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의 이칭인 ‘존슨탕’은 1966년 방한했던 존슨 대통령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후 정확히 반세기가 지났다. 50년 동안 수많은 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다. 여전히 이 땅에는 부대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변함없이 부대찌개를 사랑한다. 경기 수지 성복동 <장천갈비>는 부대찌개를 잘 하는 갈빗집이다.
비공인 부대찌개의 탄생
어린 시절, 부친이 미군부대 식당 노무자로 일했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 부친께서는 식당에서 남거나 버리는 음식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뒀다 가져오곤 하셨다. 덕분에 그 친구 집에 가면 진귀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은색 깡통에 든 고형 우지는 뜨거운 밥에 녹여 비벼 먹거나 된장찌개에 넣어 먹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성탄절 무렵에는 미군들이 먹다 남긴 케이크도 가져오셨다. 우리는 배가 고프면 순진했던 친구를 앞장세워 그의 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친구 부친이 가져온 것 중 가장 맛과 인기가 바닥이었던 건 커피였다. 라면스프 같은 작은 봉지를 뜯어 커피가루를 손바닥에 쏟아 혀로 핥았다. 미군 먹는 건 다 좋은 거라며 억지로 먹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금계랍처럼 쓴 맛에 진저리를 치면서 뱉어냈다. 반면, 아이들 마음을 가장 흔들어댄 건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아닌 소시지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였다.
친구 어머니는 부대찌개라는 음식이 세상에 있는 줄 몰랐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저 남편이 가져다 준 ‘부대고기’를 김치찌개에 썰어 넣었을 뿐이다. 부대고기를 넣으면 찌개 맛이 한결 좋았다. 이미 생겨난 부대찌개들과 상관없이 또 다른 부대찌개가 그렇게 탄생했다. 의정부도 송탄도 아닌 파주의 어느 허름한 집 안방에서.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된 뒤에 그때 친구네 집에서 먹었던 김치찌개가 일종의 부대찌개였음을 깨달았다. 음식의 유래 과정은 한 가지 경로만이 아니라 아주 다발적일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는 사례다. 그러니 여타 음식들 유래 역시 정설로 떠받드는 한 가지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귤은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됐지만 햄과 소시지는 태평양을 건너 부대찌개가 됐다.
짜지 않고 대파 듬뿍 들어간 국물 시원해
부대찌개는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이다. 처음 먹었을 때처럼 진귀하거나 신비스런 맛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먹어도 입에 붙는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장천갈비>는 본시 고깃집이다. 보통 고깃집마다 점심에 식사메뉴를 한두 가지씩 낸다. 대개는 고기와 연관된 메뉴로 점심장사를 한다. 갈비탕이나 자투리 고기를 활용한 된장찌개 등이다. 그런데 이 집은 특이하게도 부대찌개를 낸다.
살라미 햄과 콘킹 소시지는 한국 부대찌개의 맛을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 햄과 소시지 외에 김치, 대파 등 12가지 재료가 들어갔다. 여기에 삼겹살과 갈비 작업을 할 때 나오는 자투리 살들을 적잖이 투하했다. 다른 부대찌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고기 국물 맛이 난다.
또 한 가지 결정적으로 이 집 부대찌개 맛의 핵심 포인트는 대파다. 채 썬 대파를 아주 많이 넣어 국물 맛이 무척 시원하다. 파에서 우러나온 단맛은 먹을수록 입맛을 당긴다. 국물이 다른 부대찌개들보다 짜지 않은 점도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겐 위로가 된다. 국물을 떠먹으면 묵직하면서 뒷맛이 매콤하고 개운하다. 저절로 소주가 생각나는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는 사실 반찬이 그다지 필요 없는 메뉴다. 그럼에도 이 집 부대찌개는 수준급 반찬들이 적잖이 나온다. 부챗살 형태의 하얀 접시에 연두부 호박나물 김치를 담아 내오고, 연근 등 여러 채소를 들깨소스로 무친 샐러드, 달걀찜과 동치미가 가세했다. 주인장 고향인 전남 완도군 소안도의 부모님이 보내준 멸치액젓 매실청 해초류 등을 반찬 양념으로 쓴다고 한다.
찌개가 그다지 맵지 않다. 그래도 맵다고 느낄 때면 잠시 달걀찜이나 동치미 국물로 매운 느낌을 헹궈낼 수 있다. 채소 샐러드도 뜨겁고 매운 부대찌개에서 잠시 쉬어갈 안식처가 되어준다. 김치 맛도 구수하니 좋다. 부대찌개를 비롯해 모두가 쌀밥의 좋은 벗들이다. 도중에 필요한 반찬이나 찌개 재료는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셀프바에서 햄이나 소시지, 채소, 양념류 등을 얼마든지 더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나면 라면 맛을 볼 차례다. 육수를 요청해 더 붓고 무료 사면 사리를 끓인다. 부대찌개 국물에 끓인 라면 맛은 배가 불러도 맛있다. 처음부터 라면 사리를 넣는 사람도 있다. 그럼 국물 맛이 텁텁해진다. 라면 사리는 반드시 마지막에 넣고 끓여야 시종일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점심부대찌개는 8000원이다. 오후 세 시까지 한정이고 2인 이상이어야 한다. 저녁식사나 후식용은 7000원이지만 공깃밥이 별도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87, 031-898-3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