 참회하고 신에게 보물을 바치고 잘 보이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바치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렇게 성직자들은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서구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은 죄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사상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고 한국사회에서도 6 25때 미군이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퍼지고 많은 사람이 죄의식에 잡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기독교에 없던 새벽기도도 만들고 모두 죄인이라 했습니다. 바로 그때 큰스님께서는 '반야심경 강의'라는 책을 쓰셨으며 불광법회가 시초입니다. 제일 근본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는 무죄선언입니다. 죄지을 래야 죄지을 수 없는 본성을 타고난 것이 사람이므로 죄의식에 떨지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해방자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세월이 지나서 지금 우리는 당연한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48년 전 당시만 하더라도 이 말씀은 정말 한국불교에서 처음 한 말씀이었고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 업보중생, 죄인이라서 죄를 사해받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바치던 그런 때에 큰스님께서는 누구도 죄지은 자가 아니다. 우리는 청정자다. 한량없는 공덕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외치십니다. 이것은 지금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뉴스를 보니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종교, 불교를 믿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래서 지금 현재 20대 30대 사람 중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은 불과 20%밖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종교를 믿지 않는 분위기인데 서구사회의 찬란했던 기독교문화의 큰 성당이나 교회가 텅텅 비었다는 사실을 목격했을 겁니다.
이것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불광법회의 슬로건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한 창조자'라는 것을 앞에 세우고 이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형제 여러분의 자녀나 손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교회와 성당을 나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교회와 성당에 가도 나쁜 짓 하라 않고 좋은 일 하라고 가르치겠지 하며 내버려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그 아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인간은 죄인이라고 교육받으면 그 사람은 평생 그렇게 죄인으로 알고 삽니다. 그것이 아니라고 48년 전에 외치신 분이 바로 광자 덕자 대선사님입니다. 이건 놀랄 일입니다.
지금 현재 불광법회는 굉장히 큰 내홍에 빠져 있습니다. 사찰에 책임지고 있는 소임자 스님들과 불광법회 임원 회장단과 갈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외람된 판단이겠지만 불광사는 스님들 것인데 왜 신도들이 간여하는가, 신도는 그냥 시주만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문도스님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 있을 때 마다 우리 문도스님들에게 '광덕스님이 절 하나 지으려고 불광법회를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형사제들이 저의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법회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힘들어서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불광법회를 만들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형님은 공공연하게 불광법회는 사부대중이 만들었다고 큰스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불광법회 만든 것이 불광법회 회원들이 아니고 사부대중이 만들었다면 제가 무엇때문에 불광사에 왔겠느냐? 제 나름대로 할 공부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것을 뒤로 하고 불광사에 온 것이 사부대중이 만든 그 절에 살림 살러 온 건 아니지 않느냐며 문도스님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이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대한민국에 절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공부를 뒤로 하고 불광법회에 살림살러 온다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올라온 것은 스님께서 불광법회 회원들이 조직해서 절을 만들었고 그 절에 살림도 살고 법회도 운영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올라왔지 일반 사부대중이 만든 그 절에 살림살러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형사제들은 마치 큰스님께서 절 하나 짓기 위해서 불광법회를 만든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건 절대 그런 일이 아닙니다.
조계종에서 큰스님께 쌍계사라는 본사를 하나 드렸습니다. 그러나 쌍계사를 맡으면서도 거기에 살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올리고 당신 사제인 흥교스님을 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고산 큰스님께서 그 절을 맡으셔서 현재는 그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큰스님이 절이 필요했다면 그렇게 했겠죠. 그러나 스님의 삶에서는 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이란 반야바라밀을 펴기 위한 하나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어서 마치 절을 짓기 위해 법회를 만든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초기부터 불광법회에 관여했던 스님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물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형제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전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법당에 법문 들으러 오지 않고 반대하는 그 사람들에게 하는 겁니다. 스님도 그러하고 신도도 그렇습니다. 마치 큰스님께서 절을 짓기 위해 법회를 만든 것처럼 오해하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많은 큰스님이 계셔서 성철큰스님 관응큰스님 혹은 탄허큰스님께서 독창적인 사상을 가지셨고 그렇게 중생을 제도했습니다. 법정큰스님도 다른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불교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광덕큰스님이 가졌던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이 사상은 그 분들에게 찾아볼 수 없고 오직 한국불교사에서 큰스님께서 창안하신 사상입니다. 그 사상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입니다.
