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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산에서 북으로 본 조항령과 운달산 정상(오른쪽). 왼쪽은 성주봉. 멀리는 백두대간 상의 대미산과 문수봉.
백두대간 상의 대미산(1,145m)에서 남으로 가지 치는 능선이 운달지맥이다. 운달지맥이 여우목고개(해발 약 600m)를 지나 911.9m봉에 이르면 남동으로 도화목재(東下項峙·577m)~공덕산(功德山·912.9m)~천주봉(天柱峰·839m)으로 능선을 하나 분가시키고, 911.9m봉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전령(馬轉嶺·661.7m)에서 지맥의 이름을 낳은 운달산(雲達山·1,097.2m)으로 이어진다. 이 운달산에서는 서쪽으로 성주봉(891m·聖主峰)이 가지쳐 나간다.
운달산에서 계속 남진하는 운달지맥은 조항령(鳥項嶺)을 지나 현재 활공장으로 변한 866.9m봉을 살짝 들어올린 다음 남쪽 단산(壇山·956m)~배나무산(813m)~월방산(月芳山·360.1m)~ 약천산(藥泉山·212.3m)으로 이어진 후 영강과 낙동강이 합수되는 영순면 말응리에서 여맥을 다한다.
운달산 이름은 ‘구름에 가 닿는다’는 뜻으로, 즉 하늘에 오른다는 얘기가 되지만, ‘해탈이 경지에 올랐다’는 뜻으로 운달조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김룡사사적서(金龍寺事蹟序)에는 운달산이 ‘운봉(雲峰)’으로 기록되어 있고, 문경시 산북면이 세운 정상비석에는 ‘용뢰산(龍磊山)’이라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운달산을 육산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세가 부드럽게 보여 그렇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울창한 수림으로 돌무더기들을 감추었을 뿐, 실제로는 도처에 암릉과 기암괴석들이 숨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운달산 서릉에 거대한 수석인양 자리한 성주봉이다.
운달산은 웅장한 산세와 명성에 비해 등산인들 발길이 뜸한 산이다. 가장 인구가 많은 수도권 등산인들이 운달산에 다다르기 전에 조령산, 주흘산, 월악산 등에서 많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 마주보고 있는 주흘산 못지않게 운달산도 등산 및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경읍과 인접한 고요리에서 운달산 산허리를 넘어 김룡사와 대승사 방면으로 연결되는 조항령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도로가 개설되면 김룡사 방면이 문경새재와 연계된다.
문경읍에서 동으로 약 8km지만, 점촌동 방면 호계면이나 산북면을 거쳐 약 20km가 넘는 거리를 돌아들어야 한다. 문경읍 방면 고요리나 당포리에서 정상으로 접근하려면 성주봉 암릉 종주길이 유일하다.
◎ 운달산
장군목·남릉 헬기장·성주봉 코스가 대표적
운달산(1,097.2m) 등산코스는 문경읍과 산북면 경계를 이루는 남릉을 기준으로 동쪽 산북면 김용리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김용리 운달계곡을 경유하는 이 코스는 운달계곡~장군목~북동릉, 화장암~943m봉 능선~남릉 헬기장 경유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운달계곡 대성암에서 양진암~남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폐쇄됐다.
운달계곡~장군목~북동릉~정상 이 코스는 경사도가 완만한 계곡길로 해발 약 850m인 장군목에 이른 다음, 표고차 약 200m만 오르면 정상을 쉽게 밟게 된다.
▲ 장군목에서 30분 거리인 전망바위에서 마주본 운달산 정상.
김룡사 주차장(버스종점)에서 김천식당 앞을 지나는 숲길 안으로 10분 가면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에 닿는다. 홍하문을 지나 약 100m 들어서면 삼거리다. 오른쪽 길 50m 위로 보이는 보장문(寶藏門)이 김룡사 대문이다.
삼거리에서 직진, 전나무숲 길로 6~7분 들어가면 여여교(如如橋)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대성암과 양진암으로 가는 길이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오른쪽 계곡길을 따라 10분 들어서면 화장암 입구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계속 계곡길로 15분 가면 울퉁불퉁한 돌밭길로 이어진다.
돌밭길로 20분 오르면 합수점에 닿는다. 오른쪽 계곡길로 10분 가면 다래나무 군락 안으로 들어서서 계곡 안으로 15분 가량 들어서면 경사가 가팔라진다. 가파른 경사길로 7~8분 더 오르면 북동릉 상 장군목에 닿는다.
장군목에서 왼쪽 뚜렷한 북동릉 길로 발길을 옮겨 15분 오르면 암봉 아래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암릉 위 전망바위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북사면 우회길이다. 전망바위로 오르면 정면으로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남쪽 아래로는 운달계곡, 동쪽으로는 공덕산과 천주봉이 조망된다.
