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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운율 탐색
-리듬이 있는 시 창작을 위하여 / 김관식 1. 프롤로그
옛날의 시가는 정형적인 운율에 맞추어 노래하는 느낌을 살려 표현하였다. 한시 경우, 押韻, 平仄, 對句 등의 형식적 제약을 전통적인 운율로 규정하였다. 한자는 뜻글자이므로 그들 나름대로 음을 통해 시의 운율을 맞추었으나, 우리는 글자가 없는 관계로 오랫동안 그 음의 의미를 알지 못해 이두식 표현이나 한 자의 뜻을 새긴 훈을 달아 이해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또한 서구에서 시의 리듬을 단어나 음절의 강약, 단어의 배치, 구의 길이, 구두점, 행과 연의 끊김, 단어나 구의 반복 사용 등으로 리듬으로 시를 구성하고, 소리의 강약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형식으로 독자적인 운율 체계에 의해 시를 창작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등의 시가를 지칭하는 말에서도 암시하듯이 노래 부르기 좋은 형태의 운율구조에 의해 시가가 창작되었다. 노래하는 느낌은 우리말의 낱말 구성이 대부분 3자와 4자로 된 것들이 많고, 이들 글자의 자음이나 모음을 반복함으로써 운과 율로 시가를 창작해왔다.
운율은 운과 율의 한자어의 합성어로, 운은 일정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말하고, 율은 음의 고저, 강약, 장단이 규칙적으로 되풀이 되는 현상이다. 운율은 단어와 구절, 시의 행을 되풀이함으로써 속성이 유사한 행과 절을 대비시켜 같은 소리를 반복하거나 같은 낱말, 같은 어구, 같은 말의 짜임의 되풀이, 또는 소리내기와 쉬기 등을 하나의 단위로 하는 운율을 현대시의 창작에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시가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이 강조됨으로써 음악성을 무시하고 회화적인 창작방법론을 적용하고 있음으로해서 시를 낭송할 때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채 무미건조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운율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현대시가 이미지의 시각화를 특징으로 한다고 해서 운율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조지훈이 말한 “시상이 떠오르면 동시에 거기에 알맞은 운율이 떠오른다”는 시창작방법은 고전적인 시정신을 그대로 고수하여 시상과 함께 운율도 시창작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말이다.
운율은 음보, 음, 후렴 등이 있고, 시를 구성하는 행과 연에도 운과 율의 단위가 된다. 시의 운율은 외재율과 내재율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시의 운율을 규칙성에 따라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눈다. 과거의 시가가 모두 정형시적 구조였으나 우리나라는 시조를 제외한 현대시는 1910년 이후 신체시부터 자유시의 형태로 내재율에 의해 시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외재율과 내재율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2018년 봄 호에 실린 26분의 58편의 시와 시조를 통해 리듬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2. 한국 현대시의 운율 탐색
1) 한국시의 운율론
우리나라 시에서 운율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19년 김억이 1919년 1얼 12일자 태서문예신보에 발표한 「詩形의 韻律과 呼吸」에서부터다. 김억은 러시아 산문시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프랑스 시단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운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나라 시단에서 전통운율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후반 KAPF의 결성에 대한 대립적인 양상으로 민족 문학에 대한 관심이 촉발했고, 전통적인 문학 양식을 대표할 수 있는 시조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954년 『최현배선생환갑기념논문집』에 발표한 정병욱의 「고시가운율론서설」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율격 이론이 대두되어 강약론과 고조론, 압운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었고, 1960년대까지의 운율 연구는 전통적인 정형시를 대상으로 한 율격 연구가 중심이 되었다가 1970년대 이후부터 현대 자유시의 운율 구조를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에 음수율론, 강약률론, 고저율론이 공존한 가운데 율격론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현대시의 율격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지는 등 우리나라 운율 연구의 역사는 매우 짧다.
