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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극 드라마
<구암 허준>를 보고서 (4)
허준 드라마는 얼마만큼이 허구인가?
허준이는 경기도 양천에서 태어나서 양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무사였다. 아버지는 한때 평안도 평천에서 부사(府使)로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허준이는 평안도 용천에서 태어나서 용천에서 중국땅을 넘나들면서 밀매를 했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경상도 산음으로 피신해서 유의태를 스승으로 모시고 의술을 배웠다고 했는데 이것도 꾸민 이야기인 것 같다. 유의태는 실은, 허준보다 100년 후의 사람이었다. 드라마에서는, 허준이가 의관시험에 응시해서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했는데, 실은 1569년, 24세 때, 부제학 유희춘의 부인을 치료했었기에, 유희춘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가 궁중 의원이 되었다. 과거시험을 보아서 합격되어 의원이 된 것은 아닌 것이었다. 허준이는, 구안와사에 걸린 공비 김씨의 남동생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결코 초기 위암에 걸린 적은 없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왕이 평양으로 몽진(피난)갔었을 때 허준이도 따라갔었다. 선조왕의 어의(御醫)가 되었고 그리고 정1품까지 승급되었다. 광해군 2년에 <동의보감>을 편찬해냈다.
전염병
영화에서는, 마을에 돌림병(역병, 전염병)이 생기니까, 환자들을 격리시키고 죽은 사람들의 집을 불태워버렸고, 그리고 포도청에서는 졸병을 보내서, 졸병들이 마을 입구에 서서 사람들의 출입을 엄하게 금했다. 보기에 전염병을 잘도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이지 현실은 아닌 것이다.
내가 경허(1849-1912)스님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까 경허스님은 하룻밤을 묵기 위해서 어느 마을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문을 꽉 잠그고 스님이 문을 두드려도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 스님은 이상하게 생각하고서, 마을길을 걸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짊어지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어보고 싶어도 아무 누구도 스님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를 않았다. 말을 좀 물어보려고 하면 스님을 피했다. 늦은 오후이기에 하룻밤을 묵고 가기 위해서, 경허스님은 어느 집 방문을 되게 두드렸다. 방안에서 어느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 동네에는 지금 콜레라 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을 해주면서 스님에게 방을 내주기를 거절했다. 콜레라에 걸려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경허스님은 갑작스럽게 자기가 콜레라에 걸려 죽지나 않을까 하고 겁이 덜컥 났다. 스님은 얼른 마을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때 마을 입구에서 출입을 금지하는 졸병이나 포졸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물론 콜레라를 치료하는 의사도 없었다. 이게 옛날 우리 한국에서의 전염병 관리였었던 것이다.
경허스님은 이때 자기가 죽음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자신을 보고서, 도를 닦기 위해 참선을 하기 시작했다. 참선 한지 일 년도 못되어서 도를 깨친 분이시었다. 경허스님 때문에 한국불교가 중흥(中興)되었다.
돌림병은 먼저 박테리아 혹은 바이러스에 의해 생겼다. 돌림병에 걸리면, 몸에서 높은 열이 생기고, 설사나 구토가 생겨, 물이 몸에서 쉽게 빠져나가 탈수증에 빠졌다. 그래서 쉽게 죽었다. 간단한 예로, 1900년 초에, 러시아 백인들이 알라스카에 들어왔었을 때 홍역이며 폐결핵을 가지고 왔었다. 홍역과 폐결핵으로 알라스카 인디언들의 4분의 3이 절멸되고 말았다. 1918년도에 스페인 인플루엔자(Influenza)가 퍼졌을 때 4천만 명이나 되는 유럽 사람들이 죽었다. 전염병이 퍼지면, 죽을 사람들은 다 죽고 그리고 전염병들은 주로 여름에 생기니까, 이삼 개 월이면 저절로 가라앉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는, 효력이 좋은 항생제가 있고, 그리고 위생관리가 잘 발달되어 있기에 전염병이 퍼졌다고 해도 금방 수습해버리고 만다. 전염병이 퍼졌다 하면, 우선 물부터 깨끗하게 관리하고, 병자들을 격리시키고, 링게르 같은 좋은 액체(Ringer's solution, 링거액)를 주사로 주어서 탈수증을 치료하고, 항생제를 투약해서 치료해버린다. 링게르 액은 1910년도에 처음 나왔고 그리고 항생제는 1943년도에 처음 만들어졌었다. 항생제가 만들어진 후부터 의학과 의료기술이 엄청나게 발달되었다. 1900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사람의 평균수명은 49세였었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80세다. 80세로 늘어난 이유는 의학 발달과 위생시설향상 때문인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황해도에 역병(돌림병)이 돌았을 때, 허준이가 병자들에게 매실주를 먹여서 치유했다고 했다. 선조왕은, 이번 돌림병 때문에 5천여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죽을 사람들은 다 죽고 그리고 돌림병이 저절로 가라앉을 때가 되었을 때 매실주를 주었기에 돌림병이 통제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매실주가 결코 돌림병을 치유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서 매실주가 돌림병을 낫게 했다고, 그것도 허준이의 처방 덕분이라고 한 것 같다.