전망바위에서 양쪽이 수직절벽인 암릉길로 20m 가서 짧은 절벽을 내려서면 북사면 우회길과 만나는 ∪자형 바위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정면으로 마주치는 암벽 오른쪽 북사면 급경사 우회길로 4~5분 오르면 두번째 암릉 상단부 안부에 닿는다. 이 안부를 뒤로하고 왼쪽 아래가 절벽인 바윗길로 10분 오르면 편안한 능선길로 이어진다. 이 능선길로 13분 오르면 푯말(화장암 1시간 20분, 대성암~냉골 2시간)과 마주치는 정상이다.
푯말 북쪽 삼각점(덕산 26) 방면 서릉 갈림길쪽으로는 ‘←성주봉 정상 3시간30분 정도 소요’라고 쓰인 흰색 푯말이 있다. 푯말 남쪽에는 산북면에서 설치한 갈색 화강암 정상비석이 있고, 비석 서쪽 바위 위로 올라서면 조망이 터진다.
주차장을 출발, 운달계곡~장군목~북동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7km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화장암~남릉~정상 김룡사 주차장에서 운달계곡 안으로 10분 거리인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로 8~9분 가면 대성암~양진암 갈림길인 여여교 앞 삼거리에 닿는다. 푯말(양진암 20분, 운달산 정상 2시간20분, 화장암 30분)에서 오른쪽 계곡길로 10분 가면 물탱크가 있는 화장암 입구 삼거리다.
▲ 북동릉 전망바위에서 내려다본 운달계곡.
안내푯말(운달산 정상 2시간)에서 왼쪽 계곡 오르막길로 15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중암골 계류를 건너 화장암 출입문 앞에 닿는다. 비구니 수도처로 외래객 출입을 금하느라 대문 빗장이 잠겨 있다. 화장암 주변은 모과나무와 매실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79년에 신축한 건물들이지만 절마당 아래 오래된 축대와 연못 등은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절 출입문에서 왼쪽 중암골 방면 오르막길로 10분 오르면 출입금지 푯말 삼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는 계곡길은 금선대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50분 거리인 금선대는 스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예나 지금이나 항상 등산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주변 경치가 하도 좋아 옛날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전설 때문에 암(庵) 대신 대(臺) 자를 쓰는 금선대는 김룡사가 창건되기 전 운달조사가 이곳에서 득도했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금선암불사기(金仙庵佛事記)에는 ‘소백산의 유정(惟政)과 송운(松雲)을 비롯한 모악산 지리산 천관산 묘향산 금강산 등 전국의 고승대덕들이 이곳으로 찾아들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 정상에서 본 서쪽 조망. 백화산과 문경읍 오른쪽으로 주흘산과 조령산이 보인다.
아름드리 노송 군락을 이룬 바위지대를 지나면 철쭉나무 군락이 이어진다. 가팔라지는 철쭉나무 군락 사이로 난 길로 15분 오르면 왼쪽으로 문바위가 보인다. 문바위 오른쪽 급경사로 30m 오르면 아름드리 소나무 고사목이 쓰러져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고사목 아래를 통과해 20분 더 오르면 남릉 상 1068m봉에 닿는다.
헬기장에서는 북으로 정상이 가까이 보이고, 남쪽 조항령 방면 능선길 입구에는 ‘단산 가는 길’ 푯말이 있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참나무숲 오르막 능선으로 7~8분 오르면 정상이다.
김룡사 주차장을 출발해 화장암~금선대 입구 삼거리~문바위 능선~남릉 1068m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5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당포리~성주봉~서릉~정상 성주봉(聖主峰·891m)은 운달산 정상 서릉에 솟은 봉이다. 들목인 당포리는 1670년경에 마을이 들어섰고, 고주부사(高州府使)가 이 마을에 처음 서당을 짓고 당포(唐浦)라 이름지었다 전해진다.
당포리에서 4~5대째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은 동쪽 법장골 법장터가 산 너머 김룡사와 연관있다는 전설을 얘기한다. 법장터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 때문에 망하게 됐고, 빈대를 피해 옮겨간 절이 김룡사라는 전설이 그것이다.
또 법장터 북쪽 반석골(일명 중상골, 성주봉 하산코스)에는 장수의 투구와 병서가 숨겨져 있었고, 이곳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장수가 이 용마를 타고 달리다가 낙상해 무릎이 깨어지는 중상을 입어 중상골이라 부른다는 전설도 들려준다. 반석골 반석폭포 상단부 암반에는 장수가 넘어져 생겼다는 바위구덩이가 있다.
