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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골의 전설 1>
공룡릉에서 흘러내리는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사이의 天花臺(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암봉들로 공룡능에서부터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외석알의 기암 준령 가운데 그 수려함이 빼어난 곳으로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사이 범봉 능선에서 천불동으로 빠지는 산능 전부를 말하며 암봉이 마치 천상의 꽃밭같다하여 천화대이다)암릉에는 여러 지능이 있는데 그중 설악골에서 왕관봉과 범봉사이의 성곽같은 암릉이 이른바 석주길이다. 이 길을 초등한 요델 산악회의 고 송준호가 이 길을 개척하기 한해전 그의 의형제이자 같은 산악회 회원으로 자일 파티였던 엄홍석과 그의 연인 신현주가 비선대에서 급류이 휘말려 익사하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석주길로 명명, 영전에 바친 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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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길 표시석에는 방향지시표가 양방향으로 두개나 있다. 좌측으로 석주길이란 표시겠지만, 우측으로 표시( ┘)는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아 애매하다. 계곡 우측으로 사면을 따라 오르니 야영지와 함게 비박 싸이트가 반긴다.
석주골 표시석을 지나 5분여 오르니 설악 좌 우골 합수점(고도 580M정도)이다. 비교적 수량이 풍부한 우골에 비해 좌골은 물이 말라 건천으로 보인다.
< 설악골 좌골 우골 합수점 - 지도 A 지점>
<설악 좌골의 지계곡>
설악 좌골은 좌,우골 합수점에서 왼쪽으로 계곡을 건너 천화대에서 내리뻗은 숲속길로 들어서야 한다.
입구에 황소만한 바위에 화살표와 함께 <석주길>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그 석주길 입구에서 능선쪽으로 붙지말고 계곡쪽으로 들어가야 설악좌골이다. 석주길은 화살표를 지나자마자 왼쪽 사면길을 따라 오르면 나타나는 암릉길이다. 설악좌골은 길에 특별히 신경쓸 것 없이 주계곡만 놓치지 않고 따라 올라가면 공룡능선에 붙게 된다. 오르는 동안 북쪽으로 세존봉이 계속 올려다보인다. 남서쪽의 양파능선과 동쪽 하늘을 가르고 서있는 붉은 장벽인 석주길의 웅자도 볼 수 있다. 설악좌골은 석주길 바위 직후 만난 갈림길에서 왼쪽길로 들어서면 범봉 아래 지점에서 다시 계곡이 둘로 갈라진다(지도 2. B 지점). ① 왼쪽 골이 비교적 완만한 코스로 곧이어 다시 둘로 갈라진다.
왼쪽길은 범봉 북동쪽 안부로 이어지는 길로 석주길 암릉을 마친 클라이머들이 하산로로 이용하는 곳이다(석주골, 또는 사태골). 오른쪽 길(범봉골)은 설악좌골 주등산로로 범봉 남서쪽 안부로 이어지는데 상단부에서는 낙석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범봉 남서쪽 안부에 올라선 다음 길이 두갈래진다. 능선 너머로 이어진 길은 잦은바위골로 내려서는 길로 추락의 위험이 큰 험한 코스다. 우측 능선을 따르면 잠시 후 길이 왼쪽 사면을 따르다가 공룡릉 상의 1,275m봉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② 오른쪽 골짜기는 까치골이다. 1275봉 안부로 바로 올라붙는 협곡이다.
너덜지대를 지나면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검붉은 이끼가 끼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작은폭포에서 20분을 오르면 40m 폭포가 나온다. 이어서 50m폭포가 나타나는데, 40여m, 50여m의 폭포는 수직폭포가 아니지만 바위턱에 걸린 잔돌들이 많고, 흙과 이끼가 군데군데 덮여 위험스럽다. 다행히 난구간에는 나일론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폭포 양 옆의 바위가 워낙 미끄러우므로 보조자일을 이용하여 추가로 확보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 설악골 상단부인 이 50m 폭포 위로 올라서면 협곡을 이룬 설악골 양쪽사면의 날카로운 암릉과 그 사이로 울산암이 동해를 등지고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잡목숲으로 30분을 오르면 암벽의 측면을 올라서서 전망이 좋은 곳에 도착한다. 신선대로부터 1275m봉을 향해 용틀임하는 공룡릉의 장관이 조망된다. 이곳에서 한차례 치고 올라서면 1275m봉 남동안부로 올라서서 공룡의 등허리를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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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골-좌골 입구에서 바라본 세존봉>
설악 좌-우골 합수점을 지나 좌골로 접어들어 범봉과 1275안부로 오르는 동안 설악은 수천년 간직한 속살을 드러낸다.
