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개봉할 ‘알포인트’의 초짜배기 마케터 김규철씨가 수고스럽게도 글을 보내왔다. ‘현장홍보기록’이라는 직함아래 오도가도 못하고 피말리는 촬영현장을 지키며 생생하게 목도한 당시의 지난한 기억을 고스란히 활자로 소환시켜 정성스럽게 메일로 날려주셨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판에 발을 들인 사회 초년생의 고단함이 ‘알포인트’의 험난한 촬영 작업과 기이한 분위기를 말해주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묻어나 있다. 정말이지 '빡센' 현장에서 욕보셨다.
나른한 오후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한다. 누운지 5분이나 됐을까? 갑자기 기분이 오싹해 살짝 눈을 떴는데 천장이 거울이다. 어랏? 우리집 천장에는 거울이 없는데... 형체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군복을 입은 듯한 '또 다른 나'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 섬찟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또 시작됐다. 가위눌림 신드롬... 손가락을 가만히 움직여 본다. 다행히도 움직인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데 온 몸의 힘이 다 빠질 듯 힘겹다. 20여분에 걸친 '손가락과의 전투'가 다행스럽게도 나의 승리로 끝난다. 가위 눌릴만한 일이 있었나? 기억을 돌려본다. 낮잠을 즐기기 전에 한일이라고는 <알포인트>의 예고편을 수십번 본 것뿐이다. 아직 <알포인트>로부터 자유로워지기에는 너무 이른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처음'란 것에 대해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투르고, 모든 것이 신기하고 설레이는 '첫경험' 귀신전쟁공포 <알포인트>의 '현장홍보기록'이란 새내기로서는, 정말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04년 2월 9일 출국부터 04년 5월 29일까지 거의 4개월을 캄보디아에서 보냈던 나로서는 처음이라는 설레임보다는 힘들고 지난한 제작과정을 함께 인내하고 견뎌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일종의 자뻑류의 감동을 부여했던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ㅡㅡ;; 어쨌든, 견뎌냈다. 귀국한지 2달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난 그때의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재구성'할 수 있다. 그만큼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기에 순서편집뿐만 아니라 하이라이트편집도 여러 버젼으로 가능하다. (물론, 그 시선은 초보 마케터의 1인칭 시점이다. 이점 오해 없으시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알포인트> 올로케 현장. 그렇다면 지금부터 잠시나마 그때의 기억으로 '플래시백'
● 캄보디아 보디가드들의 총기난동(?) 사건
본격적인 촬영이 이루어질 복코산. 이 곳에서 실제로 죽어간 수많은 영혼의 넋을 달래고, 영화가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것을 기원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복코산'이란 공간에서 고사를 지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날 결코 모든 스텝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현지 보디가드들의 '실탄 발포' 사건. 아무리 평화가 찾아왔다가 하더라도 캄보디아는 아직까지 치안이 매우 불안한 나라다. 스텝과 배우의 안전을 위해 실제 군부대에서 파견된 거의 특수부대급의 전문 보디가드가 여러명 고용되었다. 물론, 무장상태로. 그러던 그날 밤, 갑자기 몇 발의 총성이 잠잠한 하늘에 울려 퍼졌다. 사실 대부분의 스텝들의 총소리가 났을 때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전쟁이 배경이다 보니 자연스레 소품으로 '총'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저 특수효과의 테스트 정도인줄만 알았던 것이다.
총소리가 나자 산책을 하던 몇몇 스텝들이 놀라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드리는 모습에 그저 웃었을 뿐인데.... 그게 실제 총소리였다는 것이다. 등에 식은 땀이 한줄기...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나마 총을 쏜 보디가드를 다른 보디가드가 말려서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했으니 망정이지 그냥 쏴대었다면 정말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날 뻔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고용됐던 보디가드가 우리를 더 위협했던 순간이었다. 아이러니다. 결국, 이 날 사건의 주요 인물 2명은 다른 보디가드로 교체되었고, 그것으로 이 위험천만했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다. 귀신영화 찍으러왔다가, 귀신 될 뻔했다.
