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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단편
내가 우크바르를 발견한 것은 거울 하나와 어느 백과사전을 연관시킨 덕분이다. 그 거울은 라모스 메히아 지역의 가오나 거리에 있는 어느 별장의 복도 끝을 어지럽게 비추고 있었고, 백과사전은 <영미 백과사전>(뉴욕.1917)이라는 헷갈리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브리테니커 백과사전>1902년 판을 그대로, 하지만 뒤늦게 찍어 낸 것이었다. 사건은 약 오 년 전에 일어났다.
그날 밤 비오이 카사레스(아르헨티나 작가)는 나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우리는 일인칭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광범위한 논쟁을 벌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 멀리 복도 끝에서 거울이 우리를 쫓아다니며 노리고 있었다. 우리는 거울들에 기괴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때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그에게 그 있기 힘든 격언의 출처를 물었고, 그는 <영미 백과사전>의 우크바르 항목에 그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별장에는 그 백과사전이 한 질 구비되어 있었다. 46권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는 웁살라에 관한 글을 발견했다. 그리고 47권의 첫 페이지에는 우랄 알타이어에 관한 글이 있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우크바르에 관한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날 비오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 그는 지금 바로 자기 앞에 백과사전 46권에 수록된 우크바르에 관한 글이 놓여 있다고 말했다.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했다. “어느 그노시스 교도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하나의 환영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궤변이다. 거울과 부권父權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분명하게 그런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그가 그 책을 가지고 왔는데, 그 글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상세한 지명 색인을 담고 있는 리터(독일의 지리학자)의 <지리학>에도 우크바르라는 이름은 전혀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오이가 가져온 책은 틀림없이 <영미 백과사전>46권이었다. 거짓 책 표지와 책등에는 46권이 담겨진 항목이 알파벳 순서로 적혀 있었으며, 그것은 별장에 비치된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917페이지가 아니라 921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추가된 네 페이지에는 우크바르에 관한 항목이 담겨 있었지만 그 글은 알파벳 순서상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독자들은 아마 이런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우리는 비오이가 가져온 책과 우리 별장에 있는 책을 비교했고, 그것 이외에는 그 어떤 차이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두 책은 (내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브리테니커 백과사전>10판을 재 인쇄 한 것이었다. 비오이는 그 판본을 수없이 열리는 경매 가운데 한 곳에서 샀다고 했다.
우리는 약간의 주의를 기울여 그 글을 읽었다. ~~~~우리는 엄청난 글의 저변에서 근본적인 모호함을 발견했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호라산, 아르메니아, 애르제름이라는 단지 세 개의 이름뿐이었다. 그마저도 글에는 애매하게 삽입되어 있었다.
역사적인 인물 중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는 가짜 마법사 그메르디스(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왕자)로,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은유처럼 언급되어 있었다. 그 글은 우크바르 국경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 지역의 강과 분화구, 그리고 산맥들에 관한 판단 기준은 매우 불투명했다.
역사와 관련된 부분(920페이지)에서 우리는 13세기의 종교적 박해로 인해 정교회 신자들이 그 섬들을 피난처로 삼았으며, 거기에는 아직도 오벨리스크들이 남아 있고, 그들이 썼던 돌 거울이 자주 출토된다고 적힌 것을 읽었다.
언어와 문학에 대한 내용은 간략했다. 기억할만한 특징은 딱 한 가지였다. 그 글은 우크바르 문학이 환상적이며, 전설과 서사시는 현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단지 뮬레흐나스와 틀륀이라는 두 환상적인 지역만을 언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날 밤 우리는 국립 도서관을 찾았다. ~~~샅샅이 살폈지만 그 누구도 우크바르에 있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2-
남부 철도회사의 기술자였던 허버트 에시에 관한 몇 안 되는 희미한 기억들은 아드로게 호텔레, 그러니까 인동덩굴 속에 파묻혀 있으며 거울들이 거짓된 깊이를 만들어낸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키가 컸고 늘 무기력한 모습이었으며, 늘어진 네모 모양의 구렛나룻은 한때는 붉은 빛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그와, 속마음을 감춘 채 시작했으나 이내 대화조차 필요 없어지는 그런 영국식 우정을 무척 깊이 나누었다.
1937년 9월 애시는 동맥 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며칠 전 그는 브라질에서 온 봉인된 등기 우편물을 하나 받았는데, 8절판 크기의 책이었다. 애시는 그 책을 술집에 놓고 갔고, 나는 몇 개월 뒤 그 술집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책장을 대충 넘기며 살펴보던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지만, 그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나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크바르와 틀륀과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밤중의 밤>이라는 이슬람의 어느 날 밤에는 천국의 비밀 문들이 활짝 열리고, 항아리에 담긴 물은 평상시의 밤보다 더욱 달콤해진다. 하지만 그런 천국의 문들이 열렸다 할지라도 내가 그날 저녁에 느꼈던 그런 황홀감을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책은 영어로 쓰여 있었고, 1001페이지나 되었다. 나는 그 노란색 가죽 장정본 책등에서 날조된 책 표지에도 똑같이 반복되어 있던 단어들. 즉, <틀륀 제1 백과사전 11권 -Hlacer에서 Jangr까지>를 보았다. 출간된 장소와 날짜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첫 번째 페이지와 컬러화보들 중에 하나를 덮고 있는 얇은 반투명지에는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는 책 제목과 함께 파란색의 둥근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년 전 나는 어느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 거짓 국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발견했다. 이제 우연은 보다 정확하고 보다 공들인 무엇인가를 내게 제시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알려지지 않은 행성의 전체 역사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자료 일부를 손에 넣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 행성의 건축과 카드 패, 소름 끼치는 신화와 그 언어의 속삭인, 그곳의 황제와 바다, 광석과 새와 물고기, 그곳의 수학과 불꽃, 그곳의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쟁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모든 것들이 눈에 띌 정도의 교리적 의도나 패러디적 요소 없이 분명하고 조리 있게 서술되어 있었다.
