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후 첫 번째
성경 ; 행5:27-32, 계1:4-8, 요20:19-31
제목 ;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우리가 어릴 때에 중국인들을 가리켜서 흔히 ‘되놈’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을 비하해서 ‘왜놈’이라고 하듯이, 중국인들을 ‘뙤놈’이라고 비하
해서 호칭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그때가 6.25 사변 후라서 중국인
들을 미워한 나머지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비록 북한의 남침으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이 일어났지만,
유엔군이 참여해서 우리나라는 통일을 코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중공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남북통일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
니다. 더군다나,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우리 국군과 유엔군으로 하여금 눈
물을 머금고 1.4후퇴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어릴 적에는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아주 대단했습니
다. 그래서 고무줄놀이 할 때에도 주로 ‘무찌르자, 오랑캐!’가 아니면 ‘전
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넘기를 했습니다. 혹
시, 거짓말이라도 하면, 어른들은 ‘무슨 놈의 아이가 되놈처럼 거짓말도
잘한다!’고 하면서 야단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되놈은 곧 거짓말
쟁이’로 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은 의심이 아주 많은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당시 우리는, 중국인들에 대해서 ‘의심이 아주 많고 허
풍이 센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심이 많거나 거짓말을
잘하면, 우리는 ‘뙤놈 같다’고 하면서 놀려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 20장의 말씀을 보면, ‘뙤놈’
이라고 불릴 만큼,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은 바로,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
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도마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다오.”하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말하기를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서
못 자국을 보고, 다시 거기에 손가락을 넣어본 다음, 그리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기 전에는, 나는 주님의 부활을 절대로 믿을 수
가 없소!”하고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다음, 제자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문은 꼭꼭 잠가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번처럼, 주님은 그들 가운데 서서 “여러
분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주께서는 도마를 바라보면서 “당신 손가락을 내 손에 넣
어보고, 당신의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더 이
상 의심하지 말고 믿기를 바라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도마는 어
쩔 줄 몰라 하면서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하고 외쳤습니다. 말하자
면, ‘이제는 제가 확실히 주님을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
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당신은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는구
려. 그러나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복이 있는 사람
이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이 설교 중에 말씀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은 마지막 죽
을 때에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어느
교인의 죽음’을 예(例)로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교인 하나가 중병(重病)으로 입원해 있어서, 목사님이 병문안을 갔
습니다. 잠시 기도와 담소를 나눈 다음,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 교인이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하더니,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1
시간 후, 그 교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 얼
마나 아름다운 죽음이냐?’고 하시면서 ‘내세를 믿는 사람의 죽는 모습은
이처럼 아름다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곽 목사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처럼 시끄러운 것은,
이 세상이 전부인 줄로 아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내세를 믿고
천국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의 생활은 확실히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밝았던 것
은, 천국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이 확실하다면, 이 세상에 대한 욕심도
사라지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질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들은 비겁하게도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부활
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
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대인지도자들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
었습니다. 세상적인 명예와 욕심도 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은 그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히 명령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
장은 그들을 불러다가 놓고 “우리가 당신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
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지 않았소? 그런데도, 어째서 당신들은 계속 백
성들을 가르치고 있는 거요?”하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순
종해야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답변한 것은, 그들이 죽음을 각
오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분명히 증언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죽음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내
버려두고 멀리 멀리 도망갔던 그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
음에도, 그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지내
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처럼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새로운 모
습으로 새롭게 바뀌기 위해서는
1.주님의 부활을 믿고, 그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기를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계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바란
다.’고 하면서 ‘예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최초로 부활하신 분이며,
두 번 다시 죽지 않으실 분(1:4)’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예수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기 때
문에,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그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
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수를 믿는 우리는 천국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다.’고, 사도 요한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하늘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그 사명과 책임을 열심히 감당할 경우,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예수 그
리스도를 뵙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만이
이러한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
도들은, 다시 오시는 주님 예수를 꼭 만나 뵐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하는 바입니다.
과학자 중에 ‘미카엘 패러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과학자가
머지않아 곧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신문사 기자가 찾아왔습
니다. 그리고 그 기자는 패러디에게 “당신의 영혼이 장차 어떻게 되리라
고 추측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패러디가 대답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러나 확신
에 찬 음성으로, “나는 추측이 아닌 확신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주께서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믿으면, 내 죄는 용서되거니와, 내 이름이 하늘
나라 호적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사망은 절대로 없습니다.
또한, 주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믿으면, 우리 또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그 진리를 믿는 자의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진리를 믿으면, 부활의 진리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 진리를 확실히 믿
고 의지할 때, 우리는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활의 진리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
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성령을 받고 서로 용서함으로써 평화를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이전처럼, 병자를 고친다거나 복
음을 전하시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로 하신 일은, 여러 제자들
에게 수시로 나타나셔서 ‘샬롬’을 외치시고, 식사를 함께 하시는 일이었
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
다. 그런 다음, 주께서는 ‘용서’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주께서 하신 일을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과 ‘용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평화’를 외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편안
히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일로 해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주께서는 제자들의 모
든 잘못을 다 용서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 제자들의 모든 죄를 묻지 않고 다 용서한 것처럼,
제자들도 그처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아서 용서하면 용서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겠
다는 마음으로 충만할 경우,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주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형을 언도받은 ‘벨마’라는 여죄수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흉악범으로, 자기 어머니와 약혼자를 포함해서, 사람을 4명이나 죽인 살
인자였습니다. 그러나 ‘벨마’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그녀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중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자, 자신이 그전에 저질렀던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기쁨보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
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했던 목사님이 그 근심의 원인을 알고 ‘바닷가
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벨마’는 어렸을 때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닷가 갯벌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있습니다. 게가 파놓은 작은 구멍
도 있고, 사람들이 놀면서 파놓은 구멍도 있습니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아주 거대한 구멍도 생기지요. 이것들이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하지만,
파도가 한 번 치면, 어떤 구멍도 남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
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입니다. 곧,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보혈의
능력인 것입니다.”
‘벨마’는 목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깨닫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피해를 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형을 당했지만, 그녀는 그 순간까지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벨마’처럼 살인죄까지는 짓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세상
의 모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신
이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거나 괴로워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주거나 고통을 준 일로 인해서 항상 불편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불편한 마음, 이 고통을 잊지 못하면, 부활
의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그 행적
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주님의 제자들은 스승이
신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한 번도
제자들의 배신을 문제 삼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기회
가 있을 때마다 ‘샬롬’을 외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잊고서 평안한 마
음을 갖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
고 용서의 특권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서는, 그 옛날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
게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의 죄도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하리라(요20: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되, 주님께서 허락하신 성령을 받고,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사람의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그리 머지않아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 모두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