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움직임
시민단체들의 공천부적격자 명단발표로 마침내 국민주도의 정치풍토 쇄신작업이 물꼬를 트게 되었다.
많은 사람의 지지와 기대를 모으면서 시작한 모처럼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관계자들은 시중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판과 우려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오랜만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낸 이 기회가 만일 사소하고 지엽적인 이유로 좌절되고 만다
면 4년 후의 총선은 또다시 유권자들의 냉혹한 무관심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에 이번 운동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족을 덧붙인다.최근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시 의성·도덕성·구체성·능동성이라는 면에서는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전술적 차원에서는 보완되어야 할 점들이 있어 보인다. 돋보기 렌즈를 이용 햇볕을 모아 불을 얻는 과정은 이 경우 적절한 본보기일 것 같다.
국민의 지지와 기대는 하나의 초점으로 모여져 사회운동의 추진동력으로 승화되어야 하지 산만하게 흐트러져서는 안된다. 응집력의 농도는 첫술에 배부르려는 조급성이나 근본주의적 작위가 아니라 상식과 순리에 따를 때 짙어지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흔히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노동·경제분야에 치우쳐 있고 또 훌륭한 업적도 쌓았지만, 정치·민주분야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교회안팎으로부터 듣고 있다.
회칙들을 살펴 보더라도 새로운 사태 사십주년 어머니요 스승 노동하는 인간 등 친숙하게 접하는 문헌들은 거의 노동과 경제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회칙 지상의 평화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정도가 인권과 정치분야를 다루고 있는 문헌으로 귀에 익을 뿐이다. 실제로는 경제영역과 비슷할 정도로 정치분야에도 많은 문헌들이 있음에도 이같은 편견은 존재한다.
여하튼 이러한 교회 문헌들이 사회교리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또한 교회의 모든 사회적 가르침은 인격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라는 네 개의 사회원리를 바탕으로 엮어져 있다.
그리고 인간의 현세적 삶의 양식인 정치·경제·사회·문화·노동 등의 분야들은 예외없이 바로 이 네가지 사회원리가 그 기본원리로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어느 분야는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평가는 주관적일 뿐이다.네 개의 사회원리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다.
사물의 구조를 목적과 수단의 관계로 이해할 때 목적적 원리가 인격성이고, 연대성 보조성 공동선은 수단적 원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인간’을 위한 것이요 인격의 완성은 연대성과보조성이라는 도구적 가치에 의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 선을 소홀히 한 연대성이나 보조성은 참된 의미에서 제 구실을 할 수 없기에 공동선을 실질수단, 연대성 보조성을 형식수단으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의 기본은 인간 더불어 꾸준히 조금씩 평화라고 정리된다. 그런데 이 조건들은 바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인 사회원리 그 자체이다.
전인적 인격완성이 사회운동의 목적이요, 더불어는 연대성, 조금씩 꾸준히는 보조성이요, 평화는 공동선의 구체양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교회의 가르침이 정치·민주분야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 정치의 줄거리가 바로 연대성·보조성·인격성에 다름아니라는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잘못은 바로잡힐 것이다.
새 하늘 새 땅
새로운 상황은 하루아침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그 첫 번 시도인 4.13 총선에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당별로 1~3명 정도의 공천부적격 정치인을 시범적으로 선별하고, 선거를 통해 결과로 입증한다면, 다음 번 총선에 대한 유권자와 정치인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바뀌어 질 것이다.
이 방법이 모처럼 국민의 합의를 도출한 이번 노력이 그 불씨를 이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유권자의 힘이 구체적으로 입증된 토대 위에서 바뀌어야 할 정치인의 수는 점차적으 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해당성과 상당성의 틀도 다듬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도 첫 시도부터 다수선정이라는 전략보다는 소수선정이 부적격기준이나 공평성기준 결정에 있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고, 인간활동의 모든 내용을 규명하는데 있어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고 장려한다(사목헌장, 76항)는 가르침은 정치분 야에 있어 교회가르침의 구체적인 한 예이다.
문용린 전 서울대 교수님의 입각으로 필자를 교체합니다. 이번 호부터 김어상 교수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김어상 교수(서강대 교수·한국가톨릭사회과학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