내가 지금 말한 11권에는 그 이전과 그 이후 권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자료를 찾았지만, 그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유럽의 도서관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허사였던 것이다. 탐정에게나 어울릴 단조롭고 힘든 단순 작업에 지친 나머지 알폰소 레예스(멕시코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는 다 그만두고 우리가 수없이 방대하고 두꺼운 그 책들을 다시 만들어 버리자고 제안하면서 발톱만 보아도 사자인지 알 수 있다 라고 말했다. ~~~~틀륀을 만든 것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 멋진 신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천재의 주도하에 천문학자, 생물학자, 기술자, 형이상학자, 시인, 화학자, 대수학자, 윤리학자, 화가, 기하학자 등으로 구성된 비밀 결사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이 갖가지 학문들에는 수많은 달인들이 있지만,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자신이 상상한 것을 치밀하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적다. 그 계획은 지극히 방대해서 필자 개개인의 공헌도는 정말로 미미하다.
처음에 틀륀은 단순한 하나의 카오스, 그러니까 무책임한 상상의 방종과 같은 행위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코스모스이고, 아직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은밀한 법칙들이 이미 명확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잠깐 틀륀의 우주관을 살펴보기 위한 시간을 감히 얻고자 한다.
흄은 언제나 버클리의 논지가 아주 사소한 논박도 허용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견해를 지구에 적용해 보면 절대적으로 옳지만, 틀륀에서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가 된다. 이 행성에 있는 국가들은 태생부터 관념적이다. 그들의 언어와 언어로부터 파생된 것들(종교, 문학, 형이상학)은 관념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 틀륀 사람들에게 세상이란 공간 속에 물체들이 뒤섞인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독립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연속물이다. 그것은 연속적이고 시간적이지만 공간적이지는 않다.
오늘날 틀륀의 언어들과 방언들이 유래하는 가상의 우르슈라헤(본래의 언어)에는 명사가 없고, 부사적 기능을 가진 단음절의 접미사(또는 접두사)에 의해 수식된 비인칭 동사들만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달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그 어떤 명사도 없지만, 달뜨다 혹은 달 비추다 라는 동사가 있다. ‘강 위로 달이 떠올랐다’라는 말은 ‘흘뢰르 우 팡 아샤샤샤스 믈리’이다. 이 말을 우리 어순에 따라 바꾸면 ‘위쪽으로 뒤로 계속 흐르는 달떴다’가 된다.
틀륀의 고전 문화가 오직 하나의 학문, 즉 심리학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나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 우주를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p-23
하나의 사건을 설명(또는 판단)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틀륀에서 그런 결합은 주체 이후의 상태이며, 이전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각각의 정신적 상태는 축약이 불가능하다. 그런 정신적 상태에 이름을 부여하는, 즉 분류하는 단순한 행위는 왜곡과 편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륀에는 과학 나아가 체계적 사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틀륀에도 이런 체계적 사고가 존재하며, 그것도 거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
-1947년의 후기
나는 <환상 문학 전집>(1940년)에 실린 글을 지금 다시 보면 가벼워 보이는 몇몇 비유와 놀림조 같은 개요를 빼고는 삭제 없이 그대로 재수록 했다.
1941년 3월 하버트 애시가 소장했던 힌튼의 저서에서 군나르 에르프요르트가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봉투에는 오우루 프레투 우체국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그 편지는 틀륀의 신비를 완전히 밝혀주었다.
이 빛나는 역사는 17세기 초의 어느 밤. 루체른, 혹은 런던에서 시작되었다. 한 자선 비밀 결사가 하나의 국가를 고안해 내기 위해 결성되었다. 그들의 최초 계획에는 막연한 연금술 연구, 자선, 카발라의 흔적이 보였다.~~~몇 년에 걸쳐 비밀 회합을 갖고 서둘러 공동 초안을 만든 후, 그들은 한 세대로는 나라 하나를 만들고 완전히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세습 체제는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2세기라는 과도기가 지난 후, 박해받던 이 단체는 미국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1824년 무렵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회원 하나가 속세를 등진 백만장자 에즈라 버클리(※소설에서 가상의 인물)와 대화를 한다. 버클리는 어느 정도 경멸하는 태도로 그 회원이 말을 마칠 때를 기다리고는, 그 계획이 하찮다면서 비웃는다.
버클리는 상대에게 미국에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하면서, 아예 행성을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는 이 거창한 계획에 또 다른 한 가지 착안, 바로 자신의 허무주의적 발상을 덧붙인다.
그것은 그 거대한 계획을 비밀에 부치자는 것이었다.
버클리는 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필멸의 인간들에게도 우주를 구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1914년 비밀 결사는 약 삼백 명의 회원들에게 <틀륀 제1 백과사전> 마지막 권을 보낸다. 이 판본은 비밀리에 발행되었다. 40권에 달하는 백과사전(인류가 착수한 작업 중에서 가장 방대한 작품)은 영어가 아닌 틀륀의 언어들 중의 하나로 쓰인, 보다 상세한 또 다른 백과사전의 토대를 이룰 것이다. 이 가상 세계에 대한 개정판은 잠정적으로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고 명명되었고. 그 얌전하고 보잘 것 없는 창조주 중 하나가 바로 허버트 애시였다.
1942년경에 더욱 복잡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라프리다 거리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포시니 뤼 생주 공작 부인(※보르헤스의 친구) 은 프와티에서 은제 식기가 들어 있는 소포를 받았다. ~~~ 그 중에 나침반 한 개가 잠든 새처럼 미세하지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불가사의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금판에 새겨진 글자들은 틀륀의 알파벳들 중 하나와 일치하고 있었다. 바로 틀륀이라는 환상적인 세계가 처음으로 실제 세계에 침범한 사건이었다.
