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7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 놓는 훈련 / 노경모 목사
오늘 본문에 엘리야가 처음 소개 되고 있습니다. '엘리야'라는 사람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없습니다. 다만 기르앗에 우거하는 디셉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이 다입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아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즉 엘리야 자기의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선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그릿시냇가로 가서 숨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3절을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웬 사람이 나타나서 내 말이 있기 전까지는 수년동안 비가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치고 가버렸으니 악한 왕 아합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분명히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아합의 손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엘리야를 그릿시낫가로 보내셨습니다.
또한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시작되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가믐을 대비해서 그릿 시냇가로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3-4절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릿시냇가에 엘리야를 숨기지 않고서도 아합 왕으로부터 엘리야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군천사를 보내셔서 아합왕을 꼼짝할 수 없도록 하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뭄이라고 할찌라도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 아닌 도시 속에서도 엘리야의 집에서도 엘리야를 먹이실 수 있으십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신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엘리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내려 놓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외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생명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도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외칩니다. 뭐라고 외칩니까?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제 엘리야는 외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릿 시냇가에서는 외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짖지 못하는 개는 죽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외치지 못하는 선지자는 끝난 거와 같습니다. 엘리야는 가뭄 기간인 3년 6개월 동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생활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 놓게 하듯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놓게 하시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직장생활을 내려 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몰두하는 사업을 내려 놓기를 원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노력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내려 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부와 명예를 내려 놓기를 원하십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좋하는 취미와 놀이까지 내려 놓기를 원하시기도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려 놓기를 원하실까요? 우리가 좋아 하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것을 둘 다 같이 섬길 수가 없습니다. 둘 다 똑 같이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둘 다 똑같이 중하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13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이것을 내 삶의 목적이 됩니다. 온통 이것이 매 달립니다. 이것이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공부 잘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멋진 교수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유명한 학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 아세요. 나는 지금 내가 나를 사랑하기를 원하며 지금 내가 네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기를 원하고 나는 지금 내가 나와 함께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바란단다.
사업에 몰두하고 사업에 온 시간과 정성을 다 투자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 사업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교회를 짓겠습니다. 선교사들을 지원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물질을 과감하게 사용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게시는지 아세요?
'네 사업이 잘 되고, 돈을 벌고 난 뒤가 아니라 지금 나는 너와 더 많은 시간을 교제하기를 원한다. 지금 네가 다른 그 무엇보다고 나를 더 사랑하기를 원한단다. 지금 나에게 예배드리고 내 말을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지만 내기 지금, 이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출애굽기 34:14처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도 더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 이러한 것들을 내려 놓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엘리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적당히가 아닙니다. 온전히, 100%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전적으로' 라는 뜻으로 '목숨을 다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서 아침과 저녁에 엘리야에게 먹을 고기를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까마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하나님께서 시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다른 어떤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농사를 지를 수도 없습니다. 목축을 할 수도 없습니다. 낚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것에 목을 매고 그것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벗어나도록,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적으로 의지하는 것들을 무너뜨리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재빨리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세로 전환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엘리야로 하여금 좋아하는 것들을 내려 놓고, 의지하기 쉬운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고 난 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본격으로 하나님을 위한 사역의 현장으로 내 보냅니다. 열왕기상 17:8-9을 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자기 되려면, 우리의 열정과 비전만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해야 합니다.
우선순위에 문제에 있어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문제에 있어서, 의지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best)이요, 우선(first)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