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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신약성경 개론, 신약27권 개괄
신약성경 개론과 각 권별 특징을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가 공저한 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성경신학적, 교의학적, 주석적인 관점에서 전체적인 개관을 필수적으로 해야 되겠지만 이번 강의의 초점이 아니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구조를 살펴보다보면 오히려 전체적인 맥을 잡을 수가 있게 된다.
『 신약 개론 』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는 그의 책에서 신약개론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1) 신약성경을 가리키는 헤 카이네 디아쎄카(라틴, Novum Testamentum)란 헬라어 제목은 문자적으로 ‘새 언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디아쎄카란 헬라어는 원래 유언자가 죽을 때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는 최후의 유언이나 약속 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준을 받았으며, 이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하나님과 화친하게 된다. 바로 이 구속의 언약이 신약 성경 전체를 하나로 묶는 중심주제이다(눅22:20,고전11:25,히8:7~13,9:15~17).
신약성경을 쓴 9명의 저자들 중에서 누가만 유일하게 이방인이다. 바울 사도가 13권, 요한 사도가 5권, 누가와 베드로가 각각 2권, 그리고 마태, 마가, 야고보, 유다, 히브리서 저자가 각각 1권을 썼다. 때로는 신약 성경을 3시대로 나누어 분류하기도 한다. (1) 예수님시대인 주전 4년부터 주후33년(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2)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확장되던 시기인 주후 33~62년(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야고보서) (3) 사도행전 후 교회 통합 시기인 주후 62~95년(디모데전후서, 디도서,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 2, 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보다 보편적인 다른 방법은 역사서, 바울서신, 비바울서신 및 요한계시록 등 세 부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역사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다섯 권의 역사서는 그리스도의 생애, 교회의 설립, 초기 기독교 전파에 있어 중요한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다.
바울서신: 바울서신 전체는 복음서에서 시작된 교리들을 발전시키면서 이러한 교리들은 믿는 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아시아 교회들을 위한 9편의 편지글과 개인에게 보내는 4편의 편지글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실에 기초하여 올바른 삶을 살기를 원했다.
비바울서신과 요한계시록: 베드로, 요한, 야고보, 히브리서 저자는 각각 당시 교회 안으로 침투하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솔직하고도 단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저자들은 성도들의 삶의 원천과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능력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재림,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완성 등을 예견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 복음서와 사도행전 - 역사서 개론 』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는 그의 책에서 역사서 개론을 이렇게 말했다. 신약성경 46%에 해당되는 4복음서에 사도행전을 덧붙이면 신약성경의 60%를 차지한다고 했다. 초기 기독교 교회가 4복음서를 신약 성경 맨 앞에 둔 것은 4복음서가 제일 먼저 쓰여졌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서들이 사도행전과 서신서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은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동시에 구약의 성취로서 신약 성경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p.591).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사역 마지막 약 50일 가량을 4복음서는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p.592).
4복음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깨우고 굳건히 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예수님에 대해 반대하거나 잘못된 생각에 해답을 주기 위해 쓰여 졌다. 또한 믿는 성도들도 하여금 주님과 그 분의 능력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공관복음으로 부르기도 한다(p.593). 이렇게 복음서라고 불리는 이유는 예수님이 곧 “복음”이시고 복음서가 “예수님의 전기(傳記)”이기 때문에 복음서로 마땅히 불러져야 한다.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는 역사서의 각 특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 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오신 “왕”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계보, 구약 예언의 성취, 권위, 능력 등을 강조함으로써 메시야적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도 불구하고, 점차 거세지는 반대 세력이 십자가 사건을 정점으로 절정을 이루지만,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빈 무덤을 남겨두고 떠나신 후 다시 오실 것이다.
두 번째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오신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역 초기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에게 종으로 나타나셨지만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에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에 더 초점을 두셨다. 이 복음서의 37%는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세 번째 복음서인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신 완전한 “인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주님의 완전한 품성과 구속의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예수님의 탄생, 사역, 설교, 고난, 증명 등을 통해 예수님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인 사도 요한은 여러 기적들 중 주의 깊게 선별한 일곱 번의 기적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고 있다.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불과 몇 시간 전 제자들과 가지셨던 최후의 만찬에 관한 기록이 다섯 장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승리의 부활이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권면하신 기록 또한 본서에 나와 있다.
역사서에는 이상의 4복음서와 사도행전이 포함되는데, 사도행전은 주님의 승천과 바울 사도의 재판까지 해당되는 기간을 역사 기록으로 싣고 있다. 사도행전은 유대로부터 시작하여 사마리아, 시리아, 로마 제국의 나머지 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될 때 일어난 여러 중대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p.594~596).
이와 같이 신약성경을 구분하는 방식이나 그 특징을 언급함에 있어서 신학자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이 있다. 각 저자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요약하여 비교 평가하였으면 좋겠지만 시간상 지면상의 이유로 생략했다. 이제 각 권별 특징과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는데, 몇 명의 저자의 관점에 꼭 맞추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참고로 여기면 될 것이다. 주제별 등으로 분석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알고 태어난 사람이 없기에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면서 “비평적 창조적 모방”을 하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성경을 올바로 아는 것이지 저자의 논리를 아는 것이 아니다. 도움을 받기는 하되 자신이 기도하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내주신 성령님의 인도로 연구하는 가운데 진리를 깨닫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 마 태 복 음 』
1. 마태복음 숲 보기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는 마태복음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마태는 구약 성경에서 조심스럽게 발췌한 인용문(약130번)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계보, 세례, 설교, 기적들을 통해 ‘그리스도는 왕’이라는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품격, 권세, 도덕적인 가르침, 신학적인 가르침 등을 조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가 이 복음서를 쓰면서 하나의 교육적인 목적을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실제로 초대 교회 이후 복음서는 교육 자료로도 많이 사용되었다.2)
핵심 단어는 “왕이신 예수님”이다. 핵심 구절은 16:16~19절과 28:18~20절이다. 핵심 장은 12장이다. 마태복음의 전환점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공식적으로 메시야로서의 예수님과 그의 능력을 부인하므로 예수님이 즉시 바유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일반무리보다 제자를 가르치는데 초점을 두셨고, 자신의 죽음을 자주 언급하셨다.
두드러진 특징은 유대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3)다윗의 자손과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의 부가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내포된 모세 오경의 위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언급들이 특히 두드러진다.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전세계에 미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계보 속의 이방인, 주님탄생 이후 이방인 경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등을 볼 때 그러하다. 마태복음 1,071절 중에 정확하게 60%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마태복음은 주님의 말씀과 사역의 요점을 종합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다.
2. 마태복음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가 개관하기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초대 교회가 마태복음을 신약 성경 중 맨 처음에 둔 이유는 바로 마태복음이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의 메시야이신 왕의 인격과 사역을 기술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구조의 중요한 부분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7:28,13:53,19:1,26:1,11:1)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다섯 가지의 담화를 결론짓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산상수훈, 제자들에게 주신 강론, 하나님 나라의 비유, 제자도, 최후의 만찬이 그것이다.
마태복음은 왕의 출현(1:1~4:11), 왕의 선포(4:12~7:29), 왕의 능력(8:1~11:1), 왕에 대한 배척의 확산(11:2~16:12), 왕의 제자들을 예비하심(16:13~20:28), 왕의 현현과 배척당하심(20:29~27:66), 왕의 증거(28:1~20)로 분석할 수 있다.
왕의 출현: 온 세상의 구주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자손(1:1)’이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기에 다윗의 직계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자격이 있는 셈이다. 동방박사들도 ‘유대인의 왕(2:2)’이 탄생하였으므로 경배했다. 세례요한 역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
왕의 선포: 마태 자신의 자료들을 연대순이라기보다는 주제별로 분류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은 산상수훈(5~7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본문의 말씀을 다 읽는데 15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전 세계에 미친 그 심오한 영향력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새 율법이요 새 기준인 셈이다.
왕의 능력: 주님의 능력은 10가지 기적 속에 나타나 있는데(8~9장) 각각의 기적은 병, 귀신, 죽음, 자연 등에 대한 주님의 권세를 설명하고 있다.
왕에 대한 배척의 확산: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볼 수 있다. 점점 번져가는 백성들의 배척 때문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가올 죽음과 승천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신다.
왕의 제자들을 예비하심: 영접하는 것과 배척하는 것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주님의 가르침(16:13~21:11)은 자신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왕의 현현과 배척당하심: 왕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유대민족들이 추방당할 것을 예언하신다.
왕의 증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들의 진위성은 빈 무덤, 부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등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무디는 마가복음의 부활승천(막16:19),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부활승천과 보혜사 약속(눅24:49),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재림(요14:3, 21:22)이 있으나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승천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마치 세상에 있는 것처럼 썼다고 했다(마28:20). 마태복음은 구 복, 팔 화, 칠 비유, 십대 기적, 5대 설교,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네 예언의 구조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5대 설교는 산상보훈, 12제자, 야외설교, 화있을진저, 제자들에게 하심이다.4)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은 마태복음을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1:1~2:23),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준비(3:1~4:11),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4:12~25:46. 갈릴리, 베뢰아, 유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26:1~27:6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28:1~20)로 분해하고 있다.5)
이종윤은 마태복음의 특성을 4가지로 보고 있다.6)첫째로 유대인 복음이다.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 대신 ‘천국’이라는 표현이 33회 나오고 있다. 구약을 43회 직접 인용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8회나 부르고 있다. 두 번째로 일반적으로 역사적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그보다는 어떤 주제별 그룹을 형성하여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다. 셋째로 교훈적 요소가 많다. 인용된 구약을 성취된 것으로 본다. 1장에서의 열네 대의 구분은 다분히 교훈적이다. 넷째로 6개의 위대한 설교가 있다. 산상보훈(5~7장), 12제자에게 주신 말씀(10장), 7개의 천국 비유(13장), 겸손과 용서에 대한 토론(18장), 바리새인들에 대한 규탄(23장), 감람산에서의 설교(24~25장)이다.
마태복음의 내용을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족보와 출생(1~2장),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위한 준비(3:1~4:11), 그리스도의 갈릴리 사역(4:12~13:58), 갈릴리로부터 철수하신 기간(14:1~18:35),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행(19~20장), 수난주간(21~27장), 그리스도의 부활(28장)이다.7)
3. 마태복음 첫 꼭지 보기
장 |
장절별 첫 주제 |
장 |
장절별 첫 주제 |
장 |
장절별 첫 주제 |
1 |
예수님의 일번 족보 |
11 |
일일이 세례 요한이 보냄 |
21 |
이일로 예루살렘 입성 |
2 |
이방인 동방박사 |
12 |
안식일 시비 |
22 |
둘둘씩 합동 혼인잔치 |
3 |
세례 요한 |
13 |
일세게 하려면 씨를 뿌려야 |
23 |
바리새인 화 예고 |
4 |
사단 시험 |
14 |
헤롯이 요한을 죽이는 일냄 |
24 |
이사는 성전 무너지기 전에 |
5 |
산에 오르심 |
15 |
일다하기 어려운 장로들의 유전 |
25 |
이오 먹는 열 처녀 |
6 |
육신의 외식 |
16 |
16개 동작으로 표적 맞춤 |
26 |
이육신이 십자가에 수난 받음 |
7 |
헤치는 비판 |
17 |
일치하려면 변형되어야 함 |
27 |
이치에 틀린 총독 빌라도 |
8 |
팔팔하도록 문둥병자 고침 |
18 |
누가 크냐? 일빨리 하는 자 |
28 |
무서워 이빨 부딪치며 여인들이 무덤에 감 |
9 |
침상의 중풍병자 구함 |
19 |
일군 아닌 큰 무리 병 고침 | ||
10 |
열렬히 열두 제자 부름 |
20 |
이영 못된 포도원 품꾼아 |
『 마 가 복 음 』
신약 성경의 이번 강의의 학습 목표는 신약 성경의 각권별 장절별 주제 파악에 있다. 꼭지 보기를 암송하여 각장의 주제를 신약 성경의 각 장이 위치한 것을 기억하면서 이미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 구조 파악에 유용한 기초 자료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다가 추가로 성경을 꾸준히 읽고 문제풀이와 요절암송 등을 병행해 나가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초 자료는 매우 중요하므로 기본적인 구조를 잘 이해하고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그려져야 신약성경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눈을 감고도 알게 된다.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 것으로 믿는다. 지금까지 해보니까 되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하자. “할 수 있다! 해 보자! 하나님께서 하시니,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신약성경의 모든 주제를 분명하게 그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빌4:13).
1. 마가복음 숲 보기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자인 마가가 베드로가 행한 설교를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수했다.”고 이레니우스는 말했다. 마가복음은 요한(히브리이름) 마가(라틴어 이름)가 저작한 복음서이다. 마가복음은 가장 짧은 복음서이며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이다. 주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10:43~45)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독자는 로마인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기에 단순한 문체로 쓰여 졌다. 언론의 기자처럼 “현장감 넘치는 취재의 특성”(위클리프 주석편찬실, p.203)을 잘 드러내고 있다. D. L 무디는 “마가복음에는 긴 설교가 없고 로마인 기질이 성급하고 활달한 인종이었으므로 그 기질에 맞도록 간단히 표현하고 사실을 써야 했다.”고 했다.8)“달리다굼, 에바다, 고르반” 등의 아람어도 제일 많이 나온다.
마가복음은 복음 전도가 주제이다. “마가가 구약 신학을 모르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하는 말들을 볼 때 이 복음서의 이면에는 전도의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9)왜냐하면 전도하기에 여러 가지 유용한 특징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방인인 로마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에게는 무의미했을 내용들, 즉 그리스도의 계보, 성취된 예언들, 유대법에 관한 것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 찾아 볼 수 있는 유대 관습들”(브루스 윌킬슨․ 케네스 보아, p.602~621)은 필요가 없으므로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산상수훈과 같은 긴 설교나 가르침도 적다. 사건 기록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하였다. 또한 “즉시”란 단어가 많은 것도(42회) 시급하게 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전도에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는 무디의 표현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특히 표적에 대한 언급을 주로 취급함으로써 전도에 효과를 보고자 하였다. 가르침보다는 표적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에 대한 예수님의 권세를 부각시키고 있다. 귀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등을(1:23~25, 1:34, 3:7, 5:7) 금지시키고 내어 쫓았다. 본격적인 처음 사역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1:21~27). 그러므로 귀신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새 권세를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권세(1:25등)와 제자들의 권세(6:7,13, 16:20)와 믿는 자의 권세(16:17)를 통해 표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병든 자에 대한 치유도 특이하게 다루고 있다. 병든 자를 침상 째로 메고 나오는 것(6:55~56)과 병을 고치는 방법으로 손가락을 양귀에 넣고 침을 뱉어 고치는 표적(7:31~37, 8:22~26)을 강조하고 있다.10)
무엇보다 복음 전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처음 기록인 1:1(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그리고 1:15(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1:38(거기서도 전도하리니), 3:14(전도도 하며), 6: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0:29(나와 복음을 위해), 13:10(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 예수님의 명령인 16:15(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과 그 말씀대로 제자들이 전파한 16: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을 볼 때 복음 전도에 대한 주제임을 알 수가 있다.
2. 마가복음 나무 보기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만민의 구원”이라는 동일한 목적이 있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마태복음은 제자 삼는 사역을 통해 마가복음은 전도 사역을 통하고 있다. 그러나 진행구조는 거의 같다. 예수님의 사역 준비(1:1~1:13),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후의 사역(1:14~3:12),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집중 훈련과 파송(3:13~8:38), 예수님이 변형되신 이후의 사역(9:1~14:42), 수난 받으신 예수님(14:43~15:47), 부활하신 예수님(16:1~20)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3. 마가복음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예수님의 일은 복음 전도 |
11 |
일일 자가용 나귀 새끼 타고 입성 |
2 |
이층 침상의 중풍병자 |
12 |
시비 거는 포도원 농부 |
3 |
세편 아닌 한편 손 마른 자 |
13 |
열세 번 센 후에 성전 무너짐 |
4 |
사방으로 씨를 뿌리는 자-길돌가좋 |
14 |
일사각오로 예수님을 죽일 모의함 |
5 |
오락가락하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 |
15 |
15분만에 끝난 빌라도의 심문 |
6 |
육지로 고향 회당에 감 |
16 |
여인들이 일어(여) 나서 무덤으로 감 |
7 |
치리 장로들의 유전 |
| |
8 |
팔병 아닌 칠병이어 | ||
9 |
구름 속에서 변형되신 예수님 | ||
10 |
열열이 만나 결혼하더니 이혼함 |
이것은 거함의 법칙이다. 거하면 되고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꼭지에 거함으로써 전체 장별 주제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법칙이다. 예수님 안에 자유가 있는 것이다.
『 누 가 복 음 』
1. 누가복음 숲 보기
신약 성경의 유일한 이방인(헬라인) 저자인 누가는 의사로서 따스함과 동정심을 가지고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심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과 기록된 자료들에 의존하고 있다(1:1~4). 그는 그 자료를 자세히 살피고 정리하여 데오빌로(하나님의 친구)에게 제출한 것이다. 목적은 1:3~4에서 있는 것처럼 이방인(헬라인을 위한 복음-오리겐) 신자로 하여금 믿음을 굳게 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구원의 믿음을 갖도록 자극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삶을 정확하게, 역사 순서대로 포괄적인 기사를 쓴 것이다. 이 복음서의 주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온 완전한 인자다(19:10) 그러므로 핵심 장은 15장이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탕자의 세 비유가 이 복음서의 핵심이다. 네 개의 아름다운 찬송시도 있다. 성모의 노래(1:46~55), 사가랴의 찬송시(1:67~79), 천사들의 영광송(2:14), 시므온의 찬송의 노래(2:28~32)등이 있다.11)이종윤 총장은 “누가복음 9:51~18:14(후가 유대 전도와 베뢰아에서의 행동)은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누가복음 전체의 1/3 이상이 누가복음에만 나타난 독특한 것들이다.”고 했다.12)
2. 누가복음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인자에 대한 소개(1:1~4:13), 인자의 사역(4:14~9:50), 인자를 배척함(9:51~19:27), 인자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19:28~53)로 나누고 있다. 위클리프 주석편찬실은 서문(1:1~4), 구세주 탄생에 관한 고지(1:5~2:52), 구세주의 출현(3:1~4:15), 구세주의 활발한 사역(4:16~9:50), 십자가에 이르는 길(9:51~18:30), 구세주의 수난(18:31~23:56), 부활(24:1~53)로 분해하고 있다.