● 호러블 ‘레디 액션'
올로케라서 가장 힘든 점. 의사소통(?), 날씨(?), 의식주(?) 물론 다 힘든 부분이지만, 가장 스텝들의 애를 태우게 한 것은 역시 촬영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있다면 얼마든지 대안을 마련하겠지만, 캄보디아에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촬영부는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촬영이 불가능한 지형에서 카메라 패닝을 위한 레일을 깔아야 했고, 아슬아슬한 바위 위에다 걸치듯이, 발이 푹푹 빠지는 늪 속에서, 독사가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카메라를 세팅해만 했다.
조명부는 한국에 비해 낙후한 전기시설과 홍콩에서 렌트해온 조명장비들의 잦은 불량으로 가장 많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장비들 자체의 결함도 있었겠지만 습도가 100%에 육박하는 캄보디아의 악명 높은 날씨 덕분이었다. 습기가 많기에 장비들에 의한 누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의 연속이었다. 이 덕분에 길어진 세팅시간, 그 세팅시간의 늘어짐으로 스텝들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건강을 악화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습기 때문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람은 스틸작가도 만만치 않았다. 습기 때문에 가지고 왔던 전문가용 '렌즈'가 상해서 한국에서 다시 긴급히 새 렌즈를 공수받기까지 해야 했다. 어쨌든 이러한 여러 가지 애로사항 때문인지 스텝들에게 설문을 했을 때 가장 공통된 문제점은 바로 '건강'이었다.
동시녹음기사의 말마따나 거의 모든 스텝들이 감기, 소화불량 같은 잔병을 포함해 최소 2개 이상의 병 아닌 병을 앓고 있었다. 기록적인 수치다. 정작 촬영보다 더 힘들었던 준비시간. 그 과정에서 돌출된 문제점들로 인한 스트레스. 드레싱 아트팀 경우는 현지의 저명한 교수라는 사람에게 외주를 주었던 소품들의 수준이 너무 조악해 결국 촬영일정에 맞춰 비석과 돌상 등을 급박한 촬영일정에 맞춰 며칠 만에 완성해야 했고, 의상팀은 배우들의 사이즈에 꼭 맞게 새로 제작한 군복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100벌 가까운 군복 의상을 일일이 땅에 비빈 후 사포질로 마무리 하면서 세월의 흔적을 입히는 노가다(?)를 해야 했다. 드레싱 아트팀은 그 시절에 실제로 쓰였던 보급담배의 필터까지 재현하기 위해서 그 수많은 담배의 필터를 일일이 갈아 끼우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스크린에서 보이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준비과정에서는 몇십배, 몇백배의 노력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가 기다리고 인내하고 견뎌내는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내가 목격한 것들은 상상한 것 이상의 수준이었다.
● 동굴의 추억
캄보디아 올로케. 캄보디아 내에서도 우리의 촬영은 어느 한 곳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촬영지 중에서도 복코산 저택에 버금가는 추억(?) 만들어 준 곳이라면 바로 캄폿 근처에 있는 자연 동굴. 동굴 속으로 낙하한 진중사가 실종된 미이라를 발견하는 씬으로 영화 전체 맥락에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촬영이었다. 특히나, 이 날 촬영이 스릴 있었던 것은 이미 날씨 때문에 많이 지연된 일정이 이날 촬영이 완료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꼬이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조건 촬영 완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텝들은 한 줄기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동굴 안에서 낮부터 밤을 지나 동이 틀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있어야만 했다. 어쨌든 촬영은 마무리 되어야 하니까. 뾰족뾰족한 돌들 사이로, 무너질 듯 위태로운 바위 위에서 마치 곡예를 부리듯이 촬영은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다. 거의 폐쇄된 동굴의 특성상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스텝들은 숨쉬기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밀폐되어 있는 곳에서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설정상 동굴에 떨어져 중상을 입은 진중사는 온몸에 흙과 피로 범벅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진중사 역할을 맡은 손병호씨는 특유의 입담과 재치를 십분 발휘하면서 스텝들의 사기를 힘껏 북돋었다. 그 연륜있고, 진지한 외모의 배우에게 그런 '언빌리버블' 재롱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어쨋든, 촬영은 더디게만 가고 반나절이면 끝날 것으로 기대(?)했던 촬영은 결국 예상 시간보다 두배 이상 긴 28시간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거의 기절하기 직전까지 갔던 나로서는 과연 다른 현장의 경우에도 촬영이 이런 식으로 이뤄질까 궁금증이 생겼다. 선배 스텝들의 후일담을 들어보니, 한국의 영화판(?)에서 이 정도 연속 촬영이야 비일비재한 일이라 새롭지도 않다고 한다. 이미 장시간 연속 촬영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그래도, 거의 만장일치로 동굴에서의 28시간 촬영은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촬영을 끝내고 동굴 밖으로 나가니 괜히 내가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 공포영화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귀신소동(?)
