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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책소개 스크랩 리뷰 메이드 인 경상도 : 김수박 지음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42 15.01.12 12: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난 ‘메이드 인 전라도’이다.  고등학교까지 전주에 머물다 이후로는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고, 사투리는 이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흔적만 튀어나올 정도로 희미해졌지만, 내 고향에 대한 생각은 깊이 뿌리박혀있을 수 밖에 없다.  살아오며 전라도출신이라는 것을 굳이 의식해야 할 필요나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내 뒤에서 나 모르게 출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전라도출신이라는 사실은 나는 한국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의식할 필요없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적어도 나 개인으로서는 말이다.

  어릴적 기억에 어른들은 전라도의 낙후를 이야기했었다.  경상도는 개발과 발전이 빠른데 전라도는 그만큼 못따라간다며 좀 더 빨리 개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리기만 한 입장에서 그런말이 사실 잘 들어온 건 아니었다.  옆에서 들은 그런 말들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놀던 거 그대로 놀기만 했던 내 눈에도 전라도는 그래도 개발이라는 변화가 있었다.  기차역이 이전한 자리에 기와를 얹은 웅장한 시청건물이 들어서고, 그 뒤로는 기찻길이었던 자리에 왕복 6차선의 웅장한 도로가 뚫리고 했으니 말이다.  그 개발의 자리에서 나는 여름밤이면 시청 옆의 작은 공원으로 가족들과 더위를 피하러 나갔고, 뻥 뚫린 신작로 옆 공사장에서 카바이트를 주워 물에 던져넣고 올라오는 기포를 바라보며 놀거나, 아스팔트 위에서 뒤늦게 두발 자전거를 배워나갔다.

  중학생이 되어서 가장 큰 화두는 역시 공부였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침 6시 반에 학교가면 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고등학교 3년은 내내 기숙사에서 살아야만 했다.  어른들은 ‘김대중 선생님’의 연설과 방송이 있을 때마다 악착같이 찾아가거나 텔레비전을 틀어 귀를 기울였고, 한달에 한두번씩 등화관제 훈련을 하면 이불로 창문을 막아놓고 한 집에 모여 518 민주항쟁 당시 학살당한 시신들의 비디오를 보며 놀라움과 분노를 표시했지만 그걸로 그 뿐이었고, 왜 그랬는가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에는 구체적인 대답은 없이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은 세상의 수많은 현상에 대한 궁금증과 파헤쳐보려는 노력에 대한 열망을 너무도 쉽게 무너뜨리고 잠식시켰다.  그렇게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한 결과는 대학에의 진학과 한동안 지독히도 머리를 괴롭혔던 정체성과 세상에 대한 혼란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래?’ 라는 질문은 받아본 적은 없었던 듯 하다.  지금도 종종 그렇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 일종의 약자에 위치해서였을까?  그렇다면 약자의 입장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며 읽어본 ‘메이드 인 경상도’는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과거의 나의 과거에 큰 차이가 없었다.  작가의 의도, 그러니까 ‘경상도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끌어낸 과거는 너무 허탈할 정도로 ‘메이드 인 전라도’의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약자의 위치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왜 그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허탈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전라도 사람들이나 경상도 사람들이나 결국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며 믿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힘’뿐이었다.  개발의 덕을 조금 보고 안보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 현대사의 발전의 최대수혜자들은 권력과 자본을 거머쥔 자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그 역시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가 중간에 이야기한 대로 전라도와 경상도는 ‘이간질’에 의해 역할을 강요당하고 희생당한 사람들이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  허탈함 안에서 간신히 건져낸 결론은 이간질일 뿐, 알맹이는 없었다.

  결국 이 작은 나라 안에서도 지배논리에 의해 분리주의 정책에 따른 이간질이 있었을 뿐이다.  한 체제 내에서 사는 사람들이란, 더군다나 엇비슷한 계급적 위치에서 사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란 그닥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힘을 믿고 아등바등했던 거고, 그렇게 살아가며 개발과 성장이 떨어뜨리는 떡고물에 감지덕지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어쩔 수 없이 눈 질끈 감고 못보고 모른척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 시대 어른들이 강조했던 공부는 그런 자신들의 삶을 아이들은 뛰어넘기게 하기 위한 기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 ‘별차이 없음’의 허탈함은 신기하게도 여전히 의식되지 못한다.  지역감정은 여전하고, 온라인 상에서는 출신지역을 두고 비하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그 결과는 그대로 선거결과를 통해 나타난다.  별 차이 없이 별거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별 의미없는 이간질에 도드라지는 감정적 결과를 보이는 나라, 사실 지구상에 산다는 사람들의 별반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감정은 허탈한 만큼 나약하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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