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01
“이재명 후보가 당선돼도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다시 출마하는 게 아니지 않냐.”
지난 10월 18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이다.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정부를 계승하되 부족한 점을 보완·발전하겠다는 취지”라면서 “국민은 새로운 것을 바라지, (전 정부를) 단순 복제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집권 여당 대표가 이런 발언을 한 이유는 여당 입장에서 현재의 선거 구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테다. 현재 ‘정권 교체론’이 우세하다. 역대 대선을 되짚어보면 정권 교체론이 우세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 새누리당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18대 대선 당시에도 정권 교체론이 우세했다. 한마디로 정권이 재창출되든, 아니면 정권이 교체되든 여론조사상에서는 정권 교체론이 거의 항상 정권 재창출 여론보다 우세했다. 따라서 단순히 정권 교체론이 우세하다고 해서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유리하다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송영길 대표가 위기감을 가질 만한 환경인 것은 맞다. 현재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 정권 교체론과 정권 재창출 여론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과 비슷한 시점인 17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인 2007년 7월 21일에 발표된 TNS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 교체론이 정권이 재창출돼야 한다는 여론보다 10.9%포인트 높았다. 보수 측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18대 대선을 3개월여 앞둔 2012년 8월 29일 발표된 리서치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권 교체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보다 5.4%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21년 10월 8일에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10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14%,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정권 교체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보다 무려 19%포인트 높다. 탄핵 때문에 치러진 19대 대선을 예외로 치면, 이 정도로 정권 교체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을 압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송영길 대표의 정권 교체론이, 단순히 현재 상황이 여당에 열악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재명 후보는 ‘여당 내 야당 이미지’가 강했다. 철저한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동안 이재명 후보 지지층에는, 현 정권에 반대는 하지만 그렇다고 야당을 지지하지도 않는 유권자 다수가 포함돼 있었다. 송영길 대표의 정권 교체 발언도 이 후보 지지자의 이런 특성을 감안한 언급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그 이유로, 먼저 이재명 후보가 명실상부 집권 여당 후보가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는 그동안 여당 내에서 철저한 비주류면서 아웃사이더였지만, 여당 대선 후보가 됨으로써 아웃사이더 이미지는 사라지고 대신 여당 주류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그것도 정권 교체’라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상당 부분 희석한다. 그렇다고 이 후보가 현 정권과 대립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일 수도 없다. 그럴 경우 가뜩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주류 세력 반발이 매우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주류 세력의 불안감이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민주당 과거를 보면, 새롭게 등장한 대선 후보에 의해 당내 주류 세력이 교체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故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동교동계는 서서히 몰락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가 되고 대선 후보가 되면서부터 동교동계의 상당수는 민주당을 떠나야 했다. 친노도 마찬가지 운명을 걸었다. 친노 중 일부는 친문이 됐지만, 적지 않은 수의 친노가 신주류 친문에 밀려 당을 떠났다. 이런 현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주류인 친문은 ‘이재명의 민주당’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가 현 정권을 딛고 일어서려는 모습을 보이면 주류의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저항이 매우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기존 지지층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판국에 주류의 반발마저 거세지면, 이재명 후보는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재명 후보의 딜레마가 있다. 이재명 후보가 중도층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지층의 외연 확대를 위해서라는 차원을 넘어 대선 승리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현재의 이념 지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왼쪽 차트에서 볼 수 있듯 IMF 사태로 당시 야당 승리가 당연시됐던 1997년 대선을 제외하고, 진보가 늘었던 2002년 대선에서는 진보 측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진보가 급감한 2007년 대선에서는 정권이 보수 쪽으로 이동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아주 근소하게나마 보수가 진보보다 우위였고, 보수는 결국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2017년은 탄핵 여파로 당연히 보수가 급감해 진보 측이 정권을 가져가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지금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9월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14%,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2017년에 비해 진보는 급감하고 보수는 약간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 측이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중도층을 포섭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민의 이념 지형이 단시일 내에 바뀌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감안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중도층을 포섭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해 이재명 후보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현재 언론의 집중적 주목을 받고 있는 대장동 의혹과 백현동 의혹을 보다 확실하고 명쾌하게 해명하는 일이다. 매일경제·MBN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10월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응답률 3.4%,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응답자 중 45.9%가 ‘이 지사가 대장동 개발 비리에 직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런 여론조사를 봐도 이 후보는 좀 더 명확한 자료를 제시하며 해당 의혹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필수다.
종합적인 상황은 여당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물론 섣부르게 대선 결과를 예상할 수는 없다. 말 한마디에 판세가 뒤집어지는 것이 대한민국 선거판이기 때문이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2호 (2021.11.03~2021.11.0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