어찌했던 간에 우리나라 현대시에 나타난 율격은 시조에서는 정형율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고, 시조의 전통 율격을 벗어난 형태의 사설시조가 있었으나 이것도 정형율을 고수하고 있으며, 현대 동요시에서도 3·4니 3·4조,그리고 7·5조의 정형율이 지켜지고 있을 뿐 현대시에서는 시인에 따라 압운법, 의성어 의태어로 반복적 적용, 낱말이나 구절의 반복을 때때로 적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 내재율에 의해 시를 창작하거나 아예 내재율을 의식하지도 않고 이미지의 시각화에만 치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시가 아무리 회화적인 기법에 의존하여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지만 운율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 식물의 경우 뿌리가 시어의 의미한다면 줄기, 가지, 잎, 꽃과 열매 등은 이미지에 해당하고, 물관과 체관은 율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뿌리와 줄기를 통해 물과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면 식물은 말라서 죽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리듬이 깨지면 시는 유기체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시를 동물과 비교한다면, 동물을 지탱하는 뼈대는 시어의 의미가 될 것이고, 신체를 구성하는 살은 이미지, 그리고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피나 호흡기관은 리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가 돌지 않고, 호흡이 멈추면 생명활동도 멈추게 되듯이 율격은 시의 피와 호흡이다. 따라서 현대시를 창작하는데 율격에 대한 관심은 좋은 시를 창작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은 확실하다.
2) 운율의 의미
운율이란 시문의 음성적 형식으로 주기적인 악센트나 가락의 지속과 관련된 음악적 구분의 특징을 뜻하는 것이며, 리듬과 같은 말로 혼용하여 쓰기도 하지만, 운율과 리듬의 차이를 로트만은 운율이 객관적, 물리적으로 지각되는 반면 리듬은 심리적, 정신적으로 지각된다고 했고, 김대행은 율격은 언어 체계 안에서 언어 소리가 반복되고 규칙적이고 체계적이며 불변성을 갖지만, 리듬은 상이한 요소들이 재현하는 흐름이나 운동으로 형상화되는 언어 형상에 따라 가변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운율은 정해진 규칙성에 따르는 것이라면 리듬은 형상화되는 언어 현상, 즉 실현되는 시 텍스트에 따라 변할 수 있는 형태로 운율보다 리듬을 더 큰 개념으로 보고 리듬을 규칙성보다 상황에 따른 가변성을 가진 것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리듬은 광의 개념으로 시를 구성하는 형식이나 틀을 말하여 협의 개념으로는 시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로 다른 구성 요소들과 같은 층위에 있다. 그리고 리듬의 구성요소로는 음운, 음절, 단어, 어절, 구절, 행과 연, 이미지가 있으며, 시에서 반복, 병렬, 순환으로 실현된다.
3) 외재율
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로 시어의 규칙적인 배열로 일정한 음격에 의해 생기는 운율을 외재율이라 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근히 느껴지는 운율을 내재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시조에서는 정형적인 외재율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자유시는 주로 내재율로 시가 짜여진다.
외재율은 크게 음성율과 음위율, 음수율로 나누어진다. 첫째, 음성율이란 소리의 성질, 소리의 장단, 강약, 고저 등을 이용하여 운율을 형성하는 한시의 평측법이 이에 해당된다. 평측법이란 중궁어의 平聲, 上聲, 去聲, 入聲 등 四聲에서 平聲이 평이며, 나머지는 측에 해당되는데 평과 측으로 고저의 운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영시에서도 음성율이 잇는데, 영시의 근간을 이루는 운율은 강약음의 주기적인 반복으로 운율이 형성되는데 기본 단위가 음보이다 음보는 강세가 잇는 강음절 하나와 강세가 없는 약음절 하나나 둘로 형성되는데, 그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성율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한글에는 음의 고저성이 근간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음위율이란 압운에 해당하는 말로 시의 행중에서 특정한 음절을 선택해서 두운, 요운, 각운의 형태로 시어의 반복성을 가져오는 것으로 한시나 영시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를 우리나라 시에서도 적용하여 성공한 시도 있다.