좌로는 천화대 암능이, 우로는 마등령에서 장군봉(금강굴)으로 가는 길에 우뚝 쏟은 세존봉이, 그리고 뒤로는 화채능선과 외로운 섬처럼 떠있는 울산바위가 설악 제일의 풍광을 만들어낸다.
좌우골 합수점을 지나 오르다 보면 고도 800m 즈음에서 좌측 천화대 쪽으로 계곡을 버리고 제법 뚜렷한 산길이 나있다. 이 길을 따라 능선을 하나 치고 오르면 바로 범봉골과 까치골이 갈리는 지점이 나온다.
<범봉골과 까치골 갈림지점-지도 B지점> - 좌측의 협곡이 범봉골로 범봉 남서면 안부로 오른다.
<까치골 초입> - 이곳 부터 계곡 끝까지 급경사의 폭포가 이어진다.
좌-우골 합수점에서 좌골로 들어서자 건천으로 바뀌였던 좌골은 까치골 입구에서 부터 다시 물이 흐른다. 까치골은 입구부터 좌우가 탁 막힌 협곡으로 경사도 50도 이상으로 매우 급해 만만치 않다.
<설악아~~ 내가 다시 왔다~~>
까치골 초입에 들자마자 40여m의 폭포다. 바짝 말라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워낙 협곡이라 계곡물이 닿은 부위로 오를 수 밖에 없고 길은 미끄럽다. 게다가 고도감도 제법 있기에 바위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비가 오지 않아 계곡이 말랐어도 어려운 길이다.
폭포 중간즈음 작은 테라스에 대한산악회 77년 에베레스트 원정 훈련대로 76년 겨울 훈련차 설악골(까치골)에서 눈사태를 만나 운명을 달리한 고 최수남님 등의 동판이 있다.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린다.
<설악골 전설 2>
1976년 2월13일 에베레스트 제3차 동계훈련대는 설악골로 들어갔다. 김영도 회장이 총지휘를 했고 최수남은 트레이너 였다. 설악골 입구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다음날 최수남은 노루목 10동지 묘에 다녀왔다.
그날 저녁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2월 15일 그가 이끄는 제1조 김호진,전재운,송준송,박훈규,이기용 대원6명은 설악골 까치골을 통과하여 1275안부의 C1으로 전진했다.
눈은 폭설로 변했다. 설악 좌골과 우골이 갈라지는 곳에서 1조는 2조와 헤어졌다. 2조는 조원길,박상렬,한정수대원이었다. 최수남은 평소에 털모자를 쓰지 않았다. 늘 이어밴드만 하고 다녔다. 2조와 헤어질 그는 얼티메이트(Ultimate)헬멧을 쓰며 웃어 보였다.
" 어이 정수 , 어때? " 그리고 까치골로 들어갔다.
눈은 계속 왔다, 적설량 100Cm 가량, 까치골은 키슬링을 지고 통과를 못할 정도로 협곡이었다. 저녁 5시에 C1에 닿았다. 밤에 눈이 계속 내려 윔퍼텐트의 가운데가 내려 앉았다. 베이스 캠트에서 이날 작전회의가 열렸다. 김영도대장은 폭설로 인한 눈사태를 직감하고 16일 아침 전 조 철수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조만은 통신두절이었다. 철수하는 조로부터 무전기를 인수 받기로 했으나 엇갈려 1조는 무전기가 없었다.
2월16일 오전6시 최수남조는 일찍 기상했다. 이날 1조는 설악좌골로 조금 내려갔다가 범봉 안부에 설치된 C2로 올라 붙게 되어 있었다. 텐트의 입구가 눈으로 막혔다.
강설량 150Cm, 하얀 옥으로 반짝이는 온 산이 쩍쩍 갈라져 내렸다. 그가 앞장을, 맨뒤가 김호진대원이 섰다. 1275 안부 중간을 내려오는 중 눈사면이 떨어져 내렸다. 눈사태! 대열의 후미를 쳤다. 찰나였다.
" 튀어 "
맨먼저 본 최대장이 소리쳤다. 다들 빠져 나왔는데 제일 후미에 있던 김호진대원만 하반신이 묻혀 허우적거렸다. 전재운대원이 눈삽으로 파내었다.1275의 설사면이 계속 갈라졌다. 이 곳에 오래 머물면 위험하다고 판단, 전원이 안부 사면을 글리세이딩으로 빠르게 흘러내렸다. 안부 아래서 휴식 오전10시, 그가 윈드재킷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담배가 동이 났었는데, 그가 챙겨 둔 것이었다. " 마누라가 준거야 ! "
" 눈사태다 ! " 벽력같은 소리가 뒤에서 터져 나왔다. 10시20분 휴식후 김호진대원이 글리세이딩 자세를 취하려할 때 최대장의 외마디가 튀어나왔다.
