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도 |
2001 |
2002 |
2003 |
2004 |
.......... |
2008 |
일반재정 |
37억 |
42억 |
46억 |
52억 |
72억 | |
선교재정 |
28억 |
31억 |
34억 |
40억 |
57억 | |
비율(%) |
75.6% |
73.9% |
73.9% |
76.9% |
79% |
참고: IMF 외환위기로 2~3배나 돈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도
돈을 줄이지 않고 현지에 준하여 평소의 가치의 돈을 보내줌
*90%정도을 선교비로 지출한 것으로 파악됨
예전 선교비가 없는 때이면 목회자들 월급, 건물, 올 스톱
4.안디옥교회의 선교
1)해외선교
안디옥교회는 교회재정의 60%이상을 선교비로 쓰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재정이 나가는 부분은 70% 많게는 80%를 육박하게 된다. 십일조와 선교헌금은 우선 선교비로 지원이 되고, 모자라는 부분은 우선적으로 선교비로 지출된다.
교인들이 하는 일
좀도리 모금운동, 선교바자회, 선교사되기 운동
선교사님 물품지원, 중보기도의 생활화
바자회
① 안디옥교회는 선교지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지역주민들과 연계하기위해 바자회를 매년 봄,가을
두번에 걸쳐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좋은일하는 교회”라고 전북뿐아니라
전국에서 알려저 많은 분들이 좋은 일도 하고 먹을 것도
먹자는 마음으로 많은 분이 참여합니다.
② 선교바자회는 안디옥교인들이 단결력을 보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천막들이 이틀만에 바자회 준비가 되어 하루만에 철거되는 것을 보고 전주시민들이 “도깨비장”이라고 합니다.
2)바울 선교회
바울선교회 는 예수님의 지상명령(막 16:15)에 순종하여 복음이 필요한 선교지에 선교사를 파송하고자 믿음선교를 기초로 태동.
1986년 3월 11일 전주안디옥교회에서 선교회 창립총회를 가진 후 복음주의적 초교파 선교단체 로써 국내 자생의 선교회를 출범하게 되었다.
1986년 6월 2일 사단법인 한국기독교 선교단체협의회에 가입하였고 9월 첫번째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하기 시작하여 믿음선교의 결과로 현재 85개국 에 393명의 선교사 를 선교현장에 파송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9월현재)
선교회정신
절대구원의 확신 절대소명 절대기도 절대감사 절대복종 절대헌신 절대사랑
선교회정신
1 믿음선교
2 바울의 정신
3 미전도지역선교
4. 전략선교
5. 선교사 케어
훈련과정
1)선교사로 정말 헌신했는가에 대한 면접
2) 국내 훈련 6개월 (합숙훈련을 원칙)
- 6개월간 총 60만원 훈련비
(영성&이론 )
장소: 전주안디옥교회
3) 해외훈련 8개월(온 가족 참여원칙)
- 월 450불(30만원), 자녀비 별도
(언어&타문화 적응&타문화 실습)
장소: 필리핀 마닐라 MOC 훈련원
3)농촌선교
농촌 선교회와 자매결연 (264교회 05년 통계)
농산물 직거래 장터 매 수요일 마다 열림
미자립 교회 지원 및 설립
4)의료진료
- 의료진, 미용, 전도팀 구성하여 매주 2부예배 (9시)후 출발
5)특수선교
사회선교의 일환
디아코니아의 교회 사명에 충실
사회정화운동, 장기기증사역, 가정상담, 발맛사지, 이동목욕탕사역.독거어르신 반찬 서비스
명절사랑 베풀기
장애우 사업장 마련
※행복나눔카페
- 장애우를 직원으로 채용하여 자립하게 함
※한방비누산업
- 장애우들이 비누를 만들어서 판매토록 함
※노인복지회관 위탁운영
2007년 전주시에서 노인복지회관을 위탁하여 현재까지 봉사하고 있음
5.목사님 소개
1) 제1대 선교목사 이동휘
1960년도에 한국신학대학을 졸업
1982년도에 아시아 연합 신학대학교를 졸업
1961~1963년 완주군 진입로 교회(구정교회) 시무
1963~1969년 옥구군 이곡교회 시무
1969~1979년 임실 오수교회 시무
1979~1983년 전주 전흥교회 시무
1983~2006.03 전주안디옥교회 시무
1986~현재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목회철학
불편하게 삽시다!
내가 조금 불편하게 살고 선교하면 한 영혼 더 구원할 수 있다는 말씀을 지금까지 삶으로 실천하시고 계신다.
가족
최영순 사모
자녀2남1녀 자녀들 모두가 지금은 선교사로 나가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아들은 방송선교로 둘째 딸은 의료선교와 음악선교로 셋째아들은 필리핀 열방신학대학원에서 현지인들을 선교사로 훈련시켜 파송하는 신학대학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2) 제2대 담임목사 박진구
서울 신학대학 졸
한국 신학대학 졸
Trinity 신학대학원, singapore(목회학 석사)
Fuller 신학대학원, 철학박사 취득
경력
1977년 서울 한신교회 (고 이중표 목사) 전도사
1981년 서울 민족교회 개척하여 담임목사 (현, 대치교회)
1985년 싱가폴 선교사로 파송
1986년 싱가폴 Emmanuel 현지인교회 개척하여 담임목사. (현, True Light Church)
1986년 싱가폴 Agape 마약 갱생원 원장
1997년 바울선교회 미주개발원 원장
2002년 Fuller 선교대학원 객원교수(현)
2002년 바울선교회 필리핀 선교사 훈련원 원장
2004년 바울선교회 미국 선교사 훈련원 원장
2006년 전주안디옥교회 담임목사(현)
※목회철학
선교하는 행복한 성도
가족
박사라 사모
장남 박대신 미국 New Song Church 대학부 목회자,
차남 박대은 Royale Bank of Canada, 샌프란시스코지점 근무
3)패러다임의 변화
①두 날개 제자훈련
a.전도
성경적인 소그룹 전도전략인 열린모임은 3~4명이 팀을 이루어 한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그 지역을 장악해 가는 성경적인 소그룹 침투전도열린모임은 12주로 진행 ( 팀전도, 관계전도)
b.정착
새가족섬김이 사역은 3주간 수행 4주째는 새가족반에 담임목사와 만남
새가족이 등록하면 섬김이 투입(교회 잘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
* 양육반이나 전도축제 전에 “새가족 섬김이학교”를 통해 교육수행 ? ? ? ?