셋째, 음수율은 음절의 수, 일정한 글자 수의 규칙을 말하며, 한시나 일본의 하이꾸, 우리나라에서는 가사 등에서 3·4조의 음수율을 지켜왔고 현재 시조에서 음수율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영시에서는 강약으로 이와 흡사한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4) 내재율
현대시는 내재율로 구성된다. 내재율은 내부에 숨어있는 리듬의 질서를 따라가는 무질서한 개성적인 리듬이다. 표현되는 사상이나 정서가 리듬의 흐름에 바탕을 이룬다. 리듬의 흐름이란 시 자체의 호흡이요, 언어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음성의 질서 로 자유시는 이를 바탕으로 시가 창작된다. 자유시의 기본 운율로 객관적인 리듬이 아니라 시인과 작품에 따라 각기 달라지는 개성적인 특성이 시의 내부에서 작동하여 개성적이고 독특한 리듬을 밖으로 표출해내는 리듬을 말한다. 특히 산문시에서는 내적인 호흡에 따라가는 내재적 리듬을 중시한다. 내재율로 구성되지 않으면 시가 되지 못하고 산문 그 자체가 되고 만다.
5) 시창작에서 운율에 대한 일반적인 오류
시인들이 시창작 과정에서 운율을 적용할 때 일반적인 운율에 대한 오류는 운율을 의식하지 않고 창작한데서 비롯된다. 운율을 의식하지 않는 까닭은 이미지의 시각화에 치중한 나머지 운율을 무시한 경우, 시적 대상의 표현에만 집착하거나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시어의 의미만을 쫓아가며 시를 창작할 때 등등 시를 보는 안목과 표현의 미숙 등 불성실한 습작과 잘못된 시창작 습관 때문이다.
시창작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 운율이 깨져버리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여러 문예지의 신인들의 추천심사 지도평을 써오면서 발견한 사례를 통해서 일반적인 오류를 기술해보기로 한다.
첫째, 시적인 형상화 능력이나 표현 기능의 미숙에서 운율이 무시된다. 시적 형상화나 표현기능이 미숙하다는 것은 습작기간을 거치지 않고 등단하려했거나 등단하고도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 시인들이 일반적으로 운율이 없는 시를 창작하게 된다. 관념어나 추상어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낭만주의적인 시 창작 습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동일한 시구를 각 연에 배치하는 외형율에 의존하여 자기 만족에 빠져버린 경우다. 이런 류의 시인들은 시창작과정에 있어서 자기 감정에 스스로가 도취되어 시 몇 구절을 반복하는 것이 마치 운율인양 착각하는 시 창작 태도를 보인다. 관념어나 추상어를 그대로 표현하면 절대로 리듬이 생겨나지 않는다.
둘째, 이미지의 시각화로 적절한 시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이다. 현대시의 특징이 관념을 배제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명징하게 시각화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시각화했더라도 가장 적절한 시어를 내적인 질서에 의해 배열하면 리듬이 살아나기 마련인데 리듬은 완전히 무시하고 이미지만을 그려내려고 할 때 운율은 깨져버린다.