순간 김대원의 눈에는 하얀 눈안개가 서렸고, 정신없이 몸이 흘러내렸을 뿐 아무것도 의식할 수가 없었다. 얼마를 눈속에서 흘러내렸을까. 움직임은 멋었고 암흑 속에서 한 점 밝은 빛이 보이더니 점점 확대되어 온 시야는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최수남 "
그의 시야에도 평소에 꿈처럼 찿던 "하얀산" 이 그 눈가루 속에서 번쩍거렸을까. 그 하얀색은 젊은 열정의 피같은 붉음과 그의 뜻같은 푸르름을 지우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8000m의 색으로 그의 눈에 빛났을 것인가.
그와 전재운, 송준송 대원은 눈속에 깊이 뭍혀 내렸고 박훈규,이기용,김호진대원은 빠져나왔다. 눈 바깥으로 손끝만 나온 이기용대원과 거꾸로 엎어져 비브람이 나온 김호진대원을 눈바깥으로 몸이 완전히 밀려나온 박훈규대원이 끌어낸 것이었다. 사고를 모르고 이상한 예감에 올라 오던 강호기,이윤선,최창민,유창서,한정수,문재한,고상돈, 김영한,이원영대원이 필사적인 구조활동을 벌였으나 허사였다.
무심한 눈발은 계속 날렸고 사태는 계속 되었다.
1982년 산 지에서 인용... |
40m 폭포를 오르고 보니 좌우 협곡 가운데 앞에 우뚝 솓은 바위가 보인다. 50m 폭포다. 폭포앞까지 진출 등로를 확인하는 동안 바위틈에 무언가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두개골... 부디 천수를 다했기를 바래본다...
< 까치골 50m폭포를 오르며...>
<까치골 상부에서 본 울산바위>
<까치골 상부에 찾아온 가을...>
어쩌면 이런 풍광을 두 눈뿐 아니라 가슴에 담기위해 그리도 긴 숲과 바위의 터널지대를 기어올랐는지도 모른다. 고통이 크면 그만큼 기쁨도 큰 법이다. 전후 좌우로 보이는 것은 모두 한폭의 산수화이며 굽이치는 설악골은 그 그림의 중앙을 가로 지른 폭포처럼 느껴진다.
까치골 상부는 공룡능선1275안부로 이어지지만 계곡을 벗어나 좌측의 능선을 따라 오른다. 급경사와 잡목이 발목을 잡는다.
< 설악골-까치골을 오르며 바라본 좌측의 1275봉>
잡목을 헤지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공룡능선 옛길과 만난다. 금줄을 벗어나니, 능선으로 이루어진 옛길과는 다르게,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신작로같은 길이 나있다. 1275봉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다 다시 옛길과 만나는 능선상에 자리를 잡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설악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설악골을 오르면 뎁혀졌던 몸을 삽시간에 식힌다. 시원한 것도 잠시 조금있자니 춥다. 차가운 바람이 갈길을 재촉한다.
다시 설악골에서 올랐던 지점으로 back하여 100m가니 1275안부 샘터. 공룡능선에서 공가골-가야동-수렴동-백담사로 예정되었던 산행을 희운각-천불동계곡으로 수정한다.
< 1275 샘터 이정표>
< 희운각에서 1275m 봉 가기전 샘터(펌). 이곳에서 1275봉 아래 안부까지는 600m. 그 중간에 공가골입구가 있다>
설악의 주능선인 공룡능선은 설악의 아름다움을 모두 모아 놓은 능선으로 내, 외설악을 가르는 침봉(針峰)으로 이어진 기암괴석의 바위 능선으로, 외설악 즉 설악동 측으로는 용소골, 잦은 바위골, 설악골로 이어지는 천길 단애의 벼랑을 이루고 있어, 길은 내설악 즉, 가야동계곡쪽으로 나있다. 첨봉의 능선으로 치닿던 옛길과는 달리 새로 정비된 공룡능선길은 9부 정도에서 고사목과 노송, 특히 쭉쭉 뻗은 잣나무 사이로 나있어 어느 가을인가 이른 아침 다람쥐, 청설모가 따 놓은 잣송이가 길 주위에 지천으로 떨어져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공룡능선의 암봉들 - 1275봉, 마등봉과 세존봉이 보인다>
< 신선대에서 바라본 범봉과 울산바위>
<무너미고개>
공룡능선의 끝 자락인 무너미 고개. 백두대산 마루금은 마등령에서 나한봉, 1275봉, 신선대, 무너미 고개를 지나 대청으로 이어지지만, 자연휴식년제로 희운각산장 바로 뒤에서 오르던 대청 가는 길은 닫힌지 오래고 이곳에서 희운각산장, 소청, 중청을 거쳐야만 대청을 오를 수 있다.
