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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시
지난 주말에 완도의 몇몇 명승지와 유적지를 돌아보고 왔다. 주 목적지는 보길도였다. 정확하게 12년 전에는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의 청별항에 내렸는데 지금은 보길도와 노화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 차량통행이 가능해 국가 명승지인 보길도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납석광산이 수두룩한 노화도를 이용하도록 해 보길도의 뱃길은 폐쇄해 버렸다. 그래서 인구가 더 많은 노화읍 노화도 동천항에 선착이 가능하다.
노화도에서 소안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완도를 들어갈 때도 12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해남에서 완도를 잇는 대교 역시 새로운 교량을 설치했다.
과거의 완도대교
완도대교를 건너면서 왼쪽으로 완도읍을 향했고, 돌아 나오는 길에 군외면에 위치한 전국 최대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탐방하려 했는데 해남의 두륜산에 위치한 대흥사를 가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노화도에서 곧바로 해남의 당끝마을 산양항구로 가는 배를 타는 바람에 이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전라남도 완도군은 삼국시대는 백제의 영지인 새금현에 속하였으며,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청해진을 설치하였고, 고려 원종12년(1271) 삼별초난 때 송징장군의 입도와 공민왕 원년(1352)에 주민 입주를 허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중종 17년(1522)에 가리포진을 설치하였고, 고종33년(1896) 대한제국 칙령 제13호에 의거 영암, 해남, 강진, 장흥에 속한 유인도 75개와 무인도 135개를 통합 19면으로 완도군을 두었다.
정부수립 후 1949년 4월, 1읍 8면에서 지금은 3읍(완도․금일․노화읍), 9면(군외․신지․고금․약산․청산․소안․금당․보길․생일면), 2출장소(모도․넙도출장소)를 두었다.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완도군은 크고 작은 섬 265개(유인 55, 무인 210)가 모여서 형성된 도서 군으로 제주도(1,809.9㎢), 거제도(374.9㎢), 진도(353.8㎢), 강화도(300.0㎢), 남해도(298..4㎢), 안면도(105.4㎢), 완도(85.3㎢), 울릉도(72.9㎢), 돌산도(68.9㎢), 거금도(62.1㎢) 중에 하나다(2009.12.20 기준).
위치상 동북쪽으로 고흥군과 여수시와 연접하고 있으며, 북서쪽으로 해남군과 강진군에, 남쪽으로는 바다를 경계로 제주도 북제주군과 인접해 있다.
완도의 절경으로는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산 259번지에 위치한 규모 1.75ha(둘레 495m)로서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주도(珠島)가 있다. 완도 항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섬으로, 마치 구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그란 섬이 주도
주도에는 상록수 137여 종이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보고이다. 이 섬은 봉산으로서 본시 벌채를 금하여 왔으며, 중앙에는 성황당이 있어 더욱 나무를 다치지 못하게 하여 원시림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으나 근래에 이르러 소풍객의 증가로 일부가 손괴를 입고 있다.
상록활엽수로서 대표적인 수종은 모밀잣밤나무․붉가시나무․돈나무․참식나무․후박나무․사스레피나무․가마귀쪽나무․광나무․다정큼나무․생달나무․감탕나무․빗죽이나무․육박나무․황칠나무 및 영주치자가 있고, 하층식생으로 송악․멀꿀․마삭덩굴․모담 및 볼레나무가와 자금우가 있다.
낙엽활엽수로서 대표적인 수종을 든다면 느티나무․팽나무․졸참나무․상수리나무․벚나무․예덕나무․멀구슬나무․새버나무․진달래 및 털진달래․땅비사리․소사나무․소태나무․말채나무․장구밥나무․쇠물푸레 및 물푸레나무․조록싸리․자귀나무․검노린재나무․덜꿩나무․덤불작살나무가 자라고, 만경류로는 댕댕이 덩굴․덩가시 덩굴․개머루․사위질빵․계요등․청미래 덩굴 및 새머루가 자라고 멍석딸기․수리딸기 및 인동넝쿨도 엉켜 자란다. 한편 고란초도 자생하고 있는 주도는 온대식물의 보고로서 식물생태연구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완도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장보고대사와 고산 윤선도를 빼 놓을 수 없다. 장보고 대사는 약 1,200여 년 전 이곳 완도에 진을 설치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과 일본과의 교역로를 개설하였다. 그는 "바다를 제패하는 사람이야말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정치가이며 무역상이며 항해가 일 뿐 아니라 군사 전략가였다.