사실 이제 귀신출현은 공포영화의 홍보소재로 너무나 상투적인 관습이 되어버렸다. 내가 마케터가 되기 전부터 이미 접했던 수많은 귀신들. 그러려니 했다. 홍보에서 참신성이 떨어지고 관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이미 뒤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왔던 나였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부분 부풀려지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 현장에도 귀신은 나타났다. ㅡㅡ; 사실 안 나타나는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곳인데...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곳 복코산 저택인데... 복코산에서 촬영할 때 우리는 저택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는 곳에 대형 임시텐트를 설치하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나이트 촬영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서 텐트에 갈려면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꼬불꼬불 험난한 산을 내려와야만 해다. 손전등이 없으면 정말 길 자체가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기에 아무리 건장한 사내라고 할지라도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귀신이라고 생각할만한 존재는 예상한대로 밤에 적절한 장소에서 나타났다. 텐트까지 가는 길 양옆으로는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풀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바람이 불때면 기분 나쁜 소리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런데, 바람 한점 없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며칠에 걸쳐 몇몇 스텝들이 텐트에 가는 도중 수풀에서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곤 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의 형상이었다. 분명히 풀숲을 가르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는데, 막상 그 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한 사람이 그런거라면 잘못 본거라며 쉽게 위로를 해줄 수 있겠지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체험을 여러명이 한 것은 분명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귀신은 둘째치고, 많은 스텝과 배우들이 악몽과 가위눌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얘기지만 감우성씨는 캄보디아에 온 이래로 주기적으로 악몽을 꾼다고 했다. 이미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니 차마 그 내용까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일부 여자스텝들은 호텔에서 묵었던 방안에서 피로누적에 쓰러지듯이 잠을 잤는데, 침대 아래서 손이 쑤욱 나와 자신의 몸을 감싸는 듯한 기운을 느끼기도 하고,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화장실 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자고 있는 것을 동료가 목격하기도 했다. 당사자도 놀랐겠지만, 침대에서 자는 것을 봤던 동료는 또 얼마나 기겁을 했을까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 역시 촬영초반에 시작되었던 가위눌림이 지금까지 심심치 않게 계속되고 있다. 그 형태는 주로 목과 얼굴을 짓누르는 것으로 가위눌림 직후에는 그 느낌이 일정시간 동안 온전히 남아있어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느낌이 갑자기 되살아나 가슴이 서늘해진다.
● 박하사, 피바가지 뒤집어쓰다!