나의 행복이 남에게 불행을 준다!
공빈마마는 광해군을 낳았고 그리고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젓이 있었다. 이때 인빈마마는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해 질투심에 괴로워했었다.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인빈마마가 아이 신성군을 낳았고 그리고 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공빈 마마는 왕의 총애까지 잃었는데 거기에다가 겹쳐서 진심통(Myocardial infarction: 심근경색증)까지 걸렸다. 드라마에서는, 진심통의 치료는, “등에 있는 심술혈에 장침으로 시침을 하고 그리고 전중혈에 뜸을 떠주는 것”이었다. 공빈마마가 처음 진심통에 걸렸을 때 허준이가 침을 놓아서 낫게 해주었다. 공빈마마는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리기 위해서 산속에 있는 절로 잠깐 휴양하러 갔다. 이때 공빈 마마는 허준이에게, “내가 회임(임신)했었을 때 내 행복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소. 권세에 대한 집착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욕심을 버리면 한 없이 편하다는 것을 이제 죽음을 목적에 두고서 알게 되었소.” 그리고 얼마 후에 공빈마마는 진심통으로 죽었다.
옛날 의학이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초라하기 한이 없었다. 병자를 보면, 맥을 짚어서 진단을 내렸고, 침을 준다거나 뜸을 주어서 혹은 한약을 데려서 먹게 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진심통은 현대의학명으로는 심근경색증(心筋梗塞症: Myocardial infarction)이다. 심장근육에 영양가를 대주는 핏줄, 관상동맥 (Coronary arteries) 중에 하나 혹은 여럿의 핏줄이 혈전(血栓: Thrombosis)이나 색전(塞栓)에 막혀서 생긴 질환인 것이다. 심근경색증은 가슴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30%의 경우 통증이 없는 경우도 있다. 나부터도 경미한 심근경색증에 한번 걸린 적이 있었다. 친구하고 술을 먹다가, 갑작스럽게 복통이 생기고 그리고 대변이 나오기에 화장실로 갔었다. 화장실에 앉아있으니까, 경미하게 가슴이 아프고 그리고 갑작스럽게 온 몸이 식은땀으로 적셨다. 다행히도 의식을 잃지 않았고 그리고 쓰러지지도 않았다. 10분 쯤 지났을까 식은땀도 멈추었고 그리고 의식도 맑아졌다. 몇 개월 후에 심전도를 찍어보니까, 심근경색증에 걸렸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의 사람들은 자기가 심근경색증에 걸린 줄로 모르고 있다가 심전도를 찍어본 후에 걸린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커다란 관상동맥이나 여러 관상동맥이 막힌 경우에는 환자들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50%는 죽어버린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을 하면 얼른 막혔던 관상동맥의 혈전이나 색전을 분해시켜버리는 아스피린 같은 약물을 투약해준다. 통증이 심한 경우에는 나이트로 그리세린, 혹은 몰핀 같은 진정제를 복용케 한다. 심한 경우에는 심장수술을 해서 막혔던 관상동맥에 스텐트(Stent)를 집어넣어 피를 통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공빈마마가 처음에 걸린 진심통은 아마 가벼운 진심통이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처럼 치료를 받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 경우인 것이다. 공빈마마는 결국에는 심한 심근경색증으로 죽었는 것 같다. 관상동맥을 막는 혈전이나 색전은 침이나 한약으로는 치료가 안 되는 것이다.
의사-환자 비밀
의사들은 환자의 병명이나 병 증세에 대해 비밀을 지킨다. 남들에게 환자의 병에 대해 누설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누설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헌데 영화에서는 환자의 비밀이 전연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빈마마가 진심통에 걸렸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서 숙덕댄다. 공빈 마마의 오라버니 김씨가 구안와사나 초기 위암에 걸렸을 때 이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리고 5일 내로 치유가 안 되면 어쩌나 하고 허준이를 좋아하는 의원들하고 의녀들은 걱정하고 있었고, 반면에 허준이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은 5일내로 병이 완쾌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임오근이나 홍춘희가 아파서 들어누어 있었을 때 허준이가 가서 진맥을 해보고서 상상병에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려주었다. 이 말들이 다 퍼지고 말았다. 둘이는 창피를 샀었다. 소문이 퍼진 덕택으로 둘이는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이니까 영화 자체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병자들의 진단이 밖으로 세어나갔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사들은 병자를 진찰한 후 결코 환자의 허락이 없이는, 다른 사람에게 환자의 진단명이나 병증세를 남들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주기 바란다.
