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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특강 00-진정한 삶의 복원, 시인과 철학자의 삶에 동침하기
삶의 복원, 삶과 동침
권대근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I. 로그인
시(詩)와 철학(哲學)은 인문학의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모두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낮설게 하기-
* 인문학 -
인문학은 내용을 채워주는 바탕이다.
인문학은 사람과 사람의 무늬, 흔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좋은 자세를 잡기위한 훈련이다.
인문학은 삶의 옹달샘이다.
인문학은 나그네의 쉼터다.
인문학은 동영상이다 / 서울대 김월희 교수
인문학은 텍스트다, 세상을 분석하고 시대를 진단한다 /서울대 김현진 교수
인문학은 초콜렛이다. /서울대 신은영 교수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질문과 탐구다 /서울대 오순희 교수
인문학은 행복의 전도사다 /서울대 박종소 교수
인문학은 개인을 확장한 공동체적 물음이다. /권대근
II. 클릭
인문학이란/ 장세훈
내가 살던 집은
나만의 창이 있었네,
그 창밖을 바라보면,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 뿐.
인문학으로 집을 리모델링 했네,
내가 사는 집은 인문학 집.
그 곳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하늘과 땅 뿐이던 곳에,
나무와, 새와, 바람이 보이네,
심지어 저 멀리 사랑이 보이네,
그대의 숨결이 느껴지네,
인문학으로 리모델링 한 것뿐인데,
세상이 달리 보이네,
난 내안의 인문학을 찾았네,
세상의 인문학을 알고 싶네.
시가 '정서'를 낯설게 만든다면, 철학은 '사유'를 낯설게 만든다. 새로운 실천, 새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유 그리고 정서와 맞부딪혀야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간과되어온 시(詩)의 힘이다.
시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행동으로 밀고 나갈 '정서의 힘'을 내재하고 있다. 같은 예술이라도 차원이 다르다. 문학 -생각해볼 시간을 갖는다. 문학이론 -잘 읽고, 쓰는 것(논리적 사고)/ 잘 즐기는 것(정서적 반향) -많이 알면 재미없다, -평론가 -이론의 울타리에 갇힘 ‘재발견’, ‘재창조’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 -쫓아가느라 얼이 빠져 있다.
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현대 철학자와 한국 현대 시인을 짝지어 논할 것이다. 이들 쌍을 함께 공부함으로써 정서적 그리고 지적인 자극을 동시에 받아 삶의 변화를 일으킬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시(詩)는 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 우리에게가장 친숙한 것이다. 누구나 기억하는 시 한 줄 정도는 있을 것이며, 어린 시절 한 번 쯤은 혼자만의 시를 써 본 경험도 있기 마련이다. 시를 학문으로 접근하게 되면 온갖 다양한 기법과 생략이 난무하는 어려운 대상일지 모르나, 태곳적부터 오늘날까지 세상과 삶을 노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을 돌아보고, 세상을 비판하는 역할에 있어서 시는 언제나 선두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첨예하게 세상을 사유하는 철학과 공통점이다.
“시인과 철학자는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표현으로 가득한 시는 난해하게 느껴지고, 개념어가 즐비한 현대철학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 모든 것이 조금만 들여다보면, 시와 철학 모두가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임을 역설한다. 이 강좌는 바로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인간의 삶을 쉽게 풀어내는 시간이다.
어려워서 이해되지 않던 시.
그리고 쉽게 정복되지 않는 철학.
그 숨겨진 의미를 우리 사회의 현실과 비교하며 차근차근 이해해나갈
이 강좌는, 시와 철학을 큰 호흡으로 횡단하며 시인과 철학자의 고뇌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삶과 유리된 예술 -삶을 해친다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 -삶의 질을 높이지 않는다
인간행위의 모든 산물 삶과 격리되어 있지 않다
톨스토이-지극히 단순한 마음, 평범한 사람이나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것, 남의 기쁨을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슬퍼하며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것 -예술
1883년, 원산학사 -근대적인 학교교육의 시작,
1905년-을사보호조약,
1910년 한일합방 -일제식민지교육 당시 고등교육 -지주층의 2세
당대 예술정신 -예술을 위한 예술 art for art -도피와 관조 피안의 세계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피안의 세계 주제 -도피의 예술 -자연 예찬 류
삶과 무관한 개인의 관념 세계 -동시대 아픔과 갈등을 예술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님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
-민요 가락에 짙은 향토색을 담은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시
-말이 가진 음률의 적절한 활용, 이미지의 선명함, 평이한 언어로 시적 메시지 전달 성공
문제 -예술세계와 현실세계의 상호관련성 또는 접합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다 -보편적인 미적 감각을 남다르게 받아들여 미학적 고려와 함께 일정한 구조에 담아낸다.
