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9 - 자한(子罕) - ⑩ |
1 |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道)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파고 들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앞에 있는가 싶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喟 歎聲 仰彌高 不可及 鑽彌堅 不可入 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 此顔淵深知夫子之道無窮盡(彌高堅)無方體(在前後) 而歎之也 喟는 탄성이다. 올려다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미칠 수 없다는 것이고, 뚫고자 할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며, 앞에 있다가 뒤에 있는 것은 황홀하여 형상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연이 공자의 도가 다함이 없고 일정한 형체가 없다는 것을 깊이 알고서 탄식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象形也 初未有的見時如此 신안진씨가 말하길, “象은 형용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적확하게 본 때가 없었던 것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仰之彌高 見其高而未能至也 鑽之彌堅 則其堅而未能達也 此顔子知聖人之道 而善形容者也 정자가 말하길, “仰之彌高는 그 높음을 보았지만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鑽之未見은 그 단단함을 본받았지만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안자가 성인의 도를 알고서 잘 형용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高堅是說難學 前後是說聖人之道捉摸不著 皆是譬喩如此 聖人只是一箇中底道理 高堅前後只是箇中庸 不可能 蓋聖人之道是箇恰好底道理 不著意又失了 纔著意又過了 只是難到恰好處 주자가 말하길, “높고 견고함은 배우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고, 앞에 보이다 뒤에 홀연하다는 것은 성인의 도를 붙잡고 더듬어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모두 비유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성인은 그저 하나의 中이란 이치일 뿐이고, 高堅前後도 그저 하나의 중용일 뿐이지만, 잘 해내기가 불가한 것이다. 대체로 성인의 도는 하나의 딱 좋은 道理인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또한 잃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면 또한 지나치게 되므로, 그저 딱 좋은 곳에 이르기가 어려울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顔子仰之彌高鑽之彌堅瞻之在全惚焉在後 不是別有箇物事 只是做來做去 只管不到聖人處 若做得緊又大過了 若放慢做又不及 聖人則動容周旋 都是這道理 안자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아지고 뚫으려 할수록 더욱 견고하며 쳐다보니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달리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리저리 행함에 있어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긴장해서 행하면 또한 너무 지나치게 되고, 만약 방만하게 행하면 또 미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행동거지 모두 이 이치일 따름이다. |
2 |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공자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끌어 주시어, 문(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禮)로써 나의 행동을 단속하게 해 주셨다. 循循 有次序貌 誘 引進也 博文約禮 敎之序也 言夫子道雖高妙 而敎人有序也 徇徇은 차례와 순서가 있는 모습이다. 誘는 이끌어 나아가게 함이다. 博文約禮는 가르치는 순서다. 부자의 도가 비록 높고도 오묘하지만,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순서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 所謂次序者非特以博文約禮分先後次序 博文約禮中 各有次序先後淺深 주자가 말하길, “이른바 次序라는 것은 단지 博文과 約禮를 가지고 그 선후의 차례를 구분하는 것일 뿐 아니라, 博文과 約禮 안에 각자 차례의 선후와 深淺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高說彌高彌堅 妙說在前在後 쌍봉요씨가 말하길, “高는 더욱 높고 더욱 견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妙는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上蔡謝氏曰 顔子學得親切 仰之彌高 鑽之彌堅 無限量也 以見聖人之道大 瞻之在前卽不及 忽焉在後又蹉 却以見聖人之道中 觀此一段 則知顔子看得親切 博我以文使知識廣 約我以禮 歸宿處也 상채사씨(사량좌)가 말하길, “안자는 성인의 도를 배우기를 친밀하고 절실하게 하였는데, 성인의 도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았고, 뚫으려할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이니, 이로써 성인의 도가 위대함을 드러낸 것이다. 