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인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신사임당은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율곡 이이는 그의 아들로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 이용안내 |
3월-10월 08:00 - 17:30
11월-2월 09:00 - 17:00
관람시간: 매표 마지막 시간에서 1시간 후
입장료: 성인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 일반, KTX 열차 승차권 또는 구매내역 제시하면 50%할인 )
매주 마지막주 수요일 50% 할인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이 지었으며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을 한 팔작 지붕이다. 비중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의 익공계 양식으로 꾸며졌다고 하며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오죽헌 / Ojukheon House
보물 제 165호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로,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 양식에서 익공 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165호로 지정되었다.
오죽헌의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온돌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이라고 부르는 온돌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 / Yulgongmae Plum of Ojukheon House
천연기념물 제 484호
이 나무는 세종 22년, 1440년경에 오죽헌 건립 후 심어진 나무로
심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한다.
사임당은 여러 매화 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이라고 지을만큼
매화를 사랑하였으며 율곡매는 꽃 색깔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이며, 열매는
다른 나무에 비하여 훨씬 알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문성사 / Munseongsa Shrine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이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으나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서쪽으로 옮기고 대신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은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율곡 선생과 심사임당이 태어난 오죽헌을 중심으로 고택,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는 어제각, 기념관이
하나가 되어 강릉과 영동지역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지로 많은 이들이 발걸음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오죽헌은 후손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문성사,
기념관 등이 건립되면서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율곡 이이의 위업과 교훈을 추앙하게 되었다.
오죽헌 주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율곡매와 배롱나무, 소나무 등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의 손 때가 묻어 있는 오래된 고목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오죽헌의 저택을 둘러보면 'ㄱ'자형 안채와 별채, 그리고
입구의 행랑채와 붙어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정치가로 구국애족의 대선각자인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오죽헌.
율곡 이이 선생은 어려서 우리나라의 제일의 여류 예술가로 불리는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배워 13세게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명종 19년 생원시, 식년문과에 모두 장원 급제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등과 이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어제각은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했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1788년 정조 임금이 율곡이 어렸을 때 쓰던 벼루와 친필로 쓴 격몽요결을 궁궐로
가지고 오게 하여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보냈고 당시 임긍의 명을 받은
강원도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제각이다.
율곡 이이는 조선 유학계에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서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당쟁의 조정,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
사창의 실시의 노력하였으며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보물 제165호, 정식 보물 명칭은 '강릉 오죽헌'으로 이 명칭은
뒤뜰에 검은 대나무가 자란 것을 계기로 붙었으며 검은 대나무를 '까마귀 오' 자를 써
오죽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으로 이곳은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의 탄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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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별당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오죽헌은 포를 구성하는 방식이
주심포에서 익공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나타낼 수 있어
포의 변화 과정을 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눈 가득 담아온 강릉 오죽헌에서의 시간을 기록한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