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근로
출처: 노동과 근로/동무와 노동, 말씨도 자기 검열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隨想錄 개갈 안 나네, 한국문학방송, 2020.07.01 : 152~157.
우리 사회에는 ‘노동’과 ‘근로’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다. 노동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노동쟁의, 부당노동행위, 노동위원회, 노동부 장관이라는 말이 있고, 근로기준법, 근로자, 근로 청소년, 근로계약서, 근로복지공단, 근로감독관 등과 같은 말도 사용하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사회에서 북한에서 상용하는 노동이라는 표현을 의식하다 보니 입법에서 노동과 근로라는 표현을 분리해서 사용되고 있다.
근로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근로 보국대’, ‘조선 근로정신대’ 등에서 비롯되었다. 이대 근로란 ‘국가에 봉사하는 노동’이란 의미다. 그 후 1951년 11월 국회에서는 <전시근로동원법안>을 다루었는데, 여기서도 노동 대신 근로라는 단어를 썼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노동절(5.1)을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좌우 이념 갈등에 편향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기득권층의 경계와 기피 감에서 ‘노동’이 ‘근로’로 대체되는 흐름이 되었다. 군사독재가 끝나고 이른바 ‘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는 노동자라는 표현이 다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1923년 제정된 노동절에서 시작되었으나 1963년 박정희 정권 당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 날짜는 3월 10일로,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변경했다. 이후 1994년 ’근로자의 날‘은 본래 ’노동절‘인 5월 1일로 날자는 변경했지만 ’노동절‘이란 본래의 이름은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 후 2012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은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변경하자는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국가의 통제적 의미가 담긴 근로라는 용어에서 벗어나 노동, 노동자라는 가치 중립적 의미를 점진적으로 대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에 공용되는 노동과 근로는 과연 어떤 의미와 느낌이 들까? 흔히 말해지는 노동과 근로의 개념은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대저(大抵) 노동이 기본 개념이고 근로는 노동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노동자는 넓은 의미이고 근로자는 노동자에 포함되는 좁은 의미다.
노동은 그냥 일하는 것이고, 근로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당사자 개인을 중심으로 본 ‘일하는 사람’이고, 근로자는 당사자가 속한 조직을 중심으로 본 ‘일하는 사람’이다.
노동은 주로 당사자 개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고, 근로는 당사자가 속한 조직의 시각이다.
노동은 어둡고 근로는 밝은 느낌이 든다.
노동은 개인의 삶의 형태라면 근로자는 조직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노동이라는 표현에는 저항적인 느낌이 있지만, 근로라는 말에는 순종적인 느낌이 있다.
노동은 힘들고 불행하고 투쟁적인 이미지가 많고, 근로는 보람 있고 행복하고 협조적인 이미지가 많다.
‘노동자의 날’이라면 개인의 권익을 생각할 것이고, ‘근로자의 날’이라면 당신은 ‘조직의 논리’에 밀리어 개인의 권익은 가려질 수 있다. 따라서 지배계층이나 사용자는 노동보다 근로를, 노동자보다는 근로자를 좋아한다. 그들은 노동보다 근로를, 노동자보다 근로자,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주로 자신의 권익을 내세우기 때문에, 사용자와 지배계층은 조직의 논리를 ‘근로자’에게 주입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노동과 근로의 상하개념이란 것은 ‘고용근로부’가 아니라 ‘고용노동부’라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되돌리는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노동부 장관은 노동절로 복원하는 데 반대했지만, 자신은 근로부 장관이 아니라 노동부 장관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런 논리는 노동이 근로보다 더 기본적이고 넓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사용자 측만 아니라 피용자 측에서도 동감하고 있다. 노동의 좁은 개념에서의 근로라는 단어로 ‘근로조합’이라고 쓰지 않고 당연히 근로보다 넓고 상위개념인 노동을 사용하여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거래에는 당사자가 있고 거래결정권을 누가 더 많이 행사하느냐에 따라 표현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매표소를 보자. 같은 매표소인데 관점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표를 사는 사람은 <표 사는 곳>이고, 표를 파는 사람은 <표 파는 곳>이다. 노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하는 사람 관점에서라면 <노동>이라 말하고, 일을 시키는 사람 관점에서라면 <근로>를 좋아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표현하면 매표소보다는 매매표소이다. 지하철 출구라는 표현에서도 출입구가 제대로 된 표현이다. 매춘이 매매춘으로 바뀌고, 고속도로는 매표소가 ‘요금소’, ‘표 받는 곳’으로 바뀌었듯이 노동과 근로라는 단어도 시공(時空)에 존재하는 생물이다.
일제용어인 국민학교도 초등학교로 고치었는데 근로자는 왜 그냥 두는가? 노동이란 용어가 맞는 것인데, 좌파적 시각이 담겼다고 일제 말기에 근로란 용어를 쓰다가 일본에서도 전후 다시 노동으로 돌아갔다. 현재 한국에서는 2017년 8월, 12개 노동관계법에서 ‘근로’라는 표현을 전부 ‘노동’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했지만 1년 넘게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었다. 최근에는 '노동자'에서 '근로자'로 다시 유턴하느냐라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정치도 생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