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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마음
제목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
성경 : 딤후1:1~8
찬송 : 370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11017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 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속담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 중 하나가 ‘유대인의 유월절 보내기’입니다. 이스라엘은 매해 4월 하순이 되면, 3대 명절 중 ‘새해’인 유월절을 맞이합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광복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첫째, 집안에 있는 누룩을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월절 일주일 동안(무교절이라고도 부름)일체 누룩이 든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누룩 없는 빵인 ‘무교병’을 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작은 부스러기 빵 조각에서부터 평소 누룩 있는 음식을 요리했던 부엌 도구들까지 끓는 물에 삶아 누룩의 흔적을 모두 제거합니다. 누룩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안의 누룩은 제거해 태워 버리면 되지만, 유대인 상점 등에 대량으로 남아 있는 누룩 식품들은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 최고 랍비가 재무부 장관의 입회하에 특정 이방인에게 누룩 성분이 들어 있는 모든 제품을 팔아넘기는 일종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상점 주인들은 주변 외국인들에게 싼 가격에 누룩이 포함된 모든 제품을 판매하고, 자신의 상점에 누룩이 이미 팔렸음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유월절 절기가 지나고 나면 구매자에게 판매했던 금액으로 다시 누룩을 사들여 율법도 지키고 손해도 줄입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신앙 모습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는 로마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바울의 유언 같은 글입니다. 평생 복음을 위해 살아온 바울이 지금 있는 곳은 로마 감옥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유독 고난을 자주 언급합니다. 바울이 가장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복음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고난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된 사람이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디모데에게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서 전수된 거짓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당부합니다. 믿음 안에서 자기의 참 아들인 디모데가 자신과 같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계승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지도)
바울 사도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고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떠나서 루스드라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아주 중요한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디모데는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보고 싶은 참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행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이름은 알 수 있습니다.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믿음의 가문인 외가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은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행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디모데’(티모쎄오스)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이 되라고 이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디모데를 만났고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여 바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 함께 하였습니다.
행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디모데는 바울 서신 가운데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공동으로 저작하였으며, 특정 교회에 파견되기도 했습니다(고전4:7; 빌2:19,23; 살전3:2,6).
바울이 이방 교회들이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때도 동행하였습니다.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뿐만 아니라 바울이 수감될 때 함께 갇히기도 했습니다.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몬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다시 말해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역자였습니다. 디모데는 믿음의 조상에게서 거짓 없는 믿음을 배웠고, 바울과 동행하며 그의 믿음의 삶을 직접 보고 고난 속에서도 거짓 없는 믿음의 삶을 사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에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정에서 대를 이어 믿음을 전수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지난 주간 우리노회가 정읍 성광교회당에서 열렸습니다. 목사 안수 두 분이 받았고, 강도사 인허를 네 분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강도사로 인허 받은 네 명이 모두 목사님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목회자의 자녀로 살면서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지난 주간 서대전노회도 열렸는데, 그날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 중에 삼대를 이어서 목사가 된 사람이 있어 화제였습니다(오상진목사, 오정호목사, 오기환목사).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디모데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녀 신앙 교육의 일차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가정이 해체되고 붕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든 가정은 자녀들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양육할 수 없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부모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와 학교가 이 일을 도울 수는 있으나, 결코 가정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존 칼빈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율법을 ‘토라’라고 하고, 부모를 ‘호라’라고 합니다. ‘호라’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을 전수해야 합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영적 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자녀에게 신앙의 대를 이어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신앙이 계속해서 전수되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 신앙이 최소한 삼대 정도는 전수되어야 축복의 꽃이 활짝 핀다고 봅니다. 당대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대를 지나 아들 그리고 손자로 이어지는 신앙이 계속될 때 드디어 그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로이스와 유니게로 이어지는 거짓 없는 믿음이 디모데에서 활짝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바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디모데가 자신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먼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고, 디모데는 이 같은 상황에 있는 바울의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명을 강하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바울은 죽기 전에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다시 한 번 복음 전파에 대한 강한 사명을 일깨우고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의 사명은 성도의 거룩한 의무인 동시에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6절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다시 깨우쳐 나의 세미카(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에 더욱 불을 붙이고자 합니다.”(유대인 신약성경)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성령의 은사가 소멸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바울은 디모데가 안수 받았을 때 체험했던 성령의 은사(딤전 4:14)가 그의 마음속에 다시 불일 듯 소생하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는 어떤 목회자였습니까?
√1)병약하였습니다.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소심했습니다.
고전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3)연소하였습니다.
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디모데가 가진 목회자의 특징 가운데 저도 두 가지는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병약하여 병원신세를 져 본적은 없습니다. 장례 치르다 식중독 걸려 며칠 입원한 것 빼고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디모데처럼 소심합니다. 성도들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합니다. 그리고 연소한 나이 삼십대에 우리교회 부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은혜입니다.
디모데가 에베소교회(소아시아 모교회)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은사를 불같이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으로 행해야 했습니다(행1:8).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와 권능은 목회자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줍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물질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인간의 무능력으로 인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못 박습니다. 현실과 상황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니 당연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복음과 함께’입니다. 우리는 늘 복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설령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에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생명이 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거절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노방 전도나 축호 전도를 할 때만 그런 두려움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혹시나 사이가 서먹해지지 않을까 신경을 씁니다. 특히 요즘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추세입니다.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것을 성가신 간섭으로 여기곤 합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복음을 전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페이스공동침례교회 로렌스 콩 목사는 마술을 배워 집회 때마다 마술을 선보이며 전도를 합니다. 그러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로렌스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판은 기꺼이 참조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판에 대답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도 방법론에 대한 찬반을 떠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은 본받을 만합니다. 결국 복음 전파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지,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큰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디모데는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청결한 양심, 거룩한 눈물의 기도, 거짓 없는 믿음을 소유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의 영향력은 이러한 내면의 정결과 거룩함을 통해 흘러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목회하다가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였고 지금도 에베소에 가면 디모데의 무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고난을 받으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용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복음 전도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복음과 함께 담대히 고난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