셋째, 사물의 외형묘사에만 집중하여 장식적인 수사를 동원할 때이다. 대부분의 습작기에 있는 시인들은 시적 대상을 화자와 일체화하지 못한다. 시적 대상에 감정이입하거나 간접화하여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데 자기의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화시킬 줄 모르기 때문에 시적 대상에 자기의 주관적인 감정을 섞여 짬뽕 같은 시를 창작한다.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장황한 수식어에 의존하는 시를 쓴다. 예를 들어 “님이 떠난 화단에 그때 그 미소 아름다운 님의 자태와 향기 같은 꽃”이라는 억지스러운 시아닌 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님”, “미소”, “아름다운”, “향기”는 관념 그대로이다. 관념어를 나열하여 시를 구성했으니 리듬이 생겨날 수가 없다. “그때 그 미소”라는 구절은 특정한 시점이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를 쓰는 사람만이 알고 있는 시간적인 배경일 뿐이다. 그리고 “∼같은” 앞에 장황한 수식어가 붙어서 마지막에 “꽃”을 수식하고 있으니 리듬이 죽어도 수십 번 죽어 꽃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게 되는 등 사물의 외형이나 옛 기억을 피상적으로 떠올려 말하려는 재현적인 진술은 이미 시로써 의미을 상실했을 뿐더러 리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시의 표현에서 “∼하던”, “∼는” 등은 꾸미는 말이다. 이런 수식어에서는 리듬이 죽어버린다. 되도록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고 명징하게 끊어서 “∼다”로 진술해야 리듬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
넷째, 시의 리듬은 감상주의적 정서나 애상적이고 그리운 정서 자체라는 착각에서 오류를 범한다. 정서와 리듬을 혼돈한다. 애상적인 분위기로 시를 쓰면 그 자체가 리듬이고 운율이라는 착각 속에서 많은 시인들이 운율이 없는 시를 쓰게 된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크게 오류를 범하는 일반적인 오류 사례를 들었다. 어디까지나 운율은 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을 때 식물의 물관과 체관으로 흘러가는 물과 양분이고, 동물의 피와 호흡이다, 식물의 물관과 체관에 없으면 식물은 죽고 만다. 동물이 피가 흐르지 않고 호흡이 고르지 못하면 병든 동물로 머지않아 죽게 된다. 운율이 없는 시는 감동이 없다. 그렇다고 낭송시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이지만 그리운 대상, 과거의 동일 경험의 정서를 끌어내어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토로로 청중들에게 순간적으로 슬픈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가 운율이 있는 시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작 낭송시의 대부분은 “어머니”나 “고향”, “떠난 옛 친구나 애인” 등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장황하게, 또는 횡설수설 늘어놓아도 슬픈 음성으로 분위기를 조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낭송시를 활자화시켰을 때 시적인 형상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수식어만 늘어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의 운율은 시적인 내적 질서에 의한 것이지 분위기를 연출하는 성우의 목소리나 배우의 몸짓이나 표정이 아니고 이러한 것들은 비시적인 범주 안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현대시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나마 현대시의 원리에 맞게 시를 쓰겠다는 생각과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자기를 돋보이고 과시하려는 시인들이 많다. 이와 같은 시인처럼 고상한 행동을 연출하기 위한 참으로 넌센스는 낭송시의 즐거움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현대시의 특성에 맞는 시를 쓰겠다는 의욕보다는 우선 남에게 자신을 돋보이는 방법으로 하나로 낭송시의 분위기에 빠져드는 등 명리적인 가치만을 쫓는 시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은 대부분 시를 습작하다가 너무 어려워 도중에 포기해버리고 시를 쉽게 생각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적 오류다. 그러나 좋은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능히 극복하여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시를 많이 읽고 꾸준히 습작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며, 시인의 칭호가 한번으로 주어진 것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칭호가 아니라 시를 쓰지 않으면 소멸되고마는 진행형의 의미인 것이다. 시인은 시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쓰면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과정에 붙여진 칭호이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날마다 출퇴근길 차를 운전하고 살아가고 있으나 운전수라고 부르지 않고 운전할 때만 운전수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운전수란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볼 때 다른 직업을 가기고 생활하면서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시를 쓰는 우리나라 시인들은 엄밀하게 따지면 아마추어적으로 활동하는 시인들이 대부분이다. 전업시인이 아니면서도 시인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은 시를 쓸 때만 해당되는 것이지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칭호를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논리임을 다같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아예 시를 쓰지도 않거나 일 년에 겨우 서너 편의 시를 쓰고 시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의 허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각자가 생각할 문제이다.
3. 이 계절의 시, 백승언의 시조 「님」 외 9편
‘님’은 우리나라 시가에서 많이 등장한 시어였다. 우리나라 시가문학에서 남녀 간의 사랑의 대상으로 님은 님에 대한 정과 사랑, 그리움 등을 주조로 한 것에서부터 고도의 플라토닉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가치를 반영한 ‘相思型’의 시가와 육체적 욕망이 바탕이 되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반영한 ‘肉情型’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相思型은 부재하는 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았고, 肉情型은 현존하는 님과의 서로 사랑을 조건적으로 노래한 시가들이었다.