c.양육반
총12주 과정1일 전인적 치유수양회를 통해 영육의 치유와 회복
교육은 신앙의 기초, 성령세례(충만)을 통해 정체성 확립
d.제자반
가치관의 변화를 목적으로 열린모임리더로 새우는 목적 1학기 제자의 삶을 통해 제자로의 부르심과 가치에 눈을 뜨고 사람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로 세워지게 됨
e.군사반
군사로서 하나님앞에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의 주신 권세의 능력에 대해
배우고, 열린모임 인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함
f.재생산반
제자대학 3학기 재생산훈련은 재생산 사역자로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총 1년 6개월에 걸쳐 한 시스템이 끝나며 안디옥교회 1기 졸업생 배출
(1500 시작 ~> 800여명 졸업)
이후 열린모임 인도자 및 교회 중책으로 쓰임받을 예정
- 장로 및 임직자 , 집사임명에 필수코스로 자리매김 하고 있음)
②열린구역모임
제자훈련과 연계하여 열린구역모임을 신설
초기에는 구역모임과 열린모임을 따로 수행하였으나 이번해부터 구역과 열린모임을 합쳐서 비효율성을 줄이고, “cell chuch” 로의 변화를 꾀함
초기: 부산풍성한교회 열린모임 교제로 진행
현재 :자체 제작된 열린구 역 나눔지를 활용
(간편, 간단하면서도 편하게 모임진행하게 함)
4W방식 사용
- Welcome, worship, word, work
불편하게 삽시다 -> 두 날개로 날아 오르는 선교하는 행복한 성도
지도자의 영성과 삶을 닮아가는 교육 -> 훈련을 통한 교육
오로지 선교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
-? 선교도 하면서 다른 것들도 누리자!
교회의 비전
3만 3천 (3만명의 셀리더와 3천명의 선교사 파송)
4)안디옥 교회의 성장요인
①안디옥교회에 대한 사회의 인식
교회를 욕하는 사람도 그래도 안디옥교회는 교회 같은 교회라고 칭찬한다. (전주에서 그런 칭찬 듣는 교회는 드물다.)
볼 것도 없고 시스템도 없는데 전국의 많은 교회에서 안디옥교회를 탐방한다. 그것은 안디옥교회의 실천이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
②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없이도 교회가 성장한다라는 말이 통용된지 오래이다. 하지만 안디옥교회는 감자탕교회와 더불어 도저히 성장할 수 없는 곳에서 성장한 몇 안되는 교회로 손꼽힌다. 은혜로 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선교사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인수도 증가한다.)
5)안디옥 교회의 성장 한계 인식
①성도 관리의 문제
- 각 부서와 선교회 별로 독립성이 강하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성도들이 와도 그들이 돌보기가 어렵다.
② 성도들의 교제와 나눔 문제
- 성도들간에 만남과 교제가 없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공동체에 적응하기 어렵다.
③ 교육의 문제
성도의 수는 제적 만2천명, 성도수 6~7천인데, 교육부서 투자의
문제로 현격하게 수가 적다. -> 교육선교 제창(박진구 목사)
④ 선교사역의 한계
협력 선교사 까지 합쳐서 500명이 넘어가는 선교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⑤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감격이 넘치는 가?
- 성도들의 필요도 돌아보자 . 은혜를 체험하자!
⑥교회공간의 엄청난 부족
교회공간이 부족함으로 제대로 된 교육선교나, 프로그램 들을 제대로 할 수 가 없다.
6)대안모색
안디옥 교회의 시스템 도입 및 건축준비
부산 풍성한 교회의 제자훈련
부산 풍성한 교회의 열린 모임 전도 프로그램
안산 동산교회의 Cell 프로그램 도입
선교비를 그대로 지출하며 어떻게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 믿음선교, 온교인이 기도하고 있다.
불편하게 삽시다<깡통교회 이야기>
이동휘 지음
1. 안디옥교회와 나의 목회
1)무자격 목회자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역이 목회라면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는 아예 저능아다. 성격이 소극적이고 소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무서웠다. 사람 사귈 줄 몰랐고 말에 설득력이 없었으며 말끝이 흐렸다. 친구를 넓게 사귀지 못해서 중고등학교를 통해 사귄 친구는 한두 명뿐이었다. 리더의 자격은 처음부터 실격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큰 인물은 못된다고 평점을 내렸다. 그리고 큰 인물은 역시 못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 나라만은 나 같은 사람도 용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사역에 머물러 있다.
1961년부터 시작한 목회는 농촌 목회였다. 당시 80퍼센트의 농민이 불쌍하게만 보여 신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농촌 목회에 들어갔다. 나의 고향인 구정리 교회에서 전도사로 첫 출발을 했다.
