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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사무엘하-06 부정의 통곡소리(사무엘하 19장 1-7절)
성경말씀은 사무엘하 19장 1절에서 7절까지 봉독합니다.
[사무엘하 19장]
1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사무엘하서 제 19장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낮에도 우리가 지켜본 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순경도 있고 역경도 있고 이렇게 하는데, 다른 슬픔과 아픔과 이런 고통은 뭐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러 가지 아픔을 겪을 수 있는데, 아마도 그중에 가장 큰 아픔이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이런 고통이 아니겠는가?
자식도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간다면 다르죠.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한 100살 됐는데 뭐 아들이 한 80살에 간다고 하면 그것은 뭐 큰 차이가 안 되겠는데, 압살롬 같은 경우는 그런 것 같지가 않거든요. 나이가 많아도 압살롬이 한 30~40정도 그런 정도인데 한창 때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래서 19장에 보면,
[사무엘하 19장]
1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의 승리는 모든 백성에게 기쁨이 된 게 아니고, 승리해 놓고도 아주 씁쓸한 승리 아주 슬픔이 됐다. 그 말이죠?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그 날에 백성들이 성에 이기고 들어오면서 무슨 뭐 개선가를 부르고 들어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시무룩해서 성으로 들어 왔다는 거야.
그리고는,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오전부터 하던 게 지금까지 하죠? 그 뭐 그 아픈 마음이야 말로 다 표현 안 되죠? 아니 뭐 하루만 하고 말겠어요. 오전부터 저녁까지가 아니고 몇날 몇일을 가도 그 아픔은 뭐 잘 가시지 않았을 거야.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하면서 아주 이 요압이 참 못마땅해 합니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그러면 이 요압이 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윗의 삶을 지켜봤는데,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뭐를 당했다는 거예요? 화를 당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보통 성도들이 다윗이 맨 그저 승승장구 한 것만 생각했지, 정말 이 측근들이 볼 때는 다윗이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당한 화라는 말을 쓰는 것 보면..
또 여기에서 지금 오늘 저녁에 만약에 백성들을 다독거리지 아니하고 자기 감정도 추수리지 못하고 지도자가 돼 가지고 이렇게 울고만 있으면, 모르긴 해도 오늘 밤에 왕의 주변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떠나버릴 거다. 이렇게 또 젊어서부터 요압이 아주 협박을 합니다.
그 화가 왕의 젊었을 때 당한 모든 화보다 남은 고생이 더 클 거요. 이렇게 하니까..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아이고 참 아들 죽었는데 울지도 못하게 하죠?
여러분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뭐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뭐 감정 다 챙기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뭐 그 슬픔을 때로는 뭐 삼켜야 될 때도 있고 눈물을 그저 속으로 삼켜야 될 때도 있고 뭐 그런 거죠?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니까 백성이 쭉 나왔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니까 지금 다윗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유다지파 사람들만 똘똘 뭉쳐 있는 거고, 그리고 그 베냐민 지파 사람들 중에서도 딱 죽을 뻔 했다가 다윗의 그런 너그러운 마음 때문에 용서받은 그 시므이 그런 사람들하고 블레셋에서 그 다윗에게 다가왔던 그 잇대와 그 추종자, 이런 정도 사람 밖에 없는 거예요.
거기 보세요. 8절 끝에 보면,
..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압살롬을 쫓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뭐 전부다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뭐 자기들끼리 막 변론이 일어납니다.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지금 입장을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 말이야.. 지금 어정쩡하게 있으면 만약에 그 다윗의 그 유다 지파라든지 정치적으로 무슨 보복을 당할 수 있을 텐데, 어차피 압살롬이 죽었다면 빨리 우리가 가서 실제로 뭐 우리가 일시동안 압살롬에게 엉거주춤해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 나라의 참 주권자는 다윗 왕 밖에 없습니다. 하고 이렇게 다윗 왕을 모셔야 될 텐데 왜 이렇게 전부 엉거주춤해 있느냐? 하고 자기들이 변론이 일어나는 거야.
그 때,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유다 사람들도 어정쩡하게 있었다는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도 왕을 모셔 오자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유다사람들은 지금 뭐 하는 거야. 하면서 다윗이 자기 지파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 언짢은 감정을 드러냅니다.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그러니까 지금 다윗이 한 번 궁을 버리고 그렇게 떠나셨던 왕이기 때문에 다시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명분도 참 그래요.
그래서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오히려 왕을 초빙해 들이면 모르지만, 다시 뭐 그냥 지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 편에 섰다는 그 자체가 다윗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유다지파 사람들도 지금 요단강 건너갈 때 따라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은 지금 이 자세를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 이런 그 다윗의 이런 입장이 있다는 거야. 섬세한 그런 감정인데 아무리 그 무슨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고 왕정시대라 할지라도 백성이 기꺼운 마음으로 맞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다윗이 그저 마치 당연한 것처럼 궁으로 들어오는 것은 다윗이 그 마음이 편치 않은 거야.
