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탁류'의 등장 인물들 탁류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초봉이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한다. 작가는 정주사의 딸 초봉이를 내세워 그가 어떻게 탁류 속에 살아가며 어떻게 그 속에서 헤쳐 나가는가를 통해 일제 식민지민의 실상과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녀는 신학문을 배우고 미모까지 겸비한 여성으로서 결혼 전까지 사회의 악이 어떠한 것이지를 체험하거나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기적 욕망의 삶을 추구하는 정주사에 의하여 그의 딸 초봉이는 사기꾼이며 호색한인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이로 인해 초봉이의 비극적 생애가 시작된다. 남승재를 사랑하지만 생활에 쪼달리는 부모와 집안을 위해 고태수와 결혼할 때의 심정을 위와 같이 나타내고 있다. 고태수와의 결혼은 초봉이가 자신을 탁류 속에 내던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원하지 않던 고태수와의 결혼, 꼽추 장형보의 흉게에 의한 남편 고태수의 죽음, 장형보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 박제호의 첩이 되는 것, 누구의 딸인지도 모르는 송희의 출생, 박제호의 배신, 장형보와의 지겨운 살림을 차례로 거치는 기구한 운명으로 전락하다가 결국은 살인까지 저지르는 비극을 가져온다는데 이는 초봉의 비극은 불행한 한 여인의 단순한 비극이라기 보다는 당대의 신·구 모럴이 무질서하게 얽힌 와중에서 한 여인이 억울하게 겪는 시련과 고초가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 사회가 붕괴된 식민지 시대 주인공 초봉이에게 계속 이어지는 이러한 고난과 역경의 생활은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뜻에 의하여 계승되지 못하고 언제나 외부의 노력에 의하여 변질되어 온 우리의 역사적 현실과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으로 정주사를 살펴보면, 초봉의 부친인 정주사도 도시 하층민의 한 사람으로서 빈민촌의 오두막에 거주한다. 원래 그는 중산층이라고 할 만큼 토지를 물려 받았고 당시로서는 상당한 신구학문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가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된 원인은 직접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일제의 경제적 침투라는 외적 요인과 함께 그의 성격적 결함도 개입돼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근대적으로 변모돼 가는 사회 속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면으로는 그가 노동력이 있고 살림 규모가 있는 착실한 농군도 아니었고 주변 환경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지성 대신에 낡은 윤리관념으로만 대처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성격상의 결함 때문에 그는 약간의 토지가 있는 군청 직원에서 군산이라는 도시의 일개 사무원으로, 사무원에서 미두꾼으로 거기에서 다시 하바꾼으로 필연적인 전락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작가 채만식은 물려받은 토지조차 지키지 못하고 도태된 그를 '人間記念物(인간기념물)'이라고 조롱하며, 생활에 구속만 가져다 주는 낡은 유교 관념만 가졌을 뿐 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가장이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興甫(흥보)'라고 자탄하게 한다. 그를 작가는 미모의 딸인 초봉을 부자 사위에게 결혼시킴으로써 덕을 보고자 하는 무책임한 봉건적 윤리 의식을 가진 가장으로까지 몰고 감으로써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다음으로 고태수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자신의 자포자기적인 삶을 보상 받으려는 심리에서 속임수로 초봉과 결혼함으로써 초봉을 불행케 하는 최초의 단서가 되는 인물이다. 그는 하숙집의 김씨와 간통하는가 하면 기생인 행화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에게는 주색 이외에 인생의 목표는 없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유흥 비용을 대기 위해 은행의 당좌계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거액의 돈을 유용한다. 그는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서 친구인 형보를 통해 미두에 손을 대지만 손해를 봄으로써 사태는 오히려 악화된다. 그리고 그는 공금을 유용한 사실이 발각되면 자살을 하려니 하는 막연한 결심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인생을 더욱 즐거움 속에서 지내고자 평소 흠모해온 초봉과의 결혼을 추진하여 성공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앙심을 품고 있고 태수의 처가 된 초봉에 대해서 음흉한 욕심을 품고 있는 형보는 친구인 고태수를 제거하기 위해 간계를 짜낸다. 그 간계에 빠진 줄 모르는 태수는 김씨와의 간통의 현장에서 하숙집 주인인 한참보이 내려치는 방망이 아래 숨을 거둔다. 소설 속에서 가장 악랄한 악인으로 나타나는 인물이다. 돈을 얻기 위해 은행원 고태수와 형식적인 친분 관계를 맺고 그의 아내인 초봉이까지 탐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돈과 여자뿐인데 그것의 획득에 있어서도 그는 가장 야비한 방법만을 이용한다. 장형보가 고태수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부분에서도 그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인물로 나타나는가를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고태수를 이용해 돈을 가로챌 뿐만 아니라 초봉을 손에 넣기 위해 고태수를 죽게 하는데, 이 부분에서 장형보의 고태수에 대한 인식이 돈 이상의 인간적 친분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장형보는 고태수와 마찬가지로 소비적이고 쾌락 추구에 몸을 던진 의지박약자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인물들은 소설속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러면 긍정적인 인물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탁류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사람은 남승재인데 그는 고아로 자랐던 불행한 성장과정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의사 조수로부터 시작해서 중등과정의 교육을 마쳤고 꾸준한 의사면허 시험 준비 끝에 의사 자격을 따내는 노력형의 인물로서 비슷한 성장 과정을 밟은 고태수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는 타고난 심성이 순박하고 인간애에 넘친 박애주의자로서, 의사 면허 시험 준비와 병원 조수라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빈민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박봉을 털어서 무료시술을 베푸는가 하면 야학의 교사로서 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가난과 질병이 전체 사회에 만연돼 있어서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은 한강투석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깨달음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새로운 인식에 수반하여 자신의 할 일에 대해 자각하는 데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 이후 그는 계봉이의 계시에 의해서 빈민들의 가난과 질병이 개개인의 무지나 게으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커다란 사회적 원인에 의해서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앞에서 부정적 인물인 초봉이의 동생 계봉이는 긍정적 인물로 등장하며, 합리적인 정신의 소유자다. 그녀는 초봉이의 성적 노예생활에 의존해 살아가는 집을 뛰쳐나와 상경한다. 상경해서도 형의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서 백화점 판매원으로 취직하여 자립생활을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계봉이는 이 소설에서 가장 건전한 인물로 나오는 남승재와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으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당참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탁류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을 살펴 당시의 시대적·사회적 상황과 연결 지어 보았다. 탁류는 시대적 상황, 즉 하층민의 몰락 과정을 다뤘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대적 반영보다는 초봉이의 불행한 인생이야기 쪽으로 초점이 모아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초봉이가 장형보를 살해함으로써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자 한 면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고는 볼 수 없다.