틀륀의 성질과 틀륀과의 접촉은 이 세상을 붕괴시켰다. 틀륀의 엄밀함에 현혹된 인류는 그것이 천사들의 엄밀함이 아니라 체스 대가들의 엄밀함이라는 것을 잊고, 또다시 잊어버리는 중이다. 이미 학교에서는 틀륀의 원시적 언어(추측적인)가 침투했다. 이미 틀륀의 조화로운 역사(감동적인 일화들로 가득한)를 가르치는 수업은 애가 어릴 적에 지배했던 역사를 지워 버렸다. 이미 허구적 과거는 인간의 기억에서 또 다른 과거, 즉 우리가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심지어 거짓인지도 알 수 없는 과거를 점령하고 있다.
화폐학, 약리학, 그리고 고고학 분야는 개혁되었다. 나는 생물학과 수학 역시 구체적으로 그렇게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은둔자들이 만든 도처에 산재한 왕조가 세상의 모습을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만일 우리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백 년 후에 누군가가 <틀륀 제2 백과사전> 100권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구상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보잘 것 없는 스페인어는 사라질 것이다. 세계는 틀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고, 아드로게에 있는 이 호텔에서 조용한 매일을 보내며 토모스 브라운 경의 <납골단 매장>을 케베도 식으로 엉성하게 번역해 놓은 원고(나는 이것을 출판할 생각이 없다)를 계속 손보고 있다.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단편
필립 게달라는 봄베이 출신의 변호사 미르 바하두르 알리(※소설속의 가상 인물)의 소설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을 “여간하지 않으면 예외 없이 번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슬람의 알레고리적인 시들과, 존 H. 왓슨을 확실히 능가하며, 브라이튼 시의 흠잡을 데 없는 하숙방에서 영위되는 삶의 공포를 완성시키는 탐정소설 한 편을 부자연스럽게 합쳐 놓은 작품”이라고 평한다.
비평가는 미르 바하두르 알리 작품의 탐정소설 기법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신비주의적 속성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1판은 1932년 말 봄베이에서 출간되었다.
작품에서 가시적인 주인공은 봄베이에 살고 있는 법대생이다. 불경스럽게도 그는 자기 부모들이 신봉하던 이슬람교를 부정한다.
그러나 무하람의 월력으로 열 번째 달이 기우는 밤 , 그는 자기가 이슬람교도들과 흰두교도 사이에 벌어진 폭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의 말발굽에 깔릴 뻔 했던 법대생은 간신히 도망친다.
쇠사다리로 올라가고, 중앙에 시커면 구멍이 있는 평평한 지붕에 이르러 비쩍 마른 한 남자와 마주친다. 그 남자는 달빛을 받으며 웅크리고 앉아 아주 기운차게 소변줄기를 내뿜고 있다.
그 사람은 파르시 교도들이 백의를 입혀 이 탑으로 가져오는 시체들에게서 금니를 훔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자기는 열나흘 전부터 소똥으로 정화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자라트 주의 말 도둑에 대해서 “개와 도마뱀을 쳐 먹는 놈들, 어쨌거나 그놈들도 우리 두 사람처럼 천한 놈들이라며 분노를 숨기지 않고 말한다. 이제 날이 밝아오고 있다. 공중에서는 살찐 독수리들이 낮게 맴을 돈다. 녹초가 된 법대생은 잠든다.
지난밤부터 투영된 위협을 떠올린 법대생은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자기가 우상 숭배자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슬람교도가 우상 숭배자인 힌두교도보다 더 옳은지 아직 확실하게 알지는 못한다.
구자라트라는 이름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송장들을 훔치는 그 남자의 저주와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팔란푸르의 어느 말카산시(도적 계급의 여자)의 이름도 뇌리에서 니울 수 없다. 그는 그토록 철저하게 야비한 남자의 증오는 한 편의 찬송가와 같다고 단정한다. 그는 별다른 기대 없이 이 여자를 찾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작품의 2장이 끝난다.
나머지 19장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들을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봄베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팔란푸르의 저지대에서 계속되고, 비카니르의 돌문 앞에서 하룻밤과 하루 낮을 머문다. 그리고 베나레스의 시궁창에서 맹인 점성가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양한 모양을 한 카트만두의 궁전에서 음모를 꾸미고, 캘커타의 마추아 장터에 도착해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서 기도를 하고 간음을 하며, 마드라스에 있는 어느 공증 사무실 의자에 앉아 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침을 지켜보고, 트라반 코르 주에서는 한 발코니에서 바다로 저무는 저녁을 바라보며, 인다푸르에 도착하자 머뭇거리다가 사람을 죽이고, 달빛의 사냥개들이 있던 정원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바로 그 봄베이로 돌아와 기나긴 여정의 주기를 끝맺는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즉, 우리가 알고 있듯이 불신자이며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어느 대학생이 가장 천한 계급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 일종의 불법적인 행위와 시합을 벌이면서 그들의 삶에 적응하게 된다.
그는 이런 신비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지구의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는데 바로 그에게서 이러한 깨달음이 유래한다. 지구의 어딘가에는 이 깨달음과 동일한 누군가가 있다.” 법대생은 그 사람을 찾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제 전반적인 개요가 어렴풋이 보인다. 이것은 한 영혼이 다른 영혼들에게 남긴 미묘한 반영을 통해 그 영혼을 하염없이 찾아가는 작업이다. 그것은 처음에 하나의 미소를 머금고 있거나 한마디 말을 하는 어슴푸레한 흔적이지만, 마침내는 이성과 상상과 선량함이 다양하게 점점 커져 가는 광채로 변한다. 법대생의 질문을 받은 사람들이 알모타심에 관해 더욱 많이 알게 됨에 따라, 알모타심이 지닌 신성의 크기는 점점 커져 산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단지 거울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기계적인 수학 공식을 적용할 수 가 있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바하두르의 소설은 점점 커져가는 오름 차수 수열이며, 그것의 마지막 향은 이미 예견되고 감지된 일모타심이라는 인물이다.
