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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창조 전에 계셨던 예수님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4-17).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전에 계셨던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빌 2:5-6) 타락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
여기에 대하여 히브리 기자는 말하기를,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3).
제1절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그리스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이 되시며”(계 1:4), 또한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 1:8)고 하시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고 하신 것을 보아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하셨으며”(계 2:8, 사 44: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계 21:6)라고 하였고, 또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고 하신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사 41:4).
1. 삼위일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라고 하였다. 본절을 보면 삼위일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그 위가 영원하신 하나님과 똑같은 까닭에 그 권능도, 영광도 영원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도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28:19).
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같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그 위가 똑같으므로 성도들이 드리는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세도 동일하시다. 즉 성부 성자 성령께 찬송과 영광 돌려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무궁토록 성 삼위께 영광 영광(찬송가 2장)하고 경배 드리며,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면서 성 삼위일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동일하게 영광을 돌려 드렸다(사 6:2-3).
보좌 주변에 있는 네 생물들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며 똑같이 영광을 돌려 드렸다(계 4:8). 그러나 이렇게 삼위일체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인 지식으로 식별하려다가 많은 이단들이 생겼다. 삼위일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여러 선배 목사와 주석 학자들의 말을 인용했으니 독자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1) 삼위일체의 사역은 다르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전 12:4-6)고 하셨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신령한 은사들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증거했다.
(2)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시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고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니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이다.
(3) 성부 성자 성신은 늘 함께 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면서 축도하였다”(고후 13:13). 이처럼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축도하였다.
(4) 성부 성자 성신 안에서 영혼이 택함을 받았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였다”(벧전 1:2). ‘하나님의 예지에 의하여 구원함과’, ‘성령의 감화로 믿고 순종하여 가며’, ‘선택에 의하여 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속죄 받은 영혼이다.
(5) 성부 성자 성신의 은혜로 성도의 영혼에 인치셨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롬 8:9, 눅 15:1-23, 엡 1:13).
2. 사역은 다르나 동역을 하심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전 12:4-6)고 하신 말씀은 동일한 삼위일체이신 주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사명과 은사가 임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각각 다른 은사 역시 삼위일체께서 주신다. 은사의 직분 면으로 보면 주께서 지도하며 주를 위한 것이다(계 1:13, 16, 2:1, 3:1, 고전 4:1, 8:6, 롬 12:11).
그리고 은사의 역사 면으로 보면 다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다 동일한 삼위일체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차별은 없으나 성부, 성자, 성신의 사역은 다르다. 계급적 차별은 아니다.
성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예수님과 성령이 동역을 하셨고, 성자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대속 하시는데 하나님과 성령이 동역 하셨으며, 성령이 속 사람인 심령을 변화시키고 중생 시키는 데 성부도 성자도 동역을 하신다. 즉, 삼위일체의 사역은 다르나 삼위일체께서는 같이 일을 하신다. 그러나 차별은 없으시다.
(1)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짐
마태복음 6장 9-13절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내용이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의 성호를 찬양하셨고, 둘째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고, 셋째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넷째 죄 사함과 보호를 위해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생애는 개인적인 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소비한 일이 없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로 일관하셨다.
모든 죄를 사죄하여 주는 천국 복음을 세상에 전하여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그 고통을 친히 받아 속죄의 성업을 이루셨다. 이같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희생 정신으로 목회하며 기도해야 한다.
①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하셨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이처럼 성도들이 하는 기도의 목적도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해 해야 한다.
② 모든 천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0-22, 19).
③ 하나님의 뜻대로 땅에 행하신다고 하셨다.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5)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의 뜻대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단 4:25).
(2)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주께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주를 따라가더라. 그 곳에 도착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시고 그들로부터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로 물러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원하시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다”.
“그 때 한 천사가 하늘에서 주께 나타나 힘을 돋우어 주더라. 그러한 갈등 속에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의 땀이 큰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오셔서 그들이 슬퍼하다 잠든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너희는 자고 있느냐?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라”(킹성경 눅 22:39-46)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본문에 대하여 그랜드 주석에서 말하기를, 누가복음 22장 42절에 아버지의 뜻이어든…아버지의 원대로…원하나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둔 예수님의 기도는 실로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코 고난을 피하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모범적인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완전한 인간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은 극치를 이루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음의 쓴 잔을 옮겨주시기를 간구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함을 아셨기에 스스로 고난을 자원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시는 겸손과 순종의 모습을 보이신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잔’은 성경에서 이미 정해진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는데(시 11:6, 75:8, 사 51:17) 여기서는 예수께서 담당하실 십자가의 고난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결국 본절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게 해달라는 호소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육체적 죽음을 앞두고 이를 피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를 도피라는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적극적인 복종이라는 방법으로 극복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가져다 주셨다(히 2:10, 5:8)(그랜드 종합주석 눅 p.493). 필자도 이해석을 지지한다.