3. 누가복음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세기 데오빌라 각하 |
13 |
열세 번 회개 않으면 멸망 한다 |
2 |
이 놀라운 예수님의 탄생 소식 |
14 |
일사천리로 안식일 날 고창병 고치심 |
3 |
세례요한 세례 |
15 |
잃어(오) 버린 잃은 양 비유 |
4 |
사단 시험 받으신 예수님 |
16 |
일어(여)나서 일한 불의한 청지기 |
5 |
오라! 첫 제자들이여 |
17 |
일치러 내려면 실족않고 용서해야 한다 |
6 |
육신위해 안식일이라도 밀 이삭 먹음 |
18 |
하루에 여덟 번 한을 품고 기도한 과부 |
7 |
치솟는 백부장의 믿음 |
19 |
일구이언 않고 내려와 구원받은 삭개오 |
8 |
팔방미인 여인들이 자기소유로 섬김 |
20 |
이공허한 사람이 예수님 권세를 시험함 |
9 |
구두로 열두 제자를 파송함 |
21 |
이일해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 |
10 |
열심히 칠십인 제자 파송 |
22 |
두리번두리번 가룟 유다가 기회를 찾음 |
11 |
일일이 기도를 가르치심 |
23 |
두 번 세워서 심문한 빌라도와 헤롯 |
12 |
열두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 |
24 |
무덤에서 이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 |
『 요 한 복 음 』
1. 요한복음 숲 보기
무디는 요한복음에서의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나타내사 아버지의 품에서 오신 분으로서의 예수님’으로 말하고 있다. 기본사상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회개하라”는 말이 없으나 “믿으라.”는 말은 98회나 있다. “나는” 이라는 일곱 계시가 있다. 위에서 났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 빛, 문, 선한 목자, 길이요 진리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일곱 가지의 증거도 있다. 아버지의 증거(8:14), 예수님 하신 일에 의한 증거(10:37~38), 성경의 증거(5:46), 세례요한의 증거(1:34), 제자들의 증거(15:27), 성령의 증거(15:26) 등이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7가지 기적과 7가지의 그리스도의 “나는...이다”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우뢰의 아들들’이란 별명을 가진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이 기록했다. 요한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세 기둥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갈6:6). 기록목적은 20:31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거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주제이다(3:36, 5:24~29, 10:27~29). 다른 복음서와 달리 갈릴리 사역보다는 유대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문장구조는 히브리시의 중요한 특징인 평행구조를 매우 선호하고 있다(빛과 어두움). 비유가 없고 대신 우화가 사용되었다(선한 목자와 참 포도나무). 단순한 문체와 어휘는 가장 심오한 신학적인 개념을 담고 있다.
2. 요한복음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1:1~18), 하나님의 아들의 출현(1:19~4:54), 하나님의 아들이 배척을 당하심(5:1~12:50), 하나님의 아들에 의한 제자들의 준비(13:1~17:26),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18:1~21:25)로 나누고 있다.
3. 요한복음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하나 된 말씀과 성육신 |
12 |
일 두고 향유 부은 마리아 |
2 |
이적의 가나 혼인잔치 |
13 |
열 세게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 |
3 |
삼가 해야 할 니고데모의 말 |
14 |
일 사양하고 평안히 거하는 처소 예비함 |
4 |
네 남편을 데려 오라 수가성 여인아 |
15 |
하나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
5 |
다 고침받은 38년 베데스다못 병자 |
16 |
일어(여) 나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 |
6 |
육상의 기적 오병이어 |
17 |
일치하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
7 |
치르기 위한 유대인들이 죽이려함 |
18 |
한 팔에 붙잡히신 예수님 |
8 |
팔랑거리며 간음한 여인을 용서함 |
19 |
열고(구) 나와서 빌라도가 사형 선고함 |
9 |
구원의 빛을 본 실로암 못의 소경 |
20 |
이제로부터 영원히 부활하신 예수님 |
10 |
열렬히 양을 사랑하시는 목자 예수님 |
21 |
이렇게 한 후에 디베랴 바다에 나타나심 |
11 |
일하지 못하고 죽은 나사로 |
『 사 도 행 전 』
1. 사도행전 숲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누가복음이 마친데서 사도행전이 시작된다고 했다. 사도행전은 신약에 나오는 교회의 시작과 성장을 추적하면서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나오는 대사명을 성취하기 시작하는 것을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시기 전에 마지막 말씀이 사도행전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어서 그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또 간결하게 약술하고 있다. 예루살렘(1~7장)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8~12장)와 땅 끝까지(13~28장)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서신서의 역사적 연결 고리이다. 사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행전과 같다. 핵심구절은 1:8, 2:42~47절이다. 핵심 장은 2장이다. 부활하신 구세주 예수는 사도행전에서의 설교와 변호의 중심주제이다. 구약의 말씀들, 역사적인 부활, 사도의 증거, 성령의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주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들이다.
사도행전의 또 다른 특징은 연설과 설교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기독교 변천에 있어서 중추적인 책이다. 복음서들로부터 서신서들까지(역사), 유대주의로부터 기독교까지(종교), 율법으로부터 은혜까지(하나님의 역사하심), 유대인만으로부터 유대인과 이방인까지(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하나님나라로부터 교회까지(하나님의 계획) 등등을 담고 있다. 사도행전은 약 30년 동안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13)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신비로서의 전략,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사도행전은 시종일관 교회의 성장과 선교전략이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주권적인 역사로 이해되고 있다. 제자들은 성령 부으심의 은사를 통하여 비로소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1:5,8). 그들에게 담대함을 준 것은 성령이었다. 그리고 “이적과 기사”로써 증거의 말씀을 더욱 효과 있게 한 것도 성령이었다(4:29~31).14)
2. 사도행전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예루살렘에서의 증거(1:1~8:4),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증거(8:5~12:25), 땅 끝까지의 증거(13:1~28:31)로 나눈다.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은 교회의 시작(1:1~2:47), 예루살렘 교회(3:1~5:42), 박해와 흩어짐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교회의 확장(6:1~12:25), 소아시아와 유럽 교회의 확장(13:1~21:17), 로마 교회의 확장(21:18~28:31)으로 구분한다.
3. 사도행전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한 번에 끝낸 예수님의 승천 |
15 |
십오 회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림 |
2 |
이미 임하신 오순절 성령 강림 |
16 |
한 혈육 같은 디모데를 만남 |
3 |
셋돈 달라는 앉은뱅이 고침 |
17 |
쉽지(십치) 않은 데살로니가 회당 |
4 |
산헤드린 앞에선 베드로와 요한 |
18 |
일 빨리하는 부부가 있는 고린도 |
5 |
다 드리지 않은 아나니아 부부 |
19 |
일군은 성령 받고 에베소에 전도함 |
6 |
여러 명중에서 일곱 집사 택함 |
20 |
이영 못 만날 제자와 작별후 마게도냐로 감 |
7 |
치를 떨게 한 스데반의 설교 |
21 |
이 일로 예루살렘 못 가게 하는 두로의 제자들 |
8 |
팔방으로 교회가 핍박받아 흩어짐 |
22 |
두루두루 군중에게 자기소개함 |
9 |
구사일생으로 회심한 바울 |
23 |
두세요, 바울을 공회 앞에! |
10 |
열심히 베드로에게 사람 보낸 고넬료 |
24 |
돈을 바라는 이 사악한 벨릭스 |
11 |
일한 것을 선교 보고한 베드로 |
25 |
이 오만한 베스도에게 가이사 호소함 |
12 |
열두 칸 옥에서도 풀려난 베드로 |
26 |
그리스도인 말한 이 육안의 아그립바왕 |
13 |
한 몸으로 세운 바나바와 사울 |
27 |
이치에 따라 로마에 감 |
14 |
일 낸 이고니온의 회당 |
28 |
두 팔로 헤엄쳐 멜리데 해안에 상륙함 |
4. 사도행전 보충자료
무디는 사도행전에는 십대 설교가 있다고 했다. 5개의 베드로 설교(오순절, 솔로몬 행각, 대제사장 앞, 공회 앞, 최후 설교-이방인에 대한 최초 설교), 1개의 스데반 설교, 4개의 바울 설교(비시디아 안디옥, 아덴인에게 행한 설교, 예루살렘 설교, 아그립바왕 앞)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는 “증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고 했다.
사도행전은 모든 장애물을 넘는다고 이종윤은 말한다. 동일과 이질의 문화와 사회와 민족을 넘고 국가와 종교도 넘는다고 했다. 사도행전은 숫적 증가도 있고 지리적 확장도 있으며 질적 차원(서로 교통과 나눔 등)의 성장이 있다고도 했다.
『 바울서신 개론 』
바울서신들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성령님이 감동 아래 그의 시대에 있었던 특별한 문제점들과 쟁점들을 보편적이고도 시간을 초월한 관점으로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하나님의 계시의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것은 바울과 그 동시대 사람들 때가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서신서들은 교리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은 실제적인 적용을 위한 것이지 이론적인 추측들이 아니다. 형식과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바울의 글은 편지로 불리는 것이 적당하다. 그것들은 바울 시대의 표준 편지 형식을 따르고 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직책, 받는 사람의 이름, 인사 또는 번성을 위한 기원, 편지의 주요부분, 마치는 인사와 기원, 그리고 서명이다. 바울은 마지막 형태를 위해 대필자를 이용하는 통례를 따랐지만 출처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결론 구절을 썼으며 서명했다(롬16:22, 고전16:21, 갈6:11, 골4:18, 딤후3:17, 몬19절).
신약 성경 9개의 교회에 보내는 바울서신들과 개인들에게 보내는 4개의 편지가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바울의 편지도 있다(고전5:9, 고후10:9~10, 골4:16, 살후3:17). 바울의 13개의 서신서들은 본문 길이가 긴 순서대로 되어있다. 가능성이 있는 연대기적인 순서는 이러하다.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후서이다.
사울은 학문의 중심지인 길리기아 다소 지방에서 로마의 시민으로 태어났다. 사울은 학문의 중심지인 길리기아 다소 지방에서 로마의 시민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이 예루살렘으로 이사 오기 전에 그는 헬라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른다(행17:28, 딛1:12). 그는 장막을 만드는 일을 배웠지만(행18:3),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으로서, 랍비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는 특권을 얻었다(행22:3). 예리한 지성과 종교적 열심히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난 유대주의자였으며(갈1:14) 젊은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은 스데반이 돌로 침을 당할 때 그곳에 있었다(행7:58,8:1). 그는 열정적으로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으며, 북동쪽 다메섹으로 가서 핍박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바울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났고 이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바나바에 의해 사도들에게 소개되기 전에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3년을 보냈다(갈1:17-18). 15일 후, 그에 대항하는 음모 때문에 그는 떠나야 했고(행9:26-30, 갈1:18-21), 길리기아와 시리아(주로 다소와 안디옥)에서 약 10년을 보냈다.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에 있는 형제들의 흉년든 것을 돕기 위해 안디옥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구호 헌금을 가지고 왔다(행11:25-30). 안디옥으로 돌아온 후에 바나바와 바울과 마가는 1차전도 여행을 떠났다(행13-14장). 마가는 일찍 떠났지만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 밤빌리아, 그리고 갈라디아에서 사역했다. 그 여행 후에 그들은 이방인과 모세의 율법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갔으며(행15장), 그후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바울은 마게도냐와 헬라에 중점을 두었던 2차전도 여행(행15;36-18;22)을 할 때 실라를 데리고 갔다.
바울의 3차전도 여행도 다시 안디옥에서 시작되었으며 에베소를 본부로 삼고 아시아 선교에 중점을 두었다(행18:23-21:16). 바울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를 전해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지만 곧 성전을 더럽힌다고 고소되어 큰 소동이 일어난다. 로마 사람들이 그를 가이사랴에 데리고 오고 그곳에서 벨릭스는 2년 동얀 바울을 감옥에 가두었다(행24:27). 바울은 로마로 험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벨릭스,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앞에서 자신을 변호한다(행24-28:16). 그곳에서 그는 2년 동안 갇혀 있었고, 사도행전은 여기서 끝나지만,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와 초기 교부들은 그가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갇히고 주후 67-68년 네로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기 전에 스페인, 그레데, 아시아, 마게도냐, 그리고 헬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울의 삶은 여러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이 특징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헌신, 개종자들을 향한 강한 사랑,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권위,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서
모든 서신서들 중에 가장 체계적인 로마서는 정죄에서부터 칭의로, 성화로, 다시 영화로 복음의 이야기를 추적해나가고 있다.
고린도전서
바르게 함과 책망의 이 서신서는 당파, 음란, 소송, 그리고 고린도인의 증거를 훼손하고 있는 주의 만찬의 오용에 대해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바울은 결혼, 우상의 제물, 공중 예배, 부활에 대한 고린도인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바울은 일부 거짓 사도들에 의해 일어났던 자신에 대한 최근의 모반에 대해 그의 사도적 특색, 부르심, 자격을 변호하기 위해 아주 개인적인 편지를 썼다. 바울은 다수의 회개로 위로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은 소수에 대해 염려했다.
갈라디아서
이 논쟁적인 서신서는 갈라디아 교회를 함정에 빠뜨린 율법주의의 오류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바울은 전기적이고, 신학적이며 도덕적인 논쟁을 사용해 율법에 대한 은혜의 우월성을 증명하며 율법주의와 방종에 대한 자유의 삶을 확대시켜 보여주고 있다.
에베소서
에베소서의 첫 세 장은 성경에서 가장 숭고하고 심오한 본문 중의 하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는 자의 위치를 격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세 장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적 부요함에 따라 영적인 걸음을 계속하도록 간곡하게 훈계하고 있다.
빌립보서
빌립보인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이 기쁨에 천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의 수감과 관련된 최근의 사실에 대해 말하면서 읽는 이들에게 하나 됨과 겸손, 그리고 경건의 삶을 살도록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 그는 또한 그들에게 율법주의의 오류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골로새서
이 서신서는 신약에서 가장 그리스도 중심인 편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서신서에서 바울은 창조, 구속, 그리고 삶과의 관계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다른 완전한 체계의 성찰이나 종교적 의식도 필요치 않다.
데살로니가전서
첫 세 장은 바울의 데살로니가 사람들에 대한 사역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한 자신의 동기와 염려를 상기시키고 있다. 4~5장에서는 그들에게 성경의 삶을 살도록 훈계하고 있으며 주님의 오심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인들은 주의 날에 대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 있었고 그들의 핍박에 대해 염려하게 되었다. 바울은 이 굉장한 일이 있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여전히 근면하게 살도록 권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이 편지는 에베소의 사역을 맡은 그의 종을 위한 바울의 지도자 안내서다. 그 안에서 바울은 거짓 선생들, 공중 기도, 여성의 역할, 장로들과 집사들의 필요조건, 갖가지 임무에 대한 문제들을 디모데에게 충고하고 있다.
디모데후서
바울의 마지막 편지는 영적인 전쟁에서의 고난에 대해 디모데가 담대하며 흔들리지 않도록 세워주며 격려허가 위해 써 보낸 전투 안내서다. 바울은 이 땅에서의 자신의 과정이 끝난 것을 알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기록한 증거에 따라 디모데가 계속 정진하도록 권하고 있다.
디도서
바울은 그레데의 일을 감독하고 장로들을 임명하기 위해 디도를 그곳에 남겨둔다. 이 품행에 관한 안내서는 장로들의 필요조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의 여러 그룹에 대한 디도의 임무를 가르치고 있다.
빌레몬서
빌레몬의 도망친 종인 오네시모는 바울의 사역 아래 믿는 자가 되었고 지금은 이 편지와 함께 그의 주인에게로 다시 보내졌다, 그 안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줄 것과 더 이상 오네시모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여겨주기를 간청했다.15)
『 로 마 서 』
1. 로마서 숲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신약성경에는 9개의 교회에 보내는 바울서신들과 개인들에게 보내는 4개의 편지가 있다고 했다. 이것은 본문의 길이가 긴 순서대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울의 삶은 여러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이 특징이다. 로마서는 정죄에서부터 칭의로, 성화로, 다시 영화로 복음의 이야기를 추적해나가고 있다. 질문과 형식을 사용해 성경에서 교리를 가장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편지라기보다는 논문 같다. 그러나 로마서는 신학 책 이상으로 실제적인 훈계의 책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3:24)에게 적합한 의의 삶에 관한 책이다. 로마서가 처음에 쓴 것은 아니나 다른 서신서들의 기초가 되는 교리적인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에 처음에 놓았다. 로마서의 주제는 1:16~17절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주신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계획(1~8)을 밝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떻게 그 계획에 합당한지 보여주며(9~11장), 의롭고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12~16장) 격려하기 위해 로마인들에게 편지 쓰고 있다. 로마서의 핵심 단어는 ‘의인’이다. 핵심구절은 1:16~17절과 3:21~25절이다. 핵심 장은 6~8장이다.16)
2. 로마서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하나님 의의 계시(1:1~8:39), 하나님의 의의 변호(9:1~11:36), 하나님의 의의 적용(12:1~16:27) 으로 구분하고 있다. 위클리프 주석편찬실은 사도바울의 서두의 증언(1:1~17), 의-사람과 하나님 관계의 열쇠(1:18~8:39), 하나님 계획안에 있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9:1~11:36),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기대되는 태도와 행동(12:1~15:13), 독자들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염려에 관한 항목들(15:14~16:27)로 분류한다.
3. 로마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인사말을 먼저 함 |
9 |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다 |
2 |
두려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
10 |
입 열고 시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
3 |
세심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
11 |
하나하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택하심 |
4 |
사라와 아브라함의 믿음 |
12 |
시비가 없는 산제사로 교회생활을 하자 |
5 |
오직 예수로 화평하고 즐거워함 |
13 |
하세! 권세 굴복하여 사회생활하세 |
6 |
육신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
14 |
열네서 믿음 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
7 |
치밀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
15 |
일 다 했으면 연약한 자를 담당해라 |
8 |
팔팔하게 살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 |
16 |
일꾼인 여러 명에게 개인적 인사를 함 |
『 고 린 도 전 서 』
1. 고린도전서 숲 보기
고린도는 주전 146년에 로마인들에 의해 멸망되기 전까지 고대 헬라의 주요 도시였다. 줄리어스 시저가 그 도시를 주전 46년에 로마의 식민지로 다시 세워 성장하고 번영하였으며,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고린도는 도가 지나치게 악했으며, 코린띠아조마이(고린도인처럼 행동함)라는 말은 방탕과 매춘의 동의어로 쓰일 정도였다. 헬라 철학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울은 2차전도 여행 때 고린도에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3:6,10, 4:15, 행18:1~17). 그는 고린도에서 주후 51~52년 사이 18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만들었으며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토론했다.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했으며, 사역의 반대로 회당에서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옮긴 바울은, 회당의 지도자 그리스보를 개종시켰다(행18:1~8). 바울이 떠난 후에는 아볼로가 에베소로부터 와서 사역을 하였다(3:6, 행18:24~19:1). 바울이 3차전도 여행 동안 에베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할 때, 글로에의 집에서 듣게 된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1:11). 교회는 세 명의 대표들을 보냈고(16:17),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바울의 판단을 요청하는 편지를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7:1). 바울은 고린도인들의 문제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서신서를 썼으며(이미 이전에도 편지를 썼던 적이 있었음-5:9), 고린도에서 온 사람들은 이 편지를 다시 가지고 갔다.