바라보면 앞에 있었다는 것은 곧 자신이 그에 미치지 못함이고, 홀연히 뒤에 있었다는 것은 또한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이니, 도리어 이로써 성인의 도가 中道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 일단을 잘 살펴보면, 곧 안자가 친밀하고 절실하게 살펴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博我以文은 지식을 넓게 만드는 것이고, 約我以禮는 돌아가 머물 곳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博我以文 約我以禮 聖門敎人只此兩事 須是互相發明 約禮底工夫深 則博文底工夫愈明 博文底工夫至 則約禮底工夫愈密 주자가 말하길, “文으로 나를 넓히고, 禮로 나를 요약한다고 하였는데, 성인의 문하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그저 이 두 가지 일일 따름이나,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드러내어 밝혀주어야만 한다. 約禮의 공부가 깊다면, 博文의 공부는 더욱 밝아질 것이고, 博文의 공부가 지극하다면, 約禮의 공부는 더욱 정밀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博文條目多 事事著去理會 禮却只是一箇道理 如視也是這禮 聽也是這禮 言也是這禮 動也是這禮 若博文而不約之以禮 便是無歸宿處 詳此數條 解釋已極分明 學者合下便有著力處 若更推之 則文非特文章文華之文 凡剛柔之往來上下之交錯 微而天理之節文 著而法度之煥然者 皆是也 極其博 則貫通融會而天下之理洞然於吾心而無所蔽 禮非特儀禮典禮之禮 凡天理之本然人心之固有截然而有定則者 皆是也 極其約 則操持固執而天下之理渾然於吾身而無所虧 博文近於致知 約禮近於力行 不博則無以造乎約 不約則無以盡乎博 각헌채씨가 말하길, “博文의 조목은 많기 때문에, 일마다 하나하나 따라가서 이해해야 하지만, 禮는 도리어 그저 하나의 도리일 따름이다. 예컨대 보는 것도 이 禮이고, 듣는 것도 이 禮이며, 말하는 것도 이 예이고, 움직이는 것도 이 禮인 것이다. 만약 文으로 나를 넓히되 禮로써 그것을 요약하지 않는다면, 곧 돌아가 머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이 몇 조목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解釋은 이미 지극히 분명해질 것이니, 배우는 자는 본래(合下)부터 곧바로 힘쓸 곳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다시 이를 미루어나간다면, 文은 단지 文章이나 文華의 文일 뿐만이 아니다. 무릇 굳셈과 부드러움이 왕래하고 上下가 交錯함에 있어 은미하게는 天理의 節文이고, 현저하게는 그 법도가 밝은 것은 모두 이러한 것들이다. 그 넓음을 지극히 한다면, 관통하고 融會하여 천하의 이치가 내 마음에 환하게 되어 가려지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禮는 단지 儀禮나 典禮의 禮가 아니라, 무릇 天理의 본연함과 人心의 고유함이 확연하면서도 정해진 법칙을 갖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런 것들이다. 그 요약됨을 지극히 한다면, 몸가짐에 굳게 붙잡아서 天下의 모든 이치가 내 몸에 혼연하여 이지러진 것이 없게 될 것이다. 博文은 致知에 가깝고, 約禮는 力行에 가까운데, 넓지 않으면 요약함에 나아갈 수가 없고, 요약하지 않으면 넓히는 데에 극진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先博我以文以開廣我之知識 然後約我以禮 使我於視聽言動上 皆由乎規矩準繩 而所守得其要 쌍봉요씨가 말하길, “먼저 나를 文으로 넓혀줌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게 열어주고, 그러한 후에 나를 禮로 요약하여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 위에서 모두 법도와 원칙을 말미암게 함으로써 내가 지키는 바가 그 요체를 얻도록 하였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 侯氏曰 博我以文 致知格物也 約我以禮 克己復禮也 程子曰 此顔子稱聖人最切當處 聖人敎人 唯此二事而已 후씨가 말하길, “문으로써 나를 넓히는 것은 致知와 格物이고, 예로써 나를 요약되게 하는 것은 극기복례다.”라고 하였다. 정자가 말하길, “이것은 안자가 성인을 칭송하는 것 중에 제일 절실하고 합당한 곳인데, 성인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오직 이 두 가지 일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博我以文約我以禮 與博學於文約之以禮一般 但博學於文約之以禮 孔子是泛言 人能博文而又約禮 可以不畔夫道 而顔子則更深於此耳 侯氏曰 博文是致知格物 約禮是克己復禮 分曉 주자가 말하길, “博我以文과 約我以禮는 博學於文과 約之以禮와 같은 것이다. 