①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셨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천사가 도왔고, 애쓰고 힘써 부르짖으니 땀방울이 변하여 핏방울 같이 되셨다.
②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7-39). 이는 죽은 영혼을 살려 영생케 하려 하심이다.
③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3-34). 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다.
(3) 성령은 속사람을 거듭나게 하심
“그때 너희 위에 깨끗한 물을 뿌리리라 그리하면 너희가 깨끗케 되리니 너희 모든 더러움과 너희의 모든 우상들로부터 내가 너희를 깨끗케 하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으리라 내가 너희 육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 같은 마음을 주리라”(킹성경 겔 36:25-26).
이를 구분하면, 첫째 더러운 마음을 씻고, 둘째 심령 속에 새 영을 부어주며, 셋째 심령에 굳은 마음을 제하고, 넷째 새 신으로 말미암아 새 마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야 심령이 변화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5-7)고 하신 대로 심령이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결심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써 심령이 거듭난다.
즉,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법을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중생이란 신생명의 시작이다. 이는 인간의 자력으로는 불가능하고(요 3:8)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본래 인간은 타락한 아담의 계통으로 출생되었지만 둘째 아담이 되신 예수님의 계통으로 다시 거듭나 속 사람(속 사람=영혼=중생), 곧 신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한 것은 중생한 성도를 지칭한 것이다. 속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새롭게 지음 받았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②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영혼)이 중생할 수 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느니라”(딛 3:5).
③ 썩지 않을 씨(성령)로 거듭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약 1:18)고 하였다. 여기서 썩지 않을 씨란, 생명의 성령인 고로(롬 8:2) 썩지 않을 씨로 비유한 것이, 썩을 씨란, 아담으로 난 육체를 가리킴이다.
④ 약속의 성령으로 인을 치신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1:13). 초림 예수 그리스도가 우연히 오신 것이 아니라 예언하신 대로 임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함도 구약의 여러 선지자와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임했다.
⑤ 내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고 하셨다. 이 때는 신령한(영생체) 몸으로 부활한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심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골 1:15). 예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신 것은 신상과 같다는 뜻이 아니요 신의 원형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성부는 보이지 않는 형상이요, 성자는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성신은 보이지 않는 실존이다.
여기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는 말하기를, 골로새서 1장 15-23절은 그리스도의 신위(身位, Person)에 대한 논술이니 그리스도는 ㉠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또 보존자시며, ㉢ 교회의 머리시요 중보이심을 말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은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영적 실존이시다(요 4: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나타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딤전 6:15, 히 11:27)을 인간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형상’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에이콘’이니, 원형을 대신 나타내는 실상을 의미한다.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을 그렇게 대신 나타내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완전하고 흠이 없게 나타나셨으니 만큼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을 알려는 인간의 노력은 헛된 수고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의 감각과 지성으로 깨달을 수 없는 까닭이고, 둘째, 누가 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대신 나타내 주어야 할터인데, 오직 하나님과 동질 동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이 일을 하셨다(요 1:14-18).
여기에 대하여 칼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의, 선, 지혜, 권능, 곧 하나님 전체가 나타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다른 데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된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을 묘사한 것은 모두 다 우상이라고 하였다(박윤선 목사 주석 골 p.257).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세계위에 들어나게도 하시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빌 2:1-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사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이요, 본체이시기 때문이다.
(1)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리스도는 위로나 시간으로나 하나님과 동체가 되심으로 그 존재도 우주 창조 전에 계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창조주가 되셨다고 하였다(창 1:1-31, 벧전 1:20-21).
창조 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일체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보이는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보좌들, 주관들, 권세들이나 만물을 그가 창조하셨다고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보다 먼저 나셨다고 하는 이유는 천상 천하에 있는 피조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된 까닭이다. 하늘과 땅에서. 여기 ‘하늘’은 영계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문자적 천공과 천체들을 가리킨다(창 1:2)는 학자도 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이것은 볼 수 있는 물질과 볼 수 없는 영적 실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좌들이나. 이것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가까이 봉사하는 스랍들(겔 9:3, 10:1, 11:22, 시 18:10)을 가리켜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것이 천계에 있는 24장로들의 보좌들을 가리킨다는 학자들도 있다(계 4:4, 11:16, 20:4). 필자는 1설보다 2설의 말을 더 믿으나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윗물 세계(신령계)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다는 것 역시 믿는다(창 1:7, 시 148:4, 신 10:14, 왕상 8:27, 대하 6:18, 느 9:6).
또한 천군 천사도 지음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19-20).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1-22)고 하셨기 때문이다.
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를 창조하셨다.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천지를 창조하실 때 육신도 지음을 받았지만 영혼도 지음을 받았다(렘 38:16, 슥 12:1, 벧전 4:19).
② 예수님이 창조의 근본이 되셨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 3:14). 이는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③ 천하 만민이 그(예수)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3, 10).
④ 저가 하늘 위에 물들도 지으셨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 148:4-5, 1-3). 이는 둘째 날에 창조된 일이다.