건강한 사람은 보약이 필요 없다!
허준이가 내의원이 되었을 때 상관이 허준이에게 보약을 몇 첩 주면서 어느 양반한테 가서 진맥을 짚어보고 그리고 보약을 주고 오라고 했다. 허준이는 하라는 대로 양반집에 갔다. 양반을 대면하고 진맥을 했다. 양반에게 건강하다고 말을 해주고는, 갖고 갔던 보약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상관은 양반집에 보약을 주는 이유는 사바사바로 준 것이었는데, 허준이가 보약을 양반에게 주지 않고 그냥 가지고 와버리니까, 상관은 허준이를 나무라면서 다시 갖다 주라고 했다. 하지만 허준이는, 양반이 건강한데 왜 비싼 보약을 드려야 하냐며 거절했다. 허준이는 융통성은 없지만 정직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허준이가 귀양 갔었을 때다. 유배지에서 한 양반이 허준이를 불렀다. 허준이가 진맥을 해보았다. 그 양반은 건강했다. 하지만, 양반은 허준이게게 보약을 지어달라고 졸라댔다. 허준이는 “당신은 건강하시니까 보약이 필요없습니다”하고는 보약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 양반은 화를 냈다.
<동의보감>에 허준이는, “보약보다는 음식이 더 낫고, 음식보다는 운동이 더 낫다”고 말했다. 사실상, 건강한 사람은 이미 건강하니까, 건강한사람은 실은 보약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음식이 보약보다 낫다고 했다. 음식만 잘 먹으면 되는 것이다. 음식보다 운동이 더 낫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가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자연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걸어 다니는 것이 실은 제일 좋은 운동인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보약 먹을 생각은 아예 하지를 말고, 그 대신, 잘 먹고 매일 운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진이의 사랑
예진이는 예쁘고 단정한 여인이었다. 즐겁다고 깔깔 요란하게 웃는 그런 수다스러운 여인은 결코 아니었다. 분하고 억울하다고 해서 소리 내어 엉엉 우는 그런 여인도 아니었다. 즐거우면 살짝 얼굴에 미소만 띄울 뿐,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얼굴에 슬픈 표정만을 나타낼 뿐, 속내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 말이 적고 조용하고, 예의바른 여인이었다. 예진이는 의술에는 이미 조예가 깊었다. 여자이기에 의원이 될 수 없다는 것뿐이었지, 이미 의원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 허준이가 유의원 집에 처음 들어왔었을 때, 허준이가 약재를 대린 물을 동네 우물에서 펴왔다. 유의원은 물맛을 보더니만, 이런 썩은 물을 어디에서 길러왔느냐고 엄하게 따져 물었다. 허준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이때 유의원은 허준이를, “네 놈이 지금 실수라고 했느냐. 살려고 의원을 찾아온 사람들을 네 놈이 길러온 썩은 물로 죽이고, 그리고 실수라고 둘러대겠느냐?”라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허준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유의원은, “닥쳐라, 이놈. 실수를 했다느니, 미처 몰랐다느니, 사람을 죽이거든 변명만 늘어놓을 놈이로구나. 칼을 든 무사보다, 독을 품은 짐승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의원의 손이란 말이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의원의 손이야!” 라고 허준이를 심하게 질타했다. 사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받을 수없는 것이 의원의 손인 것이다.
허준이는 유의원 집에서 이 전에 물을 길러온 일꾼들에게 도와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허준이를 미워했었기에 도와주지 않았다. 이때 예진이가 도와주었다. 예진이는, “물에는 사람에게 이로운 물이 있고 그리고 사람에게 해로운 물이 있습니다. 물의 질을 제대로 알고 써야 약효를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해주었다. 예진이는, “의원이 가려서 써야 하는 물의 종류는 정화수, 한천수 등 33가지가 있습니다. 물의 첫째는 정화수지요. 맛이 달고 독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한천수입니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溫)한 것입니다. 셋째는 ---”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물은 동네 우물에서 길러 와서는 안 되고, 이른 아침 일찍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떠와야한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골짜기 샘물이 있는 곳도 가르쳐주었다. 이때부터 예진이는 허준이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말이 없는 수줍은 예진이는 허준이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허준이의 공부를 도와주었다. 약재에 관한 책자를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허준이의 아내가 나타났었을 때, 예진이는 허준이를 도와서 허준이로 하여금 그의 아내를 만나게 해주었다. 예진이의 얼굴에는 허준이를 사모하는 기력이 역력히 내비쳤다.