이 서신서의 기본 주제는 개인적, 사회적 기준에 대한 기독교 원리의 적용이다. 그러나 고린도인들은 고린도인의 속성을 교회에서 떨쳐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다. 당파, 음란, 소송, 이기심, 성만찬과 영적 은사의 오용, 그리고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들을 영적 아버지로서(4:14~15) ‘매’로 나아가지 않게 되기를 당부했다(4:21). 바울은 이러한 여러 문제와 혼란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특징으로는 신약교리가 있다. 교회 조직, 영적인 은사들의 역할(12~14장), 그리고 부활(15장)과 같은 교회 교리들에 대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어떤 다른 서신서도 이 책만큼 사도 교회의 문제와 상태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핵심구절은 6:19~20(성령의 전-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10:12~13(감당할 시험)절이다. 핵심 장은 13(사랑)장이다.
2. 고린도전서 나무 보기
고린도전서의 주제는 교회 안의 분쟁(1:1~4:21), 교회 안의 무질서(5:1~6:20), 교회 안의 어려운 문제들(7:1~16:24)이다.
<고린도전서의 초점과 구성>
* 분쟁에 대한 글로에의 보고에 대한 답(1:1~4:21) - 분쟁에 관한 보고, 분쟁의 이유
* 음행의 보고에 대한 답(5:1~6:20) - 근친상간, 신자간의 소송, 성적 부도덕
* 질문들에 대한 답(7:1~16:24) - 결혼, 우상 제물, 공중예배, 부활, 예루살렘연보에 관한 조언17)
3. 고린도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소스데네가 인사함 |
9 |
구원을 위해 사도와 자유자가 된 바울 |
2 |
이번 증거는 말과 지혜로 아니함 |
10 |
열 받치는 이스라엘의 거울 |
3 |
새내기 신앙은 육신에 속한 상태다 |
11 |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지위 |
4 |
사도들은 역시 그리스도의 사도 |
12 |
열이 나는 성령의 은사 |
5 |
옳지 못한 음행한 자에 대한 처분 |
13 |
일 번째로 셀 것은 사랑이다 |
6 |
여러 성도간의 송사와 불의 |
14 |
일 사모처럼 예언과 방언도 사모하라 |
7 |
혼인을 치르고 나서 이혼하지 말라 |
15 |
일오나신 그리스도의 부활 |
8 |
판위의 우상제물 |
16 |
열여섯 개의 봉투에 넣은 예루살렘연보 |
4. 고린도전서 보충자료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대적들이 훼방하였기에 두려워하면서 전도를 하였다(2:3). 그럴 때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셨다. 고린도에 그의 “백성이 많다”는 주님의 말씀에 바울은 위로를 받아서(행18:9~10) 더욱 담대하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을 마친 후, 예루살렘과 안디옥으로 돌아갔다(2차전도 여행 끝). 이 편지는 3전도여행지인 에베소에서 썼다(16:8). 이 서신은 바울의 가장 긴 서신이다. 내용을 분해하면 서론(문안, 감사), 교회의 분열(분열의 진상, 분열의 원인, 적용과 결론), 교회의 무질서(징계의 결여, 이방인에게 제기하는 소송, 교회의 도덕적 방종), 교회의 어려운 문제들(결혼, 우상의 제물, 공중 예배에서 여자가 수건을 쓰는 것, 성찬, 성령의 은사, 부활의 교리에 관한 권고), 결론 : 실제적이며 개인적인 문제들(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 바울의 계획된 방문, 천거와 권면과 문안과 축도) 이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접촉 및 교류, 서신 왕래 순서>
* 바울의 최초 접촉 - 기쁜 소식이 고린도인들에게 최초로 전파되었던 그의 방문(2:1, 3:2, 11:2) 고린도전서를 쓰기 이전의 유일한 방문.
* 최초의 방문 이후 잃어버린 한 편지를 보냄(5:9)
* 신자들로부터 불온한 소식을 듣고 대책을 요청하는 편지 받은 후에 고린도전서를 씀.
* 이 서신서로 해결되지 않았기에 수고롭게 교회 방문함(고후2:1, 12:14, 13:1,2)
* 방문 이후 세 번째 편지를 보냄(고후2:4). 드로아에서 디도를 기다릴 수 없어 마게도냐로 가서 만남. 문제 해결된 것을 들음. 여기서 고린도후서를 씀(고후2:13, 7:6~16)
* 마지막 편지 후에 최후로 교회를 방문함(행20:1~4).18)
<바울 서신 분류> 19)
* 바울의 최초의 서신들 : 종말론(예수 재림) - 데살로니가 전후서 -새 신자들을 위한 격려
* 복음서신 : 구원론 - 고린도전서=이방인 교회의 문제들, 고린도후서=사도 바울과 그의 전도 사역, 갈라디아서=유대주의자들과의 충돌, 로마서=구원의 복음
* 옥중서신 : 기독론 - 골로새서=그리스도의 절대성, 에베소서=그리스도의 교회, 빌레몬서= 그리스도의 절대성, 빌립보서=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
* 목회서신 : 교회론 - 디모데전후서=세 지도자들의 훈련, 디도서=경고 및 권고
『 고 린 도 후 서 』
1. 고린도후서 숲 보기
바울의 첫 번째 편지이후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거짓 교사들에 의해 동요 되었다. 디모데가 이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하며 바울은 짧고도 고통스러운 방문길에 나선다(고후2:11, 12:14, 13:1~2추론). 유감스럽게도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그 반대의 지도자를 징계할 것을 교회에 권고하는 슬픔에 찬 편지를 쓰게 된다(2:1~11, 7:8). 바울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디도를 통해 편지를 고린도에 보내었다. 그 결과를 알고 싶어 했던 바울은 드로아로 갔고, 돌아오는 디도를 만나기 위해 마게도냐로 갔다(2:12~13, 7:5~16). 돌아온 그로부터 고린도인들의 마음이 바로잡혔다는 것을 듣고 안도했다. 바울은 회개한 다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반항적인 소수에게 그의 권세를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기 위해 고린도후서를 썼고 디도와 또 다른 한 형제 편에 보냈다. 그것이 쓰여 진 마게도냐 도시는 빌립보였을 것이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로 세 번째 여행을 떠났고(12:14, 13:1~2, 행20:1~3), 그곳에서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고린도후서의 주제는 바울의 사도적 권세에 대한 변호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통해 자신의 권세를 변호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과 품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부르심에 대해 변호하고 있다. 10~13장에서 이것이 더 드러난다. 변호의 주제도 1~9장에서 여전히 명백하다. 고린도후서는 연보를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핵심구절은 4:5~6(우리 전파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 것과 우리가 너희 종이 된 것), 5:17~19(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다. 핵심 장은 8~9장(연보)이다.
이 서신서는 자서전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신약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사도의 감성이 나타나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지 않은 핍박과 고난(11:23~27), 다메섹에서의 탈출에 대한 상세한 기록(11:32~33), 낙원에 대한 그의 환상과 계시(12:1~7), 그리고 육신의 가시(12:7~10) 등의 개인적인 일화가 있다. 바울 서신서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지 못한 글일 것이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대조(3장)하고, 그리스도인의 연보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8~9장), 사탄의 전술 폭로(2:10~11, 4:4, 11:3,13~15, 12:7) 등이 있다.20)
2. 고린도후서 나무 보기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바울의 사역에 대한 설명(1:1~7:16), 성도들을 위한 연보(8:1~9:15),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변호(10:1~13:14)로 구분한다. 고린도를 방문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연기된 것은 망설임의 문제가 아니라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자 했다(1:12~2:4).21)
3. 고린도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디모데가 인사함 |
8 |
팔에 힘나는 대로 헌금을 자원해라 |
2 |
두통 날 정도의 근심이 아니라 사랑 |
9 |
아가야에서는 연보를 미리 준비했다 |
3 |
새롭게 쓴 그리스도의 편지 |
10 |
십자가권세로 싸우지 육체대로 안 싸움 |
4 |
사랑하는 주님을 질그릇에 모심 |
11 |
한사람은 참 사도 한사람은 거짓 사도 |
5 |
오르게 된 하늘의 영원한 집 |
12 |
열두 사도가 아니어도 바울이 환상 봄 |
6 |
유감없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
13 |
하나로 세우고 온전케 하려함 |
7 |
친밀하게 마음으로 영접하라 |
|
|
4. 고린도후서 보충자료
바울은 고린도에서 막 돌아온 디도를 마게도냐에서 만났다. 심란해 진 바울은 재빨리 엄격하게 행동해야 했다.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보다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 약속한 헌금을 끝내도록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 그의 사도적 직무와 권위에 대해 전례 없이 옹호함으로써 모든 반대론을 분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두 번째 편지의 모든 내용의 뼈대를 이룬다. 이 편지는 마게도냐 아니면 빌립보에서 쓰여 졌던 것 같다. 이 서신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에 대항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10:5). 내용을 분해하면 위로(1:1~7:16), 연보(8:1~9:15), 신임장(10:1~13:14)이다.22)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에는 항상 성경을 이용하십시오, 기억력을 믿지 말고 차라리 성경구절을 지적하십시오.” 23)
『 갈 라 디 아 서 』
1. 갈라디아서 숲 보기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는 행위의 복음에 대항하여 격렬한 공격을 가하며, 믿음으로서의 복음에 대해 방어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가진 사도로서 자신의 자격을 밝히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축복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율법은 인간들이 죄인임을 선고하며 그들을 감금한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들을 풀어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해준다. 그러나 자유가 방종의 허가증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성령이 이끄는 삶을 통해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이 갑자기 이방인 신자들을 모세의 율법 아래 두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일부 유대주의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넘어갔다는 보고를 듣고 바울은 이 서신서를 썼다(1:7,4,17,21, 5:2~12, 6:12~13). 율법의 행위와는 달리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것이 긴급하게 바로잡으려는 이 책의 주제다.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독립 선언서다. 성령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율법 아래서 자유를 만끽하게 하신다. 핵심구절은 2:20~21(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5:1(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이다. 핵심 장은 5장이다.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한다. 이 장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과 ‘성령의 열매’를 기록한다.
바울은 의례적인 감사조차 하지 않고, 당장 꾸짖기 시작한다. 바울은 자신의 결정적인 주제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 지엽적인 것 때문에 갈라디아서의 논리적 전개를 흩뜨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서신은 여러 감정들과 접근법이 있다. 이 서신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대헌장’으로 불려졌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자유에 관한 바울의 성명서다. 기록한 장소와 연대는 남부/북부 갈라디아 설이 있다.24)
2. 갈라디아서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케네스 보아는 은혜의 복음을 변호함(1:1~2:21), 은혜의 복음을 설명함(3:1~4:31), 은혜의 복음을 적용함(5:1~6:18)으로 구분한다. 위클리프 주석편찬실은 서론(1:1~9), 바울의 사도의 직분이 변명됨(1:10~2:21), 바울의 복음이 설명됨(3:1~4:31), 바울의 복음이 실천됨(5:1~6:15)으로 분해한다.
3. 갈라디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형제들이 인사함 |
2 |
두루 다른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은 바울 |
3 |
삼세판 해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산다. |
4 |
살아 있는 아들은 유업을 이어받게 된다. |
5 |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6 |
유연하게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라 |
『 에 베 소 서 』
1. 에베소서 숲 보기
회람이론에 의하면 바울이 아시아의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보도록 쓴 편지다. 그럴듯한 의견은 이 서신서를 에베소인들에게 직접 보냈지만, 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바울은 3차전도 여행 중 거의 3 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렀다(행19장,20:30). 주후 60~62년, 바울은 그의 첫 번째 로마 감금 때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을 썼다. 여러 증거들을 볼 때 이 서신서들은 로마에서 쓰여졌다는 전통적인 견해가 더 유력하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신자의 책임감이다. 또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더 잘 깨달으라고 권하고 있다. 핵심구절은 2:8~10(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4:1~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이다. 핵심 장은 6장이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지만(1:3), 영적인 전쟁은 여전히 세상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이 매일 겪는다. 6장은 어떻게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는’(6:10)지에 대해 분명하게 조언하고 있다.
바울의 중요한 문구인 ‘그리스도 안에서’(또는 동등한 문구)는, 에베소서에 35번 나오는데 이것은 신약의 다른 어떤 책에서 보다도 많이 나오는 것이다(1:1,3,4,5,6,7,11,12,13, 2:5,6,10,13,21, 3:6,12 등). 매우 개인적이고 논쟁적인 편지인 갈라디아서와는 달리 에베소서는 바울의 문체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적인 문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가 다룬 주제들은 비 논쟁적인 것들이다.25)
이 서신은 골로새서와 함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그 몸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똑같은 사실을 일찍이 로마서12장과 고린도전서12장에서 언급했지만, 이 곳에서 그것을 보다 상세히 밝힌다. 신자를 천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은 모습으로 보여 주고, 또한 이런 고귀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면하는 본서의 계시는, 계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1~3장은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들인가를 말해 준다. 4~6장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무엇을 행하여만 하는가를 말해 준다. 본서의 내용이 앉는 것과, 행하는 것과, 서는 것이라는 세 가지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종종 주장 된다. 지위상, 믿는 자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게 된다(2:6). 따라서 그들의 책임은, 부름을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다(4:1). 그리고 이 행함은, 그들이 사단과 그의 모든 군대에 대항하여 싸우고, 마귀의 궤계에 대적하라고 권면 받음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6:11).26)
2. 에베소서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제1부 그리스도인의 위치(1:1~3:21) - 구속에 대한 찬양, 계시를 위한 기도, 그리스도인의 위치, 깨달음을 위한 기도, 제2부 그리스도인의 행위(4:1~6:24) - 교회 안에서의 하나 됨, 거룩한 삶, 집과 일터에서의 책임감, 영적 전투 준비로 나누고 있다.
3. 에베소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이 인사함 |
2 |
두려운 진노의 자녀에서 구원을 받음 |
3 |
세상의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복음 |
4 |
사방에서 모여들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
5 |
오늘도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6 |
생육하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 |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 것으로 믿는다. 지금까지 해보니까 되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하자. “할 수 있다! 해 보자! 하나님께서 하시니,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신약성경의 모든 주제를 분명하게 그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빌4:13).
『 빌 립 보 서 』
1. 빌립보서 숲 보기
빌립보서는 정반대의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격려하는 서신이다. 바울은 그가 필요할 때 도와주었던 빌립보 신자들에게 감사 편지를 쓰고 있다. 더불어 이 기회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에 관한 교훈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바울의 중심사상은 간단하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한 하나 됨과 기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의 동료 일꾼들은 그들 자신의 지위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선포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2차전도 여행 동안 드로아에서의 바울은 ‘마게도냐인의 부름’ 때문에 빌립보에서 사역하게 되었고, 그 때 루디아와 몇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금 되었지만, 이 일로 인해 빌립보의 간수는 변화 받게 되었다. 상관들이 로마 시민인 바울과 실라를 재판 없이 때린 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되었지만(행16:37~40), 이 불미스러운 일 덕분에 빌립보의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앞으로의 보복은 무마되었다. 바울은 3차전도 여행 때 다시 빌립보를 방문했다(행20:1,6). 바울의 로마 감금 소식을 들었을 때,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 디도를 보내면서 경제적인 도움도 주었다(4:18).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적어도 두 번 정도 도왔다(4:16). 에바브로 디도는 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지만, 빌립보인들이 그가 병이 들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오랫동안 바울 곁에 남아 있었다. 그가 회복되자 바울은 이 편지를 그 편에 빌립보로 다시 보냈다(2:25~30).
이 편지는 빌립보 신자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감사를 싣고 있으며, 그들에게 하나 됨, 거룩함, 그리고 기쁨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기 위해 쓰여졌다. 빌립보서는 어떤 위기 때문에 쓰여 진 것이 아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가 더 커져가는 것을 인지하고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바로 잡으려고 했다. 핵심구절은 1:21(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4:12(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이다. 핵심 장은 2장이다. 신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떠나 섬김의 종이 되신 그분의 겸손의 계시다2:5). 이 서신서의 주요 단어는 ‘기쁨’ 또는 ‘기뻐하라’인데, 4장에서만 16번 나온다. 다른 주요한 단어들은 ‘마음’ 또는 ‘생각하라’(10번)와 ‘복음’(9번)이다.(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768~775)
2. 빌립보서 나무 보기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바울의 기술(1:1~30),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바울의 호소(2:1~30), 그리스도의 지식을 갖기를 바라는 바울의 호소(3:1~21), 그리스도의 평강을 갖기를 바라는 바울의 호소(4:1~23)로 나눈다. 위클리프 편찬실은 빌립보서가 바울 저작 중 극히 가장 개인적인 서신으로 보기에 억지로 논리적 개요를 짜내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고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전개하고 있다고 했다(p.254).
3. 빌립보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디모데의 인사 |
2 |
두고두고 본받을 그리스도의 겸손 |
3 |
세워주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4 |
네 주 안에서 서라 |
『 골 로 새 서 』
1. 골로새서 숲 보기
골로새서는 수준 높은 그리스도론이 특징이다. 아마 성경에서 가장 그리스도 중심의 책일 것이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쌍둥이 서신이다. 에베소서를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골로새서는 당연히 ‘교회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가 몸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골로새서는 머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바울의 목적은 모든 것의 처음이며 으뜸이신 뛰어난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은 삶으로서의 그 우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와 함께 살고, 그 안에서 숨기어지고, 그 안에서 완전하기 때문에, 그 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모순 된 일이다.
골로새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일곱 아시아 교회 지역인 에베소의 동쪽 약 100마일 정동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으며, 이 교회는 에바브라가 세웠다는 것이 분명하다(1:4~8, 2:1). 3차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거의 3년을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보냈다(행19:10, 20:31). 그리고 에바브라는 리쿠스 계곡에 있는 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수년 후에 바울이 감금되어 있을 때 바울을 방문했다(4:12~13, 몬23). 두기고와 개종한 종 오네시모 편에 골로새에 보냈다(4:7~9, 엡6:21, 몬10~12)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골로새의 상태에 대한 에바브로 디도의 방문과 보고 때문에 바울은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골로새인들이 아직은 굴복하지 않았지만(2:1~5),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이교도가 지배적인(1:21,27, 2:13)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편지는 라오디게아의 이웃 교회에도 읽혀지기를 원했다(4:16).
