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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인 듯 하다, 아걷반 후기.
다른 이유가 틈입될 리 없다. 필시 게을러져서일 것이다.
아 물론, 늙은 PC 탓은 있다.
아니지, 얘가 늙은 탓이라고 하기엔 쪼끔 껄쩍지근한 거지.
아걷반의 답사 사진과 수업 사진을 거의 10기가 넘게 구겨넣은 내 횡포를 모른 체 하다뉘..
요는, 느려졌다. 노트북이. 지금 이 사진을 올리는 데만 거의 2시간이 걸렸다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나.
기계나 사람이나, 비워야 한다.
비워야 원활하고, 비워야 새로운 게 채워질 수 있다.
2013년 가을학기의 마지막 수업장소는 섬이다.
금오도(金鰲島)다.
자라를 과연 닮았는가. 잘 모르겠다.
여수 돌산도의 남쪽에 버팅기고 떠 있는 섬, 금오도로 가기 위해 신기항으로 차를 몰았다.
망했거나 말거나, EXPO 치른다고 잘 닦여진 도로 탓에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신기항에서
우리를 반겨준 이는, 자라가 아니라 금빛 강아지였다.
이 뇨석은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노점 앞에서 우리에게 꼬리를 치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빠져나갈 수 없는 외통수, 녀석을 모른 체 하기 위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노점이 하나였으니깐.
치밀한 녀석... 후후.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허기진 배를 채웠다, 오뎅.
구례 아그들 아침밥 먹인다고 3주째 오뎅을 접했던 나는 사양하고 싶었으나, 역시 선택의 여지는..
아, 작년에도 보았었지. 저 교량작업.
어느 기업에서 맨날 외쳐대는 '지구의 가치를 바꾸는 기술'을 지닌 대한민국의 토목 내공이라면,
아마 내년 여름쯤이면 다 이어질 수 있으리라.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리를 태운 배 안이다.
왼쪽이 꼬사리님이고 오른 쪽이 친구님 되시겠다.
객실 안 풍경.
유심히 보시라. 왠지 낯이 익지 않은가?
그렇다. 구례 분들이다. 구례 광의면에서 오신 분들을 자라섬 가는 배 안에서 떼(?)로 만난 것이다.
때마침, 월드컵 조 추첨이 중계되고 있었다.
음..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 정도면,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머, 그래봐야 또 경우의 수가 남발하겠지만.
어차피 인생사, 운7기3이라 하지 않던가.
글쎄..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뚝뚝한 게 훈훈한, 이른바 '홍명보호'라니 함 믿어 봐야지 어쩌겠나.
진도농협에서 나오신 *과장님이다.
진도산 울금을 홍보하러 이 먼 곳, 금오도행 배 안까지 왕림하시었다.
직장은 진도지만 경상도분인 과장님 왈, 울금의 원산지를 아시는 분?
...께는 저 홍주가 선물로 지급된다...고 하셨는데,
구례에서 오신 분이 '인도!!' 를 단번에 맞추고 홍주를 받았다.
앞서 말씀드렸던 교량공사다.
5년 전쯤이었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4대강 공사를 추진할 즈음에 어떤 분이 그랬다.
대한민국 헌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특히 1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은 토목공화국이다' 이렇게.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참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봐도 멋진 녀석이야.
왜냐, 그 말씀은 '레디앙'에 투고한 글에서 내가 했었기 때문. ㅋㅋ
저 다리는 돌산도와 화태도를 이을 것이다.
월호도와 대두라도를 거쳐 금오도까지 연륙교가 완성되면,
아마 미래의 아이들이 금오도에 배 타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묻겠지. 녜? 거길 배 타고 다녔었다고요??
지금도 수많은 섬과 섬들을 교량으로 잇는 공사가 번다하지만,
다리로 이어진 섬이 과연 섬일까?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접근하기 힘든 고립성으로 인해 대대로 '섬'이었다.
그 고립성은 섬만의 독특한 사람살이와 문화를 배태하고 질기게 내림해 왔었지 않나.
차로 씽씽 드나드는 섬은 이제 섬이 가진 원형질을 잃어갈 것이다.
그래서, 저 교량공사는 남쪽 바다에 뿌려진 수천개의 섬들을 육지로 만드는,
그리하여 섬이지만 더 이상 섬이 아닌, 종국엔 인간의 욕망을 바다 위까지 실어 나르는,
자본의 위력으로 아련한 섬에의 추억을 말살시키는 시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분들이 필시 구례 분들일 거라는 추측의 실마리를 제공한 관광버스 되시겠다.
차 뒷편을 보시면 아실 것이다. 'nam do tour' 즉 '남도관광'이다. 순천과, 주론 구례에서 운행되는 차량이다. 그나저나, 길긴 하구나, 버스.