장로인 아버지, 집사인 어머니 그리고 나를 길러준 친척, 선생님들이 교인이 되어 나의 설교를 들었다. 아직 결혼을 안 한 상태였고 노부모님만 계시는데다 마침 목회자가 비어 있다는 형편이 이곳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게다가 농촌 운동을 하려면 고향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2년 반 동안 고향 교회를 섬겼다. 농촌에서 자랐으나 농사일을 안 했기에 나의 이상대로 될 리는 없었다. 목회 초년생이 설교를 비롯해 모든 것이 습작인 상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 잘난 맛에 허둥대었던 시절 같았다. 이 기간의 목회는 ‘우리 어머니의 목회’라고 보아야 한다.
익지 않은 막내아들이 설교할 때마다 시종 기도로 밀어대셨고 새벽 시간에 깨워 주셨으며 용기도 주셨다.
일년 뒤 결혼하고 고향 교회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여졌으며 교인들도 별문제가 없었으나 내게는 문제가 있었다
. 고향 교회에 오래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의를 표명했다. 결혼한 지 일년 반쯤 되었을 때 나는 아내와 첫 아이를 두고 산으로 갔다. 3개월 동안 금식하며 기도에 전력을 다했다.
사역지는 누구든지 처음으로 청빙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정해주신 교회로 믿기로 하고 산속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때를 통하여 배운 바가 많다. 신학 교육을 통해 오염된 인본주의 사상을 말끔히 닦을 수 있었고 우리 어머니의 신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이시다. 그럼에도 목사인 나를 가르치시기에는 실력이 궁핍하지 않았다.
세 남매를 모두 신학교에 보내셨고 지금은 하늘 나라에 가셔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를 격려하신다. 산속 생활은 별것 없었지만 인조 신학에 묻혀 있던 나에게는 어머니의 순수 신학을 발견하는 시기였다.
기도원에 있으니 과연 청빙하는 교회가 나와서 곧 집으로 왔다. 상당한 실력이 있는 모 교회에서 청빙하는데 와서 설교하라고 한다. 낙방이었다. 나는 그때 분명히 자격이 없어서 떨어졌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데는 충분한 처사였다. 이 유행만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어서 청빙받은 교회는 내가 5년 8개월 동안 봉사한 옥구군 이곡교회였다.
나는 이곳에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고 나왔다.
만 10년 동안 시무했던 오수는 주인이 산불에 타 죽게 된 것을 개가 몸에 물을 묻혀 산불을 끄고 개는 불에 타 죽었다는 전설을 낳은 곳이다. 이곳 오수교회에서 청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35-45세) 바쳤다는 것 외에도 성스런 삶을 사시는 이기필 장로님을 만난 것과 10여리 떨어진 구역에 세 개의 교회를 설립한 것 등 귀중한 경험을 안겨 준 곳이다.
농촌 목회 19년 만에 전주로 청빙받아 전주 전흥교회에 오니 마치 죄 지은 것같이 마음 한구석에 괴로움이 남아 있었다. 빚을 갚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만 된다고 하는 환경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목회는 열심히 하는 편이어서 교회는 부흥되었으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다. 3년7개월 만에 하나님은 나를 쫓으셔서 오늘의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다.
섭섭한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았다. 내 일생의 마지막 교회가 될 안디옥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릴 뿐이다. 안디옥교회 운영은 획기적인 것으로 재정 구조, 선교 구조, 의식 구조 모두 별나다. 그러나 무리 없이 은혜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교회 구조 갱신이 결코 어렵지 않음을 입증한 것이라 본다.
개혁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선교의 탑을 높이 쌓을 수 있었으며 교회 부흥도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았다.
주님께 기쁨을 드린 것 같아서 보람을 찾기도 한다. 주님이 써 주시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결핍된 자격자도 쓰시는 주님은 참 좋으신 분이다.
2)선교 낙수(落穗)
늘어가는 교인을 수용해야만 하였기에 땅을 매입하기로 했다. 하루 아침에 8억 가까이의 빚이 생기게 되었다. 한 달에 2천여 만원을 갚아야 한다. 당회나 제직회에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이 정도 제안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
막중한 빚을 졌습니다. 그러니 선교비 지출은 빚 갚을 때까지 당분간 중단한다든가, 증액만은 하지 맙시다(우리 교회는 일년 예산이 없기 때문에 선교 현장에서 요구가 올 때마다 선교비를 지출한다.
그래서 1월보다는 3월, 5월에 계속 증액 지출된다). 그러나 그런 분은 한 분도 없었다. 4년이 지나고 나서 빚은 모두 해결되었고, 도한 선교 사역은 빚에 관계없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더욱 감사하다.
교회 헌금을 절약하기 위한 작전은 다각도로 펼쳐진다. 깡통 건물인 우리 교회는 겨울만 되면 너무 춥다. 온풍기를 계속 사용하면 기름값이 들기에 그것이 아까워서 생각해 낸 것이 장작 난로다. 연기날 때마다 목사의 목은 유쾌하지 않지만 필자는 그것을 ‘선교향기’라 부르고 싶다. 어떤 분은 ‘안디옥 냄새’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 교회 위치는 교통이 편치 못했다. 그래서 교회 버스를 샀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가끔씩 들어왔다. 그러면 목사는 강단에서 달래는 말을 한다.
“버스 한 대 운영하는데 드는 돈은 농촌의 열 교회를 지원할 수 있는 돈입니다. 불편을 즐깁시다.” 선교를 많이 하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불편이었다.
손님이 잦은 우리 교회에는 접대비 등 일체의 지출 예산이 없는 관계로 하나님께서 그 형편을 아시고 민박(교인들의 집)이라는 또 하나의 대안을 주셨다.
