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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문둥병이 왜 생겼나요?
민수기 12장1~16절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제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 지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가고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나병에 걸렸는지라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고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고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이에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례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아멘
민수기12장 말씀은 여러번 들었던 말씀이고 다들 아시는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하고 고쳐야 되는 부분이기에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댜. 제목은 영적 문둥병이 왜 생겼나요? 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죽고 이방 여인 즉 에디오피아의 흑인종과 결혼올 한 일로 인하여 아론과 미리암이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면서 누나인 자기한톄 의논하지 않고 결정을 해버리니까 모세를 향한 미움의 마음으로 유대민족의 선민의식에 위배 되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미리암이 나서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미리암이 어떤 죄로 인해 벌올 받아 문둥병이 생겼는지 이유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본문 1절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모세는 바로 왕의 무서운 학대령이 내려졌을 즈음에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출애굽기 1:22절에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댜” 그의 부모가 아들이 태어났는데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기며 키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에 아기를 담아 나일강에 두고 갑니다. 모세가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 미리암은 강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바로의 딸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발견할 때 동생을 살리려고 엄마를 유모로 가장하여 모세의 양육을 하도록 하게 했습니다.
미리암이 모세의 생명을 살려 주었는데 은혜를 생각하면 매사에 모든 일에 형하고 누나한태 상의하고 의논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으로 누나된 입장에서 사랑으로 돌봐주고 잘되라고 잔소리하고 조언을 해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수도 있고 우리들 입장에서는 식구니까 형제니까 살다 보면 싸울수도 있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댜.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모세는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기도하고 하나님께 여쭤보고 허락을 받고 결혼을 했겠지요? 그런데 미리암은 자기랑 상의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혼자 결정을 하고 무시하니까 화가 나서 선지자인 것을 잊어버리고 "잘난척하기는”하고 흉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비방하며 판단하고 막말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윗사람으로써 본을 보이지 못하고 대접받으려고 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막말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는데 죄는 줄줄이 몇 가지가 따라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서 어떤 마음을 품고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고 계시고 보고 계시고 생각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 보고 계심으로 말을 항상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비방하고 흉보고 막말하고 손가락질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의 권위를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지도자를 세우신 하나님께 도전하고 대적하고 무시하는 것이기 때 문에 허물이 보이면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더 할꺼야 하고 내 모습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섬겨주고 존중해야 하겠습니다.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한 댓가로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비방하는 것과 남을 흉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서 비방하고 흉보고 막말하는 입술을 고쳐 달라고 성령님께 의뢰하며 전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11- 12절에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는 성도들 간에도 비방하는 행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기 때문에 엄청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볼 때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죄를 젓지 말아야지 하면서 모이면 좋은 말을 하지 않고 헐뜯고 이간질하고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알면서도 죄를 짓고 몰라서도 죄를 짓고 생각없이 말을 내뱉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나를 무시하면 그 모습 내 모습으로 기도해서 이기기보다는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하고 화가 풀어질 때까지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죄를 다 뿌리고 다님으로 인해 화를 당하고 모든 문제들이 꼬이고 묶여버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반복해서 말로 죄를 지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온전히 고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회개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체로서 주님안에서 형제요 자매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차별과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겨주며 서로 도와가며 품어주고 본을 보여야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비교함으로 시기, 질투했습니다.
2절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아론과 미리암은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와만 말씀하시냐 우리도 똑같은 선지자인데 하면서 나도 능력이 있어서 기도하면 꿈으로 알려주기도 하고 응답도 잘 받고 환상도 보고 하는데 하면서 시기가 나서 속이 시끄러워 스스로 분란이 일어나 입을 썩고 흠올 잡았습니다. 불평, 원망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면 내가 먼저 망하고 일들이 꼬여버립니다.
야고보서 3장14- 16절에‘‘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마음에 있는 시기, 질투심을 철저하게 비워내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올라와서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욕심 때문에 나도 잘 할수 있는데 남이 하는 일들을 보면서 판단하기도 하고 빈정거리며 우습게 보기도 하고 또는 나보다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대단해 보이고 잘나가는 것 같고 칭송을 받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안색도 안 좋고 마음이 불편해서 눈도 잘 못 맞추고 피해 다니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면 당을 지어 끼리끼리 모여서 비방하고 다툼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면 독한 시기와 대조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3절-‘‘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이 비방하고 시기, 질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온유함올 잃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내 자유이고 내 마음이지 하고 말때꾸 할 수도, 성질을 내고 핑계를 될수도 있었고 누나니까 이해해 주고 잘했어 하면서 칭찬해 줄 수도 있는데 실망스럽고 섭섭합니다. 라고 반문할수도 있는데 어떤 반옹도 하지 않았습니다.