⑤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 시 33:6).
(2)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3-14).
예수 그리스도는 도성인신(道成人身)으로 우리와 꼭 같은 수육(受肉)을 하셨으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이 내재 충만하셨다(딤전 3:16).
여기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는 말하기를, 특별히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로고스’께서 육(몸과 영혼)으로 변하였다는 의미가 아니고, 육(몸과 영혼)을 취하셨다는 의미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즉 그는 육을 취하셨으나 하나님 그대로 오신 것이다.
육신으로 오셨으나 죄는 없으시다(롬 8:3).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저희의 죽음을 대신했다고 했다(딤전 3:16, 요 14:9). 사람으로 나타났으나 속에는 은혜와 진리의 빛이 충만해 있었다(딤전 6:16, 히 10:20). “그리하여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에 까지라”(킹성경 빌 2:8).
이와 같이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에 대하여 슐라텔은 말하기를, 이것은 예수님이 성전 대신이 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시다(마 12:6)라고 하였다(박윤선 목사 주석 요 p.72).
여기에 대하여 김응조 목사는 말하기를, 요한복음 1장 11-12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생의 경험을 말했으나 14절에는 로고스의 화신(化身)에 대한 인간의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도성인신으로 우리와 꼭같은 수육(受肉)하셨으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가 영광을 자신에게 소득하셨다(히 2:11-17, 딤전 3:16). 다시 말하면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을 소유하셨으나 하나님의 본질되는 내재의 은혜와 진리를 소유하신 점이 인간과 다르니 이것이 신성이시다(김응조 목사 주석 요 p.571).
이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것을 신학적으로 볼 때는 ‘화신’이나 ‘도성인신’으로 또 헬라 원어로는 ‘로고스’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오신 인자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마 1:20).
성구와 금언에서 말하기를, “에세이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나서 견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한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이사야 11:1-2)라고 하셨고,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2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 복음 1:14, 요한 복음 2:24, 계시록 22:21).
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많은 신학자들의 공동 해석은 ‘로고스’ 그 자신이 육신이 되어 우리 인간의 동질로서 인간 세상에 오셨다고 한다(빌 2:6-7).
② 예수님을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이는 아담의 후손들이 혈육에 속해 있으며 율법 아래, 저주 아래, 죽음 아래 속해 있던 영혼을 속량하시기 위함이다.
③ 예수님은 혈육에 속하여 오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히 2:14-15).
(3)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빌립보서 2장 6절의 말씀을 박윤선 목사는 설명하기를, ‘그는 근본’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흽알콘’이니 전재를 의미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존재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본체란 말은, 헬라 원어로 ‘몰페’라고 하는데 한역의 각주에서와 같이 형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몰페’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본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정체 그대로 계셨다. 그러므로 그의 강세는 하나님의 정체되심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문구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그 영광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시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 동등이라는 헬라 원어(이사)가 중성이고, 남성이 아닌 까닭이다. 만일 바울이 여기서 신성의 동등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남성적 형용사 이손이(헬라어) 사용되었을 것이다.
영광에 있어서 성부와의 동등은 그리스도께서 내놓으신 것이니 고린도 후서 8장 9절에도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신성은 성자의 실존에 속한 것이니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께서 강세하신 후에도 그의 신성은 그냥 존속하신 것이다. ‘취할 것으로’란 말은, 헬라 원어로 ‘할팡몬’이니 한역 각주에 ‘보류할 것으로’라고도 했으나, ‘부당한 취득으로’라고도 번역된다. 그렇다면 그 전 문구의 의미는 이렇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정체시니 만큼, 하나님과 동등의 영광 상태로 계심을 부당한 취득이라고 여기신 바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는 것이다(박윤선 목사 주석 빌 p.206).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일체이시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③ 예수 그리스도는 본체의 형상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셨다”(히 1:3)고 하였다.
④ 예수님은 본체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하신 것을 보아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틀림없다.
(4) 종의 형상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본체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상을 취하사 인간 모양으로 낮아지심에 대하여 나운몽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높고 높은 하늘의 보좌를 떠나서 낮고 낮은 죄악 세상 속에 출생하는 것부터가 견욕(見辱)의 시작이다. 화려한 왕궁이나 부귀 영화를 누리는 귀인댁에 태어나심도 아니고 무명 목수의 집안에 태어났고 더구나 출생 당시에 방안도 아닌 말구유 위에 자리 잡게 됐으니 출생하는 순간부터 견욕 생활이었다.