농촌선교위원회가 주관하는 생필품 판매소는 개척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고의 짐을 가장 많이 져왔으나 언제나 맡은 일을 즐겁게 감당해 왔다. 초기에는 농촌 교회 교역자들이 세미나차 모였을 때 식사비 제공과 도서 구입을 책임지면서 농촌 교회를 돕는 것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사역이 확대되면서 해마다 교회를 하나씩 개척하는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가 되지 않고 교회가 없는 곳이 ‘섬’이라는 통계가 나왔기에 섬 지방에 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
교인 수가 천명이 될 때까지 나 혼자 교회를 돌보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번 잘 해보자”고 교인들을 격려했다.
교회 재정을 절약하여 선교비를 한 푼이라도 더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7년이 지나면서 장년 교인이 천 명 될 때까지는 부목이나 여 전도사 한 명 없이 혼자 목회를 했다. 교인들에게 좋은 혜택을 주지 못한 아쉬움이 많은 반면, 교인들의 동원화가 평신도 활성화에 관한 교육 한 번 없이 잘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수확이라 볼 수 있다.
꽃꽂이에 탁월한 성도가 있다. 그 성도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교회에 꽃꽂이가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그 돈으로 필리핀에 한 교회를 개척하면 어떻겠느냐”고 의논했다. 그 성도는 기꺼이 승낙하고 매월 100불씩 선교비로 헌금하여 필리핀에 교회를 개척했다. 한국 강단에 꽃꽂이 값이 연간 몇 억 든다고 한다.
2만원이면 아프리카에서 80명이 먹을 수 있는 밥이 나온다. 이를 생각하여 꽃꽂이 대신 화분으로 강단을 장식하고 있다.
3)선교 바자회와 찐빵
1987년, 처음으로 선교 바자회를 가질 때였다. 해외선교위원회를 열어 바자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외국에서도 많이 하는 선한 사업이니 우리 교회에서도 한 번 열어 보자고 설명을 했다. 선교 사역이 요청될 때마다 선교비를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목돈을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 입지 않는 헌 옷, 유행이 지난 옷,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을 내다 팔자고 했다. 하여튼 6월9일부터 3일 동안 교회 마당에서 개장 예배를 드리고 문을 열었다.
개장 예배를 마침과 동시에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시발로 해서 해마다 성공적인 바자회가 열려 이젠 전주의 명물이 되었다. 그로 인해 목돈을 만들어 선교 사역에 한몫 해내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1987년과 그 이듬해에는 봄에 한 번씩 열었는데, 89년부터는 두 번씩 하자는 제안이 자체적으로 논의되어 결정됐다. 처음에는 헌 옷, 일용품 판매 등 단조로웠으나 해가 갈수록 음식 종류가 많아졌다.
저녁이면 온 가정의 식구들이 이곳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한다. 나는 이 축제를 선교의 한 부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성도의 교제까지 누리는 ‘하늘 나라 장날’이라고 부르고 싶다.
선교사 한 분이 찐빵이 어찌나 맛이 있는지 계속 20여 개를 먹었다 한다. 입에 흡인력이 있어 계속 끌어당기는 맛은 신비할 정도다. 양심적으로 만든 것이 비결이라 할 것이다.
바자회 이익금으로 선교사역을 돕는 일에 전적으로 책임진 것도 있고 일부 책임진 것도 있다. 3일 동안의 노력으로 수천만원을 모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선교 목적을 위해 바자회라는 즐거운 방법으로 주의 복음을 실어 나르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4)선교사가 가정부를 둘씩이나
선교지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성도들은 흥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두가 은혜받고 눈물 흘리며 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시험받고 오는 시무룩한 ‘심각형’도 상당수다. 땅바닥에서 원주민과 함께 뒹굴면서 고생하는 선교사 모습을 상상하면서 찾아갔는데,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현장을 보고 가슴이 내려앉은 것이다.
사는 집이 시원스럽게 탁 트여 아주 클 뿐 아니라 선교사 집 안에 없는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어느 초임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선배 선교사들이 한결같이 헬퍼를 두고 사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결심했다. 그런데 몇 년 뒤에는 그 선교사도 헬퍼를 두고 사는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일률적으로 선교사 하면 헬퍼를 의무적으로 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후진국에서는 헬퍼를 둔다. 물론 반성할 여지도 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해 적당한 사역도 없는 선교사 부인들이 헬퍼를 두어 집안 일을 맡기고 떼지어 다니는 사례가 불행스럽게 일어나는 경우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모 교회(Mother Church)들은 어떤 경우에는 헬퍼를 두 명이나 둔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경우라도 감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선교사 가정에 헬퍼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 만일에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정 없는 선교사가 된다. 일인당 가정부 월급이 한화로 1-2만원 정도이니 선교사는 별로 큰 부담을 받지 않으면서 좋은 일 하는 경우가 된다.
둘째, 선교사 부부가 선교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게 한다. 아직도 선교사 가정은 도둑이나 강도의 표적이 된다.
부부가 같이 사역에 나갈 경우가 많은데, 그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선교사 부인이 집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셋째, 열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넷째, 가정부부터 전도해서 크리스천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
선교지에 다녀온 방문객들의 도 하나의 원망스런 투정은 한국 선교사들끼리의 분쟁과 불협화음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히 선교사들이 반성할 것이요, 개선해야 할 첫째 표적이라고 생각한다. 급한 마음에 선교사를 훈련없이 보내면 안된다. 선교사 훈련을 통해 영적 군대 양성에 힘을 모으지 않고 보낸 실수를 이 기회에 자성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선교는 선교사가 한다. 물질을 지원하는 교회나 정책을 수립하는 선교회까지 ‘선교 지원’으로 불렀으면 한다. 선교 전략은 야전 사령관(선교사)에게 맡겨야 한다. 한국 안경을 쓰고서 현지에 있는 선교를 주도하는 것은 위험스런 일임을 알아야 한다.