다만 博學於文과 約之以禮는 공자께서 사람이 능히 博文하고도 다시 約禮할 수 있다면 이 道를 어기지 않을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지만, 안자의 경우에는 이것에 더욱 깊이 나아갔을 따름이다. 후씨가 博文은 致知와 格物이고, 約禮는 克己復禮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분명하게 깨우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致知格物 知之事也 克己復禮 行之事也 所行卽是所知 非於知之外別有所謂行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致知와 格物은 앎의 일이고, 克己復禮는 행함의 일이다. 행하는 바는 곧 알고 있는 바이지, 아는 것의 밖에 별도로 이른바 행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博我以文是要四方八面都見得周匝無遺 至約我以禮 又要收向身己上來 無一毫之不盡 兩事須互相發明 若博文而不約以禮 便無歸宿處 주자가 말하길, “文으로 나를 넓힌다는 것은 사방팔면에서 모두 두루 알아보아서 하나도 빠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禮로써 나를 요약한다는 것에 이르면, 다시 자신을 향해 거두어들여서 터럭 하나라도 다함이 없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은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드러내어 밝혀야 하는 것이니, 만약 文으로 나를 넓히고도 예로써 요약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돌아가 머물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不說窮理 又不說格物 只說博文 蓋文字 上該乎理而比之理則尤顯 下該乎物而比之物則尤精 不說理 只說禮 便是與復禮之禮同 此禮字 便有檢束 便有規矩準繩 若只說理 便泛了 更味兩箇我字 又見以身體之切實用功處 각헌채씨가 말하길, “窮理라고 말하지 않고, 또한 格物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그저 博文이라고 말한 것은, 대체로 文자는 위로 理를 갖추고 있되 理에 비한다면 더욱 잘 드러나고, 아래로는 物을 갖추고 있되 物에 비해서 더욱 정밀하기 때문이다. 理를 말하지 않고, 그저 禮를 말하였는데, 이는 곧 克己復禮의 禮와 더불어 똑같은 것이다. 여기의 禮자에는 곧 檢束한다는 뜻이 있고, 또 법도와 원칙도 있다. 만약 그저 理라고만 말했다면, 곧 너무 일반적인 것이다. 더욱이 두 개의 我자를 음미해본다면, 또한 내 몸으로써 체득하여 절실하게 공력을 쏟아부을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博學於文約之以禮是我自去博約 以學言也 博我以文約我以禮是夫子博我約我 以敎言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文에서 배움을 넓게 하고, 예로써 그것을 요약한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가서 넓히고 요약하는 것이니, 배움으로써 말한 것이다. 文으로 나를 넓히고 예로 나를 요약한다는 것은 공자께서 나를 넓히고 나를 요약한다는 것이니, 가르침으로써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博文約禮 夫子敎人之法 皆然 惟子淵求道之力 認道之眞有以見夫子之爲我設爾 후재풍씨가 말하길, “博文約禮라 하였는데, 공자께서 사람을 가르치신 법은 모두 그러하였다. 그러나 오직 子淵의 道를 구하려는 힘과 道를 알아보는 진정성만이 공자께서 나를 위하여 설정하셨음을 알아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
4 |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학문을 그만두려해도 그만두지 못하게 하시고, 내가 재주를 다해 좇아도 높이 서계신 듯하여, 비록 그것을 따르고자 하여도 말미암을 도리가 없다.”라고 했다. 卓 立貌 末 無也 此顔子自言其學之所至也 蓋悅之深(欲罷不能)而力之盡(旣竭吾才) 所見益親(如有所立卓爾) 而又無所用其力也(欲從末由) 吳氏曰 所謂卓爾 亦在乎日用行事之間 非所謂窈冥昏黙者 卓이란 서 있는 모습이다. 末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안자가 자신의 배움이 이른 곳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대개 깊이 기뻐하고 온 힘을 다하였더니 보이는 바가 더욱 친근해졌지만, 또 그 힘을 쓸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오씨가 말하길, “이른바 卓爾라는 것은 또한 일상 생활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지, 이른바 窈冥昏黙(요명혼묵: 심오하고 깊고 어둡고 고요함)인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卓爾是聖人之大本立於此 以酬酌萬變處 卽前日高堅前後底 今看得確定親切 不似向來無捉摸處 不是離高堅前後之外 別有所謂卓爾者也 주자가 말하길, “卓爾(우뚝함)는 성인의 大本이 여기에 서 