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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축복
(사 52:7-10)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제도나 법규를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때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때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사랑할 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고 사랑받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사물을 아름답게 볼 수 있으며 사랑할 때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맺습니다. 사랑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할 때 상대방의 아픔이 보이고 사랑할 때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하시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헌신하도록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초청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무리가 바로 오늘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받은 사람을 나누는 사명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가축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축을 매매할 때 독특한 방법으로 매매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양을 매매할 때 양의 크기에 따라서 값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의 성질에 따라 값을 정한다고 합니다. 양의 성질을 알아보는 방법이 매우 흥미 있습니다. 가파른 산비탈에 양을 놓아두고 양을 지켜봅니다. 양이 풀을 먹기 위해 산기슭을 올라가면 값이 비싸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값이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위로 올라가려는 양은 현재 힘이 들더라도 풀이 풍성한 넓은 목초지가 있는 산허리에 이르게 되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양은 현재 수월하나 협곡 바닥에 이르러서는 풀이 없어 굶주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앞에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은 쉽고 많은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세상의 많은 장애물이 있어도 거뜬히 피할 수 있는 길입니다. 고통이 없고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 소망이 없는 사망의 길이었습니다. 반면에 좁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 길입니다. 문제를 만나면 피하고 가기 보다는 넘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한고비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은혜요 감사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생명이요 평안이요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축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할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할 방법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죽음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이 구원의 소식을 “좋은 소식” “평화의 소식” “복 된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 구절을 말한다면 요한복음 3잘 16절을 말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 말씀을 인류를 향한 최고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은 천상천하 최고의 존재이며 유일한 참 신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가 모든 민족과 인종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최고의 선물이요 최고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제한 없는 초청을 말합니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배웠든지 못 배웠든지, 가졌든지 갖지 못했든지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데 있어서 단순함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고통 받지 않도록 죄에 고통에서 자유를 선포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최고의 축복으로 영생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 즉 천국의 축복을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받은 궁극적인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키려는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통해서 자신의 삶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소박된 문제를 풀어주고 그동안 받은 고통과 아픔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사52;9)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신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는 용서 받고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주님을 믿는 자들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게 됩니다. 참 평안을 소유하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사는 것이 구속 받은 성도들이 받는 축복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궁극적으로는 영생의 축복에 참여케 하시려는 계획입니다.
사도행전 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얻는 유일한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자 많은 노력을 하며 그 노력의 결과로 많은 것을 얻었다 할지라고 마지막에 “천국 열쇠”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인생을 살았다면 그 인생은 헛것이 되고 영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고 영생의 축복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구원은 인생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을 살면서 재물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데 있어서 재물이 필요합니다. 재물은 우리의 먹는 것, 입는 것, 주거 환경을 해결해 주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재물이 내 삶의 모든 것들을 채워주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질로 시험하는 사탄을 향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물질이 중요하지만 물질의 종노릇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많은 것 때문에 혹은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의 올무에 빠지고, 훨씬 더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물질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황패하게 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과 명예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희생하고 상처받고, 결국은 성공이하는 관문에 들어가서는 행복한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과 능력 행하심을 보고 이분을 믿고 따르면 내가 원하는 성공과 권세와 명예를 얻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따르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들을 향하여 “여우도 굴이 있고 참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2장 16~21절에서 한 부자가 밭의 소출이 많아지자 즐거워하며 창고를 늘이고 창고에 많이 쌓아 두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말한다면 사업이 크게 번창하여 성공을 이룬 것입니다. 이 부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달려 왔지만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이루고 난후 이제는 먹고 마시고 즐기자하며 남은 인생을 즐길 계획을 하며 희희낙락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불러 가면 그 쌓아놓은 재물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며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에 하나님도 모른 채 예수님의 구원의 초청을 외면하고 사는 인생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구원 얻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소원하십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다른 것은 덤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3서 1:2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영혼이 잘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거나 세상의 성공이나 육신의 건강, 물질을 쌓아두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영혼이 잘되는 문제를 소홀히 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하고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잘되는 순간 내가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은혜로 성취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주신 은혜를 통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3.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원한 후회가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실 때는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인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축복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은혜는 나중이 아니라 오늘 지금이어야 합니다.
고후6:2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했습니다.
이 기회가 지나가 버리면 그 때는 이미 늦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이 전도자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죄로 인하여 고난 받는 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자들의 발걸음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지 않은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행1:11절에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주님이 두 번째 세상에 오시는 목적은 심판을 위해 오십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 얻을 자와 멸망 받을 자를 갈라놓고, 구원 얻을 자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멸망 받을 자에게는 영원한 형벌에 처하려고 오십니다. 농부가 추수를 한 후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곡식은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태워 버리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알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복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오늘 지금 평안할 수 있고 지금의 삶을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감각하게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내 인생의 장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많은 곳에서 깨어 기도하고 준비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되면 모든 기회를 잃게 됩니다.