그래서 오라 하든지 뭐 가라 하든지 뭐 해야 그 내가 움직이지 않겠나. 그런 말이야.
여러분 이 이해가 됩니까? 설명이 꽤 어려운 거야. 이게..
그리고 13절,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돌아오소서’ 해야 그 다윗도 돌아올 수 있는 거지, 백성을 버리고 살기 위해서 도망을 갔던 입장이고 그 도망갈 때 그 따라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압살롬하고 같이 살겠다는 자세를 취했던 사람들 아니냐? 내가 어떻게 당당히 그 들어올 수 있느냐? 그 말이죠?
여러분 이 성경을 보면 이런데 까지도 참 그 섬세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어요. 우리가 너무 점잖게 그 압축하고 축약해서 잘 안 읽어지는데, 자세히 다윗이 하는 말을 또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또 챙겨보면 참 다윗이 참 그런 반듯한 그런 신사야. 그런 인격자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 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 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19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아이고 그리하고 또 어떻게 살기를 구합니까?
여러분 사람이 이 험한 세상을 살려면 이 정도는 돼야 되죠? 그리고 정치를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됩니다.
그 돌아서서 뭐 신문에 방송에 또 욕을 욕을 해 놓고 또 만날 때는 그 웃고 포즈를 취하고 이정도 담력이 있어야 돼. 우리는 그렇게 해 보니까 안 돼. 우리는 화가 나면 뭐 노골적으로 화가 나타나고 하니까 정치인이 안 되는 거야.
이 시므이가 그래도 참 살겠다고 여기 보면 추종자, 베냐민 지파 1천명을 거느리고 나왔어. 거기도 뭐가 있는 거야. 1천명을 거느리고 와서 ‘살려 달라.’ 하는 것은 ‘적어도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요.’ 하는 또 시위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 ‘죽일 테면 죽여 봐라.’ 하는 것도 은근히 있어. ‘만약에 나를 죽이면 이 1천명이 당신을 어떻게 보겠느냐?’ 하는 것도 깔고 나오는 거야.
그런데 또 성공한 사람이 있죠? 21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이게 요압의 동생이거든요. 그 참 난형난제라. 형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지난번에는 모르지만 이제는 죽어야 되지 않겠냐? 그 말이죠?
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이런 것 보면 다윗이 참 대인이야. 그렇죠?
그 이튿날 조간신문에 보니까 ‘예루살렘에 돌아온 다윗이 시므이를 용서하다.’ 하고 대문짝 만하게 대서특필로 나오는 거죠?
여러분 이런 걸 우리 같으면 그저 대강 그 목을 자르고 그렇게 했을 텐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날 이후로는 이 시므이가 나타나는 곳 모든 곳에서 시므이가 가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 마다 ‘야, 저 시므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니..’ 그 자체는 다윗의 가슴이 얼마나 넓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광고비 한 번도 안 받고 평생토록 홍보하는 그 홍보 요원이죠? 다윗이 얼마나 관대한 분인가? 그 홍보하는 그런 걸 그 죽이면 그 다윗이 졸장부가 되는 거야.
여러분 이런 것은 언제든지 그 죽여도 죽일 수 있잖아. 그 뭐 서두를 게 없잖아. 그 뭐 잘못 서둘러서 빨리 죽이자고 하는 것이 이 아비새. 이러니까 그 아비새는 맨 날 해 봤자, 그 아비새 밖에 안 되는 거야.
여러분 일을 할 때 항상 그 온건하게 그리고 어려운 일은 조금 더 뒤로 미루어 가면서, 뭘 자꾸 막 속전속결로 뭘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미루어야 될 그 좋지 않은 일은 그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면 아무리 당위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금씩 이 미루고 여유를 가지고 해야 돼. 너무 그 감정을 가지고 조급하게 그 서두르는 사람들은 대개 일을 그르치거나 그런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과격파, 급진주의 이런 사람들은 위험해요. 개혁적인 것은 좋은데 급진적으로 나가서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짓을 하면 안 돼요.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할 일을 지도자가 너무 지나치게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면 곤란한 거죠?
그래서 항상 오늘 아침에 우리가 후새가 하는 것을 봤죠? ‘왕도 아시거니와’ 아시는 일을 해야 돼. 알만한 얘기를 해야지 전혀 그 사람이 상상도 못할 그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것 다 옳은 말 했어도 국민들이 따라오지 못해. 그러면 다 용서 받지 못하는 거라.