현대시에서 ‘님’이라는 용어를 시어로 사용하는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것은 ‘님’이 추상어로서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고 사어가 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님’의 시어의 한계를 결정짓는 까닭은 바로 절대왕정국가나 제국주의 시대에는 ‘忠君至情이나 丹心의 대상으로서의 님’을 문학작품 속에서 등장했으나 오늘날 민주주의가 활짝 개화된 시대이고 외국과의 교류와 왕래가 빈번한 시대에 ‘忠君之情 이나 丹心으로서의 님’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현대시에서는 님은 사어가 되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습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에는 아직도 이러한 ‘님’이 충성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상은 어디까지나 시대착오적인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개인의 자유와 삶이 보장되고 향유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절대왕정의 산물로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전체를 강조하는 ‘忠君至情이나 丹心의 대상으로서의 님’은 시대착오적인 정서일 것이며,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물질주의 시대에 모든 가치를 물질적인 가치로 수량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과 別恨의 대상으로서의 님’은 존재할 가치의 정당성을 잃어버렸으며, 이제는 고어나 사어로 변질 되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리움이나 연정의 대상을 갈구하는 ‘임’에 대한 시어의 사용은 사회윤리적인 측면에서 재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가정의 가장인 시인이 과거 연정의 대상을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요즈음 번지고 있는 미투운동과 상반된 과거의 문화에 대한 향수라는 점에서 현대시에서 사용해도 되는지 다 같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백승언의 「님」은 초장과 중장, 종장의 대부분이 “기도 손”을 꾸미는 형태로 짜여졌다. 그렇다면 시제도 “손”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참외서리」는 어린 시절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았고, 수원역 모퉁이에 있는 「노숙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노숙자의 심정을 추정하여 “어머니가 그립다”로 표현했으며, 「개망초」를 보고 명칭에 대한 생각을 펀 기능으로 살려 감정이입하여 표현했다. 「박꽃」의 외형을 보고 자신의 감정과 흥부의 이야기를 인유하여 “로또 꿈”을 품었다는 주관적인 해석으로 종결 지었고, 「잡초」는 왕후장상을 인유하여 인간의 신분 상승이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잡초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였다. 그리고 「숯」은 숯의 외형 따른 느낌을 기능적 측면으로 긍정적인 표현했으며, 「아내 마음」은 아내의 입장이 되어 아내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시였다. 또한 「경칩」은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속담을 인유하여 과장법으로 “물속에 퐁당 들어가 천 년 잠을 깨운다”고 재미있게 표현했고, 「추억」은 막연한 추억을 떠올리며 가슴을 조이는 상황을 그렸으나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되지 않았다. 시제가 관념어일수록 시는 구체적인 상황이 진술되어야 한다. 시제는 관념어나 추상어로 붙이지 않는 것이 좋고 시의 전체를 상징하는 소재나 구체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싱징적인 낱말이 좋다. 따라서 시어가 관념어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추억의 상황이 제시되었다면 더 공감이 컸을 것이다.
4. 열린 공간의 시, 시조 25분의 48편의 시평
열린 공간 시에는 22분의 시 42편이 실렸다. 42편의 시에 운율을 어떻게 적용했느냐는 하는 관점을 중심으로 시창작의 표현방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위환의 「겨울을 지낸 나무들」은 시는 묘사와 진술에 의해 표현했는데,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온 나무들의 모습에 대해 장식적인 수사와 설명으로 표현한 시이다. 설명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고, 진술은 시인이 경험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화자를 통해 있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대상과 관련한 경험을 진술하는 것이다. 진술과 설명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시를 바로 쓰는 길이며, 시창작에 있어서 시어의 의미를 쫓아가며 시를 창작한 결과 의미에 집착하다보니 운율보다는 장식적인 수사에 의존하고 말았다. 시제도 시의 내용으로 보아 “겨울을 지낸”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 운율이 죽어버렸다. 간결하게 「봄 나무들」이라했으면 더 공감이 컸을 것이다. 「기다림」은 시제부터 관념어다. 시제가 관념어 이면 시를 읽지 않아도 시의 내용이 관념적인 진술일 수밖에 없다. “예쁘다”는 형용사, “사랑의 눈빛”, “꿈초” 등 모두 관념이고, “사랑의 눈빛으로 보라”라는 시구를 4행의 끝부분에 배치시켜 반복함으로써 외재율로 운율을 살리려고 하였다.