무너미 고개의 어원은 큰비가 오면 물이 넘어 붙여진다지만 설악의 무너미 고개는 물이 넘을 재는 아니다. 외설악과 내설악의 경계인 북주능을 가로질러 넘는 저항령, 마등령과 같은 령(嶺)일뿐.
이곳 무너미 고개부터 가파르게 내려서면 천당폭포, 양폭, 양폭산장, 오련폭포, 귀면암, 비선대로 이어지는 천불동계곡이다. 천불동 계곡은 무너미 고개에서 내려선 지점에서 소위 죽음의 계곡으로 불려지는 건천골 이름을 바꿔 대청으로 오른다. 무너미고개에서 소공원까지 8.3km이지만 비선대까지는 5.3km, 줄곧 내리막이다.
한 호흡으로 비선대 산장에 도착,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며 적벽을 감상한다. 오늘도 몇몇 팀이 적벽을 오르고 있다.
설악산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가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종일 내렸고 기온도 뚝 떨어졌다. 이 비로 이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던 설악골과 공룡능선도 가을이 완연해졌겠지...
아직 여름을 놓지 않은 초록도 있겠지만 이미 가을의 문턱을 넘어 초록을 벗고 깊숙히 감춰두었던 붉은 정열을 쑴어대고 있을 나무들..
여름의 비바람과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며 우뚝 쏟아 산을 키우는 나무들...
모든 산행이 번잡한 일상과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과 동화되어 나를 키우는 일이겠지만, 특히, 가을 산행은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의연함을 배우는 산행인거 같다.
산은 거기 우뚝 서 있으면서도 거스르지 않는다.
물은 부지런히 흐르고 있으면서도 거스르지 않는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도 떠남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거스르지 않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먼 산의 정상을 바라보고 얼마쯤 왔나, 얼마쯤 남았나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것 보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산행에서의 단순화는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간의 여유를 허락해준다.
그렇게 걸어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에 명료하게 순응하는 삶'일 것이다.
현명한 농부는 나무를 심어두고 얼마쯤 자랐나? 얼마후에 열매 맺을까? 조바심하며 서두르지 않는다.
심은 뒤에 가꾸어 가다보면 바람과 비와 햇살의 자연이 언젠가 풍성하게 열매 맺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도 일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공가골은 어디에?
← 마등령 - 1275안부(마등령 2.1km)- 공가골(D)- 설악골(까치골, C) - 샘터(마등령 2.7km) - 희운각→
공가골은 샘터와 1275안부 사이(600m) 중간에 위치. 까치골을 통해 공룡능선상 C지점으로 올라 우측, 즉1275봉 쪽으로 위치.
<- 마등령 - 1275안부(1) - 공가골(2) - 설악골(3) - 샘터(4) - 희운각->
1.1275안부
2. 공가골
3. 설악골
4. 샘터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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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암장 등록하고 어깨 부상으로 워킹만 하고 있습니다. 암장 식구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 보고듣고만 있으려니 미안하던 차에 최근 다녀온 산행기 올려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요. ^^
재미있게 다녀오셨군요. 사진과 글 너무 좋아요. 다음에 이글 복사해서 가면 길 찾는데 전혀 문제가 없겠습니다. 요즘 최호 선배님도 암장 나오시는데 선배님도 빨리 나아서 나오세요^^
구경잘 하고갑니다
방대한 자료의 등반 안내 사전 몇 페이지를 보는듯 합니다. 스산한 바람도 부는 이 아침에 설악의 저 봉우리들을 보니 찡~하니 뭔가가 가슴에 차오릅니다. 윗글을 이정표 삼아 선배님 다녀오신 길을 되밟아 보고 싶네요. 좋은 자료와 가슴에 와 닿는 글들, 감사합니다. (암장에 놀러도 안 오시네요 ^^)
할 말이 너무 많으면 아무 말도 안나온다더니... 대단한 산행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경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