있어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하는 부분이니, 이는 곧 예전의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으려할수록 더욱 견고하고, 바라보니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확정적이고 친근하며 절실하게 볼 수 있다는 것으로서, 마치 종래 붙잡아 더듬어 본 부분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곧 高堅前後의 밖에 달리 무슨 이른바 卓爾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吳氏所釋卓爾之意 最爲切實 嘗以其意推之 夫聖人之道 固高明廣大 不可幾及 然亦不過性情之間動容之際 飮食起居交際應酬之務 君臣父子兄弟夫婦之常 出處去就 辭受取舍以至於政事施設之間 無非道之寓 면재황씨가 말하길, “오씨가 풀이한 卓爾의 뜻이 제일 절실하다. 나는 일찍이 그 뜻을 미루어본 적이 있는데, 무릇 성인의 道는 본래 고명하고 광대하여 거의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性情의 사이와 動容의 즈음에 먹고 마시며 기거하고 교제하며 應酬하는 일에 불과한 것이어서, 군신과 부자, 형제와 부부의 일상으로서 벼슬에 나가고 물러남, 어떤 나라를 떠나고 나아감, 사양하고 받음, 취하고 버림으로부터 정사를 베푸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이에 道가 깃들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窈窈冥冥 至道之精 昏昏默默 至道之極 列子之言也 此章學者易得求之高遠 故引吳氏之說以明之 쌍봉요씨가 말하길, “窈窈冥冥은 지극한 도의 정밀함이고, 昏昏默默은 지극한 도의 극치라는 것은 열자의 말이다. 이 장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자칫하면 高遠한 것을 추구하기 쉽기 때문에, 오씨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그것을 밝혀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
5 | 程子曰 到此地位 工夫尤難 直是峻絶 又大段著力不得 楊氏曰 自可欲之謂善 充而至於大 力行之積也 大而化之 則非力行所及矣 此顔子所以未達一間也 정자가 말하길, “이 경지에 이르면, 공부가 더욱 어려워져서, 그야말로 높고도 절묘한 경지이며, 또한 대단히 힘쓸 수조차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양씨가 말하길, “‘하고자 할 만한 것을 善이라고 말한다’는 것으로부터 확충하여 위대함에 이르면, 이는 열심히 행하는 것을 쌓아가는 것이지만, 위대하면서도 化하는 것은 힘써 행함으로써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안자가 미처 한 칸만큼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地位指旣竭吾才如有所立卓爾之地位也 至此地位 則其理爲至精至微 非淺智浮識之所能知 疾趨大步之所能至也 惟寬以居之 勿忘勿助長 則不日而化矣 夫能爲之謂才 竭其才 則是盡其所能爲之才 則其工夫 蓋非才所能及矣 此其所以著力不得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경지란 ‘이미 내 재주를 다하였으나 공자님의 도가 마치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그러한 경지인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그 이치는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은미한 것이 되므로, 얕은 지혜와 뜬 지식으로는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며, 질주하거나 큰 걸음으로는 능히 이를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오직 관대함으로 거처하면서 잊지 않되 助長하지도 않는다면, 며칠 되지 않아서 化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무릇 능히 할 수 있는 것을 일컬어 재주라고 한다. 자기 재주를 다하였다면,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는 재주를 다한 것이니, 그렇다면 그가 하는 공부는 대체로 재주로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힘을 쏟을 수조차 없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將孟子善信美大聖神之次第以配此章 大猶是力行積累之功 化則久久純熟自然無迹之妙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서는 맹자의 善信美大聖神의 순서를 가지고 이 장과 짝지었는데, 大는 힘써 행하기를 쌓고 또 쌓은 功과 같고, 化는 곧 오래되어 순수하고 무르익어서 저절로 그러하여 자취도 없는 오묘함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夫子敎人 不出博文約禮二事 門人莫不知 惟顔子有所進有所見 故高者有可攀之理 堅者有可入之理 在前在後者 有可從而審其的之理 非若其他僅能弗畔而已 此門人所以不可企及也 朱子曰 得之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博文과 約禮 이 두 가지 일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문인들 중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안자만이 나아간 바가 있었고, 본 바가 있었기 때문에, 높은 것에는 기어오를 이치가 생겼고, 견고한 것에는 뚫고 들어간 이치가 생겼으며,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는 것에도 따라가서 그 표적을 살필 수 있는 이치가 생긴 것입니다. 