1945년도에 원자탄을 맞아 쑥밭이 되었던 히로시마의 비참했던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건물들과 집들은 콩가루처럼 부서져 내렸고 철근들은 엿물처럼 녹아 내렸고 사람들은 재 덩어리가 되어 떼죽음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 그 원자탄을 투하하기 몇 달 전부터 여러 차례 경고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말로 알아보기 쉽게 여러 사이즈의 경고문을 살포했습니다. 원자탄의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설명하고, 몇 월, 몇 일, 몇 시에 떨어뜨린다고 까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그런 폭탄이 이 세상에 있겠는가!”하고 생각하면서 믿지 않고 피하지를 않았다가 그런 끔찍한 변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를 듣고도 무관심합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받지 않으면 원자탄보다 수만, 수억 배 고통스러운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고 전하는데도, 사람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코웃음 칩니다. “정말 지옥이라는 데가 있는가?” 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믿지를 않습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일은 구원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기회를 잃기 전에 예수님 잘 믿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우리의 관계된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경고소리를 전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고 더 많이 구원하는 것이 이 땅에 성도로 사는 우리의 마지막 사명임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됩시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 / 이사야 42;1~9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어떤 사람은 천국을 경험하고 살지만 어떤 사람은 지옥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왜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다른 모습을 갖고 살아갈까요? 그 이유는 각 사람의 마음, 즉 현실을 받아드리는 마음이 천국을. 또 한사람은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현실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때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의 주관을 갖고 불순종하면 인생의 여정을 곧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의 밭이 기경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길가의 밭. 돌 짝밭, 가시밭. 옥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의 밭이 기경되어 옥토가 되지 않으면 날마다 믿음을 갖고 산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천국의 기쁨을 소유하지 못하고 불안과 근심과 염려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내 마음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겔11;19“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마음에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겔36;26“새 영을 주고 새 마음을 주어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내일에 대한 밝은 미래를 꿈꾸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굳어진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세상의 풍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새 영(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제거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 져서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 되도록 하여 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는 일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의 첫 번째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언어)에는 그 사람의 영적상태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천국을 누리는 사람은 그의 언어가 천국의 언어, 즉 사랑하고, 격려하고, 축복하고, 감사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반면에 그의 마음에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이간질하고, 거짓말하는 것을 봅니다. 나의 말 한마디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면 내 마음도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내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역시 내 마음에도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유대교에 매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고 조롱하고 멸시하는 일에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마12;34~35절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기경되지 못하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고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들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말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2;36~37)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말할 때도 너무 쉽게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며 그 말에 대한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3;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오늘 우리의 말 한마디가 한 영혼을 살릴 수 있고 또 한 영혼을 죽일 수 있다면 나의 입을 쉽게 열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산다고 말하려면 우리의 언어의 습관, 잘못된 언어의 습관을 바꾸고 감사하며, 축복하며, 사랑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예/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을 때)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큰 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바른 교통법규를 지키고 운전한 사람들이 이기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목소리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목소리가 큰 사람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갖고 말하는 사람들이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존귀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갖고 말하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말하니까 귀신이 떠나고, 육신의 질고가 치유되고,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런 능력을 갖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길 소망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을 3절에서는 상처받은 영혼을 정의로 만족시켜 주신다. 4절에서는 땅위에 공의가 세워질 때까지 쇠약해지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이리저리 치이는 세상에서 공의가 세워지는 때를 맞이하는 그날, 하나님은 그날가지 쇠약해지거나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공의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 이런 권능이 드러날까요? 사랑할 때입니다. 사랑할 때 용서가 되고, 이해할 수 있고, 허물을 덮어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제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포용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씀합니다. 교회에서 참으로 많이 사랑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제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교회가 사랑이 부족하다? 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지금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듯이 이제 우리의 이웃을 향하여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를 볼 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이지만 자신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답지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때론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 왜 물질 관리를 잘 하지 못할까? 왜 자녀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닐까? 하지만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가르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실천해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항상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먼저보고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상대방을 볼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고 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배드리는 모습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5절)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6) 언약을 세우시고(6) 이방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6) 하나님은 눈먼 나를 보게 하시고(7) 갇힌 자 흑암에 앉은 자를 빛으로 나오게 하십니다.(7)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신에게 , 찬양을 다른 우상에게 주는 것을 싫어하십니다.(8)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은 곧 하나님 한 분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돌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서 어디에든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기 않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을 하나님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나의 온 삶을 드려 주님께만 예배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을 찾으시고 가장 존귀한 자리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우리 성도들의 예배가 축복의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재물(돈)을 지배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재물은 곧 우상입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이미 우리의 마음 깊숙이까지 물질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물질에 빼앗기는 순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질의 종노릇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물질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다스리며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미혹하는 영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삶이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내 삶에서 물질이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의 대한 교훈을 딤전6;17~18절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물질의 종노릇하지 말고 물질을 다스리는 권세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