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 26 - 40 ·끝 回 |
| ▲ 어느 티베트 화가가 구아슈(gouache · 물과 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 물감)로 그린 파드마삼바바. |
40 (끝) ·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 |
죽음은 다른 삶으로 가는 과정 … 나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것
인생이 여정이라면 그 최종 종착지는 죽음이다. 누구도 피할 길이 없다. 어쩌면 ‘어떻게 살 것인가’ 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달린 문제다. 웰다잉(well-dying)은 고금의 세계적인 화두다.
세속화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고 죽느냐의 문제는 종교가 해답을 제시하는 영역에 속했다. 상당수 종교에 따르면 엉망진창으로 삶을 살았어도 막판까지 기회가 있다. ‘패자부활전’이 있다. 죽기 전 1분 전, 10초 전까지도 말이다.
예컨대 가톨릭에서 잘 죽는 법은 신부를 부르는 것이다. 신부를 불러 죄를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신부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면 스스로 진정으로 참회하면 된다.) 가톨릭에서는 지옥에 가야 하는 ‘죽을 죄’는 없다. 반성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다. 죄를 용서받았지만 죽은 다음에 연옥에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죗값을 다 치르고 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14세기에 재발견된 8세기 경전
| | | ▲ 『티베트 사자의 서』의 우리말 판 (왼쪽)과 영문판 표지. | | 티베트 불교에서는 죽는 순간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 죽은 다음에도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새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불(成佛)할 수도 있고, 신적인 존재들이 사는 낙원 같은 곳에 갈 수도 있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죽은 다음에 어리바리 방황하면 축생(畜生)이나 더 곤란한 모습으로 다음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다.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게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이하 『사자』)다. 죽을 무렵, 죽는 순간, 죽은 다음에 스스로 읽고 또 남들이 대신 읽어 주는 경전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다. 생과 사가 다름없다. 하나다. 죽음의 고통이 사라져야 삶의 고통도 사라진다. 『사자』는 생사의 고통을 없애는 유용한 각종 스킬(skill)을 제시한다.
사자의 저자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파드마삼바바 (Padmasambhava · 蓮華生上師)다. 중국에 보리달마(菩提達磨, 생몰년 미상, 470년 무렵 남중국에 와서 선종을 포교)가 있다면, 티베트에는 파드마삼바바가 있다. 파드마삼바바는 8세기 사람이다. 인도 출신의 그는 부탄과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사자』를 비롯한 문서를 티베트 곳곳에 숨겼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자』는 14세기에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상당수 티베트학 학자들은 『사자』가 후대의 위작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한 『사자』의 영문판에 서문을 쓰며 『사자』를 ‘공인’했다.
20세기에는 서양으로 전파됐다. 『사자』의 원제는 『중간 상태에서 청문(聽聞)으로 얻는 해탈 (바르도 퇴돌 · Bardo Thodol · The Great Liberation by Hearing in the Intermediate States)』이다. 『이집트 사자의 서』에 맞춰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제목이 붙었고 이 제목이 굳었다. 『사자』는 정작 티베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서양에서 불교 입문서로 유명해졌다. 1927년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첫 영역본이 나왔다. 나오자마자 서구 사회에서 고전이 됐다. 나중에 꼼꼼한 번역본이 나온 다음에 옥스퍼드대 번역본에 오역 등 문제가 많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옥스퍼드대 번역본은 『사자』를 서양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사자』가 “인간 심리를 다룬 책”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사자』는 특히 미국인들에게 ‘나는 이렇게 쿨(cool)한 사람이야’ 라는 선언적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읽지는 않더라도 책꽂이에 꽂아두면 효과 만점이었다. 한때 대항문화(對抗文化 · counter-culture)를 상징하는 책으로 부상한 것이다. 또 『사자』는 ‘동양의 단테 『신곡』’이라고도 불린다. 『사자』는 임사체험(臨死體驗, Near Death Experience)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내용도 많기 때문에 주목받는다.
『사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앤다.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통해서다. 죽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니다. 죽음은 삶과 또 다른 삶 사이의 중간 과정일 뿐이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다. 죽은 사람은 몸이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위해(危害)를 가할 수 없다.
사후에 몸과 분리된 의식은 기분 좋은 이미지와 무서운 이미지를 연달아 보게 된다. 모두 자신의 의식 작용이 만들어내는 ‘생생한 꿈’이다. 삶이 여정이라면, 삶과 삶 사이의 죽음도 여정이라는 게 『사자』의 메시지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도교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지 못한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에도 사후 여정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에 비슷한 내용
『사자』에 따르면 죽음은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기회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사후에는 해탈이 더 쉽다. 그 어느 곳이건 마음대로 갈 수 있다. 해탈이 최고의 목표지만, 해탈에 실패할 경우에는 환생을 해야 한다. 신성한 존재들이 사는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자』의 세계관은 불법(佛法)이 전해지고 실천되고 있는 곳에서 태어나는 것을 선호한다.
‘흰색 빛’은 신들이 사는 곳의 통로다.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파란 빛’을 따라가야 한다. ‘파란 빛’을 따라가면 모든 중생이 성불하기 전까지는, 성불을 미루겠다는 ‘고집불통의 위대한 인간들’이 가는 우리 세상으로 다시 올 수 있다. 어쩌면 ‘깨달은 인간은 신(神)들보다 위대하다’고 보는 게 불교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신들의 낙원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는 이 세상으로 다시 온다. 성불하기 위해서다.
데드라인(deadline)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예비적 데드라인’ ‘진짜 데드라인’ 과 ‘진짜 진짜 데드라인’ 이 있다. 무한정 기회는 없다. 『사자』에 따르면 49일 동안 다음 생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가 결정된다. 그 기간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대로, 죽은 사람의 친지들은 또 그 나름대로 노력해야 한다.(우리나라 불교의 사십구일재(四十九日齋)도 유래가 같다.) 『사자』에 따르면 어떤 환생이냐는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협업(collaboration)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달렸다. 우선 산 자는 울고불고 소란을 피우거나 지나친 슬픔에 빠지면 안 된다. 모든 종류의 경계인(境界人)은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상황에 빠져 혼란스러운 망자라는 경계인을 더욱 어렵고 힘들게 만들면 안 된다. 산 자들이 할 일은 그저 『사자』를 열심히 독경하는 것이다.
『사자』의 해설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부처도 좋고 공자도 좋고 예수도 좋다. 사후 49일 동안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을 생각하라. 나를 버리고 이타적인 것만을 생각하라. 자비도 좋고 사랑도 좋고 인(仁)도 좋다. 살았을 때 부족했던 것을 의식에 담아라. 인생은 짧다. 49일이라는 기간은 정말 짧다. 이 49일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현생과 차생(次生)의 행복이나 보람, 성공이 결정된다.
『사자』는 사자를 위한 책이기 이전에 산 사람들, 살아 있을 때를 위한 책이다. ‘생자(生者)의 서’다. 유가족에게는 위로를 준다.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겐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준비하게 해 주는 책이다. 공부와 아부(‘윗사람에게 하는 칭찬’)는 평소에 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대비도 평소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 당일치기 시험 준비가 통하듯, 죽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사자』는 알려준다. 하지만 데드라인에 쫓기지 않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 중앙선데이 제400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40 | 2014..0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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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 만차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1863년 귀스타브 도레 작품) |
“죽을 땐 현명한 사람 돼 죽고, 살 때는 미친 듯 살라”
존 F 케네디(1917~63)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일컬어 “환상은 없는 이상주의자 (an idealist without illusions)”라고 했다. 하지만 환상 없이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까. 혹자는 “통일은 현실로 접근해야지 환상이 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환상 없이도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결혼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환상 없이 결혼할 수 없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알아 버린(?)’ 사람들은 결혼할 수 없다. 통일에도 결혼에도 ‘대박’이라는 꼬심의 울림이 있어야 구미가 당기는 법이다.
여자 돈키호테로 불린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는 세상의 모든 환상을 대표한다. ‘그는 돈키호테 기질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어를 비롯해 세계 모든 주요 언어에서 뜻이 통한다. 그만큼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1547~1616)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불행히도 세르반테스는 평생 가난했다. 『돈키호테』가 베스트셀러가 돼 인쇄를 거듭하게 된 다음에도 가난했다.
| | | ▲ 시계 방향으로 『돈키호테』의 한글판(시공사·2004), 영문판(하퍼콜린스·2003), 스페인어 초판(1605). | | ‘부귀영화 누릴래 아니면 불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래’라고 누가 물어보는데 ‘이름을 남기겠다’는 사람들에겐 세르반테스가 아이콘이다.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보다는 훌륭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게 낫다.”
『돈키호테』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소설이다. 세계 최고의 소설이라고도 평가된다. 2002년, 문학청년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시대의 대문호 100명이 투표한 결과 세르반테스가 일등이었다. 세르반테스가 호메로스나 셰익스피어나 괴테나 단테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이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와 데카르트는 근대의 공동 부모다”고 했다. 아무리 양보해도 『돈키호테』는 최소한 스페인 문학의 백미다. 세계 문학사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마담 보바리』는 ‘여자 돈키호테’라고 불린다. 할리우드의 로드무비에도 끝없이 영감을 주는 책이다.
2005년은 『돈키호테』 400주년이었다. 400주년을 맞아 10권으로 된 세르반테스 백과사전도 나왔다. 한데 2015년도 400주년이라고 할 수 있다. 1부가 나온 게 1605년, 2부가 나온 게 1615년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1부로 끝날 수도 있었으나 허락도 없이 속편이 나돌았기 때문에 2부를 썼다.
사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웃음이 필요하다. 사회가 됐든지 뭐가 됐든지 뭔가를 비꼼이 필요하다. 모험을 찾아 떠남도 필요하다. 『돈키호테』는 웃음과 비꼼과 모험을 준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힐링이 되지 않을까.
책을 미치도록 읽으면 실제로 미칠까. 기사도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나가 버린 50세 가까운 돈키호테는, 모험을 찾아 세상을 주유하는 방랑기사(knight errant)가 되기로 작정한다. 집에 보이는 금속을 뜯어 갑옷을 만든다. 기사에게 이상적인 여인이 없으면 안 되는 법. 둘시네아를 마음에 품는다. 이도령에게 방자가 있듯, 기사에게는 종자(從者)가 있어야 하는 법. 농부 출신 산초 판사를 종자로 임명한다. 나름 영악한 산초다. 이상하게도 ‘섬 하나를 주겠다’는 말에 속아 돈키호테를 따라나선다. 비록 소설 속 가상인물이지만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길 운명이었나 보다. 말 이름은 로시난테다.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 산초는 현실주의자를 상징한다. 오래 같이 살면서 닮아 가는 부부처럼, 이 둘은 새로 배우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유하는 게 많아진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온갖 고초 끝에 돈키호테는 제정신이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와 죽는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묘비명은 이것이다. “죽을 땐 현명한 사람 돼 죽고, 살 때는 미친 듯이 살라(Morir cuerdo, y vivir loco).”
자신의 꿈을 세상에 맞추는 게 살기 편하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자신의 꿈에 맞춘다. 산초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40개의 풍차가 그에겐 40명의 사악한 거인으로 보인다. 돈키호테에게 여관은 성(城), 양떼는 곧 전투를 벌이려는 두 진영으로 보인다.
과감할 때는 과감하게, 신중할 때는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떠넘기고 기다릴 때도 필요하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연기시키면 항상 위기가 싹튼다.”
“죽음 빼놓곤 모든 문제에 해결책 있다”
『돈키호테』에 미친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책 중에서도 가장 마법 같은 책이라고 한다. “죽음 빼놓고는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는 세르반테스의 낙천주의에도 흠뻑 빠진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혹자는 『돈키호테』의 인물이나 배경 묘사가 세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산만하다, 문체가 일관성이 없다, 반복이 심하다…. 따분하다는 사람도 있다. 17세기에는 낄낄거리며 읽는 책이었지만 유머 패턴이 달라진 21세기에는 안 통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가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을 보고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오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약제상 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대 유명한 휴머니스트인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1511~1583)에게 교육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르반테스는 노예로 팔려 가고, 사기를 당하고, 감옥에 가고, 결혼은 실패로 끝나고, 교회로부터는 파문당하기도 하는 등 험난한 인생 파고 속에 살았다. 레판토 해전(1571년)에 참전했을 때 총탄을 맞아 왼손을 평생 못 쓰게 됐다. 관직에 나서려고 했으나 종종 좌절했다. 그의 조상이 유대계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있다. 공무원이 된 다음에도 일이 틀어졌다.
“재물과 영광의 길은 문학 아니면 전쟁에 있다”고 말한 세르반테스는 30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 · 극작가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돈키호테』는 역사와 기사도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60이 다 된 나이에 쓴 인생의 마지막 ‘패자부활전’ 승부수였다. 결국 『돈키호테』 이 한 권으로 그는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한 많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 사망 열흘 후에 세상을 떴다.