온유라는 한 단어로 정리를 하고 따지지도 않고 다투지 않고 누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넓은 온유함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딤후 2:24절에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21절에“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 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훈련 기간동안 백성들이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부딪히면서 많은 아픔과,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고 마음을 찢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과 악을 가지고 찢어야 마음이 넓어진다 했습니다.
마음의 폭과 생각의 폭이 넓어야 동그라미 네모, 세모가 와도 수용하고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할 때 자존심을 건드리고 톡 쏘는 말을 해서 화나게 하면 “그 모습이 내 모습이지” 하고 곧 바로 기도하시나요? 아니면 억울해서 절대지지 않을려고 이기려고 하시나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품어주고 이해하고 사랑해야지 판단하고 무시하고 손가락질하고 시기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또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겨주고 순종하며 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된다면 우리 안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교만과 오만 자만 거만과 시기, 질투를 바우고 버림으로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상처를 주지 않고 무시하지 말고 복을 벌어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 번째- 교만해서 질서를 무시했습니다.
본문 7절- 8절에 ’‘모세는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한다는 것은 그만큼 친밀한 관계에 있고 하냐님과 교통함으로 하나님 앞에 특별한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뜻은 모세와는 비교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요? 영적지도자와는 레벨이 달라서 따라갈 수도 없고 흉내낼 수도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왜 모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시면서 질서를 바로 잡아 가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권위자요 리더자요 지도자인 것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동역자입니다. 리더자와 동역자 사이에는 지켜야 할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자를 옆에서 도와주고 협력해야 되는데 뭘 시키면 변명을 하고 토를 달고 거역하며 발목을 붙들고 훼방하고 넘어지게 하고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하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누구를 헤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엉뚱한 말을 해서 남을 념어지게 하고 이간질하고 뒤통수칠 때 미워서 보기도 싫올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 그러셨지’’ 하고 그 모습 내 모습으로 기도하라 그랬지? 말씀에 순종해서 나도 그럴때가 있었지 하고 기도하면 밉지가 않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누구는 이래서 밉고 누구는 저래서 마음에 안들고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 못하겠다고 교회 못다니겠다고 불평을 늘어 놓다가 내가 먼저 넘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마중물을 부어주면 내 죄를 깨닫게 하시고 기도의 제목을 주신 것에 감사하시고 매사에 봉사하면서 성도들과 또는 가정에서 남편, 자녀들과 부딪힌다면 그 오습 내 모습으로 기도함으로 마음의 폭을 더 넓혀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5절에 ‘‘젊은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서로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장로교회에 장로는 가르치는 장로, 치리하는 장로, 병고치는 장로가 있는데 여기에서 장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잠언 16장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한 사람은 자기 주제를 모르고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이 질서를 만들려고 하고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혼미해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질서를 어지럽게 하고 시끄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미워하시고 넘어지게 하십니다.
교만해서 모든 일들이 형통하지 못하도록 흐트러 버리시고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들이 품고 있는 마음 중에 가장 무서운 마음은 교만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님께 교만한 마음을 고쳐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는 곧 권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내에서도 질서가 있고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다 질서가 있지 않습니까? 요한일서 3장4절에‘‘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하신 것처럼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불법이고 죄악입니다. 곧 교회내의 질서는 법입니댜.
육적으로도 질서가 있듯이 영적으로도 질서가 있습니다. 육적으로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섬겨야 되겠지만 영적인 질서와 서열은 하나님이 정하시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명령에 따라서 질서를 따라 서로 겸손하게 움직여야 합니댜. 교회내에서 봉사를 하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내 경험과 내 생각으로“ 이게 아니고요” “제 생각은요” 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거슬리고 대적하고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오기 때문에 영적문둥병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66편:18절에‘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 하신다고 하셨고 요한복음 9장31절에는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신다 했습니다. 잠언 28장13절은“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죄를 보면서 느끼면서 부딪히면서 죄를 비워내야 봉사하면서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에 하루도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가 기어올라오기 때문에 순종하고 복종하기보다는 대적하고 거역하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엎드려 기도도 해야 되겠지만 문제가 없을 때, 평안할 때 기회를 주실 때 매일 쉬지 않고 부지런히 꾸준히 마음을 넓히기 위해 죄된 모습들을 비우고 말씀으로 새겨져서 온유,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믿음이 있는 자는 시키는 대로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한 자였습니다. 영적지도자로서 맡겨진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자였습니댜. 그런데 너희들이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십니다.