김기현의 「창호지 문」은 시제부터 창호라는 시어와 문이라는 시어는 동일한 뜻을 지닌 문의 의미기 담겼음에 유의하여 적절한 시어(한지문살, 창호 등)를 선택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장황한 수사에 의존한 시 표현은 물론 “흥분”, “부귀영화”, “미소”, “기쁨과 아픔”, “영혼”, “선” 등 관념어나 시어로 적합하지 않는 사어들로 인해 운율이 없는 시가 되었다. 「겨울이 깨졌다」는 전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진술했을 뿐이다.
박영춘의 「의자」는 독백적 의문형 진술로 1연의 1,2행 “〜것인가”, 2연의 1,2,3,4행을 반복하고, “〜하리라”라는 독백적 다짐형 진술로 3연의 1행과 끝연에서 반복, “〜할지니”, “〜하나니”의 고어체 어투를 3연 4,5행에서 반복하고, 그 밖에 “자리”라는 낱말을 3행에서 반복함으로써 외재율로 리듬을 살리려고 했으나 장식적인 수사로 리듬을 살리지 못했다. 또한 「초록빛 사랑」에서도 2연에서 “너무나 〜이 〜는 사회”를 4행에 걸쳐 반복하여 리듬을 살리려고 했으나 “사랑”, “나약”, “삶”, “의욕”, “생동”, “진실”, “정직”, “믿음”, “소망” 등의 한자 투의 관념어나 사어가 된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내재율이 모두 드러나지 못했다.
장문정의 「송전탑」은 밀양 송전탑 사건을 시제로 삼았으나 시적인 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시어로 진술했다. “경관 훼손”, “환경파괴”, “건강 위협”, “기본권 침해”, “수모”, “압박”, “고압 전류” 등 한자 어투의 관념어로 시를 구성함으로써 운율이 파괴되었다. 관념어나 추상어 또는 시어로 적합지 않는 시어는 리듬이 생겨나지 않고 오히려 삭막한 느낌만을 가져올 뿐이다. 「화해」는 차를 끓일 때의 경험을 자세히 관찰하여 자신의 심정을 노래했으나 마지막 행을 “개운찮은 마음은?”하고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시는 암시만 해야지 화자가 직접 자신의 마음을 독백적 호소형 의문을 제시하면 독자는 답답해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이지 애매모호한 자신의 심정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것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독백적 진술이기 때문이다.
이남철의 「그늘 속의 꽃망울」은 꽃을 바라보고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이입하여 장황한 수사에 의해 압축하지 않고 진술함으로써 운율이 모두 깨져버린 상태다. 「석수장이와 밥장수」는 전래동화 구성방법으로 관념 속에 있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구체화시키지 않고 전개해나갔다. 이러한 동화시는 백석의 동화시처럼 구체적이고 정감 있는 이야기로 전개되어야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지 환상적인 이야기로 상징화하는 방법으로 전달하려면 독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연제진의 「괘종시계」는 사라져가는 괘종시계를 통해 옛문화의 소멸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했으며, 「두릅」을 통해 봄이 오는 느낌을 진술했다. 장식적인 수사에 의하지 않고 “〜하다”로 진술했기 때문에 운율이 깨지지 않고 그런대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윤태운의 「어사리」는 옛날 전통방식의 고기잡는 죽방령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했으나 더 간결한 이미지로 진술했더라면 공감의 폭이 커졌으리라는 생각이다. 「어머니의 6월」은 돌아가신 어미니의 말씀을 사투리 그대로 재현하여 실감나게 구성한 시이다.
