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10) 이스라엘의 왕 다윗 역대상 11장 1-3절
오늘 제목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는 대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일사천리로 왕이 되고, 왕국을 세우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목동의 자리, 악사의 자리, 그리고 막내의 자리를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멋지게 골리앗을 쓰러트렸고, 전 국민의 영웅이자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사울의 사위가 되면서 이제 곧 왕이 될 것 같았지만, 잘 아시는 대로 다윗은 바로 이때부터 고생길이 훤하게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악신이 들린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기 위한 삶을 살아가구요. 다윗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십수 년을 광야와 황무지, 심지어는 블레셋의 진영으로까지 도망 다니게 됩니다. 사울왕의 속좁은 질투에서 시작된 다윗 집안과 사울 집안의 싸움은 사울이 죽은 이후에도 7년 6개월, 다윗이 헤브론에서 단독으로 유다의 왕이 된 이후에도 끝날 줄을 모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두 집안 사이의 갈등 속에, 명분없는 쓸데없는 싸움에 죽어 나가게 되지요. 그러던 중 오늘 본문입니다. 놀라운 화해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분열된 남과 북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지요? 철천지 원수였던 이스라엘의 열지파가 스스로 다윗을 찾아와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언약을 맺게 되는데, 저 열 지파는 어떻게 다윗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요? 약 20년 동안 지켜봐온 다윗의 성품, 다윗이 보여준 리더십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대적이요, 원수의 수령이었지만, 오늘 그에게서 참된 왕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저 다윗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기에 이런 대통합의 역사가 이루어졌을까요? 오늘 저녁에는 다윗의 리더십, 범죄하기 이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던 다윗의 리더십, 그 특징과 힘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 중심의 시각(1절)에서 나온 공명정대함입니다.
여러분들은 공평하십니까? 누군가는 마음상하고 누군가는 분해할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처사, 불공평한 대우, 차별과 서열의 줄세우기가 저와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인생에서는 조금도 없으시길 축복합니다.
원죄를 가진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자기중심적 판단과 팔이 안으로 굽는 내로남불 사고구조, 그것의 중력과 관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평함과 공명정대함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예, 맞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공명정대한 마음과 능력이 마침내 원수 된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경심과 친밀감을 이끌어내게 되는 것이지요.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대상 11:1)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그동안 철저히 원수가 되었던 대적자들, 즉 유다를 제외한 이스라엘 지역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윗을 왕으로 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다윗은 자기의 원수들에게마저 이런 자원하는 추종을 이끌어 내었던 것일까요?
다윗의 위대함은 자기의 최대의 정적인 사울을 대할 때 결코 사적인 감정이나 자기중심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인간적 잣대의 정의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시각으로 판단했습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를 죽이려는 그 원수의 손에서 벗어날 기회를 포기하고 죽도록 쫓겨 다니는 신세를 감수합니다. 자신의 진실함이 분명하고 잘못이 없는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있음에도 결코 사울에게 손을 대거나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원수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기름 부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 자체의 악함과 자격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았고, 하나님의 선택과 임명에 중요한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시각을 지닌 사람, 다윗!”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도, 드디어 자기의 시대가 왔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들 앞에서 통곡을 하며 금식하고 장사를 지내며 조가를 지어 불렀습니다(삼하 1:11-27). 가장 좋아할 줄 알았던 다윗이 가장 슬퍼했습니다. 오히려 사울을 죽였노라고 다윗에게 상 받을 줄 알고 소설을 써서 보고한 사람을 처벌했습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했던 것이 이 다윗의 위대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자기를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 또는 대리자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이후에 다윗의 정적은 사울의 남은 아들 이스보셋이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그 후계자인 이스보셋의 군사와 다윗의 군사 간에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의 군대장관 즉 이스라엘의 장군 아브넬이 죽었을 때, 다윗은 상여를 따라가며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애도를 표했을 때, 모든 백성의 마음이 그러한 다윗을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을 오늘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삼하 3:31-39).