5)선교와 목사와 교회
교회 존재의 목적을 선교로 보는 비전을 가진 교회는 선교의 큰 뜻을 이룰 것이고, 선교를 교회의 여러 사역 중의 하나로 보는 목회자는 그만큼 약하게 할 것이다. 1983년 3월 27일 개척된 본 교회는 설립 목적을 선교에 두었다. 따라서 모든 조직을 선교에 맞추어 운영해 나간다. 주보 표면에 일곱 개항의 실천 강령을 매주일 싣고 있다.
-실천강령
①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가 된다. ②본 교우는 모두 예수의 제자가 되고 선교원(선교사)이 된다.
③주는 교회가 되어 해외선교와 농촌선교 및 특수선교에 주력한다.
④교회 재정의 60퍼센트 이상을 선교사역에 사용한다(십일조, 선교헌금 등).
⑤교회 내 모든 기관은 선교체제로 조직 운영하며 자립을 원칙으로 한다.
⑥모든 봉사직은 자발적이며 희생, 봉사를 원칙으로 한다.
⑦교회의 모든 사업과 집회에는 책임감을 가지고 참예하며 협력한다.
선교한국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젊은 사역자들은 선교사로 진출하라.
둘재, 적은 돈부터라도 도우라. 셋째, 선교비를 바치라. 넷째, 각 기관으로 하여금 선교하도록 하라. 다섯째, 팀 선교를 하라(한 선교사를 한 교회에서 맡는 형식보다 한 선교사를 여러 교회가 맡아서 지원하는 방법을 한국 교회가 많이 채택하고 있다). 여섯째, 당회만 승인하면 과감히 선교하는 교회로 전환하라. 일곱째, 기존 교회 예산을 수정하라. 여덟째, 스물네 시간을 주께 바치라.
2.한국 교회 부흥, 절대로 중단될 수 없다
1)농어촌 교회 지원은 한강에 돌 던지기인가
농어촌 교회를 지원하던 도시 교회는 실망을 곧잘 하는 편이다. 아무리 도와주어도 표시가 없고 발전하는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교단 본부에서도 발전할 여지가 있는 도시 지역에 교회를 하나라도 더 세우려고 경쟁한다. 농어촌은 부흥했던 교회도 소멸되는 실정이기에 농촌 교회 개척은 ‘우둔한 자’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농촌 교역자가 게으르다는 것도 한 몫 낀다. 게다가 농어촌 목회자의 목회관도 지적된다. 사역하다가 좋은 환경을 지닌 교회가 나타나면 훌쩍 떠나려는 생각을 가진 ‘정거장 목회’를 한다는 것이다.
무식한 말 한마디 하겠다. 용서하기 바란다. 도시 교회는 하나쯤 없어져도 교인들이 그 이웃 교회로 가서 얼마든지 신앙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농촌 교회가 하나 없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십리에 하나 이십리에 하나 있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미약한 벽촌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가 없으면 그 십리 안팎의 불빛은 꺼진다. 복음을 감당한 교회가 없어졌는데 누가 예수를 전할까. 뿐만 아니라 이농한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남은 숫자도 상당수라는 사실이다. 노인이라 할지라도 한 생명은 귀하며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짧다는 데서 복음의 긴박성이 더 필요하다. 그 수가 불과 몇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나라 아니 온 세계보다도 더 값진 생명을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안디옥 교회에서 펼친 농촌과의 협력 사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농어촌교회성장연구회는 농어촌 교회를 3년 안에 자립 교회로 육성시키자는 목적으로 안디옥교회와 해교회 목회자, 그리고 지원받는 교회, 이 삼자가 연합하여 전주 안디옥교회 안에 조직된 부서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해교회는 세례 교인 삼분의 이 이상이 십일조를 바치겠다는 서약을 해야 하고 해교역자도 훈련 기간을 3년으로 정하였다. 2개월에 한 번씩 세미나로 모여 전국의 농촌 교회와 농촌 운동 선각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다.
100여 명 교인도 채 못되는 상황에서 열두 개 교회와 첫 협력 관계를 맺고 농촌 사역을 시작했다.
연구비(3년 동안 자립하는 교회로 육성한다는 목표로 연구한다는 뜻)는 교회에서 지불하지만, 두 달 만에 한 번씩 모이는 세미나에 점심 식사 및 도서 제공 등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는 또 자금이 필요했다. 이 자금 마련을 위해 착안한 것이 13년 동안 농어촌선교위원회가 줄기차게 벌여온 생필품 판매 사업이다. 생활용품, 식품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떼어다가 교인들로 하여금 구입하게 하여 그 이윤으로 농촌 교회를 돕자는 것이었다.
의사(양의,한의), 간호사, 미용사, 전도팀으로 구성된 의료선교회의 진료팀이 농촌 교회에 활력을 제공한다. 농한기에는 한 달에 두 번, 농번기에는 한 번씩 주일 오후에 초청하는 교회에 가서 진료 사역을 펼친다. 진료한 뒤 농촌 교회들이 활기를 띠면서 부흥하고 있는 추세라는 보고도 용기를 더해 주고 있다.
우리 교회는 85개의 선교 기관이 있다. 남자 기관 하나, 여자 기관 하나 두 기관씩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농어촌 교회와 연결시켜 준다. 교회에서는 물질 지원과 세미나 개최, 두 달만에 제출해야 하는 목회활동 보고서 등의 훈련을 담당한다. 기관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해마다 대상을 바꾸어서 결연시킨다. 일년에 한번 이상은 그 농촌 교회를 방문하고 격려하고 돌아온다. 선물과 헌금을 준비하고 그 곳 사정을 마음놓고 편히 듣는다.
