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아재01「명」「1」'아저씨'의 낮춤말. 「2」'아주버니'의 낮춤말.
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화를 내며 "나는 다시는 <00000사전>을 안 보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아재>를 찾아보라" 하였습니다.
<사전>이란 누구든지 보고 "그래, 그런 말이었구나", "아-, 내가 글자뜻을 모르고 쓴 말이었구나", "우리 어른들이 쓰는 말이라 잘 몰랐는 데 그런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고, 모르는 것은 새로 배우기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재>라는 말을 '<아저씨>의 낮춤말'이라고 해 버리면, 오래동안 <아재>라는 말을 써 오고 있는 사람들이나 써 오고 있는 곳을 고향으로 둔 서울지방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이는 <표준어>라는 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 지역을 <서울지방>으로 한정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저씨"와 "아재"가 있으면 둘 다를 표준어로 선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서울지방 및 중부지방에서는 "아저씨"를 많이 쓴다면, 령남을 비롯한 남부지방에서는 "아재"를 많이 쓰고 있는 뿌리깊은 말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맞춤법통일안이 처음 제정되던 70여년 전(1933년)인 나라잃은시대에는 조선말글을 마음놓고 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언어철학>이나 <언어사회학>이나 <언어미학>이나 <언어문화력사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표준어>라 해도 오늘날처럼 옳으니 그르니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말글공부에 매달릴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일본의 감시 아래에서는 겨레문화와 정서를 풍부하고 활발하게 일으킬 수 있는 이론이나 학설을 펼 수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이라면 누구든 자기 고향말이나 가정언어에 대해서 력사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서 름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70여년 전의 어려운 상황에서 나왔던 표준어 리론에 매달려 고치고 고치고 하기보다는, 겨레문화를 크게 아우르면서 보다 가치롭게 만들어 나간다는 넓고 높은 차원에서
(1)표준어라는 말을---------------------뿌리깊고 품위있는 말로 (2)<서울지방>이라는 지역 한정을---------전국 각 지방으로 (3)교양있는 사람의 말이라는 계층 제약을--현재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
로 고쳐잡으면 이러한 문화 충돌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배달말의 폭과 량을 늘여 사람살이를 한 차원 더 높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표준화법>이라는 말도 <바른말하기>라는 말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표준>이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표준>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비표준>이라 하다 보니, 글자뜻이 바르게 쓰인 말인 데도 <남부지방>이니 <무슨 지방>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서 바로됨이 그릇됨에 밀려나는 불합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학자는 참됨을 추구하는 겨레의 길잡이입니다.
<바른말하기>가 되면,
(1)글자뜻에 맞는 말, (2)례의범절이나 경우에 맞는 말, (3)력사적인 전통과 뿌리가 있는 말, (4)품위가 있고 교육가치가 있는 말
을 가치롭게 여기면서 가꾸게 되어 자손만세에까지 가더라도 후세들에게서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례를 들면, 동남방언에서는 <안다>와 류사한 <아듬다>가 있고 <보듬다>가 있습니다. <안다>는 이른바 표준말이라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학교교육을 받은 청소년들 외에는 잘 쓰지 않습니다. 장년만 되면 <아듬다:사람이 두 팔을 벌려 나무나 풀 따위를 한아름 안다>와 <보듬다:사람이 아기나 다른 사람을 보호하여 안다>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다>만으로는 위의 두 가지 경우를 구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랜 력사를 두고 뿌리깊게 써 왔기에 1933년에 와서야 비로소 만들어졌던 <표준말>이라는 잣대로써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전에는 <아듬다>를 '<안다>의 방언'이라고만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든 <사전>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말의 차이는 곧 문화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정언어 <아재>라는 말이 '아버지의 미혼 아우'나 '아버지 항렬의 남자'를 부르는 말로 수 천년동안 써왔던 뿌리깊은 선비말이기에 그렇게 쓰고 있는 선비들은 <00사전>의 풀이를 보면 분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재>가 가정언어로써 '아버지의 미혼 아우'나 '아버지 항렬의 남자'임을 밝혀주는 유학선비의 유고문집을 제시하겠습니다. 서울지방에서 <아재>를 '아저씨'의 낮춤말이라고 한 선비의 유고문집을 제시해 주시면, 단순히 류동적인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거에 의한 말뜻 풀이로 믿겠습니다.
父之兄弟 父之兄弟也未冠則呼語曰俄哉旣冠則呼語曰둘째我陪而稱語曰仲夫盖呼伯父則맛我陪可也而큰 我陪不可也兄弟之序在於伯二三末而不在於大小故也孔子學求正名也不正之名立則事必乖離焉
從叔 父之四寸也呼語曰某某我哉稱語且書語皆曰從叔而以堂叔用之者有之是誤也從義有四寸而堂義有屋而已堂叔語意不成也父之六寸乃再從叔且父之八寸乃三從叔
族叔 父之二十寸人亦以血統之者也呼語曰某某我哉書語曰族叔《老石先生文集 二》쪽 170-171
읽는이를 위해 배달말로 뒤쳐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형제 아버지의 형제로서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았으면 부름말[호어]이 <아재>이고 이미 관례를 치렀으면 부름말[호어]이 둘째아배이며 가리킴말[칭어]은 중부이니라. 대개 백부를 부를 때에는 <맛아배>가 옳으니라. <큰아배>는 옳지 않으니라. 형제의 차례는 <맏, 둘째, 세째, 끝>에 있지 <큰, 작은>에 있지 않은 까닭이니라. 공자학이 추구하는 것은 바른이름이니라. 바른이름이 서지 않으면 일이 반드시 어긋나느니라.
종숙 아버지의 사촌으로서 부름말은 <00 아재> 가리킴말[칭어]과 글말[서어]은 모두 종숙이니라. 당숙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니라. <종>의 뜻에는 사촌이 있지만 <당>의 뜻에는 집만 있을 따름이니라. 당숙이라는 말뜻은 성립이 안되느니라. 아버지의 육촌은 재종숙이고 또 아버지의 팔촌은 삼종숙이니라.
족숙 아버지의 이십촌인 사람 또한 같은 핏줄이니라. 부름말[호어]은 <00 아재>이고 글말[서어]은 족숙이니라.
서울지방에서는 남을 얕잡기 위하여 <아재>라고 하거나 중부지방에서 쓰는 <아저씨>라는 말에 빗대어 낮춤말처럼 사용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낮잡는 저급한 말은 쓰지 않도록 바로잡는 것이 말에 대한 올바른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사전>이란 단순히 겉으로 나타나는 류동적인 현상만을 중심으로 엮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뿌리깊은 수 천년의 전통문화를 옳다 그르다로 판가름할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선비말이다 그렇지 않다로 판가름하여 겨레살이를 보다 더 고급화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전>을 보십시오. '叔'은 '아저씨' 숙이 아니고 <아재, 아재비> 숙 입니다. (2)의 '아주버니'의 낮춤말도 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지방을 비롯하여 전국 각 지방말을 싸안을 수가 없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