알모타신 바로 앞의 선조는 극히 예의바르고 행복한 페르시아의 한 서적상이다. 이 서적상 바로 앞의 조상은 한 성인이다. 세월이 지나고 법대생은 “끝에는 문 한 개와 수많은 구술이 달린 싸구려 커튼이 쳐 있으며, 뒤로는 강렬한 빛이 비치는 한 진열실에 이르게 된다. 법대생은 한두 번 손바닥을 치고는 알모타심이 있느냐고 묻느다. 한 남자의 목소리 -믿을 수 없는 알모타심의 목소리-가 법대생에게 들어오라고 말한다. 법대생은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거기서 소설은 끝난다.
나는 작가가 그런 줄거리를 제대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다양한 예언적 징후들을 고안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징후들에 의해 미리 예시된 주인공이 단순한 환영이나 관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바하두르는 첫 번째 조건을 만족스럽게 이행했으나, 두 번째 사항이 어디까지 수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알모타심은 지루한 과장의 말로 뒤범벅 된 인물이 아니라, 실제의 인물이라는 인상을 우리에게 남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1934년 판에서 이 소설은 알레고리로 전락하고 만다. 알모타심은 하나님의 표상이 되고, 주인공이 거치는 세세한 여정은 일정 부분 영혼이 신비적 충만감으로 승화되는 과정으로서 그려진다.
오늘날의 책이 과거의 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납득할 만한 일이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단편
-실비나 오감포에게
앙리 바슐리에 부인이 사기성 짙은 목록에 행한 삭제와 첨가는 용납하기 힘든 행위다. ~~~간단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원형의 페허들] -단편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그날 밤, 아무도 그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자정 무렵에 그는 어느 새의 슬픔에 잠긴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맨발 자극들과 무화과 열매 몇 개와 물 항아리 한 개가 그 지역 사람들이 그가 잠자는 모습을 몰래 공손히 살펴보았으며, 그의 호의를 바라거나 혹은 그의 마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한 명의 사람을 꿈꾸고 싶었다. 그는 아주 자세하고 완벽한 꿈을 꾸어 현실을 기만하고 싶었다.
[바빌로니아의 복권] -단편
바빌로니아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총독이었다. 모두가 그랬듯이 나는 노예였다. 또한 나는 전능함과 치욕과 감옥생활을 알게 되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이 편지를 발견하기 전에, 저는 한 권의 책이 무한한 책으로 화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주기적이거나 순환적인 책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와 첫 페이지가 동일해서 무한히 계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책 말입니다. 또한 저는 <천 하루 밤의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어느 밤을 떠올렸지요. 그날 셰에라지드 왕비는 (필경사가 마법에 걸린 듯이 한눈을 파는 틈에) <천 하루 밤의 이야기>를 그대로 언급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다시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밤으로 되돌아올 위험이 있지요. 그리고 그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겁니다.
거의 즉시 나는 깨달았습니다. <두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무질서한 혼돈의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래들이 아니라 몇몇 미래들이라는 구절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연상시켰지요. 작품 전체를 다시 한 번 읽고 저는 제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소설에서 각종 인물은 여러 가능성과 마주 칠 때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거의 풀 수 없는 추이편의 소설 속에서 작중 인물은 모든 것을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게 그는 몇 개의 미래들, 즉 몇 개의 시간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은 증식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거기에서 바로 그 소설이 가진 모순들이 설명됩니다.
예를 들어, 팡이라는 사람이 하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낫선 사람이 그의 방문을 두들기고, 팡은 그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다양한 결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팡이 침입자를 죽일 수도 있고, 침입자가 팡을 죽일 수도 있으며,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건질 수도 있고, 두 사람 모두 죽을 수도 있고, 그 이외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추이편의 작품에서는 이런 모든 결말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각 결말은 또 다른 갈라짐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미로의 길들이 모이게 됩니다.
■ 기교들
[서문]
약간 더 세련되게 쓰기는 했지만,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앞부분에 실린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1956년의 후기
[기억의 천재 푸네스]-단편
나는 손에 거무스레한 시계풀을 들고 있는 그를 기억한다.
푸네스의 첫인상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1884년 2월, 혹은 3월의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를 만났다. ~~~나는 사촌인 베르나르도 아에도와 함께 산 프란시스코 농장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남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고, 이미 나무들은 미친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그 소년은 마을에서 다림질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마리아 클레멘티나 푸네스의 아들인데, 어떤 사람은 그의 아버지가 염장 공장의 의사인 영국인 오코너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살토 지방에서 일하는 조련사나 마부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188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프라이 벤토스로 다시 돌아왔다. 당연히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안부를 물은 다음, 마지막으로 정밀시계와 같은 푸네스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산 프란시스코 농장에서 야생마가 그를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전신 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나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당시에 약간 잘난 체하면서 라틴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은 후 나는 푸네스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푸네의 어머니가 나를 맞이했다.
목소리의 억양을 전혀 바꾸지 않은 채 아레네오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는 간이침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내 이야기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 푸른색 얼룩무늬의 말에서, 떨어진 비 내리던 저녁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자기도 장님이며 귀머거리였고 얼간이었으며 건망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십구 년 동안 그는 꿈을 꾸듯 살아왔다는 것이다. 즉, 보지 못한 채 보았으며, 듣지 못한 채 들었으며, 모든 것,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상태였다고 했다. 현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굉장히 풍요로웠고 굉장히 선명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소한 기억도 명확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전신이 마비되었음을 알았지만, 그것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은 최소한의 대가라고 합리화 했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이제 그의 지각력과 기억력은 완전해져 있었다.
그는 1882년 4월 30일 동틀 무렵 남쪽 하늘의 구름 모양을 알고 있었으며 , 기억 속의 구름과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어느 책의 가죽 장정 줄무늬, 혹은 케브라초 전투 전야의 네그로 강에서 어떤 노가 일으킨 물보라를 비교할 수 있었다. ~~~그는 하루 전체를 완전히 재구성 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혼자 지니고 있는 기억이 이 세상이 생긴 이래 모든 인간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기억보다 더 많을 거예요.”