2)한국 교회 부흥, 절대로 중단될 수 없다
한국 교회가 90년대에 이르러 그 성장이 둔화 내지 정지 상태라는 비보를 받고 있다.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민총생산(GNP) 만불이 넘으면 교회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경험적 이야기는 경제적 풍토가 교회 성장을 막는 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70-80년대에 한국 교회가 폭발적인 부흥과 발전을 할 것이라고 학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예견한 교회사가나 목회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교회 성장이 멈췄다는 현실과 종교 사회학적인 이론이 정당하더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복음주의적인 교회는 부흥한다. 미국의 경우를 볼 때 우리보다 세속화된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역시 순수 복음을 가진 교단은 줄기차게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으로 돌아가야 하며 초대 교회 정신을 발굴해야 한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와 서머나교회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갖춰야 한다.
3)지금 특수선교회에서는
“개인 구원이냐” “사회 구원이냐” 상호 공방을 혹독하게 했던 신학 논쟁이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싸움으로 피곤해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자. 구원받았으니 사회를 개선하자면 누가 손등을 보일까? 우리 특수선교회는 소외된 이웃을 비롯한 대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사역으로 협력하고 있다. 윤락 여성을 위한 교회 설벽일까깨끗한 도시 만들기일까폐품 수집일까병원 전도일까소각식일까장협력기증일까시신력기증일까순결 서약식등의 사역을 하고 있다. 또한 토요일에 실시되는 주부대학일까월요일에 소외된 경로 대학을 위시해서 노 수소녀 가장 수십력명일까목회자 소자 세대주일까장애인 기관과까장애인 교회들일까기독교 기관들, 극빈자와 장학생 사업, 국가 특수 기관들 등 다양한 일들에 힘을 쏟는다.
4)교회가 이상해졌다?
오늘의 교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정상적인 교회는 선한 일에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단으로 돌린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초대교회는 사람들에게서 칭찬받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두려워했다. 함부로 대하지 못할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사회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 기독교 비리가 자꾸만 사회에 폭로된다. 회복할 수 없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생명의 종교인데 참으로 처절하게 되었다.
간디가 남긴 말이다. “나는 예수는 좋아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싫다.” 결국 그는 기독교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고 말았다. 지극히 불행스럽고 원통한 일이다. 죄를 무서워해야 한다. 그리고 죄에서 떠나야만 한다. 경고를 무시할 때 그는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
“교회가 개혁돼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 교회는 한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선은 최선의 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의 성령과 지금의 성령이 같다면 오늘날도 사도행전을 연출시켜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재정 정책도 운영 방침도 성령으로 인도돼야 한다. 오늘의 조직을 무너지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정신이다. 헌금을 크게 잘못 쓰고 있다. 목적을 선교에 두지 않고 있다. 사랑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
“교회는 군함이 되어야지 유람선이 되면 안돼.“ 오르티즈 목사의 말이다. 교회는 군함이 되어야지 유람선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계를 했다. 교회는 마귀가 무서워 떠는 군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원 모습을 기어코 찾아야 한다. 기독교 성직자가 이 나라에서 제일 존경받는 그날이 와야 한다. 기독교 복음으로 온 세계가 구원받는 환상을 가슴 뿌듯하게 가져야 한다. 천국 시민 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5)육군 대위에게서 배운 지도력
내가 군대에서 제대할 시절에는 그 뒤에도 예배사단에서 가끔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군 생활을 끝마친 사회인이 규율을 지킬 리가 없다. 단상에서 외치는 장교의 구호에 도무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교육도 웃음거리로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한 지휘관은 달랐다. 단상에서 ‘앞으로 나란히’를 외치고서는 역시 병사들이 정렬을 가다듬지 않자 다른 장교처럼 푸념과 욕설을 퍼붓는 대신 바로 하단했다. 병사들은 자기 옆을 스쳐 지나가는 지휘관 앞에 멈칫하며 정렬을 가다듬었다. 단 몇 분만에 열을 정돈한 후 다시 단에 올라가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시키는 것이었다.
그당시 나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 시절이었는데, 이 장교의 행동이 두고두고 나를 사로잡았고 나를 자극하는 힘이 되었다. 청중을 탓하지 않고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행동,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야마는 성공적인 아이디어에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인간 속으로 뛰어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흉내낸 것 같기도 했다. 내 위치에서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 현장 속에서 지휘하는 살아 있는 지휘였다.
그 후부터는 사람들이 따라 주지 않고 무관심할 때 교인들을 탓하지 않고 내 지도력을 문제 삼기로 했다. 마음을 고치든가 방법을 고치든가 나의 변화를 시도하는 일에 민감해졌다. 여전히 그 하급 장교의 지혜를 간직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의 지혜를 계속 추구하려고 한다.
베드로를 통한 교회 성장은 끊임없는 기도와 전도로 가능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힘을 기른 사람에게서 사람을 감화시키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정복하는 능력이 솟아남을 본다. 모세는 용감 무쌍한 지도자가 아니라 온유하고 유순함을 가진 지도자였다. 이런 온유한 자를 누가 따르지 않으랴. 사도 바울에 대한 대명사 중 으뜸은 역시 선교사일 것이다. 선교하는 기쁨과 봉사하는 기쁨을 통해 교회는 활기를 띨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고, 그리고 죽으셨다. 그의 죽으심은 승리의 부활을 낳았고 “내가 들리면(십자가 죽음) 모든 사람은 내게로 이끌리겠노라” 말씀하신 대로 세계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강조하는 대목이다. 교역자까지도 이 부분에 충실하려고 했다.