장보고 대사는 신라 완도 사람으로 완도에 청해진을 창설하고 신라․당․일본 간의 국제 해운 무역을 경영해 해상왕의 명성을 떨쳤다. 장 대사는 그의 본원 사찰로 석도의 적산, 완도의 상황봉, 제주 등지에 법화원을 창건했다. 일본 스님 엔닌 일행은 이 절의 손님으로 오래 머물며 갖가지 편의를 받았고 장 대사의 도움으로 마침내 귀국도 가능했다. 다시 이곳 신라 사람들이 모여 살던 신라방과 그 자치 기관이 있었다.
고산 윤선도는 한성 동부 연화방인 지금의 종로구 연지동 근처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작은 아버지인 유기의 양자로 들어가서 해남윤씨의 대종을 잇는다. 그래서 해남이 고향이다. 11살에 절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하고 26살에 진사시험에 급제하였지만 봉림대군의 선생으로 발탁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게 '세자 시강원문학'으로 '왕립 세자 전속 대학원 총장'인 셈인데 이때 인조의 신임을 얻고 부터다.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 작가(1587~1671)이다.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해옹(海翁)이다.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 중의 한 사람이다. 다산 정약용의 외할아버지이며, 보길도는 어부사시사와 오우가의 고향이다.
29세에 이이첨의 난정을 탄핵했다가 정치적 열세였던 남인이었고 서인이었던 송시열과 충돌하여 여러 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성격이 강직해 굽힐 줄 몰랐으며, 인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 영덕에 유배 되었고, 조대비 복제 상소로 항쟁 ‘삼수 갑산을 가더라도...’등의 말이 나온 조선에서 가장 유배 생활하기 어려운 함경도의 '삼수'로 유배를 가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정치적 다툼으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에 이르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으로 옮겨 적과 대항하다가 항복한 후였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제주도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산세의 수려함에 매혹되어 머물게 되면서 부용동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었다.
고산연보에 의하면 이곳에 온 때는 1637년 2월로 그의 나이 51살 때 일이다. 자연물에 각기 그 형태에 어울리도록 명명하여 자연을 벗 삼았다. 말년에 마지막 노경을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 85세(1671)로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지만 7차례 귀양살이로 실제로는 13년 정도 살았다.
이곳이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 원림이다. 완도군 보길면 부황길 57에 위치하는 규모 25,268평(83,532㎡)으로 국가지정 명승 제34호이다.
세연정
이 원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시대 국문학계의 거목이라 불리는 고산 윤선도가 이곳 부용동 격자봉 자락에 정자를 짓고서 유명한 시가와 저서를 집필하였다.
오우가(五友歌)는 물, 돌, 솔, 대, 달의 다섯 가지 자연물을 벗에 비유한 작품이며,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상 최고인 가운데 어부사시사 40수 봄 여름 가을 겨울 10수씩 산중 신곡 18수 가운데 오우가가 가장 으뜸이다. 그의 시의 주제는 자연과의 화합인 물아일체였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세연정 입구에 전통 한옥양식의 윤선도유물전시관을 건립해 홍보 및 안내를 하고 있다.
오우가(五友歌)- 윤선도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 때가 많은 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른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은 음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후대에 정조가 내려 고산 유고라는 시문집을 만들었고, 세연정․낙서재․무민당 등을 짓고 음악을 좋아한 나머지 자기가 만든 노래를 자기가 만든 무대에서 가무인을 동원해 실제 공연도 했다. 어부사시사 중 겨울 노래 한수다.
“간밤의 눈걘 후에 경물이 달랃고야 이어라 이어라 압희난 만경류리. 듸희난 쳡텹 옥산 지국총 지국총 어 사 와 션곈가 불곈가 인간이 아니로셰...”
외손자 정약용은 강진에서,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니 보길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기구한 운명이었다.
이곳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등 주로 기거하던 곳이며,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는 한 칸 집의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변의 석문․석천․석폭․석대도 장관이다.
세연정은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정자로 정자의 중앙에 세연지․동편에 호광루․남쪽에 낙기란․서편에는 동하각과 칠암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하는 판석보는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으로 한국 정원의 독특한 유적이다. 이것은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 보길도에는 보길면 예송리 220번지에 위치하는 예송리 상록수림 11,431㎡이 천연기념물 제40호(1962. 12. 3)로 지정되어 있다.
해안가를 따라 발달되어 있는 이 상록수림은 길이 약 740m, 폭 30m, 높이는 15∼20m 정도로 나무들의 가슴높이 둘레는 30cm 내외인 대상림인데 반달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이 숲은 그 위쪽에 있는 부락과 농경지를 보호하고 방풍림의 구실도 했고 어족을 보호하는 어부림의 기능도 잘 발휘한 것이 짐작된다. 상록수림에 접해 있는 해안의 밤자갈 밭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밀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수령 200여 년 이상의 노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방풍림을 이루고 있다.