『돈키호테』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다 (그렇게 주장되는 책이 『돈키호테』말고도 10권은 더 있지만···). 『돈키호테』 속에는 ‘이상과 현실’ ‘겉모습과 속모습’ ‘진리는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 같은 심오한 철학적 문제가 숨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세르반테스의 의도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사실 『돈키호테』는 아주 다양한 독자들의 ‘바이블’이다.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는 돈키호테를 1년에 한 번씩 읽었다. 스페인 전 총리 펠리페 곤살레스는 “매일 읽는다”고 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돈키호테』 원전을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처음에는 단지 소설이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나중에는 『돈키호테』에서 학술적 영감을 얻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역사에서 3대 바보는 예수, 돈키호테 그리고 나다”고 주장했다. 체 게바라(1928~1967)가 남긴 서신을 보면 게바라는 질세라 자신이 이 시대의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다. 한때 멕시코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돈키호테』를 “최고의 정치이론서”라고 평했다.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인용해 유명해진 “배고픈 존재로 남아라. 바보스러운 존재로 남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늘리고 늘리면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전기가 되지 않을까. 669명의 인물, 46만 단어로 된 방대한 소설이다. 마음 잡고 읽으면 48시간 정도 걸리는 분량이다.
- 중앙선데이 제388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9 | 2014..0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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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게오르게 구르지예프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 |
| ▲ 책에 나오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구르지예프는 정교회의 신비주의 전통,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Sufism)과 동양의 종교 철학을 융합한 체계를 선보였다 |
본성 자제하고 다양한 사고한다면 당신은 ‘놀라운 사람’
사람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미국인들을 비롯해 서양 사람들은 이집트를 좋아한다. 표지에 고대 이집트 풍물이 나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평소보다 많이 팔린다. 티베트 매니아도 많다. 1968~69년에 방영된 영국 TV 시리즈 ‘챔피언’에는 네메시스라는 유엔 비밀 조직 요원 3명이 나온다. 그들은 티베트에서 텔레파시와 예지력을 얻어 악과 맞서 싸운다.
달라이 라마의 인기도 서양사람들이 티베트나 동양을 신비스러운 지혜의 원천이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전통적인 서구 문명에 대안을 제시하려는 서양의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4대 분야 혹은 원천은 영성주의 · 신비주의 · 환경주의 · 전체론(holism)이다. 모두 동양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르메니아 출신 영성가 게오르게 이바노비치 구르지예프(George Ivanovitch Gurdjieff, 1866?~1949)는 ‘뉴에이지 운동의 원조’‘20세기의 영적인 스승’이라 불린다. 다른 극단의 평가는 그가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틴(Grigorii Efimovich Rasputin, 1872?~1916)과 미국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을 합쳐놓은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성 종교 교리와 의식에 반기
확실한 것은 구르지예프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신비주의(神秘主義)가 만났다는 것이다. 다른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구르지예프는 기성 종교의 교리나 의식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또 확실한 것은 많은 유명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축가 · 저술가 프랭크 라이트(1867~1959), 영국 올더스 헉슬리(1894~1963), 헝가리 출신 영국 작가 아서 케스틀러(1905~1983), 『메리 포핀스』(1934)의 저자 패멀라 트래버스(1899~1996)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서구의 대항문화 (對抗文化 · counter culture)에도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
구르지예프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혼합주의·종합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한 이야기들은 동서양 신비주의자들의 영성 문학과 겹친다. 또 구르지예프가 한 이야기들은 ‘영성 구루’로 각광 받는 디팩 초프라가 하는 말들과도 공통분모가 많다.
이런 얘기들이다. 인간은 보다 높은 수준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집중력을 키우면, 잠재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몽유(夢遊) 상태다. 환경의 자극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이 아니라 그저 결과로서 살고 있다.
그런 로봇 같은 삶에서 탈출하려면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관찰하면 몇 가지 이런 사실들이 들어난다. 알고 보니 나(I)라는 존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수많은 나들(I’s), 서로 충돌하는 나들이 있다. 구르지예프는 “어떤 두 사람의 본질상 차이는, 광물(鑛物)과 동물의 차이 사이만큼이나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안의 나들 중에는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작은 나로 구성된 게 나다. 그 중에서 진짜 나를 찾아라.
“당신이 모르는 사람 빼고는 모두다 이상하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러 나를 발견하고 보니, 그 중에 하나의 나는 이상하다. 나 안의 그 녀석들은 기괴하다.고약하다. 쩨쩨하고 치사하다. 왜 여러 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까. 그래야 허물 많은 남들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르지예프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이 창안한 ‘자기계발’ 프로젝트이자 시스템인 ‘노력(The Work)’을 전수받으려면 스승이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노력’은 ‘제4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제1~3의 길은 이슬람의 파키르 수도자, 기독교의 수도사, 인도의 요기들의 수행법으로 구성된다. ‘제4의 길’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어떻게 될까. 지성 · 감성 · 본능이 균형 잡힌 인간이 된다.
구르지예프 방식의 특징은 일상 생활 속에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세를 등지지 않아도 된다. 그의 방식은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을 중시한다. 그가 권장하는 춤은 ‘무브먼트(Movement · 움직임)’라 불린다. 신성한 춤, 신성무(神聖舞)다. 대체적으로 수피 신비주의 춤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르지예프는 러시아 작곡가 토마스 하트만(1885~1956)의 도움을 받아 170곡의 피아노곡을 지었는데 그 중 일부가 무브먼트에 활용된다.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 Gurdjieff을 쳐보면 많이 올라와 있다. 수피 춤뿐만 아니라 인도의 춤이나 중국 태극권을 연상시키는 그의 춤동작은 4500년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묘한 느낌을 주는, 중독성 있는 춤과 음악의 앙상블이다. 구르지예프는 또 환경의 변화가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을 깨는데 특효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자신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여행을 했다.
1979년엔 영화로도 만들어져
| | | ▲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우리말(왼쪽)과 영문판 표지 | | 그는 “내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말라. 스스로 발견하라”는 말도 했지만 자신이 쓴 글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1927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가 쓴 세 책 中에서 가장 쉬운 책이다. 이 책은 『베엘제부브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만, 삶은 실재한다』와 더불어 삼부작을 이룬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1979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감독은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이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서전이자 여행기이자 영적 순례의 기록이다. 그가 말하는 ‘놀라운 사람(remarkable man)’이란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 본성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을 공정하고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의 무대는 근동 · 아프리카 · 중동 · 중앙아시아다. 여행 과정에서 사제에서 왕족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책의 내용은 믿기 힘들다. 상당 부분 꾸며낸 이야기 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영성주의 · 신비주의는 종교와 가장 가깝다. 구르지예프의 종교관은 책에 나오는 다음 몇 마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라. 객관적인 도덕을 신(神)이 부여했다면 주관적인 도덕은 사회나 문화, 전통이 만든 것이다. 네 자신이 된 다음에는 신도 악마도 중요하지 않다. 소금이 없으면 설탕도 없다. 스스로를 자각하는 신앙인은 자유롭고 감정 중심으로 믿는 신앙인은 노예이며 기계적으로 믿는 신앙인은 우둔하다. 여러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데 ‘이론 만들기(theorizing)’는 필요 없다. 여러분 내면에 간단하고 적극적인 이성의 행사만 있으면 된다. 죄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게 죄다. 신앙을 잃고 싶다면, 사제와 친구가 되면 된다.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가.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잘못된 확신, 자기애, 이기주의가 죽어야 한다. 나의 가르침은 비전(秘傳) 기독교(esoteric Christianity)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신(神)이 직접 가르쳐준 비결(秘訣)을 유지해온 형제단(brotherhood)이 예수 탄생 1000년 전에 창립됐다. 예수도 이 형제단 소속이었다.
그의 교육 방식은 선사(禪師)의 방식을 방불케 했다. 오만 가지 몸동작과 표정을 지으면서 제자들보고 따라 해 보라고 했다. 갑자기 ‘그만’하라고 외쳤다. 제자들에게 해답을 주기보다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를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은 오늘날에도 15~30명 규모의 조용한 모임을 가진다. 구르지예프 모임에는 약간의 비밀주의가 있다. 세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의 후예들은 포교는 하지 않는다. 주로 추천을 받아 멤버가 된다.
인간 구르지예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를 만나는 사람은 그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구두닦이, 장사, 관광 가이드 등 어렸을 때 젊었을 때 안 해본 일이 없다. 의문이 생기면 풀어야 하는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는 음식과 여자를 좋아했다. 유부녀·제자 등 7명의 여인으로부터 7명의 자식을 뒀다. 불같이 화를 내는 때도 많았다. 꾀를 써서 돈을 많이 벌었다가 사정이 생겨 탕진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가 깨달았기 때문일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깨달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 중앙선데이 제388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8 | 2014..0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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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우리아 제국에서 사용된 은화. |
“진리 · 재물 · 쾌락 · 구원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삶은 낭비”
인도는 동양이라기보다는 ‘동양 속의 서양’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라다. 지리적으로만 동양이다. 인종이나 언어의 계통으로 봤을 때 인도는 서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도를 배경으로 발생한 불교를 서양 철학 · 사상사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선불교는 ‘동양적인’ 도교에 가깝지만, 석가모니의 사상은 과학에 가깝지 않을까.)
지난 몇 백 년 동안, 적어도 19세기 이래 서양이 세계를 지배했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다’라고 했을 때 중국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할 나라는 인도다. 인도의 사상적 · 정신적 구조가 서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친연성(親緣性 · affinity) 이 높으면 그만큼 수용 · 학습의 속도가 빠르고도 손쉽다. 인도가 일단 본격적으로 이륙(take-off)하면 그 속도는 어지럼증을 느끼게 할지 모른다.
이런 배경에서 특히 미국의 인도계는 경제 · 과학 · 교육 분야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인도 경제는 아직,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르타샤스트라』는 인도라는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제의 영광’과 ‘오늘의 저력’‘내일의 괴력’을 상징하는 책이다. 인류 사상사 · 학술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아르타샤스트라’는 ‘물질적 이익의 과학’ ‘왕의 이익을 위한 안내서’ ‘정체(政體)의 과학’‘실리론’(實利論)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인류 최초로 국제정치학 본격 접근
| | | ▲『아르타샤스트라』의 영문판 (옥스퍼드대 주석판·2013) 표지. | | 이 책은 정치 · 경제 · 외교 · 행정 · 국방 · 첩보 · 조직 · 세금 · 분배 등 국가 · 정부를 운영하는 다루는 데 필요한 모든 영역을 다뤘다. 사회 통합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중점적으로 다룬 분야는 외교와 전쟁이다.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정치학 문헌이라고 할만하다.
서양에서 한참 뒤에 나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공리주의 사상이 『아르타샤스트라』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요즘의 용어를 쓴다면 진보주의적인 면모도 있다. 카우틸리아는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진보주의를 흡수했다.
『아르타샤스트라』에는 시원적 형태의 복지국가론이 담겨 있다. 카우틸리아는 빈자(貧者) · 노예 · 여성 등 사회적 약자 문제도 다뤘다. 특히 가뭄 때에는 부의 재분배를 실시해야 한다고 카우틸리아는 주장했다.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가문이 아니라 그의 행위다.” 라며 실력주의(meritocracy)를 주창하기도 했다.
저자인 카우틸리아(기원전 370~283년)를 서구인들은 ‘인도의 마키아벨리’ 라고도 부르지만, 역사의 선후 관계를 따진다면 마키아벨리를 ‘이탈리아의 카우틸리아’ 라고 하는 게 맞다. 『아르타샤스트라』에는 유가(儒家)와 법가(法家)의 종합이 들어있다는 평가도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쓴 이 책은 15권으로 구성됐는데, 한동안 사라졌다가 1905년에 다시 발견됐다.
카우틸리아는 총리이자 스승이자 책사로서 찬드라굽타(기원전 350~283년께)가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2~185년)의 초대 황제로 등극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이전 왕조의 국왕이 그를 무시했기에 앙심을 품고 ‘역성혁명’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다.) 건국 이후에도 제국의 팽창을 주도했다. 한마디로 『아르타샤스트라』는 효험이 검증된 책이다.
『아르타샤스트라』 전체를 관통하는 관념은 정치현실주의(realpolitik)와 실용주의다. 속이는 것은 기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독 없는 뱀은 독이 있는 척해야 할 것이다.” 또 카우틸리아는 통치자가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어떤 도덕적인 제한도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적국에 많은 수의 스파이를 보내 정보 수집 · 암살 등을 감행할 것을 주장했다. 또 『아르타샤스트라』에는 태자가 황제의 자리를 자리를 너무 일찍 넘보지는 않는지 황제가 감시하는 법뿐만 아니라, 태자가 아버지인 황제의 지나친 간섭을 저지하고 대처하는 법까지 나와 있다.
정치와 행정에 대해 그가 설파한 내용은 지금 읽어도 뜨끔하다.