그 후 계속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며 목수 요셉을 아버지로 모시고 목수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대신 학대를 받으셨다. 혹설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켜 “본래의 인류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별도로 창조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육신으로 말하면 열조가 그리스도의 조상이니(롬 9:9) 이는 마치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진액을 받아 뿌리의 보전을 힘입은 것과 같다(롬 11:17-18).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몸으로 출생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다(빌 2:7-8). 이같이 그리스도께서 성경상으로 보나 본래의 인류와 질적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에 질적 인연이 없다면 인성을 상실할 것이 될 것이며, 그러는 때는 인류와의 접붙임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씨는 하늘의 씨라 할지라도 밭이 세상 밭이니 세상과 인연이 없을 수 없다. 그 어머니가 사람이니 질적인 면에서 인류와 전연 인연이 없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고로 아무리 신성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어머니가 사람인 이상 인성을 지니고 있을 인류와의 인연 관계가 그로 하여금 하늘의 형상에 비할 때 얼마나 낮아진 모습이며 얼마나 욕된 생활이랴. 만일 그렇지가 아니하다면 인류의 구원 주,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 접목의 역할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나운몽 목사 기독교 도리학 해설집 pp.221-222).
또한 삼위일체이신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심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는데 그렇다고 그 화육의 사역으로 인하여 그의 신성적 존재가 소멸되거나 정지된 것은 아니다. 바울 사도가 이 화육의 사역을 가리켜 말한 바 즉,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빌 2:6)는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버린 것으로 오인하는 자들도 있으나 이는 하나의 착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화육은 신성을 버리거나 정지한 것이 아니고, 화육하신 그 격위도 그냥 신위이시며 인성이시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세상에 육신으로 계시면서도 당신께서 하나님의 신위를 지니고 계심을 누누이 말씀하신 바가 있다.
즉 빌립이 주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할 때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봤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했으며 또 유대인들이 주님을 향하여 “선한 일 한 것으로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람이 되어 스스로 하나님이라 하여 참람한 말을 하는 까닭이라”고 할 때,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보내신 자라”(요 10:35-36)고 하셨으며, 또 주님 스스로 “나와 아버지는 일체”(요 10:30)라고 하셨던 것이다(나운몽 목사 기독교 도리학 해설집 pp.222-223).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형상이면서도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 육신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셨다.
① 종의 형상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②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롬 3:24-25)고 하셨다.
③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5) 하나님의 광채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3).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하셨다. 곧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한 실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반영으로써 지극히 거룩하시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자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기에 합당하다.
히브리서 1장 3절에 대하여 김응조 목사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이다. ‘본체의 형상’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 요소 그대로 구비하신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제덕(諸德)을 완비하셨다(골 2:9). 환언하면 하나님 자체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피조물처럼 하나님의 일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하나님을 볼 수 있다(요 14:9).
‘만물을 붙드시고’ 본절 절반은 주의 영광의 본질을 말했으나 하반은 그의 직능을 말했다. 즉 우주 만물의 그 질서를 따라서 운행, 생성, 발육에 이르기까지 오직 그의 말씀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인다. 이 능력은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다(마 28:18). 저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부양하신다. 또한 ‘죄를 정결케’ 하시는 최대 사역의 중심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정결케 하여 주신 사실이다(김응조 목사 강해 히 p.364).
여기에 대하여 성경연구 주해에서 해석하기를,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묘사된다. 헬라어 ‘아파우가스마’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즉, 자체 내의 빛으로 인해 나오는 ‘광채’라는 의미로, 또는 외부의 빛으로 인해 나오는 ‘반영’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는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밝음으로부터 발광되는 발광로, 또는 그 영광을 반사해 주는 반사체로 말해지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뜻에서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과 영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체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영광을 볼 수 있다. ‘영광’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대로 빛(행 22:11)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과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결부시켜 광채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광’은 때때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가리킨다(예, 겔 1:28, 11:23). 또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명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엑스포지터스 성경연구 주해 히 p.515).
즉, 삼위일체가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형상이셨으나 아담의 후손의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대속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
여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심은 그리스도는 성부와 일체성을 말한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눈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런 반영의 형태로 내림하셨다고 하였다고 해석도 하였다.
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광채이시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고 바울은 말했다. 그 빛이 바울의 심령을 재창조한 것이다. 즉 심령이 새로운 피조물로 되는 것이다(고후 5:17).
② 하나님 자신이 빛이 되셨다.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성부의 하나님은 창조의 빛이요, 예수님도 생명의 빛이요”(요 8:12), 성령께서도 생명의 빛이 되어 성도의 심령 속에 비쳤다(엡 5:9).
(6)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요’ 또한 ‘만물의 보존자’이시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영적 실존이시요 실상이시다(요 4:2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나타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딤전 6:15)을 인간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형상’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에이콘’이니 원형을 대신 나타내는 실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을 그렇게 대신 나타내셨다고 박윤선 목사는 설명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완전하고 흠이 없게 나타나셨으니만큼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 하나님을 알려는 인간의 노력은 헛된 수고일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말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타락한 인간의 감각과 지성으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3-4절에서 말하기를,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관련하여 표현할 때, ‘에이콘’ (형상)이란 말은 인격과 특수성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하나님과 일체라는 뜻이다.
① 하나님의 형상이요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다”(골 1:15-16).
