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세계지도가 있었다.
하나는 세계지리에 관한 자료를 과학적으로 수집하여 편집한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중화관에 입각하여 상상적인 세계관을 표현한 중국 중심의
추상적인 세계지도이다. 앞의 것은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帝王國都之圖>이고, 뒤에 해당되는 것은 <천하도>이다.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는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서
지도에 쓰여있는 양촌 권근의 발문에 따르면, 조선조 초기인 태종 2년(1402년)
8월에 제작되었다. 지도의 상단에는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라고 횡서되고,
지도의 하단에는 권근의 발문이 기재되어 있어서, 지도의 제작과정을 밝혀주는
명백한 단서를 가진 지도이며, 권근의 발문 내용을 간추린 것은 다음과 같다.
" 천하는 아주 넓다. 중국으로부터 밖으로 사해에 이르기까지 몇 천만리인지를
알 수가 없다. 이것을 줄여서 지도로 만들면 그 내용이 소략해지나, 중국의 오문(吳門)
이택민(李澤民)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에서 나타난 역대 제왕의 국도(國都)를 참조하여 만들었다.
건문 4년 여름에 좌정승 상락 김공(金士衡)과 우정승 단양 이공(李茂)이 나라를 다스리는
여가에 이들 지도를 참고하여 연구하고,이를 검상 이회(李회 초두머리+會)에게 명하여
자세한 교정을 가해 이들 지도를 합쳐 일도(一圖)를 만들게 하였다.
그 요수의 동쪽과 본국의 강역은 택민의 지도에도 역시 빠져 있고, 소략한 부분이 많으므로
이번에 특히 본국의 지도를 크게 그려넣고 일본지도를 첨부하여 정돈하여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였다. ..........(중략)...........
이미 내가 평일에 방책을 강구하고 회관의 뜻을 다한다. 또한 내가 훗날에 벼슬을 그만두고
좁은 저택에 머물게 되겠지만, 널리 여행다니는 뜻을 이루게 됨을 기쁘게 여긴다. 그러므로
이 지도 밑에 기록하여 말한다. 이 해 가을 8월 양촌 권근(陽村 權近)이 적는다."
권근의 발문대로 이 지도는 중국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와 천태승 청준의 <혼일강리도>를
하나로 합친 후에,우리나라 지도를 크게 그려 넣고 새로 입수된 <일본도>를 첨부하여 제작한
지도이다. 이 <일본도>는 태종 1년(1401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박돈지(朴敦之)가
비주수(肥州守) 원상조(源詳助)에게서 얻어 온 것이다. 이 <일본도>에는 일기도(壹岐島)와
대마도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박돈지가 이를 보충하였다.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의 <조선도(朝鮮圖)> 부분은 태종 2년(1402년) 5월에 이회가
만든 <본국지도>일 것이다. 태종에게 <본국지도>를 진상한 것이 5월이고, 3개월 후인 8월에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들 두 지도는 거의 동시에 준비제작과정을
거쳐 시차를 두고 보완하여 발간하였다고 볼 수 있다. 후에 성종 때 양성지의 상소문에도 이회가
태종 때 <팔도도>를 제작하였다고 하였으며, 앞서의 권근의 발문에도 이회가 이 지도를 만들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태종 2년 8월 간행, 1402년)

여기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라고
이름을 붙인 연유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혼일강리(混一疆理)의 뜻은 이를 처음으로
사용한 천태종의 승려 청준에 의하면 세계일화(世界一花) 즉 세계가 한 마을 - 지구촌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북부 일대까지 지배력을 넓힌 징기스칸
이 세운 몽골대제국의 세계지배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원나라제국은 중국대륙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몽골대제국의 영향하에 있는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북부의 회교권 등의 우수한
문화인 천문학, 지리학, 항해술 등을 받아들여 당시로서는 사실상의 세계대제국의 역활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서 불교의 세계일화사상과 몽골제국의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합치될 수 있었다.
무인들이 역성혁명으로 집권한 조선조 초기에 만든 세계지도의 이름에 "혼일강리"리고
이름붙인 이유를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조선조 중기 이후의 사색당파 싸움으로 인한
쇄국정책을 분단된 오늘날에도 유지할 수 밖에 없고, 명분과 실리도 없는 당파 싸움은 계속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역대제왕국도지도"라고 이름한 연유를 알아야 한다. 역대제왕이란 세계의
각국에서 자신의 나라를 지배한 왕이나 황제들을 의미한다. 국도(國都)란 말은 이들
왕이나 황제들이 도읍한 수도(首都) 즉 정치행정경제의 중심지를 뜻한다.
<혼일강리역대제왕국도지도>에서는 이들 국도(國都)들은 적색으로 표시하고
원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도시들은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부여국(扶餘國)은 대륙부여(동부여, 북부여, 남부여 등)와 반도부여(백제국)
그리고 열도부여( 왜, 대마도, 유구국 등) 등의 분국(分國)로 구성된 강력한 중앙집권의
지배체제를 갖추고 있었던 대제국이였을 것이라고 한일의 소장역사학자들이 최근에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 정사(正使)인 수서, 당서, 송서,
요사, 금사 , 원사 등에 반복적으로 기술되어 있고, 청대에 저술한 <만주원류고> 등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반도부여인 백제국은 중국대륙,왜, 유구국, 베트남 인근,
필리핀 제도 인근까지 21개의 담로를 가진 해상대제국이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조선조 초기의 왕이나 대신들은 개국 후 처음 만든
세계지도의 이름에다 "역대제왕국도지도" 라는 이름을 붙혀, 후대 왕들이나 우리 한민족이
이 세계 각국의 국도(國都)를 백제국의 담로와 같이 하나의 지구촌으로 혼일강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우리들이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천하도(天下圖) -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상상 속의 세계지도 / 조선조 초기 제작

癸巳년 한가위를 앞두고 茶宗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