따라오지도 못하고 나중에 언론의 지지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옳은 일해도 욕먹고 나중에 옳은 일 하지도 못하고, 이 민주주의라는 것은 여론정치인데 언론 플레이를 하지 못하면 정치 못하는 거야. 아무리 옳은 머리가 있어도 안 돼.
그래서 다윗은 그때 뭐 신문도 없고, 인터넷도 없지만은 어떻든 그 발 없는 그 소문이 천리까지 간다고 모든 사람이 그 다윗의 가슴이 얼마나 넓은지 그 시므이를 통해서 다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 성경 전체에 보면 이 조급한 사람, 과격한 사람, 그리고 이 과도기에 경거망동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역사를 읽어 나가다 보면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과격한 사람들, 조급한 사람들, 또 일을 졸속하게 하는 이런 사람들은 결국은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고 또 오래 가지 못해요. 그래서 언제나 온유하고, 온건한 자세, 이런 것은 우리가 늘 그저 몸에 배게 해야 돼..
그 이따금씩 그 말씀 드렸지만 중국에 이 고사에 보면 그런 말이 있어요.
그 ‘역린(逆鱗). 거꾸로 난 비늘이다.’ 하는 그런 말을 쓰는데 그 권자에 올라가서 다시 말하면 용의 등에 딱 올라타서 이 용 등에 올라타면요 용대가리 뒤에 그 사슴 뿔 같은 그 뿔이 나왔어요.
이게 아주 그 핸들처럼 그 조종간처럼 이 멋지잖아요. 뿔 잡고 온 천하를 그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는데 그 보니까 그 용의 귀 뒤에 비늘 한 개가 거꾸로 난 것이 있는 거야.
그래서 앞으로 이 뒤로 이렇게 나 있는데 비늘 한 개가 이 거꾸로 딱 나 있는 것이 있으니까. 이게 그런 것을 우리 경상도 말로 어찔 이라고 그래요. 어찔. 그렇죠?
순리대로 나지 않고 역린으로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너 왜 이렇게 너 혼자 이렇게 들고 일어났냐? 하면서 그걸 이렇게 그 건들면 그만 용이 이렇게 발악을 하면서 결국은 그 권자에서 굴러 떨어진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노골적으로 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됐을 때 그 측근 중에 그 중신 중에 어떤 사람이 반대를 하는 거야. 항상 왕의 귀에 거슬리게 한다는 거야.
다른 모든 신하들이 ‘전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하는데 딱 한 사람이 일어나가지고 ‘전하! 불가하옵나이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그런 걸 보통 역린 어찔 이라고 그래.
그러면 왕이 ‘아이고. 저것 없으면 내가 정치 할 만한데..’ 하고 그걸 또 목을 딱 따버리고 하면 그런 게 한 다섯 개가 올라오는 거야. 그 다섯 명 짤라 봐. 백 명이 일어나요. 그 백 명이 일어나면 나중에 그 권자에서 떨어지는 거야.
그런 이야기가 그 역린이라는 말인데 그 항상 한 사람쯤이나 두 사람쯤이나 지도자가 되면 그런 사람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저 없으면 좋지만 없을 수가 없고, 있게 해 놨어. 하나님께서 골고루 배치해 놔서 어디 가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 예수님의 열두 제자 안에도 그 가룟 유다가 있는 거예요. 천사 중에서도 마귀가 나왔잖아. 그렇죠?
천사 중에서도 공자 같은 분 그런 분은 그렇게 뭐 예절로 덕망으로 하면 그런 그 군자들이 하면 아무도 반대가 없을 것이다. 천만에요. 그것도 환태 라는 또 괴짜가 있었어요. 아 뭐 공자가 지나가면 뭐 소금을 뿌리고 뭐 황토를 뿌리고 막 흙도 다 파 내버리고 그런 또 악당이 있어, 그 석가모니 제자 중에 또 제바달라. 라는 사람도 있어, 제 좀 봐 달라. 하는 건지 뭐 제좀 봐 달라. 제바달라같은 그런 또 괴악한 것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를 또 보면 그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그 기질이 그 반골이 있어. 반골이.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뭐 또 기독교 안에 또 뭐 김용옥이 같은 것이 하나 또 있는 거야. 그것 뭐 또 그 딱 잘라 봐. 그런 것 그냥 그 놔 둬요. 참 그런 것도 있다. 저런 것도 있구나. 참 다양하다. 그러고 넘어가야지 그런 걸 같다가 기어이 못 봐주고 딱 잘라 버리고 하면 그 대인 정치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이 시므이를 다윗이 용서하는데 그 다윗이 어떻게 정치를 배웠는지 그 정말 이런 정도의 그 정치를 하는 것은 은사입니다. 은사..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배워서 될 뭐 외교 정치학과 나와서 되는 것이 아니고, 타고 났어. 다윗은 그런 정치인으로서 타고 났어요.
