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판> 보이지 않는 이의 손길‥ [54]
이윽고 샤워를 마친 여자는 가운차림으로 욕실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금 막 샤워를 마쳐서인지 전체적으로 물기가 젖은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섹시하고 매혹적이었다.
거울 앞에 선 여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헤어드라이어로 젖은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문뜩 여자는 머리를 말리던 중 눈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본 것은 다름이 아닌……, 거울에 비친 허공에 떠 있는 식칼이었다.
그것은 일정하게 흔들거리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여자가 경악하며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식칼이 갑자기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목 언저리 바로 앞에 멈췄다.
"입 닥쳐. 주둥아리 닥치지 않으면 이걸 목에다가 쑤셔 넣는다."
나직한 종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여자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서 주변을 살폈지만, 투명인간인 종규의 모습이 보일 리 만무했다.
"크크큭……, 눈깔 열심히 굴려봤자 소용없어. 넌 내 몸을 볼 수 없으니까."
종규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누… 누구야, 당신? 정체가 뭐야?"
여자가 미간을 좁히며 묻자 종규가 능글맞게 웃으며 답한다.
"흐흐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텐데?
그보다 네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라고.
지금 넌 여기 혼자 있고 보이지 않는 '나'라는 존재에게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이야."
"뭐… 뭐라고?!"
종규의 말에 여자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바로 곁에 보이지 않는 낯선 사람의 존재를 실감했기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투명인간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이 낯선 남자가 어떤 짓을 할지 이 상황에서 뻔히 예상되었다.
역시 예상대로 종규는 그녀가 걸치고 있는 가운을 벗기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여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어 크게 저항했다.
그러자 종규가 들고 있는 식칼을 그녀의 목 언저리에 더욱 가까이 갖다 대며 소리친다.
"움직이지 마! 확 그어버린다!
피 보기 싫으면 얌전히 가만히 있어!
나도 시체랑 그 짓거리 하고 싶지 않으니까……."
"……."
그렇게 종규가 무섭게 위협하자 여자는 모든 걸 단념한 듯 저항을 멈추고 이내 조용해졌다.
"그래, 그렇게 얌전히 있어야 귀염받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보이지 않는 종규의 손길이 여자의 몸 구석구석을 매만지고 있었다.
여자는 저항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고만 있었다.
공포에 온몸이 얼어붙은 나머지 그저 눈물만 머금고 있었다.
"아놔- 이거 물건이 안 보이니까 할 때 불편하네……."
종규는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기분 좋게 여자의 몸을 잠식했다.
한편, 세크메트와 테리는 스탠드바에서 자리를 잡은 채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조직의 본거지에는 Bar 시설도 완벽히 다 갖추고 있기에 술을 마시러 차 타고 멀리 시내로 나갈 필요가 없다.
이곳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시설을 다 갖추고 있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둘 말고도 곳곳에 앉아있던 이곳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귓가를 간질이는 음악 소리에 심취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부드럽게 까딱까딱 움직였다.
반면에 세크메트는 피곤함에 다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테리는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미안. 피곤하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온 같아서……."
"알긴 아네."
세크메트가 붉은색의 칵테일을 들이켜며 심드렁하게 말을 잇는다.
"그래도… 칵테일 한 잔 마시면 잠이 올 거 같아."
말을 마친 세크메트는 테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테리는 세크메트와 두 눈이 마주치자 이상하게도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때 테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만다.
"되게 어색하네."
혼잣말을 하는 건지 세크메트에게 말하는 것인지 테리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뒷머리를 털어내듯이 긁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칵테일을 들이켜고 있던 세크메트의 푸른 색의 눈동자가 테리에게로 돌아섰기에…….
붉은 조명 아래에 비친 세크메트는 여성미가 풀풀 넘치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저기……, 이제 우리가 서로 알게 된 지 벌써 2년이나 됐잖아."
테리가 조심스레 세크메트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부터 계속 망설인 끝에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
"서로에 대해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웬만큼은 잘 알고 있잖아.
그동안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도 많았고……."
"……."
테리의 말에도 세크메트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리는 그녀의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생각하고 내뱉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중요했다.
"원래 여기서 이러면 정말 안 되는 거 나도 잘 알아.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말이야.
너… "
테리는 말을 흐리며 잠시 세크메트를 보았다.
세크메트는 테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놓은 붉은 칵테일 쪽으로 손을 살며시 갖다 댔다.
그녀의 손가락은 붉게 물들어 가는 유리잔을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야?"
뜬금없는 테리의 물음에 유리잔을 두드리고 있는 세크메트의 손가락이 멈춰졌다.
세크메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테리의 모습을 재미있단 듯이 쳐다보며 입꼬리를 지어 올렸다.
"후훗. 주제넘네. 나한테 대놓고 이름까지 묻다니……."
세크메트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도 알아. 여기서 자신의 본명을 함부로 말하는 건 규율 위반이라는 걸…….
그래도 가능하면 네 이름 정도는 알고 싶어.
오랫동안 같이 알았는데 서로 이름도 모르는 게 이상하잖아. 안 그래?"
"세크메트……, 여기서는 그게 내 이름이야.
어차피 내 본명은 7살 때 이후로 사용한 적이 없어.
살아온 날에 3분의 2를 코드네임으로 썼으니까 그게 내 이름과 마찬가지지.
그래서인지 내 본명은 나하고 느낌이 너무 안 어울려."
그 말을 끝으로 세크메트는 다시금 유리잔을 들어 올려 칵테일을 들이켰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여러 개의 총알이 동시에 세크메트의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세크메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서 총알들을 가볍게 회피했다.
덕분에 총알들은 세크메트의 바로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잔들을 맞춰 산산조각냈다.
세크메트와 테리를 비롯한 Bar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총성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Bar 입구 안으로 걸어들어오고 있는 티아마트와 옆에 그녀의 동료로 보이는 3명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분위기를 봐서 그 남자들 3명도 티아마트 같이 1급 에이전트로 보였다.
얼마 전 다른 활동지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요원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Bar에 있는 조직원들은 처음 보는 그들의 모습이 몹시 생소했다.
"저 녀석들 지금 누구한테 총을 쏜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누구지? 처음 보는 놈들인데……. 신참인가?"
"그럴 리가……, 아무리 신참이라도 이곳에서 겁도 없이 튀는 행동을 하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고.
그것도 하필이면 세크메트 님한테…….
무엇보다 신참한테는 소총을 사용할 권한이 없어."
곳곳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조직원들은 티아마트의 일행을 보며 술렁대고 있었다.
감히 세크메트한테 기습 공격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들의 술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티아마트는 들고 있는 소총을 세크메트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훗……."
티아마트의 짧은 미소와 동시에 그녀는 세크메트를 향해 소총을 마구 난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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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월드컵 기간이랍시고 어디 좀 놀러갔다 오느라 그동안 소설 못올렸네요.
아무튼, 월드컵 기간과 더불어 방학 재미있고 알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티아마트랑 한판하나요? 세크메트한텐 무리일텐데...
벌써 싸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