푸네스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말을 이었다. “그는 1886년 경에 독창적인 숫자 체계를 고안했으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숫자가 이만 사천 개를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것들을 적어 놓지 않았는데, 그가 생각한 모든 것, 심지어 딱 한번만 생각한 것이라도 그의 기억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런 숫자 체계를 고안하도록 가장 먼저 자극한 것은 서른 세 명의 우루과이 독립투사들을 칭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어와 하나의 기호 대신에 두 개의 기호와 세계의 단어가 필요하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예-33=treinta y tres)
내가 지적한 두 가지 계획(자연수를 지칭하기 위한 무한한 어휘집과 기억의 모든 이미지에 대한 무의미한 정신적 목록)은 어리석기 짝이 없고 심지어는 황당한 짓이지만, 동시에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푸네스의 놀라운 세계를 어렴풋이나마 엿보거나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는 거의 참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순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세계를 지켜보는 외롭고도 명민한 관객이었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배웠다. 하지만 그가 사고하는 데는 그리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본다. 사고라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칼의 형상] -단편
원한 맺힌 흉터 하나가 그의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머리 한쪽의 관자놀이에서 다른 쪽의 광대뼈로 이어진 거의 완벽한 활 모양의 잿빛 흉터였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라 콜로라다의 영국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그가 밀수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아무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북쪽 지방들을 여행했을 때, 나는 카라구아타 강이 불어나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라 콜로라다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나는 영국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썼고..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았다. 날씨는 이미 개어 있었지만 날카로운 봉우리 뒤의 남쪽 하늘은 번갯불에 갈라지고 쪼개지면서, 또 다른 폭풍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어떤 영감이 떠올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객기에 사로잡혀 그랬는지, 혹은 따분해서 그랬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처에 대해 언급하고 말았다. 영국인의 안색이 변했다.
내 흉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소.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 어떤 비난이나 경멸도 누그러뜨리지 말고, 그 어떤 불법적인 상황도 변호하려 하지 마시오.
1922년경 코노트 지방의 한 도시에서 나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반란을 꾸민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소.
우리는 공화주의자와 카톨릭 신자였소. 다들 낭만주의자였다고 나는 추정하고 있소. ~~~어느날 저녁, 뮌스터에서 한 동지가 도착했소. 존 빈센트 문이라는 사람이었소.
1922년의 가을에 나는 버클리 장군의 별장에 숨어 있었소. ~~~그 집은 거의 망가진 채 음침했고, 복잡한 복도들과 쓸모없는 작은 방들로 가득했다오.~~~그곳에는 논쟁의 대상이었고, 양립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19세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잇는 책들이 가득했소.
다음날 문은 평정을 되 찿았소. 그는 담배 한가치를 받더니, 우리 혁명당의 재정에 관해 모질게 따져 들었다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어느 동산에서 있었던 단 한 번의 불순종이 모든 인류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부당하지 않소.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도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오.
장군의 커다란 저택에서 우리는 아흐레를 보냈소.
길모퉁이에서 나는 너부러진 시체 한 구를 보았소. ~~~~문은 서재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소. 어조로 미루어 나는 그가 전화로 말하고 있음을 알았소. 그런 다음 내 이름을 들었던 거요. 그리고 내가 일곱 시에 돌아올 것이며, 내가 정원을 지나는 동안 체포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소. 합리적인 내 친구는 합리적으로 나를 팔아먹고 있었던 것이오. 나는 그가 자기 신변 보장을 요구하는 소리를 들었소.
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물었다. 유다의 은화를 받고서 브라질로 도망을 쳤소. 그날 오후 광장에서 그는 술 취한 병사들이 인형에 총을 쏘는 걸 보았다오.
나는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결국 나는 그에게 계속 이야기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음 소리 하나가 그의 전신을 가로질렀다. 그는 나약하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희끄무레하고 둥근 흉터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요? 내가 치욕의 흔적을 얼굴에 새기고 다니는 것이 보이지 않소? 당신이 끝까지 이 얘기를 듣도록, 이런 방식으로 말했던 것이오. 나는 바로 나를 보호해 주었던 사람을 밀고했던 사람이오. 내가 바로 빈센트 문이오. 이제 나를 마음껏 경멸하시오.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단편
사건은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저항을 그치지 않는 어느 국가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화자는 현대인이지만,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19세기 중엽이나 초에 일어났다. 이야기의 편의상 1824년 아일랜드라고 하자. 화자의 이름은 라이언이다. 그는 젊고 잘생겼으며 영웅이었고 암살로 생을 마친 퍼커스 킬패트릭의 중손자이다.
킬패트릭은 음모자였다. ~~~모아브 땅에서 흘낏 바라보기만 했을 뿐 약속된 땅을 밟을 수 없었던 모세처럼, 칼패트릭은 그가 계획하고 꿈꾸었던 반란이 선공하기 전날 밤에 목숨을 잃었다. ~~~죽은 지 백 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누가 그를 죽였는지에 대한 상황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영웅의 전기 편찬에 전념하고 있던 라이언은 그 수수께끼가 단순한 경찰 수사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을 깨닫는다.
카이사를 아내 칼 푸르니아는 꿈에서 로마 상원의 칙령에 의해 무너져 버린 탑을 보았다.
[죽음과 나침반] -단편
[비밀의 기적] -단편
1939년 3월 14일 밤, 프라하의 첼레트나 거리의 한 아파트에서 야로미르 흘라딕은 기나긴 체스 게임에 대한 꿈을 꾸었다.