항시 느끼는 거지만, 아침바다는 생동감으로 넘친다.
글쎄, 조업을 나가는 어선들 탓일까..
이 배는 바닥을 긁어 올려 꼬막을 채취하고 있었다.
농업과 임업으로 먹고 사는 구례를 떠나와 어업이 삶의 밑동력인 여수바다로 왔어도,
그저 성실하게 노동하는 사람들을 눈 밖에 두기란 쉽지 않았다.
땀 흘리는 대상이 땅이냐 바다이냘 뿐, 사람사는 풍경은 치열하게 우리에게 반문해 오는 듯 했다.
그댄, 왜 여기 왔느냐고...
갈매기들이 배 뒷쪽으로 따라 붙는다.
수직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무언가를 재빨리 낚아챈다.
그렇다. 국민 간식, 새우깡..
선장실에서 2봉지에 3,000원에 팔고 있다.
새우깡에 들어간 화학 첨가물들이 갈매기에겐 괜찮을까.
등산로에 괜찮겠지 무심코 버리는 귤껍질이나 오이껍질이 야생동물들에겐 악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그렇지 않을까.
아이고, 생태주의자 나셨넹~ 고마 해라.. ㅋㅋㅋ
금오도 여천항이 멀리 보인다.
흰 색 금오도 택시 2대가 나란히 서 있는 것도 보인다.
남도관광 버스 안.
여천항에서 우리에게 3코스 출발지인 직포까지 동행을 허여한 구롓분들이다.
아걷반 두 여성께선, 미인계가 통했다고 나를 윽박질렀지만,
과연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본인들의 미모 탓(?)에 한 자리씩 차지했다고 자부하는 분들의 저 은은한 미소를 보라.
졸지에, 나는 깍두기로 추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머, 단체관광의 필수코스 아니겠는가.
직포에 내리자마자, 아직 식지 않은 수육과 잎새주가 각각 1박스씩 풀렸다.
버스를 얻어탄 죄인인 입장에서,
건네주는 쏘주잔을 거절하기란.. 미친 짓이다.
직포에 도착한 사회복지사인 그녀는 구례 광의산 배추에 수육을 얹어 드셨고,
금오도가 고향인 그녀는 직포까지 기사석 옆에서 가이드를 맡는 영광(?)을 누리었다.
금오도 비렁길 3코스 시작점인 직포항.
꼬사리님의 옛친구가 사는 마을인데, 마침 이 날이 김장날이라 휭~ 하니 다녀온 그녀 덕에,
구례 사는 분들이 금오도 김장김치와 잡채를 맛보는 호사를 역으로 누리었다.
금오도 비렁길 안내도.
오늘 우리는 직포에서 학동을 거쳐 심포까지 갈 것이고,
구례에서 오신 분들은 3코스만 걷는다고 하셨다.
돌산 신기항 말고, 여수 좌수영해운에서 비렁길 직항코스를 개설했다.
이 배는 1코스 시작점인 함구미항과 3코스 시작점인 직포항에 여행객들을 내려준다.
금오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일 거다.
아, 거기 좋던데! 하면 사람들이 모이고, 당연히 자본도 꾄다.
돈이 투자되면, 이른바 개발과 발전이 뒤따르고, '좋았던 그 곳'은 또 다른 실망을 안겨주는 곳으로 이내 바뀌고 만다. 대한민국 관광의 전형적인 공식이다.
우야든동, 그녀는 고향에 왔다.
모하, 느진목이 고향인 그녀는 금오도에서도 산골 깡촌 출신이라 했다.
비렁길이 생긴 금오도의 남서해안은 그녀의 동선엔 낯선 곳이라 했다.
좁아터진 섬에서도 그렇다. 세상은 참 좁으면서도 넓은 곳이다.
그녀1과 그녀2의 투샷.
두 사람은 늙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곳에서 처음 만났다.
구례구역 앞, 지리산요양병원이 그녀들을 이어준 공간이다.
한 사람은 고참인데 젋지만 은퇴했고, 신참인 그녀는 사흘이 멀다 하고 노인네들을 아프게 떠나 보낸다.
지리산학교 아걷반과 인연을 맺은 구례분들의 카페 이름.
궁금하시면 함 들러보시는 것도 좋을 듯.
셋이서 나란히 남해바다를 바라 본다.
물었다. 쪽빛 바다에 띄워보낼 잿빛 기억들이 있으세요?
글쎄요.. 아, 빈티지소울님은 있으신 것 같던데요.
그렇군요. 저도 봤어요. 하~ 그 분이 오셨어야 했는데 말예요..
맞아요, 그래요...
