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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은 몸을 일으켜 저수지 가장자리로 뛰어 올라와
베르나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 제가 부수었던 마개의 잔해가 관을 막고 있지 않다면 말이죠....
아니면 물이 흐르는 길에 막혀 있던 작은 사이판이 한 두개 있어서
그쪽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지요.
평상시의 수위를 되찾자마자 물을 빨아들일 건데 말입니다...."
마르셀 파뇰<마농의 샘>에서
끌로드 베리 감독의 [마농의 샘]은 갈증을 채워주는 영화다.
주연은 이브 몽땅, 제라르 드빠르디유, 다니엘 오떼유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어린 마농의 절규를 뒤로하고 10년을 뛰어 넘는다.
세자르(Cesar "Le Papet" Soubeyran: 이브 몽땅 분)와
위골랭(Ugolin: 다니엘 오떼유 분)은
카네이션 재배에 성공하고,
그곳에 홀로남아 양치기 처녀로 성장한 마농(Manon: 엠마뉴엘 베아르 분)은
마을 주민들까지 아버지를 죽게한 공범으로 여긴다.
위골랭은 우연히 마농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게 된다.
위골랭은 세자르에게 자신이 마농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만 마농은 그를 피한다.
우연히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대화 속에
아버지가 샘을 파다 죽게 된 경위까지도 알게 되고,
마을 사람과 위골랭, 빠뻬에 대해 복수를 다짐한다.
어느날 그녀는 염소를 구하려다, 샘의 근원을 발견해 그곳을 막아버려,
아버지가 당했던 그대로 그들에게 돌려준다.
갑자기 물이 말라버렸음에 놀란 마을 주민들과 위골랭은 다급해져만 가고,
기도회에 몰린 그들에게 사제는 마을 주민들에게 꾸짖는다.
전부터 마농이 은근히 좋아하고 있던 학교 선생인
베르나르(Bernard Olivier: 히프폴리떼 지라르도 분)의 생일 잔치에서,
그녀는 세자르와 위골랭의 죄를 밝힌다.
계속 발뺌하는 세자르에게
목격자로 에리아신(Eliacin: 디디어 페인 분)이 나타난다.
마농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위골랭은 자살하게 되고,
세자르는 허무함을 느낀다.
베르나르는 마농을 설득해, 막았던 샘을 트게한다.
마농과 베르나르의 결혼식에
플로레트의 친구인 델피느(Delphine: 에보네 가미 분)와 어머니가 온다.
세자르는
델피느로부터 마농이 자신의 손녀딸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플로레트의 유품인 머리빗과 목거리를 지닌 채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고 만다.
그때 쯤, 마농은 아이를 베고 있었는데,
미사 도중 이유도 모르게 성당을 빠져나가게 된다.
이 영화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내면의 분노를 잠재운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위골랭은
카네이션을 재배해 큰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그는 유일한 혈육인 삼촌 빠뻬 수베랑을 찾아가
자신의 계획을 얘기하고,
조카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빠뻬는
그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카네이션을 재배하는 데에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이웃에 사는 노인의 땅에 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가 땅을 팔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노인은 땅을 팔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빠뻬가 실수로 노인을 죽인다.
당황한 두 사람은 시체를 나무 밑으로 옮겨 놓고 현장을 떠난다.
노인이 죽은 후,
땅은 그의 누이 플로레트의 아들 쟝에게 상속된다.
꼽추로 태어나 지금까지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쟝은
시골에 땅을 상속받자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어린 딸 마농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온다.
위골렝과 빠뻬는
쟝에게 그의 땅에 샘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몰래 물길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내려온 쟝은
농작물을 재배하고 토끼를 키우며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
빠뻬와 위골랭이 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만
하루빨리 쟝을 내쫓고 땅을 차지하고 싶은 두 사람은
겉으로는 착한 이웃 행세를 하면서
정작 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고생하던 쟝은
우물을 파려고 다이너마이트로 암벽을 폭파시키다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쟝이 죽자 그의 아내는 빠뻬에게 땅을 팔고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어린 딸 마농은
그대로 이곳에 남아 염소를 키우며 살아간다.