당포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마을 가운데에 있는 큰 느티나무숲 휴식공원이다. 1천여 평에 수백 년생 느티나무 20여 그루가 숲을 이룬 휴식공원은 바로 성주봉 산행기점이다. 이 휴식공원을 기점으로 성주봉 정상에 오른 다음, 반석골로 하산, 다시 휴식공원에서 식사나 휴식을 즐기는 원점회귀산행이 인기 있다.
느티나무 휴식공원에서 동쪽 법장골 방면 마을길로 약 100m 가면 안내푯말(성주봉 2시간 소요)이 있다. 여기서 왼쪽 다리를 건너 하얀 건물을 지나 약 100m 가면 안동권씨 사당이 나온다. 사당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곧이어 성주사 갈림길이 나온다.
종지봉을 먼저 오르려면 왼쪽 성주사 방면 과수원길로 들어간다. 과수원길로 15분 들어가면 종지봉 남릉인 대슬랩 아래에 닿는다. 대슬랩을 타고 25분 오르면 종지봉 정상 밑 노송지대에 닿는다. 노송지대에서 왼쪽으로 휘도는 오르막길로 정상 서벽 아래에 이른 다음, 오른쪽 20m 높이 바위지대를 세미클라이밍으로 올라가면 종지봉 정상이다. 종지봉에서 동쪽 안부를 지나 암릉길로 15분 가면 무명봉 헬기장에 닿는다.
▲ 문경읍에서 북동으로 열려다본 성주봉과 운달산 정상(가운데). 오른쪽 산 위 작은 건물은 활공장 전망대.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바윗길로 30분 오르면 바위에서만 자라는 바위손이 다닥다닥 붙은 바위지대에 닿는다. 서쪽으로 종지봉이 마주보이는 길로 오른 다음, 동쪽 숲속으로 휘도는 길로 7~8분 오르면 무덤이 나온다. 무덤에서 북쪽으로 5~6분 오르면 종지봉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무명봉 헬기장에 닿는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15분 거리인 암봉을 넘어가면 20m 밧줄이 걸린 급경사 내리막 벽이다. 이곳을 내려서면 100m 경사진 암벽 아래에 닿는다. 이후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물푸레나무 밑둥을 잡으며 꼭대기로 올라서면 암릉길로 이어진다. 암릉길로 7~8분 가면 정면 아래가 수십 길 절벽인 바위 끝머리에 닿는다. 여기서 뒤로 약 30m 되돌아내린 다음, 남쪽 급사면을 우회하면 절벽 아래 ∪자형 안부로 내려서게 된다.
안부에서 급경사 바윗길로 10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암릉길로 들어선다. 노송군락 아래로 완만한 경사인 암릉을 타고 15분 가면 마지막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급경사 세미클라이밍 구간을 오른 다음, 15분 오르면 푯말(운달산 정상 약 90분 소요)이 있는 성주봉 정상이다.
성주봉 정상에서 전개되는 조망이 일품이다. 북으로는 갈평리와 용연리 분지 위로 대미산에서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보인다. 동으로는 운달산 서릉 최고봉인 954m봉 위로 운달산 정상이 하늘금을 이룬다. 남으로는 법장골 건너로 조항령 활공장 단산으로 이어지는 운달지맥이 한눈에 와닿는다. 남서로는 문경읍이 백화산과 함께 보이고, 서쪽으로는 주흘산이 마주보인다.
성주봉에서 하산하는 경우 남릉으로 내려가도 된다. 이 남릉은 기도터에서 올라올 경우 상단부에서 길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하산은 초심자가 아닌 경우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남릉 상단부 절벽 위 횡단지점은 조심해야 한다.
성주봉에서 급경사 내리막길로 20m 밧줄지대를 내려서면 오른쪽 벽 하단부를 횡단하는 구간이 까다롭다. 횡단길 왼쪽으로 추락을 주의해야 한다. 밧줄에 의지해 ∪자형 안부에 이르면 거의 직벽에 가까운 20m 바위벽이 가로막는다. 이 바위벽 때문에 대부분 남쪽 급경사 너덜지대 협곡을 경유해 반석골로 하산한다.
바위타기에 자신이 있으면 암벽을 5m 오른 지점에서 왼쪽으로 손잡이와 발디딤이 괜찮은 벽을 세미클라이밍으로 10m 가량 더 오르면 턱진 바위가 나온다. 확보용 자일을 사용해야 안전한 곳이다. 턱진 바위에서 20m 오르면 꼭대기 노송에 닿는다. 꼭대기에서 5분 가면 이 암벽을 우회하는 길과 만난다. 암벽 우회길은 안부에서 반석골 방면으로 80m 가량 내려선 지점에서 사면길로 약 100m 오르면 된다.