한편 24절입니다.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그 기간이 얼마 된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정말 슬퍼하면서 있었다는 거죠?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참 그 므비보셋이 사람이 자기 분수를 잘 헤아리고 참 그 신실한 사람이야.
29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30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는데 저로 그 전부를 아예 다 차지하게 하십시오. 저는 그저 왕께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이렇게 나오는 거야. 므비보셋이..
그러니까 누가 나쁜 놈이야? 그 시바란 놈이 그놈이 나쁜 놈이죠? 그러니까 그런 것은 딱 종 밖에 안 돼. 그릇이.. 그 기회를 딱 틈타서 주인을 참소하고 그 난 다윗이 한 것 그 이해가 안 돼요. ‘뭘 나누긴 나눠? 그 시바를 데려오너라. 이게 사실이냐?’ 하고 목을 똑 따야 되지. 그런 것은 정말 죽어야 되지..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 세라 저는 거부인 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
36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 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이런 자세를 보면 꽤 우리 동양사람 같죠? 그렇죠?
그 이스라엘이 뭐 동양은 동양이지만 역시 그 서양 사람들은 이런 예절이 없거든요. 그 동양 사람들이 이런 예절이 있는 거야.
그 자세가 여기 보면 그 므비보셋의 이런 심사라든지 또 이 바르실래 같은 어른의 그런 풍모를 본다든지 이런 이 겸양이라든지 어떤 겸허, 그 자기 비움 이런 모습들이 굉장히 그 배울 점이 많은 거야.
37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 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그러니까 바르실래라는 이 노인네는 뭐 전혀 자기는 고향에서 죽는 것 그런 것을 누리게 해 달라고 이렇게 했고, 다만 김함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뭐 그릇이 쓸 만한지 봐서 뭐 쓰실 만하면 뭐 대려다 쓰십시오. 이렇게 합니다.
나중에 그 어려울 때 다윗이 가장 그 역경에 그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그 바르실래 문제는 그 솔로몬에게 인수인계 할 때도 이 바르실래의 자손 중에서 항상 네 상에서 먹게 하는 자가 있게 하라. 그 집은 밭이 왕대밭이야. 큰 거목이 날 만한 사람이었다. 하면서 그런 그 가문의 후손을 그 김함 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을 그 기억하게 합니다.
여러분 그 ‘왕대밭에서 왕대 난다.’ 그런 말이 있어요. 졸대 밭에서는 그 졸대 밖에 안 나와요. 조리대 밭에 가면 절대 그 왕대가 안 나오고 조리대가 나오는 것이고, 왕대밭에서 그 왕대가 나온 다는 거야.
그래서 그 옛날부터 그 문중과 그런 것 무시할 수 없어요. 요즘 뭐 그냥 돈이 있으면 전부 그저 양반행세하고 그렇게 하는 것 같은데 그 옛날부터 보면 참 인물이 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 문중에 오랜 세월 동안 그래서 믿는 사람도 그래요. 단번에 뭐 당대에 믿음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몇 대를 거쳐서 그런 인물이 나오는 것 그런 것 볼 수 있거든요.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그러니까 유다 백성은 유다지파는 다 나왔고, 이스라엘 백성은 절반쯤 다윗을 맞으러 나왔다. 이런 것도 예사로 볼 것이 아닙니다.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하고 또 시비를 걸죠?
42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우리는 그저 왕을 모신 것 밖에 없지 무슨 아무 덕본 것 없다. 하면서 유다 사람들이 아주 뭐 강경합니다.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면서 또 애들처럼 또 싸우죠?
..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 지파 너희 마음대로 하느냐? 하고 또 유다지파에게 또 시비를 겁니다.
..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뭐 그래도 유다 사람들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고 뭐 이기고 또 돌아오니까, 유다 사람들이 큰 소리 치는 거죠?
이렇게 해서 뭐 돌아 왔다 할지라도 그 게임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20장입니다.
[사무엘하 20장]
1 마침 거기 난류 하나가 있으니,
‘난류’ 혹은 ‘비류’, ‘못된 녀석, 건달’ 이런 식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하나가 있으니
..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라,
역시 또 베냐민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 베냐민 지파가 한때 권력을 움켜지고 있다가 그 권력을 빼앗긴 후로 여전히 그 다윗 정권 앞에 호락호락 그 순응하지 않고 반군들이 있다는 거야.
시므이라든지 또 여기 세바라든지 다 이런 일이 다 문제들이죠?