그리고 하나 더, 저 사울왕가의 마지막 왕인 이스보셋마저 자기 부하 레갑과 바아나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실질적으로 다윗의 정치적인 대적은 모두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 때도 이스보셋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들고 다윗에게 아첨하러 온 이들을 오히려 처벌하고 이스보셋을 정중히 매장해 줍니다(4장). 다윗에게 유리한 일을 행했고, 공을 세운 것 같은데, 다윗은 자신의 이권보다도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한결같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지나간 뒤였습니다. 그 오랜 기간 다윗을 지켜봐온 사람들이 드디어 다윗에게로 나아옵니다. 다윗의 인격과 성품에 매료됩니다. 결코 자신의 입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지 않고, 자기 호불호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은 편벽됨이 없는 사람, 늘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으로 공정하게 매사에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오늘 다윗에게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참된 왕을 보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과거의 원한과 묵은 감정을 극복하고 한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이유가 생긴다면 바로 이런 자아중심을 벗어난 공명정대함을 경험하게 될 때입니다. 이 사람이라면 비록 적이라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드디어 하나님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위대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하며 친밀감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지금까지의 모든 경계심을 허물고 무장을 해제하고 하나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게까지 되어야 진짜입니다. 나를 따르라고 지위로 권력으로 힘으로 윽박질러서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것이 리더십이 아닙니다. 공평과 정의를 따라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모든 사건을 판단하고 행하면 자연히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과 존경심마저 느끼게 하는 공평과 정의는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으로, 철저하게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 태도와 모습이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한결같이 변치 않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과 사람이 인정하는 참 리더로 세움받고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한 번이나 잠깐 동안 이렇게 공명정대 하는 것은 할 수 있는데, 그 꾸준함이 지속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바로 이 원칙과 시각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사건, 한 사건을 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하실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의 나라의 입장에서 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어떻게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됨됨이나 신실성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시길 원하는지에 주목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자기 몸의 고통이나 인격적인 모독의 차원에서 앙갚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하는 일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시며 중보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하나님 나라 중심의 시각 때문에 사울처럼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원수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실수와 배신과 죄 투성이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일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거룩함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역시, 세상과 다른 기준으로, 세상과 사람을 대할 때입니다. 분노하고 복수하고 응징을 해야하는데, 오히려 사랑과 용서가 베풀어지는 순간입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충분히 보복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대하고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하는 것을 보며 세상은 감동합니다. “이 사람은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음을 치며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밖에 없는 인물, 원수 되었던 사람들에게마저 마음과 지지, 신뢰를 얻는 진정한 리더십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늘 기억하시길 원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정말 진짜입니다. 나아가 직장의 동료, 그 모든 상하관계 속에서 공명정대 하십시오. 모든 순간과 상황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원수일지라도 하나님 만드시고 보내셨기에 사랑하고, 내 손익여부와 입장을 초월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해 늘 선택하심으로, 사람들에게 골육과도 같은 친밀감을 선물하고, 그렇게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저와 우리의 남은 생애 함께 천국길을 걷게 하시는 축복의 통로, 이 시대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분들,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과 용서의 사람들로 다들 서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능력있는 섬김(2절)에서 나오는 선한 영향력입니다.
그래요, 진정한 리더십은 능력 있는 섬김 즉 실력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직위나 자리를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그런 사회적인 직책과 자리에서, 혹은 계급에서 리더십이 나오는 줄로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타이틀이 아니라 타올입니다. 여러분, 지위만 있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명실공히 섬김과 영향력, 진정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저와 여러분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2절 상반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대상11:2) 사람들이 분명히 구분하는 두 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목상의 지도자와 실질적인 지도자의 차이입니다.,
직분과 영향력은 별개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왕의 직위는 사울이 가지고 있었어도 사람들은 왕의 역할과 영향력은 실제로 다윗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눈치보며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 즉 그들을 블레셋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한 이는 명목상의 왕인 사울이 아니라 진정한 리더인 실력자 다윗이었다는 것을 저들이 나아와서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이스라엘에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그일라 사람들에게는 아무도 구원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에 미천한 백성들의 고난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였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원해 줍니다. 그일라를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모험인지 참모들이 말렸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에 블레셋을 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의견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사실을 사울이 알고 독에 갇힌 쥐처럼 생각하여 다윗을 치러 옵니다. 이처럼 자신의 위기를 무릅쓰고 그일라를 구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일라 사람들은 결코 다윗 편을 들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을 구원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 사람들이요, 철저히 사울 편에 속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도 아니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누가 알아주던 말든 전심을 다해 그일라를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해 줍니다. 그리곤 또 도망 다니게 되지요.