▲ 853m봉을 지난 남릉에서 북동으로 본 성주봉(왼쪽)과 운달산 정상(오른쪽).
안부를 뒤로하면 ∧형으로 이어지는 바위지대 오른쪽 사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사면길로 20분 오르면 철쭉군락 능선길로 들어간다. 15분 더 오르면 ‘성주봉 정상 3시간30분 정도 소요’ 푯말과 마주치는 운달산 정상이다.
당포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느티나무 휴식공원~종지봉~성지봉~20m 절벽~자연석굴~954m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7km로, 4시간30분 이상 소요된다.
당포리~조항령~남릉~정상 당포리 느티나무 휴식공원에서 동쪽 마을길로 100m 거리인 성주봉 갈림길(왼쪽)에서 법장골 방면 직진하는 마을길을 따라 5~6분 들어가면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 문경요 앞을 지나간다. 문경요를 뒤로하고 사과과수원 옆으로 난 길로 15분 가면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너고, 15분 거리에서 왼쪽으로 계류를 건너간다. 이어 5~6분 가면 반석골로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직진, 6~7분 가면 법장골 합수점 계류를 건너 너럭바위를 통과한다. 너럭바위를 지나 계곡길로 들어서서 5~6분 거리에 이르면 사면길로 이어진다. 8~9분 오르면 낙엽송숲 속 독바우 삼거리에 닿는다. 이 삼거리 왼쪽 평지길은 채석장터로 가는 계곡길이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낙엽송숲 속 오르막길로 20분 들어서면 너덜길로 이어진다.
이후 계곡길은 계속 너덜길이다. 이따금 급경사를 휘돌아 오르기도 하는 너덜길로 40분 가량 오르면 석봉리 협곡 건너로 배나무산과 단산이 마주보이는 조항령에 닿는다. 조항령 고갯길은 석봉리에서 오르는 도로공사로 옛정취가 사라졌다.
조항령에서 왼쪽(북동쪽) 능선길로 들어가 25분 오르면 853m봉 오른쪽 사면길로 들어선다. 853m봉 사면길이 끝나는 능선에 오르면 숲 사이로 운장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40분 거리에 이르면 990m봉 삼거리에 닿는다. 990m봉 남동릉은 김용리와 석봉리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삼거리에서 정상 방면 남릉으로 발길을 옮기면 큼직한 바위들이 도열하듯 이어진다. 직립한 바위에 이어 옆으로 누운 기암들이 줄줄이 나타나는 남릉으로 40분 가면 화장암에서 올라오는 지능선길과 만나는 1068m봉 헬기장으로 들어선다. 헬기장에서 6~7분 더 오르면 정상이다.
당포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느티나무 휴식공원~법장골 합수점~독바우 삼거리~조항령~853m봉~990m봉~남릉~1068m봉 헬기장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9km로, 4시간30분 이상 소요된다.
김룡사
김씨 성이 아들 얻어 용이라 이름지어
김룡사(金龍寺)는 신라 진편왕 10년(588년) 운달조사가 운봉사(雲峰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현재의 김룡사라는 이름은 조선조 문경부사였던 김(金) 모라는 사람이 이 절에서 불공을 드리던 중 절 앞 용소에서 만난 용왕의 딸과 사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용(龍)이라 지은 후 김룡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절로서 제대로 규모를 갖춘 것은 인조 2년(1624년) 혜총선사(慧聰禪師)에 의해서였다. 그 후 소실된 것을 의윤(義允)·무진(無盡)·대휴(大休) 세 선사가 옛 모습을 되살려 놓았다. 한 때 31본산의 한 곳으로 번창시에는 48동에 달하는 대소전각(大小殿閣)을 거느렸다. 현재는 30여 채가 남아 있다.
김룡사는 〈조선사찰전서〉의 저자로 불교학자인 퇴경당(退耕堂) 권상로(權相老·1879-1960) 선생을 배출한 사찰이다. 인조 27년(1649년) 설잠대사(雪岑大師)가 조성한 대웅전(문화재자료 제235호) 안에는 성균대사(省均大師)가 만든 후불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또 하나의 걸작으로 고종 26년(1889년) 사증대사(四證大師)가 조성한 가로 8.25m 세로 7.06m의 괘불탱(지방유형문화재 제303호), 죽은 사람의 생전사(生前事)가 비쳐진다는 거울인 업경대(業鏡臺) 등이 소장되어 있다.
대웅전 왼쪽 경흥강원(慶興講院)으로 불리던 석선당은 3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강원이다. 이 건물은 방바닥 전체가 온돌이고, 부엌 아궁이는 어린이가 서서 걸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큰 것으로 유명하다.