.. 저가 나팔을 불며 가로되 우리는 다윗과 함께 할 분의가 없으며 이새의 아들과 함께 할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하고 선동을 하니까, 지금 막 또 화해 무드를 조성하려고 하는데 그 세바가 나와서 그 선동을 하니까,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좇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좇으나 유다 사람들은 왕에게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으니라
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맞으러 왔다가 그 세바라는 그 악한 놈의 그 난류의 선동을 받아가지고 또 세바를 따라 또 가 버렸네. 그 참 다윗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어요?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더불어 동침치 아니하니 저희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그리고는,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이 아마사를 그 요압을 대신해서 군사령관으로 입명을 했거든요. 군대장관처럼..
이것이 또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아까 그렇게 한 것 봤죠?
19장 13절에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며..’ 이렇게 얘기한 것은 처음에는 그 다윗이 울고 슬퍼하고 한 것은 그냥 단지 압살롬이 죽은 것 까지만 생각했지,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요압이 손수 때려죽인 것을 몰랐나봐. 몰랐는데 얼마 안 가서 그 알게 됐죠?
세상에 비밀은 없는 거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다윗이 얼마나 요압에 대해서, 1군, 2군, 3군 사령관 다 앞에 놓고 나를 생각해서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 그렇게까지 신신 당부했는데 요압이 자기 손으로 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충분히 사로잡아 올수 있는 것을 그냥 찔러서 졸개들 열 명이 때려서 죽였다는 그런 잔인한 소리를 듣고는 다윗이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속으로 이미 마음에서 요압을 지워버린 거야.
지워버리고 바로 그냥 압살롬 편의 군대장관으로 나서서 싸웠던 아마사를 오히려 끌어안아서 군대 장관으로 임명을 했다는 거야. 이것을 그 요압이 기뻐할 리가 없죠? 이런 분위기가 있다는 거야.
그래서 문제는 이 일을 요압에게 시키지 않고, 20장 4절에,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자, 이게 시간이 좀 가더라도 좀 간추리고 지나가야 하는데, 이 아마사가 누구냐 하면, 이 아마사에 대해서 주석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잘못 쓴 것 같은데, 내가 보니까 거기 왜 아까 조금 지나왔지만, 17장 24절에 이런 말이 있어요.
‘이에 다윗은 마하나임에 이르고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넜는데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았다.’ 그렇죠?
압살롬 편의 군장을 삼았는데, 이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 줄긋고 ‘에델’이라고 쓰세요.
에델, 이드라. 같은 이름인데 어떤 사람은 발음을 ‘이드라’하고 어떤 사람은 ‘에델’ 이렇게 해요. 에델, 이드라, 그 자음은 똑같고 모음에만 변형이 일어난 겁니다. 이드라, 에델,
다른데 보면 ‘에델의 아들 아마사’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에델의 아들 아마사’ 하면 그 에델 이라는 사람이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아마스를 낳았다. 그러면 전혀 딴 사람 같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다윗이 이 사람하고 골육이라고 하고 또 대부분 사람들이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가 되는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스루야는 다윗의 어머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스루야의 동생이냐?
이 아비갈이 지금 이드라하고 나하스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하고 나하스의 딸인데 이새의 딸이라 하면 다윗이 뭐가 되는 거야? 누나가 되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 ‘나하스의 딸 아비갈’이라고 하는 말은 이 무슨 말이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또 스루야의 동생이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이냐? 이게 어려운 얘기인데 서양 사람들은 이 족보를 도무지 못 따집니다. 족보는 유대인들하고 한국 사람들만 따져요.
한국 사람들은 이모, 고모, 뭐 다 그 잘 따지는데, 그 미국 사람들 선교사들 오면 그 족보 이야기 하면 하루 종일 해도 끝나 안나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 나하스의 딸 아비갈 이라는 이 이야기가 이 아비갈 이라는 여자가 나하스의 딸이라고 하면 이새라는 사람에게 부인이 둘이었다는 거야.
다시 말하면 다른데 보니까 그 배 다른 동생이다. 했는데 전혀 배 다른 것이 아니고, 씨 다른 동생이야. 데리고 온 딸 그 이새의 아내 다윗의 서모나 계모 중에 한 사람이 딸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그 나하스의 딸 아비갈을 데리고 온 그런 일이라고..
그러니까 이걸 그 미국 사람들은 ‘half sister’라고 해서 절반만 누나라. half sister 이부매.
그러니까 아버지 다른 누이 동생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누나 같죠? 누나. 다윗은 아주 말째니까. 다윗은 여덟 중에 말째니까 씨 다른 누나처럼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새가 아내를 하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 나하스의 딸 아비갈 이라는 딸을 데려왔었는데 이 사람은 사위가 에델이죠? 에델.. 이새의 사위가 그렇게 되어서 결국은 아마사하고 요압하고는 이종 사촌간이 된 거라. 그 씨가 다르기는 해도 촌수는 그래요. 좀 복잡한 얘기죠?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됐습니까? 아직 이해가 안 되면 집에 가서 계산을 해 보세요.