“창부(娼婦)는 가난한 사내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새들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아니하며, 시민은 절대로 약한 정부를 지지하는 법이 없다.” -“신하의 부정을 감지하는 것은,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 알아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카우틸리아의 저작에는 인생살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많다. 담긴 주장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게 놀랍다. 마치 이번 주에 출시된 따끈따끈한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다. (경고: 지나치게 적나라한 현실주의가 마음이 따뜻한 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
요즘으로 치면 경제 · 정치학과 ‘폴리페서’
우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 생활과 관련해 카우틸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양처(良妻)는 아침에 남편을 어머니처럼 돌보고, 낮에는 누나 · 여동생처럼 사랑하며, 밤에는 창부(娼婦)처럼 즐겁게 한다.” “자식은, 5살때까지는 애인처럼 대하라. 그 다음 5년은 야단치라. 자식이 16살이 될 무렵에는 친구로 대하라. 장성한 자식은 최고의 친구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식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일이다.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스스로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라. ‘나는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 일은 성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을 때에만 일에 착수하라.” “뭔가 착수한 일에 대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라.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교육은 제일 좋은 친구다. 교육 받은 사람은 모든 곳에서 존경 받는다. 교육은 아름다운 용모나 젊음보다 강하다.”
우정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적인 기조가 유지된다. “신분이 더 높거나 낮은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말라. 그들은 내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모든 우정의 이면에는 얼마간 사사로운 이익이 자리잡고 있다. 사리(私利) 없는 우정은 없다. 이게 쓰라린 진리다.”
카우틸이아의 종교관에서도 시대를 앞선 진보성이 발견된다. “우상에는 신(神)이 실재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감정이 여러분의 신이다. 영혼이 여러분의 신전이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 총론은? 역시 현실과 이상을 깔끔하게 몇 가지 개념으로 종합했다. 카우틸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인생에서 4가지를 얻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진리 · 재물 · 쾌락 · 구원이다. 이 중 한가지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허비한 것이다.”
카우틸리아는 요즘으로 치면 ‘폴리페서(polifessor)’였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르쳤다. 그는 조로아스터교 신자였거나 적어도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의 자이나교의 관행대로 스스로 굶어 죽었거나 궁중 음모에 희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 중앙선데이 제388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7 | 2014..0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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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불교계에서는 스즈키 선사가 ‘과대포장 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미국 · 유럽 최고의 ‘마음의 선사’다. 그의 얼굴을 좌우로 나눠보면 왼쪽은 심각하고, 오른쪽은 장난기가 넘친다. |
초심 잃은 사람들을 위한 미국 최고의 선불교 문헌
‘걱정하지 마세요. 행복하세요(Don't Worry, Be Happy·1988)’는 그래미상을 열 번 받은 바비 맥퍼린이 지은 노래다. 행복하려면 ‘네 자신이 되라(Be yourself)’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 된다. 달리 방도가 없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이렇게 말했다. “네 자신이 되라. ‘네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은 이미 누군가가 모두 차지했다.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내가 되면 집중력이 강화된다.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선(禪)을 집중력을 키우는 데 활용했다. 잡스는 『선심초심(禪心初心 · Zen Mind, Beginner’s Mind)』(1970)을 애독했다. 『선심초심』은 미국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읽는 첫 번째 책이다. 미국 선 수행자들이 읽고 또 읽는 책이기도 하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며 미국에 소개
미국 정신의 핵심은 실용주의다. 아시아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멀뚱멀뚱 할 때에, 미국인들은 좌선을 활용해 체중 조절도 하고 직장에서 생산성도 높인다. 미국식 불교를 제시한 『선심초심』의 공이 크다. 그래서 저자인 스즈키 슌류(鈴木俊降·1904~1971)는 ‘미국 불교의 조사(祖師)(The Patriarch of American Buddhism)’라 불린다. 어떤 면에선 육조(六祖·The Sixth Patriarch)보다 더 자랑스러운 타이틀이다.
『선심초심』은 법문집이다. 스즈키 선사가 직접 쓴 게 아니라 제자들이 설법을 녹음한 후 글로 옮긴 것을 편집한 것이다. 에디터들이 ‘편집 독재권(editorial dictatorship)’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미국화(美國化)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스즈키 선사는 “내가 한 말을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면 『선심초심』을 읽어본다”고 말했다.
선사 자신이 선불교를 미국인들이 편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즈키 선사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좌선도 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말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예컨대 밥 먹는 것, 잠자리에 드는 것-그것이 불교다.” “선에 대해 깊이 알 필요는 없다.”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미국 사람들을 ‘꼬시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원래 불교의 본질이 그렇다. 정말 쉬운 게 불도(佛道)다.
스즈키 선사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현대인 일반을 위한 불교를 제시했다. 한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현대 문명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는 것도 실상은 ‘최대 에고(ego)의 최대 행복’ 을 의미한다. 패러독스의 종교인 불교는 ‘나’를 공부하고 ‘마음’을 공부하는 데 최고다. 하지만 ‘나’라는 것도 ‘마음’이라는 것도 없다는 게 불교다.
스즈키 선사는 “불교를 공부하는 목표는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다” 라고 했다. ‘마음 공부’ 를 하면 우리 모두 불성(佛性)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세속적 의미’의 기쁨은 잠시다.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해야 하는 나 · 우리 ‘스스로’ 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 깨달은 ‘행위’가 있을 뿐이다.” 결국엔 없는 것으로 밝혀질, ‘나 스스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중간 단계에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스즈키 선사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최선의 길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스스로’를 없애는 길도 이렇게 제시했다. “뭔가를 할 때에는 온 몸과 마음으로 해야 한다. 스스로를 소진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는 일에 여러분의 흔적이 남게 된다.”
둘째, 현대인을 지배하는 이분법 · 이원론의 탈피하도록 만드는 게 큰 과제였다. 근 · 현대 철학에서 몸-마음의 관계 설정은 영원한 숙제다.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단박에 정리했다. “몸과 마음이 둘이다라는 생각은 틀렸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생각도 틀렸다. 몸과 마음은 둘이자 하나다.”
경전 읽기와 좌선으로 불교의 진리가 이해되기 시작하면, 우선 자만심과 좌절이 문제가 된다. 뭔가 좀 알고 체험했다는 자만심과 ‘아무리 열심히 하고 또 해도 제자리’라는 좌절이다. 자만심과 좌절은 ‘초심의 상실’을 낳는다. 스즈키 선사는 초심을 강조했다. 책 제목 자체가 ‘선심초심’이다. 초심에 대해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禪)에 대해 읽은 게 많더라도 매 문장마다 초심으로 읽어야 한다. ‘나는 선이 뭔지 좀 안다’라거나 ‘나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하지 말라. 모든 기예의 진짜 비결은 초심자가 되는 것이다.”
초심 상실의 원인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들과 ‘박치기’ 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사는 이렇게 ‘문제라는 문제’를 해결한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다. (‘여러분’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문제라면, 문제라는 것은 없다.” “여러분의 문제를 즐겨라.”
‘그 놈의’ 소통 때문에 초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리라. 선사의 답은 이거다. “소통이란 여러분이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남이 먼저 여러분을 이해하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이 먼저 남을 이해하기 전에 남이 여러분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초심을 위협하는 좌절감을 낳는 원인은 ‘뭐든지 직접 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모든 것을 직접 할 수 없기에 그대신 ‘내가 일을 시킨 사람들을 통제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튼다. 부질없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지 않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두 번째로 나쁜 방식이다.”
내가 먼저 그를 이해하는 게 소통의 비결
크고도 많은 가능성 때문에 초심이 중요하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게 가능성이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빈 마음은 무엇이든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 초심자의 마음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 어떤 위기에도 초심만 살아 있으면 된다. 호랑이한테 물려갈 때도 초심만 있으면 산다. 생환할 가능성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토록 좋은 초심이란 무엇인가. 오로지 한가지만 알고 한가지 일에만 매진하는 게 초심이다. ‘우리 회사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CEO나 신입사원의 초심이건, ‘아들 딸 많이 낳고 백년해로하겠다’는 신혼부부의 초심이건, 모든 초심의 핵심은 ‘한가지’에 있다. ‘한가지’가 보이면 모든 게 이해되고 갈 길이 보인다. 그래서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뭔가 한가지를 이해하고 또 이해하고 거듭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초심은 또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스즈키 선사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매 순간을 여러분의 마지막 순간으로 대하라. 매 순간이라는 것은 뭔가 다른 것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스즈키 선사는 아버지 제자의 제자였다. 13세때 승려가 됐다. 젊었을 때 당시만 해도 싸구려 저질 일본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보고, ‘세계 최고’인 일본 선불교를 해외로 ‘수출’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소원이 이뤄져 미국으로 간 그는 196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못지 않게 많은 것을 배우는 스승이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평범한 선사였다. 조동선(曹洞禪) 계통의 선불교에 속한 그는 샌프란시스코 · 로스앨토스 · 타사하라 선원(禪院)을 세웠다. 그의 제자들은 최소 70개 모임으로 나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스즈키 선사는 동부 아이비 리그를 중심으로 불교를 포교한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1870~ 1966)와 흔히 혼동된다. 많은 미국인이 “그 유명한 스즈키 다이세쓰이십니까”라고 물으면 스즈키 선사는 “그는 ‘큰 스즈키’, 저는 ‘작은 스즈키’입니다”라고 답했다. 중의법이다. 스즈키 선사는 키가 150이었다.
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작은 거인’이 아니라 ‘그냥 거인’이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울먹이며 “세상에는 왜 이토록 많은 고통이 있는가”라고 묻자 “이유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 한 마디로 스즈키 선사는 기독교와 불교의 수 천년 숙제를 단 ‘한 방’에 풀어버렸다.
- 중앙선데이 제385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6 | 2014..0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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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오도르 샤세리오(Theodore Chassseriau, 1819~1856)가 그린 라로슈푸코(La Rochefoucauld)의 초상화(1836) . |
650개의 촌철살인 잠언(箴言) … 인간의 이기성 낱낱이 해부
본래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못난 자식이나 못난 부모는 못난 그대로,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은 돈 못 벌어오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불(成佛)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길 꿈꾸고 소망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이대로의 인간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더러움’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사람을 변화시킨 다음에 사랑하는 것보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훨씬 쉬운 것을···.
사람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면 우선 사람의 참모습, 본 모습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읽으면 좋은 책은 프랑스 고전 작가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공작 (La Rochefoucauld, 1613~1680)가 쓴 『잠언집(箴言集 · Maximes·1665)』이다. (전체 제목은 프랑스어로 『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 morales』, 영어로 『Collected Maxims and Other Reflections』라고 하지만 줄여서 『Maximes』, 『Maxims』 라고 한다.)
잠언은 인간의 본성과 행동 양식, 사회에 대해 짧게 표현한 교훈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온 말들이다. 잠언은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 (卓見)이나 패러독스, 수수께끼 같은 알쏭달쏭함으로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해야 한다. 총 650구(句)로 구성된 『잠언집』은 고대로부터 시작된 잠언이라는 문학 장르를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완결편이라고 해도 무장하다.
대귀족 가문 출신의 반골 · 반항아
| ▲『잠언집』의 한글판과 영문판(프랑스어 원문 포함) 표지. | |
라로슈푸코(La Rochefoucauld)는 잠언 작가가 되는 데 딱 들어맞는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잠언집』은 그의 삶의 산물이다. 대귀족 가문 출신인 라로슈푸코는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중간 중간 쉬었지만 그의 군생활은 1629년 16세때 시작돼 33세인 1646년에 끝났다. 정치가로서는 ‘바위에 달걀 부딪치기’를 좋아했다. 강대국 프랑스를 만든 두 명의 추기경 겸 총리와 맞섰다. 루이 13세 때의 총리인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de Richelieu,1585~1642)에 대한 음모에 가감했다가 투옥됐다. 루이 14세의 시대에는 총리 마자랭(Mazarin, 1602~1661)과도 싸웠다. 마자랭을 겨눈 프롱드의 난(1648~1652)에 주모자로 나섰다가 패하여 1652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15세에 결혼에 자식 여덟을 두었지만, 당시 한가락하는 남성들이 흠모하는 여성 3명과 순차적으로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잠언집』은 당시 꽃피운 살롱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라로슈푸코는 사상가 ·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이 포함된 마담 드 사블레의 살롱 빈객이었다. 이런 식으로 잠언이 생산됐다. 발제자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 한 말씀 하면, 나머지 손님들이 질문하고 비평했다. 모든 손님들이 수긍할 때까지 잠언을 가다듬었다.
『잠언집』을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결론은,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자기애(自己愛 · amour-propre·self-love)와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잠언집』의 대표 잠언은 “우리의 미덕(美德)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다. 악덕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위선에 대해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애는 가장 위대한 아첨꾼이다.” “이기심은 어떤 사람들은 눈을 멀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빛을 가져온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감당할 만큼은 충분히 강하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악행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다.” “대부분의 인류 구성원에게 감사란 단지 더 큰 호의에 대한 은밀한 기대에 불과하다.” “제일 친한 친구들의 불행에서 우리는 우리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뭔가를 항상 발견한다.”