김용사에 딸린 암자로는 역대 선사들 영정을 모신 화장암(華藏庵), 선방인 금선대(金仙臺), 대성암(大成庵), 양진암(養眞庵) 등 네 암자가 있다. 이 암자들은 모두 비구니 수도도량이다. 화장암은 조선조 정조 년간에, 금선대는 김용사 창건과 같은 시기에, 대성암은 정조 24년(1800년) 영월대사(永越大師)가, 양진암은 효종과 현종시대(1650~1674) 때 취진과 신장대사가 초창한 고찰들이다. 이밖에 상원암(上院庵), 운성암(雲成庵), 봉명암(鳳鳴庵), 운수암(雲水庵), 금강암(金剛庵), 내원암(內院庵) 등은 그 터만 남아있다.◎ 단산
탄광지대가 레저타운 배후산행지로 부상
단산(壇山·956m)은 산북면 석봉리와 마성면 외어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80년대 초반부터 88년까지 국내 석탄 소비량의 20%를 공급했던 문경에는 석탄광업소가 40여 곳 있었는데, 그 절반 이상이 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7,000여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다. 단산 일원 탄광지역 갱도는 메워지고 광부 사택도 없어졌으며 석탄과 폐석을 쌓던 곳은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복구했다.
단산에는 천혜의 자연 여건을 갖춘 문경활공랜드가 조성되어 페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그만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문경읍 방면에서 활공장으로 오르는 도로가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인기 있다. 단산 서릉인 봉명산 방면에는 2003년부터 골프장과 콘도미니엄을 갖춘 문경레저타운 조성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산행코스는 산북면 석봉리에서 오르는 길과 산 남동쪽 호계면 부곡리, 남쪽 마성면 외어리 보림골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있다. 그러나 부곡리 방면과 외어리 방면은 이번호 등산지도에서 빠지므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석봉리~굴골~남동릉~정상 굴골~남동릉 코스는 석봉리에서 5대째 살아온 변상직씨(50)가 알려준 길이다. 그로부터 달밝골과 굴골 위치를 비롯해서 남동릉 상의 들비고개, 조항령 방면 새목재골 계곡 이름도 알게 됐다. 달밝골은 굴골 입구에서 약 500m 더 들어간 합수점 부근 지명이다. 새마을회관 뒤 언덕에 살고 있는 변씨는 굴골에서 3년간 살아본 적도 있다.
석봉리 버스종점인 새마을회관 앞에서 조항령 방면으로 약 1km 들어서면 왼쪽 계류 건너 협곡 안으로 좁은 길이 보인다. 이곳이 굴골이다. 굴골 안 비포장 좁은 길로 5분 올라가면 길 오른쪽 개인농장 앞에 ‘출입금지’ 푯말이 있다. 이 농장 뒤 능선이 단산 북동릉인데 길은 없다.
출입금지 푯말에서 5~6분 더 들어가면 두메농원 푯말이 있는 별장 입구에 닿는다. 애완견 3~4마리가 있는 농원 입구에서 오른쪽 계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농원 양철판 담장 끝 바로 위에서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너는 지점에 닿는다. 여기서 식수를 준비한다.
계류 건너 약 100m 올라가면 무덤 1기가 있는 묘목밭이 나온다. 묘목밭 왼쪽 계곡이 땅굴이 있다는 굴골 상류다. 굴골 방면은 쑥대밭으로 뒤덮여 아무리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취재팀은 묘목밭 남쪽 지능선으로 올랐다. 20분 오르면 나오는 무덤 4기를 지나 40분 오르면 남동릉을 밟는다.
배나무산 방면으로 4~5분 가면 굴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들비고개에 닿는다. 들비고개는 옛날 남쪽 외어리 단곡으로 넘나들던 고개였다는데, 남쪽 방면 길은 전혀 보이지 않고 북쪽 굴골 방면 길만 남아 있다. 들비고개에서 동쪽 능선길로 25분 가면 푯말(←단산 정상 1시간, 오정산 2시간→)이 있는 배나무산 정상이다.
▲ 정상에서 북으로 본 활공장. 활공장 뒤는 조항령과 성주봉. 왼쪽 멀리는 포암산과 월악산.
석봉리 새마을회관을 출발해 굴골~묘목밭~지능선(또는 땅굴 있는 굴골 상류~들비고개)~남동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5km로, 3시간이 소요된다. 들비고개~베나무산 정상을 다녀오면 산행거리 7km에 4시간 가량 소요된다.