상록수의 종류로는 모밀잣밤나무․구실잣밤나무․붉가시나무․참가시나무․생달나무․가마귀쪽나무․동백나무․광나무․돈나무․우묵사스레피나무․종가시나무․후박나무 및 섬회양목이 있고, 송악과 볼레나무가 떼로 엉켜있다. 피해를 입은 상록수림 중앙에는 곰솔을 심었다. 낙엽활엽수로는 팽나무․구지뽕나무․좀새비․작살나무․찔레나무, 졸참나무․누리장나무․상동나무 등이 있다.
예송리 상록수림 해변
보길도의 보길면 부황리 483-3번지에는 보옥리 공룡 알 해변이 있다. 보옥리 마을 안쪽을 감싸고 있는 뾰족산 아래 해안을 공룡 알 해변이라 부르고 있다. 청명석이라고 불리는 갯돌이 크고 둥글둥글 하여 공룡 알 같이 생겼다 하여 공룡 알 해변이라 부르나 공룡 알을 닮은 자갈이 있는 해변이라 풀이된다 하겠다.
이러한 보길도는 완도군 보길면에 속하는 섬으로 완도에서 서남쪽으로 23.3㎞ 떨어져 있고, 노화도 남서쪽 1.1㎞ 지점에 있다. 면적은 32.99㎢, 해안선 길이는 41.0㎞이다. 천연기념물 제40호, 다도해해상국립공원, 1962년 12월3일 명승 제34호(천연기념물), 1981년 12월23일(국립공원), 2008년 1월 8일(명승 제28호)
보길도는 옛날 영암(靈巖)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묘 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뒤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 甫吉)’라는 글을 남기고 갔다.
이 글의 뜻을 풀기 위해 월출산 선암사의 스님에게 내용을 물으니 섬 내에 명당자리가 11구 있는데 10구는 이미 사용되었고 나머지 1구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풀어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
동쪽 선백도 바위에는 송시열비(宋時烈碑)가 새겨져 있다. 이곳 글씐바위를 가는 길도 과거엔 나뭇길 같은 오솔길이었으나 지금은 돌로 포장을 한 넓은 길로 만들었으며, 당시엔 글씐바위를 찾느라 애를 먹었는데 지금은 방향표지판에다가 데크까지 설치해 찾기가 수월했다.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 된 덕택이니라.
우암 송시열의 글씐 바위
여든 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떠 있구나
한 마디 말이 무슨 죄일까
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노<魯>나라 학자 유하혜(柳下惠)의 고사<故事>)
대궐에 계신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다만 남녘바다의 순풍만 믿을 수밖에
담비갖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과거에 탁본한 흔적이 검게 보이나 지금은 이를 통제하여 먹물이 벗겨지고 있다.
또한 완도군 노화읍 당산리에는 바로 앞의 노록도와 연결되는 신비의 바다길이 1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일 년에 몇 번 영등 살 때면 나타나는 이곳에는 슬픈 전설이 있는데 바다건너 노록도에 숫사슴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이 사슴은 당산리에 살고 있는 암사슴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던 중 바다길이 갈라지고 사슴은 그리던 암사슴을 만나기 위해 당산리로 향했다. 그러나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바닷길을 건너다 죽었다.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어디까지나 전설이고 지금은 바닷길이 갈라지면 많은 지역주민과 소수의 관광객만이 바지락과 고막, 낙지, 소라 등을 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또 한편 완도읍 갈문리에는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군락지로 21,690㎡(6,561평)의 면적에 수령 10~250년 된 모감주나무 174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이는 충남의 안면도(천연기념물 138호 1962년 지정 9,567㎡)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으로 가장 큰 나무는 수고 15m이상 흉고직경 54㎝이며 흉고직경이 30㎝이상 되는 성목도 10여 그루 이상 조사되고 있다. 갈문리 모감주나무는 육지부에서 우각(牛角)형으로 바다로 뻗은 사주형식의 둔덕에 자연적으로 조성되었는데 지금은 간척으로 안쪽은 논농사를 지으며 밖으로는 바다와 접해있다. 갈문리의 모감주나무가 그동안 보호가 잘 된 것은 마을의 방풍림 겸 풍치림으로 주민들의 보호를 받아 보전이 잘 이루어졌다. 모감주나무는 낙엽활엽수로 내염성이 대단히 강하고 열매는 염주 알로 쓰이며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노화도 전복양식장에서 전복따기 체험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 옆 풍경
해남군 당끝마을
해남군 두륜산 대흥사 경내
대흥사 앞 유선관(숙박 및 중식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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