체스 게임은 두 사람이 아니라, 저명한 두 가문이 벌이고 있었다. 시합은 수세기 전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시합에 걸린 상이 무엇인지를 기억조차 못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어마어마하고, 아마도 무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체스 말과 채스 판은 어느 비밀의 탑 속에 있었다. 야로미르는 (꿈속에서) 서로 적대하는 두 가문 중에서 한 가문의 첫째 아들이었다. 시계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게임의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꿈꾸던 사람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사막의 모래밭을 달리고 있었지만, 체스의 규칙이나 말들의 모양을 기억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19일에 당국은 한 건의 밀고를 받았다. 같은 날 해질 무렵 야로미르 홀라딕은 체포되었다. ~~~그의 몸에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홀라딕이 첫 번째로 느낀 감정은 절대적인 공포였다.
그는 현실이 항상 예상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변칙적인 논리 아래 어느 특정한 상황을 미리 상세하게 떠올려 두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게 되리라는 추론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잠들었던 말들이 깊고 어두우며 가라앉을 수 있는 수영장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가끔씩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즉시 자기의 생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 좋든 나쁘든 상상이라는 덧없는 작업에서 그를 해방시켜줄 결정적인 총격 장면을 갈망했다.
총살 집행대가 모이더니 한 줄로 정렬했다. 교도소 벽에 등을 기대고 선 홀라딕은 총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누군가가 벽에 핏자국이 묻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죄수에게 몇 발자국 앞으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어처구니없게도 홀라딕은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기 전에 약간 머뭇거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무거운 빗방울 하나가 홀라딕의 관자놀이를 스치더니 뺨으로 천천히 굴러 떨어졌다, 하사관은 소리 높여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물리적인 세계는 멈추었다.
무기들이 모두 홀라딕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를 죽인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벌 한 마리가 마당의 보도 위에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는 나는 지옥에 있어. 나는 죽었어라 고 생각했다. 그는 나는 미쳤어. 라고 생각했다. 또한 시간이 멈춰 버렸어. 라고도 생각했다.
독일군의 탄환은 정해진 시간에 그를 죽일 것이지만, 하사관이 명령을 내리고 군인들이 명령을 실행하는 사이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일 년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희곡을 완성했다. 이제 단 하나의 성질 형용사를 해결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찾아냈다. 그러자 그의 뺨에서 빗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고, 얼굴을 마구 흔들었고, 네 번에 걸친 일제 사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야로미르 홀라딕은 3월 29일 아침 9시 2분에 죽었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단편
우리의 신앙이 시작된 지 2세기가 지났을 때, 소아시아, 혹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바실리데스는 우주란 불완전한 천사들이 만들어 낸 무모하거나 유해한 즉흥작 이라고 공언했다. 그 당시에 ‘닐스 루네베리’(소설속의 가상인물)는 비범한 지적 열정에 가득 차 어느 그노시스 비밀 집회를 이끌고 있었을 것이다.
[끝]-단편
레카바렌 자리에 누운 채로 실눈을 뜨고서 두툼한 갈대로 만든 경사진 천장을 보았다. 다른 방에서는 어설픈 솜씨의 기타 연주가 들려왔다. 무한하게 엉켰다가 풀어지곤 하는 하찮은 미로와도 같았다.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은 검둥이였다. 어느날 밤 자기가 가수라면서 우쭐대며 나타난 그는 다른 외지인 한 명에게 도전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노래 시합을 벌였다.
시합이 있었던 다음 날, 말에 건초 뭉치를 싣다가 갑자기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주민 모습의 한 꼬마(아마 그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레카바렌은 소년에게 눈짓으로 손님이 있느냐고 물었다. 과묵한 소년은 아니라는 의미로 손을 가로저었다. 검둥이는 그의 셈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마 햇빛을 받고 있는 평원은 마치 꿈에서 보이는 것처럼 거의 추상적이었다.
마침내 말 탄 사람은 고삐를 당기고서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다가왔다.
검둥이는 마치 기타 안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기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정다운 말투로 말했다. 믿을만한 분이란 걸 알고 있었소. 상대방이 거슬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 역시 자넬 믿을 만한 작자라고 생각했다네. 검둥이 친구. 비록 오래 기다리게 하기는 했지만 이제 내가 여기 왔네.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검둥이가 다시 대답했다. 기다리는 데에야 이골이 났소. 여태까지 칠 년을 기다렸으니. 그러자 상대방이 서두루지 않고 천천히 설명했다. 나는 칠 년 넘게 내 자식들을 보지 못했네. 바로 그날 아이들과 만났는데, 자식들에게 내가 칼싸움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인간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지 않더군.
이제 기타는 놓아두게나. 오늘은 또 다른 종류의 시합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일세.
아마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것 같소. 그러자 상대방이 심각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들은 나란히 말을 타고 가면서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갔다.
이방인이 박차를 벗었다. 이미 두 사람은 팔에 판초를 걸쳐 들고 있었다.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싸우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합시다. 칠 년 전 당신이 내 형제를 죽인 시합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 결투에서도 용기와 실력을 전부 발휘해서 결투에 임해 주시오. ~~그들은 뒤엉켜 싸웠고, 날카로운 칼날이 검둥이의 얼굴에 자국을 새겼다.
평원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평원은 절대로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끝도 없이 그걸 말하지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알아듣기는 하지만, 마치 음악처럼 말로 옮길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름한 자기 침대에서 레카바렌은 끝을 보았다. 한 차레 공격을 받자, 검둥이가 뒷걸음질 치다가 발을 헛디뎠고, 적의 얼굴에 칼을 내리치는 척했다. 그런 다음 칼을 깊이 내질렀고, 선술집 주인은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피에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은채 검둥이는 쉴 새 없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피범벅이 된 칼을 풀숲에 닦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천천히 마을로 되돌아왔다. 정의의 사도로서 과제를 완수한 그는 이제 그 누구도 아니었다. 더 엄밀히말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 이 땅에서 그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이미 한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불사조 교파] -단편
[남부] -단편
187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선한 사람의 이름은 요하네스 달만이었다. 그는 개신교 목사였다. 1939년 코르도바 거리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서 비서로 일하던 그의 손자 후안 달만은 마음속 깊이 자신을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제2 전투 보병대의 용사였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의 경계에서 카트리엘(아르헨티나 원주민 추장이었으나 정부 측에서 칠레의 원주민 침략군과 싸웠다)이 이끄는 원주민의 창을 맞고 전사한, 프란시스코 플로레스였다.
