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칭개 국 / 장민정
비가 자주 내려선 지 밭둑에 나가면 파릇파릇 봄나물이 지천입니다.
목도의 친구를 찾아갔다가 경로당 당번이라는 소리를 듣고 들린 경로당에서 점심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팔 구십 이쪽저쪽 할머니들이 여덟 분, 팔팔한 이 여사가 정성껏 점심을 준비해서 대접하는 날이라 했습니다.
메뉴는 동네 아줌마 누군가가 들에서 캐 온 지칭개 한 바구니가 있어 된장국을 끓였다는,
둥근 상에 둘러앉은 할머니들 틈에 끼어 앉아 구수한 된장국 냄새 그 친근함으로 수저를 들었는데 아, 목구멍으로 술술 잘도 넘어갑니다.
지칭개 국, 시래기며 시금치며 냉이 등 여러 가지 채소로 된장국을 끓여 먹어 보았지만 지칭개로 국을 끓인 것은 난생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지칭개는 알지도 못했고 먹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전국으로 옮겨 다니는 직장을 갖은 남편 덕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서울 등, 옮겨 다니며 산 긴 이력이 있어 그 지역만의 먹거리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충청도 지방에서만 먹는 지칭개국을 이곳 괴산에 와서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몇 해 전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먹는 나물 중에 비름나물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몇 년 산 적이 있는데 그곳 슈퍼에서도 비름을 팔고 있었고 주부들은 싸고 맛있다면서 장바구니에 담아가곤 했습니다. 내가 자란 전라도에선 비름나물은 그냥 잡초일 뿐 밥상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친정에 갔을 때, 비름나물을 알리고 싶어 텃밭에 나가 손수 뜯어다가 나물로 무쳐 상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내 딴엔 양념에 참기름까지 듬뿍 쳐서 맛있게 만들었지만, 식구들은 겨우 대접 삼아 한 젓가락 집을 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곡창지대이며 평야 지대라서 비름나물 아니어도 넘쳐나는 것이 각가지 나물이어선지, 전라도 음식에 대한 긍지 때문인지, 하여튼 전라도 사람들은 비름나물을 밥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텃밭에 수없이 돋아나는 풀이 비름인 데 비해 지칭개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내 기억엔 없지만, 관심이 부족해서 그렇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는 지칭개이니 어쩌면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전라도 평야지의 그 밭에도 분명히 비름과 함께 돋아나고 잡초로 뽑혀나갔을 것입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먹어 본 지칭개국은 별미였습니다.
특히 보드랍고 구수한 것이 냉잇국보다 훨씬 맛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국을 나는 왜 여태껏 몰랐으며 타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에 곤드레만드레 있다면 괴산에 지칭 개가 있다고, 노래 부르듯 지칭개국을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괴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봄철 한때만 먹을 수 있는 괴산의 특산물,
식당 메뉴로 개발해도 충분하겠다고 몇몇 식당 주인에게 권하기도 했고 실제로 한 식당에서는 메뉴표에 등장한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괴산 아니면 못 먹는, 이 계절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그 희귀성으로 승부를 봐도 되겠다고 식당 아줌마를 꼬드긴 것인데, 그러면서 산막이 옛길에 놀러 온 관광객들에게도 다슬깃국만 권하지 말고 지칭개국도 맛보고 가라고 하자고 침이 마를 정도로 지칭개국에 열성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몇 년 전,
들판에 나갔다가 지칭개가 눈에 띄어 한 움큼 뜯어와 된장국을 끓인 적이 있습니다. 전에 먹었던 맛있음만의 기억으로 남편에게 한껏 개봉박두 기대하시라 설래발까지 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간을 보다가 깜짝 놀라 자빠질 것 같았습니다.
소태보다 쓰다? 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생각지도 않은 쓰디쓴 맛!
이런 국이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친구가 가르쳐 준 끓이는 법을 깡그리 잊어먹은 채 그냥 된장국 끓이듯 했으니 그럴 수밖에요.
지칭개국은 예비지식 없이 끓여선 절대 안 되는 국이었습니다.
나의 비명 같은 원망에 친구가 다시 알려줍니다.
지칭개는 엉겅퀴과(?)로 쓴맛이 있다는 것,
그래서 국을 끓이려면 먼저 뿌리를 제거하고 빡빡 치대어 푸른색 쓴 물을 빼내야 한다는 것, 그런 후 콩가루에 버물러 된장을 푼 물에 넣어 끓이는데 이때 또 하나의 팁은 완전히 포옥 끓을 때까지 절대로 뚜껑을 열지 말 것,
그래서 명심하고 다시 한번 끓여보았습니다. 하지만, 전에 이 여사가 끓인 그 구수하고 보드랍고 맛있는 국은 어찌 되었는지, 진하진 않지만, 쓴맛이 감돌아 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내 솜씨로는 안 되는가?
두 번의 실패로 더는 지칭개국을 끓이지 않았고 지칭개국이 맛있다고 떠벌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한데 후에야 알았습니다. <고갱이도 빼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