10절에 미리암이 비방하고 시기, 질투하고 질서를 무시한 결과로 인해 문둥병이 걸립니다. 이것을 보면서 11절에 아론이 비방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 모세에게 우리가 어리석어서 죄를 지었으니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중보기도 요청을 합니다.
13절 그러나 모세는 “다시는 대적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앞으로는 잘하세요”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누나를 고쳐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도전하면 용납하지 않으시고 죄에 대해서는 심판을 하십니다. 그 후에 미리암은 진영밖에 칠일동안 갇혀서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내에서도 영적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촌경과 섬김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를 통해서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가 나를 사로 잡고 있어서 눈만 뜨면 죄를 짓고, 입만 떼면 죄를 짓고, 가만히 있어도 마음속으로 죄짓기에 바쁩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저희들을 위해 모세처럼 중보기도 해주신 주님과 목사님이 계시기에 이렇게 평안하게 형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시는 분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중보기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 고단하고 힘들고 지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있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지도자, 즉 목사님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듣고 훈련받는 것 눈물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미리암은 왜 문둥병이 걸렸을까요?
제가 여수에 있는 애향원이란 곳에 가서 문둥병 환자를 보았을때는, 얼굴이 형태가 무너져 일그러져 있었고 눈이 떠져 있는데 감기지 않고 코가 변형이 되어 안장 코처럼 제자리에 있지 않고 손가락 발가락이 뭉개지고 형체가 변형되어 온전치 못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마주 앉았는데 섬뜩하고 무서울 정도로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우리와 똑같다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상태가 죄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기쁨이 없고 마음이 괴롭고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증세가 있다면 다 문둥병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리암은 교만해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판단, 정죄하고 무시 업신여기고 비방하고 욕심 때문에 시기 질투하고 악을 도모하고 월권행위하고 질서를 무시하여 거역 불순종한 결과로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어려움과 고난이 오고 묶이고 꼬이고 막히고 시기, 질투함으로 자기의 발목을 잡고 영적으로 병이 들어 성장이 멈추고 전진이 안 되었습니다.
사울 임금이 교만하고 시기, 질투해서 최후가 비참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지게 하고 자빠지게 하는 시기, 질투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대적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또한 매사에 죄된 모습들을 보면서 판단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내 모습”으로 들어가서 마음이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져서 온유함을 받는 저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날마다 매일 회개하는 것 쉽지 않지만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앉으나 서나 깨닫고 회개하려고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그리고 마음에 말씀을 새김으로 회복이 되고 고침을 받아 신앙과 믿음이 성장하고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약에서는 어떻게 해서 문둥병이 고침을 받는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장11~19절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1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절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절 소리를 높혀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절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절 그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절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온 어디 있느냐
18절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서 고쳐주셨는데 어떻게 해서 고침을 받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2- 13절) 12절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절 소리를 높혀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열 명의 문동병자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 서서 소리를 높혀 ‘‘예수 선생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문둥병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생겼다고 생각하고 부정한 병으로 취급되어 다른 사람들은 가까이할 수도 없었고 율법에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서 큰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문둥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살기 위해서 마음을 모아 힘을 합쳐서 소리를 질렀겠지요
여기서 우리도 어떤 일이나 남편, 자녀의 문제, 질병의 문제들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면 이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해결해 주실 꺼야. 머리로는 아는데 실질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닥쳐오면 믿음이 없어 맡기지 못하고 염려하고 의심하며 망설일때가 있지는 않았는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이 문둥병자가 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은 것처럼 고쳐주실때까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도 없고 인내도 없고 끈기도 없어서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가 복음 9장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할 때 역사가 나타난 것처럼 우리도 어떤 일이든지 의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고쳐질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인내함으로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믿음을 구하십시오. 구할 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열 명은 영으로 보면 많다라는 뜻입니다. 않은 사람들이 다 문둥병 환자라는 것입니댜. 즉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영적 문둥병 환자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문둥병자라고 생각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2. 말씀에 순종함으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14절에‘‘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이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열 명이 크게 소리를 지르니까 예수님은 보시고 반응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문둥병이 걸리면 완전히 치료되었을 때만 제사장에게 가서 나은 것을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레위기 14:1- 9절)
그런데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안수해 주신 것도 아니고 치료해 주시지도 않았는데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대한 마음을 보시려고 시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들은 가다가 즉 순종했더니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순종은 토를 달지 않고 반문하지 않고, 내 생각이 들어가지 않고, 의심도 하지 않고 “이따가 할께요’’가 아니라 즉각으로 순종할 때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삼상 15장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행했을 때 역사가 나타난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말씀에 의지하여 교만해서 비방했고 욕심 때문에 시기, 질투했었고 월권행위하여 질서를 무시하고 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하며 대적한 것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죄를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로 회개했을 때 문둥병이 깨끗이 낫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26~27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구하지 못해 얻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고 또 구하여도 죄가 있어서 가로막혀 있어서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말씀을 붙들고 죄를 비워내는데 열심을 다합시다.
