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북수동 성당)
수원지역 순교자들의 증거터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대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정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임금이 한양(지금의 서울)에서부터 수원으로 오실때 가장 먼저 맞이하는 문이
북문(장안문)이었기 때문에 북문을 정문으로 정했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화홍문 華虹門(북수문 北水門)
수원성곽(사적 제3호) 내의 북쪽 수문이다.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 하며, 아래에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가 있다.
수문은 모두 7개의 석조아치로 만들어졌는데 가운데 한 칸이 약간 넓고
나머지는 아치 너비가 8자, 높이 7자 8치이다.
아치와 아치 사이는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또한, 각 아치에는 쇠로 만든 살창을 설치하여 이곳으로 적이 침입하는 것에 대비하였으며,
이 수문은 좌우로 성벽에 이어지도록 하였다.
문 주변에는 동쪽으로 언덕이 이어지고 언덕 높은 곳에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아래로 용연(龍淵)이 있으며,
수문 위아래로는 흐르는 물 사이로 넓적한 바위가 드러나 있어
수원성곽 주변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
방화수류정
訪花隨柳亭
1794년(정조 18) 수원성곽을 축조할 때 세운 누각 중에 하나인데
특히 경관이 뛰어나 방화수류정이라는 당호가 붙여졌다.
수원성의 북수구문인 화홍문의 동쪽에 인접한 높은 벼랑 위에 있는데
그 아래에는 용연이라는 인공 연못이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아자형 평면구조이며, 지붕은 8각지붕을 기본으로
남북에 합각을 더 세워 십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삼절병통이 얹혀 있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정명도의 시에서 따온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원곡 김기승이 썼다.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북암문은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었다.
문 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여장을 세웠는데
반원형은 원여장, 장방형은 비예라고 부른다.
축성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東北舖樓
포루(舖樓)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사이 우뚝 솟은 지형에 있다.
‘각건대’라는 별칭이 있다.
각건은 선비들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면서 쓰던 머리 덮개인데,
서까래 길이가 짧은 동북포루 형상이 각건을 닮아 이런 별명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첫댓글 수원성지는 정조의 뜻이 담긴 화성이라는 융성한 도시를 이루었네요 순교자들의 증거터가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고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