자 이제 인간 관계 일반에서 사랑이라는 특수하고도 특별한 인간관계로 넘어가 보자.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열정은 종종 가장 현명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만 가장 우둔한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좋은 결혼 생활은 있으나 정말 좋은, 달콤한 결혼 생활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유령의 출몰과 같아서, 모두 화제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가 사랑을 사랑이 낳은 대부분의 결과로 평가한다면, 사랑은 우정보다는 증오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은밀한 관계에 흠뻑 빠져본 적이 한번도 없는 여성은 찾을 수 있어도, 딱 한번 그런 적이 있는 여성은 희귀하다.” “부재(不在)는 흔한 욕정을 잦아들게 하지만, 큰 욕정은 치솟게 한다. 바람이 촛불을 끄지만 큰불은 번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잠언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는 말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한국 정치를 논할 때 써먹을 만한 라로슈푸코의 잠언은 이런 게 있다. “한쪽만 잘못인 다툼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에 따라 약속하고 우리의 두려움에 따라 약속을 실천한다.” “위대한 사람들의 영광을 평가할 기준은 그들이 그 영광을 쟁취하는 데 동원한 수단이다.” “오직 큰 인물에게만 큰 결함이 있다.” “우리를 따분하게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거의 항상 따분하다.”
말년과 죽음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
잠언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라로슈푸코의 알쏭달쏭한 말을 이해하려면 말이다. “위선은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헌사다.” “지성은 항상 마음에게 속임을 당한다.” “허영심과 함께 하지 않는 미덕은 멀리 갈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우리를 따분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만 우리가 따분하게 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늙은이는 조언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쁜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에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실을 감춘다는 이유로 속상하면 안 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 스스로에게 진실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고장의 말씨는 그의 말투뿐만 아니라 마음과 가슴에 남아 있다.”
생활의 지혜로 삼을 만한 것들은 이것들이다. “우리는 절대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지도, 희망하는 만큼 행복하지도 않다.” “책보다는 인간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특정 사람보다는 인간 일반, 인류에 대해 아는 게 더 쉽다.” “영리함의 정점(頂點)은 영리함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다.” “친구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보다 친구들을 의심하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라로슈푸코는 일찌감치 말년과 죽음을 준비했다. “라로슈푸코는 마지막 순간들을 너무나 자주 생각했기에 그의 마지막 순간들은 그에게 전혀 새롭거나 낯설지 않았다” 라는 말이 전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선 스위프트(1667~1745)는 이렇게 인간을 어둡게 묘사한 『잠언집』을 옹호했다. “잘못은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 있다. 라로슈푸코는 잘못이 없다.” 『잠언집』은 비트겐슈타인 · 키르케고르 · 니체 등 대문호들에게 영향을 준 책이다. 프랑스 계몽기 사상가 볼테르(Voltaire , 1694~1778)는 프랑스인의 국민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인간 심리에 대한 성찰,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표현은 『잠언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동북아가 ‘성선설 vs 성악설’에 대해 고민할 때, 서구는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느냐’ 아니면 ‘원죄로 타락한 인간도 선을 행할 일말의 자유의지는 있느냐’를 두고 다퉜다. 그 과정에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1532)과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1776)은, 이기적인 인간본성은 그대로 두고, 한 정치 · 경제 공동체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틀을 제시했다. 근 · 현대 서구를 만든 3대 저서에, 이기적인 사람들과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제시한 라로슈푸코의 『잠언집』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일까.
- 중앙선데이 제382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5 | 2014..0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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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作 - 에라스무스 초상화(Erasmus,1523). |
국민 행복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는 게 참된 지도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운동, 종교운동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훌륭한 선생님이 돼 청출어람 (靑出於藍)한 제자들을 해변가의 모래알 수처럼 많이 키우는 것도 좋다. 세계적 · 국가적 · 사회적 어젠다를 형성하는 사설·칼럼을 많이 쓰는 기자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자식을 많이 낳아 사회의 동량(棟梁)으로 교육하는 것도 좋다.
군왕(君王)이라는 ‘변수’를 중심으로 본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스스로 왕이 되는 것 (2) 임금님의 스승이 되는 것 (3) 군주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국무총리 · 영의정이 되는 거다.
인류 역사상 왕사(王師)의 길을 꿈꾼 현자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네덜란드에서 한 신부님과 의사의 딸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라스무스(Erasmus, 1469~1536) 다. 전염병 창궐 때 부모를 잃고 14세에 고아가 됐다. 1492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나는 돈이 조금 있으면 책을 사고, 돈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면 음식과 옷을 산다” 는 말을 남겼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라틴어 · 그리스어로 된 고대 문헌에 통달했다. 그 결과 그는 유럽의 ‘원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유럽의 여러 왕실은 그에게 여러 문제에 대해 자문했다. ‘인문주의자들의 군주’ 라 불리게 됐다.
르네상스 · 종교개혁의 핵심 인물
| | | ▲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의 영문판 표지 (케임브리지대 「정치사상사 텍스트」판·1997) | | 에라스무스가 지은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The Education of a Christian Prince, Institutio principis Christiani, 1516)』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1500~1558)에게 헌정한 책이다. 에라스무스는 감투나 명예는 대부분 고사했으나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에서는 ‘아부’ 도 좀 했다. 당시 군주들에게 경세(經世)의 도를 제시하는 책을 집필하는 게 유행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쌍벽을 이루는 이 책은 『군주론』보다 3년 늦게 탈고됐으나, 출간은 16년이 더 빠른 책이다. 원래 제목은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이지만 그냥 『군주 교육론』 『군주론』 『교육론』이라고 해도 무방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역사가 빠르게 움직이던 그때 그 장소에 에라스무스, 그가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논할 때 빠트릴 수 없는 핵심 인물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개신교 종교개혁의 씨를 뿌린 것은 에라스무스, 수확한 것은 루터다”라고.
그뿐인가. 에라스무스는 계몽주의 시대와 근대를 여는 데 필요한 모든 지성적 요소를 일찌감치 다 말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남녀평등과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미국 독립선언문보다 250여 년 앞서 “자연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Nature created all men equal)” 라고 외친 것도 그다. 에라스무스는 ‘근대 교육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일반 국민의 교육에 대해서는 『아동교육론(De pueris statim ac liberaliter instituendis, 1529)』 『어린이 예절 핸드북(De civilitate morum puerilium, 1530)』을, 지도자 교육을 위해서는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을 썼다. 기독교를 믿는 유럽 군주를 위한 책이지만 유교 전통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군자(君子)를 위한 책이다(만약 에라스무스가 불교권에서 태어났다면 『불제자 군주 교육론』을 쓰지 않았을까). ‘교육자들의 스승(the educator of educators)’이라 불리는 에라스무스의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백성의 혀가 자유로워야 ‘자유로운 나라’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도덕적 무결성(moral integrity)’이다.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예수가 군주의 마음속 깊이 뿌리 박혀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일반 백성이나 귀족 이전에 우선 군주 자신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누구한테 배울 것인가. 따뜻하게 제자들을 대하며 도덕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선생님으로부터다 (지극히 제한된 ‘사랑의 매’를 제외하고 스승이 제자를 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런 것들이다.
오래 산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게 행복한 것이다.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살면서 어떤 일을 했느냐다.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흠뻑 누리는 것이다. 군주는 백성의 칭송을 듣는 현왕(賢王)이 돼야 한다.
현주(賢主)와 참주(僭主)는 무엇이 다를까. 현주는 국민의 복지(福祉), 즉 국민의 ‘행복한 삶’을 꾀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까지 대가로 내놓는 게 참된 군주다. 그런 각오로 선정을 베푼다면 군왕이 목숨을 잃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현주의 길은 철학을 아는 왕이 되는 데 있다. 철학이 없는 왕은 참주가 되는 길을 스스로에게 터놓는 것이다. 통치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잘못된 욕구와 그릇된 의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게 철학이다. 또한 평화시에 최선을 다해 나라를 다스려 전쟁이 필요 없게 만드는 최고의 지식은 지리학과 역사학에서 배울 수 있다.
철학을 가까이 하는 군주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수 있다. 백성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군주가 덩달아 같이 좋아해서는 안 된다. 철인왕(哲人王 · philosopher king)은 그 자체로서 그 본질이 나쁘거나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백성의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혀가 자유로운 나라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나라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주셨다.
현군(賢君)은 자나깨나 자식들을 걱정하는 어버이와 같다. 현군은 백성의 목자(牧者)다. 현군은 백성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마키아벨리와 정반대되는 주장이다). 현군은 백성을 섬김으로써 백성의 사랑을 받는다. 사실 폭군 노릇을 하는 게 현군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폭군은 항상 자신의 모습을 거짓으로 꾸미고 백성을 속이려 든다. 위선과 거짓이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더 어렵다.
누구나 한 번 죽는다. 거지나 왕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죽은 다음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살았을 때 힘이 있었던 사람일수록 하느님은 더 혹독하게 평가한다.
종교개혁 씨 뿌렸지만 가톨릭 교회에 남아
온건한 중도 · 중용의 길은 험난하다. 한때 사람들은 에라스무스를 모두 미워했다. 가톨릭 교회는 그가 개신교라는 당시의 ‘이단’과 공유하는 게 너무 많은 게 싫었다. 한때 그의 모든 저작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개신교 측은 종교개혁을 부추긴 에라스무스가 정작 종교개혁이 시작되자 동참하지 않은 게 몹시 섭섭했다. ‘절친’이었던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모어(1478~1535)와 마찬가지로 에라스무스는 가톨릭 교회에 충성했다. 부패 척결, 미신 타파 등 교회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교회의 일치를 깨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역사의 최종 승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다. 유럽연합의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라스무스가 이를 입증한다.
에라스무스는 아포리즘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는 대중의 의사소통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라틴어·그리스어 속담을 집대성한 『격언집(Adagia, 1500)』을 저술했다. 그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로는 이 말이 있다. “항상 웃는 것은 어리석다. 전혀 웃지 않는 것은 멍청하다.”
『크리스천 군주 교육론』은 자식을 지도자, CEO, 재상으로 키우려는 부모들과 교육자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 아직 우리말 번역본이 없어 아쉽다.
- 중앙선데이 제379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4 | 2014..0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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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 버거스(1647년께~1727)가 그린 루크레티우스(1682년 작품) |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세상의 쾌락’을 피한다
쾌락주의(Epicureanism)는 음주가무 · 흥청망청 · 난봉꾼 · 방탕 같은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쾌락주의가 추구하는 궁극적 쾌락은 ‘마음의 평화’다. 고대 쾌락주의자들은 산해진미보다는 소박한 음식, 색욕의 충족보다는 우정, 부귀영화보다는 박애의 실천을 모토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사는 게 ‘꽉 찬’ 인생이라고 봤다. 쾌락주의자들에게 쾌락은 적극적인 게 아니라 수동적 · 방어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몸에 고통이 없고 영혼에 골칫거리가 없는 것’으로 쾌락을 정의했다. ‘세상의 쾌락’을 피하는 게 쾌락주의의 정신이다.
쾌락주의의 창시자는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다. 그의 사상을 ‘대중적’으로 정리한 것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On the Nature of Things)』(이하 『사물』)라는 시집이다. 『사물』은 에피쿠로스 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이다. 고대 그리스의 오랜 철학시(哲學詩) 전통에 따라 『사물』을 지은 이는 로마 사람 루크레티우스(기원전 99년께~55년께)다. 『사물』은 루크레티우스가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스페인 출신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1863~1952)는 단테 · 괴테와 더불어 루크레티우스를 ‘3대 철학 시인’으로 꼽았다.
토머스 제퍼슨 “나는 쾌락주의자”
| |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한글판(왼쪽)과 영문판 표지 | | 『사물』은 기원전 1세기 중반 작품이다. 7415줄, 제목이 없는 6권으로 구성됐다. 『사물』은 로마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 받는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에게 시의 모범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물』은 로마제국의 멸망 후 차츰 잊혀졌다. 1417년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됐다. 하버드대 그린블랫 교수(영문학)에 따르면 『사물』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을 뒤흔들었다. 계몽주의의 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에피쿠로스주의자다”라고 말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사물』의 라틴어 판본 5종과 영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 번역본을 소장했다. 그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주창한 ‘행복추구권’의 뿌리가 『사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도 제기됐다. ‘쾌락’을 ‘행복’으로 살짝 바꿔친 것이다. 사실 쾌락주의에서는 쾌락이 곧 행복이다. 한편 몽테뉴(1533~1592)는 『수상록』에서 『사물』을 100회가량 인용했다.
