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렴 (2020. 10. 27.)
많은 가지 수의 반찬을 늘어놓고 먹는 것보다 입에 맞는 한두 가지 반찬으로 놓고 밥 먹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국밥류의 음식을 좋아한다. 순댓국, 설렁탕, 곰탕, 소머리국밥, 내장탕, 해장국, 선짓국 등은 내가 즐겨 먹는 음식들이다. 이들 음식은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입에 맞는 김치나 깍두기만 있으면 더 이상의 반찬이 필요 없다. 고기나 뼈를 오래 끓여 우려낸 국물에 고기 첨을 넣고 밥을 더하면 환상의 조합이다. 여기에 김치, 깍두기를 곁들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최고의 한 끼 식사가 된다.
국밥류는 대표적인 한식 요리라 할 수 있다. 이들 국밥류는 뚝배기에 담아내야 제맛이고 멋스럽다. 다른 나라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뚝배기라는 그릇은 흙을 빚어 구워낸 옹기류로 질박한 멋이 있다. 모양새도 멋스럽거니와 여기에 음식을 담아내면 여간해 식지 않고 오랜 시간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국밥류 음식은 뚝배기에 담아낸다. 뚝배기는 가정집에서 여간해 사용하지 않는 그릇이지만 국밥류를 파는 음식점은 예외 없이 뚝배기에 음식을 담아낸다. 요즘은 뚝배기 모양을 본떠 만든 합성수지 용기를 사용하는 사례도 많은데 왠지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다.
내가 어려서 경험한 세상에는 가스레인지가 없었다. 장작불을 때서 불을 이용하거나 연탄불을 쓰기도 했다. 생활 형편이 나아진 이후에는 석유를 원료로 석면 심지에 불을 댕겨 쓰는 풍로가 많이 사용되었다. 조리용 불로 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쯤으로 기억된다. 가스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LPG라고 불리는 프로판가스가 주류를 이루었다. 지금은 대부분 도시가스를 이용하지만, 과거에는 기반시설이 취약해 1m 남짓 크기의 가스통과 레인지를 호스로 연결한 프로판가스를 많이 썼다.
음식점은 일반 가정집보다 앞서 가스를 연료로 쓰기 시작했다. 음식점은 업종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국밥류는 맛과 멋을 잃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의 고통도 시작됐다. 국밥류를 뚝배기에 담아 통째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가열하는 형태의 조리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 보급이 보편화 된 이후 대부분의 국밥류 음식은 펄펄 끓는 상태로 손님에게 제공된다. 뜨거운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끓는 상태로 뚝배기에 담아내는 음식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음식을 받아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그릇을 따로 준비해 음식을 덜어 식혀가며 먹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이다. 음식을 덜어 식힐 그릇이 없다면 아마 한 그릇의 음식을 먹는 데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만큼 나는 뜨거운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국밥류 음식을 좋아하지만, 뚝배기에 끓는 음식을 담아내는 것은 원치 않는다. 따끈한 온기를 느낄 정도면 족하다. 굳이 펄펄 끓여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너무 뜨거워서 맛조차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음식점 주인들에게 물으면 손님들이 한결같이 뚝배기째 끓여주어야 좋아한다고 한다. 모든 손님이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가진 것이다.
어린 시절 먹었던 국밥의 온기를 기억한다. 그때는 가스레인지도 없었거니와 뚝배기를 직접 가열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식을 뜨끈하게 데워 먹는 방법은 토렴이었다. 국물은 가마솥에 한데 모아 데워 온도를 유지한다. 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 소쿠리에 담아 식혀둔다. 손님이 국밥을 주문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아 넣고, 거기에 가마솥에서 끓는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를 반복하며 그릇의 온기를 높인다. 이것을 토렴이라 한다. 몇 번의 토렴을 거치면 국밥은 먹기에 딱 좋은 온도가 된다. 밥알에는 국물이 제대로 스며들어 풍미가 더해진다.
토렴으로 데운 국밥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난 그 온도가 너무도 그립다. 토렴으로 따듯하게 데운 음식은 먹기에 더없이 좋은 온도가 된다. 별도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서 식혀가며 먹을 필요가 없는 아주 적절한 온도이다. 토렴하면 음식 맛은 깊어지고 음식 온도는 사람에게 온기를 안겨주는 정도로 가열된다. 국밥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난 토렴을 그리워한다. 적당한 온기를 그리워한다. 몇 번은 식당 주인에게 뚝배기를 데우지 말고 토렴을 해달라고 주문한 적도 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가마솥도 없고, 이미 고아낸 국물은 식힌 상태로 보관해두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식은 국물을 뚝배기에 담아 통째로 가열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화끈한 것을 즐긴다. 매운맛을 즐기는 정도가 날로 심해져 일부 음식은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맵게 조리된다.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히 데워서 먹는 것이 양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온도의 음식을 즐긴다. 지금껏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았지만, 용기째 데워서 음식을 퍼럴 끓는 상태로 제공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대체 얼마나 매워야 만족하고, 얼마나 뜨거워야 만족할지 모르겠다. 매운 음식도 싫어하고 뜨거운 음식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해 못 할 부분이다.
난 토렴이 그립다. 가마솥도 그립고 장터의 온기도 그립다. 그 온기는 인간미를 느끼기에 가장 적합한 정도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현대인들은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른다. 무엇이든 화끈해야 하고, 넘쳐야 한다. 약간의 부족함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펄펄 끓는 국밥을 선호하는 것은 토렴의 따스한 온기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골 장터에 토렴해서 내는 국밥이 있다면 주저 없이 달려가고자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 온도라고 여기는 토렴 국밥을 먹으며 어릴 때 경험한 할머니의 손길을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