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형 일부인이 역순으로 조합되어 있슴니다. 右에서 左로 된것이 원칙인데 여기에는 반대로 된 일부인이 날인되어 있씀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있을 수 없지요. 년호는 1년에 한번 교체이므로 이렇게 총체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면 광무3년은 모두 잘못되어 있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치 않슴니다.
그러나 이 실체는 가능성이 있슴니다. 광무3년 12.31 마지막날 일자로 보아 일부인 활자 교체 작업준비중 잠시 실수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추측할 만 함니다. 다행히 도착인까지 있어 진위여부에 논란이 되지 않는점 임니다.
사용필 우표에 [光武]가 [武光]으로 나타난 현상도 있는데 활자오식에서 일어난 취급자의 실수 이겠지요. 이런 실수도 있어 오늘날 수집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함니다.
아무튼 이런 부류의 잘못된 일부인 - 이런 형태를 변종일부인 이라고 할 수 는 없을것 같음-은 흔하게 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판독해 보면 나올 수 있는 현상 임니다. 무심하게 넘겨 모르고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 임니다.
이화우표에 元年이 있는 게시물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 참고하시라고 게시해 봄니다. 활자조합에의해 순서가 바뀌어 광무보다 원년이 먼저 나타날 수 있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 3년후 발행된 우표에 3년전 일부인은 있을 수 없기에 그 일부인은 위조인 임니다. 언젠가 어느분이 광무원년 원일형을 발견한것으로 오인하여 게시한일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광무6년이었슴니다. 六자에 교묘한 형태로 인육이 번진 현상( 아니면 인위적으로 변조)으로 元자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만큼 된 현상이 었는데 그 元(실제는 六)자의 형태가 지금게시된 이화우표의 字體와 같군요.
위 실체에는 5푼두장(1돈)의 요금이 첩부되어 있는데 왜? 요금이 부족할까요? 설명해 보세요. 참고로 1돈은 2전에 해당함니다. 통상 3전의 실체가 많아 구한국시기는 서장요금이 3전으로 알고 있는분들이 많슴니다. 그러나 위 실체는 부족처리없이 정상체송되었으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정확하게 꼬집어 보십시요. 또하나의 공부가 됨니다.
첫댓글 19세기를 마감하는 일부인과 20세기를 시작하는 일부인이 같이 있으며, 희귀한 역순 일부인이니 더욱 좋아 보입니다. 요즘 희귀한 자료가 계속 공개되니 집필중이신 근대사자료선집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좋은 자료들을 소개해주셔서 눈과 머리가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좀 소개해 주십시오. ^_^
구한국시대 우편요금이 1900년 1월 17일(광무 4년)에 1종 서신이 3전(4돈중까지) 으로 인상이 되었는데, 요금 인상전인 1897년 3월 16일 부터 한성내에서는 5푼(2돈중까지), 기타지역은 1전(2돈중까지)의 요금이었습니다. (1돈중 = 3.75g)
그래서 기타지역인 수원에 중량초과로 4돈중(15gr)까지의 요금인 2전이 맞는것 같습니다. ^_^
5푼우표가 2장이면 10푼=1전이죠??
1푼은 2리(厘)로 알고 있었는데요? 때문에 10푼(1돈)은 2전. 5돈(50푼)은 10전.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요?
1000 리 = 500 문 = 500 푼 = 100 전 = 1 원. 장원장님께서 잠시 착각하셨나봐요. 오선생님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헛갈린가요? 헷갈린가요? 그럼 태극 우표 10푼에 1전(한돈)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죠??? 요금(1900.1.16. 이전)이 한성 시내 외 지역에는 10푼. 즉 수원까지는 10푼, 대구도 10푼, 동래도 10푼. 두분 화폐단위 계산은 화폐개혁 후의 화폐 평가로 알고 있는데요.
좋은 실체를 감상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중 광무원년 원일형 관련내용중에서 "(아니면 인위적으로 변조)" 부분은 지나친 바가 있으므로 삭제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