그러한 서로 상이한 두 혈통을 물려받은 후안은(아마도 게르만 혈통의 충동에 이끌려) 낭만적인 선조 혹은 낭만적인 죽음을 맞은 선조 쪽 혈통을 선택했다.
달만은 남부에 있는 커다란 농장 건물을 구해 낼 수 있었다. 그 농장은 플로레스 가문의 소유였었다.
그런데 1939년 2월말 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오후 달만은 바일(독일의 동양학자)이 번역한 너덜거리는 <천 하루 밤의 이야기>한 권을 손에 넣었었다. 그는 발견한 책을 살펴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급히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그의 이마를 스쳤다. 박쥐 아니면 새였을까? 그에게 문을 열어준 아내의 얼굴에는 공포가 새겨져 있었다. 이마를 문지른 그의 손에서 빨간 피가 묻어나왔다. 최근에 누가 페인트를 칠한 뒤 닫는 것을 잊어버린 여닫이 창문의 모서리에 부딪쳐 상처가 난 것이었다.
높은 열이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천하루 밤의 이야기>에 나오는 삽화들이 악몽을 장식했다.
달만을 에콰도르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몹시 괴로운 치료를 꿋꿋하게 견뎌 냈다. 그러나 의사가 패혈증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말을 하자, 달만은 자기의 운명에 동정을 느낀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음날 의사가 이제 그는 회복되고 있으며, 얼마 안 가 농장에서 요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약속된 날이 되었다.
현실은 대칭과 약간의 시대착오를 좋아한다. 달만은 승합마차를 타고 병원으로 왔는데, 이제는 승합 마차를 타고 콘스티투시온 광장에 있는 기차역을 향하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여름이 끝나고 찾아온 이른 가을의 서늘한 기온은 그의 운명이 죽음과 고열에서 구원받았다는 자연의 상징과도 같았다.
‘남부’가 리바디아 거리 맞은편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차에 탄 채로 그는 신축 건물들 사이로 정교한 쇠창살이 달린 창문과 문 두드리는 고리쇠, 출입구의 아치, 긴 현관과 숨겨진 안마당을 찾고 있었다.
기차역 대합실에서 그는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그는 브라질 거리의 어느 카페에 마치 오만한 신이라도 되는 양 사람들이 쓰다듬는 것을 허락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그 카페에 들어갔다. 거기에 잠든 고양이가 있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시키고서, 천천히 설탕을 넣은 뒤 맛을 보았다. 고양이의 새까만 털을 쓰다듬는 동안, 그는 그 감촉이 꿈이며 자기와 고양이는 마치 유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잇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은 시간 속에서, 즉 연속성 가운데 살고 있지만, 마술적인 동물은 현재에, 즉 순간의 영원 속에 살기 때문이었다.
기차는 끝에서 두 번째 풀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달만은 객차들을 지나쳐 걸어가다가 텅 비다시피 한 객차에 이르렀다. ~~~기차가 출발하자 그는 가방을 열고서 조금 머뭇거린 다음 ,<천하루 밤의 이야기> 첫째 권을 꺼냈다.
그는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는 길모퉁이의 길고 허름한 벽돌집들을 보았다.
객차도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콘스투티온 역에서 풀랫폼을 뒤로 하고 떠나 버린 그 객차가 아니었다. 평원과 시간들이 객차 안으로 스며들어 그 모습을 변하게 한 것이었다.
달만은 자기가 남부를 향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그런 환상적인 추측에서 깨어나게 만든 사람은 차장이었다. 차장은 그의 차표를 보더니 항상 정차하던 그 역이 아니라 조금 앞에 있는 역에서 내려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달만이 잘 알지 못하는 역이었다.
기차가 들판의 거의 한가운데서 힘겹게 멈추었다. ~~~몇 마리의 말들이 말뚝에 묶여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간 달만은 자신이 가게 주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의 생김새가 병원의 한 직원과 닮아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만의 사정 얘기를 들은 주인은 사륜마차를 구해 주겠다고 말했다.
달만은 창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시골 들판은 어둠이 덮이는 중이었다. ~~~달만은 일순 얼굴에 뭔가가 가볍게 스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탁한 빛깔의 싸구려 유리잔 옆에, 그리고 식탁보의 줄무늬 위에 조그만 빵 부스러기가 하나 있었다. 그게 다였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던진 것이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그가 거기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리둥절해진 달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빵 조각이 그를 때렸다. 이번에는 농장 노동자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달만은 자기가 겁을 먹지는 않았으나, 아직 완쾌되지 않은 채로 낯선 사람들에게 이끌려 혼란스러운 싸움을 벌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기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일어서자 주인이 그에게 다가와서 놀란 목소리로 타일렀다. 달만 씨, 저 젊은이들에게 마음 쓰지 마시오, 이미 취해 있으니까요.
달만은 이제 가게 주인이 자기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
달만은 가게 주인을 한쪽으로 밀어내고는, 일꾼들을 마주 쳐다보고서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원주민 얼굴을 한 젊은 작자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후안 달만의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마치 달만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라도 한 듯이 큰 소리로 욕을 내밷었다. 그 작자는 몹시 취한 척했는데, 그 과장된 행동은 모질고 비아냥거리는 인상을 주었다. 남자는 음탕한 말과 욕설을 퍼붓고는 공중에 긴 칼을 던진 뒤,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칼을 잡더니 달만에게 결투를 하자면서 도전했다. 주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달만이 맨손이라고 주장했다.
한쪽 구석에 가만히 있던 노인이, 그러니까 남부(달만도 남부 출신이었다)의 상징을 보았던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 달만에게 던졌고, 그 칼이 달만의 발치에 떨어진 것이다.