②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믿는 것이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히 11:27)고 한 것은 이는 산 신앙이요, 참 신앙이다.
③ 만물 위에 계신 예수님이시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느니라”(요 3:31). 이는 창조 전에 계셨던 예수님을 말한다.
④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7-49).
제2절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18-21).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22-25).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 다만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뿌리로 나시고, 장소적으로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셨으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1. 다윗의 혈통에서 출생하신 예수님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2-4)고 바울은 말하였다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사람이 될 때는 이스라엘인이 됨과 동시에 다윗의 혈통으로 출생하셨다. 그러나 성결의 영으로(성령으로 잉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이다.
또한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눅 1:26-28).
여기 천사가 말한 내용을 구분하면 “그에게 들어가 평안 할찌라”고 하였고, 네가 하나님께 영혼이 “은혜를 입었다”고 하였으며, 그 은혜란 마라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나실 것을 말하며 위를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고 천사는 말하였다.
천국 복음의 중심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 계통적으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윗의 혈통으로 출생하셨으며, 성결의 영으로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1) 아브라함의 씨로 출생하신 예수님
창세기 26장 2-4절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이 땅에 유하면’이란 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이란 의미로 내포되었다고 어느 학자는 말했다. 이는 장차 메시야로 말미암아 영적의 축복도 같이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다(창 26:4).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신다’는 것은 물론 그의 육체적 자손을 말함이나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 곧 그리스도 성도들에 관한 것이다(롬 4:18).
창세기 26장 4절 하반절에 나오는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을 밝혀준다. ‘네 자손’이란 말로써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로 출생하며 그를 믿는 자마다 천하 만민의 영혼이 영생의 복을 받게 하셨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심령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엡 1:3-6)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5-16).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이 약속들은 ‘다’ 같이 신약에 속한 교회가 믿음으로 받은 구원의 축복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루어졌다(엡 2:9-10).
또한 그 자손이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그 약속들은 계속해서 그 자손인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실현되기 때문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영혼이 구원받을 길은 없다(행 4:1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을 받아 기업을 얻는다는 것은 영혼이 받을 신령한 복을 말한다.
천하 만민이 그(예수)를 인하여 복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8)고 하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복이 천하에 미칠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그를 인하여 복이 만민의 영혼에게 미칠 것이다. 이는 초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죽으신 속죄의 피에 은총으로써만이 가능한 일이다.
① 네 후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이삭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신다는 것은 육신적인 자손을 가리키는 동시에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 곧 영적 자손을 말하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의 영혼이 복을 받을 것을 말한다.
② 이방인이 너(예수)를 인하여 복을 받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갈 3:8). 이처럼 아브라함을 인하여 모든 민족, 곧 이방인도 축복이 임할 것을 말했다(행 3:25). 또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유대인과 똑같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심령이 복 받아 구원받을 것을 말한 것이다.
(2) 유다 지파에서 출생하신 예수님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창 44:30-32).
하면서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 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창 44:33-34).
이같이 유다가 야곱과 그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을 대신하여 희생하겠다고 한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탕자 같은 죄인 된 영혼들을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셨서 일류의 영혼을 구속하셨다(마 20:28).
여기에 대하여 히브리 기자는 말하기를, 킹성경 히 7장 11-13절에서 말하기를,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으로 온전해질 수 있었다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음이라) 굳이 아론의 계열에 따른다고 말하지 않고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라 다른 제사장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겠느냐?”반문을 하였다.
또한 “제사장 직분이 바뀌었다면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야 하리니 이는 그 분에 관해 이런 것들이 말해졌는데, 그 분은 아무도 제단에서 섬긴 적이 없는 다른 지파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지파에서 출생한 것을 문명하게 설명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우리 주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서는 모세가 제사장 직분에 관하여 말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 멜키세덱과 같은 다른 제사장이 거기에서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더 분명하도다. 그는 육신적 계명의 율법에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끝없는 생명의 능력에 따라 된 것이다”(킹성경 히 7:14-16).
①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출생하셨다.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히 7:14).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다. 이는 구약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었다.
②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 출생하셨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계 5:5)고 하셨다. 유대 지파의 사자가 되신 예수님을 다윗의 뿌리라고 한 것을 보아 예수께서 창조의 근본, 생사의 근본, 화복의 근본, 구원의 근본이심을 알 수 있다.
③ 유다 지파에서 한 홀이 출생하셨다. “홀이 유다 지파에서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여기 홀이 유다 지파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을 중심한 많은 왕들이 날 것을 예언함이다.
(3) 이새의 줄기에서 출생하신 예수님
이사야 11장 1-5절까지를 요약하면, 첫째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루터기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둘째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실 것이요, 셋째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넷째 공의로 허리띠를 삼으라는 내용이다.