골로새서의 대 주제는 모든 것들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가장 뛰어나시며 충분하다는 것이다.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전하며 부족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2:9) 때문이다. 그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가지고 있다(2:3). 그래서 바울의 주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속성과 업적을 긍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를 평가 절하하는 이교도를 반박하려고 했다. 유혹적인 이성주의(2:4~7), 헛된 철학(2:8~10), 율법적 의식주의(2:11~17), 부적당한 신비주의(2:18~19), 그리고 소용없는 금욕주의(2:20~23)에 대한 그 오류와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대조하고 있다. 바울은 교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을 위해서도 골로새인들이 모든 영역에서의 변화된 삶을 위한 토대와 능력을 제공한다. 핵심 구절은 2:9~10, 3:1~2절이다. 핵심 장은 3장이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778~786)
2. 골로새서 나무 보기
골로새서의 세 가지 주제들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연결하고 있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3:1~4), 그는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하고(3:5~17), 그래서 모든 관계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3:18~25). 두 주요한 주제는 그리스도의 탁월성(1~2장)과 그리스도께 복종(3~4장)이다. 개요로는 제1부 교회안의 그리스도의 탁월성(1:1~2:23) - 도입, 그리스도의 탁월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제2부 교회 안의 그리스도께 복종(3:1~4:18) - 신자의 위치, 신자의 행실, 결론으로 나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786~787)
3. 골로새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디모데의 인사 |
2 |
이어져 오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보화 |
3 |
새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생각하라 |
4 |
네 종에게 베풀라는 상전의 원리 |
4. 골로새서 보충자료
이곳에서의 위험은 에베소서와 마찬가지로(행19:14,18), 유대-헬라의 종교적 혼합주의에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중대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골로새를 향해 본서를 썼다. 골로새의 이단은 유대의 요소와 헬라의 요소를 결합시켰다. 음식에 대한 규정과, 안식일의 성수, 할례 의식, 천사들의 중재 역할은 유대인의 풍습과 신앙을 생각나게 한다(2:11,16,18). 그리고 ‘지혜’와 ‘지식’, 우주적 권세들의 플레로마(헬)와 육체의 학대에 관한 강조는 헬라 사상을 나타낸다(2:3,8,23).
바울은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의 가르침을 공격하기 위하여 그들의 술어를 다루며, 그 과정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론(Cosmic Christology)’ 을 전개한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이 거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부활로 우주의 모든 권세가 패하여 그에게 굴복 된다(2:3,9,10,15). 바울은 그릇된 가르침을 반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의 존귀성과 그에게 결합된 자들에 대한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피조물의 주로서 예수님께서는 신성의 충만함을 구현하신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와 그의 백성이 화목자로서 그는 친히 사람과 하나님의 구속 관계를 효과적으로 중보 하신다(1:15~22, 2:9).
중요한 것은 골로새인들이 틀림없이 잘 알고 있었던 ‘그리스도의 몸’ 개념이다(1:18,24, 2:17, 3:15). ‘그리스도의 몸’은 신약 신학의 기초에 깊이 묻힌 주제이다. 그것의 기원을 바울의 사상에서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것의 뿌리는 주님 자신의 가르침에 있을 것이다(막14:58, 요2:19~22).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에 편입 되어 개인적으로 그의 형상을 닮아야 할 몸이기 때문에, 이제 그의 현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실현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마음, 그리고 부활에 의한 그의 불멸의 생명이 그의 ‘몸’을 통하여 실현될 것이다. (위클리프 편찬실, p.256~263)
『 데살로니가 전서 』
1. 데살로니가전서 숲 보기
바울은 갓난 아이 같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보냈던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핍박이 닥쳤을 때 보여준 저들의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인내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겨우 자립하려는 교회의 영적 부모로서 바울의 수고는 매우 보람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바울의 사랑은 이 편지글에 속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바울은 이들이 새롭게 발견한 믿음 안에서 성장하며, 더욱 열심히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는 재림하실 주님에 관한 말로 이 편지의 결론을 내리면서, 주님의 재림(Parousia,강림)은 바로 산 자와 죽은 자들 모두에게 소망이요 위로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는 유명한 항구 도시로서 로마의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다. 주전 315년경 카산드라가 이 지방을 확장하여 강성케 한 후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여동생이기도 했던 그의 아내 이름을 따라 개명했다. 로마는 주전 168년에 마게도냐를 점령하고 도시들을 개편하여 22년 후에는 데살로니가를 그 지방의 수도로 격상시켰다. 1세기에 이미 인구가 20만 명에 달했다. 지금은 ‘살로니카’라는 축소된 이름으로 현존하고 있다. 데살로니가에는 약간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리스의 이방 신관으로부터 탈피한 많은 이방인들은 유대교의 유일 신관에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던 이런 이방인들은 바울이 2차전도 여행 당시 데살로니가 한 회당에서 설교했을 때(행17:10) 바울의 가르침을 즉시 받아들였다.
바울의 전도가 성공을 거두자 이를 시기하던 유대인들은 괴악한 사람들을 일으켜 대항하기 시작했다. 바울과 실라를 찾는 데 실패하자 이 폭도들은 바울과 실라를 대접했던 야손과 그 형제들을 읍장들 앞으로 끌고 가서 로마전복을 꾀하는 사람들을 숨겼다고 고발한다. 읍장들은 바울과 실라를 추방할 것을 약속하지만 그 밤에 이 두 선교사들은 베뢰아로 피신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에서도 폭도를 일으켰다. 그 결과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에게 아덴에서 다시 만날 것을 부탁하고 먼저 아덴으로 떠난다(행17:11~16). 실라와 디모데가 아덴에서 바울을 만난 후(3:1~2),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고(실라 역시 마게도냐 지방, 아마 빌립보로 돌아갔다), 나중에 다시 고린도에서 재회하게 된다(행18:5,살전1:1에서는 실라를 실루아노로 기록). 거기서 바울은 디모데가 전해 온 좋은 소식에 대한 답장으로 주후 51년에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본서의 기본 주제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구원과 성화다. 핵심구절은 3:12~13(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4:16~18(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이다. 핵심 장은 4장이다. 4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그후에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갈 그리스도 강림에 관한 중심 본문을 담고 있다. 다시 오실 구세주에 대해 가장 도움이 되고 잘 묘사된 본문이 본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4:13~5:11). 이것은 신약 성경 중에서도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본문 가운데 하나다. 본서의 다섯 장 모두가 이 위대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1:10, 2:19, 3:13, 4:13~18, 5:1~11,23 등). 본서는 고린도후서와 마찬가지로 영적 전쟁에 처해 있는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부드러움, 사랑, 관심이 나타나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790~796)
2. 데살로니가전서 나무 보기
주요 구분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1:1~3:13),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는 바울의 교훈(4:1~5:28)으로 나눈다. 1장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 숭배하던 이교에서 기독교의 소망으로 옮겨온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이란 단어가 이들의 새로운 삶을 묘사하는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의 인격이나 메시지(2:1~16)를 공격하려는 자들에 답변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헌신은 애정(유모같이, 2:7)이나 훈계(아비같이, 2:11)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데살로니가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사역하도록 했으며 그러한 디모데로부터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2:17~3:10)에 굳게 서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크게 위안을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믿음이 계속해서 깊어지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바울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면, 먼저 성적인 것과 사회적인 문제(4:1~12)에 대해 자신이 가르쳤던 것을 상기 시키고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가르쳤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임하심, 강림, 재림 4:13~18) 때에 부활할 것을 확신시킴으로써 위로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묘사하면서 계속 종말론을 설명하고 있다(5:1~11). ‘빛의 자녀들’같이 ‘깨어 근신’해야 할 것이다. 영적 성장을 부탁하고(5:12~22), 그들의 성화, 3가지의 부탁, 축도로 맺고 있다(5:23~28).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796~798)
3. 데살로니가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인사함 |
2 |
두 번째로 하나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함 |
3 |
상황이 어떤지를 디모데를 보내 알아 봄 |
4 |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5 |
오리무중인 재림과 부활의 때와 시기 |
4. 데살로니가전서 보충자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결실이었다. 빌립보에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석방된 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유럽의 두 번째 교회를 세웠다. 신약의 저술 가운데 특별히 이 서신은 이교도들을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켰으며, 분쟁 중에도 그들의 사랑을 뜨겁게 했고, 핍박의 무자비한 맹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소망을 잃지 않게 했던 복음의 능력에 대한 보다 힘찬 증거가 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서신들을 통해 그의 주제보다는 그의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을 유순한 유모(2:7)와 확고한 아버지(2:11)와 집 없는 고아(2:17)로 비유한다. 이 사도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사건의 결과와 그 때의 죽은 믿는 자들의 역할에 관해 그토록 상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더구나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만 말세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악의 전형-적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할 뿐이다. 내용분해하면 서론(1:1), 개인적 소견(1:2~3:13) - 바울이 교회를 칭찬함, 바울이 교회를 설립함, 디모데가 교회를 강건케 함, 실제적 권면(4:1~5:22), 결론(5:23~28)이다. (위클리프편찬실, p.264~267)
『 데살로니가 후서 』
1. 데살로니가후서 숲 보기
본서는 바울이 교회들에게 쓴 9권의 서신 중에서 가장 짧지만 종말에 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마24~25장)와 요한계시록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신약 성경의 3대 예언서라 불린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기록연대가 가장 빨라서 신약 성경 중 일찍 기록된 성경으로 간주된다. 친필의 인사말을 끝맺고 있다(3:17, 2:2).
핵심 구절은 2:2~3(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저 불법의 사람), 3:4~5(명한 것을 행하고 행할 줄을) 이다. 핵심 장은 2장이다. 주의 날이 이미 임했다고 가르쳐서 혼동이 있게 된 것이다(2:1). 바울은 주의 날이 아직 임하지 않았고 주님의 강림 전에 성도들도 알 수 있는 분명한 일들이 일어나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일부 성도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하고 마치 종말이 온 것으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만 의존해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모범을 보여준 대로 자력으로 생활을 꾸려가도록 명령한 후 교회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훈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병폐에 대해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3:10)고 처방을 내리게 되었다. 나태한 마음으로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힘쓰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지적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12절에 기록된 게으름에 관한 경고의 말씀이 보다 더 강조 되었다(3:6~15).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모든 일들을 공평하게 바로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때 현재 핍박을 받는 자들은 위로받을 수 있다. 본서의 주제는 데살로니가교회가 당하고 있는 종교적 핍박, 잘못 오해하고 있는 교리적인 문제, 실생활에서의 악습 같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바울이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 사실이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00~804)
2. 데살로니가후서 나무 보기
데살로니가후서는 핍박 가운데 인내하라는 바울의 격려가 들어 있으며(1장), 주의 날에 대한 설명(2장), 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고(3장)로 구성되어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05~807) 믿는 자들의 믿음과 사랑과 핍박 가운데서의 인내를 고마워하면서, 바울은 장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연단하며, 하나님의 원수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러한 핍박의 목적을 밝힌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안식을,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가져다주면서, 현재의 상황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내용 분해 - 서론(1:1~2), 핍박 가운데서의 격려(1:3~12), 주의 날에 관한 교훈(2:1~12), 감사와 권면(2:13~17), 확신의 고백(3:1~5), 일을 하라는 명령(3:6~15), 결론(3:16~18). (위클리프편찬실, p.268~270)
3. 데살로니가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인사함 |
2 |
이미 강림했다고 말하는 불법한 자들 |
3 |
삼가야 할 것들을 권면하고 기도 요청함 |
『 디모데 전서 』
1. 디모데전서 숲 보기
바울은 주후 62년 혹은 63년 마게도냐에서 디모데전서를 썼는데,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뿐만 아니라 아마 다른 소아시아 교회에서 바울 대신 사역을 맡고 있었다. 본서신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디모데가 소아시아 교회들을 조직하고 감독하는 것에 있다. 바울은 본서를 하나의 지도자 지침서로써 마게도냐(3:14~15)에서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디모데가 책임 있게 교회들을 돌보도록 했다. 바울은 이 젊은 동역자 디모데를 격려하고 권고하여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했다(6:12, 1:18, 4:12~16, 6:20). 디모데는 성품과 실생활에 있어서 분명 남보다 뛰어나야 했고, 특히 잘못된 교리, 조직, 치리, 설교, 빈부, 다양한 그룹의 교인들의 역할에 대한 문제들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부정적으로는, 잘못된 것들을 책망해야 했으며(1:7~11, 6:3~5),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진리를 가르쳐만 했다(4:13~16, 6:2,17~18).
핵심 구절은 3:15~16(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6:11~12(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하였도다). 핵심 장은 3장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와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들이다.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말이여’(딤전1:15, 3:1, 4:9, 딤후2:11, 딛3:8)란 말은 목회서신의 특징적인 표현이다. 이 세 서신들은 바울이 특정 개인에게만 쓴 유일한 편지들이며(빌레몬서는 단지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쓰여진 편지이기도 하다), 에베소와 그레데에 있는 교회들을 굳세게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디모데와 디도를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 쓰여졌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14~816)
2. 디모데전서 나무 보기
바울은 바른 교훈으로 다른 교훈과 싸우고, 양질의 지도력을 개발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격려하는 것이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이고 대화적인 특징 때문에 다섯 가지의 분명한 위탁으로 맺고 있다. 교리에 관한 바울의 위탁(1장), 공중 예배에 관한(2~3장), 거짓 선생들에 관한(4장), 교회 치리에 관한(5장), 목회자의 동기에 관한(6장) 위탁이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17~820) 내용분해하면 인사와 서론(1:1~20) - 인사,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분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권면과 가르침(2:1~6:2a) - 증거하는 교회에게,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게, 증거하는 개인에게, 결론(6:2b~21) - 엄숙한 분부, 송영, 엄숙한 분부로 돌아감이다. (위클리프주석 편찬실 p.276~277)
3. 디모데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이 인사함 |
2 |
이렇게 많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구하라 |
3 |
세계적인 감독과 집사의 자격 |
4 |
네가 형제를 깨우쳐서 예수의 일꾼이 되라 |
5 |
올바른 노소남녀 과부를 대하는 법 |
6 |
유쾌하게 범사에 상전을 공경하라 |
『 디모데 후서 』
1. 디모데후서 숲 보기
디모데후서는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마지막 유언이며 유서이다. 로마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쓴 바울은 에베소에서 힘든 목회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디모데에게 지혜와 격려가 담긴 말들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있다. 바울은 경건한 생활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교회 내에서 생길 배교에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의 이 모든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인데 그것은 외부적인 핍박이나 내부적인 갈등들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기초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 유산과 책임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군인이든, 경기하는 자이든, 농부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든, 인내하는 자들에게는 모두 상급이 있다는 것이다. ‘귀가 가려워서’(4:3)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이킬 때 바른 교훈이 공격을 받을 거라는 것에 대해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좋은 본보기를 배워서 말세에 늘어가는 반대세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시킬 수 있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으나(행6:1),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는 그에게 히브리 성경을 가르치면서 양육했다(1:5, 3:15). 디모데는 바울이 1차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 머물고 있는 동안(행14:8~20) 바울로부터 전도를 받아 개종했다(고전4:17, 딤전1:2, 딤후1:2). 2차전도 여행 중 바울이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기로 결정하고 바울은 디모데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할례를 주었다(행16:1~3). 디모데는 사역을 위해 안수를 받았고(딤전4:14, 딤후1:6) 드로아, 베뢰아, 데살로니가, 고린도에서 바울이 충성된 동역자, 조력자로서 도왔다(행16~18장, 살전3:1~2). 3차전도 여행 동안 디모데는 바울과 같이 일했고 에베소, 마게도냐, 고린도에서는 바울을 대신해 사역했다. 바울이 1차 감금되었을 때 디모데는 바울과 같이 있다가 바울이 석방되자 빌립보로 갔다(빌2:19~23).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일을 돌보도록 에베소에 남겨두었다가 수년 후에 그를 로마로 불렀다(4:9,21). 히브리서 13장 23절에 의하면 디모데 역시 감금 되었다가 석방되었는데 그 장소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디모데는 병약하고(딤전5:23), 두려움도 있었고(1:7), 나이도 어렸지만(딤전4:12), 재능 있는 선생으로서 신뢰할 만했으며 부지런했다.
소아시아의 성도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바울이 체포당한 후에(1:15) 그를 돕지 못했으며, 첫 번째 바울 자신이 변호를 할 때도 그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4:16).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도 바울은(4:10~11), 자신의 첫 번째 로마 감금 당시(행28:16~31)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단순한 가택 연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도 있었고 바울 역시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가운 로마 감옥에서(4:13) ‘죄인과 같이’(2:9) 취급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1차 변호에도 불구하고(4:6~8,17~18) 무죄 석방의 희망이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후 67년 가을, 바울은 곧 다가올 겨울 전에 디모데가 한 번 면회 오도록 바라면서 이 편지를 썼다(4:21). 이 편지가 쓰여 질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고(1:18, 4:19), 로마로 오기 위해서는 아마 드로아(4:13)와 마게도냐를 경유해야 했을 것이다. 로마 대화재 이후 핍박이 시작되자 브리스가와 아굴라(4:19)는 아마 로마에서(롬16:3) 에베소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이 편지는 두기고가 전해준 것 같다.
이 편지글에서 바울은 이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신이 그만 손을 떼야 하는 그 사역을 디모데가 신실하게 계속해나가도록 부탁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의 영적 아버지로서 아들 디모데가 선천적인 수줍음을 극복하여 비록 고난을 당하더라도 담대하게 복음을 외치라고 강권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와 마가가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로마로 면회를 오고, 아울러 자기의 겉옷과 함께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파피루스를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이 서신은 바울의 마지막 간증으로서, 죽음을 발 앞에 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27)
핵심 구절은 2:3~4(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3:14~17(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이다. 핵심 장은 2장이다. 2장은 목회자나 전임 사역자들이 매일 읽어야 할 본문이다. 본서는 성경의 중심 사상을 강조하면서 성경의 영감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성경적인 견해를 포함하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22~827)
2. 디모데후서 나무 보기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2:3)라고 부른다. 사실 단호한 명령법으로 볼 때, 본 서신은 영적 전부를 위해 사용될 전투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디모데후서 전체의 중심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기초를 두느냐에 있다. 현재의 인내를 시험하라(1~2장), 장래의 시험을 견디라(3~4장)로 나눌 수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29~830). 내용분해하면, 인사와 서론(1:1~18) - 특별한 권세와 애정의 인사, 디모데의 믿음에 대한 감사, 복음에 대한 책임에 관한 충고, 복음 : 충성을 요구하는 위탁물(2:1~3:17) -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해야 할 것, 굳게 지켜지고 소중히 해야 할 것, 성채로서 인정되어야 할 것, 디모데에 대한 분부와 결론(4:1~22) - 엄숙한 분부, 바울의 마지막 증거, 결론이다.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277~278).
3. 디모데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이 인사함 |
2 |
두고 다니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가 되라 |
3 |
세상의 말세의 고통 하는 때 |
4 |
사명으로 받은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라 |
『 디 도 서 』
1. 디도서 숲 보기
디도는 바울이 이제 믿기 시작한 성도들을 교회로 조직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시작하도록 그레데 섬에 남겨둔 젊은 사역자였다. 젊은 사역자 디도는 그레데에 있는 교회를 잘 정비해야 하는 매우 힘든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울은 디도가 가정과 일터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성품을 가진 남자들을 장로로 세우는 일이며 교회의 일을 감독하는 것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교회를 조직하며 목회하는 것에 관한 실제적인 지혜를 디도와 나누고 있다. 거짓 선생을 즉시 몰아내야 한다. 모든 연령층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이 믿고 있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도자든 평신도든 조심하여 선한 일에 힘을 씀으로(3:8)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나타내 보여야 한다.