그래서 아마도 씨 다른 누나 그래서 아마 다윗에게는 그저 생질들이긴 생질들인데 둘 사이는 아마사하고 요압은 이종 사촌 인데 이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나중에 또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20장 4절에,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거기 줄을 그어 봐요.
‘너도 여기 있으라.’ 했는데 그 일을 천천히 할 일이 있고, 서둘러 할 일이 있는 거라. 일의 완급을 알아야 돼요. 무엇이 우선인지 무엇이 차선인지를 알아야 되는데, 이 사람이 이걸 빨리 해야 할 것을 천천히 한 거야.
5절,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거기 줄을 그어 봐요.
어떤 것은 조금 지체한 게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있는 거야.
..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그러니까 이걸 지금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이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반역이 압살롬 반역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거야.
왜냐하면 지난번에는 뭐 압살롬이 불법으로서 그 뭐 아버지에게 덤빈 그 부도덕한 일이니까, 그렇게 하는데 세바는 완전히 정치적이죠?
그렇게 딱 맞서서 어느 한 성에 들어가서 장기전을 버리게 되면 숫자적으로 일단 다윗의 쪽이 너무 숫자가 열세이기 때문에 이건 정말 심각해 질수 있다 해서 이걸 아마사 보고 좀 빨리 서두르라고 했는데, 요압 같으면 이걸 잘 할 텐데, 지금 요압은 경질됐고 지금 아마사를 군장관으로 해가지고 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다윗이 아마 좀 실수 한 것 같기도 해요.
아마사가 또 이걸 지체하는 바람에 급해서 6절에,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왜 아비새에게 말하냐 하면 요압이 경질 됐으니까.. 이해가 됩니까?
요압에게 시킬 일인데 요압에게 시키지 않고 아마사에게 시켰고, 아마사에게 시켰는데 지체되니까 아비새에게 시킨다는 거야. 그 요압을 경질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죠?
..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을 좇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그러니까 이 요압도 백의종군하는 모습이 보이죠? 보는가 안 보는가 모르겠네..
지금 그 군 사령관을 갔다가 여기 아마사를 명했는데, 그 아마사가 떨떠름해 지금 뭐 어떻게 할지 몰라. 이 사람이 그러니까 급하니까 다윗은 아비새를 세바 토벌군으로 임명을 했는데 그 요압도 그렛 사람들, 블렛 사람들 이런 사람 데리고 아비새를 좇아가는 거예요.
..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매었는데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그 이것은 번역이 좀 잘못된 것 같아.
어떻게 해서 칼을 일부러 떨어트린 것 같아. 떨어트려가지고 그걸 엎드려서 줍는 척하다가 일어나가지고 그 이러했다가 아마사에게 가져가가지고 이렇게 그 엉겁결에 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해서, 그 아주 그저 재치있게 해 가지고 수염을 붙잡고 당겨서 뽀뽀를 하려고 하면서 푹 찔러가지고 끝을 낸 거야. 이 요압이 아마사를..
이 기브온 못가는 늘 문제가 나죠? 그 근방 가지 마세요. 앞으로..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얼마나 세게 했는지 그냥 그 아마사의 배를 긁어 버리니까 아마사의 그 창자가 다 쏟아져 버리는 겁니다. 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끝나 버린 거죠?
..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을새
11 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아마사의 곁에 서서 가로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할 때에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선동을 하면서 요압이 이제는 사령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선동하면서 또 자기 여태까지 섬겨오던 그런 요압을 추켜세우면서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하는 거죠.
지금 사실은 이 요압을 따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만약에 이것 완전히 계급장 뗀 거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또 주어 달고 이렇게 그런 분위기야..
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굴어졌는지라 그 소년이 모든 백성의 섰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 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아가니라
14 요압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행하여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저를 따르더라
15 이에 저희가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하여 해자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그 해자 언덕 위에 토성을 쌓는 것은 성에 들어가지 못하게 성 주위를 빙 둘러 이렇게 웅덩이를 팝니다. 이렇게 웅덩이를 파고 물을 갔다가 채웁니다.
그 해자를 판 흙을 갖다가 그 토성을 쌓아가지고 그것을 메어가지고 먼데서부터 경사로 램프를 만들어요. 성을 넘어가려고 그러니까 옛날부터 뭐 성 점령하는 것은 늘 그렇게 하는 거죠?
..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외쳐 가로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컨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가로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여인이 저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18 여인이 말하여 가로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아벨에 가서 물어봐라.’ 하고 일을 끝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아벨이 옛날부터 아주 어머니 같은 성이고, 누가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벨에 와서 문제를 해결 받고 돌아가고 했는데 그런 말이죠?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어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고 여자가 말을 잘 해요.