이새는 다윗의 부친이요 한 싹과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다(사 53:2). 본문은 메시야의 출현과 그의 이상적 왕국에 대한 계시의 예언이다. 즉, 절단된 그루터기에서 새 순이 나는 것처럼 유대 왕국이 부패한 결과 멸망 중에서 메시야, 곧 예수님이 출생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바클레이 주석에서는 1절의 표현에 대해서 말하기를, 강한 뿌리와 열매 맺는 가지들을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건강한 나무가 새로운 싹을 내고 있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
욥기 14장 7-9절은 동일한 언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면서 그 동일한 광경을 더욱 상세하게 기술해 준다. ‘나다’로 번역된 단어는 ‘열매를 맺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싹’은 건강한 나무의 강인하고 새로운 성장이며, 예컨대 바구니를 만드는 재료가 되며 학교 선생의 매가 되기도 한다(잠 14:3).
다윗의 아버지 이새(삼상 16:1-13)에 대한 언급은 우리가 지금 계보적인 표현에 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줄기’는 다윗의 왕조이며, ‘가지’ 또는 ‘싹’은 장차 와서 예루살렘에서 열매를 맺게 될 새로운 왕 또는 ‘메시야’, ‘다윗의 아들’이다.
①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예수)이 나셨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하신 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예수님이 출생하셨다”(사 11:1). 이와 같이 다윗 왕조의 싹, 의로운 가지로 출생하신 예수님이시다.
② 이새의 후손에서 구주(예수)가 나셨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2-23). 거듭 말하면 구약 선지자들은 ‘이새의 가지’, ‘다윗의 뿌리’, ‘구주’란 명칭 등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했다(사 11:1, 겔 34:23).
(4) 다윗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출생하심
에스겔 34장 23-24절과 이사야 53장 3-5절의 예언의 말씀은 다윗 당시에 성취되지 못하고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운 목적은 그를 통하여 만국민에게 증거자, 인도자, 명령자를 삼으려 하심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다윗에게는 성취되지 못하고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성취될 것을 예언함이다.
이는 하나님이 세운 언약이시다. 메시야를 통하여 이방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것을 말한 것이다. 이같이 만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이사야 55장 3절의 말씀대로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는 ‘은혜 계약’, ‘영원한 언약’을 다윗에게 약속함으로 그 후손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여 예수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인하여 타락한 영혼, 고통하는 영혼, 잠자는 영혼,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 구원받을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같이 죽은 영혼(엡 2:1)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참 종교, 영생의 종교 곧 예수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바빙크는 말하기를, “진정한 종교는 계약(혹은 약속)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진정한 종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은덕에 근원을 가진다.
① 다윗의 자손 중에서 광명한 새벽 별이 나왔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계 22:16). 여기 새벽 별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주님의 손에 붙들린 일곱 별은 예수님께 은총을 입은 주의 사자들을 지칭하며(계 1:20), 이 중에는 은혜 입은 성도의 별도 있다(창 15:5, 계 12:4).
②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님이 출생하셨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 1:2-4). 이렇게 다윗의 혈통에서 출생하셨지만 씨는 다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했기 때문이다.
③ 다윗의 혈통에서 인도자가 출생하셨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 55:3, 4). 육신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은 모세인 것과 같이 인류의 심령, 즉 성도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2. 장소적으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심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미 5:2-4).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여야 메시야라고 말하였으므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날 수 없다. 오직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메시야가 될 수 있다.
2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해 예언이다. 상고에 태초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이 이미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셨던 것이기 때문이다.
3절에는 선민 이스라엘이 비록 임산부와 같이 고통할지라도 말일에는 회복되어 축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2-3절은 서로 연관된 말씀이니 그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초림하사 1절의 대적에게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①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셨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 2:6)고 하셨으니 다른 지역(베들레헴 외에)에서 출생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다. 이같이 성경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야 예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② 베들레헴에서 다스릴 자(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셨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고 하셨으니, 예수님은 곧 만민의 영혼을 구속할 자시요, 속량할 자시요, 심령을 인도할 자이시다.
③ 다윗의 동네에서 구주(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셨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고 하신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성령으로 예수께서 출생하셨다.
3. 예수님은 성령으로 출생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18-20).
요셉은 예수의 탄생에 관하여 관여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정 모혈로 출생하였으니 죄인이라고 하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출생하셨으니 원죄와 본죄가 없으시며 자범죄 또한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독생자이시다.
또한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5-37)고 누가는 말하였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출생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은 하나도 없으시다. 이렇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나신 것이 믿어지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믿어질 것이다.
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이미 예언한 대로 성령이 잉태하여 이 땅에 오셨다.
② 하늘에 속한 예수님이시다. “첫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예수 그리스도)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③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라”(마 1:18).
④ 성결의 영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제3절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18-21).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2-23)고 말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기의 백성을 모든 죄에서 속량하여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이렇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요 1:29, 마 20:28).
1. 모든 죄를 대속하시려고 세상에 오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하셨고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히 10:12)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속죄 제물이 되셨다(히 9:14).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대신 받으셨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자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0-11).
또한 11절에서 말하기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고 하셨다.