<알포인트>의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본적인 정신적 스트레스와 더불어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당연히 배경이 전쟁이다 보니 감정의 연결 못지않게 육체의 노동(?)도 꽤나 고된 수준이었다. 밀림을 헤치며 완전군장으로 인한 엄청난 무게 그리고 살인적인 더위와 싸워야 했으며, 고약한 냄새가 나는 늪 속에 온 몸을 던지기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공포영화답게 피가 난무하는 덕분에 부위별로 실감나는 피분장을 해야만 했다. '피'라는 단어와 함께 확실히 각인된 그 날의 촬영. 박하사가 실종된 정일병의 시체에서 떨어지는 피를 바가지로 얼굴에 맞아야만 하는 장면. '피범벅'이란 말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반드시 하루 만에 끝내야 했던 촬영이었건만, 역시나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이 한 컷 때문에 삼일이 지나가버렸다. 이 컷이 NG가 날 경우에는 또다시 하루를 공칠 수도 있다. 반드시 끝을 봐야만 하는 '피를 뒤집어쓰는 박하사' 컷. 이 컷이 NG가 날 경우에는 피로 범벅이 된 의상을 갈아입고, 피로 범벅이 된 군장을 말리고, 피로 범벅이 된 계단을 청소하는 등등해서 최소 1시간 이상의 셋팅 시간이 소요된다. 모두를 위해서 단 한번에 오케이가 나야만 한다. 다른 컷보다 몇 배 이상 리허설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만반에 준비를 하는 과정 중에 첫번째 단계는 피를 어떻게 떨어뜨려야 하는지 시험하는 것. 다들 피하는 눈치다. ㅡ.,ㅡ 다행히도, 실제 사람 대신 이미 폐기 처분 예정인 더미로 대신하기로 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텝들. ^^;; 더미의 머리 위에서 하나, 둘, 셋 함과 동시에 피를 쏟아 부었다. 점성이 큰 가짜 피는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더미의 머리를 세게 강타했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더미의 머리를 휘청 흔들렸다. 테스트 장면을 보자마자 이선균씨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Oh~ My God~!!'을 외쳤다. 터져 나오는 비명. 너무나 즉각적인 반응. 그도 그럴 것이 곧바로 그 피가 자신의 머리에 부어질 꺼라고 상상한다면 그 어떤 누구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상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살리고자 한다면 3층 높이에서 직접 부어야 하지만 배우가 다칠 위험성이 있어서 저택 1층 높이에서 붓기로 했다. 허걱… 그래도 테스트 한 것으로 볼 때 1층도 만만치 않다.
드디어 다른 어떤 컷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선균씨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면서 애써 긴장을 감추려 했으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첫번째 시도. 이 컷을 위해 쏟아지는 핏물과 이에 반응하는 박하사의 공포의 질린 표정을 동시에 잡아내기 위해 A, B 카메라 두대가 동원되고 박하사의 얼굴에 핏물을 부을 장본인 연출부 이수성씨. 피가 쏟아진 후에 아주 미세하고 미묘한 흔들림을 표현하기 위해 2층에서 막대로 살짝 철모를 건드려야 하는 역할에 특수분장팀 막내 곽성훈씨가 위치하면서 이 컷을 위한 기본적인 포지션이 결정되었다. 모두가 깔끔하게 단 한번에 오케이가 나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슛을 기다렸다.
슛이 들어가면서 이수성씨는 잽싸게 피를 붓고 프레임 밖으로 사라졌다. 모니터를 보던 감독님이 고개를 떨구셨다. 너무 급하게 부어서 그런건지 얼굴에 정면으로 맞아야 할 핏물은 그만 이선균씨의 가슴팍에 꽂히고 말았다. 아뿔싸. ㅡ.,ㅡ 그저 허탈한 웃음만 지을 뿐. 모니터를 확인하자 정작 필요한 얼굴에는 몇 방울 튀기는 것 이외에는 너무나 깨끗하다. 감독님 왈. '한번 더 갑시다…' 하늘만 쳐다보는 이선균씨. 예상대로 다시 세팅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옷을 갈아입고… 계단 바닥에 피를 닦고… 벽에 튀긴 핏방울을 지운 다음 새로 스프레이로 없애고… 없앤 위에 다시 시간의 흔적을 만들어 내고… 수초의 컷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감독님이 갑자기 진중사의 벌목도를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이 컷에서 역할을 맡은 스텝들을 한번씩 쭉 훑어보시더니 땅에다 칼을 팍 꽂는 것이었다. '이번에 실수하면 알아서 해!' 물론 농담이었지만 다들 뜨끔했을 것이다. ^^; 초심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비우고 두번째 시도. 정통으로 철퍼덕 소리를 내면서 이선균씨의 얼굴을 강타했다. ㅎㅎㅎ 그런데… 그런데…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굴에 정면으로 맞은 것은 성공이었으나, 너무 다량이었고 피가 입으로 들어가면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곧바로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꼬르르르륵… 컥….' 