동백
박남준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별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 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 갔던 건
거기 내 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어떤 시인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고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고향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고향이란 내가 태어나 자란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고향은 결코 실재하는 곳이 아니며
귀향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합니다...
- 강제윤, '섬을 걷다'
자기의 나와바리이므로, 무언가(?)를 쏘고야 말겠다는 그녀 때문에
우리는 조촐한 점심을 강제당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론 결코 부족하지 않았던 점심상.
구례에서 구입했지만, 남원산인 동동주...
가 여수하고도 금오도에서 틴컵에 담겨 우리의 반주가 되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 ^;;;
비렁길 4코스의 마지막 전망대, 온금동에서 다시 한 번 바다를 본다.
띄워 보낸다고 보내질 기억도 아니지만,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들 무엇하겠나.
그저 보낼 건 보내야겠지만,
새롭게 흘러와 가슴에 안길 세월을 기쁘게 맞는 것도 올바른 자세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를 비워내고 준비하는 것도 아무렴, 마땅히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말야.
나그네의 발걸음은 종착지인 심포항으로 접어들었고,
한 번 손 들어 히치에 성공, 금오도의 중심인 우학까지 내달았다.
꼬사리님의 모교인 금오초, 금오중, 금오고가 자리한 우학리 바닷가.
캬~ 비쥬얼이 예술일세. ㅎㅎ
그렇다, 꼬사리님의 모친께서 추천한 우학리 할매맛집의 서대회무침 되시겠다.
벌교나 고흥에서 맛 보았던 여느 서대회무침과는 살짝 다른, 약간의 낯선 느낌...
조근조근 씹다보면 은은한 향내가 난다. 이게 섬내음일까. 할매가 빚은 막걸리식초 맛일까.
허름한 간판 하나 없는 그 곳에 찾아갈 수 있었던 것도, 쥔장이신 할매가 그녀를 '강춘씨' 딸로 대번에 알아본 것도 다 고향 때문이다.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금오도 남면택시를 모는 기춘 아제마저 그녀를 백미러로 설핏 보더니 말했다.
'강춘 아짐'네 따님 아니신가? 그는 여천항에 우리를 부린 뒤 1만원만 받았다.
우리의 섬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돌산에서 바라본 남해바다에 점점이 박힌 섬들은,
그러나 결국 누구의 고향이었고, 어떤 영혼의 안식처였으리라.
한 해가 저무는 지금, 우리는 또 고향을 떠나 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무엇을 향해 이토록 무섭게 질주하는 것일까.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평안을 빈다.
첫댓글 저보다 더많은것을 알고계시네요~ㅎ뱃고동소릴들으며 항상 벗어나고만싶었던 곳을 아름답게 포장된추억을기억하게 해준 이번수업이 이름그대로아름답지 않았나싶어요.아걷반 수업이 있어서 정말행복한 1년있어요.감솨~^^
제가 외려 감사. 할매집 서대회무침의 시큰달큰한 향이 오래 코 끝에 남을 듯.. ^ ^*
하루산행 얘긴데 인생살이를 올려놓으신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언제 아걷반 벙개때라도 한 걸음 허시게요~ ^ ^*
결코 부족하지 않았던 점심 덕에 저 맛있는 서대회를.
많이 못 먹은 것이 내내..흐
서대가 너무 잘아서 가시가 충분히 발라지지 않아서리.. 첨 입맛엔 식감이 거칠었을 수도.
그래두, 괜찮았죠? 맛이. 은은한 향도... ^ ^*
사진도 좋고 글도 좋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느껴지네요. 나도 대숲님 졸졸 따라다니고 싶어지네요.ㅋㅋ 음악도 짱.
아마, 따라다니기 힘드실 걸요? 이젠... 후후. ^ ^*
한글의 접미어 중 `답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개체의 정채성을 가장 잘 드러 냈을 때 붙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사물에 내재 된 본질에 가장 충실 할 때 ~답다 라고 표현 한다면 도시는 도시다워야 하고 농촌은 농촌다워야 하고 섬은 섬다워야 한다는 샘의 말에 심히 동감합니다. 도시의 피가 국토의 최 말단까지 돌고 돌아 결국 서서히 댜양성을 잃어
가는 머언 그 날이 언젠가는 오고야 말겠지요. 개발과 보존, 그 경계지움에 지혜로워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건 그렇고..... 멋진 날씨에 좋은 여행하고 오셨네요.
금오도, 일단 제 여행목록에 keep! ^^
이제 긴 동면에 들어가면 내년 봄에나 다들 얼굴 보겠군요.
기지게 켜며 다시 볼 때까지 모두들 평안 하시기를......
글쎄요. 겨울잠에 들어가질랑가 모르겄네요~ 21일 종강식 때 배쌤 손 잡고 꼭 오세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