바울이 말한대로 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님이긴 것이다. “이 예수는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롬 3:25). 이처럼 예수님은 성도의 영혼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화해의 복음이 되시어 인류의 영혼을 속량하셨다.
또한 예수님이 받으실 수난과 속죄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2절에 보면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모양으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가 결국에는 버림을 받아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다. 그는 우리의 영육의 질고를 담당하셨다. 그 결과 모든 죄를 사하고 죽었던 영혼을 살리시며 모든 병까지 치유하신다.
① 속건 제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속건 제물이 되셨다.
②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하신 것을 보아 성도의 마음 문설주에는 예수의 보배로운 피가 뿌려져 있어야 한다.
③ 대속 제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셨다.
④ 온 세상 죄를 지고 가시려고 오신 예수님이시다.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오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어린 양이 되셨다.
⑤ 자기 피로 죄를 속량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고 하신 예수의 피로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깨끗하여 속량 받게 되었다.
2. 죄를 대속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심
아담은 언약을 어기고 먹음으로 타락하며, 가인은 제사로 타락하며, 홍수 전에는 향락으로 타락하니 하나님의 신은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창 6:3). 이로써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인간은 육체가 되었으나,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구약 시대에서도 신약 시대에서도 언약하셨다.
여기에 대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19-20).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聖靈)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1-23)고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숨을 내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과 모여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고 하심과 같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영혼이 소생한다.
구약시대부터 성령이 강림할 것을 예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굳은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브 하에벤'은 '돌과 같은 마음'을, 그리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브 바사르'는 '살과 같은 마음'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백성들의 심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줄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많다(렘 31:31-33).
그러나 새 신을 부어 주어 마른 해골이 살아나는 것을 보아서 죽었던 심령이 성신을 심령에 부어주어 죽었던 영혼을 살리신다는 것이며 이 예언은 오순절날에 이루워졌다(행 2:1-4). 본절의 결론은 초림하신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요 1:29) 후에 보내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 것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내 신'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뜻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성령, 하나님의 신을 받으려면 육체로 더러워진 심령에 예수님의 보혈로 씻은 후에 임한다. 하나님의 신을 받아 그 마음이 새롭게 변한 자는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하심이다.
(1)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예언함
요엘 2장 28절의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예언 중에 ‘그 후에’라는 말을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17절에 인용하면서 ‘말세’라고 처음 말했다.
성경대로 ‘말세’, ‘말일’을 그 글자대로 해석하면 ‘날들의 최후’의 날이요, ‘마지막 날’이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멀리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서부터 시작하여 신약 시대를 가리키며 또한 재림 직전까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구약 시대는 율법이 이루어지기 전인고로 육신 인간(겉 사람)을 인도하기 위하여 특정한 인물을 택하여 성신이 임하게 함으로써 육신에 속한 사람보다 승하게 하고 특출케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인류의 죽은 영혼(엡 2:10), 심히 곤핍한 영혼(시 63:1-2), 고통 하는 영혼(시 30:3), 목마른 영혼들에게 강림하실 것을 언약하셨다(시 42:1-2).
① 새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고 하신 대로 새 신을 받은 결과는 새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②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라”(욜 2:28-29)고 하신 대로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③ 내 신을 너희에게 주리라.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셨다(잠 1:23).
④ 성신을 부어 주리라.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
⑤ 새 신을 심령에 새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2).
(2) 세례 요한이 예언함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하여 출생한 요한이 광야에 거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니(눅 3:2) 예언하기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은 오순절날 성령이 충만케 임함으로 이루어졌다(행 1:5, 2:1-4).
세례 요한은 심령을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써 세례를 주었고, 예수께서는 그 회개를 성취시키기 위하여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주었다. 또 마가복음 1장 4절과 누가복음 3장 3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세례에 대해 회개의 세례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죄의 표로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고 하였다.
이것은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고백하여 죄 사함의 표, 곧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것이다. 이 약속은 베드로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도 유효한 말씀이다. 그런 뜻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였다(막 1:15).
①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②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리라.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3-34).
③ 예수님은 성령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요 1:33).
(3) 예수께서 성령이 임할 것을 예언하심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라고 예수님은 예언하셨다.
진리의 영이라 함은 성령님을 가리킨다. 세상이 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령의 내재 충만으로 심령을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킨다. 그 진리의 성령을 생수 같은 성령이라고 비유하시기도 하셨다(요 7:37-38).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이는 대속의 영, 진리의 영, 속량의 성령이 되사 모든 영혼을 죄에서 속량하신다.
① 보혜사와 같은 성령을 주시리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하신 성령은 진리의 성령(요 17:17)이므로 인간 지식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자신이 보혜사가 되어 주사 심령을 감동케 하고 감화케 하여 깨닫게 조명처럼 비추어 주실 때에 성경이 깨달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 지식을 버려라.