땅을 차지한 위골랭과 빠뻬는
자기들이 막아놓았던 샘의 물구멍을 다시 열고
그 물로 카네이션 농사를 지어 큰 돈을 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마농은 이제 18살 처녀가 되었다.
30살 노총각 위골랭은
어느 날 마농이 목욕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마농은
마을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위골랭이 자기 삼촌과 짜고 물길을 막았고,
그것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를 결심한다.
사실 두 사람이 샘을 막았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쟝이 외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얘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우연히 샘의 원천을 발견한 마농은
옛날에 위골랭과 빠뻬가 했던 것처럼 물길을 막아버린다.
이 때문에 마을 전체의 샘이 말라버리고,
다급해진 마을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그때 신부가
이 중에 죄 지은 사람이 있으면 회개하라고 한다.
이 말에 사람들은 빠뻬와 위골랭이 지은 죄 때문에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수군댄다.
이 자리에서 마농은
두 사람의 죄를 낱낱이 폭로하지만
마농에게 눈이 멀어버린 위골랭은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그녀에게 열렬하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 후 마농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 위골랭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베랑 가문의 마지막 혈육이었던 조카를 잃은 빠뻬는
살아갈 희망을 잃는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수십 년 만에 만난 옛 친구로부터
쟝이 바로 그의 아들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자기가 그토록 무시하며 파멸로 몰아넣었던 쟝이
자기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빠뻬는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하면 지옥조차도 과분하다고 자책한다.
결국 그는 손녀인 마농에게 전 재산을 남긴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발적인 의지로 죽는다.
[마농의 샘]의 위골랭과 빠뻬, 쟝은
현실 속에 살아있는 인간의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악인이 응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통쾌하지 않다.
쟝, 위골랭, 빠뻬 모두 운명의 횡포에 쓰러진 불쌍한 인간들 아닌가.
만약 전쟁터에 나간 빠뻬가
쟝을 임신한 플로레트의 편지를 받았더라면
빠뻬가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빠뻬가 위골랭을 아들처럼 아꼈던 것은
그가 수베랑의 가문을 이을 유일한 혈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위골랭에 그토록 집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리석은 그를 살살 꾀어 나쁜 일을 하도록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위골랭이 마농의 원한을 살 일도 없었을 것이고,
30살이 되어서야 찾아온 첫사랑이 성공할 수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아련한 연민의 감정은
인간이 결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배경음악을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을 쓴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일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쟝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은
앞으로 자기들이 살아갈 허름한 농가의 2층 창가에서
꿈같이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농촌 풍경을 바라본다.
완벽하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
이 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는지 쟝이 하모니카를 분다.
여기서 그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남편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추어
한때 오페라 가수였던 그의 아내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은
제목 그대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보았자
결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칼라트라바 후작의 딸 레오노라는
알바로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이 알바로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래서 두 사람은 아버지 몰래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도망치려는 순간
후작이 들어오고, 세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알바로가 실수로 후작을 죽이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한 레오노라의 오빠 돈 카를로스는
원수를 갚기 위해 알바로를 찾아 나선다.
카를로스와 알바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 군에 입대하는데,
이때 알바로가 위기에 처한 카를로스를 구해주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나중에 카를로스는 알바로가 자기가 찾던 아버지의 원수라는 것을 알고
결투를 신청한다.
알바로는 사랑하는 레오노라의 오빠인 카를로스와의 결투를 원하지 않지만
상황에 몰려 결국 카를로스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인다.
이 결투에서 카를로스가 알바로의 칼에 찔린다.
그렇게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레오노라가 나타난다.
레오노라와 알바로가 한 통속이라고 생각한 카를로스는
자기를 부축하는 레오노라를 칼로 찔러 죽이고,
이것을 본 알바로는 절벽 위에서 몸을 던진다.
그렇게 세 명의 주인공이 모두 죽는 것으로 오페라가 끝난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은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하는 서곡에서부터 운명의 가혹한 힘을 보여준다.