이재홍의 「이제 봄도 머지않았습니다.」는 화자의 심정을 권유적 진술로 토로한 시고, 「겨울잠 자는 나무」는 진술보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설명했기 때문에 시적인 내재율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해암의 「비의 눈물 빛」은 시제부터 구체적인 것을 추상화시켰다. 비는 구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눈물 빛과 결합하여 관념화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좋은 시는 관념을 구체적인 사물로 보여주는 시인데 구체적인 사물을 오히려 관념화시켰다. 시제가 그러하니 시의 내용도 관념적인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슬픈 인연”, “고요의 그리움”, “생각의 잎” 등의 관념어와 관념어의 결합은 또 다른 관념으로 나아가게 된다. 내면의식은 명확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전달해야 운율이 살아나는 것이다. 「경진년 생각」은 “고달퍼라”, “님이신가” 등의 고어체의 시어와 정서상태의 관념 “그리움”, “서러워” 그리고 “꿈”, “님”, “망각”, “장생불사” 등의 관념어로 시를 구성하고, 1연을 3행씩 배열하는 외재율로 의존하였으나 운율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종래의 「새해 아침」은 새해 아침의 소감을 독백적 진술로 풀어냈으며, 「대왕암 앞에서」는 대왕암의 정경에 느낌을 감탄조로 그려냈다.
곽월규의 「3월의 눈」은 엊그제 내린 눈을 미화하여 “노오란 금가루”로 은유하여 표현했으나 “춘삼월”과 같은 사어와 “사랑하는 그대” 등의 통상적인 대상으로 한정지었고, 「축제」는 주관적인 감정을 장식적인 수사로 토로함으로써 시적인 긴장감이나 리듬을 살려내지 못하고 이완시켰다.
천윤식의 「방포 앞바다」는 방포 앞바다를 본 느낌을 산문시로 풀어냈으며, 「진실」은 시제가 관념어일뿐더러 시의 내용을 관념적인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장식적인 수사에 의존함으로써 시적인 리듬을 잃어버렸다.
곽희옥의 「조카 결혼식」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조카 결혼식을 참가하여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진술하는 형식의 시이다. 「커피」는 산문식 구성으로 설명이 지나쳐 시적인 리듬을 잃어버렸다.
박지윤의 「내가 있다는」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관념적인 설명을 곁들여 그려냈으며, 「도시의 겨울」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기술한 관념시다. 관념시는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느님」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늙은 悲哀다./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설점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관념 상태를 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구체적인 사물로 그려내야 운율이 살아나는 것이다.
박재학의 「봄」은 봄에 대한 발상을 “네가 사라진 별자리 속으로/나를 집어넣는다”라는 물아일체 상황을 시적 대상에 자아를 일체화시키려는 시도가 돋보였고, 「별은 풍경으로 남고」는 몰아일체의 경지에서 자기 존재를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미루나무 끝에 네가 피고 있었다”라고 구체적으로 진술함으로써 내적인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시였다.
이석기의 「복수초」는 언 땅을 헤치고 꽃을 피우는 복수초에 대한 느낌을 담담하게 진술한 시이고, 「일흔의 중턱에 서서」는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회한을 담담하게 진술한 시로 “이제 노루 꼬리만큼 남은/나의 여생을/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인생의 덧없음과 노년의 가슴 찡한 외로움에 대한 공감을 여백으로 남기고 있다.
이춘순의 「흰 눈이 내리면」은 겨울철 참새 잡이에 대한 추억을 그렸고, 「고드름」은 고드름을 통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재생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시이다.
양순석의 「눈을 감으면」은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것들을 “고향 하늘”, “목화송이”, “메밀꽃”, “고향 친구”, “딸들의 웃는 얼굴”로 시간차 순으로 사향의식과 현재의 상황을 배열하여 구성한 시이며, 「낙엽」은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통상적인 사고와 상식으로 그려냈다.