② 진리의 영을 부어 주리라.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고 하신 진리의 영은 대속의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4)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이 임할 것을 예언하심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1-22)고 하시며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숨을 내 쉬신 것’은 상징적인 행동으로써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외형적으로 나타내심이다. 또 그것은 성령을 주시는 이가 예수님 자신이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기운’과 성령을 같이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혹자는 ‘생기 또는 생령’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오순절날 성령의 강림으로 예수님 당시와 부활하신 후의 예언하신 말씀들이 모두 이루어졌다.
여기에 대하여 그랜드 종합주석은 말하기를, 20장 22절을 말씀을 하시고…숨을 내쉬며. 예수의 행위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즉, 천지 창조시에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에게 능력의 근원이 될 성령을 주시는 것을 이처럼 상징적인 행동으로서 나타내고 계신 것이다.
이는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서 마른 뼈들에 살이 붙고 생기가 돌아오는 사건과도 연관되는데(겔 37:9) 그 사건이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복과 관련된 것이라면 여기서 예수의 행동은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을 회복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아무튼 이러한 예수의 행동은 사도들이 어떠한 인간적인 지혜나 말 재주가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 증거에 충실해야 함을 시사해 준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선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견해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약속된 성령을 주실 것에 대한 상징적인 행동으로서 실재에 대한 보증으로 주어진 것이다. 즉 예수께선 이 때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을 하신 것이다.
둘째, 다소 비슷한 견해로 성령의 오심은 오순절이었으나 이 때 제자들은 주님의 성령의 일부를 분할 받았다는 견해이다.
셋째,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때가 바로 이 순간이라는 견해이다. 이들은 ‘받으라’는 헬라어 ‘라베테’가 제2부정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일단 한 번 받은 것을 영원토록 가지고 있어야 하는 효력을 강조하는 표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만약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예수의 말씀의 권위가 효력성이 없다는 주장이 되므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우려하는 자들도 있다.
넷째, 본절의 성령은 특별히 성령의 한 은사, 즉 죄를 사하거나 그대로 두는 교회 고유의 은사(23절)를 언급하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상과 같은 제 견해들 중 비교적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첫 번째 견해이다. 그러나 전후 문맥 관계를 고려해 보면 마지막 네 번째 견해도 어느 정도 개연성을 지닌다(그랜드 종합주석 요 p.1004)
필자는 첫 번째의 해석을 따름과 동시에 그 불이 오순절날에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성령이 임하면 내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다. 즉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는 중생인은 반듯이 행해야 할 사명이다.
①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를 간구한 무리가 약 120명쯤 되었다고 하였다(행 1:4-5, 12-14).
②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이같은 성령과 불은 오순절 날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며 사람들에게 나타났다(행 2:3).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순간 영안이 열려 보게 되었으며 그 불이 초대 교회에 붙었다. 이 때에 심령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
③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세례 요한과 의원인 누가가 말한 성령 강림은 오순절에 가서야 이루어졌다(행 2:1-4). 때에 물과 성령으로 신생명이 태여나는 순간이요 동시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계 21:27).
④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으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본절은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덧입었던 것처럼(마 13:16, 눅 3:21, 행 10:38) 제자들도 성령의 능력을 입고 사역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5)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강림하심
세례 요한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다. 오순절은 ‘제 칠 안식일’ 다음 날이다. 이것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오순절 절기는 원래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로써 초실절이라고도 한다(출 23:16, 레 23:17-20).
또한 오순절을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 절기의 날을 유월절 기간 동안 처음 익은 보리 곡식단을 제단에 드린 날로부터 시작하여 밀 추수로 끝나는 49일(7주일)이라는 추수기간 다음 날이 오순절이 되기 때문이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2-4)고 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였다.
오늘날에 있어 '성령의 충만'과 '성령의 세례'(행 1:5)는 서로 다르다고 해석하는 자도 있으나, 이는 잘못돤 생각이다. '성령의 세례'는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의 증거로 성령이 임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단회적 사건이다(행 2:37-38). 그러나 '성령 충만'한 생활은 중생한 성도가 이미 우리 가운데(롬 8:9)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것을 가리킨다(롬 8:13-14).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시에는 이 두 가지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는데 이는 당시가 초대 교회 형성을 위한 특별한 때였기 때문이라고 어느 주석학자는 말하나, 개인적인 영적 신앙도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 이유는 개인의 영혼도 동시에 병행할 때에 중생한 신생명이요 영적인 개혁이 이뤄진다.
필자는 오순절 날에 성령이 충만이 강림하실 때에 중생한 영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믿으라. 그 후에 성령 충만이 약하지는 경우가 혹 있으나 기도하므로 다시 충만이 유지되는 것이다(행 4:17-31, 엡 5:18).
①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② 성령을 하나님 아버지께 받아 부어 주셨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③ 성령을 모든 육체 속에 부어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④ 성령을 죄 사함의 표로 주셨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
⑤ 예수 이름으로 안수할 때에 성령을 부어 주셨다.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6-17).
⑥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임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