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고리로
마음이 잘 닦여지고¹
집착을 놓아버리고
집착의 여읨을 즐기는²
번뇌를 부순 빛나는 님들,³
그들이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⁴
yesaṃ sambodhiaṅgesu
sammā cittaṃ subhāvitaṃ
ādānaṭinissagge
anupādāya ye ratā
khīṇāsavā jutimanto
te loke parinbbutā
¹ yesaṃ sambodhiaṅgesu sammā cittaṃ subhāvitaṃ ‘잘 닦여진 마음’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 속에서 여법하게 닦여진 마음을 말한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원리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七覺支: satta bojjhaṅga]를 말한다. ① 새김의 깨달음 고리[念覺支: satisambojjhaṅga] ② 탐구의 깨달음 고리[擇法覺支: dhammavicayasambojjhaṅga] ③ 정진의 깨달음 고리[精進覺支: viriyasambojjaṅga] ④ 희열의 깨달음 고리[喜覺支: pītisambojjaṅga] ⑤ 안온의 깨달음 고리[輕安覺支: passaddhisambojjaṅga] ⑥ 집중의 깨달음 고리[定覺支: samādhisambojjaṅga] ⑦ 평정의 깨달음 고리[捨覺支: upekhāsambojjaṅga].(DhpA. Ⅱ. 162)
² ādānaṭinissagge anupādāya ye ratā 집착의 여읨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집착에는 네 가지 집착[四取: cattarimāni upādānāni]이 있다. 여기에는 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집착(kāmupādāna: 欲取) ② 견해에 대한 집착(diṭṭhupādāna: 見取) ③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sīlabbatupādāna: 戒禁取) ④ 실체의 이론에 대한 집착(attavādupādāna: 我語取)이 있다.(DhpA. Ⅱ. 163) 이 가운데 세 번째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이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Sst. 25에서는 의례와 의식이라고 번역하고, Nst. 45에서는 ‘외면적인 계율과 서원’이라고 번역했고, God. 26에서는 ‘도덕적 행위의 계행과 맹세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번역했다. 한역에서는 계금(戒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종종 ‘계율과 금계’라고 잘못 해석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그것은 잘못 이해된 형식적인 도덕적인 규범과 관계된 것이지, 올바른 계행과 관계된 것은 아니다. Srp. Ⅱ. 15에 따르면,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은 미신과 터부에의 집착을 뜻하며, 예를 들어 인도에서 사람들이 개나 소 따위가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다고 믿어서 개나 소처럼 똥을 먹고 풀을 먹으면서 천상에 태어나겠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좁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고 좀더 넓은 의미로 본다면, Stn. 782에서는 자신의 교리나 종교적인 수행 때문에 오만해지는 것이나 다른 교리를 비난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과시하려는 일반적 경향으로서 규범과 금기에 관해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남에게 자신의 규범과 금기를 말하고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에 대하여 선한 사람들은 천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실체의 이론에 대한 집착(我語取)은 ‘나’와 ‘나의 것’을 고집하는 견해(有身見:sakkāyadiṭṭhi)에 대한 집착을 뜻한다.
³ khīṇāsavā jutimanto 그들은 거룩한 길에 수반되는 지혜의 빛으로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五蘊: pañcakkhandha], 열두 가지 감역[十二處: dvādasāyatana], 열여덟 가지 인식의 세계[十八界: aṭṭharasadhātu]의 원리들을 밝힌다.(DhpA. Ⅱ. 163)
⁴ te loke parinbbutā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五蘊: pañcakkhandha], 열두 가지 감역[十二處: dvādasāyatana], 열여덟 가지 인식의 세계[十八界: aṭṭharasadhātu]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 그들은 열반에 완전히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즉 ① 번뇌의 소용돌이(kilesavaṭṭa)가 종식되어 거룩한 님의 상태에 도달한 때의 ‘잔여가 있는 열반[有餘依涅槃: saupādisesanibbāna]’과 ② 존재의 소용돌이(khandhavaṭṭa)가 종식되어 최종의식의 소멸(carimacittanirodha)이 이루어진 때의 ‘잔여가 없는 열반[無餘依涅槃: anupādisesanibbāna]’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양상으로 열반에 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연료가 없어 꺼진 불꽃처럼 정의할 수 없는 상태(apaṇṇattikabhāva)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DhpA. Ⅱ. 163) 위의 양자에서 잔여란 갈애와 업에 의해서 생겨난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五蘊: pañcakkhandha]의 복합체를 말한다. 전자는 살아 있는 동안 거룩한 님[阿羅漢]이 획득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소멸을 뜻하고, 후자는 거룩한 님의 죽음과 더불어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의 남김없는 소멸을 뜻한다. 양자는 이미 자아에 취착된 유위법적인 세속적 죽음을 완전히 초월해서 불사[不死: amata]라고 불린다. 거룩한 님은 이미 자아에 취착된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五取蘊]의 짐을 모두 내려 놓은 상태(ohitabhāro)에 있기 때문이다.(Itv. 38-39)
여섯 번째의 품, 현명한 님의 품이 끝났다.
『법구경 Dhammapada 전재성 역주』
첫댓글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의 짐을 내려놓은 자. 감사합니다()()()
오온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려 놓아 적멸, 고요한 상태.... 상상해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