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3490 | 조회수 : 1892 다운횟수 : 0 |
작성자 | 운영자 | |
제목 | [육군제공] 대한민국 서쪽끝 GOP 부대 - 1사단 | |
홈페이지 |
철은 인간의 삶을 지탱해오고 확장시켜준 유용한 도구이다.
철이 군악병의 부드러운 손에 다다르면 유선형의 금관악기가 되어 연가풍의 사랑을 연주하고 다부진 어깨를 가진 소총수의 강인한 손에 들리면 강한 무기가 되어 적으로부터 내 조국과 생명을 지켜준다.
가느다란 군번줄의 조그마한 인식표로 모습을 바꾼 철은, 나를 대한민국 육군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해주고 또 다시 작은 십자가로 모습을 바꾼 철은 내 영혼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준다.
철로 제작된 총은 나를 적으로부터 지켜주고 철로 만들어진 인식표는 군과 내가 하나가 되게 해주고 철로 만든 십자가는 나를 세상의 고단함으로부터 위로시켜 준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에 명성 높은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미셸 투르니에가 글을 쓴 「뒷모습」이라는 책은 인간의 뒷모습에 대한 조용한 찬양과 경박하지 않은 감탄, 그리고 나지막한 속삼임을 담고 있다. 온갖 감정과 느낌이 드러나기 마련인 앞모습보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뒷모습이 오히려 진실하다고 책은 말한다.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는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초소에 남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지를 향해 총구를 겨냥하고 있는 내가 있기에 동료들은 전방을 주시하며 발걸음을 뗄 수가 있다. 그들의 발걸음과 내 두 눈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내 시선이 앞을 고정하고 있을 때만 비로소 그들의 발걸음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신화 속 아틀라스의 어깨처럼 그들의 견갑골은 강인하고 늠름한데, 결국 저 어깨 위에 사랑하는 가족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조국의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달려 있다.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된 소로(小路)를 걸을 때 전투화 바닥에 달라붙는 흙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심히 걷고 또 걷다 잠시 숨을 돌리느라 걸음을 멈추면 이미 말라 굳어버린 진흙은 바닥에 몇 겹의 지층으로 켜켜이 달라붙어 있다. 그 진흙은 우리 할아버지가 이 길을 걸어가며 흘렸을 피와 땀이 섞인 흙일 테고 멀리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가 탔던 말의 발굽마다에 묻었을 흙일 터이다. 그분들이 조국의 희망을 노래하며 걸었던 이 땅을 내가 또 걷는다. 이 길 저 밑바닥 어딘가에선 그분들의 발자국이 홀로 풍화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내가 새긴 발자국도 먼 훗날 이 길을 뒤따르는 어느 젊은 청춘의 발걸음으로 이어질 테다.
박모(薄暮)의 어스름을 뒤로한 채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는 장병의 발걸음은 바리톤 음색처럼 둔중하다. 허리를 숙이기 시작한 어둠이 이내 하늘을 검은 망토로 뒤덮기 시작하면 무전상태를 체크하는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희미한 숨소리처럼 엷게 들려온다.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는 장병들의 군장 무게는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하지만 군장 무게가 바로 내 생명을 지켜주고 내 조국의 평화로운 밤을 담보해줌을 잊지 않는다. 네모난 무전기 배터리는 야간매복을 지켜주는 산소통과 다름없고 가느다란 전선 하나는 매복지에서의 긴 밤을 수호해주는 생명의 줄이 된다.
마른 갈대가 미풍에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서걱거릴 때면 철책을 점검하는 장병의 눈과 귀와 코는 일제히 민감한 센서가 된다. 두 눈은 철책 너머를 뚫어지게 관찰하고 두 귀는 바람의 작은 결조차 놓치지 않고 미세한 공기의 냄새마저 빠짐없이 후각세포에 의해 포착된다.
모든 감각기관이 총동원되어 하늘과 땅, 앞과 뒤, 좌와 우를 경계하고 있는데, 순간 스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수색팀들은 팀장의 손짓 한 번에 일제히 걸음을 멈춘다.
방한두건 사이로 수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반짝거리며 전방을 주시한다.
후다닥. 물기 없는 풀들이 들썩거린다. 팀장은 주먹을 쥐며 일단정지를 지시한다.
시간도 같이 멈춘다. 다시 푸드득.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른다.
이상물체가 아니라 단순한 산짐승임이 확인되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팀장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다시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토끼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작은 바람이 불어와 긴장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준다.
팀장의 고요한 가운데 절도 있는 수신호.
이내 수색팀은 걸음을 떼고 멈추었던 시간도 감겼던 태엽을 서서히 풀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의 작전은 라르고(largo)의 속도로 더디지만,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바람이 휘모리 장단으로 사납게 몰아치면 겨우내 물기를 잃은 마른 풀들은 먼지처럼 곳곳을 휘젓기 시작한다. 강풍이 기어이 방한복과 방한두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때면 몸은 냉기를 견디기 위해 더욱 달아오르고 그렇게 뜨거워진 체온은 마음으로 전이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철책 너머를 응시하는 두 눈은 더욱 긴장되곤 한다. 가족들은 내게 "춥고 힘든 곳에서 고생 많다"며 안타까운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내 왼쪽 어깨를 감싼 한 장의 완장은 이곳이 GOP임을 알리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내 푸른 청춘을 더욱 싱싱하고 푸르게 만들어주는 상징이고 조국 수호에 심신을 바치기로 한 내 다짐의 들끓는 표상이라고. 한 자루 총을 어깨에 메면 저 산하(山河)가 안심한 채 고이 잠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늘도 내 발걸음 하나, 손동작 하나, 눈동자 움직임 하나까지 조심스럽게 만든다.
전쟁이 끝난 이곳에서 언젠가부터 지뢰가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녹슨 철조망에 달라붙은 작은 지뢰표시 철판은 이곳이 제 땅이니 함부로 침범하지 말라는 듯 실바람에도 호들갑스럽게 몸을 흔들어댄다. 하지만 푸른 이끼옷을 걸친 남루한 차림의 불상은 저 작은 것의 호들갑을 나무랄 생각이 없다는 듯 그 옆에 선 채로 온화한 미소만 머금을 뿐이다.
첫댓글 기사에 난 후배님들의 사진을 보니 또 옛 전우들이 생각납니다~~전진 1사단 장병들이여~~우리는 여러분들때문에 오늘 이밤도 발 뻗고 잔다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 "전투에서 패한 병사는 용서를 할 수 있어도 경계에서 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 즉 경계근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한 병사 한 병사의 철통같은 경계로 모든 국민이 마음 편하다면 이 세상에 그것 같은 보람이 어디 또 있을까~~전진사단, 1사단 홧팅...
연날 생각이 절루 나누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