-현실인식이나 체험에 따른 내용- 미학적 장치를 통해 반영
예술은 현실의 재현하려는 노력에 근거
한 개인의 내면 속에 재성 ->타인과 공유 욕구 <-사회적임
그렇다면,
당시의 시대<일제말기 민족절멸의 위기-탄압과 수탈> 배경 -우리 농촌의 현실
-그 어느 구석에도 ‘술 익는 마을’ 이나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정경은 없었던 시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
농촌의 풍요로움 -시인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일 뿐
식량공출
밥그릇 숟가락 강제징발
초목근피
아비규환의 지옥 같은 삶
반역사적인 시다. -현존할 수 없는 시대와 삶 -질곡 속의 삶을 크게 왜곡
이육사 -17번이나 감옥
나찌 독일의 폭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도르노 -
아우슈비츠 이후에 어떻게 한 편의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한국전쟁과 수많은 억욱한 죽음 뒤에 어떻게 한 편의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죽음의 의미와 고통과 좌절 그리고 희망에 대해서
도피나 침묵이 아니라 관심을 갖는 예술
자기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의 대화
사회의 목소리 -사회의 부름에 응답
역사의 목소리 -우리 삶의 원인이자 결과
여기 비범하지만 우울한 시인과 철학자가 있다.
한 명은 1989년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한 명은 평생 철학을 하면서 철학의 무력함을 밝히려는 모순적인 삶을 살았다.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지 말라!"라고. <논리철학논고>의 비트겐슈타인에 따른다면 언어의 기능은 세계를 묘사하거나 모사(模寫)하는 것이며,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사실 또는 실재가 있는가에 관한 것뿐이다. 사실 또는 실재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세계의 뜻은 세계 바깥에 있어야 한다.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있으며, 모든 것은 일어난 그대로 일어난다. 그 안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세계 안에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 안의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결은 시간과 공간 바깥에 있다.”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거의 모든 철학적 명제들은 참이나 거짓이 아니라 헛소리다. 세계를 초월한 것에 관하여, 다시 말해서 언어를 초월한 것에 관하여 말하는 순간 그것은 헛소리다. 형이상학, 윤리학, 종교, 예술 등은 말할 수 없고 단지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리고 매우 견고하게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비트겐슈타인 같은 언어분석 철학자에게는 절제된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서양철학사를 통틀어 언어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회의하고 분석한 철학자,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러나 회의와 분석 그 자체가 그의 목적은 아니었다. 지성의 혼돈과 미망에서 벗어나 오로지 삶의 진실과 마주하려는 철학적 고투가 그의 삶이었다.
"멋진 삶을 살았노라 전해주시오." -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말
기형도의 언어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난해한 언어로 시를 짓지 않았다. 그의 시는 현실의 세계,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였다. 살아있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발표된 시집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1989
60여 시편 - 이해 곤란하고 음산하며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그런 느낌
시 한 편-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를 두루 거치며 보여지는 온갖 군상과 편린들을 으깨고 다져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놓은 것
시는 아름다와야 하고 정서를 드러내어 심금을 울리는 것 -그것은 시라기보다는 꿈
다만 기형도에게 시란 것은 가슴 한 구석에 처박혀 밤새 얻어맞고 피 흘려도 그 아픔마저 죄의식인 양 여기는 그런 이의 흐느낌
무모할 만큼의 저항감은 그로테스크해 보일 수 있겠다.