3.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문둥병이 고침을 받게 되자 얼마나 기뺐겠습니까? 기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겠지요? 너무 기뻐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겠지요? 문둥병이 걸리니까 모두들 손가락질하지요. 너무 외롭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서렵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닐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무시를 당하지도 않아도 되고 따돌림도 당하지 않고 숨어다니지도 않고 마음대로 당당하게 다닐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친구들한테 자랑도 하고 싶었겠지요. 그런데 아홉명은 하나님앞에 감사하기는 커녕 ‘‘예수님이 직접 안수해 주신 것도 아닌데 뭐”, “나을려니까 나은거지’, ’또 "재발할수도 있을 거야" 하고 합리화 시키며 각기 제 갈길로 갔습니다. 고침을 받았는데 감사를 하지 않거나 감사를 다음으로 미루게 되면 죄가 살아나서 또 다시 병이 걸릴수 있는 확률이 큽니다. 감사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감사를 미룰 때가 있고, 아까워서 계산하고, 하기 싫어서 넘어갈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았을 때 감동이 왔을 때 미루지 않고 즉시 감사할 때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 것 같습니다. 또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로 영광돌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시며 책망하십니다. 그러면서 19 절에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홉 명은 육으로 고침받는 것으로 끝났지만, 감사한 한 명은 육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영적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결론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다 영적으로 문둥병 환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병의 원인은 다 죄 때문에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믿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되고 두 번째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고침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을 믿고 영광을 돌리며 감사 헌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영육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알기는 알지만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그 어떤 병도 고침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어떤 일도 기도해서 되어지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셨기에 무조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기도하고 마음이 생각이 정신이 육체의 질병을 고침받았다면 하나님앞에 감사함으로 헌물을 드리되 아낌없이 드려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는 재발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구원 받은 백성으로 이제는 신앙이 성장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려면 먼저 자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을 알아야만이 기도를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신앙의 성장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1~2절
1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절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울퉁불퉁 거칠고 모난 부분들을 조금씩 고쳐주시고 다듬어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죄를 비우고 버리고 성장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 마음에는 악과 독이 있고 기만(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것이 있어서 성장하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마음에 생각 속에 있는 간사해서 남을 넘어지게 하고 칭찬받을려고 남을 미끄러지게 하는 죄의 속성들을 다 비우라고 하십니다.
또 무엇을 버려야 되나요? 악과 독올 버려야 합니다. 남을 해하려고 하는 독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속이는 기만과 겉과 속이 다른 솔직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거짓으로 꾸미고 시기와 비방하는 말과 상처주는 말, 남을 넘어지게 하는 말과 험담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버릴때 믿음이 성장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부여받았고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믿음도 신앙도 성장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주님께로 날마다 내 죄를 가지고 비우기 위해 가까이 간다는 것입니댜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유혹과 환란이 오고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쉽게 무너지고 넘어지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의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회개하고 말씀을 채움으로 남올 이해하고 헤아리고 용서하며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하며 섬겨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모해야 할 것은 2절에 갓난아이같이 순전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머니의 젖만 있으면 먹고 건강하게 성장하듯이 우리도 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영으로 건강한 것처럼 죄를 비우고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댜
오늘 말씀을 전체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문둥병은 최초에 창세기 3장에 사탄한테 유혹을 당함으로 그때부터 죄가 들어와 우리의 마음이 문드러지고 생각이 문드러져서 바른 말을 할수가 없고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에 죄성을 비우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죄 때문에 결국은 다 아파서 병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이미 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에 있는 죄를 숨기지 말고 다 내려놓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에 있는 비방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욕심때문에 시기 질투 하고 질서를 무시한 죄성과 베드로전서 2장에 있는 악과 독과 남을 넘어지게 하고 속이는 것과 비방을 비우고 빈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라는 것입니댜.
누가복음17장에서는 내가 영적으로 문동병환자라고 생각하고 믿음의 확신올 가지고 고쳐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영육이 구원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권*복 강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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