이는 기타 문인들이 그저 어기지 않을 수 있을 뿐인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인들이 그에 미치기를 企圖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잘 터득하였다.”라고 하였다. 顔子到這裏自覺得要著力而無所容其力 緣聖人不勉而中 不思而得 賢者若要著力 不勉不思 便是思勉了 所以大段著力不得 今日勉之 明日勉之 勉而至於不勉 今日思之 明日思之 思而至於不思 自生而至熟 到這裏直待他自熟 안자는 여기에 이르러서 힘을 써야 한다고 자각하였지만 그 힘을 용납하는 곳이 없었다. 성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中道에 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으나, 현자는 힘을 쓰고자 한다면 노력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도 곧바로 생각하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에, 대단하게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노력하고 내일 노력하는 등 계속 노력한다면 노력하되 노력하지 않는 지경에 이를 것이고, 오늘 생각하고 내일 생각하는 등 계속 생각한다면 생각하되 생각하지 않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날 것에서부터 무르익는 것에 이르는데, 여기에 이르면, 그저 그것 스스로 무르익도록 기다릴 따름이다. 仰高鑽堅瞻前忽後 此猶是見得未親切在 如有所立卓爾 方始親切 雖欲從之末由也已 只是脚步未到 蓋不能得似聖人從容中道也 우러러보면 더욱 높고 뚫으려하면 더욱 견고하며 쳐다보면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 이것은 아직 친근하고 절실하게 알아보지 못함이 있는 것과 같고, 마치 우뚝 서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친근하고 절실하게 알아본 것이다. 비록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곳이 없다는 것은 그저 한걸음 정도만 미처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니, 대체로 성인처럼 조용하게 도에 들어맞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潛室陳氏曰 前此猶可以用力 到此則自大趨於化 自思勉而至不思不勉 介乎二者之境 所未達者一間 非人力所能爲矣 但當據其所以然從容涵養 勿忘勿助 至於日深月熟 則亦將忽不期而自到 而非今日之所預知也 잠실진씨가 말하길, “예전에는 이것에 그래도 힘을 쓸 수 있었지만, 여기에 이르면 곧 大의 경지에서 化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경지로부터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니, 이 두 가지의 경지 사이에 끼어 있으면, 미처 이르지 못한 것이 그저 한 칸이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다만 마땅히 그 그렇게 된 까닭에 근거하여 조용하게 涵養하면서 잊지 않되 조장하지도 않으면, 날로 깊어지고 달로 무르익는 경지에 이를 것이니, 그렇다면 또한 장차 홀연히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될 것이지만, 오늘날 미리 알 수 있는 바는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
6 | ○ 程子曰 此顔子所以爲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 胡氏曰 無上事而喟然歎 此顔子學旣有得 故述其先難之故 後得之由 而歸功於聖人也 高堅前後 語道體也 仰鑽瞻忽 未領其要也 惟夫子循循善誘 先博我以文 使我知古今達事變 然後約我以禮 使我尊所聞行所知 如行者之赴家 食者之求飽 是以欲罷而不能 盡心盡力 不少休廢 然後 見夫子所立之卓然 雖欲從之 末由也已 是蓋不怠所從 必求至乎卓立之地也 抑斯歎也 其在請事斯語之後 三月不違之時乎 정자가 말하길, “이것은 안자가 공자를 깊이 알고서 잘 따라 배운 사람이 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호씨가 말하길, “위에서 일을 말하지 않고도 찬탄한 것, 이것은 안자가 이미 배움에 있어 얻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을 먼저 하는 이유와 얻는 것을 뒤로 하는 이유를 진술하고, 그 공을 성인에게 돌린 것이다. 