대승불교는 왜 일어났는가? 대승불교란 부처님의 근본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운동이었습니다. 부파불교 시대에 스님들이 전부 절에 틀어박혀서 문자공부만 했습니다. 오온, 공, 마음이 어떠니 하면서 이것만 따지고 중생구제에 대해서는 등한했습니다. 그때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운동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은 중생을 위해서이고 스님들이 문자공부하라는 건 아니라는 선각자들이 있었고 그 분들이 대승불교를 일으킨 반야경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사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와서 동양사회의 불교를 지배했고 이 속에 우리는 태어났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스님들이 차츰 나태해갔습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중국과 한국불교는 권력자에 대해서 무조건 충성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유교의 영향도 컸겠지만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저항의식이 없었습니다. 임금이 절을 파괴해도 참는 것이 중국불교였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들을 천민이라고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만들 때 스님들 데려다 노임 없이 일을 시키고 학대를 해도 군소리없이 살았던 것이 조선스님들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할 때 너무 화가 나서 왜 그런 천대를 받고 살면서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못되었다고 하면 죽었겠지만 죽더라도 아니라고 해야되는데 선배 스님들은 그걸 못했을까 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나이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어서 기성세대로 불교를 책임지고 있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젊을 때는 제 나름대로 저항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현재는 맥이 빠져서 뒷방 늙은이가 되고 말을 해도 사형 사제들은 듣지 않는 상태입니다만 언젠가는 큰스님의 사상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사상의 가장 큰 핵심은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입니다. 여기에는 무죄선언이 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 아닙니다. 많은 스님이 법문을 하면서 주로 인과법문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인과법문 자체가 불교의 근본도리인 것처럼 설하는 절이 많습니다. 인과가 아니면 법문이 아닌 것처럼 설하는 곳이 많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인과법문을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인간이란 존재는 자존자, 무한의 능력을 타고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조자, 신이기 때문에 인과에 매어서 쩔쩔 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지금 서구사회에서 종교가 쇠퇴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사회에 선각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신이란 존재는 없는 것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며 신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려고 성직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죠. 불교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가끔 다른 스님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오늘날의 불교가 얼마나 더 오래갈 것 같으냐? 30년 뒤에 과연 이런 불교가 살아남겠느냐? 하면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20년 뒤에 설날과 추석에 합동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시는 신도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땅에 불교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신도들은 절 살림에 간여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 큰스님 추모법회에 지정스님이 나와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당신은 수순중생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줬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이 공양주 보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양주 보살에게 수순하기 위해서 그 많은 재산을 줬다는 말입니다. 지정 사형님이 50년 넘게 살면서 사형사제에게 돈 준일이 있는지, 저는 돈 받은 적도 점심 한 번 대접받은 적도 없습니다. 신도들이 자기를 모함하고 있어서 법으로 하면 해결되겠지만 어떻게 내가 신도들을 고소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안 한다고도 했습니다. 법정에서도 당신은 고소하지 않는다고 하여서 변호사가 지금 고소한 것이 아니냐고 하니까 잘 몰라서 고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괴한 말로 사람을 속이는데 그 속이는 말에 사조직 신도들은 호응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광덕큰스님의 바라밀 사상을 왜곡하고,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불교를 전락시키는 데에 떨어져 있습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불교를 만나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뜻은 갖지 못하고 그저 잘먹고 잘살아야겠다, 좀 더 권세를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데에 매몰되어 있다면 얼마나 비참한 스님입니까?
스님들이 계를 받고 강원에서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말입니다. 피(彼)장부 아(我)장부, 부처님도 장부고 나도 장부로 태어나서 부처님께서는 부처가 되었는데 나는 왜 중생으로 살아야 되느냐 하는 말을 배웁니다. 이것을 잘못 생각하면 나는 부처이므로 모두 나에게 돈도 충성도 바쳐야 돼, 내 말은 절대적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잘못된 말입니다. 아장부 피장부란 부처님은 범부로 태어났지만 부처가 되었듯이 나도 범부로 탣어났지만 부처님처럼 장부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돈을 많이 벌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런 스님에게 속아서 그것이 옳다고 외칩니까? 그것도 불광법회에서 전직 회장이나 임원을 했다는 사람들이 그러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큰스님의 '반야심경 강의'에 나와 있는 말씀대로 이것을 귀담아 듣고 이것을 우리 세대에 확장시키고 우리 후세대까지 살려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불광운동이고 바라밀 운동입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무죄선언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죄인이 아니다, 결코 업보중생이 아니다, 우리는 그 업을 타고 넘어갈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창조자라는 것에 눈을 떠야 됩니다. 그건 실제로 그렇습니다. 이것이 불광법회의 순수불교운동입니다. 순수불교란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것입니다.
이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공'에 눈을 떠야 합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시제법공상'의 공(空)에 눈을 떠야합니다. 무조건 반야바라밀 염송해서는 안 됩니다. 반야바라밀은 바로 공사상입니다. 공 속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존재는 전부 공에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 삶 전체는 공의 현전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공이 나타난 모습입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우리가 반야바라밀 염송할 때는 이 공사상, 수냐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 무한창조력이, 행복이 나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고, 공을 보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공이 우리 앞에 확연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드러낼 때 마하반야바라밀의 큰 위신력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되고 우리 삶이 행복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불광법회 순수불교운동인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우리는 무한창조자다' 하는 여기에 눈을 떠서 이 운동을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사회와 국가적으로 확산시킬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밝아지고 희망있는 곳으로 바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정정진을 삼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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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회 편집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리밀()()()
바라밀님! 법회소식 정리해주신 공덕으로
오늘도 복습합니다.
저는 현장에서 제대로 못 듣고
졸기도 하는데요.
부끄럽습니다.ㅠㅠ
수희찬탄드리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바라밀님, 법회일지 작성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난방 차단으로 춥고, 앞뒤 조명도 켜주지 않는 어두운 보광당에서
점점 더 심해지는 법회 방해 속에서도 불광 법회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은
광덕 스님의 수승한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고 진리로서 한국 불교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불광 형제들의 간절한 투혼이 깃들었으니 지금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간절한 염원은 반듯이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