기형도라는 시인의 유작 -세기말을 보낸 우리들에게 들이 최소한의 대리 경험으로 언젠가는 닥칠 또 다른 미래의 상황을 앞당겨 보여 주게끔 한 것 - 젊은이들은 그의 시에 매달림
더러는 보들레르를 연상시킨다고 했지만 놀랍게도 기형도의 시집은 이른바 민주화 운동하는 친구들이 남 앞에서는 민중시를 소리 높여 읊다가도 돌아와서는 몰래 뒷방에 숨어서 보고 긴 한숨 내쉬며 읽게 했다는 점에서 특별.
사실 상황에 의해 내게 무차별로 가해지는 폭력이나 개인적인 가난과 불행으로 인해 목을 조여오는 그 고통을 서로 무게로 달아본다고 했을 때 경중을 가려낼 자 누가 있을까?
오히려 지식인이 느끼는 당시의 공포스럽고도 피폐한 상황의식이 90년대 들어서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보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에서 더 친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시인의 목소리- 이제 공포스럽고 우울한 궤적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 삶의 한 부분에도 그가 드러내고자 했던 어떠한 감정들이 유사하게 존재하고 있음에 공감하게 된다.
그저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시로서 파헤쳐 눈앞에 보여 지게 한 -그 힘은 정말 놀랍도록 강하고 치열하다.
왜 인간의 부류 중에
밖으로 자신의 몸을 끄집어내어 자기의 세계관을 설파하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자꾸만 안으로 또 안으로 스며들듯이 비집고 들어가 몸뚱이 둘러싼 허물은 물론이거니와 썩어 문드러진 정신의 고름덩이마저도 휘휘저어 만져보고 싶어하는 자가 공존하는지를 기형도의 시세계는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특이하되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우리 스스로를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그런 시인
기형도 시인의 유고작품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독특한 시 세계를 열어,
가난·상실·도시적 일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실존의 부조리 등을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표지로 읽어내게 하는 새로운 경향을 형성했다.
1979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 재학 중 1982년 연세대학교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가 당선되기도 했다. 졸업 후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문화부·편집부에서 근무했으며,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독창적이면서 개성 강한 시들을 발표하며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종로의 한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후에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이 간행되었고, 이 시집에서 그는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였다. 평론가 김현은 이러한 그의 시를 '현실을 철저히 부정적이고 고통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시는
낯설고 우울하며 어두운 이미지,
고독과 죽음에 직접 연결된 이미지들이 흔하게 쓰이며
우울한 유년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이 기이하면서도 따뜻하게,
처절하면서도 때로는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이 언어라는 문제로 평생을 골몰한 두 사상가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가라타니 고진과 도종환
도종환의 시에서 나오는 '접시꽃' 사랑과 '가구'같은 사랑은 꽤나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같은 사랑을 이야기 함에도 애틋함과 사물의 차가움을 이야기 한다.
가구/도종환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공동체’와 ‘사회’를 구분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 있다
겉으로는 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독백만이 이루어지는 곳
동일한 삶과 언어의 규칙만 통용되는 곳
사회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 게임이 마주치고 있는 공간
사랑이란 감정이 어느 경우에 발생하는지 숙고해 볼 필요
공동체에서 발생불가
사랑은 타자, 즉 다른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되는 것
‘접시꽃을 닮은 사랑’
-사회적 층위-아직도 남편은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알아가는 시간은 흥분으로 가득 찬 행복한 순간
‘가구를 닮은 사랑’
-공동체적 층위
-규칙을 공유하는 공동체
-시인은 아내에게, 아내는 시인에게 타자가 아님
-남편은 사랑이란 것이 고진이 말한 사회적인 층위에서,
-타자로의 맹목적인 비약으로서만 존재한다고 직감
사랑이란 감정은삶의 규칙이 다르기에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위험한 도약 혹은 비약을 감행하는 것이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타자로의 비약하는 일종의 신비로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타자로의 위험한 도약'은 진정 가능한 것일까?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이 '타자 간의 위험한 도약'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자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랑의 연대는 진정 요원한 꿈일 뿐인가? 이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III.
이 강의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무관해 보였던 시인과 철학자의 다소 낯선 조합을 통해 그들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역사에 획을 그은 철학자들과 시인. 이들이 공유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의 공통점을 논하는 것은 분명 교과서적인 논법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런 작업을 통해, 철학과 시를 교과서에서 불러내 ‘우리의 일상’ 안에 끌고 들어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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