『사물』을 오늘날의 학문 분과로 분류한다면 광학 · 기상학 · 물리학 · 사회학 · 심리학 · 우주론 · 윤리학 · 종교학 · 철학에 속한다. 어떤 내용일까. 『사물』은 ‘평범한 여자가 사랑을 얻는 법’ 유전(遺傳)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핵심은 마음의 평화를 깨는 양대 문제, 즉 신(神)들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사물』에 따르면 신들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창조주는 없지만 신들은 존재한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창조주가 있다고 봤다. 특히 플라톤은 조물주가 이데아에 맞춰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우주에는 무수한 세상이 있는데 신들은 세상과 세상 사이에 존재한다. 신들은 지극한 평온함 속에서 존재한다. 사람들과 달리 모든 욕망이나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신들은 어떤 면에서는 쾌락주의의 이상이다. 그들은 인간사에 간섭할 여유가 없다. 자신들의 행복을 음미하고 관조하느라 바쁘다. 또한 만약 그들이 인간들의 기도에 응답하거나 인간들의 악행에 분노한다면 그들의 평온함이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신들이 아니라 원자들이다. 천둥 · 번개 · 지진 같은 것들도 원자 소관이지 신들의 분노와는 무관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 또한 우스꽝스럽다. 인간은 우둔하기에 피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한다. 대표적인 게 죽음이다. 한 번 죽으면 끝이다. 죽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은 좋은 것이다. 죽음이라는 ‘축복’은 인간을 해방하기 때문이다. 죽으면 영혼도 사라진다. 영혼도 물질이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거나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일은 없다. 사람은 죽음으로써 아무것도 상실하는 게 없다. 죽은 다음에는 뭔가를 바랄 몸이나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탐욕, 전쟁, 지나친 야망을 부추기는 원동력은 죽음에 대한 공포다.
한 번뿐인 인생···. 사는 동안 추구할 만한 것은 최대한 쾌락을 추구하고 최대한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쾌락은 좋은 것이고 고통은 나쁜 것이다. 허망한 꿈을 꾸지 말고 쉽게 충족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다. 음식은 허기를 없애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으로 족하다. 지금 당장 고통을 수반하는 쾌락이나 언젠가는 고통을 가져올 쾌락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애욕의 노예가 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사랑보다 우정이 좋다. 우정은 구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되려고 하지 마라. 익명(匿名)으로 사는 게 최고다. 따라서 정치활동에 나서는 것은 미친 짓이다.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쓸데없다. 부(富)와 재산의 발견은 시기심과 불화를 낳지 않았던가.
아인슈타인 “그의 시는 마법”
루크레티우스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귀족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로마에서 살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폴리설이 제기됐다. 라틴 교부(敎父)인 4세기 성인 히에로니무스(348~420)는 『연대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랑의 미약(媚藥)을 복용한 결과 미쳐버렸다. 『사물』은 미친 그가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틈틈이 썼다. 미친 루크레티우스는 결국 자살했다.
‘초자연적인 설명은 필요 없다’ 며 미신뿐만 아니라 종교에 반대한 에피쿠로스주의는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교와 상극이다. 『사물』은 종교야말로 죄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교회의 관점과 달리 에피쿠로스주의는 우주가 무한하기 때문에 당연히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면 에피쿠로스주의는 ‘영원한 죽음을 약속’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사물』은 가톨릭 교회의 금서목록에 오른 적이 없다. 『사물』을 사라지지 않게 보존한 것도 교회다(수도원의 수사들은 “잉크는 흐릿 하고, 양피지의 질은 나쁘고, 옮겨 쓸 원전(原典)은 어렵구나” “제기랄 마실 것 좀 다오”라는 하소연을 몰래 필사본에 남기며 『사물』을 비롯한 고대 문헌의 역사를 이어갔다).
가톨릭 교회는 『사물』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했을까. 어쩌면 『사물』이 로마 다신교의 신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데서 쓸모를 발견했는지 모른다. 가톨릭 신앙과 에피쿠로스주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믿음이다.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의 원자론을 수용한 에피쿠로스주의에 따르면 원자가 무작위로 방향을 틀며 끊임없이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기 때문에 우주에서 결정된 것은 없다. 그 결과 자유의지의 행사가 가능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신격화를 거부하는 사상은 이전의 신격화에서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신격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에서 자연을 거의 신격화했다. 또한 “세상이라는 고통스러운 수수께끼”를 풀어준 루크레티우스를 신격화했다. 이렇게 말이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현실의 발견자이십니다.”
아인슈타인은 1923년 『사물』의 독일어판 서문을 썼다. 이렇게 적었다. “시대정신에 완전히 흠뻑 빠지지 않은 사람에게…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마법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족 하나를 붙인다. 루크레티우스에게 “그럼 죄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죄는 자연히 안 짓게 된다.”
- 중앙선데이 제376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3 | 2014..0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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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르 하이얌의 무덤 인근에 있는 그의 동상(이란 니샤푸르 소재) |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면, 벗들과 우정 나누며 지내라
『황무지』로 유명한 T S 엘리엇(1888~1965)이 말했다.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밝고도 맛있고도 고통스러운 색깔로 칠한 세상이 보였다”고. 오마르 하이얌(1048~1131년께)의 시를 읽고 나서 한 말이다. (세계가 달리 보인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이얌의 ‘언어적 마수(魔手)’에서 벗어나느라 엘리엇이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 있다.)
하이얌(‘천막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버지 직업에서 나옴)은 12세기 페르시아에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 · 수학자였다. 산문은 남긴 게 없지만 최소 750, 1200~2000편의 4행시(quatrain)를 썼다.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83)가 그를 발굴해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1859)라는 제목으로 영문판 시집을 펴냈다. 피츠제럴드의 영문본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창의적인 재구성이다. ‘창작번역(transcreation)’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원래는 무순(無順)인 『루바이야트』를 하루 일과에 맞춰 스토리를 만들었다. 피츠제럴드의 『루바이야트』는 영미권에서 시를 대중화시켰다. 영시에 대혁신의 태풍을 몰고 왔다. 원료가 페르시아어로 된 시라는 게 얄궂다.
미래 아는 神, 인간에게 자유의지 부여
| | | ▲『루바이야트』의 한글판(왼쪽·서울대 이상옥 명예교수 옮김)과 영문판 표지. | | 비록 지금은 잊혀졌지만-영미권에서는 50세 이상만 안다-『루바이야트』는 영어로 발간된 시집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사실이다. 믿거나 말거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 엘리트 장병들은 『루바이야트』를 암송하며 행군했다. 마크 트웨인, 랠프 월도 에머슨, 에즈라 파운드 같은 대문호들도 『루바이야트』에 흠뻑 빠졌다. 『루바이야트』를 음악으로 해석한 작곡가가 100명, 그림을 그린 화가가 150명이 넘는다.
『루바이야트』에 나오는 “포도주 한 단지, 빵 한 조각, 그리고 그대”, “부귀를 좇으라. 명예란 아무려면 어떠리” “한때 만발한 꽃은 영원히 죽는다” “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써나가다” 같은 표현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숙어였다.
서울대 이상옥 교수가 시조풍으로 재해석
광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중이 좋아하면 비평가들의 사시(邪視)를 피하기 힘들다. 미국 기독교의 절제운동가들은 『루바이야트』가 ‘술주정뱅이들의 성경’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자유사상가, 쾌락주의자(hedonist)의 성경이라고도 불린다. 어떤 내용이길래 그럴까. 서울대 이상옥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몇 편을 감상해보자. 페르시아 원문보다 유려한 피츠제럴드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상옥 교수의 우리말 번역은 원본의 뜻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의역이다. 하이얌의 시가 우리 시조(時調)로 거듭났다.
젊은 날 성현들을 찾아다니며 이것 저것 높은 말씀 들어봤건만 언제나 같은 문을 출입했을 뿐 나 자신 깨우친 것 하나 없었네
천국이 별것인가, 욕망 충족의 환영이요 지옥이 별것인가, 어둠 속에 던져진 불붙은 영혼의 그림자일 뿐, 우리 모두 그 어둠에서 나와 다시 거기로 돌아갈 몸
세속의 영화 위해 한숨 짓는 이, 예언자의 천국 바라 한숨 짓는 이, 귀한 것은 현금이니 외상 약속 사양하세 먼 곳의 북소리에 귀기울여 무엇하리
황금 싸라기를 아껴 쓴 사람이나 물쓰듯 바람에 날려 보낸 사람이나 황금의 대지로 화신할 수 없는 죽어 묻히면 그 아무도 파보지 않으리
살아나는 풀잎이 뒤엎은 강둑, 그 위에서 노닐 때에는 조심을 하오. 그 옛날 귀한 이의 입술 위에서 몰래 핀 풀인지 누가 알리요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 한 병, 나무 그늘 아래서 벗 삼으리 그대 또한 내 곁에서 노래를 하니 오, 황야도 천국이나 다름없어라
Here with a Loaf of Bread beneath the Bough, A Flask of Wine, a Book of Verse-and Thou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And Wilderness is Paradise enow.
(이상옥 교수의 우리말 번역본에는 피츠제럴드 영역본도 함께 나와 있다. 두 번역을 비교하다 보면 새롭게 얻는 게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아가(雅歌)’는 너무 야해 설교 · 강론의 주제가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남녀 간의 연애를 진하게 찬양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아가’가 성경에서 살아 남은 비결 중 하나는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을 빗대 표현했다는 신통(神通)한 해석 덕분이다. 술을 멀리하는 경건주의 색채가 강한 이슬람권에서 『루바이야트』가 생존한 사연도 구조가 비슷하다. 술을 상징으로 삼아 ‘하느님에 취한 인간’을 노래했다는 해석 덕분이다.
하이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성격이나 믿음을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무신론자였는지 불가지론자였는지 플라톤주의자였는지 정통파 무슬림였는지 수피스트(sufist)였는지… 언왕설래(言往說來)가 있을 뿐 알 수 없다. 어쩌면 하이얌은 무신론자에서 수피스트까지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초월했는지 모른다. 16세기 서양의 그레고리우스력보다 훨씬 정확한 페르시아의 달력 개혁 작업에 참가한 것으로 유명한데 확증은 없다.
하이얌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는데, 당시는 천문학이 점성술이고 점성술이 천문학인 시대였다. 하이얌 자신은 점성술을 믿지 않았지만 최고 권력자인 술탄이 부르면 어쩔 수 없이 달려가 미래를 예언해 줬다고 전한다.
한잔 술 마시며 인생 본모습 받아들이라
이슬람권에서 하이얌은 철학자 · 수학자로 명성이 높았지만 시인으로서는 평가가 별로였다. 2류나 3류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영미권에서 시성(詩聖)으로 인정받고 세계 70여 개 언어로 번역되자 그의 고향 페르시아에서도 그를 다시 보게 됐다.
피츠제럴드의 영문판 『루바이야트』를 통해 12세기 페르시아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만났다. 영문판이 나온 1859년은 본 의도와 달리 창조설에 일격을 가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해이기도 했다 (샤르댕 등 많은 신학자가 진화 또한 신의 섭리 속에서 전개한다며 진화론을 포섭해버렸지만…). 『루바이야트』는 당시 영국의 시대 분위기와 딱 들어맞았다. 도시화·산업화로 풍요로움이 도처에 넘치는 수퍼파워 영국… 평화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신(神)에 대한 회의가 만연했지만 그렇다고 신을 아예 버릴 수도 없게 하는 전통의 관성과 죽음의 공포….
『루바이야트』는 껄껄거리며 짧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시들기 전의 장미나 기울기 전 달님에 취하라고 설파했다.
『루바이야트』의 정신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학자들은 커피가 몸에 좋다고 했다가 또 나쁘다고 한다. 커피만 그런가. 인생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나뿐만 아니라 나의 100번째 할아버지도 고민했다. 확답·확신이 없다고 인생을 막 살 것인가. 대충 살 것인가. 허비할 것인가. 아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하루 하루 좋은 벗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면 큰 화는 없다는 게 『루바이야트』의 권고 사항이다.
- 중앙선데이 제374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1 | 2014..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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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티우스(Boethius)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을 그린 삽화 (1385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철학의 위안』, 영국 글래스고대 도서관 소장) |
운명의 속임수 탓, 돈 · 권력 · 명예를 행복으로 착각
보이티우스(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480년께~524 혹은 525년)가 지은 『철학의 위안』(524·이하 『위안』)은 서구에서 1000년 동안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다.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권력자들도 『위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았다. 영국의 앨프리드 대왕(849~899)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1603)은 아예 『위안』을 직접 영어로 번역했다. 『위안』이 제시하는 행복의 길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고통받고 나쁜 사람이 잘 먹고 잘사는 이유는 뭘까. “그런 인식은 착각이다.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좋은 것(the good)’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말한 것처럼 악(惡)은 선(善)의 부재(不在), 선이 없는 것이다. 악(惡이 선(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선이 아니라 돈·권력·명예·쾌락 같은 부적절하고 실망스러운 목표를 추구한다. 그러면서 ‘가짜 행복’을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인간의 의미, 인간에게 궁극적인 것, 진정한 것을 못 보는 것이다. 특히 식욕이나 색욕을 만족시키는 육체적인 쾌락, 물질적인 힘과 용모에 집착 하게 되면 잘못된 감정에 익숙해진다. 그 결과 세상의 참모습과 더욱 멀어진다. 부귀영화라는 길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현세적 쾌락이 아니라 덕을 쌓는 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 있다. 착한 사람, 선을 행하는 사람, 덕망을 쌓는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진짜 행복을 차지한다. 선행은 반드시 보답받는다. 선한 자는 신성한 존재가 되고 악한 자는 짐승처럼 된다. 행복이라는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알게 되면 ‘사악한 자들, 범죄자들이 부귀와 행복을 누린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상태이자 인간이 응당 추구해야 할 목표다. 행복은 사람의 내면에 있다. 최고선(最高善 · highest Good)과 하나가 되는 게 진정한 행복이다. 최고선은 인간 최고의 목적 · 이상이자 행위의 기준이 되는 선이다. 신(神)과 최고선을 동일시할 수도 있다.”
