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모세(Moyses)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당시 백성의 지도자요 예언자이자 율법의 중개자였다. 그의 절대적 권위는 구약과 신약성경 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의 율법을 ‘모세법’이라고 부르는 전통이 철저히 지켜지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구약성경의 모든 신학이 흘러나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이집트 탈출’과 ‘시나이산 계약’이라고 한다면, 주 하느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여 이 해방 사건과 계약의 중개자로 삼으신 것이 바로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가 가지는 절대적 권위의 근거가 된다. 출생에서부터 특별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 모세는, 비록 모세오경 외의 구약성경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율법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계약과 율법의 중개자로서의 그 독보적인 권위는 확고하다.
탈출기 1장에 의하면 모세는 불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위협을 느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1,22)라고 명령한 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케벳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누이는 미르얌이었고, 형제로는 아론이 있었다(탈출 6,16-20. 7,7. 15,20; 민수 26,59; 1역대 23,12-14). 모세의 부모는 파라오의 눈을 피해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겨 기르다가, 더는 숨겨 둘 수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기를 안아 들자, 이를 지켜보던 아기의 누이(미르얌)는 아기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아기는 다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다가 파라오의 딸에게로 보내졌다. 공주를 그 아기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탈출 2,10)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이집트 궁중 안에서 성장하게 되었다(탈출 2,1-10 참조).
청년이 된 모세는 어느 날 이집트 사람 하나가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한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죽이고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렸는데, 그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는 파라오를 피해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탈출 2,14-15).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치포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장인 르우엘(또는 이트로라고도 함, 탈출 2,18-21. 3,1. 4,18. 18,1)의 집안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생활을 하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떨기나무에 불꽃이 솟아오르는 데도 타지 않는 떨기 가운데 신비로이 나타나신 주 하느님께서는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극심한 노역에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조상들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며 모세가 이집트의 손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해내어 당신이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을 명하셨다(탈출 3,1-12 참조).
주 하느님께 소명을 받고 파견된 모세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광야에서 주님을 위한 축제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말을 전했지만, 파라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심한 노역을 부과해 모세는 같은 민족들로부터도 원성을 듣게 되었다. 모세는 파라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주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하였다.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조리 치는 열 번째 재앙에 굴복한 파라오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지만, 곧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 이때 앞을 가로막던 갈대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바다를 건너고, 뒤쫓던 이집트 군대는 갈라진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합쳐지는 물에 휩쓸려 몰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탈출 5-14장 참조).
구약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 지 석 달째 되는 바로 그날, 시나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탈출 19,1). 주 하느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르시고 그를 중개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계약을 맺으셨는데, 여기에서 모세의 특별한 위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모세는 산을 오르내리며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 주었다. 모세가 백성 앞에 내놓은 하느님의 말씀은 곧 계약의 말씀으로서 주된 내용은 십계명이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 모든 말씀과 법규들을 백성에게 전하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환호하며 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살 것을 서약하고,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맺는 계약을 위해 열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제사를 드렸다(탈출 24장). 이로써 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주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집트를 탈출해 해방의 기쁨을 맛본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을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왔느냐는 식으로 대들었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주 하느님께 아뢰어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얻었다(탈출 15,22-17,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하면서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지 않고, 하느님의 법이 곧 삶의 길임을 백성에게 가르쳤고,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세우는 등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면 그들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바쳤다(탈출 32장 참조).
이렇게 모세는 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하는 중개자가 되었고,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고 그들의 모함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일깨우고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드렸고, 다른 한편으로 광야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민족과의 전투에서는 군사 지도자로서 백성을 지휘하여 앞길을 터 나갔다.
40년에 걸친 광야의 여정이 끝나고 예리고 맞은편 느보 산의 피스가 꼭대기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요르단강 건너편에 자리한 약속의 땅을 보여주셨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강을 건너가지는 못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신명 3,27. 34,1-12). 성경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가나안 땅 정찰 후에 하느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저버렸던 백성들을 올바로 인도하지 못한 탓(민수 14,28-35; 신명 1,37)과 둘째로 므리바에서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실행하여 그분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탓(민수 20,12)이 그것이다. 이렇게 모세를 포함해서 이집트에서 해방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만 남게 되었는데, 모세와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에게 허락된 몫은 자신들이 아닌 그 후손들이 약속의 땅의 풍요함을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주님의 종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어 벳 프오르 맞은쪽 골짜기에 묻혔는데, 오늘날까지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신명 34,6). 그로 인해 그의 무덤은 전례적인 장소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모세가 죽기 전에 고별사인 모세의 노래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고(신명 32장),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는(신명 33장) 부분은 모세에 관한 성경 내용 중 가장 아름다운 에필로그를 이루고 있다. 모세오경을 끝맺으며 모세에게 주어진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신명 34,10)라는 찬사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모든 위업과 놀라운 대업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모세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상징인 십계명 판을 들고 있거나 탄생과 소명, 이집트 탈출과 광야에서 있었던 여러 일화와 기적 이야기와 함께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모세 대리석 조각을 비롯해 많은 조각과 회화에서 모세는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는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의 결과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눈 후 십계명 판을 받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고, 백성들은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을 정도였다(탈출 34,29-30). 여기서 모세의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는 광채를 엉뚱하게 ‘모세의 뿔 달린 얼굴’(cornutam Moysi faciem)로 오역하면서, 후대의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세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을 붙이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뿔을 그리는 대신 모세의 머리에서 마치 뿔처럼 생긴 광채가 빛나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굿뉴스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