바울은 이 할례 받지 아니한 헬라인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는데(갈2:3), 그는 거기서 이방인과 율법에서의 자유에 관한 문제의 본보기가 되었다. 수년 후 바울이 3차전도 여행으로 안디옥을 출발했을 때(행18:22), 디도가 바울과 동행했음에 틀림없는 것은 이 기간동안 바울이 디도를 3번에 걸쳐 고린도로 보냈기 때문이다(고후2:12~13, 7:5~7,13~15, 8:6,16~24). 바울이 그레데 사역을 위해 거기에 둘 때까지는 디도에 관한 언급이 없다(1:5). 디도는 바울이 로마에서 두 번째 감금되었을 때 바울과 같이 있었지만 아마 전도에 관한 일로 인해 훗날 달마디아로 간 것 같다(딤후4:10). 주후 63년에 바울은 편지를 썼고, 보내는 것은 아마 고린도에서 세나와 아볼로(3:13)가 그레데를 지나는 여행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바울은 그해 겨울을 니고볼리(그리스 서부 지방)에서 보낼 계획이었는데, 이 편지에서 바울은 아데마와 두기고를 대신 보낼 때, 디도가 니고볼리로 와서 바울을 만나도록 권하고 있다(3:12). 바울은 이듬해 봄에 니고볼리를 떠나 아마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이어서 아마 유익한 동역자로서 디도와 동행하길 원했던 것 같다.
짧은 본 서신서는 그레데 섬에 있는 교회들을 조직하고 돌봐야 하는 디도의 역할과 책임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교회에 질서가 정립되고, 거짓 선생들과 대적하는 자들을 반박하며, 부도덕한 행위들은 선한 행실로 변화되도록 만들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사도가 보낸 대리인으로서 바울은 디도에게 부여받은 권세를 단호히 행사하도록 디도를 권고하고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썼다. 바울은 세 가지 교리적인 부분을 포함시키면서 올바른 신앙(orthodoxy)이 올바른 행위(orthopraxy)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디도서는 기독교 신학을 세 가지로 잘 요약하고 있으며(1:1~4, 2:11~14, 3:4~7), 마지막 두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신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본문 중의 하나다. 핵심 구절은 1:5(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3:8(굳세게 말하라 ...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이다. 핵심 장은 2장이다. 교회 안에서 경건한 대인관계를 지켜 나가기 위해 순종해야 할 핵심이 되는 명령이 디도서 2장에 잘 요약되어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32~837)
2. 디도서 나무 보기
디도서는 디모데전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에 기록된 서신서로서 바울 사도를 대표하여 교회를 조직하고 감독하는 동역자에게 쓰여 졌다. 이 서신서는 올바른 교리를 강조하고, 진리를 거스리는 자들에게 경고할 뿐만 아니라, 선한 행실을 강조하고 교회 안에서의 여러 그룹들이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는 지침서이기도 한다. 본 서신서는 장로 세우기(1장), 부족한 일을 바로잡기(2~3장)로 나눌 수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37~839)
3. 디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바울이 인사함 |
2 |
두려움 없이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 |
3 |
세차게 말해야 할 성도의 올바른 대인 관계 |
『 빌 레 몬 서 』
1. 빌레몬서 숲 보기
그리스도를 통한 형제의 사랑이 과연 심각한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발할 수가 있는가? 예를 들어, 이름 있는 노예 주인과 그 밑에 있다가 도망쳐 나온 종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과연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바울은 이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도망자요, 도둑, 전혀 쓸모없던 종이었지만 이젠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과 한 형제 된 오네시모를 대신하여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형제요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이 ‘엽서’를 띄운다. 오네시모가 빚을 진 것은 무엇이든 바울 자신이 친히 갚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두기고가 편지를 전달하게 되는데, 바울은 두기고와 함께 보내기로 결정한다(골4:7~9, 몬12).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함께 딸려 보내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석방될 것을 확실히 소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몬22).
빌레몬은 골로새에 거주했으며(몸12), 바울을 통해 개종했는데(19) 아마 바울의 3차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있는 동안 바울을 만나 개종하게 된 것 같다. 빌레몬의 집은 교회 모임을 가질 정도로 넓었다(2). 그는 다른 성도들에게 유익한 사람이었으며(5~7), 그의 아들 아킵보는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골4:17, 몬2). 골로새의 성도로서 노예를 소유한 성도도 있었다(골4:1). 로마법에 의하면, 오네시모처럼 도망친 노예는 심하게 다룰 수 있고, 심지어는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오네시모가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지 않았다면 사실 이 서신서를 가지고 빌레몬에게로 돌아갔을 리는 만무하다.
빌레몬서는 성도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 종의 신분에서 형제의 신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빌레몬에게 마치 바울 자신을 영접하듯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라고 부탁하고 있다. 본 서신서는 빌레몬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썼는데,28)그 이유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였다. 핵심 구절은 16~17(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이다. 복음의 능력은 사회적인 장애물(‘종이나 자주자나’, 갈3:28, 골3:11)을 뛰어넘는다. 빌레몬서는 직접적으로 노예제도를 공격하지는 않지만 기독교적인 원칙은 궁극적으로 노예제도의 폐지를 의미하고 있다고 하겠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42~847)
2. 빌레몬서 나무 보기
바울 서신 중 가장 짧은 서신이다(헬라어 원문 334단어 사용). 세심하고도 매우 개인적인 편지는 세부분으로 나뉜다. 빌레몬을 위한 감사기도(1~7),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탄원(8~16),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약속(17~25)이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47~849)
3. 빌레몬서 꼭지 보기 - 없음
『 비 바 울 서 신 』
나머지 8권의 서신서들은 그 분량에 비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서신서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기독교 진리의 풍성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13권의 바울 서신서를 잘 보완한다고 볼 수 있다. 야고보, 베드로, 요한, 유다, 히브리서 저자 등 다섯 명이 저마다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다양하게 기여하고 있다. 야고보서를 제외한 일반 서신서들은 바울의 생애 마지막 때에 아니면, 바울이 이미 죽은 뒤에 기록되었다. 바울이 예견한 대로 이단 교리의 문제가 이미 교회 안에서 위험 수위에 도달하게 되었다. 일반 서신서 대부분이 이런 위험한 교리들을 엄하게 다루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그 당시 교회들은 외부적인 반대와 핍박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거짓 선지자들의 공격으로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일반서신’이란 용어는 흠정역(KJV)에서 야고보,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서와 유다서에 붙어 있는 제목이었지만 오래된 문서에는 이런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29)바울 서신들의 제목들이 수신자의 이름을 따른 반면, 비바울 서신들은 저자의 이름을 따랐다(히브리서 제외). 이 서신서들은 헬라어 사본들에는 바울 서신 앞에 위치하고 있지만 신약 성경의 초기 정경 목록에서는 지금의 순서대로 열거 되었다. 서신서들의 연대, 길이, 내용 면에서 볼 때 이 순서가 더 적합한 것 같다. 베드로전서와 요한일서를 제외한 나머지 서신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경으로 인정받기 전에 논쟁의 대상이었다.
히브리서
그리스도께서 그 이전의 누구보다도 뛰어나심을 논증하기 위해 쓰여졌다. 기독교인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점점 커지게 되자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개종하려는 위험스런 상황이 되었다. 저자는 인성과 제사장 자격과 그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심을 증거하고 있다.
야고보서
그리스도인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믿음의 진위성을 점검하도록 진실한 믿음의 특성을 예리하고도 실제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만일 자질 있는 변화가 성품과 자기 절제 속에 생기지 않는다면(1~3장), 그 믿음의 진위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야고보는 또한 세상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데 몰입해 있는 사람들을 훈계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상기시키며 인내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본서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해 왔기에 베드로의 위로와 충고의 말씀이 필요했다. 베드로는 먼저 그들에게 구원의 풍성함과 거룩한 삶의 필요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고난 가운데서도 복종하는 자세를 키워나가도록 격려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부당하게 받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의지하는 겸손한 자세로 이겨내야 한다.
베드로후서
외부의 반대 세력을 다룬 베드로 전서와 달리 베드로후서는 내적인 반대세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믿는 성도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잘못된 믿음과 경건치 못한 행위로 가만히 끌어들이는 위험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지식 가운데 성장하는 것이 이단의 유혹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요한일서
구속받은 성도와 하나님간의 교제의 범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빛의 하나님이시기에 믿는 자들은 그 앞에서 성실하게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믿는 자들은 서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하나님이시기에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영생을 확신할 수 있다.
요한이서
본서는 이글을 읽는 이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진리 안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을 칭찬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사랑 가운데 걸어가도록 상기시키기 위해 기록되었다.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해 올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스승에게는 그 어떠한 친절도 베풀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요한삼서
요한은 자신이 보낸 선생들을 가이오가 환대해 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자신은 영접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그리하라고 말했던 디오드레베와는 반대로, 전도자들을 후원하고 진리 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가이오에게 요한은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다.
유다서
길이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신약 성경 중 거짓 선생들에 대해 가장 신랄하게 폭로하고 있다. 또한 거짓 선생들의 행위, 특성들을 밝히면서 구약을 인용하고 이들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본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진리 가운데 자신들을 세우며 믿음을 굳세게 지켜나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신약 성경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요한계시록은 가장 어려운 책이다. 그 이유는 창세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이 책이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 중에서 유일하게 예언에 초점을 둔 성경인 이 예언서는 수많은 해석방법들이 적용되어 왔었다.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모습을 극적으로 잘 묘사한다. 요한 사도는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에 주시는 일곱 메시지를 기록한다(1~3장). 4장에서 19장까지의 장면들은 천국과 이 땅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반역하는 인류에게 내리는 특별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일 뿐만 아니라 모든 권세를 받고 모든 사람과 천사들을 심판하실 사자이시다. 예수님의 재림과 그 뒤에 일어날 심판을 설명한 뒤, 요한은 자신이 본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록하고 새 예루살렘의 진기한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20장~22장).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53~857)
『 히 브 리 서 』
1. 히브리서 숲 보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많은 유대인 성도들은 지역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을 피하기 위해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단계로 정진해나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천사들이 그분을 섬기기 때문이다. 모세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모세가 그리스도로 인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아론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단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율법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더 나은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유대교로 복귀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정진해나가는 것은 시험을 이기는 믿음과, 자기 훈련과, 선한 일에 드러나는 사랑을 만들어 낸다.
멜기세덱의 조상처럼, 히브리서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저자뿐만 아니라 쓰여진 장소, 시기, 수신자 역시 알 수 없다. 많은 증거자료는 원 수신자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전통적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히브리서를 받은 수신자들이 아마 로마에 살던 기독교인들이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오늘날 지배적이다(13:24).30)본서의 수신인들은 믿는 사람들로서(3:1) 그리스도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 믿게 된 자들이었다(2:3). 그들은 신앙의 초보자들이 아니었으며(5:12), 복음에 굳게 선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지금까지 고난을 잘 인내해왔다(10:32~34). 불행하게도 이들은 ‘듣는 것이 둔하므로’(5:11) 휩쓸려갈 위험이 있었다(2:1, 3:12).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이들에게 곧 닥칠 새로운 핍박에 쉽사리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었고(12:4~12), ‘권면의 말’로 믿음에서 뒤떨어지지 않도록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알고 있었다(13:22). 분명한 위험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지만, 전통적인 입장 즉, 본서의 수신자들이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핍박을 피하게 위해 유대교로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다는 견해가 전체 히브리서와 가장 잘 부합되고 있다. 유대교에 대해 기독교의 우위성을 히브리서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사실은, 만일 본서의 독자가 영지주의 또는 다른 이단으로 빠져가는 상황이었다면 전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기본 주제는 ‘이보다 나은’ ‘더 좋은’이란 말씀이 사용된 것을 중심으로 찾아 볼 수 있다(1:4, 6:9, 7:7,19,22, 8:6, 9:23, 10:34, 11:16,35,40, 12:24). ‘완전한’ ‘천국’이란 단어들 역시 그리스도의 인격과 하신 일의 우월성을 설명하는데 있어 두드러진다. 예수님께서 더 좋은 계시, 위치, 제사장직, 언약, 제사, 능력을 제시하고 계신다.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버리고 옛날의 유대교 체제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주제를 전개하고 있다. 본서는 그리스도론과 구원론과 연관된 교리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핵심 구절은 4:14~16(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2:1~2(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이다. 핵심 장은 11장이다. 11장은 ‘성경책의 기념관’에 해당되는데 여기엔 하나님의 약속 외에는 붙들 것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던 인물들의 기록이 나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이다. 예수님의 속성과 성취를 20개가 넘는 직위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다른 서신서들과는 달리 인사말이 없고, 초기 문서에서 이같은 인사말을 지웠다는 증거 또한 없다. 그 대신 곧바로 본 주제로 들어가기 때문에 서신서라기보다는 설교형식의 수필에 가깝다. 단지 13:18~25절 부분만 진짜 서신서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제사장 직분의 우월성과 최종적인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본서에는 방대한 양의 구약 성경의 인용과 암시가 있다. 히브리서는 신약 성경에 중요한 교리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데, 특히 믿는 성도들을 위해 현재 그리스도께서 하고 계시는 제사장 직분에 관한 계시가 그렇다. 이는 새로운 언약과 연관시켜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에 대한 교리를 발전시키고 있다.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와 절기의 예표론적인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제사 형식법의 예언적인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서는 전체를 통해 부정적으로는 경고와, 긍정적으로는 권고를 통해 교리를 적용하고 실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60~868)
본서의 동기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즉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다시 모세에게로 변절할 가능성이 있었다(3:12). 행위가 그와 같이 돌아갈 수 있음을 넌지시 비추었다(5:13,14). 공적 예배의 무시(10:25)와 기도의 연약함(12:12)과 교리의 불안전성(13:9)과, 성숙한 믿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의 거부(5:12)와, 성경의 무시(2:1)가 영적 연약함의 또 다른 증상이었다. 그 위험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3:1)이 타락하거나(6:6),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지”(3:12)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와 같이 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와, 모세와, 아론과, 멜기세덱과, 제사장 제도와의 일련의 대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강조했다. 그와 같은 대조의 목적은, 유대교의 열등함과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그의 생각을 전개하면서 세 가지 개념을 함께 엮는다. 첫 번째 것은 권면이다(13:22). 두 번째 것은, 다섯 개로 된 일련의 경고이다(2:1~4, 3:7~19, 6:4~12, 10:26~31, 12:15~17). 그리고 세 번째의 것은, “생각하라”(3:1)라는 말씀에서 소개된 생각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위로, 혹은 보증으로서, “…….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3)라는 구절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을 근거로 하여, 저자는 변절의 경향에 반론을 편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이유와, 이러한 희생을 통해 제공된 구속의 이유를 이토록 명확하게 대답해주는 다른 신약의 서신은 없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과, 고난당하는 인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두 가지 사역을 이토록 명확하게 연결시키는 다른 신약 서신은 없다. 죄와 범죄와 속죄와 용서가 히브리서를 통해 더욱 완전하게 이해된다. 본서는 또한 구약의 사실이나 사건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독자들을 돕는다. 또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가 히브리서의 가르침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 진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두 가지 주된 생각에 집중된다. 첫 번째 생각은 3:1과 12:3절에 나오는 “생각하라”는 말이다. 3:1절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12:3절은 “참으신 자”로 믿음생활의 근본적인 본으로서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생각은 “권하노니”라는 동족동사와 함께 나오는 “권면”에서 발견된다(13:22). 본서 전체의 목적은 낙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고, 그들을 격려하며, 그리스도와 믿음으로써 성공적으로 살았던 자들의 무수한 본에 의한 접근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본서 전체의 중심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영원성을 배치한다. 히브리서의 모든 견해 중에서 가장 고도로 발전된 것이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견해이다. 히브리서의 그리스도론은 풍부하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직무와 역할로 설명된다. 히브리서는 결코 신약의 다른 책들과 다른 역사관을 주장하지 않는다.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281~296)
2. 히브리서 나무 보기
본서는 모든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더 뛰어나다’란 사실을 점층법을 이용해 증명해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설명해 나가고 있다. 인격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 모세,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시고, 하신 일을 통해 볼 때는 더 나은 제사장직, 언약, 성소, 제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긍정적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떠나갈 때의 일어날 위험에 대해 5번에 걸쳐 경고하고 있다(2:1~4, 3:7~4:13, 5:11~6:20, 10:19~39, 12:25~29). 그리스도의 인성의 우월성(1:1~4:13)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우월성(4:14~10:18)을 구약의 인용을 통해 증명한 다음에,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우월성을 설명하는데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있다(10:19~13:25).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68~874) 이종윤은 내용 분해 하기를(P.271), 서론: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인 그리스도(1:1~3), 그리스도 - 천사보다 크시다(1:4~2:18), 그리스도 - 모세와 여호수아 보다 크시다(3:1~4:13), 그리스도 - 제사장 아론 보다 크시다(4:14~7:28), 그리스도 - 계약보다 크시다(8;1~10:18),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자(10:19~12:29), 결론(13:1~25)으로 구분한다.
3. 히브리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
8 |
파하고 세운 새 언약의 중보자 |
2 |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마라 |
9 |
지구상의 성소에서 드리는 예배 |
3 |
모세보다 크신 그리스도 |
10 |
씻겨 정결케 하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 |
4 |
너희는 안식에 들어간다. |
11 |
일일이 셀 수 없는 믿음의 선진들 |
5 |
오직 대제사장은 부르심을 입어야 한다. |
12 |
싫어해두 아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 |
6 |
유치한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
13 |
하세!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행하세! |
7 |
취하고 복을 빈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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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고 보 서 』
1. 야고보서 숲 보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죽은 것이요,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믿음은 열매가 있어야 한다.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말로만 하는 믿음은 충분하지 못하다. 정신적인 믿음 역시 불충분하다.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유대인 성도들에게 주는 본 서신서를 통해 야고보는 참된 믿음이란 ‘행함이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참된 믿음과 일상생활에서 겪는 실제적인 경험을 연결시키고 있다. 참된 믿음이란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며, 어떤 편견도 품지 않으며, 혀를 제어하며, 지혜롭게 처신하며, 악을 대적할 힘이 생기게 하며, 오실 주님을 인내하며 기다리도록 해준다.