하산은 들비고개~굴골로 되돌아 내려서거나 들비고개~배나무산~부운령~오정산 방면으로 한다. 또는 북서릉을 타고 활공장(866.9m)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다. 북서릉으로 20분 가면 931m봉 전망바위에 닿는다. 이곳에서 조망되는 장자골 건너 활공장~조항령~운달산 풍광이 일품이다.
전망바위에서 7~8분 더 가면 850m봉 삼거리에 닿는다. 서쪽으로는 동우점고개를 거쳐 봉명산으로 능선이 갈라지고, 계속 능선을 타고 25분 가면 활공장에 닿는다. 활공장은 운달산 자락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남서쪽 멀리 대야산, 둔덕산, 조항산, 청화산 뒤로 속리산 연봉까지 눈에 와닿는다. 백화산, 이화령 아래 문경읍은 물론이고, 그 오른쪽 조령산, 주흘산이 멀리 박달산과 함께 펼쳐진다. 북서쪽으로는 포암산과 월악산이, 북으로는 성주봉 뒤로 대미산, 하설산, 문수봉 등이 조망된다.
단산 산행시 주의점은 탄광 채굴로 패이고 꺼져내린 함몰지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석봉리~조항령~활공장~단산 석봉리 새마을회관 버스종점에서 1km 거리인 굴골 입구에서 약 1km 더 들어가면 장자골(왼쪽)과 새목재골(오른쪽) 입구 합수점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새목재골 초입의 빈 농가 옆길은 조항령으로 직등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코스는 새목재골 안으로 약 500m 위 무덤이 있는 곳까지는 길이 좋지만, 이후로는 넝쿨지대 통과가 쉽지 않고 넝쿨지대를 지나면 다시 옛길 흔적이 뚜렷해지지만, 조항령 도로공사로 굴러내려온 돌멩이들 때문에 위험하다.
합수점에서 왼쪽 다리 건너 장자골을 지나 조항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1시간30분 오르면 새목재골로부터 올라오는 옛길이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조항령에 닿는다. 조항령에서 성주봉이 마주보이는 지점에서 남서쪽(왼쪽) 능선(운달지맥) 길로 들어가 20분 가면 채탄했던 함몰지에 닿는다. 깊이 10m 함몰지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25분 거리에 이르면 서쪽 고요리 방면에서 활공장으로 오르는 도로와 만나는 지점인 통나무 화장실에 닿는다. 화장실에서 남쪽 길로 20분 오르면 활공장 꼭대기에 닿는다. 활공장에서 남쪽 능선길로 25분 거리인 850m봉 삼거리를 지나 30분 가면 단산 정상이다.
석봉리 새마을회관을 출발해 장자골 도로~조항령~함몰지~활공장 도로 화장실~활공장~850m봉을 경유해 단산 정상에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9km로, 5시간 이상 소요된다.
◎ 공덕산
사불산이라 불리던 볼거리 많은 산
공덕산(功德山·912.9m)은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와 동로면 노은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공덕산 이름은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일명 사불암)과 관련지어 사불산(四佛山)으로 부른다. 공덕산의 주인공은 사불암 아래에 자리한 1400여 년 된 고찰 대승사(大乘寺)다. 대승사 일주문 현판에 ‘사불산 대승사’로 쓰여 있다.
공덕산은 대승사 사불암 외에 나옹화상이 거처했다는 묘적암과 안장바위,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윤필암, 그리고 묘봉의 부부바위, 사불암 아래 유무유바위, 윤필암 아래 나도야바위 등 볼거리가 많은 산이다.
등산로는 대승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 활공장에서 시원하게 조망되는 문경읍. 왼쪽부터 백두대간 상의 백화산, 중부내륙고속국도, 이화령터널, 조령산, 주흘산 등이 보인다.
대승사~반야봉~남릉~정상 전두리 대승사 입구 버스정류소 삼거리에 ‘대승사 2.8km’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서 동쪽 좁은 도로를 따라 30분 올라가면 윤필암 방면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대승사 대형 안내판 있음)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20분 더 오르면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일주문 안쪽 현판에 쓰인 불이문(不貳門) 글씨가 눈길을 끈다.
일주문을 뒤로하면 옛날 중국을 다녀온 나옹선사가 기념으로 심었다는 밑둥이 두 아름 되는 전나무숲을 지나 석탑 앞에 이른다. 석탑 오른쪽에 샘물이 있고, 그 오른쪽 콘크리트 전신주로 걸쳐 놓은 다리를 건너가면 산행이 시작된다. 숲속 완만한 사면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20분 오르면 공덕산 남릉 상의 방광재에 닿는다. 동로면 윗무랑 마을 통행로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방광재에서 남쪽 능선길로 10분 가면 암봉인 반야봉에 오른다. 공덕산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823m봉~묘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823m봉 왼쪽 아래로는 대승사, 사불암을 비롯해서 묘적암 등이 샅샅이 보인다. 묘적암 방면 멀리로는 하늘금을 이룬 운달산이 마주보인다. 동쪽 윗무랑 마을 분지 건너로 보이는 천주봉 풍광도 일품이다.