3.개미들이 쌓는 탑
1)선교사 바울의 선교 전략
현대 선교의 아버지를 윌리엄 케리라 한다면 성서적 선교의 대표자는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현대적 선교 전략을 사용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는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으로, 우리가 배우고 연구해야 할 충분한 선교 전략을 남겼다고 본다. “바울은 학자의 두뇌와 전도자의 심정, 병사의 훈련, 사랑하는 자의 헌신, 보는 자의 환상, 개혁자의 열정과 예언자의 정열을 소유한 사람이다”라고 허버트 케인은 묘사하였다. 사도 바울의 선교가 이 시대에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선교의 동기는 성령이었다. 성령의 동행을 경험치 않은 선교는 피곤하여 쓰러질 것이다. 또한 분명한 소명을 깨닫는 바울이기에 사명에 대해 철저하였다. 생명을 다할 때까지 바울은 이 보조를 늦추지 않고 지금도 쫓아가노라고 하였다. 바울, 그는 복음 선교자요, 예수 설교자요, 구원시키는 전도자였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을 통한 구원만이 그의 관심사요 메시지 내용이다. 변화를 주는 것은 복음 자체의 능력 때문이요, 그 다음은 전도자의 인격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가 구원의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복음의 내용을 바꿀 수 없다(갈1:8)고 강경하게 복음의 순수성을 고집했다. 그러면서 복음의 접근을 위해서는 융통성 있는 전략을 세워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헬라인에게는 헬라인같이 되면서 복음을 누구에게나 갈등 없이 전해 보려고 하였다(고전9:19-22). 바울에게 있어서 선교 대상자는 유대인과 이방인 두 부류였다. 바울은 모 교회(수리아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선교를 하였다. 또한 일행을 같이한 협력선교를 지향하였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미전도 지역, 미전도 종족을 향한 개척 선교에 관심을 두었다.
2)생명 음악을 춤추는 아프리카의 매력
아프리카는 문명국인 구라파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이다. 손쉽게 식민지로 점령당하는 불리한 입장에 있었고 따라서 모두 다 서구의 지배를 받았다. 모든 자원을 빼앗겼고 사람까지 노예로 팔렸다. 서구 세계는 영원한 식민 통치를 하기 위하여 문맹국을 만들었다. 게다가 지도자의 부패, 도덕성의 황폐, 종족 분쟁을 통하여 아프리카에는 미래가 없고 아득한 과거와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데도 소망이 있는 대륙이다. 인재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 한국 교회를 선교로 준비시켰다고 믿는다.
첫째, 인물을 길러야 한다. 둘째, 모슬렘을 막아야 한다. 셋째, 자립 교회로 육성해야 한다. 넷째, 부족 선교에 투자해야 한다. 다섯째, 사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의료,교육,기술등을 통해서).
3)브라질을 주시하라
브라질은 우리가 잠자고 있었던 50년 전에 벌써 고층 아파트, 고층 현대식 건물을 지은 선진국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경제의 혼란으로 세계 최대 채무국이 되었고 후진국으로 전락할 위험에까지 처해 있다. 그리고 문맹률이 40퍼센트나 된다. 또한 브라질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기를 맞고 있다. 또한 각종 사탄 종교가 난립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브라질은 거의 미국만한 땅덩어리에 지상 자원, 지하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땅 넓이로나 인구로나(1억 5천) 단연 남미의 대국인 브라질은 11개국과 접경하면서도 30만의 군대로 유지될 수 있는 저력있는 나라이다.
브라질 교회(개신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뛰어난 바탕을 가지고 있으며 선교 대국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 특징을 보면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교회가 급성장한다는 점이다. 둘째, 성경공부에 든든한 기초를 두고 있다. 셋째, 교회가 교회를 개척한다. 넷째, 선교사에 의존하지 않는 교회이다. 다섯째, 방송설교가 활발하다. 여섯째, 개신교 신앙이 순수하다(개신교인이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행실도 착하다고 인정받고 있음). 일곱째, 선교 전망이 보인다(다민족국가). 여덟째, 신학생의 자질이다(자비를 내고 신학교육을 받는 열정).
브라질은 교회가 개척에 힘쓰고 있어서 많은 교회가 탄생하고 있으나 지도자(목회자)는 부족한 상태다. 재정적 지원과 신학교 건립이 필요하다. 또한 브라질은 출판 사업의 필요가 크다.
4)동구권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40여년간 공산주의 쇠사슬에 묶인 동구라파 교회들이 일제히 자유를 되찾았다. 교회는 활기를 띄고 경제와 정치는 서양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친해지고 있다. 물자는 부족하고 재건 사업은 욕심 부려 성취해야겠고 변화는 급템포로 진전되어가고 있다. 특히 선교 대상지로 떠올랐다. 동구원의 선교는 피터 와그너 교수가 분류한 제3단계 교회라고 느낀다(1단계-선교부가 관장하는 교회 개척 선교, 2단계-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단계, 3단계-선교회는 자문 역할을 하고 피선교지에 흡수된다, 4단계-피선교지 교회가 선교를 시작한다). 그들은 수천년 간의 교회 전통과 뿌리 깊은 신앙과 기독교 문화 가운데 살고 있다. 공산 치하에서도 교회 문을 다게 하지 못했다. 10퍼센트 정도의 개신교는 공산 치하에서 그 믿음이 더 깊이 뿌리박혔고 초대교회 같은 순결한 신앙을 되찾았다. 이러한 순결한 민족에게 무엇을 선교할 것인가? 지금은 기독교 학교를 재건해야 하고 지도자를 양성해야 하며 신학서적이 부족할 뿐 아니라 교회당을 크게 지어야 하는 건축의 중책을 힘겹게 가지고 있다.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겸손히 섬김으로 그들의 순결 신앙에 먹칠하지 않으면서도 하루 속히 세계선교에도 가담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시켜야 하겠다.