야고보는 히브리 이름인 야곱의 헬라식 표기이다. 야고보서에서 강조되는 간략하고도 제한된 교리 때문에 본서는 널리 유포되지 않았고, 교회에 본서 전체가 알려졌을 즈음에는 야고보(1:1)의 신분에 대한 의혹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친 남동생에 의해 씌여졌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정경의 한 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야고보서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1:1)’ 쓰여 졌고, 1장19절과 2장 1,7절 같은 구절을 볼 때, 이상의 인사말은 팔레스타인 밖에서 살던 유대인 성도들에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본서 전체를 통해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의 특성에 관한 주제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본서의 목적은 교리적, 변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참된 믿음은 행동에나 성품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믿음은 죽어있다는 증거다. 핵심구절은 1:19~22(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마라), 2:14~17(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이다. 핵심 장은 1장이다. 시련과 시험이 그리스도인의 생화 가운데 어려운 부분이다. 시련은 기쁘게 여기고,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님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산상수훈의 간접적인 언급이 약15회 정도 있다(약1:2-마5:10~12, 약1:4-마5:48, 약2:13-마6:14~15, 약4:11-마7:1~2, 약5:2-마6:19 등). 마틴 루터는 ‘지푸라기 같은 서신서’라고 불렀다. 그러나 야고보와 바울은 서로 상충되지 않고 오히려 보완하고 있다. 바울과 달리 야고보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야고보서는 교회의 성도들이 거의 유대인 일색이었던 바울의 1차전도 여행 이전이나 직후에 아마 쓰여 졌을 것이다. 구약의 잠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과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말씀이 야고보서 3장 15~17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76~884)
2. 야고보서 나무 보기
야고보서는 실제적인 지침서이다. 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이라고 불린다. 지혜문학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인 교훈을 간결한 문체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공평, 사회 부정에 대항해 야고보가 강력하게 설교하고 있으므로, 일부에서는 야고보를 ‘신약의 아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책은 여러 주제가 나와 있기 때문에 본문을 일목요연하게 나누는데 어려움이 있다. 믿음의 시험(1:1~18), 믿음의 특성(1:19~5:6), 믿음의 승리(5:7~20)로 나눌 수가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84~887).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은 내용을 분해하기를(p.301), 문안인사, 시험, 가난과 부, 시련과 유혹, 말씀을 받아들임, 참된 신앙, 사회적 차별과 ‘최고한 법’, 믿음과 행함, 혀, 두 가지 지혜, 세상과 하나님, 판단하는 것, 죄가 되는 자기 과신, 무법한 부자에 대한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인내, 맹세, 기도, 죄를 지은 형제를 개심케 하는 것으로 분해하고 있다.
3. 야고보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야고보가 인사함 |
2 |
이웃을 외모로 취하지 마라 |
3 |
삼가야 할 말 |
4 |
사랑하는 하나님께 순복하라 |
5 |
옳은 자를 정죄하는 불의한 부자 |
『 베드로 전서 』
1. 베드로전서 숲 보기
핍박은 성도의 삶을 성장하게 하든지 아니면 불평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선택에 달려있다. 핍박을 당하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베드로는 저들의 “뿌리”를 상기시키고 있다. 산 소망으로 새로 태어난 그들은 이제 그들을 부르신 거룩한 자를 닮아 가면서 성품과 행위에 있어서 날로 훌륭해져갈 것이다. 이러한 성품을 통해 얻는 열매는 순종을 통해 드러나는 행동들이다. 즉 율법에 따르는 시민들, 충실한 고용인들, 복종하는 아내들, 사랑하는 남편들이 바로 그것이다. 크리스천들은 결코 우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4:12)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기뻐해야 한다.
이 서신은 ‘흩어진 나그네들’ 또는 직역하면 ‘이산 순례자’(1:1)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본 서신서는 소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여 졌고,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에(1:1, 본도, 갑바도기아, 비두니아)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던 지역에 복음이 들어간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31)베드로는 이러한 지역에 일어나고 있는 핍박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한 답으로 본서를 기록했다(1:6, 3:13~17, 4:12~19, 5:9~10). 베드로는 초대교회와 사마리아 사람들과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행2~10장). 이 서신은 바벨론(5:13)에서 기록되었으나 어딘지는 의견이 분분하다(상징적-로마, 문자적-메소포타미아). 한편 전승은 시종일관 베드로가 로마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전하고 있다. 로마를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전서의 중심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바른 태도다. 그들이 따르던 주님 역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기 때문에(2:21, 3:18, 4:1,12~14), 그들 역시 이같은 시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었다. 그 대신 이러한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감사해야 했다. 그들만 유독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며(5:9),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벌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에서 더 성장하도록 만드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들이 비통해 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원했다. 또 다른 주제는 5장12절에(간단히 서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 은혜임을 증거 하노니) 있다. 본서에서 베드로는 자주 성도들의 위치와 장래의 소망에 대해 말하면서, 성도들은 이 땅에서 잠시 사는 사람들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성도들의 진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받는 영원한 영광에 있다. 그들의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1:1~2:10)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 중에도 그분께 복종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3:13~5:14).
핵심 구절은 1:10~12(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4:12~13(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이다. 핵심 장은 4장이다. 성도가 가지는 믿음으로 인해 당하는 핍박이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신약 성경 말씀 중 핵심적인 말씀이 본서 4장에 기록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산 소망’이요 ‘기업’(1:3~4)의 근원이 되신다. 베드로전서는 ‘신약의 욥기’같은 성격이 짙은데, 이는 부당한 고난과 하나님의 주권에 흔들리지 않고 복종하는 것을 본서가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정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처럼, 본서는 베드로가 구약과 그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약 신학에 매우 귀중한 기여를 하고 있다(1:2~12,18~20, 2:21~25, 3:18~22, 4:12~19).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90~897)
2. 베드로전서 나무 보기
베드로전서는 본서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소망의 실체를 강조함으로써 그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굳건히 서 있으면 이러한 고통 이면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되고 ‘불시험’(4:12)도 견딜 수 있다. 본서는 논리적으로 성도의 구원(1:1~2:12), 성도의 복종(2:13~3:12), 성도의 고난(3:13~5:14)에 대해 전개해 나가고 있다. 세 번에 걸쳐 베드로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한다면 이는 의로움 때문이요 결코 악을 행한 결과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3:17, 2:20, 4:15~16). 이 장의 마지막 부분(3:18~22)은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으로 여섯 가지의 해석이 제시된 바 있다.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그의 주제(‘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제시하면서 인사와 축도로 본서를 끝맺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897~901)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의 내용분해를 보면(p.308), 고난 가운데 위로와 확신(1:1~25), 실제적 거룩함의 단련된 응답(2:1~3:25), 고난의 영적 의미(4:1~19), 교회 생활의 지도적 원리로서의 신적인 사랑(5:1~11), 마지막 인사와 축도(5:12~14)로 나누고 있다.
3. 베드로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사도 베드로가 인사함 |
2 |
이유식이 아닌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3 |
세워 주는 부부의 도리 |
4 |
살려주시는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라. |
5 |
다가서게 하는 장로의 도리 |
『 베드로 후서 』
1. 베드로후서 숲 보기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은 베드로전서와 같지만(3:1) 주제와 목적은 다르다. 불신자들로부터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핍박은 견디기가 너무 힘들지만(베드로전서),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의 변절은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베드로후서). ‘교회 안에서의 독소’가 미치는 악영향을 저지하기 위해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믿음의 영원한 진리를 상기시키면서 더 성숙한 성도로 계속 성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이 다가올 것이란 사실을 경멸하는 자들은 드러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다가는 결국 멸망이 이를 것이다. 성도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은 분명하다. “잊지 말라, 힘쓰라, 삼가라”(3:8,14,17). 베드로전서는 외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반면, 베드로후서는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쁜 교리를 퍼뜨리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베드로는 비록 하나님께서 더디 하실지라도 결국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생각에서 성도들은 경건하고 흠 없이 믿음에 굳세게 서서 살아가야 한다.
신약 성경 중에서 아마 베드로후서만큼 진위성에 대한 문제가 있는 성경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적증거와 내적증거를 통해 베드로가 저자라는 전통적인 견해는 다른 어떤 견해들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안으로부터 생겨났기에 더 음흉한 이단의 가르침을 염려하면서 본서를 기록했다. 이러한 거짓 선생들은 칭의(justification)의 교리를 변질시켜 부도덕하고 반항적인 생활 방식을 가르치고 있었다. 본서는 베드로의 죽음(1:14) 직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아마 로마에서 기록되었던 것 같다.
베드로후서 전체에 흐르는 중심주제는 지식과 거짓에 대항하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과의 비교다. 본 서신서는 거짓 선생들의 위험성과 유혹적인 행위를 밝혀 성도들이 경계심을 갖도록 하여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리지’(3:17) 않도록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3:18)고 독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왜냐하면 성숙한 성도로 성장하는 것이 영적으로 거짓 흉내 내는 것을 가장 잘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서의 또 다른 목적은 성도의 생활 속에서 기초가 되는 요소들을 ‘일깨워’(1:12~13, 3:1~2)주기 위함이다. 이는 능력을 가지고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는 것도 포함한다.32)
핵심구절은 1:20~21(오직 성령의 감동하심), 3:9~11(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이다. 핵심 장은 1장이다. 영감에 관한 문제에 있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성경에서 가장 잘 내린 곳이 바로 베드로후서 1장19~21절이다. 하늘과 땅, 온 우주가 풀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베드로의 시나리오는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놀라운 본문 중에 하나다(3:5~11).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04~910)
2. 베드로후서 나무 보기
베드로의 두 번째 서신인 본서는 ‘멸망케 할 이단’(2:1)의 세력인 거짓 선생들에 의해 야기된 내부의 반대 세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베드로전서가 생명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설명하고 있다면, 베드로후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 속에서 성장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잘못된 것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은 진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는 성도의 성품을 양성함(1장), 거짓 선생들에 대한 정죄(2장),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확신(3장)으로 나눌 수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았으며 본서신서를 유산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목격한 사람으로서(1:16~18 변화산), 베드로는 권세 있는 예언의 말씀의 확실함을 증거하고 있다. 주님의 강림의 날에 대해, 베드로는 자신이 독자들이 거룩하며,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하기를 힘쓰도록 간구하고 있다(3:14~18).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10~914).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은 내용을 분해하기를(p.317), 은혜 가운데 전진하라고 권면 받는 베드로의 독자들(1:1~21), 거짓 교사들의 위험에 대한 베드로의 경고(2:1~2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3:1~18a), 축도(3:18b)로 나눈다.
3. 베드로후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차로 종과 사도인 베드로가 인사함 |
2 |
이단인 거짓 교사를 경계하라 |
3 |
말세에 기롱자들이 주의 강림을 부인할 것이다. |
『 요 한 일 서 』
1. 요한일서 숲 보기
요한의 편지는 다섯 가지의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 사귐이 있기 위하여(1:3), 기쁨이 충만하도록(1:4), 거룩함을 보존하고(2:1), 이단을 방지하기 위하여(2:26), 소망을 확신시키기 위함(5:13)이다. 하나님의 교제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매일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실체다. 요한은 자신의 영적 자녀들이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교제 측정기’로서 세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1)내가 알고 있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전부 회개했는가?(1:9) (2)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순종하면서 살고 있는가?(2:4~5) (3)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2:9~10)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시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빛, 사랑, 생명이신 사실로 인해 즐거운 교제를 누리고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교제를 갖기 위해서 어두움이 아니라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빛 가운데로 걸어 갈 때에, 우리의 죄를 정기적으로 고백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계속 정결케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변호사로서 우리를 대변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증거는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다른 형제들에 대한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는데 있다. 이같은 생활을 방해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거짓 선생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한다. 사실, 요한은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랑은 실천적이어야 한다. 사랑은 단순히 말 이상이며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한다. 다른 말로 옮기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에서 사랑의 본을 보이셨고, 우리의 사랑이 이같은 사랑을 닮아 가면, 우리는 자연히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런 차원의 생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영적 생명이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때 시작된다. 영적으로 태어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과 영생으로 가득 채워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빛, 사랑,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 14절을 볼 때 요한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같이 지냈으며,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9절에서 요한을 가리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의 한 사람이라고 불렀다.33)비록 요한일서에는 수신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요한 사도가 자신이 돌보고 있던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본서를 보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지역에 사는 성도들은 기독교 진리에 잘 서 있었다. 요한은 이들을 초신자가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2:7,18~27, 3:11)에 기초한 형제들로 인정하면서 본서를 기록했다. 요한 사도는 개인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대신, ‘사랑하는 또는 나의 자녀들’이라고 독자들을 부르면서 이들과 요한이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일서는 아마 요한복음이 기록된 후에 에베소에서 쓰여진 것 같다. 그러나 기록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노령의 요한 사도는 세상적인 것의 유혹과 거짓 선생들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던 자신의 영적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 편지를 썼다.
요한일서의 주제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요한은 자신의 독자들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를 원했다(2:28, 5:13).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형제들에게 대해 사랑과 의를 실천할 때 드러나야 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이같은 사귐을 격려하고 사도의 가르침에 굳건히 서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다. 요한일서는 성육신이 사실임과 실천이 없는 신앙고백의 허구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영지주의자들의 유해한 가르침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졌다.
핵심 구절은 1:3~4(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11~13(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이다. 핵심 장은 1장이다. 요한복음 15장과 요한일서 1장은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사귐에 관한 신약의 두 중심 구절이다. 요한복음의 본문은 사귐의 긍정적인 면,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요한일서의 본문은 그와는 반대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사귐이 다시 회복되기 전에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한일서에는 편지글의 일반적인 특징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본서를 설교문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은 수신자와 역사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다(‘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일서가 설교의 색채를 띤 서신서로 간주할 수 있다. 요한일서는 성경전체에서 가장 심오한 개념을 자주 반복하고 있다. 대구법도 많이 나온다. 빛과 어두움, 진리와 거짓, 사랑과 미움, 세상을 사랑함과 아버지를 사랑함,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의와 죄,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생명과 죽음 등이다. 본서에는 구약 인용이 하나도 없으며 단 한번 구약사건만 암시 되어 있다(3:12, 가인). 마지막으로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는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2:28, 5:13, 요20:30~31).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16~923)
2. 요한일서 나무 보기
본서의 구조는 요한 사도가 여러 가지 주제들을 같이 엮어놓았기 때문에 본서의 개요를 명확히 하기에는 다소 곤란하다. 베드로후서나 유다서와 마찬가지로, 요한일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거짓 교리를 논박하는 반면 독자들이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 생활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과의 사귐의 특성과 판단기준을 열거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수하게 쓰여 지긴 했지만,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본서는 사귐의 근거로서 사귐의 기초(1:11~2:27)와 사귐의 태도(2:28~5:21)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귐의 전제조건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죄가 용서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릴 수 있다. 적그리스도들과는 대조적으로 독자들은 진리를 알고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3장6절의 말씀은 1장8절의 말씀과 모순 되지 않는데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주 안에 거하는 한 죄를 짓지 않는다. 믿는 자가 죄를 지을 때는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이 아니라 처음부터 범죄자였던 사단을 반영하는 것이다(3:7~10). 거듭난다는 것은 의로움 가운데 드러나며(2:29~3:10), 의로움은 사랑 가운데 나타난다(3:10~23). 믿는 자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거하신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드러나며, 이같은 사랑은 성육신의 본질을 보여주는 하나님과 사람간의 사귐의 결과로 생기게 된다(4:7~16). 이러한 사실은 또한 앞으로 올 완전한 사귐을 예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이 근원이신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4:17~19).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23~927)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은 내용 분해 하기를(p.323), 서론(1:1~4), 사귐의 조건(1:5~10), 사귐의 행위(2:1~29), 사귐의 특징(3:1~24), 사귐의 주의(4:1~21), 사귐의 이유(5;1~21)로 분해한다.
3. 요한일서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첫 째로 소중한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
2 |
두고두고 영원히 그리스도와 사귀어야 한다. |
3 |
삼위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하고, 마귀의 자녀는 불법한다 |
4 |
사실을 말하는 진리의 영과 거짓을 말하는 미혹의 영 |
5 |
다 이기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 |
『 요 한 이 서 』
1. 요한이서 숲 보기
요한일서는 거짓 선생들을 따라갈 위험에 처한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그의 두 번째 서신서는 비슷한 시험에 빠져 있는 택함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를 위해 기록되었다. 요한은 자신의 요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10절).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사랑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의도적으로 진리를 파괴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감상적으로 포용해서는 안 된다고 요한은 가르치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참 사랑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한은 단호히 경고하면서 편지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므로 직접 방문하여 자세히 다루기를 약속하고 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요한이서의 부제로 적합해 보인다. 본서의 수신자는, 택함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 분명히 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진리 가운데 행하며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을 충실히 지키던 이들이었다. 요한은 이들을 기꺼이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것도 당연시하지 않았다. 서 있다는 것은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요한은 다시 이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서로 사랑하라”. 사도는 이것이 새 계명은 아니지만 바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요한은 이같은 사랑이라도 분별력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사랑이란 우둔하게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이든 누구든’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적인 사랑이란 바로 선택의 문제다. 분별력이 없는 사랑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 주변에 거짓 선생들이 맴돌고 있다. 택함을 입은 부녀는 이같은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없는’ 공허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다. 요한은 그들이 이미 배운 바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어느 누구도 자기 집으로 받아들이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거짓 선생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잘못된 자비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사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과는 어떠한 사귐도 가져서는 안 된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1절)’란 구절에 대한 해석차이로 인해 본서의 수신자를 밝혀내기는 매우 어렵다. 일부 학자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어떤 특정한 여인과 그의 자녀를 지칭한다고 보고 있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어느 지방의 교회를 가리키는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지만,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수신자들은 요한 사도를 매우 잘 알고 있었으며 에베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아시아의 어느 지방에 살았던 것 같다. 만약 상징적인 견해를 따른다면,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13절)’란 어느 자매 교회의 교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요한일서에는 많은 거짓 선생들이 교회에서 떠나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2:19). 이들 중 일부는 순회하면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되어 개인 집에 머물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교회에 침투시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짧은 본서의 중심 주제는 독자들이 ‘처음부터 들은(6절)’ 사도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굳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계속 순종하면서 살아가도록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썼다(실천적 권고, 4~6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거짓 선생들과는 돕지도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다(교리적 권고, 7~11절). 일부에서는 요한이서와 요한 삼서가 요한일서의 표지 서신으로, 교회(요한이서)와, 가이오(요한삼서)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글을 써서 보다 긴 요한일서에 덧붙였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핵심 구절은 9~10절이다. 요한일서와 마찬가지로 본서에서도 그리스도에 관한 잘못된 교훈을 논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7절)’은 결코 상종해서는 안 될 사기꾼임을 요한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그리스도 교훈 안에(9절)’ 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하신 일에 대한 교리는 신학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 권의 요한 서신 모두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요한이서는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과의 관계, 요한삼서는 진리를 선포하는 자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본서는 성경에서 두 번째로 짧은 책이다(요한삼서가 조금 더 짧다). 처음 여섯 절은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진리’란 단어가 5번, ‘사랑’이란 단어가 4번 사용되었다. 이 편지의 나머지는 부정적인 경고를 담고 있는데 이상의 두 단어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만약 ‘택하심을 입은 부녀’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요한이서는 성경 중 유일하게 여자에게 쓰여진 성경책이 될 것이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30~935)
2. 요한이서 나무 보기
사랑이 결여된 진리는 독재적인 엄격함을 만들어내고 진리가 빠진 사랑은 맹목적인 감상주의에 빠지게 된다. 사랑 안에 행하는 것은 결코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여”), 기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 -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구원역사 -를 왜곡하는 거짓 선생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도 안 된다. 요한이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에 거함(1~6절)과 거짓 선생들을 거절함(7~13절)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거함: 인사말(1~3)은 진리 속에 거하는 개념의 중심에 해당된다(3~4절에서 4차례 언급됨).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진리 가운데 행하는 독자들을 칭찬하면서(4절), 이 계명을 가르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상기시키고 있다(5~6절). 하나님의 명령은 5절에 나와 있고, 이에 대한 반응이 6절에 기록되어 있다.