이것을 듣고 있으면 운명 앞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금관악기의 당당한 울림으로 시작하는 서곡은
처음부터 가혹하게 인간을 몰아붙인다.
인간은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호소하고, 때로는 발버둥 치지만
운명의 가혹한 타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결국 항복하고 만다.
바로 이 순간 어디선가 홀연히 들려오는 플루트와 오보에 소리,
[마농의 샘]에 나오는 바로 그 멜로디이다.
[서곡]에서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이 멜로디는
4막에서 카를로스로부터 결투 신청을 받은 알바로가
그를 설득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자네의 협박도 모욕도 바람에 흩어지길 바라네.
나를 용서하게나. 형제여. 나를 동정하게나.
불행하고 비참한 죄밖에 없는 자를 왜 해치려 하나
운명에게 굴복하세
불쌍히 여기게. 나의 형제여.
이렇게 간절히 애원하는 노래인데,
영화에서는 쟝의 하모니카 반주에 맞추어 그의 아내가 노래 부르는 장면 외에,
자살한 위골랭의 시신이 빠뻬의 집 테이블에 누워 있는 장면과,
빠뻬가 침대에 누워 한때 사랑했던 쟝의 어머니 플로레트가 준 머리핀을
손에 쥔 채 죽어 있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나온다.
[운명의 힘] 서곡에서는
이 멜로디를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지만
영화에서는 하모니카가 연주한다.
여리고 가냘픈 하모니카 소리가
거대한 운명의 횡포 앞에 스러져간 나약한 인간의 모습 같다.
가슴 저리게 어필해 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쟝, 위골랭, 빠뻬 모두에게 더없이 아련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 진회숙 '영화속 클래식'에서 옮김
진회숙: 출판편집인,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1988년 월간 「객석」이 공모하는 예술평론상에
'한국 음악극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평론으로 수상, 음악평론가로 등단했고,
「객석」,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에
예술평론과 칼럼을 기고했다.
이후 KBS와 MBC에서 음악프로그램 전문 구성작가로 활동하며
MBC FM의 「나의 음악실」, KBS FM의 「KBS 음악실」, 「출발 FM과 함께」,
KBS의 클래식 프로그램인 「클래식 오디세이」 등의 구성과 진행을 맡기도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오페라 학교’, ‘클래식 학교’, 고양 아람누리 문화예술 아카데미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평화방송 〈FM 음악공감―진회숙의 일요스페셜〉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오딧세이』, 『나비야 청산가자』,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보면서 즐기는 클래식 감상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나를 위로하는 클래식 이야기』,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진회숙의 스토리 클래식』,『영화는 클래식을 타고』, 『영화와 클래식』 등이 있다.
<마농의 샘>을 지은 '마르셀 파뇰'
프랑스의 작가이자 영화감독.
프랑스 오바뉴에서 교사였던 아버지 죠제프 파뇰,
재봉사였던 어머니 오거스틴 랑소 밑에서 태어나
14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었다.
15살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판타지아」라는 잡지를 만들어
자신의 첫 작품 「선회」를 발표했고,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문예지 활동을 계속했다.
1915년부터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1916년 시몬 콜랭과 결혼한
그는 1922년 파리로 옮겨오면서 희곡 쓰기에만 전념하다,
1928년 「토파즈」라는 정치풍자극을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리우스」, 「화니」, 「빵집 마누라」등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그는 1932년 마르세이유로 돌아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작품은 자신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31년작 「마리우스」였다.
그는 자신의 시나리오뿐 아니라 장 지오노 같은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고,
1946년에는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생전에 많은 희곡과 소설을 썼는데
가장 감동적이며 공감을 주는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큰 제목으로 묶여 있는 4부작 자전소설
<아버지의 영광>, <어머니의 성(城)>, <비밀의 시간>, <사랑의 시절>일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은
「마르셀의 여름」으로,
<어머니의 성>은 「마르셀의 추억」으로 영화화되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이 연작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74년 파리에서 작고하였는데,
1977년 유작으로 발표된 마지막 4부 <사랑의 시절>을 번역한 것이
「마르셀의 사랑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