유의원의 아들 도지는 예진이를 무척 사랑했었다. 예진이한테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하지만, 도지 엄마, 오씨는 예진이를 미워했다. 예진이는 양반집 딸이 아니었다. 오씨는 도지를 양반집 규수하고 결혼시키고 싶었다. 오씨의 반대 때문에 예진이는 대풍창(나병, 문등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삼족사로 떠나갔다. 도지는 의관시험에 합격해서 궁중 의원이 되었다. 나중에는 임금을 치료하는 어의(御醫)가 되었다. 도지 엄마 오씨는 남편 유의원을 지방에 놔두고, 도지 따라 서울로 이사 왔다. 도지는 예진이를 잊지 못해 하인을 시켜서 예진이를 찾도록 했다. 하지만, 오씨의 방해로 도지는 예진이하고 접촉할 수가 없었다. 오씨의 성화로 도지는 양반집 딸하고 결혼했다.
한편 도지의 아버지 유의원은 예진이에게, 서울로 올라가, 아들 도지하고 결혼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진이는 서울로 올라왔다. 도지는 이미 결혼해버렸기에 예진이는 도지하고의 결혼을 잊어버려야만 했었다. 하지만, 오씨는 예진이가 서울에 와 있다는 말을 듣고서, 하인한테 예진이를 없애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인은 건달패를 고용했다. 건달패한테 끌려가는 도중, 길가에서 포도청대장 이정면의 도움을 받고 예진이는 살아났다. 이정면이는 예진이를 첫눈에 좋아했다. 포도청대장은 예진이를 자기 집에서 머물게 했다. 다음 날 예진이를 궁궐 내 의녀(醫女; 간호사)로 만들어주었다. 포도청 대장 이정면은 나이 30세, 2년 전에 그의 아내가 죽었고 그리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었다. 포도청 대장은 예진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했다. 예진이하고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하지만, 이정면은 간신들의 음모 때문에 오히려 반역자로 몰렸다. 사형을 당하는 날, 예진이는, 그녀를 지극히 사랑했었던 이정면에게 사약(死藥)을 직접 주어야만 했었다. 포도청대장은 그 사약을 마시고 그리고 죽었다.
나중에, 허준이가 또한 궁정 의원이 되었다. 예진이는 궁정에서 도지도 가끔 만났지만, 주로 예진이는 허준이하고 같이 일을 했었다. 허준이가 병자를 돌볼 때마다 예진이는 허준이를 도와주면서 일을 했었다. 예진이는 허준이를 존경했었다. 허준이하고 같이 있었을 때 예진이는 즐거워했었다. 허준이는 승승장구해서 어의(御醫: 임금을 치료하는 의원)가 되었다. 허준이를 미워하는 간신들이 헛소문을 냈다. 허준이하고 예진이가 몰래 정을 통하고 있다고. 결국, 예진이는 궁궐을 떠나 삼족사로 떠나가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흘렀다. 선조 왕이 늙어서 죽었다. 왕이 늙어서 병이 들어 죽었는데도 왕의 죽음은 어의의 책임이라고 해서, 어의가 왕의 생명을 구해내지 못했으니까, 어의는 마땅히 참형(칼로 목이 베이는 처벌)을 당해야 한다고 간신들은 우겨댔다. 하지만 광해군은 허준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유배를 보냈다. 광해군 2년에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광해군은 허준이의 유배를 풀어주었다. 허준이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왕의 윤허(허락)를 받고서 지방으로 낙향했다. 거기서 얼마 있다가 죽었다.
허준이의 무덤 앞에 예진이는 나이어린 소녀를 데리고 나타났다. 소녀아이가 예진이에게 누구의 무덤이냐고 물었다.
예진: 내가 평생을 가슴에 두고 존경한 분이시란다
소녀아이: 무엇하셨습니까?
예진: 의원이셨다. 그분은, 그분은 땅속을 흐르는 물 같은 분이셨지. 태양 아래서 이름을 빛내며 살기는 쉬운 일이란다. 어려운 것은 아무도 모르게 땅속을 흐르며 목마른 사람의 가슴을 적셔주는 것이란다. 그분은 그런 분이셨다. 진심으로 진정으로 병자를 사랑한 심의(心醫)였단 다.
소녀아이: 그분은 내의녀님 (예진)을 사랑하셨습니까?
예진: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내가 죽어 땅 속에 묻히고 흐르는 물이 되어 만난다면 그땐, 그땐 꼭 여쭈어봐야겠구나.
결혼이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혹은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혼도 운명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게 태어나듯, 결혼도 운명적으로 이미 짝이 지어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운명적으로 지어진 짝이 없다면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결혼은 성립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진이는 결혼하지 못한, 일평생을 처녀로 살아야만 할 그런 운명을 자기고 이 세상에 태어났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진이를 그토록 사랑했었던 도지하고 포도청대장 이정면도 예진이하고 결혼하고 싶어 했었지만 예진이하고 결혼을 하지 못했다. 예진이가 그토록 사랑했었던 허준이하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었다. 예진이에게 있어서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예진이에게 있어서 사랑은 또한 비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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