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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궁궁통1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순례객을 만납니다.
숙소의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마주치고,
성지의 나무 그늘에서
묵상에 잠겼다가 마주치고,
여행지의 맛집에서
음식을 먹다가도 마주칩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던지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샬롬!”
차동엽 신부는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때의 평화와 예수의 평화는 다르다. 냉장고가 비었을 때도 예수의 평화는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무슨 뜻이냐고요?
평화.
샬롬(Shalom)은
평화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고 안전한 걸
뜻하는 평화가 아닙니다.
샬롬의 평화는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궁궁통2
예수가 설한
산상수훈.
그 안에 담긴
다이아몬드가 ‘팔복(八福)’입니다.
그중 일곱 번째 복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고(故) 차동엽 신부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에 대해서
말입니다.
“평화가 무엇입니까?”
차 신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에이레네(Eirene)’다.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이다.
샬롬은
죄나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다시 물었습니다.
“평화는 흔하지 않나.
사람들은 수시로 말한다.
나는 요즘 평화롭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살 만하다고 말한다.”
차 신부는
잠시 눈을 감더니
입을 뗐습니다.
“그건 주로
세상이 주는 평화다.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박해가 없을 때,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때,
생활에 골칫거리가 없을 때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는 다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 통곡의 벽에서 유대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뜻밖이더군요.
예수의 평화와
우리의 평화,
둘 사이에는
무언가 큰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평화와
예수의 평화,
둘은 어떻게 다른가?”
차 신부는
샬롬에 담긴
본질적 고요를 꺼냈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도
평화롭고,
냉장고가 비었을 때도
평화롭고,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도
평화롭다.
예수님은
그런 평화를 말했다.”
#궁궁통3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박해받고,
먹을 것도 없고,
생활은 문제투성이인데
어떻게
평화로울 수가 있지?
둘 중 하나 아닌가.
현실을 외면하거나,
공상에 젖어 살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평화로울 수가 있지?
바다를 떠올려봅니다.
온갖 파도가
솟구칩니다.
A라는 파도는
호랑이처럼 생겼고,
B라는 파도는
소나무처럼 생겼습니다.
C라는 파도는
또 무언가처럼 생겼습니다.
갈릴리 호수 위로 새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다. 풍랑이 일 때는 갈릴리 호수의 파도도 상당히 높다. 백성호 기자
이 모든 파도는
바다 위로 솟구쳤다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집니다.
즐거움의 파도도,
괴로움의 파도도,
기쁨의 파도도,
슬픔의 파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솟구쳤다가
부서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이런
파도의 운명에
과연 평화가 있을까요.
하늘 높이 솟았다가
결국
산산이 부서져
사라질 운명인데 말입니다.
이런 파도에게
과연 샬롬이 있을까요.
#궁궁통4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예수는
파도가 솟구치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순간에도
샬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맞습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A파도,
B파도,
C파도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A·B·C 파도는
결국
파도입니다.
파도는
결국
바다입니다.
파도가
자신이 바다임을 깨칠 때,
비로소 샬롬이 드러납니다.
솟구치는 순간에도,
부서지는 순간에도,
사라지는 순간에도
자신이 바다임을 안다면
파도는
아무런 두려움도
품지 않습니다.
이게
예수가 설한
샬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가능한
본질적 평화입니다.
차동엽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평화는
풍랑 속에서,
전쟁터에서,
역경의 한복판에서도
누리는 평화다.”
동이 트는 갈릴리 호수 위로 새가 날고 있다. 이런 순간에도 하느님 나라가 깃들어 있음을 예수는 역설했다. 백성호 기자
사람들은
풍랑과 하느님 나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전쟁터와 하느님 나라도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둘은 서로 배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삶,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이미 녹아 있습니다.
풍랑 속에도,
전쟁터 속에도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
샬롬은 철저히
나의 몫입니다.
내게 없는 평화를
찾는 일이 아니라
내게 이미 주어진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풍랑 속에서도,
전쟁터 속에서도
말입니다.
#궁궁통5
파도가
자신이 바다임을 모르면
샬롬은 오지 않습니다.
파도가
자신이 바다임을 알 때,
비로소 샬롬이 옵니다.
하느님 마음은
샬롬으로 가득합니다.
나의 마음이
샬롬으로 가득찰 때,
나와 하느님은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삶의 모든 희로애락에 하느님 나라의 본질적 평화가 깃들어 있다고 예수는 강조했다. 백성호 기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하여라,
샬롬을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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