5)미전도 종족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
지금까지 사탄의 독무대였던 미전도 종족 지역을 탈환한다는 것은 더 강한 자의 절대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탄은 강할 뿐 아니라 자기의 영토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작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기도만이 승리 열쇠다. 왜 기도만이 선교의 방법인가? 첫째, 기도는 하나님의 개입을 용납하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사탄의 결박을 푼다. 셋째, 기도해야 추수할 일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넷째, 기도해야 선교의 문이 열린다. 다섯째, 전도자(선교사)가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입양한 모 교회가 힘이 있고 지속적이어야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입양될 무리들은 현재 강한 전통과 민속신앙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여덟째, 기도해야만 기도 정신에 입각한 선교정책이 수립되기 때문이다. 아홉째, 세기적인 부흥운동은 기도가 불씨였다.
6)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보낼 수는 있다
비록 1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있다 할지라도 ‘평안’이라는 은혜의 품목하나 구입하지 못한다. 돈이란 그렇게도 쓸모없는 것인가? 그렇다. 단, 돈으로 살 수 없는 그것들을 돈으로 여러 곳에 보낼 수는 있다. 성경을 사서 보내므로 그 속에서 귀중한 보화를 발견케 한다. 선교사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일생 동안 주고 또 주고 죽을 때까지 선물하게 된다. 한편 그곳에 신학교를 세워 어둠 속에 있는 현지인들에게 온갖 보화를 배우게 하고 깨닫게 한다. 깨달은 저들은 나가서 이 벅찬 행복을 아직 모르는 자기 민족에게 열심히 또 나눠준다. 받은 그들은 멈추지 않고 흩어져 어둠 속에 사는 이웃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또 전한다. 이것이 선교다.
7)개미들이 쌓는 탑
브라질에서 신기한 것을 보았다. 푸른 목장이 있는 곳이면 으레 유난히도 붉은 황토색 흙탑이 뾰족뾰족 수십 개씩 솟아 있는 것이다. 이 흙탑은 개미들이 지은 집이란다. “개미는 위대한 건축가이다”, “개미는 작아도 탑을 쌓는다”란 속담이 이래서 생겨났나 보다. 안디옥교회는 우주에서 보면 개미 크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는 일이 개미 역사다. 더구나 손 주먹만한 저금통을 세워 놓고 동전 한 닢씩 짤랑 소리내며 비벼 넣는 모습은 어쩌면 일개미들이 먹이를 실어 나르는 극히 작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슥4:10)고 나무란다. 천사는 우리 편이 되어 박수 칠 것이다. 이번에 개미 역사로 인도네시아 신학교에 기숙사 한 채를 마련했다. 아프리카에 굶주린 4천명 사람들에게도 배를 채워 주었고(2만원이면 80명을 먹일 수 있으니까 100만원으로 이정도 먹인다), 베트남 기술학교에 기술 보급 자금을 댔다. 개미가 브라질에서만 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좀도리 선교 저금통이 큰 탑을 쌓고 있다. 개미탑! 참 좋다.
4.천국은 가득 차고 지옥은 텅텅 비어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인류 전체의 구원을 열망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심정이시다. 자녀들이 많다고 하여 어디 한 아들인들 파멸하기를 원하는 아버지가 있겠는가? 일백 수의 양 중 한 마리만 잃었어도 ‘찾도록 찾는’ 애절한 마음을 천국 아버지는 품고 사신다.
천국이 가득 차고 또 차서 대만원이기를 바라는 욕심 많으신 어버이시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스럽고 썰렁하다. 천국 문을 향한 영생 길은 좁고 그 수는 안타깝게도 소수일 뿐이다. 세계 인구의 10퍼센트만이 이 생명 길 순례자다. 반면에 지옥 문을 향해 멸망길 걷는 행렬은 떼를 이룬다.
거기다가 천국 문을 향하는 크리스천들까지도 겨우 주일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예배드리는 교회의 고객으로 안주하고 있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세계적인 부흥이 다시 폭발해야 한다. 그때 교회마다 회개 운동으로 울음바다가 되었고 삼천리 방방곡곡 교회마다 차고 또 넘쳤다. 21세기의 오순절이 일어나야만 한다. 영토 빼앗긴 사탄의 통곡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옥이 텅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천국이 메어지도록 가득 차서 하나님을 웃겨 드려야 한다.
5.불편하게 삽시다
13년 전부터 ‘불편하게 삽시다’를 교회의 표어처럼 중얼대었다. 개혁하자는 것이다. 교회 조직과 재정 정책을, 예식 절차와 종교 행사를, 퇴폐 풍조와 허영의 흐름을, 삶의 목적과 방향을 원래의 정위치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멀리 빗나간 형태를 바르게 하자니 개혁이란 냄새를 풍기게 되고 개혁하자니 불편하게 살 수 밖에 없고(사실은 제대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라는 표준을 보여 주자니 불편하게 살자는 심지가 곧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정신 아닌 것은 다 고쳐야 한다. 오늘의 기독교는 이대로는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없고 구원의 방주도 될 수 없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선교의 극대화를 위해서, 사회 개량을 위해서 불편하게 사는 편안한 삶을 살자. 예수님의 검소함이 교회의 모습이 되고 생활의 패턴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