정명숙의 「골프 치러 가는 날」은 골프 치러 간 날 비가 와서 낭패스런 경험을 여릴 적 소풍 날 비가 왔을 때의 경험과 비교하여 진술한 소품적인 시이며, 「보고 싶다」는 정서의 상태를 관념적으로 상상하여 진술했으나 보고 싶은 대상이 확실한 이미지로 묘사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리승만의 「영원한 동반자」는 매일 마침 사용하는 전기면도기에 대한 단상을 진술한 생활시이고, 「토끼풀 꽃목걸이」는 어린 시절의 사향의식을 담아낸 시이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은 누구나 가슴 속에서 한 편의 시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이러한 추억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순간을 아름답게 살다가 반추하며 살아가는 노년기는 지난날들이 그리움으로 남으나 현재의 순간은 사후에 별로 남아 추억을 이야기 할 것이다.
정옥순의 「한 해를 보내며」한 해를 보내면서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노년기의 담담한 심정을 진술했다.
정장수의 「봄맞이 집 단장」은 봄을 맞아 집안 곳곳 새로 단장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과 그때그때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진술했다.
열린 공간 시조에는 세 분의 시조 6편이 소개되었다. 신태진의 「불광천 애버들」은 새벽 산책길 불광천에 걸으며 혹시나 애버들이 나의 발걸음으로 새순이 꺾어질까 걱정하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시조이며, 「삼각산의 하루」는 전통적인 시조풍으로 삼각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삼각산의 하루를 풍경으로 그려낸 시조이다.
허원의 「어젯밤 꿈에」는 꿈속의 상황과 놀이공원의 그네 타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일체화시켜 역동적으로 그려냈으며, 「마천루의 추락」은 금 수저 물고 살다가 추락한 사람들의 모습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세태풍자한 시조이다.
임선영의 「봄비 내리는 날」은 봄비를 통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다정한 느낌을 노래했으며, 「미소 짓는 복수초」는 시적 대상인 복수초를 “그 옛날/첫사랑처럼/덜컹대는 심장이여”로 화자의 내면으로 끌어와 일체화시켜 공감을 일으킨 수작이다.
5. 에필로그
이번 호에서는 리듬이 있는 시창작을 위하야 한국 현대시의 운율에 대한 탐색을 한다는 비평적인 관점에서 화백문학 208년 봄호(71호)에 실린 이 계절의 시 10편을 포함하여 열린 공간에 실린 시, 시조 등 모두 스물 여섯 분의 58편의 시를 대상으로 운율의 적용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문제를 설정해놓고 살펴보았다.
먼저 운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창작을 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한국현대시의 운율론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운율의 의미, 외재율과 내재율, 시창작에서 운율에 대한 일반적인 오류 사례를 들고 시창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시의 운율문제만을 지적했다.
시의 습작은 인생의 과정처럼 꾸준히 이루어져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시를 읽고 다양한 발상과 표현 방법을 익히고,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습작이 요구는 시인에게 주어진 숙명적인 과제인 것이다. 습작은 마치 운동선수의 트레이닝과 같다. 운동선수가 연습을 게을리 하면 경기에 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꾸준한 노력으로 점차 시를 보는 안목을 키워가고 표현 기능을 익혀 가면서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이지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피상적으로 쉽게 사물을 인식하여 상투적인 표현이나 사어를 함부로 남발하는 시작활동은 등단하지 않는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인은 시인다운 참신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며,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적어도 시상을 떠올리고 연상 작용에 의한 유사이미지 끌어오기, 변용시키기, 운율의 적용 등등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 구체적인 설계를 거치는 형상화의 작업과 어떤 시어가 적합할지 적절한 시어를 고르고 표현하는 과정을 완벽하게 거칠 때 좋은 시가 탄생되는 것이다. 시는 미사여구로 사물의 외형을 시각적 이미지로 장황하게 수식한다거나 자기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관념의 상태를 명징한 유사한 대체 사물의 이미지로 끌어오거나 변용시키고, 일체화시켜서 보여주는 것이지 장황하게 진술로 풀어놓는 것이 아니다. 시는 언어의 압축이고 이미지의 시각화라는 현대시의 기초적인 원리를 늘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강흥기, 『현대시의 운율구조론』, 태학사, 1999.
2. 홍문표, 『현대시학』, 양문각, 1995.
3. 차호일, 『현대시론』, 역락, 2000.
4. 이희춘,『문학의 이해』, 중문,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