이런 일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잊은 듯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듯 했는데, 없던 일로 다 덮어둔 줄 알았는데,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일이 여전히 그들 민족의 마음에 깊이 간직되어 있었고, 그 다윗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진정한 실력과 참된 사랑이 오늘 이스라엘 열 지파의 장로들과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기에 이르게 됩니다. 저들이 스스로 나나와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붓고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무런 세상적 직위가 없으셨습니다. 왕도 아니었고,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도 아닙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때문에 모함과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미움과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생명을 얻게 되고, 병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명력이고, 실질적인 능력입니다.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입니다. 직위가 아니라 실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0-11)”
그리스도인도 이래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세상에서 천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지도자들이나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무명한 자이나 유명한 자이며,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이지만,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보다 뛰어난 실력을 키우고 지녀서 많은 것으로 더 많은 이들을 더욱 큰 폭과 더욱 낮아지는 깊이로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3절)을 받고 말씀대로 준비되어온 사람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탄생합니다. 실력이 있다고 사랑이 많다고 다 리더십을 발휘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셔야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동안 다윗을 대적했고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사울을 따랐었고, 다윗과는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2절 하반절의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대상 11:2b)
무슨 말입니까? 사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 그동안 다윗을 멀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여러 가지 입지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정치적인 세력 다툼에서 유력한 자에게 붙어있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경제적인 이권의 문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지역적인 이기주의의 문제였든지, 자기들 가문의 문제였든지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으면서 거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머물고 서기보다는, 자기의 입장에서 편리하고 유리한 쪽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결국을 한번 보십시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기간이 짧으냐 길으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들은 그렇게 20년만에 말씀대로 합니다. 사울도 죽고 요나단도 죽고, 이스보셋도 죽고 아무도 의지할 사울 가문의 인물이 없어졌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할 영도자가 없게 됩니다. 결국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었노라고 스스로 시인하고 다윗을 왕으로 모시는 자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0-11)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시기와 때를 잠잠히 기다리면 됩니다. 다윗은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자기가 쟁취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잠잠히 공의대로 행했고, 작은 일들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대로 다윗을 높여 주신 것입니다. 거칠고 황량했던 다윗의 삶에 드디어 사명대로 말씀대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75:6-7)
보십시오. 다윗이 십대 소년이었을 때 약속으로 받은 이 말씀이 30세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온통 하나님의 약속과 너무나 거리가 먼 듯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왕은커녕 죽을 고비들만 무수하게 넘어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살아남기 위해 적진에 들어가 미친 척을 하며 침을 흘리고 문짝에 기대고 벽을 긁어야 했습니다. 고국에 발을 들일 수 없어서 블레셋에 빌붙어 배신자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이런 상황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과 주셨던 비전들을 의심하고 원망스러워했을 법도 합니다. 다윗은 힘겨운 현실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했습니다(히 11:1-3).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십수 년 모든 인고의 시간 끝에 마침내 놀라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그동안의 모든 설움과 고난과 아픔과 눈물을 잊을 수 있는 축복의 결과를 허락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일교회 성도님들, 지금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현실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왕 노릇하는 존귀한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공허한 것 같습니다. 아니 현실이 반대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야곱의 집안은 고생만하고 에서의 집안은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습니다.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유리하고 방황하고 고생하는 것만 같습니다. 가해자는 고개 쳐들고 다니고 피해자는 늘 숨어지내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다윗을 통해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 당신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 오래지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그들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스스로 들고 나와서 그를 왕으로 높이고 인정한 것처럼, 우리도 마침내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존귀히 여김을 받을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길이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마음과 걸음을 변치 않고 오늘도 그 손과 발이 악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금하고 지켜내는 것입니다.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며 허락하신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겨주시고, 능하게 하시며 맡겨주시는 은혜를 오늘도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이 시대의 다윗이 되십시오. 하나님 중심의 시각을 가지고 섬김의 실력을 쌓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셔서 오늘도 탄식과 절망이 끊어지지 않는 이 땅에, 울음소리와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이 땅에, 생명과 평화, 미래와 희망, 새로운 질서를 꿈꾸고 세워가는,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 택하여 세우신 진정한 리더들이 되십시오. 우리와 우리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대로 이루시는 복된 종들이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다윗, 진정한 리더십에 관한 선명한 기준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 중심의 공명정대함을 지닌 사람, 섬김과 온유함의 능력으로 출입을 돕는 사람,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충성되이 인내하여 마침내 인정받는 사람, 하나님 우리 모두가 이 시대를 위한 참 리더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힘주시고 인내하게 하옵소서.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굳건히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주님의 영광을, 놀라운 축복을, 오늘도 고통 중에 있는 이 땅의 무수한 백성들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