달만은 몸을 숙여 단도를 집으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거의 본능적인 그 행동은 자기가 결투를 벌이겠다는 사실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그 무기가 자기의 서툰 손안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데 이용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라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들은 나갔다. 달만 에게는 희망이 없었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문턱을 나서며 그는 병원에서 보낸 첫날밤 주사를 맞고 있을 때, 이렇듯 넓은 하늘 아래서 칼싸움을 벌이며 적과 맞붙어 싸우면서 죽었다면 그것이 자기에게는 해방이며 행복이고 축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거나 꿈꿀 수 있었다면, 이것이 그가 선택했거나 꿈꾸었을 죽음임을 알았다. 달만은 아마 어떻게 상용해야 하는지도 모를 칼을 굳게 움켜쥐고 평원으로 나갔다.■
[Review]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19세기의 계몽주의와 20세기를 가르는 용어이다. 사회 전반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창의적 실험적 시도라는 의미다. 소설에서는 사실주의를 중시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판타지 문학 즉, 환상 문학의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났다. 이효석의 소설 '물레방아'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는 소설은 이해가 쉽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설은 여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지 못 할 뿐 아니라, 아예 무슨 이야기 인지 종잡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 출생, 작가이며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41년에 출판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 <픽션들>은 그간에 쓴 그의 여러 단편 열일곱 개를 묶어 1943년에 출판되어 유럽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첫 장에 실린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라는 단편이다. 서두에서 화자는 비오이 카사레스(아르헨티나 작가)와 일인칭 소설에 관해 논의하다가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말했다는 어떤 이상한 격언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영미 백과사전의 ‘우크바르’ 항목에 있다는 말에 따라 찾아보았으나 그곳에는 없었다. 여기서 서술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여러 다른 백과사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류와 허구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우크바르’, 틀륀,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는 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곳이며 환상으로 꾸며진 세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보르헤스의 서술은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진짜 역사일까 아니면 허구일까? 생생한 사실일까 아니면 비현실적인 환상일까? 맞는 듯 아닌 듯한 서술의 일체에 대한 진위를 분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독자는 ‘우크바르’, ‘틀륀’,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를 오가며 그것이 백과사전의 이름, 세계와 지명 사이를 어지럽게 쫓아다니지만, 보르헤스는 그때마다 서술을 통해 독자를 그의 현실에서 밀어내고 접근하지 못 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소설 속에서 현실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보르헤스는 환상 속으로 도망치며 절묘한 서술로 전체의 사건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이 보르헤스 소설의 특징이다. 어쩌면 현실 속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두갈래로 가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두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무질서한 혼돈의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래들이 아니라 몇몇 미래들이라는 구절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연상시켰지요. 작품 전체를 다시 한 번 읽고 저는 제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소설에서 각종 인물은 여러 가능성과 마주 칠 때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거의 풀 수 없는 추이편의 소설 속에서 작중 인물은 모든 것을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게 그는 몇 개의 미래들, 즉 몇 개의 시간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은 증식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거기에서 바로 그 소설이 가진 모순들이 설명됩니다. ”<본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도, 야생마에서 떨어져 전신마비가 된 그에게 놀랍게도 완벽한 기억력이 나타났다. 사물 속에서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고, 눈으로 보거나 생각한 모든 것들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는 모든 어휘를 자연수로 대치하는 놀라운 발상을 하게 된다. 보르헤스는 사물과 자연수를 묘하게 연관시키면서 사물에 대한 견해에 여러 갈래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칼의 형상>에서는 화자가 어떤 대상을 이야기하다가 극적으로 뒤바뀌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얼굴에 난 흉한 상처를 다른 사람(배신자 ‘문’)의 이야기로 바꾸어 이야기하다가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어버린다. ‘문’은 배신의 대가로 은화를 받아 브라질로 도망을 쳤다. “그날 오후 광장에서 술 취한 병사들이 인형에 총을 쏘는 걸 보았다”(본문) 는 서술로 ‘문’을 ‘인형’으로 암시하면서 그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을 대신한 가공의 인물임을 말하고 있다.
<남부>이 단편은 보르헤스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후안 달만’은 할아버지 대에 게르만 혈통의 ‘친가’와 아르헨티나 남부의 ‘외가’ 사이에서 자라났으나 원주민의 창을 맞아 전사한 선조, 남부 혈통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의 외가는 남부에 있는 커다란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그가 궁금해하던 책(천 하룻밤의 이야기)을 손에 넣고 너무 기쁜 나머지 집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 이마를 부딪쳐 상처가 생기고, 파상풍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낯선 들판의 정거장에 내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뜻밖에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잠시 머물며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서 날아온 빵 조각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술에 취한 그곳 노동자들이 그에게 시비를 건 것이었다. 사내는 긴 칼을 던지며 그에게 결투를 청하고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는 그에게 문 앞에 앉아 있던 남부 지방 사람으로 보이는 노인이 그에게 칼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그는 칼을 다룰 줄 몰랐기 때문에 잠시 동안, 그 칼을 집어 든다면 결투를 승인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칼에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상대방은 과오가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는 칼을 집어 들었고, 조금 전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보르헤스는 여기서 엉뚱한 발상으로 후안 달만의 생각을 합리화시킨다. 즉, 그가 병원에서 죽게 된 것보다는 넓은 들판에서 칼싸움을 벌이며 적과 맞붙어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며 결투를 하러 밖으로 나간다. 원주민의 창에 맞아 전사한 외조부의 자랑스러움이 후안 달만의 죽음과 묘한 일치를 이룬다.
“문턱을 나서며 그는 병원에서 보낸 첫날밤 주사를 맞고 있을 때, 이렇듯 넓은 하늘 아래서 칼싸움을 벌이며 적과 맞붙어 싸우면서 죽었다면 그것이 자기에게는 해방이며 행복이고 축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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