소리와 함께 코믹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만 것이다. 물론 편집을 통해 다 붙여본다면 느낌이 달라지겠지만, 이 컷만을 모니터로 봤을 때는 다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포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가득한 현장. 이 또한, 아이러니~! 한참이나 웃고 나니 다시 한번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제는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져 버린 이선균씨… ㅋㅋㅋ 세번째 시도 전 나를 심상치 않는 눈으로 바라본다. '홍보를 위해서 한번 피바가지를 직접 맞아 보지 않겠니?, 이게이게 진짜 맞아봐야지 그 느낌을 알 수 있다니까…'라면서 나를 붙잡으려고 한다. 허걱… 잽싸게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시도만에 겨우 의도한 대로 컷을 건지는 듯 했으나, 나중에 들어보니 진짜 오케이 컷은 두번째 테이크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불쌍하게 괜히 한번 더 피바가지를 쓴 이선균씨… 좀 안스럽긴 하지만 영화를 위해서 희생한 것으로 여기시고 마음 편하게 가지시길…. ^^
● 위대한 감배우
이미 많은 보도에서 알려졌듯이 감우성씨는 <알포인트>를 촬영하면서 무려 10kg이상의 몸무게가 줄어버렸다. 연일 계속되는 나이트 촬영은 기본이고, 밤과 낮의 일교차는 한여름과 초겨울의 날씨를 연상 시킬만 심하다. 더군다나 감우성씨의 캐릭터는 밝은 인물이 아니다. 시종일관 어두움을 유지해야 하는 인물은 그의 생활까지 지배할 지경이었다. 감우성씨는 선인이든 악인이든 어떤 인물을 만난다 해도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성' 속에서 그 캐릭터를 부합되는 면을 끄집어 내려한다고 밝혔다.
어쩌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최태인 중위의 냉정함과 침착함을 본인으로부터 뽑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낯선 오지에서 동료들과의 연대로 맺어진 끈끈한 정은 상당히 위력적인 위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우성씨는 쉽게 편할 수 있는 길을 택하지는 않은 듯싶다. 캐릭터의 몰입을 위해 스스로 고립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선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냉철함이 묻어나는 눈빛을 보여줬던 감우성씨.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배우의 예민함이 결과적으로 그를 배우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는 하곤 했다.
● 대자연과의 사투
100% 올세트 촬영이 아니고서야 그 어떤 영화 현장에서도 날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물며, 올로케 현장에서 자연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에 촬영 진척률은 불과 50%를 넘지 못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씨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복코산이었다. 나이트 촬영 때마다 5~10분 간격으로 우리의 시야를 가리던 구름은 일상이었고, 때로는 거의 몸이 날아갈 만큼 위력이 센 강풍으로 스텝들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데이 촬영 때 '맑음-흐림-비-맑음-그리고 다시 흐림'을 한시간 동안 선보였던 것. 이게 복코산의 개인기라면 절대 사양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어쩔 수 없는 것.. ㅜㅜ
단지 심술궂은 변덕쟁이 날씨만이라면 그래도 견디겠다. 때로는, 우리들에게 습격을 감행한 무리가 있었으니 크게 세종류를 들 수가 있겠다. 개미, 나방, 벌... 땅에서 공격하고 하늘에서 공격하고 근처에 물이 없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개미는 밀림 숲을 촬영할 때 지속적으로 나타나 스텝과 배우들의 다리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복코산 저택 촬영 당시 캄캄한 밤에 환하디 환한 조명만을 바라보고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나방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던 스텝들의 빰을 사정없이 때리는 안타까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나방독일 수밖에 없다. 나방이 극성을 부리던 다음 날. 조명 근처에 있던 하다못해 작은 불빛 옆에서 작업을 하던 수많은 스텝들의 피부에 붉은 빛은 반점들이 동일하게 나 있었다.