여자가 그 무슨 아벨 성에 대변인처럼 나와 가지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죠
20 요압이 대답하여 가로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저만 내어 주면 내가 이 성읍에서 떠나가리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저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 지혜로 모든 백성에게 말하매 저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나아가니라
왕에게 그렇게 나갔는데, 다윗이 ‘너 뭐야? 네가 어떡하다가 군대장관이야?’ 이렇게 따지지를 못해요. 왕이 얼마나 약한지 꼭 노무현 대통령 같죠? 왕이 약해가지고 뭐 마음대로 하지를 못해. 지금은..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또 다시 장관이 된 거야. 여기 왜 ‘장관이 되고’ 했느냐? 원래 장관이 아니었죠?
아니었는데 또 됐어.. 이것은 정말 되고 싶어 된 거야. 누가 시켜서 된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하겠다는 거지.. 그런데 이걸 막을 수 없어. 남도 아니고, 또 군대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 참 다윗이 거북살스러워 해요.
그래서 여기 보세요. 이 다윗이 나중에 솔로몬에게 또 정권 이양할 때 이 요압의 이름이 적혀 넘어가는 거야. 살생부에..
옛날에 그 다윗의 그 집권 초기 때에, 그 과도기에 아브넬을 죽여가지고 또 어렵게 했죠? 아브넬을 죽여서는 안 되는 건데 그 죽여서 또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니, 압살롬을 또 쳐 죽여서 또 그렇게 하더니, 자기 대신 그 자기를 경질하고 아마사를 또 자기 이종사촌 형을 이렇게 군대 장관에 임명 했는데 그 제멋대로 가서 또 죽여 버리고 말이야. 이런 사람이 이 요압이라는 사람이야.
그런데 대개 이 요압이라는 사람은 교회에 잘 소개가 안 되어 있어요.
아마 이 사람은 천국가면 우리가 못 만날 거야. 나쁜 놈이야. 나쁜 놈..
힘이 있고 조직이 있고 뭐 권력이 있다고 해서 제 멋대로 그저 왕이든 뭐 하나님이든 상관없이 제 멋대로 하는 이런 사람이 바로 요압이라는 사람입니다.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고
여기 ‘그렛 사람’ 하는 것은 ‘집행인들, 행동하는 사람들,’ 요즘 말로 어떤 ‘행동 대원’ 그런 사람들이고, 그 다음에 ‘블렛 사람’은 ‘호위병’. 그러니까 다윗의 정권을 지켜나가는데 소극적으로 지키는 사람들은 블렛 사람들이고, 적극적으로 가서 그 해결하는 사람들은 그렛 사람들이예요.
그 그렛 사람들이 앞에 나가고 블렛 사람들은 늘 다윗의 곁에서 지키는 이런 사람들이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브나야라는 사람이 하도 사람이 충직하니까 이 사람이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총 장관이 됐다. 그 말은 요즘 말로 하면 경호실장이 뭐 됐다. 수경사 뭐 사령관이 됐다. 뭐 이런 뜻이 예요.
전체적으로 다윗의 목숨이 이 브나야에게 다 위탁 될 정도로 브나야는 그야말로 충직한 사람이죠?
24 아도니람은 감역관이 되고,
‘감역관’은 국내외 전체 일을 시키는 사람이니까, 오늘날 같으면 뭐 정무장관 쯤 되겠죠?
..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다윗의 대신’ 다윗의 대변인 격인 그런 일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21장 다윗의 시대의 말년에 또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사무엘하 21장]
1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그 원래 가나안 사람이죠? 가나안 족속 중에 한 족속인데 여호수아 때에 여호수아를 속여가지고 목숨을 이렇게 부지해온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나무패고 물 길고 이렇게 살아 온 사람들인데, 그 사울이 괜히 또 무슨 민족주의적인 그 열심히 있어요. 그 배타주의적인 그래가지고 또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있는 뭐 전혀 기브온 사람들이 문제 될 것도 없는데, 그걸 다 죽이려고 해서 또 더러 죽였는가 봐요.
사울이 살아 있을 때 이 기브온 사람들 인종 청소를 하려고 마음먹고 상당히 죽였던 모양인데,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 원한이 쌓인 거죠.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서 너희를 죽이지 않겠다.’ 맹세를 해 놨는데 사울 왕이 괜히 그 아무것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그렇게 해서 자기 민족을 위한 열심, 열심당원들의 열심, 민족주의적인 열심 이런 게 그런 거죠?
21장 2절을 보세요.
2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
3 다윗이 저희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여기 보세요.