다시 방광재로 되돌아와 남릉을 타고 15분 올라 바위지대를 지난 후 가파른 남릉으로 25분 오르면 20여 평 공터인 정상이다. 삼각점(단양 25)이 있는 정상은 본래 참나무 군락으로 뒤덮여 전혀 조망이 안 되던 곳이었는데, 최근 동쪽으로만 나무들을 베어내 천주봉 조망이 가능해졌다.
전두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대승사~방광재~반야봉~방광재~남릉을 경유해 정상에 이르는 거리는 약 6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대승사~사불암~823m봉~정상 대승사 대웅전 왼쪽(서쪽) 청련당 옆으로 난 사면길이 사불암으로 가는 길이다. 사면길로 5~6분 가면 길 왼쪽으로 ‘유무유(有無有)’ 글씨가 음각된 바위에 닿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허무한 것일 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글씨바위를 뒤로하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양철지붕을 씌운 샘터가 나타난다. 얼굴 높이 양철지붕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얼굴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샘터를 뒤로하고 오르막 바윗길로 15분 올라가면 길 왼쪽 위로 처마바위에 매달린 축구공만한 말벌집이 보인다. 이 말벌집이 매달린 처마바위 꼭대기가 사불암이다. 오른쪽 우회길로 40m 올라가 왼쪽으로 돌아서면 사불암이다.
▲ 사불암 상단부에서 20분 오른 너럭ㅂ가위 전망장소에서 본 묘봉(앞)과 운달산.
15분 더 오르면 묘봉 능선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북쪽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 능선으로 약 200m(6분) 가면 823m봉을 밟는다. 823m봉에서 오른쪽 능선길로 8~9분 내려가면 옛고개 사거리다. 사거리에서 남쪽 계곡길은 대승사로 가는 길이다. 동쪽 오르막길로 20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2분 더 가면 천주봉이 마주보이는 정상이다.
전두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대승사~유무유바위~샘터~사불암~823m봉~옛고개를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6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윤필암~묘봉~823m봉~북서릉~정상 대승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30분 거리인 대승사 안내판 삼거리에서 왼쪽(북쪽)으로 들어서서 15분 오르면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인 윤필암에 닿는다. 윤필암을 뒤로하고 8~9분 오르면 고려시대 작품이라는 마애여래좌상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마애여래좌상에서 7~8분 오르면 묘적암이다.
▲ 샘터를 지나 15분 오른 곳인 사불암바위 하단부. 바위 위로 말벌집이 보인다.
부부바위를 뒤로하고 아름드리 노송들과 바위들이 어우러진 암릉길로 25분 가량 올라가면 한 폭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나는 묘봉 꼭대기를 밟는다. 묘봉에서는 남쪽 아래로 윤필암과 사불암이 뚜렷하게 내려다보인다. 사불암 뒤로는 반야봉이 마주보인다.
묘봉을 뒤로하고 7~8분 가면 사불암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이어 200m(6분) 더 가면 823m봉에 닿고 이후 옛고개를 지나 헬기장을 거쳐 공덕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전두리 버스정류소을 출발해 윤필암~묘적암~안장바위~묘봉~823m봉~옛고개를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5.5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글·사진 박영래 객원기자
대승사
신라 금자화엄경 나온 유적 많은 고찰
대승사(大乘寺)는 신라에 불법이 전해진 법흥왕 15년(528년) 59년 후인 진평왕 9년(587년) 당시 무명의 불도였던 망명비구(亡名比丘)가 창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득통 기화(得通 己和)가 이 절에서 반야경을 연구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선조 37년(1604년)부터 숙종 27년(1701년) 사이에 법당을 비롯해 승당 동상실(東上室), 관음전, 조전, 미륵전, 중실(中室), 시왕전(十王殿), 향로전, 천왕문, 만세루, 침계당, 금당, 영자전(影子殿), 향적전, 음향전, 나한전, 청심전(淸心殿) 등이 건립됐다.
영조 원년(1725년) 의학(義學)대사가 삼존불상을 개금했는데, 이 때 아미타불의 복장에서 사리 1과와 성덕왕 4년(705년) 개명의 금자화엄경 7권이 나왔다. 1956년 실화로 극락전 명부전 산신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들이 전소된 것을 1978년에 대부분 복구했다.