극도의 가려움을 동반한 채... 가려움 정도야 어떻게든 견뎌냈다고 해도 반디츠마 사원에서 경험한 '벌떼의 습격'은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 벌떼가 윙윙거리며 귓전을 아슬아슬하게 비행할라치면 소름과 날 것의 공포는 배가된다. 결국, 우리는 벌떼를 응징하기로 결정했다. 스프레이류를 이용한 화염방사기. 다소 위험하지만 효과만은 확실한 고전방법. 불에 일격을 당한 벌떼들이 사정없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그렇게 스프레이 협공으로 벌떼에 맞섰지만, 결국 몇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쏘인 부분이 거의 팽창하다시피 부풀어 올랐다. 눈두덩이, 손가락이 퉁퉁 불은 오뎅 마냥 피부의 탄력을 무시한 채 부풀어 올랐다. 진정 무서운 공포는 '귀신'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우리를 긴장시키고 위협했던 자연이었다.
● 아! 무섭도다! 막내들의 열정이여!!
막내가 아니라........촬영장의 홍일점들이시다
유난히도 '알포인트'현장에는 새내기가 많았다. 특히, 여자스텝들은 드레싱 아트, 의상, 분장 각 팀의 막내가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 영화 현장을 접하는 스텝들이었다. 막내라고 해서 일을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거나 못 미덥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들. 여자로는 드물게 드레싱 아트팀에서 온갖 전투군장을 도맡다시피 했던 박지희씨. 여자는 약하다는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힘센 여자다.
영화는 처음이지만, 이미 연극분야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분장팀의 장진아씨. 의료수준이 취약한 캄보디아 현지의 사정 때문에 눈두덩이가 부어서 한국에까지 가야할 지경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절대 가지 않겠다고 또박또박 말하던 그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기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다행스럽게도 장진아씨는 한국에 와서 정상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느질, 빨래(?)의 대가. 의상팀 막내 김현주씨. 능숙한 재봉질은 물론이거니와 배우들의 의상뿐만 아니라 때로는 스텝들의 빨래까지. 실로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했다. 말하다 보니 전부 여자다. ㅡㅡ; 그건 그렇고 이러한 막내들의 솔선수범이 현장의 분위기를 좋게 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 지금도 계속되는 악몽
그래도, 악몽이 계속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악몽도 전부 영화와 관련된 것뿐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나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든지, 아무런 문제없이 촬영되었던 씬을 재촬영을 한다든지 그나마 재촬영을 하는데 모든 일이 뒤죽박죽 된다라든지, 아니면 내가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나와 함께 친하게 지냈던 오태경씨가 날 구해준다든지 하는 것. <알포인트>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첫 영화에 대한 부담감이 기대와 설레임을 앞서서 어느 정도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알포인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점은 과연 언제가 될까? 내가 능수능란하게 영화에서 홍보 컨셉을 유연하게 뽑아내는 그 날이 온다면 첫 작품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까?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는 미완성 마케터지만, 열정만큼은 고스란히 가슴이 담아두고 두고두고 지필까 생각중이다.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은 필수 옵션으로 하고. ^^
첫댓글 무비스트에서 퍼왔습니다...
영오가 그렇게나 기다리는 알 포인트,,, 빨리 개봉 날이 기다려 진다~~
넘 잼나게 읽었어여,,,ㅋㅋㅋ 역쉬나,, 더욱더 기대가 되는걸여,,흥미진진한데~~ 후비고~~~!!
저도 재미나게 읽었슴다...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난ㅇ1거 얼굴없는 미녀보러갔다가용~~ 예고편보고 무서워 죽능줄 알았어용..ㅜㅜ 재밌을꺼같은데.. 넘 무서워서 못봐용..ㅜㅜ 흑흑... 슬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