미래 아는 神, 인간에게 자유의지 부여
| | | ▲『철학의 위안』의 한글판(왼쪽)과 영문판 표지 | | -사람들이 진짜 행복 대신 가짜 행복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행운과 불운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운명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운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친근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행운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우리는 돈 · 권력 · 명예 같은 게 행복이라는 허상에 빠진다. 목적을 달성한 행운은 전혀 예상 못했을 때 참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게 운명의 본질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돈다. 운명은 변덕스럽다. 운명의 본질은 변화다. 하지만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운명 또한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인다. 행운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세상의 겉모습만 보게 하는 나쁜 친구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해 주는 불운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친구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 행운 · 불운 모두 우리에게 좋다. 운명은 좋은 사람을 훈육하고 나쁜 사람을 징벌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명한 사람은 불운에 희생되는 법도, 행운 때문에 타락하는 일도 없다. 사실 인간은 운명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운명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인가. “아니다. ‘신성한 이성(divine reason)’인 섭리가 세상을 움직인다. 행운과 불운은 신의 섭리에 종속된다.”
-운명보다 더 강한 신의 섭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사람은 속수무책 아닌가.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 아닌가. “예정(豫定 · predestination) 과 예지(豫知 · foreknowledge)는 다르다. 예정은 ‘미리 정해진 것’이다. 예지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것이다’. 신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뿐이다. 신은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는 것이다. 신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 먹겠다는 결정을 한 것은 신에 의해 자유의지가 부여된 인간이다. 예정과 예지를 혼동하는 이유는 인간이 체험하는 시간과 신이 체험하는 시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신은 시간을 초월해 산다. 신은 영원한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 신은 시간을 초월해 영원하다. 인간이 속한 세상은 시간 안에서 영원하다.”
-철학은 위안을 얻고 행복을 추구하는 데 어떤 구실을 하는가. “철학은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 철학을 도구 삼으면 불행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철학적인 성찰에서 나온다. 특히 신의 마음에 대해 더 많이 철학적으로 성찰할수록 사람은 더 자유롭게 된다.”
보이티우스가 이런 내용의 『위안』을 쓰게 된 동기는 자신의 체험에서 나왔다. 그는 두 명의 로마 황제를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보이티우스 자신, 아들 둘이 모두 집정관(콘술 · consul) 자리에 올랐다. 25세에 원로원 의원, 510년에 집정관, 520년에는 오늘날의 총리에 해당하는 자리로 행정 · 사법을 총괄하는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magister officiorum)이 됐다. 그러나 부러울 게 없던 그는 반역죄 누명을 쓰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의 주군은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한 동고트족 왕 테오도리쿠스였다. 보이티우스는 523년 투옥돼 고문을 당하고 524년 결국 처형됐다. 추락의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그는 특히 외교 특사로 활동했는데,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482년께~565년)와 검은 거래를 한다는 의심을 산 것으로 보인다. 그가 플라톤이 말한 철인왕(哲人王 · philosopher king)이 되려고 꿈꿨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보이티우스가 가톨릭이었으나 테오도리쿠스 왕은 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믿었다는 것도 주군-신하 갈등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옥중에서 쓴 《철학의 위안》(5권)은 참다운 행복은 최고선(最高善)인 신(神) 안에 있다고 말하여 위안해 준다는 내용으로, 고대문예의 교양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와 플라토니즘이 융합되었다.)
순교 인정해 1883년 ‘성 세베리노’로 시성
『돈키호테』, 『동방견문록』, 그람시의 『옥중 수기』 등과 더불어 ‘감옥 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의 위안』은 죽음을 앞둔 보이티우스가 감옥에서 고문과 고문 사이에 짬짬이 틈을 내 쓴 책이다. 보이티우스가 자신의 영혼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자 고백록이다. 『위안』에는 산문 · 운문 · 대화문이 번갈아 나온다. 보이티우스가 물으면 철학을 의인화한 위풍당당한 여성이 대답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위안』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의 조화를 추구했다. 그리스도교적인 내용은 사실상 없고 오히려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학파에 경도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책의 제목이 ‘신앙의 위로’가 아니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보이티우스는 융합과 화합의 아이콘이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 신앙과 철학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데 인생을 바쳤다.
보이티우스는 마지막 로마 철학자이자 첫 중세 철학자, 즉 스콜라 철학자다. 그리스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당시 그리스 문화의 중심인 아테네나 알렉산드리아 에서 공부했다는 설이 있으나 신빙성은 크지 않다. 보이티우스는 늦었지만 1883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됐다. 순교자라고 인정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 세베리노 보에시오’라고 부른다.
『위안』의 내용은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종합적이다. 『위안』에 대해 ‘루저(loser)의 자기 합리화’라는 비판도 있다. 극단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권력·명예가 어느 정도 있어야 행복하다고 봤다.
- 중앙선데이 제372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0 | 201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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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회의주의에 입각한 패러노멀 현상(超常現象, paranormal phenomena) 조사 위원회’ (CSI) 모임에서 발표하고 있는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 |
행운은 그냥 오지 않는다 … 운 좋은 사람을 따라 하라
“깊이 없는 사람은 행운을 믿고, 강한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믿는다.”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이 한 말이다. 19세기엔 그랬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나 운칠복삼(運七福三)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시대다.
20·21세기는 과학의 시대다. 행운도 불운도 과학의 연구 대상이라는 학자가 있다. 리처드 와이즈먼(심리학) 하트퍼드셔대 교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운에 대해서도 원인 · 결과 분석이 가능하다. 남들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운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행운은 학습이 가능한 사고 · 태도 · 행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0대에는 마술사로 성공했던 와이즈먼 교수의 연구 분야는 행운 · 불운, 속임수, 초상현상(超常現象, paranormal phenomena) 같은 것들이다. 왠지 의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국 명문대 에든버러대(윤보선 대통령이 | | | ▲『행운 인자』 한글판(왼쪽)과 영문판 표지. | | 고고학 학사 학위를 받은 대학) 심리학 박사인 와이즈먼 교수는 영국심리학회지(BJP) · 미국심리학회지(AJP),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사이언스에도 논문을 실은 어엿한 ‘주류’ 심리학자다. 와이즈먼 교수는 11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행운 인자(The Luck Factor·幸運 因子])』(2003)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행운 · 불행에 대한 8~10년에 걸친 연구 성과를 담은 역저다.
운 좋은 사람들, 인맥에서 금맥 캐
연구 배경은 이렇다. 이게 궁금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돈을 피하려고 해도 자꾸만 돈이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다. 차이가 뭘까. 과학으로 원인을 풀어보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다. “‘나는 항상 운이 좋다’ 혹은 ‘나는 항상 운이 나쁘다’는 분 중에서 행운 연구에 참가하려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18세 학생에서 은퇴한 84세 회계사까지 400명이 실험 · 인터뷰 · 시험으로 구성되는 연구에 참가했다.
‘운이 좋은 사람(이하 행운인·幸運人)’과 ‘운이 나쁜 사람(이하 불운인·不運人)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다. 생김새 · 지능과 같은 요인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마치 자석(磁石)처럼 행운을 끌어당기는 행운인들은 다음 4가지가 달랐다.
첫째, 행운인(幸運人)은 기회를 맞게 될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행운인은 기회를 잘 만들고, 포착하고, 기회에 잘 반응한다. 한마디로 찬스에 강하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행운인은 ‘행운 네트워킹’에 능하다. 그들은 인맥에서 금맥을 캔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에서도 기회를 포착해 불독처럼 물고 늘어진다.
행운인은 신체언어(body language) 구사를 잘한다. 행운인 불행인의 언행을 촬영해 분석해보니 행운인은 불행인보다 더 자주 웃고 남들과 눈을 더 자주 마주쳤다.
행운인은 삶에 대한 태도가 느긋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 개방적이며, 사물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본다. 이 세 가지 덕분에 행운인은 신문·잡지를 보다가도 기회를 잡는다. 와이즈먼 교수는 피실험자들에게 신문을 나눠주고 신문에 사진이 몇 개나 있는지 세보라고 했다. 불운인은 약 2분이 걸렸다. 행운인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신문 2페이지에 “그만 세도 됩니다. 이 신문에는 사진이 43장 실렸습니다”라는 반 페이지 크기의 안내문을 실었다. 활자 크기는 2.5㎝. 행운인은 봤고 불운인은 못 봤다. 불운인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줬다. 신문 중간에 “이 안내문을 봤다고 말하고 700달러를 받아 가세요”라는 문구를 실은 것이다. 불운인들은 이 안내문도 못 봤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어떤 커피숍으로 가라고 했다. 행운인은 커피숍 근처 보도 위에 놓인 10파운드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불운인은 못 봤다. 왜일까. 불운인은 뭔가에 골똘하다. 심리 테스트를 해보니 불운인은 긴장감 · 불안감의 정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기회도 흘려 보내는 경향이 있다.
둘째, 행운인은 예감 능력이 좋다. 예지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결정을 내린다. 감이 좋은 것이다. 게다가 행운인은 명상이나 기도 같은 활동으로 ‘촉’을 한층 더 예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거짓말 혹은 정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비디오를 틀어주고 진위를 가려보게 하는 테스트를 했더니 역시 행운인들이 더 정확했다. 불행인은 잘 속는 경향이 있다.
셋째, 행운인은 행운을 기대한다. 삶은 살 만하다고 믿는다. 낙관적 · 낙천적이다. 행운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행운인은 과거의 좋은 일을 회상한다. 불운인은 끊임없이 불행했던 순간을 반추한다.
행운·불행에 있어서도 자기충족예언(自己充足豫言, self-fulfilling prophecy)이 들어맞는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말은 씨가 된다. 좋은 씨를 심느냐 나쁜 씨를 심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여기서 ‘씨’는 생각 · 태도 · 실천이다.
와이즈먼 교수의 행운 연구는 행운 · 불행과 온갖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측정했다. 미신하고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봤다. 행운인이나 불운인이나 미신을 믿는 정도는 비슷했다. 한데 행운인은 미신 활동도 긍정적이다. 예컨대 손가락을 교차시킨 다음 소원이 이루어지라고 빌고 주문을 왼다. 불운인은 거울이 깨지면 하루 종일 전전긍긍한다.
평소 습관 깨는 게 행운의 출발점
넷째, 행운인은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 줄 안다. 행운인은 오뚝이다. 나쁜 일이 생겨도 심리적인 기법(psychological techniques)을 동원해 극복한다. 예컨대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면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행운의 원칙 4가지를 발견한 와이즈먼은 불행인 120명을 모집해 ‘행운 학교(Luck School)’를 열었다. 한 달 동안 네 원칙을 가르쳤다. 졸업할 때 학생의 80%가 운이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1년, 2년 후 졸업생들에게 다시 물어보니 효과가 유지됐다는 게 밝혀졌다.
물론 인과관계가 거꾸로일 수도 있다. 잘 웃어서 행운이 찾아 오는 게 아니라, 항상 불운하기 때문에 표정이 어두운 것이다. 하지만 행운·불운과 와이즈먼 교수가 주장하는 행운의 원칙 4가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행운 원칙 4가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와이즈먼 교수는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완벽한 우연’은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한다.
와이즈먼 교수에 따르면 행운 부리기를 배울 수 없는 사람은 딱 두 종류다. 불운한 지금 이대로가 나름대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불행 자체가 자기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또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들도 행운인이 될 수 없다. 4원칙을 습득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감당할 준비가 돼야 행운인으로서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이 말이 생각난다.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게 행운이다.”
백문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이다. 무엇을 해볼 것인가. 와이즈먼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해보라고 권한다. 일상 습관에서 벗어나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안 먹어본 음식을 먹어라. TV에서 사극이나 뉴스만 본다면, 가요 프로도 보고 개그 프로도 보라. 하루 동안 생긴 좋은 일들을 일기에 적어봐라. 아무리 작은 행운이라도 적어라. 100원짜리 동전을 주었다고 기록하라. 천금도 그 시작은 한 푼이다.
- 중앙선데이 제370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0 | 201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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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오도르 샤세리오(Theodore Chassseriau, 1819~1856)가 그린 토크빌(Tocqueville)의 초상화(1850년 작품). |
초기 미국서 ‘계급 없는 사회’ 가능성 발견한 선견지명
1831~32년 요즘으로 치면 대학원생 나이였던 알렉시 드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은 미국의 교도소 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9개월 동안 당시 미국 24개 주 중 17개 주와 캐나다를 방문했다. 핑계였다. 그의 관심은 미국의 사회와 정치였다.