높고 견고하고 앞에 있다 뒤에 있는 것은 道의 體를 말한 것이고, 올려다보고 뚫어보고 바라보면 황홀한 것은 그 요체를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오직 공자만이 차근차근 잘 유도하여, 먼저 文으로 나의 지식을 넓혀서 나로 하여금 고금을 알게 하고 일의 변화에 통달하게 한 연후에, 예로써 나를 요약하여(나의 행실을 단속하여) 나로 하여금 들은 바를 높이고 안 바를 행하는 것이, 마치 여행자가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밥을 먹는 자가 배부름을 구하는 것처럼 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어서 마음과 힘을 다하여 조금이라도 쉬거나 그만두지 않았으니, 그런 이후에 공자가 세우신 바가 우뚝 솟은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비록 그것을 따르고자 하여도 말미암을 곳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대개 따르는 바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 반드시 우뚝 선 경지에 이르기를 추구한 것이다. 아마도 이 찬탄은 이 말(극기복례)을 일삼기를 청한 이후에 한 것으로서, 3달 동안 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 때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非如孔子因曾點而喟歎 공자가 증점 때문에 찬탄했던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新安陳氏曰 先難指仰鑽瞻忽 後得指如有所立卓爾 由字指善誘博約 신안진씨가 말하길, “어려운 것을 먼저 함은 우러러보고 뚫고자 하고 바라보며 홀연함을 가리키는 것이고, 나중에 얻음은 마치 우뚝 서 있는 것 같음를 가리킨다. 由자는 잘 이끌어주고 넓혀주며 요약해주는 것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問程子言到此大段著力不得 胡氏又曰不怠所從必欲至乎卓立之地 何也 朱子曰 末由也已 不是到此便休了不用力 但工夫用得細 不似初間用得許多粗氣力 這處也只是循循養將去 如何大段著力得 只恁地養熟了 因擧橫渠云 大可爲也 化不可爲也 在熟之而已 欲罷不能 便只是就這博文約禮中做工夫 合下做時 便是下這十分工夫去做 到得這歎時 便是欲罷不能之效 衆人與此異者 只是爭這箇欲罷不能 做來做去 不知不覺地 又住了 顔子則雖欲罷而自有所不能 不是勉强如此 顔子用功精專 方見得夫子動容周旋 無不中處 皆是天理之流行 卓然如此 分曉 到這裏 顔子些小未能渾化如夫子 故曰 雖欲從之末由也已 누군가 묻기를, “정자는 여기에 이르면 대단히 힘을 쓸 수는 없다고 말하였는데, 호씨는 다시 따르는 바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반드시 우뚝 서는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고 말하였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말미암을 바가 없다는 것은 여기에 이르면 곧 그만두고 힘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공부를 함에 있어 세밀한 것을 사용함으로써, 처음에 허다한 거친 氣力을 사용한 것과는 같지 않다는 것일 따름이다. 이 부분에서는 그저 차근차근 길러나가야 하는 것이니, 어찌하여 대단하게 힘을 쓸 수 있겠는가? 그저 이렇게 길러서 무르익게 할 따름이다. 이 때문에 장횡거의 말, 즉 ‘大의 경지는 할 수 있는 것이지만 化의 경지는 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무르익게 함에 있을 따름이다.’라는 말을 거론했던 것이다. 그만두고 싶어도 할 수 없음이란 곧 그저 이 博文約禮 안으로 나아가 공부를 할 따름인 것이다. 원래 할 때에는 곧 이 공력을 최대한 쏟아부어 가서 행하는 것이다. 이 찬탄을 할 때에 이르러서는, 이는 곧 欲罷不能의 효과인 것이다. 뭇사람이 이와 다른 것은 그저 이 하나의 欲罷不能을 다툴 뿐이니,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또한 그만두어버리는 것이다. 안자의 경우, 비록 그만두고자 하여도 저절로 그렇게 할 수 없는 바가 있었으니, 억지로 하여 이와 같았던 것이 아니다. 안자는 공력을 씀이 정밀하고 專一하였으므로, 바야흐로 공자의 動容周旋이 道에 맞지 않는 곳이 없으며, 모두 天理의 流行으로서 우뚝하기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니, 분명하게 깨우쳤던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 안자는 공자처럼 혼연하게 化의 경지에 약간 이를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곳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高堅前後 始時之所見也 博文約禮 中間用力之方也 欲罷不能以後 後來得力之效驗也 高堅前後는 처음 시작할 때에 보았단 바이고, 博文約禮는 중간에 힘을 쓰는 방도이며, 欲罷不能 이후는 나중에 힘을 얻은 효험이다. 