우리 성도들이 혹은 교회가 어떤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정도로 원한이 사무칠 정도로 그 문제가 해소가 안 되면 하나님께 기도가 상달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4 기브온 사람이 대답하되 사울과 그 집과 우리 사이의 일은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나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의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5 저희가 왕께 고하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 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
참 어려운 걸 구하죠?
지금 다윗은 어지간하면 사울의 집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손을 안 대려고 하는 거야.
그 사울 가문의 맹세한 것도 있고, 또 정치인으로서 모양새가 그렇잖아요. 모양새가 마치 무슨 베냐민 지파에게 보복하는가 싶어서 그런데, 또 기브온 사람들이 요구하는데 어떡합니까?
그런데 이것은 사울왕의 죄업이기도 하고 또 그 이 기브온 사람들의 좀 무리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또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야.
그래서 결국은 그 어떡하느냐? 그 일곱을 찾아보니까, 사울의 자손들이 얼마나 철저히 망해버렸는지 일곱을 찾기가 어려워요.
7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8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9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 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그래서 사울의 딸이 그 시집가서 나은 아들들 그것 뭐 챙겨와 가지고 다섯 명을 맞추고, 그리고 그 외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려고 빼돌려서 안 내 주고, 겨우 해 가지고 일곱 명을 맞춰서 줬더니 그들이 목매달아서 죽이고 나서 그리고 기도하니까, 보리 베고, 밀 벨 때 결실기에 늦은 비가 내리게 됐습니다.
10절입니다.
10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11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
12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취하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벳산 거리에 매어 단 것을 저희가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13 다윗이 그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대로 좇아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
그러니까 원한이 사무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 삶속에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제사를 드리려고 왔다가 누구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다 생각나거든 제물을 두고 가서 그 사람과 화해하고 용서를 받고 와서 제사를 드려라. 이런 말을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서 15절부터는 다윗이 자리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해 옵니다.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 신복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다윗이 피곤하매’ 거기 줄을 그어 보세요. 다윗도 늙었어. 보니까..
16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삼백 세겔 중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니 다윗의 종자들이 다윗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삽을 쳐죽였고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베틀채 같았다면 뭐 보통 우리 종아리 만합니다. 창자루가 우리 종아리 만 한거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곳에 키 큰 자 하나는 매 손과 매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 네 가락이 있는데 저도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
그 손가락도 12개, 발가락도 12개. 이 사람은 좀 남는 사람이죠? 여러분 좀 모자라는 사람은 찾아가. 이 사람은 좀 남는 사람이야.
21 저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저를 죽이니라
다윗도 늙었고 다윗의 형도 삼마인데 늙었죠? 전부 그 세대가 아들들 활동하는 세대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겠죠?
22 이 네 사람 가드의 장대한 자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
이 가드의 그 큰 놈들은 전부 다윗 집안의 밥이라. 밥..
골리앗부터 시작해서 대대로 딴 집에서 안 죽고 꼭 그 다윗 집에 가서 다 죽었어..
자, 이렇게 해서 다윗의 그 큰 그런 사역들은 정리가 됐는데, 뭐 다윗은 그야말로 타고 났어요.
그야말로 무인 출신인데 편안한 날이 없었죠? 좀 전쟁 좀 안하고 싶어서 그 아들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지어 놨어도 그리하고도 나서도 뭐 이렇게 이름을 솔로몬 짓고 나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구만..
다윗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래서 이런 그 다윗의 역경들을 쭉 보면 영웅들은 그래. 영웅들이 뭐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 그늘을 보면 수많은 피를 흘려야 되고, 눈물도 있고, 애환도 있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역경도 숱하게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시가 그렇게 그 분위기가 어둡고, 무겁고, 암울하고, 참담하고, 막 저주시가 나오고 이렇게 된 거죠?
여기 뭐 다윗의 일생에 뭐 정말 그 기쁘고 즐거운 날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없는 거야. 그런 날이 그 반짝하는 뭐 그런 정도지 정말 그 일생을 보면 온갖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런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노년에 다윗의 삶은 역시 찬양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22장과 23장에 다윗의 찬양이 나와요. 참 그렇게 험한 삶을 살고도 그의 인생의 총 결론은 찬양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 참 우리가 좀 새롭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윗의 찬양은 다음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거의 후속적으로도 얼마나 어려운 날들이 지나갔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세상사는 동안에 이런 저런 어려움들을 겪을 때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다윗을 생각하며 위대한 사람들의 삶속에는 또 순경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역경도 있었으면 그 모든 역경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또 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있도록 그가 사람막대기나 인생 채찍으로 때리기는 했지만 사울의 집에서 은총을 거둔 것처럼 그 은혜를 거두지 않았던 사실을 또 보게 됩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역사 가운데 그 기록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전해진 이 교훈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우리가 지혜로운 백성들이 되어서 이 험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