토크빌은 민주주의 혁명이 700년 전부터 역사의 대세로 전진하고 있다고 봤다. 귀족은 미래가 없었다. 언젠가 모든 특권을 상실한 운명이었다. 하지만 유럽은 공화주의 · 민주주의가 갈지자 걸음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있었다. 유독 미국만 ‘잘나가는’ 이유가 뭘까. 이게 토크빌의 의문이었다. 미국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 미국에 대해 아무도 잘 몰랐다.
| | | ▲ 『미국의 민주주의』의 한글판 (왼쪽)과 영문판 (2003년 펭귄 클래식판) 표지. | | 짧은 기간이었지만 토크빌은 미국의 정치 · 법 · 경제 · 문학 · 종교 · 신문 · 관습을 샅샅이 훑었다. 그 결과 탄생한 『미국의 민주주의 (De la democratie en Amerique, Democracy in America』1835, 1840)는 미국 대학생들의 필독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학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이론의 최고 고전으로 손꼽힌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토론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들이 토크빌을 인용했다. 미국 좌파 · 우파 모두 그를 인용한다. 식자층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메시지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담겨 있어 설득력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점 포착해 그 이유와 의미 일반화
토크빌은 비교에 강했다. 다른 점을 포착하면 ‘왜 다를까’ ‘다르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하는 질문에 답하는 일반화에 귀신 같은 재주가 있었다. 1835년 영국과 아일랜드를 여행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프랑스인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바라지 않는다. 영국인이 바라는 것은 자신보다 못난 사람이다. 프랑스인은 항상 불안스러운 눈으로 위를 쳐다본다. 영국인은 만족스럽게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토크빌이 대면한 미국은 유럽, 특히 프랑스와 아주 달랐다. 미국이 지배하는 것은 “조건의 평등(equality of conditions)”이었다.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과는 상관없이 미국인들은 주위 다른 사람들만큼 자신이 훌륭하거나 더 훌륭하다고 자부했다. 미국인들에게 분수(分數)라는 것은 없었다.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이자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다. ‘자신의 신분에 맞게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이 분수라는 단어가 말하는 지혜인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관념이다.
미국인들의 물질주의도 눈에 확 띄었다. 토크빌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땅 위의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본다. 딱 이 한가지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해서다. ‘이것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의 귀족들은 상대적으로 돈에 관심이 없었다. 반면 경제적 미래 · 희망이 없는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 계급은 생존에 급급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국가와 종교가 분리된 것도 민주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 한다고 봤다. 분리의 결과로 종교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가문의 종교인 가톨릭과는 일정한 거리를 뒀지만 유신론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神)은 인간을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운명의 선(線)이 둘러싸고 있다. 누구도 그 선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선 안쪽에서는 누구나 힘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냉전기 미국 보수 · 진보 모두의 아이콘
토크빌에겐 ‘민주주의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릴 만한 명성이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유럽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미국의 노예제 문제를 두고 “역사상 가장 끔찍한 내전” 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언젠가는 미국이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 중 하나가 된다” 고 내다봤다. 미 · 소 냉전도 일찌감치 점쳤다. 때가 되면 미국과 러시아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며 이는 신의 섭리라고 주장했다.
냉전기간에 토크빌은 마르크스주의에 맞서는 아이콘적인 인물이었다. 역사가 검증한 토크빌의 예측은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론이나 사회과학의 ‘예언력’에 대항하기에 충분했다. 토크빌은 1848년 9월 프랑스 제헌의회에서 사회주의를 공격한 바 있다. 게다가 토크빌이 ‘계급 없는 사회’를 주장한 것도 서구의 보수주의 · 진보주의 모두에게 큰 강점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한 영국 작가 프랜시스 트롤로프(1779~1863)가 『미국인의 가정 매너』(1832)에서 그린 미국은 토크빌의 미국과 대조적이었다. 트롤로프에게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미국은 야만과 문명의 경계에 놓인 곳이었다. 길도 나쁘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이처럼 별볼일 없어 보이던 미국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데 토크빌의 학문적 위대함이 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칭찬만 한 것은 아니다. 물질주의와 지나친 개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봤다. 토크빌에게는 자유가 최고의 가치였다. 자유와 평등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는 자유를 선택했으리라. 그런 토크빌이기에 그는 평등에 대한 지나친 강조의 결과가 민주주의를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 이나 ‘연성(軟性) 독재(soft despotism)’ 가 변질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귀족 출신인 토크빌은 왕정과 공화정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살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쭉 그랬다. 토크빌은 공화주의자 · 민주주의자였지만 그의 가문은 왕당파였다. 다수 일족이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죽거나 망명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하다” 고 말한 토크빌은 정치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지만 정치학보다는 사실 정치나 출세에 더 관심이 많았다. 『미국의 민주주의』 출간으로 돈도 꽤 벌었고 국회 진출에 필요한 지명도도 높였다.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제2공화국 헌법 초안 입안자 중 한 사람이 됐다. 1849년 6월 3일에서 10월 31일까지 짧지만 외무부장관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무당파에 가까웠고 사상가였던 그는 정치 현실을 헤쳐가는 데는 미숙했다. ‘철인 정치’라는 이상은 현실 앞에 무력했다. 토크빌의 정치 참여에 대해 ‘재능 낭비’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토크빌은 영국 평민 여성과 결혼했다. 틈틈이 바람을 피워 부부 사이에 위기도 있었다. 평생 골골거리며 병치레가 끊이지 않았던 그는 결국 결핵으로 사망했다.
토크빌에게 평등은 민주사회의 조건이자 팩트이자 원칙이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민주국가들이 평등의 위기를 겪고 있다. 민주주의의 바탕은 평등과 자유의 균형이다. 평등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는다는 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모든 민주 시민이 기억해야 할 책이다. 토크빌의 예언 중에는 빗나간 경우도 많다. 하지만 관찰, 자료 수집과 분석, 토론으로 구성되는 그의 방법론은 교과서적인 모범을 제시한다. 직장인을 포함해 변화를 읽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모델이 『미국의 민주주의』에 있다.
- 중앙선데이 제368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9 | 2014..03.30 |
28.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 ▲ 체스터턴(G.K. Chesterton)은 키 1m93㎝에 몸무게가 130㎏인 거구였다. |
詩처럼 살다간 프란치스코, 휴머니즘 제1영웅의 전기
나쁜 중독이건 좋은 중독이건 중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세계는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매료됐다. 교황의 즉위 명이 프란치스코가 아니었다면 지금 같은 열광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동물보호주의, 환경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esco d’Assise, 1182~1226)는 예수에 중독된 사람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살렸다. 13세기의 종교개혁가였다.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지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개신교 종교개혁도 없었으리라. (성 프란치스코는 개신교에서도 많은 목사, 평신도가 좋아한다.)
가톨릭 교회사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성인 중에서 위상이 성모 마리아 다음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곧이곧대로 ‘과격하게’ 실천한 부담스럽고 또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교황 전에는 누구도 ‘감히’ 프란치스코를 즉위 명으로 쓰지 않았다.
| | |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문판 표지. | |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하느님의 바보’라 지칭한 성 프란치스코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에 대한 수많은 전기(傳記) 중에서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K. Chesterton, 1874~1936)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923)를 빠트릴 수 없다. (아쉽게도 우리말 번역본은 아직 없다.) 체스터턴은 “기독교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고 말한 인물로,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선 “삶 전체가 시(詩)였던 시인, 휴머니즘의 첫 번째 영웅”이라고 평했다
교황, 체스터턴 시복 운동 기도문 승인
성 프란치스코→체스터턴→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사슬은 흥미롭다. 한때 데카당스(decadence · 퇴폐주의) 문학에 빠졌던 체스터턴은 성 프란치스코로 말미암아 자신의 신앙을 복원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대주교로서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체스터턴 시복 운동을 위한 기도문을 승인한 것이었다. 체스터턴이 복자에 이어 성인이 된다면, 언론인 · 작가의 수호성인이 될 가능성이 꽤 높다.
체스터턴은 작가였다. 세분하면 언론인 · 칼럼니스트 · 소설가 · 시인 · 전기작가였다. 가톨릭의 대표적인 평신도 신학자 · 호교론자였다. 1922년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가 견진 이름으로 선택한 게 바로 프란치스코다. 그는 보수주의적 가톨릭 신자들의 아이콘이다.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체스터턴은 단행본 80편, 에세이 4000편을 남겼는데 이런 식으로 글을 썼다. 예컨대 전기 『토마스 아퀴나스』(1933)를 쓸 때는 이랬다. 여비서에게 책 전체 분량의 50%를 쉴 새 없이 불러 준다. (아퀴나스도 같은 방식으로 책을 집필했다. 뇌우처럼 말을 쏟아내면 비서들이 돌아가며 받아쓰기를 했다.) 그런 다음 여비서에게 서점에 가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책을 사오라고 시킨다. 여비사가 “무슨 책이요?”라고 물으면 “아무 책이건 사오라”고 말한다. 여비서 입장에서는 아무 책이나 사올 수 없어 토마스 아퀴나스 전문 학자에게 뭘 사와야 하는지 문의한다. 학자가 작성해 준 목록으로 책방에서 책을 사온다. 책을 받은 체스터턴은 대충 책을 훑어본다. 절대 정독은 안 했다. 줄 칠 일도 없다. 휙휙···. 서문 · 목차 · 본문 · 색인을 빛의 속도로 지나간 다음 책의 나머지 50%를 비서에게 불러준다. 책이 나온다. 수십 년간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구한 학자는 ‘절망’한다. 마치 아퀴나스의 저작을 꼼꼼히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아퀴나스의 마음과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토마스 아퀴나스』를 썼기 때문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150쪽이 안 되는 분량이다.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체스터턴이 염두에 둔 독자는 학자나 신앙인이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지니고 있는 일반인’이었다. 이런 내용이다.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포목상집 아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다. 본명은 조반니(요한)다. 프란치스코는 ‘귀여운 프랑스 사람’ 이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프랑스로 장사하러 갔을 때 따라 갔으리라.
프랑스의 풍물, 특히 트루바두르(Troubadour)로 불리는 음유시인들을 흠모했다.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어로 시를 쓴 최초의 시인이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로 시작되는 ‘평화의 기도’의 파괴력은 어쩌면 그가 시인이었기에 가능했다.
회심 전의 프란치스코는 요즘으로 말하면 ‘오렌지족’, 북한말로 표현하자면 ‘놀새’였다. 친구들에게 크게 한 턱 쏘기를 좋아했다. 장안의 소문난 플레이보이였다. 그녀들 집앞에서 세레나데를 한 곡조 뽑으면 ‘양귀비’건 ‘베아트리체’건 ‘로라’건 다 넘어왔다.
프란치스코 제자 생전에 1만 명 넘어
그의 본향 아시시가 전쟁을 하게 됐다. 놀다 놀다 지쳤는지 아니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는지 또 아니면 집안에 돈은 많으니 장군으로 출세해 권력 까지 쥐겠다는 욕망이 불현듯 싹텄는지 모르겠다. 아시시군은 전쟁에서 졌고 프란치스코는 감옥에 갇혔다. 세상 아무 근심이 없던 그로서는 태어나 처음 맛보는 실패였으리라. 아버지가 돈으로 감옥에서 그를 빼 왔다.
자꾸 꿈에 ‘그’가 나타나 “네가 갈 길은 지금 네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다. 네가 할 일은 쓰러져가는 내 교회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담이 그를 짓눌렀다. ‘내 팔자에 돈은 있어도 권력은 없는 것인가’ 하는 식으로 고심하던 어느 날 길을 가다 나환자를 만났다. 어려서부터 예수의 나환자 사랑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프란치스코였지만 무서웠다. 도망갔다.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로마로부터 도망치던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로마로 돌아갔듯, 프란치스코 또한 예수를 배신할 수 없었다. 나환자에게 되돌아갔다. 수중의 돈을 다 주고 그에게 키스했다. 그러자 그 나환자가 예수라는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줬다고 전한다.
실제였는지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예수를 만난 프란치스코는 ‘탕아’ 생활을 청산한다. ‘맨발의 성인’이 됐다. 헤어 셔츠(hair shirt · 고행을 위해 입는 거친 천으로 만든 셔츠)만 남기고 훌훌 다 벗어버린 것이다. ‘정신 나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따르는 제자들이 한 명씩 두 명씩 늘어갔다. 예수 운동이 12 제자로 시작됐듯 제자가 12명이었을 때 1209년 교황을 알현한 후 수도회 설립 인가를 받았다. 생전에 제자가 1만 명을 넘었다.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기간에 무슬림들을 옹호했으며 1219년에는 이집트를 방문해 술탄의 개종을 위해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
성 프란치스코에겐 반(反)지성적(anti-intellectual) 성향이 있었다. ‘서양의 탁발승’이라 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는 ‘학승(學僧)’이 아니라 ‘선승(禪僧)’이었다.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또 다른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한때 ‘놀고 먹기 중독자’였던 프란치스코가 중독에서 빠져나왔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프란치스코를 통해 일 중독, 섹스 중독, 담배 중독, 남을 미워하는 ‘증오 중독’에서 빠져나와 영육(靈肉) 간에 보다 더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 중앙선데이 제366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8 | 2014..03.16 |
| ▲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 한 바넘(P T Barnum의 사진(1855~1865년께 촬영). |
돈 버는 첫걸음? 규칙 연구하고 인간 본성 파헤쳐라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미국 사람들이 ‘이사 갈 때 성경책과 내셔널지오그래픽만은 꼭 챙겨간다’는 명성이 있는 고급 잡지다. 지금은 모르지만 적어도 ‘옛날’에는 그랬다. 이 잡지의 국제판 편집장에게 물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경쟁지는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의 시간을 뺏는 모든 게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경쟁자다.” 그래서 또 물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편집 방침은 무엇인가?” 이게 답이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뭔가를 준다.”