거짓 선생들을 거절함: 성도들의 행실을 기본적으로 점검하는 것에서(형제를 사랑하는 것) 성도의 믿음을 점검하는 것(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주제를 바꾸어,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사기꾼들을 경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35~937)
3. 요한이서 꼭지 보기 - 없음
『 요 한 삼 서 』
1. 요한삼서 숲 보기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과 사귐에 대해 논했고, 요한이서에서는 거짓 선생들과의 사귐을 금했고, 요한삼서에서는 믿는 형제들 간의 사귐을 격려하고 있다. 가이오에 대한 요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요한은 그가 더욱 강건해지도록 기도하고 있으며 진리 가운데 계속 행하며 자기 교회에 방문한 선교사들을 후원하며 친절히 접대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저희를 전송한다.”란 표현은 바로 선교사들의 수고를 돕는다는 의미다. 이같은 도움이란 음식, 돈, 동역자 알선, 여행수단 등을 포함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이런 사람들을 후원함으로써, 가이오는 진리를 위해 일하는 동역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교인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디오드레베의 마음은 가이오의 마음과 정반대였다. 그는 더 이상 사랑 가운데 거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매우 교만했다. 자신의 권세가 요한의 권세로 인해 가려지는 것이 두려워, 디오드레베는 요한이 교회에 보낸 편지를 거부했다. 그는 또한 악한 말로 요한을 대적하고 선교사들을 접대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고 만일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서 내어 쫓기까지 했다. 요한은 이런 부정적인 실례를 사용하여 가이오에게 계속 접대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데메드리오에게 좋은 간증이 있었는데 아마 디오드레베에 의해 내어쫓김을 당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같다. 데메드리오 자신의 선한 행실과 진리에 대한 충성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었다. 요한은 그를 칭찬하면서 가이오에게 좋은 본보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서신서의 중심 주제는 가이오의 진실함과 섬기는 자세 그리고 디오드레베의 과실과 이기주의의 비교다. 요한삼서의 목적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진리를 수호하며 요한이 보낸 전도자들을 접대했던 가이오를 칭찬하기 위하여(1~6절) (2)전도자 형제들을 계속해서 가이오가 후원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6~8절) (3)디오드레베의 교만과 나쁜 행실을 책망하기 위하여(9~11절) (4)데메드리오를 추천하기 위하여(12절) (5)요한이 직접 방문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직접 처리할 것을 가이오에게 통보하기 위하여(10,13~14절).
핵심 구절은 11절이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11절).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는 다르게 요한삼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7절에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구절에서 우리 주의 이름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진리에 대한 개념이 본서 전체에 흐르고 있으며, 다른 요한의 글에서 나타난 것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진리의 성육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40~945)
2. 요한삼서 나무 보기
사도 요한이 보낸 순회 선생들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 두 인물의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요한은 진리 가운데 행하는 가이오를 칭찬해주고(1~8절) 잘못을 범하고 있는 디오드레베를 정죄하기 위해(9~14절) 이 편지를 썼다.
가이오를 칭찬함: ‘장로’는 사도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거룩한 행실을 보여주는 사랑하는 자녀들 중 한 사람에게 글을 쓴다(1~4절). ‘형제’들이 요한에게로 돌아와서 가이오가 저들에게 보여준 신실함, 사랑, 환대에 대해 보고한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선한 행위를 전해 듣고 가이오가 순회 선생들과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아간 선교사들을(5~8절) 계속적으로 후원하도록 격려한다.
디오드레베를 정죄함: 요한이 가이오와는 전혀 반대 행위를 일삼는 한 인물(9~11절)을 묘사하면서 본서는 갑자기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사도적 권세를 과감히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이 보낸 순회 선생들을 접대하기를 거부했다. 디오드레베는 비록 교리적으로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랐지만 그의 악한 행실은 실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반하여, 요한은 다른 전도자, 아마 본 서신서를 가이오에게 전해 준 사람으로 여겨지는 데메드리오를 추천하고 있다(12절). 마지막으로 요한은 요한이서에서처럼 자신이 직접 그곳을 방문할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13~14절).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35~937)
3. 요한삼서 꼭지 보기 - 없음
『 유 다 서 』
1. 유다서 숲 보기
유다는 원래 구원을 주제로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독자들을 억누르는 위협 때문에 복음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에게로 초점을 옮겼다. 이단 교리와 배교의 위험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역사 속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타락한 천사들, 소돔과 고모라, 가인, 발람, 고라 등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믿는 자는 어떻게 해야 이같은 공격에 대항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함’(20절)으로 가능하다.
싸우라! 힘써 싸우라! 분투하라! 배교가 생겨나고, 거짓 선생들이 등장하며, 하나님의 진리가 공격받을 때에는 믿음을 위해 싸워야 할 시간이다. 영적으로 ‘준비된’ 믿는 자들만이 이 명령에 따를 수 있다. 본서 앞부분에서 유다는 믿는 자들의 일반적인 구원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지만, 점차 믿음을 위해 이들이 분투하도록 도전을 주는 방향으로 본서를 기록하고 있다. 그 위험성은 실제적인 것이었다. 이미 거짓 선생들이 교회 안으로 가만히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슨 면허나 되는 것처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유다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과거 믿지 않던 이스라엘을, 불순종하던 천사들을, 사악한 소돔과 고모라를 어떻게 하셨는가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와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성도들은 절대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보기에도 이같은 도전은 엄청나 보이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강하시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1절)로 소개하고 있다. 사도 유다의 형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명한 지도자였으며(행15:13~21) 자신의 이름을 딴 야고보서의 저자다.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님과 같이 한 집에서 자라났지만, 자신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를 정도로 매우 겸손했다. 형 야고보와 같이 유다 역시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요7:1~9, 행1:14).
유다서가 외경의 한 부분을 인용한 것 때문에 성경 안에서의 위치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주후 1~2세기의 외경에서 인용한 것, 즉 9절의 말씀은 분명히 가경(Assumption of Moses)에서 유래되었고, 14~15절은 명백하게 에녹서(The Book of Enock : 1:9 참조)에서 인용된 것이다. 그래서 일부 교회에서는 유다서를 문제 삼았지만 터툴리안이나 오리겐 같은 초기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정경의 일부로 인정받게 되었다. 바울 사도가 헬라 시인 아라투스(행17:28), 메난더(고전15:33), 에피메니데스(딛1:12)를 인용했던 것처럼, 유다 역시 단지 자신의 주장에 실례를 들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던 많은 배교자들에 의해 성도들의 신앙성장은 위협을 받게 되었다. 교만하고 방탕한 자들은 속임수를 가지고 아첨하며(16절) 교인들의 모임에 가만히 들어오기 때문에(12절) 특히 더 위험스런 존재였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만들고(4절) 교회에 당을 만들었다(19절). 이같은 이단들에 대한 유다의 묘사는 베드로후서에서 발견되는 것을 상시시키면서, 두 서신서들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베드로후서 2장1절부터 3장 4절과 유다서 4~18절 사이의 유사점은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각각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서신이 다른 서신을 표절했을 가능성은 없다. 베드로후서를 우선으로 인정하는 두 가지 증거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에 이 견해를 따르도록 하겠다. (1) 두 책을 비교해볼 때, 베드로후서는 거짓 선생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을 예견한 반면(벧후 2:1~2, 3:3), 유다서는 베드로의 말씀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4,11~12,17~18절). (2)유다서가(편집자 주 : 17절) 베드로후서 3장 3절을 인용하고 나서 이를 ‘사도들’의 말이라고 밝히고 있다.
본서는 교회 안의 거짓 선생들의 위협과 이러한 위협에 대해 믿는 성도들의 올바른 처신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1) 믿는 자들을 해치고 타락시키는 경건하지 못한 방탕한 생활 습관을 정죄하기 위하여 (2)독자들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서서 성장하고 진리를 위해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썼다. 핵심 구절은 3절이다. 본서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상에 있어 세 가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1절(유다, 종, 형제; 부르심을 입고, 사랑을 얻고, 지키심을 입고), 2절(긍휼, 평강, 사랑), 5~7절(백성, 천사들, 믿지 아니하는 자들), 11절(가인, 발람, 고라), 22~23절(어떤 의심하는 자들, 어떤 자, 어떤 자) 24~25절(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등이 그 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방탕한 생활로 인해 정죄를 받은 사람들(4절)과는 반대로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지키심’을 받는다(1절). 유다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21절)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주님께서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24절)이심을 가르치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50~956)
2. 유다서 나무 보기
바울 서신과 비바울서신 중 많은 수가 거짓 선생들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거나, 거의 모든 서신서들이 이러한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유다는 ‘가만히 들어온’(4절) 거짓 선생들에 대해 가차 없이 정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신약 성경의 수준을 넘고 있다. 인사말과 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체 내용은 이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긴급한 내용을 가진 본서는 4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유다서의 목적(1~4절), 거짓 선생들의 묘사(5~16절), 거짓 선생들을 대항한 변론(17~23절), 유다의 축도(24~25절) 등이다.
유다는 ‘부르심을 입고, 사랑을 얻고, 지키심을 입은’성도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의 축복이 임하기를 소원하고 있다. 배교자들에 대해서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전한다. 창세기의 하나님의 3가지 심판을 제시하였다. 이단 선생들을 창세기(가인)와 민수기(발람, 고라)에 나오는 영적 반항자들과 비교하고 있다. 애찬의 암초, 물 없는 구름,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 바다의 거친 물결, 유리하는 별들 등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5가지 은유법을 사용해서 이들의 성품을 요약하고 있다. 그러다가 독자들에게 화제를 돌린다. 성숙된 믿음을 가져서 이단의 꾀임에 넘어간 사람들이나 이미 실수로 넘어진 자들을 구할 수 있어야 함을 가르친다. 이단은 미워해야 하지만 이단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측은히 여겨야 할 것이다. 유다는 성경에서 가장 뛰어난 표현의 축도 중의 하나다. 본 축도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56~959)
3. 유다서 꼭지 보기 - 없음
『 요 한 계 시 록 』
1. 요한계시록 숲 보기
창세기가 시작의 책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성취의 책이다. 본서에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마침내 완성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모든 창조물 앞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비록 복음서들과 서신서에 많은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계시록은 예언된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일한 신약 성경이다.34)본서 제목의 뜻은 ‘벗기다’ 또는 ‘폭로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더 좋은 제목은 1절(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하나님의 특성과 계획을 밝혀주고 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기록한 요한계시록은(1:9), 유일하게 이 땅을 심판하고 재창조하며 의로 다스릴 권세를 가진 부활하신 그리스도 중심으로 환상과 상징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요한은 로마제국의 아시아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1:3~4)에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2장과 3장에 나오는 이 일곱 교회들에 대한 교훈은 가장 유명했던 에베소 교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다가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교훈의 말씀으로 마친다. 아마 본서 역시 교회를 언급한 순서대로 유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각 교회에 주는 말씀은 각각 독특한 반면, 모든 교회에 전체적으로 연관된 말씀이기도 하다(“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29). 요한계시록은 기독교에 로마의 박해가 공공연해질 즈음에 기록되었다(1:9, 2:10,13).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목적은 본서 전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많은 비유와 상징들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성경에서 가장 해석하기가 어려운 책인데, 여기에 대해 4가지 견해가 있다. 상징적 또는 관념주의적인 견해, 프레테리스트(과거) 견해, 역사주의 견해, 미래주의가 있다. 일반적으로 앞의 첫 세 가지의 견해들은 후천년설 또는 무천년설이라고 불리며, 미래주의는 전천년설로 불린다. 후천년설은 복음 전파로 인해 예수님의 재림 직후 평화의 전성기가 지구에 도래한다고 믿는 반면, 무천년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현재에 벌써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천년’이며 지상왕국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천년설은, 여섯 번 언급된 ‘일천년 동안’(20:2~7) 이란 말은 바로 재림과 새 우주를 창조하시는 때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실 지상 천국의 시간을 가리키는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위의 네 가지 설을 주창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성도들을 대항하던 모든 세력들에 대해 최후 승리를 독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본서가 기록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35)독자들은 이미 핍박이 심한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었고 이보다 훨씬 더 심한 핍박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의인과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서 인내하도록 격려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특히 후기에 기록된 감동적인 말씀(22:6~11)을 볼 때 특히 더 분명하다. 본서는 타성에 젖어 지내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과의 타협을 중단하고, 그들에게 도전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미래주의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다음 세대의 모든 성도들의 영적 생활과 관련이 있을 말세의 사건들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하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핵심 구절은 1:19(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9:11~15(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철장으로 다스리며.......)이다. 핵심 장은 19~22장이다. 종말과 모든 영원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한 용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순종하면 약속된 축복을 받을 수 있다(1:3).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보라, 빈실로 내가 속히 오리라!’란 말씀으로 모든 마음과 생각을 무장시켜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그것은 특히 세상을 심판하실 모든 권세를 받으신 놀라우신 부활의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며(1:1), 충성된 증인,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나신 자, 땅의 임금들의 머리(1:5), 처음과 나중(1:17), 산 자(1:18), 하나님의 아들(2:18), 거룩하고 진실한 자(3:7), 아멘, 충성되고 참된 증인, 창조의 근본이신 이(3:14),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5:5), 어린 양(5:6), 충신과 진실(19:11), 하나님의 말씀(19:13),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19:16), 알파와 오메가(22:13), 광명한 새벽별(22:16),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22:21). 요한계시록은 주님으로부터 나왔으며 그 분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다.
본서는 그분의 영광, 지혜, 능력(1장)으로 시작하여, 그분을 전 교회(2~3장) 위에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분은 죽임을 당하시고 심판의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이시다(5장). 주님께서는 자기의 의로우신 진노를 전 세계에 내리시며(6~18장), 적을 심판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실 주로서, 능력 가운데 다시 오신다(19~20장). 그리고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 앞에서 천국을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이다(21~22장). 성경은 주님의 위대하신 약속의 말씀, 즉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22:7,12),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로 끝을 맺는다.
요한계시록은 계시, 예언, 서신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책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이사야 24~27장, 에스겔, 다니엘, 요엘, 스가랴, 그리고 신구약 중간시대의 예언서들인 에녹서, 바룩서, 에즈라서(2에스드라스 3~14) 등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다분히 종말론적이다. 이러한 묵시문학은 상징적인 문학, 환상, 재앙의 심판, 종말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36)요한계시록의 주제와 교훈은 본서 자체로 볼 때 계시에 관한 것이다(1:3, 22:7,18~19). 요한계시록은 서신서로서, 인사말(1:4~6), 일곱 편의 편지들(2~3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도의 구조로 되어 있다. 계시록은 ‘벗기다’ 또는 ‘폭로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본서에 사용된 많은 상징들로 인해 본서의 내용은 가려지고 닫혀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본서를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왜냐하면 해석하기가 힘들어 본서를 공부하다가는 곁길로 빠지기가 쉽기 때문이다.37)이와 정반대로 지나친 확신을 가지고 하면 상징적으로 쓰여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단정 짓는 입장이 있다. 이같은 입장은 불건전한 추측이나 ‘싸구려 신문 같은 해석’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가능한 한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 두 극단의 중간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한계시록에는 수백 가지의 상징물과 행동들이 나오는데, 이들 대부분은 그 문맥 안에서나(예를 들어 1:20), 나머지 성경(예를 들어 다니엘서)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구약의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것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직접적인 인용은 없지만 학자들은 구약 성경을 암시하는 문장들을 약 250~550번 정도 요한계시록에서 발견한 바 있다.38)그 예로, 출애굽기 7장14절~12장36절에 나타나는 10가지 재앙과 요한계시록 8~16장에 나오는 심판이 매우 흡사한 것을 들 수 있다. 본서에 나타난 이상들이 항상 역사적인 순서로 되어 있지 않고 더러 전후로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요한계시록은 하늘과 땅 사이의 극적인 상호 작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의 주권자로서 보좌(4장)에 앉아 계신다. 이 땅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곳으로 영적으로 커다란 충돌의 중심지이며, 이는 세계적인 관점으로 다루어져 있다.
사탄은 짐승에게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13:7)를 주었지만, 그 능력과 시간의 한계가 있으며(12:12), 영원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20:10). 본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책으로 메시야의 재림이 그 절정을 이루며 그후엔 백보좌 심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자기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실 것이다. 본서에 나타난 심판들 사이에 찬송과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에 대한 선포와 찬양이 산재되어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요한계시록은 창조와 구속을 이루신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4:2~5:14, 7:9~17, 15:2~8, 19:1~7).
요한계시록은 성경책의 맨 나중에 위치해 있는 것이 맞는 것은 본서가 성경의 주제들을 함께 묶어 두기 때문이다. 특히 성경의 첫 3장과 마지막 3장을 대조해 볼 때 우리는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20~22장은 타락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창세기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성경은 창조, 구속, 새창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야기한 것으로 신인의 성육신을 중심점으로 삼고 있다.
Α ♱ ῼ
창조 구속 새창조
창세기 1~3장 |
요한계시록 20~22장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21:1) |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1:5) |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1:25) |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해와 달,1:16) |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21:23) |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
다시 사망이 없고(21:4) |
사탄이 인간을 속이는 자로 등장함(3:1) |
사탄이 영원히 사라짐(20:10) |
가증한 것이 들어온 에덴동산(3:6~7) |
가증한 것이 그리로 들어오지 못함(21:17) |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중단됨(3:8~10) |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다시 시작됨(21:3) |
최초로 승리한 뱀(3:13) |
어린 양의 최후의 승리(20:10, 22:3) |
내가 네게 고통을 더하리니(3:16) |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21:4)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3:17) |
다시 저주가 없으며(22:3) |
첫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지배권이 깨어짐(3:19) |
새 사람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인간의 지배권이 복귀됨(22:5) |
첫 낙원이 닫힘(3:23) |
새 낙원이 열림(21:25) |
아담으로부터 생명나무로 갈 수 있는 길이 박탈당함(3:24) |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있음(22:14) |
하나님 앞에서 쫓겨남(3:24) |
그의 얼굴을 볼 것이요(22:4) |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64~975)
2. 요한계시록 나무 보기
요한계시록은 한 예언자에 의해 묵시 문학의 형태로 기록되었고, 예언서로 언급되어 있다(1:3, 22:7,10,18~19). 본서에서 비밀을 벗기는 3 가지 중요한 전환점이 1장 19절에 나타나 있다. ‘네가 본 것’(1장),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22장)이다.
‘네가 본 것’(1장) : 요한계시록에는 먼저 머리말(1:1~3)이 나오고 다음으로 인사말(1:4~8)이 나온다.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천사가 요한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본서는 성경 중 읽는 자들에게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유일한 책이지만(1:3), 이 책에 더하거나 제하는 자에게 저주가 또한 약속되어 있다(22:18~19). 인사말과 마지막 축도는 본서가 원래 일곱 아시아 교회들에 보내는 서신서로 쓰여 졌음을 보여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깊은 신학적 진리(1:4~8)가 먼저 설명되어 있고 그 다음으로 놀라운 신의 현현(顯現, theophany)이 1장 9~20절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권세 아래 굴복시킬 전지전능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본서의 중심인물이다.