산내 암자로는 윤필암(潤筆庵), 묘적암(妙寂庵), 보현암(普賢庵)이 있다. 문화재로는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불탱각(보물 제575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991호), 마애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239호), 윤필암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유형문화재 제300호), 윤필암 후불탱화(문화재자료 제348호) 등이 있다.
사불암
사면체 바위에 양각된 4개 불상
사불암(四佛岩)은 삼면이 수직절벽인 너럭바위 위에 높이 2.5m에 각 면이 1.5m 안팎이 되는 사면체 기둥바위다.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4면에 모두 돋을새김된 불상이 있다. 모두 여래상으로 동서면은 좌상이고, 남북면은 입상이다.
사불암에 대해서는 ‘진편왕 9년(587년)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하고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 ‘그리고 연경을 외우는 비구 망명에게 청하여 주지로 삼아 받침돌인 공석(供石)을 깨끗이 씻은 위에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게 하고, 이 산 이름을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했다’, ‘그 뒤 비구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그 무덤 위에 연꽃이 피어났다’는 내용 등이 삼국유사 권3에 전해진다.
사불암은 1,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노출되어 왔기에 다소 초라해 보인다. 그만큼 마모가 심해 윤곽이나 겨우 알아볼 정도다. 이 사불암과 관련해서 대승사 경내에서는 ‘하늘에서 사면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련이 솟아났다’는 뜻인 천강사불 지용쌍련(天降四佛 地湧雙蓮) 현판을 볼 수 있다.
묘적암과 윤필암
나옹화상이 득도한 암자
묘적암(妙寂庵)은 823m봉 남서릉 동쪽 사면, 사불암이 마주보이는 곳에 앉은 암자다. 이 암자는 선덕여왕 15년(646년) 부운(浮雲)거사가 창건했다. 고려 말 나옹(懶翁)화상(1320-1376)이 머리를 깎고 출가, 이후 이곳에서 득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묘적암 뒤 안장바위 전설은 나옹의 도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암이다. 날이면 날마다 안장바위 위에는 항상 남들이 볼 때 게으르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나옹이 앉아 있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고된 농사일을 하던 산 아래 마을 농부들이 이 바위에서 놀고만 지내는 나옹이 보기 싫어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자 그로부터 수년 간 가뭄과 흉년이 계속됐다. 그래서 농부들은 나옹이 범상치 않은 스님임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이어 놓고서야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나옹은 이 암자에서 보내면서 득도한 다음 의정부 회암사를 거쳐 원나라에 가서 지공(指空)화상에게 사사(師事)했다가 귀국해서는 오대산 상두암, 전주 송광사, 여주 신륵사 등지에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나옹은 은사 지공의 임종소식을 듣고는 ‘태어남이란 한 조각 바람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못에 비친 달그림자일 뿐이다. 죽고 살고 가고 옴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라고 삶과 죽음을 평했다.
윤필암(潤筆庵)은 묘적암 아래 골짜기에 위치해 심산유곡에 든 기분이 나는 암자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각관(覺寬)비구가 초창한 비구선원(禪院)으로 유명하다. 여승들만 사는 절이라 경내의 모든 것이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청정도량이다. 이 절 서쪽 축대 위 건물이 사불전(四佛殿)으로, 계곡 건너 암릉 상의 사불암이 마주보인다. 윤필암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인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을 가운데 두고 탑돌이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 않다.
윤필암과 묘적암 사이에 있는, 고려시대 작품으로는 새김이 매우 뚜렷한 마애여래좌상(높이 6m 폭 3m)도 볼거리다.
나도야바위
윤필암 갈림길에서 일주문으로 오르다가 오른쪽(남쪽) 협곡 아래 약 100m 거리에 마치 고깔을 닮은 기암이 있다. 이 기암은 본래 평지의 너럭바위 위에 놓여 있는 바위로만 보였었다. 그런데 92년 수해 때 계곡쪽으로 토사가 십수m 깊이로 쓸려내리면서 너럭바위 삼면에 숨겨져 있던 오버행(천정바위) 절벽이 드러나면서 절벽 위에 얹힌 바위로 변한 것이다.
나도야바위는 도로에서 보면 대승사 방면으로 뱃머리처럼 돌출된 절벽 위 너럭바위 바닥과 얹혀있는 기암 밑바닥 사이가 대부분 벌어져 있다. 마치 볼록렌즈를 측면에서 보는 듯 공간을 이룬 바위 사이로는 건너편 수림지대가 휑하니 보인다.
높이와 폭이 각각 약 4m에 직삼각형인 이 기암은 보는 이들 느낌에 따라 앉아 있는 부엉이, 또는 앉아 있는 짐승 같이 보이기도 한다. 옛날 중국에서 비단보자기에 싸여 이곳으로 날아왔다는 황당한 전설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