편집장의 답변의 원전은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 T Barnum·1810~1891)이 말한 “우리에겐 모든 사람을 위한 뭔가가 있다(We’ve got something for everybody)”이다. 심리학 이론에도 영감을 준 꽤 유명한 말이다. “일반적이고 모호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성격묘사를 특정 개인, 즉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을 지칭하는 심리적 성향을 ‘바넘 효과’라고 부른다 (‘바넘 효과’는 역술인이 일반적인 이야기만 해도 점 보러 간 사람이 ‘이 사람, 족집게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최고의 쇼맨 … 19세기 가장 유명한 미국인
바넘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흥미로운 사람이다. 역사상 최고의 쇼맨(showman · 행사기획자)이라 불리는 그의 삶을 소재로 한 뮤지칼 ‘바넘’(1980)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854차례 공연됐으며 미국 최고의 연극·뮤지컬 상인 토니상(Tony Awards)을 3개 부문에서 받았다. 그는 오늘날에도 마케팅 분야의 연구 대상인 홍보의 달인이었다. 바넘은 소비자가 광고를 7번은 봐야 실제로 상품을 사게 된다고 주장했는데 자기 홍보(self-promotion)에도 능했다. 그는 자서전 『P T 바넘의 인생』(1854)에 대해 저작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자서전은 19세기 말 성서만큼 많이 인쇄됐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인 중 한 사람이었다.
| | | ▲ 『돈 버는 법』의 한글판이 포함된 『한 권으로 끝내는 부와 성공』(왼쪽)과 영문판. | |
바넘이 지은 『돈 버는 법(The Art of Money Getting·1880)』은 축재(蓄財) 분야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부제는 ‘돈 벌기를 위한 황금률(Golden Rules for Making Money)’이다 (영문 제목에서 ‘art’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기술이나 예술이라기보다는 ‘기예(技藝)’다. 기예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다. 그렇게 본다면 “The art is long, life is short.”는 “기예는 길고 인생은 짧다”고 옮기는 게 적절하다).
한 시간이면 읽는 분량인 『돈 버는 법』 또한 한때 미국 집집마다 있던 책이었다. 출판 이후 줄곧 절판이란 것을 모르는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허망할 정도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인 내용이다. 『돈 버는 법』은 8개 장(章)을 통해 경제적 성공의 20가지 법칙을 설파했는데 골자는 자신에게 맞는 직업, 훌륭한 인품, 인내심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 광고는 필수라는 것이다. 바넘에 따르면 돈 모으기의 핵심은 버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이다. 바넘은 필수품과 사치품 구입 목록을 노트에 적어보라고 했다. 사치품이 필수품보다 3배에서 10배는 많을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는 빚을 지면 안 된다” “부채는 자긍심을 빼앗아가고 자신을 거의 경멸하게 만든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비즈니스에 대해 완벽히 아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신감을 갖고 뛰어들어라, 규칙을 연구하고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라”는 경구로 그는 기본을 강조했다.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은 인류라는 종족으로부터 차단된 것”이라며 업계 동향을 알기 위해서는 신문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어쩌면 이 책은 안현필(1913~1999) 선생이 지은 영어학습서로 1950년대 초판이 나온 『영어실력기초』를 상기시킨다. 『영어실력기초』 자체가 영어의 기본적 · 핵심적 내용이 담겨 있지만, 저자 안현필은 영어 공부하다 막히는 경우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읽을 필요도 있다고 권했다. 사실 다수 영어 학습자는 기본에 취약하기에 “I am a boy and you are a girl”이 나오는 중학교 교과서로 돌아가면 얻는 게 있다. 왜 “I am boy and you are girl”이 아닐까. 또 “I am the boy and you are the girl”이나 쌍반점(semicolon·세미콜론)을 써서 “I am a boy; you are a girl” 혹은 “I am a boy. And you are a girl”이라고 하면 뜻이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일까.
‘사기’로 돈 벌어 좋은 일하고 떠난 부자
경제생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었으며 주요 경제 기사도 매일 스크랩해가며 읽지만 성과가 미흡하다면 한 번쯤 초심의 영감을 얻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 바넘의 『돈 버는 법』이다. 바넘은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온 힘을 다해 그 일을 하라”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대야망(大野望)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분야가 맞지 않으면 최선을 다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바넘은 이렇게 충고한다. “우리가 짓고 있는 표정이 다르듯 우리의 뇌도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정비공으로 태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기계를 싫어한다··· 어떤 사람은 자연이 그를 위해 마련한 직업, 또 그의 특별한 재능에 가장 적합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사람마다 성공을 막는 특유의 개인적인 걸림돌이 있다. 바넘은 술을 풍요를 막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바넘은 한때 하루 10~15대의 시가를 피웠으며 씹는 담배도 애용했는데, 특히 술에 대해 단호했다. 바넘은 이렇게 간단하게 말했다. “돈을 벌려면 정신이 맑아야 한다.”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난 바넘은 서커스 산업에 투신한 후 흥행사로 성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파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 정직하고 반듯해야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 자신은 사기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짜 ‘털 달린 물고기’ ‘인어’를 전시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가장 숭고한 기예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다”라고 말했던 바넘은 자신의 잘못을 상쇄하려는 듯 광대한 땅을 고향에 기증했다. 바넘은 후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강하게 의식했다. 그는 죽기 직전 신문사에 부탁해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읽어봤다.
『돈 버는 법』에는 사례나 인용문이 풍부하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통용된다는 이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신중하면서도 과감하라(Be both cautious and bold).”
- 중앙선데이 제364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7 | 2014..03.02 |
| ▲ 사진작가 A F 브래들리가 1906년 샌프랜시스코 대지진 이재민 돕기 운동에 쓰기 위해 뉴욕에서 찍은 마크 트웨인의 모습(1907). |
자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톰과의 만남은 필수
미국에도 지리적 · 문화적 차이가 빚는 지역 간 갈등과 차별이 있다.
미국을 동서로 나누는 것은 세계에서 4번째로 긴 강인 미시시피다. 인디언 말로 ‘큰 강’ 이라는 뜻인 미시시피강 이서(以西) 지역이 배출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은 아이오와 주 출신인 제31대 허버트 후버(1874~1964)다. 하와이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미시시피 강의 서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5명에 불과하다. (미국 동부 하버드 · 예일 · 프린스턴대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며 실리콘밸리를 장악한 서부 명문 캘리포니아공과대 · 스탠퍼드 · UC버클리 출신도 일자리를 찾아 동부로 가면 ‘미묘한’ 차별을 경험한다.)
| | | ▲ 『톰 소여의 모험』의 우리말(왼쪽), 영문판(옥스퍼드 월드 클래식판·1993). | |
『톰 소여의 모험』(1876·이하 『모험』)은 미국 동부 · 서부를 가르는 대경계(對境界)인 미시시피 강가에 있는 가공의 마을 세인트피터즈버그를 무대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어린이-어른이라는 또 다른 대경계를 다룬 어린이 · 성장 · 풍자 · 로맨스 · (악당이 등장하는)피카레스크 소설이다. 트웨인은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5)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읽어야지 분석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헤밍웨이가 인정한 美문학의 아버지
저자인 마크 트웨인(본명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1835~1910)은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한다. 194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1897~1962)는 트웨인을 일컬어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했다. 195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미국 문학은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고 평가했다.
기성(旣成)세대, 비(非)기성세대를 막론하고 한국에서도 톰 소여를 모르기는 쉽지 않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사 주신 세계문학전집에도 『소공자』 『소공녀』와 함께 꼭 포함됐다. 1990, 2000년대에는 만화영화로도 방영됐다.
국민 · 초등학교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늘그막의 예고편이 보일락 말락 하는 독자들은 어린이용이 아닌, 『모험』의 원래 전문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찌든 어른 세계에서 동심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의미 있는 느낌을 위해서다. 또 ‘우리 자랄 때와는 너무 다른’ 것처럼 보이는 우리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JTBC에서 매주 화요일 밤 10시55분에 방영하고 있는 ‘유자식상팔자’를 보면 내가 20대에야 알게 된, 심지어는 40, 50이 넘어서야 알게 된 인생살이의 요령과 지혜를 요즘 어린이 · 청소년들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영악하기만 하다는 생각은 오해다. 아이들은 어릴 적 우리처럼 영악하면서도 동시에 순수하다. 우리 또한 그랬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게 『모험』이다. 희로애락은 어른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린이도 기쁨과 고통 사이에서 번민한다. 미국의 1830~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에서 오늘의 우리 상황과 비슷한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큰 생각거리를 던진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는 어른의 어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모험』이다.
트웨인의 어릴 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모험』의 주인공인 톰 소여는 영웅이다. 하지만 ‘착한’ 어린이는 아니다. 개구쟁이 · 말썽꾸러기 · 장난꾸러기다. 과감하기도 하고 통도 큰 어린이다. 동네 불량 소년 허클베리 핀과 밤마다 노느라 수업시간에는 꾸벅꾸벅 존다.
톰은 꾀돌이다. 폴리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모가 벌로 내린 울타리 페인트칠을 친구들을 꼬여 대신 시키고 자신은 감독만 한 적도 있다. 이 대목에 나오는 소설 속 격언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탐내게 하려면, 그것을 얻기 힘들게 만들어야만 한다.” “몸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일, 무엇이든 그렇지 않은 게 놀이다.” 폴리 이모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자유를 부르짖으며 잔소리에 몸서리치는 자녀에 대한 규율 · 편달의 필요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어버이를 상징한다.
톰은 여자를 꼬이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술수’가 돼 버린 방법으로, 새로 전학 온 푸른 눈에 금발인 판사 딸 베키의 옆자리에 앉는다.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며 구애에 나선다. 방과후 약속 장소에서는 ‘약혼’ 관계를 맺고 약혼의 확인을 위해 뽀뽀도 한다. 국가도 개인도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는 부담을 느끼기 마련. 하지만 ‘고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의 부담을 털어내려는 듯, 톰은 에이미 로런스라는 과거 여자의 존재에 대해 고백한다. 베키는 냉정히 돌아선다. ‘미시시피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톰과 베키의 밀고 당기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데 톰은 자신이 한 말(아이 러브 유)과 행동(키스)을 ‘책임지는 남자’였다. 선생님의 책을 실수로 찢은 베키를 대신해 자신이 한 일이라고 죄를 대신 뒤집어썼다. 톰은 또한 1만2000달러(오늘날의 약 25만 달러) 보물을 발견해 노후를 걱정할 일이 없게 된 어린이 재벌, ‘능력남’이기도 했다.
핼리 혜성 왔을 때 출생, 다시 왔을 때 사망
톰에겐 성인들에게도 결핍되기 쉬운, 의리가 있었다. 주거부정(住居不定)에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 술주정뱅이를 아버지로 둔, 어린 나이에 담배까지 피우는 허클베리와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다. 트웨인은 “화가 나면 넷까지 세고, 진짜 화가 나면 욕을 하라”고 했는데 허클베리 또한 동네 최고 욕쟁이였다.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험』과 짝을 이룰 만한 것은 아동극 『피터 팬』(1904)이다. 톰에게는 베키가, 피터 팬에게는 웬디가 있었다. 피터 팬은 자라지 않았지만, 톰은 어른이 됐다. 어린이-어른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데서 발생하는 ‘피터 팬 신드롬’의 극복을 우리는 『모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임을 지는 것이다. 톰은 사랑 분야에서 책임을 졌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살인 사건의 진범에 대해 증언한다. “어린이도 말할 권리가 있다”며···.
자신이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을 수습(cleaning up one’s own mess)하는 게 어른이다. 『모험』 속 톰은 그렇게 한다. 수습을 위해서는 고통도 따른다. 어린이 톰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불필요한, 수습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자초한다. 하지만 톰은 책임지고 해결한다.
『모험』의 톰처럼 트웨인도 책임감이 투철했다. 투자 실패로 파산했으나 갚지 않아도 될 돈을 글을 써 얻은 소득으로 다 갚았다. 프리메이슨이었던 그는 노예제와 제국주의에 반대했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지했다. 핼리 혜성이 지구에 근접했을 때 태어난 트웨인은, 자신이 예언한 그대로 핼리 혜성이 다시 나타났을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한때 기자생활을 한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선 팩트(fact·事實)를 수집하라. 그런 다음에는 원하는 만큼 팩트를 왜곡할 수 있다.”
- 중앙선데이 제361호 [김환영의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6 | 201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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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중앙일보 기자로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정치학박사)에서 공부했다.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한경대 영어과 겸임교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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