‘이제 있는 일’(2~3장) :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메시지(2~3장)는 요한이 그리스도를 환상 가운데 본 것과 연관되어 있는데 메시지에는 명령, 칭찬, 책망, 교정, 도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일곱 교회의 필요에 따라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일부 주석가들은 이 메시지들 속에 1세기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학자들은 이것을 기독교 교회들이 역사적으로 볼 때 일반적인 변동의 일부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차 될 일’(4~22장) : 장면이 천국으로 바뀌어 요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그 보좌에 앉으신 이’)와 아들(사자-어린양)이 자신들의 지위와 또 하신 일들(창조와 구속, 4~5장)로 인하여 24장로들과 네 생물과 천사들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속자로서, 이 땅을 심판하기에 합당하시며 심판의 일곱 인을 떼실 것이다.
6~16장에 나오는 일곱 심판의 세 가지 사이클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예언의 말씀이 삽입되어 있고,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 사이에 긴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각각 심판 중에서 일곱째 심판은 서로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세 종류의 심판은 동시에 일어나거나 겹치는 부분이 약간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를 기점으로 모두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세 가지 종류의 심판들이 계속해서 연달아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는데 이 해석은 일곱째 인이 일곱 나팔이며 일곱째 나팔을 일곱 대접으로 보고 있다.
일곱 인(6:1~8:5)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따라 일어난다. 여기에는 전쟁과 핍박과 연관된 기근, 죽음이 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삽입된 예언의 말씀(7장)은 각 지파마다 12,000명이 뽑힌 ‘이스라엘 자손’ 144,000명을 보호할 인을 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 땅의 모든 곳에서 나와 큰 무리를 이룬 것을 앞서서 목격하고 있다. 사용된 상징을 토대로 판단해 볼 때, 일곱 나팔들은(8:2~11:19) 사탄과 악마들의 활동과 주로 연관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팔 심판의 대부분의 큰 재앙은 ‘화(禍 )’라고 이름하고 있다.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삽입된 예언은(10:1~11:14) 대환난 시기의 상황을 더 자세하게 보여주며 4종류의 일곱 가지 심판(일곱 우뢰)이 언급되어 있는데 만일 이들을 인봉하지 않았더라면 더 커졌을 것이다. 대환란의 후반 3년 반(42개월 또는 1,260일) 동안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두 증인들이 예언할 것이다. 이들이 증거를 마칠 때에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부활하고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이들의 원수들을 용서한다.
12~14장은 대환란의 때에 대해 더 많은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 사이에 삽입된 기타 여러 가지 많은 예언들을 담고 있다. 12장에 나타난 여자는 이스라엘이 분명한데 그 여자의 아이는 그리스도이시며, 용은 사탄이다. 사탄이 하늘에서 내어쫓김을 당한 후 여인을 죽이려고 찾지만 실패할 것이다. 첫 짐승에게는 정치, 경제, 종교적 권세가 주어졌는데, 첫 짐승은 자신의 능력과 두 번째 짐승이 일으킨 거짓 기적들로 인해 땅의 권세자로 경배를 받게 된다. 14장에는 대환란 마지막 때의 144,000명을 포함하여 짐승을 따랐던 무리들의 종말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일련의 환상이 포함되어 있다.
16장의 일곱 대접 심판에 앞서 15장에는 하나님의 능력, 거룩하심과 영광을 보여주는 천국에 관한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최종 심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직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노부터 일어난다.
17~18장은 재건된 로마제국의 종교-정치 체제의 최후 몰락을 예견하고 있다. 바벨론은 이러한 체제와 도시,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키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된 용어다. 일부 주석가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17장은 바벨론의 거짓된 종교적 모습에 초점을 두는 반면 18장은 정치적, 상업적인 바벨론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가 되었고, 천국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충만하게 된다. 승리와 영광스런 모습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의와 함께 자기의 이름을 위해 핍박을 당했던 모든 자들을 증거하신다. 메시야적 혼인잔치가 곧 시작되며 놀라우신 만왕의 왕이 엄청난 심판(19장)을 통해 자신의 원수들을 모두 멸망시키기 위해 나타나신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불못에 던져지고, 따르던 무리들은 죽임을 당하고, 사탄은 천 년 동안 결박된다. 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부활한 성도와 함께 이 땅을 다스리게 되지만 천 년이 다 끝나갈 즈음에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사탄의 도움으로 주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사탄은 영원토록 불못으로 던져지며 하늘과 땅은 사라지게 되고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자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백보좌 심판이 있게 된다(20장).
새 우주가 창조되는 이때에는 죄, 죽음, 고통,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 예루살렘(21:9~22:5)은 거대한 입방체(구약 성막안의 지성소와 성전 역시 완전한 입방체였다)의 모습으로 길이와 넓이, 높이가 모두 1500마일(2,400㎞)이다. 화려한 색깔의 보석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것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거하며 ‘그의 얼굴을 볼’것이란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후기(22:6~21)가 있는데 요한은 독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며(22:7,12,20) ‘값없이 생명수 받기를’원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알파와 오메가이며 광명한 새벽별이신 주님께로 초대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신시키고 있다.
< 요한계시록 개요 >
제1부 ‘네가 본 것’ (1:1~20)
Ⅰ.서론 (1:1~8)
Ⅱ.그리스도의 계시 (1:9~20)
제2부 ‘이제 있는 일’ (2:1~3:22)
Ⅰ.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말씀 (2:1~7)
Ⅱ.서머나 교회에 주시는 말씀 (2:8~11)
Ⅲ.버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 (2:12~17)
Ⅳ.두아디라 교회에 주시는 말씀 (2:18~29)
Ⅴ.사데 교회에 주시는 말씀 (3:1~6)
Ⅵ.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 (3:7~13)
Ⅶ.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3:14~22)
제3부 ‘장차 될 일’ (4:1~22:21)
Ⅰ.심판자 (4:1~5:14)
1.하나님의 보좌 (4:1~11)
2.봉인된 책 (5:1~14)
Ⅱ.대환란에 관한 예언의 말씀 (6:1~19:6)
1.일곱 인의 심판 (6:1~8:5)
- 첫째 인~여섯째 인, 유대인 144,000명, 이방인의 큰 무리, 일곱째 인.
2.일곱 나팔의 심판 (8:6~11:19)
-첫째 나팔~여섯째 나팔, 작은 책, 두 증인, 일곱째 나팔.
3.예언 설명 (12:1~14:20)
-여자, 하늘에서의 전쟁, 땅에서의 전쟁,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 144,000명, 세 천사의 발표, 추수 심판.
4.일곱 대접 심판 (15:1~19:6)
- 대접 심판의 준비, 첫째 대접~일곱째 대접, 큰 음녀의 멸망, 큰 성 바벨론의 멸망,
Ⅲ.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 (19:7~21)
1.어린양의 혼인잔치 (19:7~10)
2.그리스도의 재림 (19:11~21)
Ⅳ.천년왕국에 관한 예언의 말씀 (20:1~15)
1.사탄이 천년 동안 결박당함 (20:1~3)
2.성도들이 천년 동안 다스림 (20:4~6)
3.사탄이 놓임을 받고 반역을 주도함 (20:7~9)
4.사탄이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음 (20:10)
5.크고 흰 보좌 심판 (20:11~15)
Ⅴ.영원한 세계에 관한 예언의 말씀 (21:1~22:5)
1.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됨 (21:1)
2.새 예루살렘이 하늘로서 내려옴 (21:2~8)
3.새 예루살렘 설명 (21:9~22:5)
Ⅵ.결론 (22;6~21)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p.976~983)
3. 요한계시록 첫 꼭지 보기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장별 |
장절별 첫 주제 |
1 |
일깨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12 |
여자와 용이 시비함 |
2 |
이를 물고 인내하고 수고한 에베소교회 |
13 |
머리 하나가 상한 짐승이 바다에서 나옴 |
3 |
살았으나 죽은 사데 교회 |
14 |
어린양과 십사만 사천 명 |
4 |
네 생물이 있는 하나님의 보좌 |
15 |
노래하시오 마지막 일곱 재앙이 보이니 |
5 |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책 있음 |
16 |
하나님이 육신에 진노한 일곱 대접 재앙 |
6 |
여섯째 인까지 떼심 |
17 |
일곱 천사중 하나가 음녀의 모습을 보임 |
7 |
인친 자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 |
18 |
세상 일류국인 바벨론이 파멸됨 |
8 |
나팔을 주는 일곱째 인 |
19 |
한 구(입)로 할렐루야 찬송함 |
9 |
구멍에서 연기 나오는 다섯 나팔 |
20 |
이 영원히 용서 못할 사단을 천년 동안 결박하라 |
10 |
열린 하늘에서 온 천사와 작은 책 |
21 |
이일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임 |
11 |
하나하나 이기는 권세를 가진 두 증인 |
22 |
두루두루 생명수의 강이 흐름 |
4. 요한계시록 보충자료
예기(豫期) 의 원리 :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걸쳐서 거듭 예기적 빈사법(豫期的 賓辭法, prolepsis, 결과를 나타내는 형용사를 예기하여 쓰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책의 서두에서 후에 다시 나타날 일반적으로 더 발전되어 나타날 어구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충성된 증인”(1:5)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어구는 3:14, 17:6, 20:4절에 다시 나타난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1:5) -> 17:14, 19:16. 그리스도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심(1:6) -> 20:6. 알파와 오메가(1:8) -> 21:6, 22:13. 전능한 자(1:8) -> 19:6,15, 21:22.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서론) -> 22:7,10,18. 생명나무(2:7) -> 22:2,14. 둘째 사망 구원(2:11) -> 20:6,14. 철장 다스림 -> 19:15. 계명성(2:28) -> 22:16 등등이다.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343)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1) : 아람어 ‘마라나다’는(고전16:22) μαρὰν ἀθά(마란아다) 인지 μαρανα θα(마란나 다) 인지 분명치 않다. 전자가 직설법으로 ‘우리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또는 ‘여기 계십니다.’의 뜻을 가진 신앙 고백적 표현이라면, 후자는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기원을 뜻하는 기도이다, 신약 성경은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원하는 기도로 끝을 맺는다. 아멘. (이종윤, p.274)
1)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2) 마태복음은 교육용이라고 할 정도로 설교와 교훈이 매우 많다. 그것은 마태복음이 제자 삼는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약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함을 이루려 함이라”는 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언급도 많다. 기도하실 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비롯해서 마지막 28장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삼위하나님의 숨겨진 사역(주셨으니-아버지, 예수그리스도, 너희와 항상 함께-주님의 영이신 성령)과 같이 다양하게 증거 되고 있다.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우리의 나라인 천국에 대한 주제가 마태복음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3)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혈통적인 유대인만이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과는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예수님께서 나라의 본 자손은 울고 이방인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육적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와 같은 영적인 유대인에게 보내는 복음서인 것이다. 그 이유로는 마태복음의 처음인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 이미 이방여인인 라합과 룻이 나오고 있으며, 2장에서도 이방인인 동방박사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마지막 28장에서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우주적 구원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 하나님의 관심이요 섭리인 것이다.
4) D. L 무디, 김영국, “무디의 성경 연구”, 서울: 백합출판사, 1975년.
5) 위클리프주석편찬실, “위클리프 성서개론”, 서울: 소망사, 1992년.
6) 이종윤, “신구약 개설” 전주: 전주대학교 출판부, 1986년.
7)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준비(1:1~4:11), 예수님의 세례 받으신 이후의 사역(4:12~9:38), 이 기간에는 금생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복을 비롯한 산상설교와 고치시는 사역이 집중 되어 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사역(4:23사역 선언적 의미, 9:35선언적 사역의 입증)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함께 집중적으로 사역하신 기간(10:1~16:28), 이 기간에는 선상설교로 천국비유를 가르치신 특징이 있다. 예수님이 변형되신 이후의 사역(17:1~25:46), 이 기간은 내생에 대한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화와 재림에 대한 예고를 하고 깨어 예비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심판과 천국상급에 대한 것도 있다. 수난 받으신 예수님(26:1~27:66), 부활하신 예수님(28:1~20)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8) D. L 무디, 김영국, “무디의 성경 연구”, 서울: 백합출판사, 1975년.
9)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621.
10) 상게서, p.623. “그리스도의 70가지 비유들 중 단지 18가지만이 마가복음에 나온다. 그중 몇 개는 단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마가는 복음서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리스도의 35가지 기적들 중 거의 반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11)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633~637
12) 이종윤, “신구약 개설” 전주: 전주대학교 출판부, 1986년. p.173
13)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675~682
14) 이종윤, “신구약 개설” 전주: 전주대학교 출판부, 1986년. p.234
15)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695~701.
16)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705~718
17)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720~730
18) 위클리프주석편찬실, “위클리프 성서개론”, 서울: 소망사, 1992. p.232~239
19) 이종윤, “신구약 개설” 전주: 전주대학교 출판부, 1986년. p.256
20)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732~737
21) 상게서, p.738~742
22) 위클리프주석편찬실, “위클리프 성서개론”, 서울: 소망사, 1992. p.239~244
23) D. L 무디, 김영국, “무디의 성경 연구”, 서울: 백합출판사, 1975년. p.194
24)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744~753
25) 브루스 윌킨슨․ 케네스 보아, 정인홍․곽철호, “한눈에 보는 성경”, 서울: 디모데, 2001년. p.756~763
26) 위클리프주석편찬실, “위클리프 성서개론”, 서울: 소망사, 1992. p.250
27)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275. 그의 말은, 그가 쓴 마지막 말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엄숙함과 중요성을 더한다. 그는 “떠날 기약이 가까웠음”을 알고 썼다.
28)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280.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빌레몬 개인에게만 아니라-모든 교회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빌레몬만 골로새 교인들 가운데 노예 소유주인 것은 아니었다(골4:1). 도망한 뒤 그리스도인이 되고 바울의 종이 되었던 노예를 돌려보냄으로써, 이 사도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원칙에 관해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원칙의 실현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自意)로 되게 하려’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몬14). 그리스도 안에는 이 세상의 모든 관계를 변화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구조가 존재한다. 즉 형제의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의 평가기준이 되는 중심적이다. 바울은 노예제도를 논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독교 신앙은 노예제도의 풍습이, 바울이 이 곳에서 말하는 원칙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29) 이종윤, P.264.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를 제외한 7서신을 공동서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개가 바울의 편지같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사람, 또는 모든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뜻에서 일반서신, 또는 교회서신이라고 부른다.
30) 이종윤, P.271. 이 편지의 수신자는 제2대 크리스챤들(2:3)이며, 성숙한 크리스챤들(5:12)이고, 신앙 연륜을 가진 성도들(10:32)로서 이들 가운데는 순교자들도 있었다(13:7). 그러나 이들은 아직 피 흘리는 저항을 해 보지는 못했다(12:4). 다만 재산을 약탈당한 것(10:32~34)으로 보아 큰 핍박이 있었던 것으로 예견된다.
31)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307. 아시아의 여러 성에서 온 사람들이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었다(행2:9).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틀림없이 영적 이주민의 신분으로 각자의 고향 땅으로 돌아갔다. 바울이 나중에 복음전도의 수고를 했으나,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을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제한된 정도까지만 그렇게 했을 뿐이다(행16:6~8). 아마 이것은 이들 지역에서 복음에 의해 이미 이루어진 훌륭한 시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32)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316~317. 베드로의 마음을 억눌렀던 특별히 무거운 짐은, 교회 내의 불법과, 도덕률 폐기론적 태도의 점증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본서에 언급되는 거짓 교사들이 초기 영지주의(Gnostic) 이단의 대표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위협을 크게 염려하며 이러한 점에 대해 약간 강조하기는 하지만, 이 사도는 그의 독자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위험에 동요되지 않게 하는 영적 강건함과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세 장 가운데 중간 장에 거짓 교사들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삽입시키면서, 영적 승리를 위한 격려로 그의 편지를 시작하고 끝맺는다.
33)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319.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의 만년에도 이단을 허용하지 않았던 준엄한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의 이러한 두 가지 면, 즉 엄격함과 사랑이 요한일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열정적인” 사람이란 말이 그를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인데, 그의 행동에 있어서, 형제들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이단을 정죄하는데 있어서 요한은 과연 열정적인 사도였다.
34)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330~333. 계시록의 중요성 : (1)요한계시록이 쓰여 지지 않았거나, 정경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신약 성경은 불완전했을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은 다소간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계시록은 정경 목차의 최후를 장식하는 책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의 필수적인 결론이기도 하다. (2)성경의 모든 책들 가운데서 요한계시록이 때의 마지막에 관한 ‘유일한 책’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3)요한계시록은 탁월한 한 세계의 책이다. (4)요한계시록은 고통 받는 시대를 위한 책이다. (5)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한 성경의 유일한 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6)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거대한 주제들 중 일부가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완전히 드러나고, 성취되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모든 적들의 최후의 운명을 보게 된다.
35) 상게서, p.345~351. 요한계시록은 주요 네 가지 해석 학파가 견해를 달리하는 성경의 유일한 책이다. 어떤 해석학파를 따를 것이냐에 따라 요한계시록 해석에 엄청난 차이가 온다. (1)영적 해석법 : 단지 기본적인 영적진리를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다. 어거스틴 이래로 그 명맥유지하고 있다. (2)과거적 해석법 : 당대에 로마제국하의 지상에서 일어났던 사건만을 묘사하고 있다. 알카사르에 의해 발전된 학설이다. (3)역사적 해석법 : 미래적 해석법을 제외하고 이 해석법이 지지를 받고 있다. 1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 역사 가운데서의 교회의 복지와 관련된 특정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엘리오트가 주장했다. (4)미래적 해석법 :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환상이 이 시대의 종말이 가까울 때나 종말에 성취될 것으로 믿는다. 타드 등이 있다. 물론, 지나친 극도의 미래적 해석법은 마땅히 경계하고 배척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래적 해석법을 취할 때에야 비로소 요한계시록은 대부분 올바르게 해석될 수가 있는 것이다.
36) 위클리프 주석 편찬실, p.337~339. 요한계시록은 환상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다. 특별히 숫자에 대해 더욱 그렇다. 색채도 요한계시록에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37) 상게서, p.330. 칼빈은 계시록에 대한 주석을 쓰는 것을 거부했고, 그의 방대한 저술 가운데서 계시록에 대한 언급은 극히 적었다. 루터는 수 년 간 계시록을 가르치는 것을 기피하였다.
38) 상게서, p.340. 헬라어 성경의 부록(pp.184~188)을 보면 요한계시록의 총 404절 가운데 265절이 구약을 약 550번 정도 언급하고 있다고 추산할 수가 있다. 이것을 구분해 보면, 창세기가 13번, 출애굽기가 27번, 이사야가 79번, 다니엘이 53번 등등으로 언급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마24,25,막13,눅21장)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결국, 요한계시록은 예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감의 인도아래서, 구약 예언에 정통한 유대인이 저술한 책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은 신구약 예언의 정점이다.”라고 말한 브릭스 교수의 말에 많은 이들이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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