問顔子此說亦是立一箇則例 與學者求道用力處 故程子以爲學者須學顔子 有可依據 孟子才大難學者也 曰然 누군가 묻기를, “안자의 이 말씀은 또한 하나의 원칙과 예를 세워서 배우는 자에게 道를 구함에 있어 힘을 쓸 곳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에, 정자도 배우는 자라면 반드시 안자를 따라 배워서 의거할 만한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맹자는 재주가 커서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仰之彌高 愈進愈難攀也 鑽之彌堅 愈鑽愈難入也 瞻之在前 則若不及 忽焉在後 則又過之 蓋得其中者爲難也 夫子則循循然善誘人 從容不迫 以其序而進之 博文約禮 使之集衆義於見聞之間 宅至理於隱微之際 使我自不能已 盡吾之才以極其至 則見夫所立卓爾 蓋至此非力之所能爲 此顔子所以喟然而歎歟 反覆詳味 則顔子學聖人始終之功 孔子敎人先後之序 與夫聖人之道之至 皆可得而硏求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나아갈수록 더욱 기어오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뚫을수록 더욱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쳐다보면 앞에 있다는 것은 곧 내가 미치지 못함과 같고,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또한 내가 지나쳤다는 것이니, 대체로 그 중도를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차근차근 잘 사람들을 유도하였으니, 조용하고 급박하지 않아서, 그 순서에 따라 나아가게 하였고, 博文約禮하여 그로 하여금 많은 義를 보고 듣는 사이에 모으도록 하였고, 은미한 즈음에 지극한 이치가 머물러 살게 하여, 나로 하여금 스스로 그만둘 수 없도록 하였다. 나의 재주를 다함으로써 그 지극함에 이른다면, 저 우뚝 서 있는 바를 볼 것이니, 대체로 여기에 이르는 것은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자가 감탄하였던 까닭이었을 것이리라. 반복하여 자세히 음미해보면, 안자가 성인을 따라 배운 처음과 끝의 공효, 공자께서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그 선후의 차례, 그리고 저 성인의 道의 지극함도 모두 궁리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雖欲從之末由也已 到此際 力無所施 乃冰消雪釋 査滓融化之境 雖聖人不能授顔子 顔子亦不能受之於聖人 今欲學顔子 且把博文約禮作依據 日積月累 人十己千 將來不知覺 自有豁然融會處 잠실진씨가 말하길, “비록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곳이 없다는 것은, 이 즈음에 이르면, 힘을 베풀 곳이 없지만, 도리어 얼음이 녹고 눈이 풀리듯 찌꺼기가 녹아서 변화되는 경지라는 것이다.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안자에게 줄 수 없고, 안자도 역시 성인에게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안자를 따라 배우고자 한다면, 또한 博文約禮를 가지고 依據로 삼아서, 날로 쌓고 달로 쌓으면서, 남이 열 개를 할 때 나는 천 개를 한다면, 장래에 알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드넓게 분명히 이해되는 부분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不怠所從是發明雖欲從之末由也已言 不是恁地住了 請事斯語是約我以禮時事 三月不違仁是有所立卓爾時事 쌍봉요씨가 말하길, “따르는 바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곳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어 밝혀서 말한 것이지, 이렇게 그만 두고 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일삼기를 청한다는 것은 나를 禮로써 요약할 때의 일이고, 석달이나 仁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뚝 서 있는 바가 있을 때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章顔子初見聖道之無窮盡無方體 非特不能從之 亦未的於見之也 及夫子博以文約以禮知行功深 方見聖道之卓然有立 的於見之 與初之仰鑽瞻忽 大不同矣 但雖見其卓爾者 猶未能進而從其卓爾者 雖欲用力 又無所容力也 使天假之年 則由勉而安 由大而化 不特見到聖人地步 亦進到聖人地步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장에서 안자가 성인의 道에는 다함이 없고 方體(일정한 몸)가 없음을 처음 보았을 적에, 단지 그것을 따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역시 그것을 알아봄에 정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자께서 文으로 넓혀주고 禮로 요약해주어 알고 행하는 공이 깊어짐에 이르러, 바야흐로 성인의 도가 우뚝 서 있음을 보았으니, 그것을 알아봄에 정확한 것으로서, 처음에 우러러보고 뚫으려하며 쳐다보다 홀연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 우뚝함을 본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아직 나아가서 그 우뚝함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힘을 쓰고자 하여도 또한 힘을 용납할 곳이 없는 것이다. 만약 하늘이 그에게 몇 년을 빌려주어 더 살게 하였다면, 노력함을 말미암아 편안해하였을 것이고, 大의 경지를 통하여 化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니, 그저 성인의 경지를 보았을 뿐 아니라, 또한 성인의 경지에까지 나아갔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