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방법이다(막 2:1-12)
울산한신교회 임시은 목사 (바울 남 선교회 헌신예배)
요즈음 우리나라는 가장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직장에 들어가면 60세 정년까지는 별 걱정을 안 했는데, 지금은 40세만 되어도 명퇴 압력을 받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의 위기를 느낍니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다 그것과 연관된 말입니다. 45세 정년이라는 말이고, 56세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 도적이라는 말입니다.
최근 저는 45세 된 한 교우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인을 갔다 와서 이름 있는 회사에 취업되어 20여 년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그만 둘 때를 생각하고 있고, 또 그만 두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그 위치에서 자신만만하고 당당할 터인데,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는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오늘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직장을 그만 두면 자녀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또 노후는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것입니다. 많이 연장되어도 불과 몇 년인데, 그 이후의 인생이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고민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모든 가장들의 고민입니다. 현실이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홍해 같고, 광야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하고, 더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현실을 보고, 믿음으로 돌파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믿음으로 병 고침을 받은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베드로의 집에 머물러 계실 때입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든지 베드로의 집은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밖에까지 사람들이 서 있어서 더 이상 어떻게 뚫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네 명의 사람이 한 중풍 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 왔는데, 난감했습니다.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방법을 찾다가 그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의 침상을 예수님께로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에 감동을 받으시고, 중풍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받게 됩니다.
먼저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책임감 있는 믿음입니다.
그들이 중풍 병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중풍 병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을 책임지는 것은 그래도 나은데, 중풍 병자를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중풍 병자는 거동이 불편합니다. 말도 어눌하고, 먹는 것도 도와주어야 하고, 대소변도 다 받아 내야 합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살려고 하는 의지 보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나는 불편하니까 건강한 사람들이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 우리 한국의 가장들은 중풍 병자 같은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식구들이 가장을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만 보고 있고,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아버지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장이 무능하면 식구들은 불행하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의 책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수입도 좋고 당당하다면 좋을 텐데, 요즈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많은 가장들이 수입도 적고, 이런 저런 형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렇다고 앞을 볼 때 소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들이 자신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대에 한국의 가장들은 너무 초라합니다. 어디에서 권위를 내세울 만한 곳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돈을 벌어 당당하게 월급 봉투를 갖다 내놓는 권위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돈을 벌어도 회사에서 온라인 통장으로 입금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아내에게 타 쓰는 형편입니다. 그것도 기가 죽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래저래 가장이라고 큰 소리를 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우스개 소리로, 어떤 사람은 이사 갈 때 안 데리고 갈까 두렵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책임감이 있기에 얼마나 발버둥을 칩니까?
이런 현실에서 가장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고, 믿음으로 권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폭군의 권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가정을 다스리는 일이 어렵지 않고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당당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위축되게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내 편이고 나를 도우신다는 믿음만 가지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면서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어렵다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추며, 자기를 망각하는 방법으로 대처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믿음을 주셨으니 만큼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가까이 하고, 그리고 교회를 봉사하면서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최고의 방법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능히 책임을 잘 감당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병자를 치료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먼길을 고생하면서 예수님 계신 곳까지 왔고, 또 와서도 어려움이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했습니다. 얼마나 적극적인 모습입니까? 바로 그 적극적인 믿음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인 믿음으로 나가면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소극적인 믿음으로는 안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적극성이 없고, 조금만 어려워도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자포자기합니다. 그래서 남들은 다 된다고 하는데 자기는 안 된다고 포기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저들은 환경이 좋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되지만, 자기는 돈도 없고 환경도 좋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합니다. 된다고 믿고 적극적인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 된다고 생각하고 소극적인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될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고 소극적인 믿음을 취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성도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7장(24-30)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 들린 어린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세 번씩이나 모욕을 받으면서도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적극적인 믿음 앞에 주님은 감동하고 그의 간구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적극적인 믿음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됩니다.
저는 최근에 텔레비전에서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대기업에 간부로 있다가 IT 사업에 손을 대 실패하고 포장마차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했습니다. 포장마차를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책임져야 할 처자식이 있기에 달리 방법이 없어 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여유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두 남매를 책임져야 하기에 반드시 재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그 분이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믿음이 없으면 저런 적극적인 신념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믿음으로 연결만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그 믿음만 보여주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주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했습니다.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먼길을 네 사람이 메고 온 것이며, 남의 집 지붕을 뜯은 것이며, 이런 일들을 믿음의 행위로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귀히 여기는 분이기에, 감동만 받으시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철야를 하든지, 금식을 하든지, 어떤 방식으로 기도를 하든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일 천 번제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한나는 성전에서 술 취한 자처럼 통곡의 기도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사무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만 감동시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사하고 사람이 볼 때도 감동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감동 시켜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하고, 봉사를 하는 것도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무슨 일이든지 열심으로 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 있는 신앙 생활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어려움이 있어도 시험 들지 말고 꾸준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신앙 생활이 나태해 지고 게을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다 이겨내며 꾸준하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명으로 알고 해야 합니다.
의무감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해야 하고, 적당히 가 아니라 사명으로 알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자신에게도 기쁨이 있고 하나님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책임감이 있는 믿음, 적극성이 있는 믿음,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 믿음만 보시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네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주님 말씀 한마디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우리 바울 남선교회 회원들은 이 어려운 때를 지나면서 믿음을 키우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